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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말
이번 에세이의 저자 로히니 헨스만(Rohini Hensman)은 스리랑카 타밀족 출신 이민자로서 현재 인도에 거주하며 저작 활동과 사회활동가로서 일하고 있다. 여러 저자의 기고문을 편집한 이런 종류의 책의 장점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저자들의 삶을 단편적으로라도 들여다보게 되면서 주제에 대해 더욱 풍성하고 입체적 - 지역, 젠더, 접근 방식 등 - 이해를 하게 된다는 점이다. 일단 저자는 여성이다. 그리고 스리랑카에서도 차별받는 소수 민족 타밀족이다. 또 가깝지만, 타밀족과는 일정 긴장 관계에 있는 인도에서 이민자로 살고 있다. 여성으로서 성차별에 대한 저항, 소수민족 혹은/그리고 이민자로서 인종/에스닉 차별에 대한 저항, 사회주의 활동가로서 계급 차별과 존속에 대한 저항, 여기에 더 나아가 인도의 문화적 계급인 캐스트에 대한 저항 등. 소위, 젠더, 계급, 인종 그리고 문화까지 우리 지구촌 인간이 당면할 수 있는 주요 사회적 문제를 종합적으로 그녀는 맞닥뜨리고 있는 셈이다. 이런 그녀의 환경은 서구의 사회주의 운동가들에게 자극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활동가로서 학계에 어떤 적을 두고 있지 않으며 독립적으로 연구하고 저술 활동을 하는데 이렇게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혹은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면서 자기 생각을 발전시키고 전파하는 이들을 이 책을 통해서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이전 포스트 ‘민주사회주의에서 도시의 모습’에서 소개된 활동가이자 작가인 James Boggs는 근 30년간 미국 크라이슬러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면서 그의 생각을 발전시켰으며 다른 포스트에서 언급된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사회주의 이론가는 신발가게 점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과거 혁명가(revolutionary)로 불렸던 그리고 오늘날 사회주의 활동가(activist)들로 불리는 이들의 글은 역시 실천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기에 논리의 전개가 자신의 활동 과정에서 부딪혔던 질문과 그 답을 찾고 발견하는 과정의 중계 같은 흐름이기 때문에 나 같은 입문자에게는 매우 흡인력 있는 글이 된다. 이번 글 역시 외부에서 사회주의 이행을 바라볼 때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일 수 있는 ‘폭력적 혁명’이냐 아니면 ‘평화적 정권교체’냐는 돌직구 질문을 저자는 피해 가지 않는다.
사회주의와 그것을 달성하는 방법에 대한 맑스와 엥겔스의 생각: 비판적 평가
(Marx and Engels on Socialism and How to Achieve It: A Critical Evaluation)
Rohini Hensman

서론(INTRODUCTION)
맑스와 엥겔스의 사회주의 사회와 그것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혁명에 관한 글들은 다소 단편적이다; 그들의 글은 무엇이 자본주의 사회와 부르주아 국가를 대체할 것이며 또 어떻게 대체할 것인지를 예측하기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와 부르주아 국가의 비판에 더 관심이 많았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와 세계는 그들 시대 이후 엄청나게 변했고 그들의 비전은 상당 부분 업데이트되어야 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회주의를 평가하고 그 세부사항을 업데이트하기 전에 사회주의가 의미하는 일반적인 원리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쓴 글을 추적하는 것이 여전히 가치가 있다.
이 추적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사회주의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우리는 비록 그 과정의 모든 우여곡절을 예상할 수 없더라도 나아가야 할 전반적 방향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맑스와 엥겔스 추종자 중 상당수가 그들의 비전을 왜곡하면서 맑스와 엥겔스가 서술한 것과 완전히 상반된 사회주의에 대한 정의를 내렸기에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맑스의 자본주의 분석(MARX'S ANALYSIS OF CAPITALISM)
맑스에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부정(negation)이기 때문에 자본에 대한 그의 분석을 요약할 가치가 있다. 맑스를 따르면, 자본주의는 상품생산(commodity production), 화폐(money) 그리고 임금노동(wage labor)으로 특징지어진다. 상품은 사용 가치(use value) - 누군가는 유용하다고 생각해야 함 - 와 교환 가치(exchange value) 혹은 더 간단히 말해서 가치(value)를 조합한 것이라고 맑스는 설명한다: 상품은 사용될 수 있기 전에 반드시 판매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발달한 상품 경제에서 상품은 보편적 등가물인 화폐를 위해 판매된다.
이것만으로 이미 잠재적 문제를 일으킨다. 누군가는 절실히 상품 - 가령 음식 - 을 원하지만 살 돈이 없어 오늘날 세계에서 너무나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굶주리거나 심지어 아사하기도 한다. 상품 판매자도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이 생산하는 상품을 위한 좋은 시장이 있다고 믿으며 생산에 착수하지만, 같은 생각을 하는 생산자들이 너무 많아지면 이들과의 경쟁으로 적정 보상 가격에 그들의 제품을 팔기가 힘들거나, 심지어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이들 판매자는 - 특히 가진 자원이 제한된 소규모 생산자들 - 손실과 파산의 위협에 시달린다. 이런 상황은 일부 경우 이들을 노동 능력(capacity to labor) 외에는 팔 것이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며 결국 프롤레타리아 혹은 노동 계급 일부가 된다.
맑스는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것은 노동자의 노동(labor)에 의해 창출된 가치와 동등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노동력(labor power)의 가치 - 매일매일 그리고 대를 이어 노동자의 노동 능력(capacity to labor)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임금 - 와 상응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본가들은 이런 방식으로 그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에게 임금 명목으로 지급하는 가치 이상의 “잉여 가치(surplus value)”를 생산하기 위해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하는데 이것이 자본가들 이익(profit)의 원천이다. 이익은 확장된 생산에 재투자된다; 이것이 자본주의 축적의 과정이다. 이익의 생산과 자본의 축적은 자본주의 생산의 원동력으로 자본주의를 본질적으로 세계적 시스템으로 만든다. 그러나 이 자본주의의 이익 생산과 자본 축적 방식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만든 생산품 - 그들에게 속하지 않고 그들의 고용주에게 속한다 - 과 그들의 노동 - 그들 고용주의 지배와 통제하에 행해진 -으로부터 소외되게 만든다. 이 자본의 축적 강박은 프롤레타리아의 빈곤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위기를 초래한다.
맑스의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대한 분석은 완벽하지 않다. 예를 들어, 한 곳에서 그는 노동력의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commodity)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생산에 들어간 노동 시간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논리적으로, 그 시간은 임금을 벌기 위해 노동에 사용된 시간은 물론, 생계를 위한 물품 구입에 사용되는 시간, 이 구입된 물품을 현재와 미래의 노동력으로 전환하기 위한 가사 노동 - 쇼핑, 요리, 청소 그리고 돌봄 - 에 사용되는 시간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맑스는 그의 분석에서 가사 노동을 무시했으며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노동계급 가정에서는 오직 개인 소비만 진행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여성에 의해 수행되는 막대한 노동을 보이지 않게까지 했다.
엥겔스는 노동 성별 분업의 존재는 인정했지만, 노동력의 가치에 대한 가사 노동의 기여는 인정하지 않았다. 맑스와 엥겔스의 여성 가사 노동에 대한 이런 간과는 맑스의 자본에 대한 분석뿐 아니라 사회주의와 그 이행에 대한 그의 비전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이 이슈가 구체적으로 다루어지게 된 것은 20세기 후반 맑스주의 페미니스트들에 의해서였다. 그럼에도 맑스의 가장 큰 장점은 다른 사람의 이론뿐만 아니라 자신의 분석조차도 비판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맑스와 엥겔스의 부르주아 국가에 대한 분석은 덜 체계적이며 산만하다. 가장 유명한 성명은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에 있다: “현대 국가의 행정부는 부르주아 전체의 공통 관심사를 관리하는 위원회일 뿐이다.” 그러나 바로 같은 선언문에서 이 성명이 생산에 있어 서로 분열된 자본가들이 항상 정치적으로 단일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인정한다; 선언문은 조직된 노동 계급이 “부르주아 계급의 분열을 이용해서 노동자의 특정 권익을 입법화하도록 강제하여 영국에서 10시간 법안(1847년, 여성과 미성년(13-18세)은 방직공장에서 하루 10시간을 초과하여 일을 못 하게 만든 법안:역자 주)이 통과되었다"라고 서술한다. 이 진술들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를 노동자의 이익에 항상 반대하는 단일체로 보는 입장보다 더 미묘한 입장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사실, 맑스의 다른 정치적 저술들은 훨씬 더 복잡한 관점을 보여준다. 그의 초기 저술에서 맑스는 헤겔에 대한 비판을 통해 그의 주장을 전개한다. 헤겔은 시민이 상대방의 희생 위에서 자신의 특정 이익을 추구하는 시민 사회(civil society)와 달리 부르주아 국가는 사회의 공통 이익을 추구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반해 맑스는 국가의 관료들도 시민 사회의 공통 이익에 반할 수도 있는 자신만의 특정 이익을 추구하며 그들 역시 시민 사회와 마찬가지로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맑스는 이해관계가 경쟁하는 사회로서 부르주아 사회와 이 사회의 공통 관심사로 여겨지는 것의 소외적(alien) 특성 간 관계를 주목한다.

국가를 시민 사회로부터 분리된 것으로 보는 맑스의 견해는 루이스 보나파르트(Louis Bonaparte)(나폴레옹 3세로 불리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나폴레옹 1세의 조카:역자 주)의 쿠데타(1851년)에 대한 설명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제2제국의 보나파르트 아래에서 국가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모두에게 독재 정치를 행함으로써 완벽히 독립한 것처럼 보인다.” 보나파르트는 보수적 소농 계층에 기반을 두고 있고, 룸펜 프롤레타리아에 속해 있으며 “농민과 국민의 대표로서 부르주아 사회의 틀 안에서 하층계급을 행복하게 해주길 원하는 사람으로서 보이는 방법을 알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으로는 부르주아를 반대하지만,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그에 따른 부르주아 사회는 보존하려는 권위주의적 폭군을 우리는 보게 된다.
이런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 맑스는 부르주아 국가가 다른 형태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다른 형태들도 자본주의의 영속화를 위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노동자들이 그 형태들에 대해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맑스는 그의 헤겔의 권리 철학 비판을 통해, “제한 없는 참정권을 통해 시민사회는 처음으로 그 자신을 추상적이며 진정으로 보편적이고 본질적 정치적 존재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으며” 이를 통해 부르주아 국가와 자본주의 사회는 “해체(dissolution)”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맑스와 엥겔스의 이런 믿음은 공산주의 선언에서도 이어진다: ”노동 계급에 의한 혁명의 첫 단계는 프롤레타리아를 지배 계급 지위로 끌어올리고 민주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엥겔스는 나중에 “‘공산당 선언’에서 이미 보편적 참정권과 민주주의의 승리는 전투적 프롤레타리아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임을 선언한 바 있다"라고 확인했다. 민주적 부르주아 국가 이슈는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논할 때 다시 둘러보겠다.
사회주의에 관하여(ON SOCIALISM)
먼저 Paresh Chattopadhyay가 그의 광범위한 연구 끝에 내린 결론처럼, 맑스와 엥겔스는 “사회주의(socialism)”와 “공산주의(communism)” 용어를 같은 의미를 가진 것으로 번갈아 사용했다: 즉,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의 사회(Society of Free and Associated Producers)” 혹은 “자유로운 개인의 조합(Union of Free Individuals)”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이 사회에서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자본가 계급도 임금 노동자 계급도 없을 것이다; 모든 계급 구분은 실질적으로 폐지될 것이다. 이 사회에서는 생산자들이 서로 피드백을 해주고 소비자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요청하는 생산 조합의 네트워크 같은 것에 기초한 생산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품(products)은 상품(commodities)으로 팔리지 않으며 화폐도 없을 것이다. 노동 시간은 최소화되고 자유 시간은 최대화된다. 자본주의가 글로벌하기 때문에 사회주의도 글로벌해질 것이다.

Chattopadhyay에 의해 명확해진 다른 중요한 점은 맑스가 보기에 모든 자본이 여전히 국가에 집중되고 - 심지어 프롤레타리아 국가일지라도 - “대다수가 생산 수단으로부터 분리된 채 임금/급여 노동자로 남아있다면” 자본주의의 폐지 혹은 사회주의의 대두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소비에트 연방과 이후 동유럽과 중국에서 설립된 국가들은 대다수 국민이 생산 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임금 노동(그리고 최악의 경우 노예 노동)을 하고 상품 생산과 화폐가 존속하기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로 간주할 수 없다; 이들 국가는 국가 자본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맑스 관점에서 사회민주주의 복지 국가도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
맑스는 자본주의로부터 막 벗어나 공산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를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 단계에서 개인은 생산에 사용된 생산 수단의 대체, 생산의 확대, 비축 혹은 비상용 자금, 행정 비용, 보건과 교육 같은 공공서비스 그리고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 위한 지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자신이 투여한 노동 시간에 상응하는 만큼 사회로부터 돌려받는데 이런 면에서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은 일정 부분 비슷한 면이 있다. 이 돌려받는 과정은 화폐가 아닌 노동 증명서 같은 것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에서 개인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 받고 능력에 따라 기여하며 일은 만족스럽고 즐거운 직업으로 변화할 것이다.
오늘날, 하위 단계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들이 얼마나 일을 하던지 관계없이 그들의 기본적 필요(의식주, 공공시설, 의료 그리고 교육의 이용)를 제공받아야 하며 건강한 성인은 그들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사회적 노동에 기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이 즐거움이 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사회는 위험하고 즐겁지 않은 일들은 자동화하거나 로봇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인도의 수백 명의 달리트(Dalit)(인도 카스트에서 최하위에 있는 불가촉천민 ‘찬달라’의 다른 이름:역자 주) 위생 청소노동자들은 하수구를 청소하다 사망한다. 이런 일은 더 나은 안전 장비를 통해 덜 위험해질 수 있겠지만, 여전히 즐겁지 않은 일이기에 궁극적으로는 인간 노동의 완전한 제거가 바람직하다. 이 일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또 지적 노동과 육체노동의 구분을 없애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도록 일과 개인을 연결하는 것도 필요한데 이 역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맑스와 엥겔스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국가(state)가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거듭 명확히 했다. 엥겔스가 말했듯이, “ 생산자들의 자유롭고 동등한 연합에 기반을 둔 생산을 새롭게 조직하는 사회는 국가라는 기계를 고물 박물관의 물레와 청동 도끼 옆에 둘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사회에서 생산과 분배는 어떻게 조율되는가? 이에 대해 엥겔스는 사회주의에서는 더 이상 필요치 않을 “사람들에 대한 통치(government of persons)”를 책임지는 계급 지배의 기관으로서 국가와 “사물에 대한 행정 업무… 생산과정에 대한 방향 설정”과 같이 여전히 필요한 것들을 관리하는 민주적인 정부 형태를 구분했다. 이 구분을 따르면, 10월 혁명 직후부터 발달하기 시작해 스탈린 치하에서 괴물 같은 수준으로 성장한 소비에트 연방은 결코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었다.
그런 사회가 가능할까?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무엇을 얼마나 생산해야 하는지에 대한 계산은 과거 힘들었겠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은 이 과제를 오늘날 훨씬 실현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또, 파리 코뮌(아래 참조)을 모델 - 일부 수정(가령 성 평등)을 거쳐 -로 한 선출 기관이 에너지 정책, 의료 우선순위와 같은 이슈들을 토론하여 의사 결정을 한 후 그 결정을 수행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물론 지역 단위 정부는 상급 지방 정부에 대표를 보내야 할 것이며 이 지방 정부는 다시 전국 단위 중앙 정부에 대표를 보내고 이 중앙 정부는 세계적 단위의 더 높은 수준의 결정을 위해 글로벌 기구에 대표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이것은 각 단계의 통치 기구들이 억압으로 벗어나 모두를 위한 더 나은 삶을 위해 사회의 모든 면을 민주적으로 결정한다는 전제에서 가능할 것이다.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은 아마 자본가로부터 생산수단을 빼앗고 부르주아 국가를 제거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과업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사회주의로의 이행(THE TRANSITION TO SOCIALISM)
맑스와 엥겔스는 “노동 계급의 해방은 노동 계급 자체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며” 다른 계급의 사회주의자들은 이들 프롤레타리아를 도울 수 있지만 이끌 수는 없다고 명확히 밝힌다; 이들은 또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순간적 사건(a momentary event)이 아닌 획기적 과정(an epochal process)으로 생각한다. 그들 사후 더욱 그 중요성이 강조되는 부분은 맑스와 엥겔스는 혁명은 본질적으로 국제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공산당 선언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Working men of all countries unite)!”라는 슬로건으로 마무리되는 이유다.
‘선언’의 마지막 슬로건은 분명 국제주의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특히 당시 여성의 임금노동으로의 대규모 유입을 감안했을 때, 여성의 소외를 보여준다 (한국어로는 노동자로 번역되지만, 영어로는 workers가 아니라 working men인데 이점을 저자는 지적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공산당 선언이 발간된 1848년의 유럽 학계 - 심지어 20세기 후반 최근까지도 -는 사람(persons)을 통칭할 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습관적으로 ‘men’으로 표기하는 경향이 있어서 맑스와 엥겔스는 그런 차원에서 working men이란 표현을 쓴 것이지 ‘working male’를 가리키기 위해서 이 표현을 쓰지는 않지 않았나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을 해본다:역자 주). 그 이후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영웅적 노력은 역사상 그리고 현재 노동계급 투쟁에서의 여성의 중요한 역할을 밝혀왔으며, 일정 부분 사회주의 혁명의 비전에 성 평등을 위한 투쟁을 포함시켰다.

1910년 국제 사회주의 여성 대회에서 처음 제안된 국제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은 세계 여성 노동자로 하여금 그들의 요구와 투쟁을 알릴 수 있게 하는 플랫폼을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 대부분 사회주의/공산주의 정당과 그룹은 노조와 마찬가지로 현저하게 남성 위주다; 노동의 남녀 구분은 여전히 존재하며 여성에 귀속하는 기술과 자질들은 여전히 저평가되어 있다. 소위 사회주의 국가에서 성장한 많은 남성도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통제하는 기본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성추행에 연관되고 또 다른 이들은 이를 은폐하는 불명예스러운 사례도 있다. 성차별은 혁명 ‘이후’ 다루어질 것이라는 오랜 주문은 오늘날 덜 보편적이지만, 여성이 동등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사회주의 혁명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공산당 선언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다소 가려진 내전이 기존 사회 내에서 격렬해지고 공개적 혁명으로 돌출되는 시점에 도달하면서 부르주아에 대한 폭력적 전복이 프롤레타리아를 뒤흔드는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것이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그들의 한 구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보았듯이, 같은 ‘선언’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노동 계급에 의한 혁명의 첫걸음은 민주주의 전쟁에서 이김으로써 프롤레타리아를 지배 계급 위치로 끌어올리는 것이다”라고 밝힌다. 이 딜레마 - 폭력적 전복 아니면 평화적 이행? -는 이후 그들의 추종자들을 괴롭혔다.
프랑스 내전(The Civil War in France)(1871년 6월 발행:역자 주)에서 맑스는 파리 코뮌(1871년 5월 종식:역자 주)을 노동 계급의 정부(government)이자 프롤레타리아 국가(state)라고 묘사한다. 노동자 임금만 받고 짧은 시간 내 소환될 수 있는 선출된 대표로 구성된 입법부이자 동시에 행정부였으며 이들은 모든 마을마다 비슷한 코뮌이 조직되어 국회에 선출된 대표를 보내는 것을 상상했다. 상비군을 해체하고 노동자로 구성된 방위군으로 대체했다. 따라서 정부로서 코뮌은 훌륭한 실험이었고 계급 없는 사회주의 사회의 행정부 예고편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로서 코뮌은 실패였다: 맑스의 표현대로 “무장된 국민(armed people)”은 그들의 적인 상비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코뮌은 무너졌고 코뮌의 동지들, Communards는 도륙되었다.
다음 해(1872년), 맑스는 “노동자들이 평화적 수단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나라들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도 있겠지만, 유럽 대부분 나라에서 우리 혁명의 지렛대는 무력(force)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 역시 인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맑스는 고타 강령 비판(Critique of the Gotha Programme)(1875년)을 통해 한편으로는 “민주 공화국(democratic republic)에서 천년왕국(milenium)을 보는 천박한 민주주의는….계급 투쟁이 결론이 날 때까지 이루어져야 하는 곳이 바로 이 부르주아 사회의 마지막 국가 형태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회 사이에는 한 사회에서 다른 사회로 가는 혁명적 변혁의 시기가 있다. 정치권에는 이에 상응하는 이행기가 있으며 이 기간 국가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독재 형식 밖에 취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한편에서는 계급투쟁은 (부르주아) 민주공화국에서 끝장을 내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독재’ 아래에서 일어난다. 이것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20년이 지나, 엥겔스는 이 문제를 뒤늦게 깨닫고 이를 납득시키려고 노력한다. 1848-71년 기간, 대륙(유럽)의 경제 발전은 자본주의 생산을 끝낼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으며 당시 이미 프롤레타리아 봉기에 반대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던 무력의 균형은 이후 결정적으로 부르주아 쪽으로 움직였다고 엥겔스는 인정한다. 그러면서 보편적 참정권은 노동 계급에게 농민 대중들 절대다수의 지지와 더불어 국가 내에서 부르주아와 싸울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제공해 주었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보면 그의 이 글은 “노동 계급은 오직 민주 공화국(democratic republic) 형식 아래에서만 권력을 잡을 수 있다. 민주 공화국은 …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구체적 형식이다”라는 그의 이전 발언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의 발언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맑스가 말한 것처럼 계급 투쟁이 민주공화국 아래에서 종식(즉 사회주의) 될 수 있다면 민주공화국과 사회주의 간 차이가 없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독재’는 말 그대로 아무 의미가 없다. 엥겔스는 이 모순을 합리화하려고 민주공화국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왜 간단히 민주공화국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확실히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말은 위험하게 들리므로 이 용어를 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오늘날, “독재(dictatorship)”는 독재적이고 억압적 체제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따라서 이 용어의 사용 때문에 일부 막시스트들은 그런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는데, 사실 맑스와 엥겔스에게 사회주의 정치는 반자본주의만큼이나 반국가를 지향하는 것이다.
엥겔스가 언급한 세 가지 요소를 다시 살펴보면, 당시 경제 발전은 엥겔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뒤처져 있어서 식민지의 산업화 - 따라서 프롤레타리아의 발전 -를 가로막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노동자의 정의를 관리직, 사무직, 전문직 그리고 기술직을 한 편에 그리고 비정규직, 농촌 빈곤층, 노동 계급 여성과 아동을 다른 한편으로 확장한다 해도 그들만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할 정도로 사회의 압도적 다수를 구성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두 번째 점에 관해서는, 우리가 19세기 말에도 부르주아 국가의 성공적인 전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면 오늘날은 그 어려움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가령, 시리아의 전체주의 국가에 대항하는 민주적 항쟁이 시리아와 그 동맹국들의 배럴 폭탄, 화학무기, 벙커 버스터즈, 순항 미사일, 집속탄, 소이탄, 열 폭탄 등에 의해 폭격을 받는다. 이것은 사회주의자들이 결코 민족 해방을 위해서 혹은 파시스트/전체주의 국가에 대항을 위한 무장 투쟁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투쟁들이 “무장 세력(armed people)”에 의해 수행된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부르주아 무력에 성공적으로 대항하기 위해서는 군대가 유일한 집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투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체 군대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군대는 부르주아 국가의 핵심 기능(marker)이다. 따라서 성공적 무장 투쟁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기껏해야 노동 계급 혁명의 첫 번째 단계인 민주공화국 설립의 서곡에 그칠 부르주아 국가일 것이다.
세 번째 주목할 점은, 민주공화국을 수립하고 중도 혹은 좌파 정당을 집권당으로 선출한 많은 나라가 이후 우파, 권위주의적 정치 지도자들과 정부에 투표했다는 점이다. 이런 전개는 보통 노동자들에게 개악으로 다가간 중도 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정책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발로 좌파들에게 이해되었다. 많은 경우 이들 중도 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신자유주의 논리에 경도된 것은 사실이지만 진심으로 반긴축을 내세운 시리자(Syriza) 경우 이 같은 “배신”은 글로벌 자본주의와 민족국가 간 불균형적 권력관계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본의 도주 혹은 신용 보류의 위협은 아무리 좌파라도 일국 정부만으로는 맞서기 힘들다. 이와 같은 배신에 대응하는 길은 우파를 집권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 연대를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강조하는 것은 사회주의 혁명은 두 뚜렷한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생산(수단)의 인수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의 해체다. 자본이 세계화되어 있고 부르주아 국가가 비무장 사회주의 사회를 파괴하는 세상에서는 이 두 과제는 크기와 상관없이 한 나라에서만 수행될 수 없다는 점이다. 모든 나라의 노동 계급이 단결할 필요성이 맑스와 엥겔스 때보다 훨씬 더 절실하다.
사회주의자들의 과제(THE TASK OF SOCIALISTS)
이런 예상이 맞는다면, 사회주의자들의 임무는 노동 계급이 자체 통치를 준비하고 생산(수단)을 인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는 이 임무를 특히 소련과 제삼 세계를 포함한 많은 나라가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의 승리”를 통해서 사회주의를 향한 첫걸음조차 내딛지 못했음을 인식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민주공화국이 수립된 곳도 극우세력의 위협을 받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움직임은 ‘반제국주의” 혹은 “”기득권”에 대한 투쟁을 핑계로 “서구(the West)”에 반대하는 좌파 일부에 의해 암묵적으로 혹은 노골적으로 촉진되었다. 이들 좌파 일부는 제국주의자들 간 한쪽을 편든다는 것은 여전히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것이며 파시즘 역시 자유민주주의 “기득권”에 반대되는 것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때로 “적갈색동맹(red-brown alliances)(적색은 좌파, 갈색은 파시스트를 포함한 극우파를 의미하며 이들의 전략적 동맹:역자 주)”으로 불리는 이 움직임은 극우파가 세계를 휩쓸도록 돕고 있다. 사회주의의 세계적 성격을 감안할 때, 세계 어느 곳에서든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곧 우리의 투쟁이며 따라서 그 투쟁을 지원할 방법을 찾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사회주의 국제주의는 다른 나라들에 대한 무관심 혹은 적대감은 물론, 특정 투쟁에 대한 선별적 연대를 의미하지 않으며 우리 자신의 국가 혹은 동맹국을 반대하는 어떤 극우 독재 정권도 지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민주공화국 수립이 천년왕국을 의미하지 않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민주공화국은 사회주의를 향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 민주공화국이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수립되면 사회주의자들은 권위주의적 국가를 설립하려는 우파 정당 혹은 후보자들이 집권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반혁명이 발생했던 인도나 스리랑카 같은 나라의 사회주의자들은 민주적 권리와 자유, 독립적 사법부 그리고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대한 공격들이 노동자, 여성, 소수민족, 정치적 반체제 인사 등에게 파괴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쓰라린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인도의 공산당(마오이스트) 같은 정당이 더 권위주의적 국가를 건설하려는 의도도 반혁명적이다. 사회민주주의 혹은 자유민주주의 정부에 투표한다는 것이 그들이 집권 후에는 그들을 상대로 투쟁하기 위해 대중 운동을 조직하는 것을 배척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달성해야 할 과제는 끝이 없지만, ILO 핵심협약(결사의 자유, 단체 노조와 교섭권, 강제노동과 아동노동의 폐지 그리고 고용과 직업에서의 차별 철폐)의 이행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이 권리들은 노조에 대한 노골적 공격뿐만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를 법의 보호로부터 제외하는 고용의 비정규화(informalization)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모든 노동자가 보호될 수 있는 형식으로 대응되어야 한다. 전기와 수도 같은 시설 그리고 의료, 교육, 공공 주택과 대중교통과 같은 서비스를 (재)국유화하는 것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본의 이익을 생산해야 하는 의무로부터 그들을 구제함으로써 그들이 자신의 필요를 더 잘 충족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정보와 상담권을 획득게 하여 생산에 대한 노동자 통제권을 향상시킬 것이며 이에 고용 보장과 확장을 가능케 할 것이다. 제조업, 농업 그리고 서비스업 협동조합의 결성은 사회주의가 수립되기 이전에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체 통치의 경험을 하게 할 것이다; 이 경험을 “혁명 이후”로 미루는 것은 시신을 통해 연습하지 않은 상태에서 살아있는 환자에게 심장 수술을 하는 것과 약간 유사하다. 소규모 생산자들 - 주로 가난한 농민뿐 아니라 장인, 상인 등 -에게도 협동조합의 자발적 결성을 촉구하는 것이 가장 실현 가능한 전략일 것이다. 이들 모두가 이 생각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않겠지만, 파멸과 자살에 직면한 농부 혹은 생존의 위기에 위태롭게 놓여있는 장인과 상인들은 분명 집단적 안전장치를 선호할 것이다.
무엇이 생산되어야 하고 무엇이 생산되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강력한 토론 또한 필요하다. 말할 필요도 없이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군사적 생산이 없을 것이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 목표를 향해 진전하기 위해서는 대량 살상 무기의 생산과 사용을 금지하고 모든 나라의 군비를 축소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군사적 생산 및 군대 자체로부터 노동자들과 생산 자원을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으로 재배치 - Lucas Aerospace의 종업원들로부터 시작해서 이제 세계적 운동이 되었다 - 해야 한다. 또한,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 육체에 해로운 다른 생산품 - 가령 원자력, 화석 연료, 독성 농약 및 제초제 그리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개인 차량 - 을 없애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하고, 이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대체 고용을 제공해 주어야 할 것이다. 누진과세 및 금융 규제로 조성된 자원과 돈은 재생 에너지의 생산 그리고 종합적 사회보장과 복지 시스템을 지원하는 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제들은 세계적 차원에서 추진되어야 성공할 것이다. 우리는 이를 위해 세계화(globalization)(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상품, 화폐, 자본 그리고 노동)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공공시설과 서비스의 사유화, 사회보장과 복지에 대한 공격, 금융 탈규제 그리고 노동자 권리와 환경보호에 대한 공격)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하며 이 중 오직 후자(신자유주의)만 반대하면 된다. 이미 많은 사회주의자가 난민과 이민자들이 자국에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지만, 더 나아가 국제주의 사회주의자들은 보호주의에 반대(자국의 유치산업(infant industry)을 보호하려는 개발도상국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야 한다. 왜냐하면, 보호주의는 수입되는 상품을 생산하는 다른 나라의 노동자에게 그들이 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만약 수입 상품의 가격이 그것들을 생산한 나라의 노동자들이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해 싸다면 그들이 이런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들이 있다.
내부에서 분열된 계급은 이 중 어느 것도 수행할 수 없어서 최우선 과제는 노동 계급 내에 있는 각종 형식의 억압과 편견 - 성차별, 인종차별, 종교적 편견, 카스트 제도, 인종 우월주의, 동성애 혐오, 장애인 차별과 배척, 아동 억압, 외국인 혐오증, 민족주의 등 - 들을 제거하고 사회에서 이것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두 번째 우선순위는 모든 노동계급 집단 - 정치 단체, 노조, 가정, 이웃 모임 등 -의 민주적 토론과 의사 결정을 촉진하는 것이다. 가정 폭력, 성희롱/폭력과 노동의 성별 분업에 대항하여 싸우는 전 세계 페미니스트들은 이 의제들의 주요 기여자들이다. 인도의 The New Trade Union Initiative는 노조 운동을 민주화하기 위한 노력의 좋은 사례다.

이 의제들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다차원적 정체성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하도록 장려하는 것을 반드시 포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태어날 때부터 아이들은 그들이 자신의 인간성과 개성을 위해 사랑과 존중으로 대우받고 예외 없이 같은 방식으로 타인을 대우하도록 가르치는 가정을 가져야 한다. 그들의 만족할 줄 모르는 호기심과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은 권위주의적 혹은 무시하는 반응에 억눌리는 대신 키워져야 한다. 보육원과 학교도 같은 원칙을 따라야 하는데 이는 학생 대비 높은 직원 비율을 가져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식으로 성장한 아이들은 결코 증오로 가득 찬 비합리적 이데올로기의 먹이가 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타인을 찍어 누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세계의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인수하고 억압적 국가기구를 고물 박물관에 보낼 정도로 힘(strength)과 단결력을 키웠다면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혁명의 마지막 행위가 무엇이 될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다.
결론(CONCLUSION)
맑스와 엥겔스가 의미한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엄청난 혼란이 있는데 특히 그들 자신도 이에 대한 견해가 불명확한데다가 그들이 19세기에 글을 썼다는 것을 감안할 때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준수해야 할 분명한 원칙들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일부는 이 혁명의 민주적 성격과 관련이 있다: 사회주의 혁명은 노동 계급의 이름으로 행동한다고 주장하는 소수가 아닌, 노동계급 전체 다수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는 국가(state)를 가지지 않으며 대신 정부(government)만 가질 것이다; 민주적 혁명(democratic revolution)은 사회주의로 가는 첫걸음이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그들의 추종자들(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소수를 제외하곤)이 이 원칙들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쪽을 선택했다. 오늘날, 맑스와 엥겔스의 사회주의 개념의 민주적 성격은 더욱 널리 인식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또 다른 핵심 원칙은 국제주의와 다른 나라 노동자들의 투쟁 지원에 대한 헌신이다. 최근 이런 면에서 진보가 더딘데 이는 부분적으로 세계 각지의 권위주의, 민족주의, 외국인 혐오, 인종차별 정당과 단체들을 장려하는 신 스탈린주의(Neo-Stalinist)의 로비 활동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 신스탈린주의자에게 소극적인 형식으로 지원하는 사회주의자들도 있다. 이들 사회주의자는 자국의 국가 혹은 그 동맹으로부터 자신들이 공격받지 않는 한 다른 나라 노동자들과의 연대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며,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외국인 혐오증을 조장하는 극우파를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이민노동자 배척 정책을 지지하는 그룹이다.
마지막으로 ‘공산당 선언’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의 발전이 자동으로 노동 계급 내 분열을 제거할 것이라고 지나치게 낙관했다; 오늘날, 노동 계급을 약화시키고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지배를 영구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무수한 분열에 맞서 싸울 필요가 훨씬 명확하다.
이 모든 것들이 불가능한 거대한 과제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1864년의 오랜 노조의 노래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가장 긴 행군이 승리할 수 있다.
Step by step the longest march can be won.
많은 돌이 아치를 만들 수 있지만 하나로는 안된다
Many stones can form an arch, singly none.
노조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And by union what we will
아직 그 뭔가를 달성할 수 있으며
Can be accomplished still,
물방울들은 방앗간을 돌리지만
Drops of water turn a mill
하나로는 안된다
Singly none.
노래 가사의 세 이미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요약하고 있다. 갈 길이 멀지만, 목표를 볼 수 있는 장기적 비전이 있다면 우리는 그곳에 단계적으로 도달할 수 있다. 지금은, 노동자들은 밭에 굴러다니는 여러 가지 모양과 크기, 색깔을 가진 돌멩이처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지만, 우리가 인내심과 그들을 모으는 기술을 가진다면 우리는 모든 개인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계급 없는 사회라는 강하고 품위 있는 사회 구조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세계의 노동자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면 그들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
역자 후기
저자는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은 현실적으로 무력에 의한 자본주의 국가의 전복은 가능하지 않다고 보며 ‘민주 공화국’ 체제 안에서 투표를 통한 ‘ 민주적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로 가기 위한 19세기 표현으로 과도기적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전 포스트에서도 언급했는데 민주사회주의 담론에서 공화국(republic)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언제 기회가 되면 민주주의, 공화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간 관계에 대해 좀 더 명료하게 정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도 표현했지만, 민주사회주의를 꿈꾸는 이들이 넘어서야 할 장애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장애를 장애로 과제를 과제로 인식하는 것은 가야 할 방향과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나 그렇게 다가가는 것이다. 나에게 두 종류의 질문을 해본다.
첫째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의 사회주의 실현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임금노동과 돈이 없는 사회를 상상할 수 있는가? 정부만 있고 국가는 사라지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많은 경우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으로 가진 이민자들로 구성된 오클랜드 3차 산업 종사 노동자들이 과연 뭉칠 수 있을까? 둘째는 나 자신에 관한 것이다. 남은 미래보다는 과거의 시간이 훨씬 많아진 지금,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더 나아가 어디를 가고 싶기는 한 것인가? 다른 말로, 나는 ‘진정으로’ 새로운 세상을 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