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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y are Us, 무엇이 문제인가?
사건 직후 뉴질랜드 수상 Jacinda Ardern의 성명 발표 영상이다.
"...총기 난사의 피해자들 중 많은 수가 이민자이거나 심지어 난민일 수도 있는 사람들로서 뉴질랜드를 home으로 삼으려 했고 실제 뉴질랜드는 그들의 home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입니다 (They are Us)... ."
여기서 3인칭 복수대명사 They는 발표문 초반 이번 사건 희생자들이란 특정 그룹을 지칭하는 대명사에서 수상이 They are Us라는 문장을 구사하는 순간 무슬림 그룹 전체 더 나아가 유색 이민자 그룹을 통칭하는 의미로 전환이 되면서 누가 We (Us)이고 누가 They (Them)인가라는 사회학적 화두를 던지게 된다. 만약 희생자가 백인 그룹이었다면 They are Us라는 문장 자체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They는 단지 희생자들을 지칭하는 3인칭 복수대명사의 언어적 기능에만 충실했을 것이다.
어쩌면 희생자 유족들 및 뉴질랜드 무슬림 그룹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다가갔었을 수상의 They are Us 호소였지만 이 한 문장은 유럽을 비롯해서 다문화 다인종화되어 가는 모든 선진국가 - 선진국 여부에 관계없이 한국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 들이 이민자들 유입으로 인해 겪고 있는 사회적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소망을 가득 담은 이 문장은 차라리 They should be US가 보다 더 적확한 표현이라 할 정도로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인해 이들 국가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분열이란 현실이 역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만약 뉴질랜드가 무슬림, 아시안, 마오리, 파케하 등 다양한 문화적 종교적 인종적 다양성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사이에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면 전술했듯이 They are Us라는 명제성 구호가 수상 입에서 나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들 중 누군가 비극의 희생자가 되었을 때 별도로 그 희생자들을 지칭해서 They are Us라는 뜬금없는 불필요한 문장을 성명문에 포함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즉 이 슬로건이 수상 입에서 나왔다는 것은 They are not Us in reality (현실에서는 그들은 우리가 아닙니다) 혹은 They are not Us for some of us (우리 중 일부에게 그들은 우리가 아닙니다) 혹은 They were not Us until now (지금까지는 그들은 우리가 아니었습니다) 혹은 They may have not been Us (그들은 우리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등의 다양한 유추적 명제들을 낳게한다.
어떤 유추적 명제를 도출하던간에 정도의 차이 뿐이지 그 동안 뉴질랜드 사회가 무슬림 그룹을 아무런 편견없이 We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They are Us는 반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뉴질랜드 사회가 그리고 그 주류 구성원들이 무슬림을 같은 우리로 여겨야 한다는 국가 내 사회적 융합(Social Cohesion)의 책무를 느끼는 정치 지도자의 당위성과 희망을 담은 슬로건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수상의 이 발언은 선의를 가지고 이루어졌지만 수상을 비롯한 많은 주류 사회구성원들이 여전히 무슬림을 We가 아닌 They로 인식하고 있음과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무슬림들도 We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는 상황임을 자인한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이런 인식은 수상의 성명문을 접한 무슬림 공동체 지도자 중 한 명인 Guled Mire의 TVNZ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대로 공유된다. 그는 인터뷰에서 수상의 They are Us 발언의 의도는 알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무슬림의 타자화(Othering)를 고착화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누가 They이고 누가 We인지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많은 뉴질랜드 무슬림들은 이미 뉴질랜드를 home으로 생각하고 소속감을 가지면서 스스로 We, same New Zealander라고 생각을 하고있는데 수상이 아픈 상처를 들추어 내듯 그들이 여전히 They 임을 상기시켜준 꼴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 리포터의 어떤 슬로건이 적정하겠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This is not US라고 대답을 한다. 허나 이 슬로건 역시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슬로건으로 다가가는 것같다.
무슬림/이민자의 타자화(Othering)
그 누구 중 한 사람이 Sahar Ghumkhor이다. 아프카니스탄에서 와서 뉴질랜드에서 성장한 후 호주로 건너간 이 무슬림 여성은 알자지라에 기고한 글을 통해 Guled Mire보다 더 신랄하고 냉소적으로 뉴질랜드 수상의 이번 사태 대처에서 보여준 모습을 비판한다. 일단 They are Us 명제에 대해 그녀는 지금까지 뉴질랜드 백인 주류사회가 무슬림 이민자들을 문명인 대 야만인 식의 They are Others 이분적 프렘임 속에 방치해놓고 사건이 터지자 마치 그런 과거 행적은 없었고 뉴질랜드는 언제나 이민자를 우리 안에 포용하려고 노력해왔던 것처럼 They are Us를 외치는 것은 위선적이라고 비판하다. 같은 맥락에서 This is not Us 슬로건 보다는 오히려 (Unfortunately) This is Us가 뉴질랜드 사회에서 무슬림들이 타자화되는 현실을 보다 더 정확하고 솔직하게 반영하는 문장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누가 We이고 누가 They인가를 정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 승인권자는 호스트 국가의 기득권 그룹 We이다. 즉 신규 이민자가 자신 스스로 We라고 생각을 한다 해도 We 그룹으로부터 인정을 받지못하면 짝사랑이고 닭쫓던 개 꼴밖에 안된다. 뉴질랜드 무슬림 그룹 내에서도 일부가 나름 뉴질랜드에 소속감을 느끼면서 자신을 뉴질랜드 We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We 본진에서 승인을 해주지 않으면 미결상태로 대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물며 예를 들어 스스로 We라고 생각하면서 이민자이지만 호스트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다지는 와중에 We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 낮선 백인으로부터 Go Back Home! 소리를 듣게되면 세상에는 노력해도 되지않는게 있구나라면서 탄식어린 한숨을 내쉬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We와 They, 타자화(Othering)의 역학관계이다. 즉 이민자가 We라고 mindset를 바꾸었어도 그 mindset은 현실 생활에서 기존 We 멤버들이 자신을 스테레오타입화된 Other로 대할 때마다 계속적인 도전을 받게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았을 때 뉴질랜드 -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모든 선진국가들로 일반화해도 좋다 - 는 이번 사건 국가 추모 행사 때 또 다른 슬로건으로 등장한 Ko tātou, tātou - We are one이었던 적이 없었다. 전편에서 뉴질랜드가 다른 서구 국가에 비해 무슬림관련 사회적 동요가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뉴질랜드 정부와 무슬림 공동체 양쪽 모두가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조용 조용,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무슬림들의 사회적 요구를 만족시켜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었다. 평화적으로 보이는 이런 양쪽의 상호접근 방식은 같은 We라서 가능했다기 보다는 무슬림집단을 Other로 인식하고 그들이 불화를 일으키지 않는 조용한 Other로 남기를 원하는 뉴질랜드 백인 주류의 소망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무슬림은, 아시안 이민자도 대동소이하지만, 뉴질랜드 liberal society에서 한 individual member로서보다는 항상 그룹 정체성 (group identity)로 접근되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 그룹 정체성은 많은 경우, 만약 항상 그렇지 않다면, 타자화(Othering) 과정을 밟기 때문이다.
Moving Forward
사건 발생 한달 뒤 열린 추모콘서트의 제목 You Are Us/Aroha Nui 까지 포함하면 사건 이후 많은 슬로건이 등장했다. They are Us, This is not Us, This not NZ, We are one, You are Us, etc. 과거 현수막과 표어가 난무했던 한국의 70년대가 생각난다. 그 당시 정권은 현실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고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현수막 구호처럼 가슴에 붙은 표어처럼 그저 대중들이 따라와주길 강요하였다. 골치 아픈 사회 시스템 개혁보다는 쉬워보이는 대중들의 의식 개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51명 무슬림의 생명을 앗아간 비극 이후 남은 자들에게는 어찌되었든 개인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런 비극은 재발하지 말아야하고 - 테러 생중계 때 facebook에서 likes를 누른 자들은 어쩌면 다른 생각을 갖고 있겠지만 - 재발 방지를 위해서 남아있는 자들은 그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부채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 많은 슬로건들도 바로 시민 의식 개조를 통해 변화를 기대하는 부채의식의 반영인것이다.
Tokenism이란 단어가 있다. 다양성을 장려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없이 보여주기 식으로 특정 그룹을 상징적으로 We안에 포함시키는 행동을 말한다. 이번 테러 사건 이후 많은 상징적 행사들과 레토릭들이 있었다. 사건 이후 세 달이 되어가는 지금 부수적으로 총기법이 바뀐 것 외에 백인 민족주의자가 무슬림이란 이유만으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이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필자가 과문해서인지 몰라도 뉴질랜드는 다시 사건 이전의 뉴질랜드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무슬림을 우연히 만나면 이전보다는 조금 더 따뜻하게 말을 건네줄 수는 있어도 이웃으로 이사를 온다면 사건 이전에 불편함을 느꼈던 사람은 여전히 불편함을 느낄 것 같다. 정치인들이 They are Us를 아무리 외쳐도 실제 생활에서 본인의 심리적 불편함과 불안함을 감수, 희생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가진 선입견 내지 스테레오타입을 깨트리려는 노력을 할 사람들이 사건 이전보다 증가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현실적으로 예상되는 뉴질랜드 대중들의 무슬림들에 대한 시선은 그 전보다는 좀 더 동정적이되 여전히 거리를 두고 지켜보게되는 Others이지 이제부터라도 문화적 사회적 경험을 현실에서 공유하고 싶은 one of Us가 단시일내 되지는 않을 것이다.
Others가 Us가 되는 방법은 두 개이다. Us가 외연을 확장하게 되면서 Others가 Us에 포함되는 방법이 하나이고 Others가 Us의 경계선 안쪽으로 들어오는 방법이 다른 하나이다. 둘 다 쉽지않는 여정이다. 첫번째 Us의 외연확장은 기존 Us 구성원의 자발적인 의지가 필수적인데 현실에서 서구권의 Us는 오히려 'Defensive Us'가 되는 경향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외부의 사람, 물자, 정보를 쉽게 받아들이려고 고대 로마는 평지에 성벽없이 도시를 건설한 반면 동 시대 외부의 야만인들(Others)으로부터 자신의 방어를 목적으로 한 중국은 만리장성을 쌓았다. 20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민자들(Others)로부터 자신들의 ethnic identity를 지키기 위해 서구의 Us는 심리적 방벽을 쌓기 시작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Others가 Us의 경계선을 넘어 one of Us가 되는 것인데 이 역시 만만치 않다. 뉴질랜드가 개인주의에 기초한 liberal society이다보니 기본적으로 그룹정체성(group identity)을 인정하지 않는다. 무슬림이나 아시안 이민자가 Individualistic Liberalism의 기초 위에 파케하가 구축한 이 liberal Us에 편입이 되려면 본인 역시 individualistic liberalist가 되어야 한다. 즉 그룹정체성은 사적 영역에서 보존은 하되 전면에 내세워서는 안될 것이다. 거의 동화(assimilation) 수준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 단계를 개인차원에서 훌륭하게 극복해서 Inside로 들어왔는데도 여전히 그 안에서 기존 Us에 있는 보수적인 구성원들이 계속 그룹정체성 렌즈를 통해, 즉 group stereotype을 통해, 자신을 바라볼 때 이중고를 겪게되는 것이다.
맺음말
이번 크라이스트처치 총기 난사 사건은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유색인종 이민유입으로 인해 서구 사회에 누적되오던 문화적 종교적 인종적 갈등이 소수 민족이자 이질 종교인 그룹인 무슬림 Others로부터 We를 지킨다는 명목 하에 백인 We중 급진 세력이 인종청소 식으로 행한 테러이다. 사건 후 정치권 및 일부 단체에서는 They are Us와 같은 슬로건 제창 식으로 재발 방지를 다짐해보나 추진력없는 일회성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크며 무슬림들은 여전히 Others로서 자의반 타의반 뉴질랜드 주변부에서 가급적 사회적 주목을 받지 않는 투명한 존재처럼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무슬림들 더 나아가 유색 인종 이민자들이 Us가 되는 과정은 쌍방 - 파케하로 상징되는 백인 주류와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진 이민자들-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데 이 노력의 형식은 정치인들의 구호도 아니고 양 그룹의 이벤트성 문화교류도 아닌 지속적이고 체계적이고 정책적 차원의 추진력을 필요로 한다. 허지만 유감스럽게 대부분 서구 국가들이 이 여정이 녹녹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서구권 국가들이 이민으로 인해 원래부터 거주하고 있던 We와 새로운 이민자 Others 간의 갈등으로 인해 사회적 홍역을 앓고 있는 21세기이다. 이 We와 Others간 갈등을 제공하는 근본적인 프레임은 국가 간 노동인구와 자본의 이동을 필요로 하는 세계자본주의 (global capitalism)의 거대한 요구(imperative)와 이런 거대한 세계적 흐름 속에서 자신의 사회공간, 생활공간, 경제공간을 이민자(Others)로부터 지키려는 호스트 국가의 대중들(We) 그리고 이 세계 자본주의와 국내 유권자들 사이에 끼어서 양쪽 간 눈치를 보며 줄다리기 정책을 펼치는 국가(State), 이 3 당사자 간의 갈등 구조이다. 이 갈등 구조의 현실 접점에 있는 당사자들은 이민자들과 이 이민자들과 사회공간을 어느 순간부터 나누어서 사용해야하는 호스트 국가 대중들 그 중에서도 이민자들과 많은 부분 노동시장과 생활공간을 놓고 경쟁해야하는 사회경제적 하위계층 대중들이다. 뉴질랜드는 이 기본적인 갈등 구조에 한 술 더 떠 와이탕기 조약에 근거한 마오리-파케하 간의 Biculturalism으로 인해 갈수록 다문화 다인종화 되어가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또 선제적으로 비젼과 정책 제시를 하지 못한 채 변화에 소극적으로 끌려가면서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하는 상황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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