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뉴질랜드 이야기

Todd Muller의 국민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김 무인 2020. 5. 29. 09:39

역자 머리말

 

지지 정당 여론조사에서 2003년 이래 최악인 29%의 정당 지지율을 기록한 국민당은 급하게 당수 Simon Bridges(사이몬 브리지스)를 끌어내리고 대신 Todd Muller(토드 멀러)를 구원 투수로 등판시켰다. 하지만 이 구원 투수는 등판하자마자 사구를 남발하고 있다. 

 

 

첫 번째는 그의 의원 사무실에 있는 모자에서 시작했다. 이 빨간 색의 모자(왼쪽 모자)에는 2016년 트럼프가 대선 유세를 할 때 외친 그의 슬로건 ‘Make America Great Again(MAGA)’이 새겨져 있다. 멀러는 이 모자는 2016년 미국 대선을 참관하러 미국에 갔을 때 기념품처럼 힐러리 클린톤의 뱃지와 함께 구매한 것인데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초기에 보였다. 하지만 여론은 계속 들끓었다. 왜냐하면, 트럼프의 MAGA 모자는 그의 백인우월주의 혹은 무슬림 혐오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물건으로 비쳤기 때문인데 실제로 2017년 트럼프는 집권하자마자 무슬림의 미국 여행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뉴질랜드 미디어가 문제 삼는 것은 작년에 크라이스트처치 모스크에서 51명 무슬림이 백인 우월주의자에 의해 학살되는  비극이  발생했음에도 무슬림 혐오를 상징하는 그 모자를 그 이후에도 여전히 비치했다는 점이다.  여론에 떠밀려 모자를 결국 치웠지만, 그 모자는 작년 모스크 학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치워졌어야 했다며 여론은 여전히 그가 과연 한 국가의 수장이 될 소양이 있는지 의문 부호를 달고 있다. 

 

모자 사건이 끝나기도 전에 터진 두 번째 논란은 국민당의 백인우월주의적 성향이다. 당수로 선출되면서 발표한 당내 서열에서 마오리 출신 의원이 Top 12에 없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백인이라는 게 문제가 될 수 없다(nothing wrong with being white)고 답하면서 발단하였다. 이 논란은 다른 국민당 의원 Judith Collins가 이와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 신경질적으로 ‘백인이 악마처럼 묘사되는 것에 신물이 난다 (sick of being demonised)’고 답함으로써 불에 기름을 끼얹게 된다.

 

이런 일련의 해프닝은 새로운 당수 선출에 따른 미디어의 소재 만들기의 결과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국민당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한 질문이 있게 한다. 이런 의문을 해소하는 데 아랫글은 도움을 준다. 이 글이 발표된 시점은 5월 25일인데 글 내용을 보았을 때 ‘MAGA 모자’와 ‘백인인 게 죄야?’ 해프닝 발생 전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런 해프닝을 예상한 것처럼 국민당의 현재 스탠스를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평소에 관심을 별로 두지 않았던 국민당(New Zealand National Party)에 대해 이해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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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당의 전략적 딜레마(National’s Strategic Dilemma)

 


Dougal McNeill

25 May 2020

 

 

Simon Bridges (사이몬 브리지스)를 Todd Muller (토드 멀러)로 바꾼 것은 국민당 간부회의의 카드 바꾸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내용보다는 스타일과 관련 있다. 이 두 사람 간 정치적 차이점은 거의 없으며 예산 발표날 국민당은 Grant Robertson (노동당 재무장관:역자 주)과 어떤 차별화된 정책을 가지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Paul Goldsmith(국민당 국회의원:역자 주)의 얼버무린 대답은 국민당의 현재 접근 방식이 노동당과 거의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국민당의 selling point는 선천적으로 정부에 어울리는 정당이고 노동당보다 유능하며 정부 구성에서 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제신다 아던이  크라이스트처치 무슬림 학살, White 섬 화산 폭발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을 거치면서 보여준 지난 3년의 지도력과 비교했을 때 Muller의 지도력은 Bridges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지금 당장 정치적 결과물에 대해 자신 있게 평가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세계는 요동치고 있으며 전 세계적 불황은 현재 진행형이고 모든 것이 유동적이다. 주류 정치 두 메이저 정당의 존립 기반은 복잡하다: 국민당은 좀비 정당 ACT 없이는 집권당이 될 가능성이 희박하고 노동당은 수적으로 그리고 이데올로기 정서적으로 미래가 불확실한 New Zealand First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 두 번에 걸친 여론조사에서 국민당은 야당으로서 평균 이상의 지지를 받았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았겠는가? Muller의 당수 선출은 이 정당의 깊은 전략적 딜레마를 드러내고 있다.

 

주류 정치에 대해 기사는 다른 것보다 전술에 초점을 맞춘다: 어느 정당이 집권을 위한 의석수를 확보할  것인가? 어느 노선이 유권자 의향을 반영할 수 있을까? 타협이 어떻게 이루어질까? 그러나 정당은 투표를 획득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정당은 뉴질랜드 자본주의 필요에 부응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이 정책들을 실행하는 방식으로 통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당은 유권자의 기대를 관리(그리고 창출)하는 것, 지배계급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본의 이익을 위한 통치를 국민 모두의 이익을 위한 통치로 인식하게 하는 이데올로기 간 타협이 포함된다. 

 

국민당은 태생부터 뉴질랜드 정치에서 이 역할에 적합한 정당으로 자리 잡았다. 이름이 시사하듯 국민당은 대기업, 자본가 농장주와 자본주의 전반을 위한 통치를 마치 ‘국민적(national)’ 이익을 위한 것처럼 포장한다. 대부분의 기간 이 포장은 잘 통했고 국민당은 지난 70년 중 46년(원문에는 56년으로 표기되었으나 오타로 보임:역자 주)을 집권했다. 국민당은 노조운동과 연결된 노동당과 달리 의회 내에서 개방된 자본가 통치를 지향하며 Todd Muller는 이 패턴에 어울린다. 미디어에서는 국민당의 ‘농촌(rural)’ 기반의 한 부분으로 그를 묘사하지만, 그의 경력은 농장 노동자와 거리가 멀다. 그는 Apata(키위와 아보카도 농장을 위한 서비스 회사:역자 주)의 대표이사, Zespri의 사장 그리고 Fonterra의 임원을 지낸 뉴질랜드 자본주의의 핵심 네트워크에 있었던 인물이다. 즉 그는 ‘상위 1%’에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자본을 위한 통치를 마치 ‘국민적’이익을 위한 것처럼 포장한 것은 노동자 계급에 대해 지속적 공격을 단행한 통치 기간 후 유권자 표로 심판을 받았다. 1990년대 국민당 Jim Bolger와 Jenny Shipley 통치 기간 중 드러난 개혁의 사악함은 경멸의 대상이 되면서 2000년 John Key는 집권 기간 중 인종차별적이고 반동적인 ‘못된(nasty)’ 정당이란 이미지를 떨치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마오리 당과의 연합 그리고 정치와 상관없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잘 계획된 존 키의 이미지가 큰 역할을 했다.

 

공항 맥도널드에서 가족들과 햄버거를 먹는 것을 옆 자리에서 본 적이 있다. 이미지 관리를 잘했다.

 

다시 말하지만, Muller는 이런 역할에 어울린다. 그는 1990년대 짐 볼저 밑에서 일했으며 2014년에 행한 그의 의회 데뷔 연설은 이런 국민당의 오랜 전통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또 존 키처럼 그의 지역구 유권자를 의식하여 마오리어로 연설을 시작하기도 했다. 이는 Don Brash의 ‘하나의 뉴질랜드(one New Zealand)’라는 인종적 정책과는 명확히 거리를 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이 국민당의 전략적 딜레마다. 위대한 이탈리아의 혁명가 Antonio Gramsci는 지배 계급의 안정적 지배 질서에 경쟁 정치 세력을 융합시킬 필요를 ‘역사적 연합(historical bloc)”이라 칭했다. 다른 사상과 정책이 사회 내에서 경쟁한다. 그람시는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100% 동질적인 사회 그룹은 없다’고 말한다. 대신, ‘복합적이고, 모순적이며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상부구조의 앙상블(ensemble)이 생산의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을 반영한다’. 국민당의 ‘열린 조직(broad church)’ 혹은 ‘도시 리버럴’과 ‘농촌 보수주의’ 가 함께 한다 같은 레토릭은 이 실체를 피상적으로 반영한다. 잘 나아갈 때 국민당은 지배계급과 경쟁하는 이해 집단들(예를 들어, 자본가 농장, 수출 산업과 지역 제조업) 그리고  중산층 전문직 (레뮤에라와 엡섬의 의사, 회계사 그리고 변호사와 같은 ‘도시 리버럴’)을 상식이라는 이름 아래 한데 묶음으로써 통치하는 방식을 창조했었다. 다른 말로 국민당은 이데올로기가 없을 때 가장 이데올로기적이다. 다시 말하지만 멀러는 이 역할에 어울린다. 

 

여기에 국민당의 문제가 있다. 뉴질랜드 자본주의를 성공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어떤 효율적인 ‘역사적 연합’도 이제는 마오리의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요구 그리고 그것들의 적법성에 대해 광범위한 인정이란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수십 년에 걸친 마오리의 저항은 앞으로 얼마나 더 얻어낼 수 있는지 모르지만 몇 기본권리를 국가로부터 쟁취했다. 1945년 이래 마오리의 도시화와 노동자 계급으로의 편입은 뉴질랜드 사회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돈 브래쉬는 주류 미디어에 의해 그의 무지한 견해를 밝힐  많은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다행히 나서지 않고 있다. 이민, 여성의 노동참여 그리고 해방 투쟁을 통해 획득된 장기적 문화적 변화는 뉴질랜드를 변모시켰다. 존 키의 프로젝트와 그 성공은 바로 이 사회 변화를 반영하여 그것을 기업의 이익을 위한 통치에 활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열정(passion)’이 정치에 동기 부여를 할까? 존 키의 프로젝트는 자본주의 관점에서 이해가 가지만 이는 오랜 기간 국민당 활동가들을 지탱해 온 ‘이데올로기적’ 열정 - 법과 질서, 인종과 인종차별주의, 소위 가족 가치의 사회보수적 꿈 그리고 관대함에 대한 반동적 적개심 - 과 일정 부분  손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업의 ‘냉정한’ 요구를 유권자의 ‘뜨거운’ 상상된 요구와 결합하는 것은 정치의 역할 중 하나이다. 그람시가 지적했듯이, ‘대중의 ‘느낌(feels)’이 항상 알거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런 열정 그리고 지식인과 대중 간 정서적 연결 없이는 누구도 정치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없다.’ 

 

뉴질랜드의 자본주의를 유지하고 활성화하는 것은 국민당의 우선순위 임무지만 이것이 은퇴한 회계사나 바쁜 프로젝트 매니저를 토요일 아침에 깨워 각 가정을 방문하게 하거나 레터박스에 전단을 돌리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람시의 표현을 따르면 목적의 성사를 위해 ‘느낌-열정이 이해로 변모하는 유기적 융합을 의미하는데 역사적으로 지배계급의 정당에서 이는 민족주의, ‘가족 가치’ 그리고 반동 보수적 사회 공포에 의존해 왔다.       

 

Pride Parade (퀴어 축제:역자 주)에서 보이는 기업광고 장식차량 - 혹은 사회적 태도 서베이 -을 보기만 해도 돈 브래쉬의 반 마오리 인종차별주의와 같은 반동적 보수주의는 이제 자본가 계급 혹은 대다수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가치 순위에서 멀어졌음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제신다 아던의 혼인 여부(제신다 아던은 파트너와 함께 아이까지 있으나 아직 정식 결혼은 하지 않은 상태다:역자 주)는 지역 유권자에게 이슈가 되지 않고 있다. 2013년의 동성결혼법은 아무런 반발도 불러일으키지 않았으며 종교적 정당은 아예 처음부터 관여할 생각을 못했다. 

 

그러나 국민당의 ‘지식인들(intellectuals)’ - 국회의원, 행동가, 조직가 - 에게 소위 ‘가치(values)’ 문제는 정치적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이다. 개혁 낙태법(올해 3월 의회를 통과한 낙태에 대한 비범죄화 법안: 역자 주) 심사에서 노동당 의원 다수가 찬성할 때 국민당 의원의 다수(35 대 19)는 반대했다. 2013년에 국민당 의원 다수(32 대 27)는 동성결혼 법안에 반대했으나 노동당 의원 다수는 이 법안에 찬성했다.  국민당의 핵심 고참 의원들 (예를 들어, Simon Bridges, Gerry Brownlee 그리고 Michael Woodhouse)는 꾸준히 사회적 흐름에 반하는 투표를 해왔다. 뉴질랜드-이스라엘 의회 친선모임을 창설할 때 Alfred Ngaro는 그의 열렬한 이스라엘 지지 이유 중 하나가 그의 신앙의 ‘메시아(Messianic)’적 성격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국민당 간부회의(caucus)의 보수적 기독교적 색채는 정부의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강경 정책에 대해 당 차원에서 반대하길 원했으며 당 지지 기반의 상당수와 마찬가지로 기후변화에 대해 효과적 대처는 고사하고 기후변화 과학에조차 회의적이다.

 

이것이 전략적 딜레마다. 운동가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당의 비전을 응집시키는 이슈들 - 기후변화 부정주의, 젠더 정체성과 성전환자 권리에 대한 반동적 겁주기 운동 그리고 반 마오리 공포증 확산 - 은 선거 승리에 필요한 노동자 계층은 고사하고 상당수의 중산층과 기업가들로 하여금 국민당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다. 사이몬 브리지의 Ihumatao (오클랜드 공항 근처 마오리 소유권 분쟁 지역:역자 주)를 이용한 반 마오리 정서 고양 시도는 실패했다. 이런 열정 위에서 반동적 연합을 요란하게 시도한 특이한 인물이 있다: 그의 지역구 뉴스레터를 통해 꾸준히 좌파를 욕해 온 Simon O’Connor는 그의 낙태법에 관한 연설을 ‘복수는 하나님의 것(vengeance is mine, saith the Lord)’이라는 라틴어를 인용하면서 끝맺었다; Owairaka의 환경 보호(오클랜드 Mt Albert 근처 지역으로 기존 수목을 제거하고 뉴질랜드 자생 수종으로 대체하려는 계획에 반대하는 운동:역자 주)를 지지하며 무단으로 이 지역을 침입한 일단의 파케하들은 mana whenua(마오리 자주권)을 주장하는 기이한 인터뷰를 했다; 지난해 총기 소지와 표현의 자유를 외쳤던  지지자들은 이제 온라인 극우 이슬람 혐오증에 푹 빠져있다. 돈 브래쉬의 유명한 Orewa 발언 이후 치솟은 국민당의 인기는 그 시점부터 그의 ‘one law’ 레토릭이 국민당을 집권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음을 가렸다. 존 키는 그의 경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전임자들의 이런 입장과 결별해야만 했다.

 

제신다 아던을 향한 많은 국민당 주변 인물들의 집중적 증오 표현은 이 딜레마가 소규모로 드러나는 좋은 예다. 이들의 잘난척하는 맹목적 애국주의 - 인터뷰에서 수상을 달달 볶기 위해 유치하고 심술궂게 성적 차별 시도를 하는 Duncan Garner (라디오와 티비 쇼 진행자:역자 주)가 좋은 예  - 는 항상 공격적이다.  그러나 우파 인물이 ‘Cindy’s Kindy’ (전 국민당 총재 Michelle Boag가 그랬듯이)를 거론하거나 제신다 아던을 깎아내릴 때마다 그들이 의존하는 것은 그녀의 지적능력과 정치적 영리함 대비 국민당 그림자 내각의 비교뿐이다. 이와 같은 비교는 국민당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고 대신 많은 당 지지자들을 화나게 할 뿐이다.

 

Michelle Boag

 

따라서: 국민당은 선천적으로 정부로서 무엇을 할 줄 아는 정당이란 이미지를 가지고 폭넓은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 대신 조직된 지지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반동적 ‘열정’를 가진 정당이 될 것인가? 아니면 경제적 유능함을 가진 정당으로 통치에 선천적 재능을 가진 ‘열정은 없지만(passionless)’ 전문가적 집단으로 유권자에게 다가갈 것인가? 첫 번째 옵션은 당의 조직을 강화할 수 있지만, 득표력과 선천적으로 수권 정당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지위를 위협받을 수 있다. 두 번째 옵션은 안정성은 유지할 수 있지만 진정한 정당 운동을 위한 동기를 제공하지 못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브리지스에 이어 멀러 역시 이 두 옵션 사이를 오갈 것 같다. 이건 전술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적 딜레마다.

 

뉴질랜드 국민당은 영국의 보수당, 미국의 공화당 그리고 최근의 호주 자유당이 겪은 혼란을 전혀 겪지 않았고 뉴질랜드 정치는 이런 다른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드라마를 경험한 적이 없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국민당도 같은 ‘허공의 통치(ruling the void)’(Peter Mair and Richard Mulhern의 책 제목에서 인용함:역자 주)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서구 민주주의 - 정당들, 자원에 대한 민주적 통제, 대중 조직들 - 에서 참여 기회가 신자유주의의 기술관료 시대를 통해 쇠퇴하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좌파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추한 인종차별주의, 이슬람 혐오증 혹은 젠더를 겨냥한 ‘문화전쟁’ 등은 공식 정치에서는 도움이 안 될 수 있지만, 극우파에게는 자신감을 부여할 수 있다. 이 것은 실제 삶에 실질적 피해를 가져다줄 것이므로 의회 밖에서의 운동과 연대가 필수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연립정부에 대한 우리의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노동당 열성당원과 고위 노조 관료가 엄청난 압력을 가해 올 가능성이 높다.  모든 것을 떠나 이번 팬데믹 대처에서 제신다 아던보다 사이몬 브리지스가 더 잘 대처했을 것이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그러나 예산 편성의 한계 - 실업자를 위한 예산 증가 무산, 기후변화를 위한 예산 부재 - 는 누가 권력을 장악하든지 간에 지금 당장 노동자, 학생, 실업자 그리고 더 나아가 피 억압자 전체의 요구를 전달할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절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기 위축에 따른 실업이 증가하고 비참한 삶이 현실화되면서 정치는 더 양극화되고, 더 혹독해지고 더 불안정해질 것이다. 이런 조건은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만약 토드 멀러의 지도력이 현재 국민당의 딜레마를 단시일 내 해결하지 못한다면 해외의 급변하는 정세 - 2016년에 트럼프가 당선될 것을 누가 예상했겠는가? - 는 우리에게 현실 안주에 대한 경고를 보낼 것이다. 국민당 ‘내부’에서의 당의 방향, 문화, 젠더 이슈들, 인종차별주의와 노동자 계급에 대한 공격적 정책 등을 둘러싼 투쟁은 당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잠재력이 있다.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 그리고 어떻게 전개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적인 국민당이 직면한 선택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결정을 위해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