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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경찰이라는 국가 기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 제기와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탐구로 경찰 시리즈를 마무리하려 한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로 말미암아 사회적으로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서 경찰의 폭력도 증가한다는 각종 보고들은 우리로 하여금 사회 체제가 불안정할수록 그 체제 유지를 위한 국가 무력의 사용 빈도와 강도가 증가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경찰은 과연 필요한 집단일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많은 이들은 “아무리 경찰이 미워도 눈 앞의 도둑이나 폭력배를 막아줄 존재는 경찰밖에 없는데 아예 없애는 것은 말이 안 되지..”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는 이번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로 경선에 참여했던 민주 사회주의자 Bernie Sanders도 세상에 경찰 없는 나라는 없다며 경찰의 폐지(abolition)는 물론 미국 시위자들의 피켓에 자주 등장하는 예산 삭감 (defunding)에도 명백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형식의 경찰이 존재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캠든(Camden) 시와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 시의 사례
이번 조지 플로이드를 사망케 한 경찰이 몸 담았던 미니애폴리스 시의 변화 움직임과 이미 8년 전에 경찰의 부패와 폭력으로 변화를 시도한 캠든 시의 행보를 살펴보면 어떤 형식의 변화가 가능하고 어떤 변화를 상상할 수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캠든 시는 한국의 미디어에서도 ‘경찰을 해체했더니… 범죄 줄고 시민이 안전해졌다?’로 소개된 적이 있는 미국 도시다. 캠든 시는 이 변화를 통해 2012년과 2019년 사이에 범죄율이 42% 떨어졌다. 캠든 시는 경찰을 ‘폐지(abolition)’하지 않았고 대신 해체(disband) 후 새로운 틀로 다시 모여한 케이스다. 지역 주민을 순찰 대상으로 여기던 틀에서 ‘친 공동체적 대중의 안전(community-based public safety)’을 추구하는 경찰로의 변모를 추구한 것이다. 이를 위해 주민 90% 이상이 비백인인 점을 고려하여 대폭적으로 비백인 경찰을 고용하고 가가호호 방문하여 자신을 소개한 후 주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는가 하면 또 주민들을 위해 바비큐 파티도 열기도 한다. 이런 변화에 대해 캠든 시 주민들은 한편에서는 ‘우리 경찰이 달라졌어요’를 인정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시의 범죄를 유발하는 근본적인 문제들 - 실업, 보건과 경제적 불평등 등 - 은 이런 경찰 법집행 방식의 변화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음 역시 지적한다.

한편 경찰 폐지 혹은 예산삭감 논란의 근원을 제공한 미니애폴리스 시의회는 사건 발생 2주 후 경찰을 ‘폐지(abolition)’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일부 행동가들에게는 승리로 다가갔지만 다른 일부 - 특히 좌파 - 에서는 그 선언의 추상성과 구체적인 타임라인이 없다는 이유로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이는 미국 정치인들 - 공화당 민주당 가릴 것 없이 - 이 대중의 열기를 수용하는 척하며 결국은 자신의 정략에 이용하는 ‘bait and switch(미끼 상술)’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니애폴리스 시의회는 경찰의 해체(dismantle)를 가능하게 하는 시 헌장의 변경을 만장일치로 가결하면서 실질적으로 폐지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시의회는 경찰부서를 폐지하는 대신 그 자리를 Department of Community Safety and Violence Prevention (공동체 안전과 폭력 예방부)가 대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물론 현실적으로 경찰 부서의 폐지는 오는 11월 주민 투표에 의해 확정되며 그 이전에도 많은청문회 절차를 거치게 되는데 모든 게 순조롭다면 미니애폴리스는 내년 5월 경찰이 없는 어쩌면 최초의 도시가 될 수도 있는데 논의가 진행되면서 드러날 새로운 부서가 과연 무늬만 바뀐 경찰 조직 일지 아니면 패러다임 자체를 바꾼 조직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개혁(reform): 경찰 예산을 삭감(defund)하라!
위 두 도시의 사례 - 물론 미니애폴리스는 첫 발자국을 내딘 아직 ‘의지(intention)’ 표현의 단계지만 - 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개혁’의 사례와 ‘폐지’의 사례다. 궁극적 목표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현재 경찰의 변화를 갈망하는 대중들에게서 가장 대표적으로 발견되는 슬로건은 ‘Defund the Police(경찰 예산을 삭감하라)’이다. 경찰에 대한 예산 삭감 요구는 경찰에 의한 법집행보다는 범죄를 야기하는 근원적 사회문제 해결 쪽에 중점을 두는 개혁파와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그 체제를 지키기 위한 전위대로서 경찰의 폭력성은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폐지파 모두 동의한다. 개혁파는 범죄의 근원이 되는 사회적 문제 해결에 필요한 돈을 기존 경찰에 배분되는 예산을 줄여서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폐지파에서도 경찰로 넘어가는 돈줄을 조여서 zero에 이르게 하면 실질적으로 경찰을 고사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전술적 차원에서 대중의 경찰 예산 삭감 캠페인을 반대하지 않되 대중들이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할까 우려한다. 즉 폐지 파는 경찰 예산 삭감을 경찰 폐지를 위한 과정으로서 지지한다.

두 입장 모두 사회문제들에 대한 현행 경찰의 사후 반응적(reactionary) 그리고 대부분 징벌적 형사사법제도 대신 이웃공동체와 경제적 안전망 구축 그리고 사회 복지서비스 등을 통한 예방차원의 치안전략 개발에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본질 자체가 사회구성원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디자인된 조직이 아니다. 경찰은 태생부터 범죄를 예방할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그들이 지켜야 할 대중들을 오히려 범죄자화하도록 훈련된 집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연구는 진보적이고 공동체 기반 사회프로그램들이 안전한 공동체 구축에 훨씬 성공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도 경찰에 대한 예산은 꾸준히 증가했지만 범죄율에는 의미 있는 변화가 없었다. 2014-15년 뉴욕 경찰은 체포 과정에서 이번 조지 플로이드처럼 목이 졸려서 사망한 흑인 Eric Garner 사건에 시민들이 항의하자 자신들의 존재 중요성을 대중들에게 인식시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고의적으로 태업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기간 범죄율은 올라가지 않고 오히려 내려갔다.
또 다른 연구는 경찰은 무장하면 무장할 수록 조직이 더 비대해지고 출동도 빈번해짐을 보여 준다. 마찬가지로 기술적 장비 - 가령 신체 카메라 - 에 대한 투자가 경찰폭력의 예방 혹은 저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연구도 있다. 실제 미국 여러 주에서는 경찰의 신체 카메라 착용을 이미 의무화했지만 경찰의 폭력을 줄이지 못했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은 현재처럼 시민의 정신건강 문제, 약물 중독 혹은 상태 검사와 같은 경우에는 경찰이 동원되지 말고 훈련된 비무장 비폭력적 대응팀에게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참고로 미국 시카고시 경찰예산이 미화 18억 달러인데 비해 다른 사회복지서비스 예산은 다 합쳐도 10억 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경찰의 예산삭감은 또 노동운동가들에게도 다른 이유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 투옥률은 노동 현장의 노조 결성률과 현저하게 부정적 상관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 계급의 노조활동을 물리적으로 억압하는 경찰 조직 대신 새로운 형태의 공공치안 조직이 등장한다면 이는 곧 노동자 계급의 목소리를 다시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미국의 경찰은 강하게 반발한다. 뉴욕경찰(NYPD)의 경우 이번 조지 플로이드 시위 사태에서 평화롭게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은 폭력적으로 진압한 반면 약탈을 하는 사람들은 방관하다시피 했는데 이는 위 Eric Garner 사태 당시 뉴욕경찰의 태업처럼 고의성이 짙다고 Richard Lacham은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뉴욕 경찰이 약탈을 방조하다시피한 데에는 두 이유가 있다. 하나는 대중들과 미디어에게 시위의 불법성을 보여주기 위함과 다른 하나는 그들에게 경찰의 개입과 경찰 예산 증가의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과시함이다. 다른 말로 ‘너희가 우리를 모독하면 우리는 너희들을 더 이상 보호해주지 않을 거야’라는 협박성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폐지(abolition): 경찰과 자본주의는 공생관계
위와 같이 현실적 대안으로 경찰에 대한 예산을 감축하고 그 감축분을 사회복지 서비스로 돌리는 “better balance”를 통해 경찰무력에 의존하는 공동체 치안유지 틀을 바꾸자는 ‘예산 삭감(Defund the Police)’ 운동에서 더 나아가 경찰폭력과 자본주의의 공생관계에 대한 이해를 통해 경찰의 ‘폐지(abolition)’를 주장하는 그룹이 있다. 이들은 놀랍지 않게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그룹이다. 이들에게 경찰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필수적 요소로 경찰의 폐지는 자본주의와 이 자본주의를 유지하려는 무력집단 국가(state)의 철폐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자본주의 국가의 경찰은 기본적으로 공공선(common good)이라는 명목(혹은 포장)하에 가진 자의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탄생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여기서 가진 자는 자본가이자 식민국가의 경우 백인이다. 따라서 미국 백인 자본가들은 경찰의 무력과 더불어 인종 카드를 통해 피지배계층을 분할 통치(devide and rule)하는 전략을 취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종차별적 자본주의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이를 증빙하는 사례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KKK의 멤버 혹은 추종자들이 경찰이다.

이들은 주류미디어와 일부 학계에서 주장하는 경찰개혁 방안 중 하나인 지역공동체 치안유지 활동 (community policing)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지역공동체 치안유지 활동은 경찰이 특정 지역공동체를 전담해서 치안유지 활동을 한다면 지역주민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범죄와 더불어 경찰의 폭력성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1994년에 소개된 이 프로그램은 범죄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수많은 흑인 젊은이들의 대량 투옥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이는 범죄의 근원인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결없이는 경찰이 공동체 기반으로 하던 아니던 그들은 여전히 대중을 범죄자로 만들고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경찰이 지역공동체 치안유지 활동을 한다 해도 이렇게 해서 아껴진 예산이 자동적으로 다른 사회서비스에 투자되지도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산소호흡기 수요가 증가하면서 구하기 어려워지자 제조업자들은 가격을 올렸는데 뉴욕시는 이때도 여전히 NYPD에 미화 56억 달러 그리고 새로운 교도소를 짓는데 80억 달러를 배정했다.

이들은 현재 경찰에 대한 예산삭감 운동은 미미한 효과밖에 없으며 이런 운동을 통해 얻어진 개혁적 효과는 언제든지 뒤짚힐 위험에 처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경찰 예산의 증가와 경찰의 폭력화 그리고 무장화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증가함에 따라 사회적 긴장과 불안이 고조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소수의 자본가가 자원을 독점하고 절대다수의 노동자를 억압하는 사회관계가 지속하는 한 경찰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따라서 이 불합리한 사회적 관계를 근본적으로 없애면 경찰과 교도소는 자연스러이 없어질 것이기에 자본주의의 철폐가 궁극적인 목표가 돼야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경찰의 개혁은 많은 리버럴이 주장하는 것처럼 경찰에 대한 더 나은 훈련, 감독 혹은 다양화 등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찰의 폭력은 다수 백인 미디어의 “부모 역할의 향상” 혹은 “보다 현명한 결정” 등과 같은 희생자 비난여론 조성으로 인해 사라지지 않는다. 또 정치인들은 경찰의 변화에 대한 대중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이들을 길거리에서 사라지게 한 후 결국에는 대중들을 원하는 것을 위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조지 플로이드 사태 관련 미국 민주당이 경찰예산 삭감을 그들 정책에 도입하지 않는 것이 그 예다. 또 위에서 언급한 캠든 시 경우도 시 경찰에 대한 예산 삭감은 이루어졌지만 이 삭감된 예산은 카운티 경찰에로 옮겨 갔다. 카운티 경찰은 캠든 시의 치안유지 활동을 대신하며 예산 삭감으로 해고된 캠든 시 경찰을 다시 고용했다. 따라서 현재 문제가 되는 경찰 조직을 제거한다하더라도 자본주의 국가는 다른 형태의 무력 치안유지 조직을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계급이 사라진 사회주의 국가에서 경찰이란 조직은 필요없을까? 사회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다양한 인간 군상이 사는 만큼 치안유지의 필요성은 존속할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치안유지 조직은 자본주의 경찰 - 자본주의 체제 유지가 궁극적 목적 - 과 달리 다수 대중의 이익을 위해 일하며 대중의 민주적 통제를 받을 것이다. 지역공동체의 자위위원회(neighborhood self-defense committees)는 한 예가 될 것이다. 현재 자본주의 경찰은 사유재산 - 가령 리커스토어 - 을 보호하기 위해 무력행사를 불사하지만 새로운 사회에서는 무력을 소지하고 행사할 수 있는 치안유지 조직은 대물 손상을 일으킨 사회 구성원보다는 ‘대인 손상(harm other people)’을 일으킨 사회 구성원에게 초점을 맞춘다. 즉 사유재산에 기반한 범죄에 대한 개념으로부터 사람에 기반한 범죄 개념으로 이전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또 사회 구성원의 잘못된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법을 지키게 하려는 태도로부터 잘못된 행위를 한 사회 구성원의 자발적 반성을 통해 공동체 평화를 회복하려는 태도로 포함한다.
폐지를 향한 개혁
위 경찰폐지론에 대해서는 좌파 내에서도 현실을 외면한 이상주의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리버럴 민주주의의 제도/기관들이 가난한 자와 피식민지인을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잔인한 독재를 위한 허울에 불과한 존재만은 아니다. 우리가 파시스트 독재 국가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경찰은 자본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자 계급을 억압하는 존재로 규정할 수 있지만 현 사회는 이렇게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이분화 속에서 경찰은 자본가의 편이라고 단순하게 단정할 수 없다. 노동자도 경찰에 대해 애증적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기본적으로 미운 놈이지만 때로는 필요한 놈이 노동자에게 경찰의 존재다. 또 다른 측면에서도 경찰은 필요하다.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서 국가개조 작업을 할 때 이 변혁에 저항하는 자본가 반동 움직임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경찰의 존재는 필요하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가 실현되면 경찰의 존재가 필요 없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개혁(transformation)이 필요한 때다.
이처럼 언제 도래할지 모르는 이상적 사회주의 국가를 기다리는 동안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경찰 혹은 경찰의 역할을 담당할 조직이 필요하다면 경찰 폐지는 궁극적 지향점으로 남겨둔 상태에서 이 지향점을 향해가는 변모된 경찰 혹은 경찰 역할의 조직을 우리는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만약 경찰이 자본주의 본질적 속성상 개혁 혹은 민주화될 수 없다면 초점을 경찰력에 대한 ‘억제(restraint)’에 맞출 필요가 있다. 그 한 예가 경찰을 견제할 수 있는 독립적 시민참여 경찰평가 이사회(independant citizens’s review board)다. 뉴질랜드를 포함한 많은 국가와 도시에 이미 대중의 경찰에 대한 컴플레인을 다루는 위원회(commission) - 뉴질랜드 경우 IPCA (Independent Police Conduct Authority of New Zealand) - 가 존재하지만 이들의 경우 그 독립성과 권한에 제약이 많다. 따라서 이들 견제 기관에 진정한 독립성 - 가령 선거를 통해 이사회 멤버를 뽑는다든지 - 과 실질적으로 경찰력을 견제할 수 있는 권한 - 가령 자체 수사권 -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찰의 괴물화
경찰은 당연히 이런 개혁 혹은 예산삭감 혹은 폐지 움직임에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한다. 이번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집회에서 심지어 시카고 경찰 이사회의 회장인 Ghian Foreman은 집회 현장에 우연히 있다가 진압 경찰로부터 곤봉 세례를 받았는데 그를 팬 경찰이 그가 이사회 회장임을 몰랐는지 알았는지 모르지만 어떤 경우든 신경안썼을 듯싶다. 미국의 경우 경찰은 시장 - 미국은 전국단위로 존재하는 뉴질랜드와 달리 지방자치제 단위로 경찰이 편제 - 이 공화당원이건 민주당원이건 개의치 않는다. 미니애폴리스를 비롯해서 미국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인종차별적 경찰로 알려진 시카고, 뉴욕 그리고 로스앤젤레스 모두 민주당 시장이 재직하고 있는 곳이다.

경찰은 미국 뿐만 아니라 뉴질랜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치 식민지 점령군 같은 독자적인 조직이 되었다. 위에서 서술했듯이 경찰은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적 문제를 관리하기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이 사회적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경찰은 갈수록 무장하게 된다. 경찰의 무력 사용은 민주적으로 시민 대표 기관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게 원칙인데 지배계급은 이를 “전문화(professionalization)”란 명목 하에 일반 시민들로부터 경찰을 이격 시켜 독자적 대민 기관으로 변모시켰다. 미국 경찰은 1930년대에 이르러 노동운동과 좌파 조직을 분쇄하기 위해 완전 무장한 조직이 되었으며 전문화 과정을 통해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어떤 정당 조직의 직접적 정치적 통제와 지방 정부의 영향력으로부터 거의 벗어나는 조직이 되었다.
Stuart Schrader에 의하면 미국 경찰의 ‘전문화’ 시대가 20세기 중반부터 1980년대까지였다면 그 이후부터는 ‘부당이득(profiteering)’의 시대이다. 경찰의 부당이득 시대는 정부의 각종 사회복지 부서가 궁핍에 직면한 반면 경찰은 정부로부터 증가된 예산을 배정받는 것으로 특징지워진다. 즉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유일하게 궁핍을 피해 간 유일한 정부 부서가 경찰이다. 이렇게 비대해지는 권력과 예산에도 경찰이 대중의 비판을 피해 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지속적으로 경찰을 미화하고 영웅시하는 주류 미디어와 경찰의 협조에 정치 생명을 상당 부분 의존하는 정치인들의 경찰 옹호도 한몫 거든다.

1970년대 들어 강성 노조가 쇠퇴하면서 경찰의 무장도 필요없게 되었지만 미국 연방 정부와 각 주는 이 무장 조직을 빈부격차, 증가하는 범죄 그리고 인종 갈등을 징벌적 방식으로 대처하기 위해 교도소와 함께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각종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통한 문제 해결보다 편하고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 경찰은 초기 노동운동과 좌파 조직을 탄압하기 위해 예산 지원을 통해 경찰을 무장화했으며 노조 운동이 쇠퇴한 이후에는 흑인이 절대 다수인 도시 빈민으로 인한 사회문제 해결에 이 무장 경찰을 활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전가의 보도처럼 빈번하게 인용되는 정당화 명분은 ‘경찰 무력 사용의 재량권(discretionary use of violence)’이다. 경찰 업무의 특성상 현장에서의 순간적인 판단에 의존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경찰 권력의 남용을 불러일으켰다. 이 재량권은 또 경찰이 개혁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인데 왜냐하면 대부분의 개혁 방식이 경찰 행동의 표준화라는 톱다운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의 독자성은 반대 급부로 경찰의 고립을 자초하기도 한다. 이번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태로 인해 미국의 많은 대 자본가들은 경찰에 대해 이전과 같은 지원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LA 시도 이번 사태로 최소 미화 1억 불의 경찰 예산을 삭감하기로 했고 - 하지만 경찰 전체 예산은 18억 불이다 - 학교들도 경찰과의 계약을 중단하기 시작했으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니애폴리스는 경찰을 해체하기로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경찰은 노동자인가?
좌파입장에서 결론부터 말하면 경찰은 노동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계급 사회 내 역할이 항상 자본가 편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경찰은 자본가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생산수단의 사유화 시스템에 기초한 ‘국가(state)’ 방어의 최일선에 서있기 때문이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19세기 초중반 영국과 미국에서의 경찰 탄생의 배경은 현대적 의미에서 범죄 해결 자체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크게 노동운동의 분쇄, 시위 해산 그리고 노예 추적 사냥, 이 세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구 경찰은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경찰은 탄생부터 노동계급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유재산 관계의 재생산을 위해 일하는 노동계급의 적군인셈이다.
더 나아가 현재 미국의 경찰의 야만성(brutality)은 경찰 노조와도 긴밀히 연관되어있다. 20세기 후반 산업 전반에 걸쳐 노동운동과 노조활동이 쇠퇴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경찰은 광신적으로 자체 문화와 멤버를 지키려는 정치적으로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경찰노조를 가지게 되었다. 이 경찰노조와 함께 경찰은 1960년대부터 ‘독자적 정치세력’으로 자리잡으며 공격적으로 예산 확장을 실현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시와 연방 정부에 대한 예산 협박을 통해 경찰은 정당 조직이나 정부의 합법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존재가 되었다. 자본가 지배계급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경찰을 만들었지만 경찰은 이 지배계급의 통제에서 벗어나 오히려 지배계급에게 시스템을 무너트리게 할 수 있다고 협박하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이 경찰노조는 마치 카르텔처럼 기능을 하면서 지배 계급에게 자신의 중요성을 무기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 경찰노조는 진정한 다른 산업노조와 마찬가지로 그들 멤버의 이익을 보호하려 하지만 진정한 노조와 달리 ‘멤버의 이익이 민주적 기준과 가치에 반할 경우’에도 그렇게 한다. 경찰노조의 집단 교섭권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같은 경찰의 폭력 사건 증가에 크게 일조한다. 왜냐하면 노조는 멤버의 비행(misconduct)에 대해 징계를 내리지 못하도록 경영진에 압력을 가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노조는 멤버들의 보호를 위해 전혀 거리낌이 없다. 예를 들어,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한 미니애폴리스 경찰의 노조위원장 Bob Kroll은 조지플로이드를 “폭력적 범죄자”로 그리고 항의 시위를 “테러리스트 운동”이라고 비난했으며 뉴욕 경찰의 노조위원장인 Mike O’Meara는 “우리를 동물과 폭력배처럼 취급하지 말고 우리를 존중심을 갖고 대우하라”라고 오히려 미디어와 대중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미국의 경찰노조들은 미국 노동 총연맹 산업별 조합회의(AFL-CIO: American Federation of Labor and 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s)에 가입되어 있는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경찰노조를 탈퇴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왜냐하면 경찰은 노동운동에서 한 번도 대중의 편에 선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경찰노조는 과잉진압으로 멤버 경찰이 시민을 사망하게 해도 법정에서 무죄를 받도록 변호해주며 설사 처벌이 있어도 유급휴가 등으로 매우 후하게 처리해준다. 이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Blue Lives Matter’ - 경찰의 상징색이 파란색임에 빗대어 경찰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뜻 - 슬로건 하에서 “그들만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최근 진압 경찰이 쓰러진 노인을 밟고 지나가는 비디오가 유통되면서 관련 경찰 두 명이 해고되자 이에 대한 항의로 “비상출동팀(Emergency Response Team)” 전원이 사표를 내기도 했다. 즉 자신들의 폭력적 행위에 대한 어떤 제재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집단 이기주의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런 경찰노조의 자기 식구 감싸기 덕분에 2005년과 2019년 사이 미국에서는 매년 평균 1천 명이 경찰에 의해 사망했는데 불과 3명만이 살인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을 뿐이다.

뉴질랜드는?
미국에서 점화된 경찰에 대한 예산삭감(defund police)으로 상징되는 개혁(reform)과 폐지(abolition) 논쟁은 뉴질랜드에서는 주류 미디어의 큰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나름 논의가 있었다. 최근 경찰의 상시 무장화를 예고한 듯한 ARTs(Armed Response Teams)의 시험 도입을 적극 반대하는 운동을 펼쳐 마침내 좌절시키는데 이바지한 시민단체 PAPA(People Against Prisons Aotearoa)는 대변인 Emilie Rakete를 통해 ARTs의 포기를 시작으로 궁극적으로 경찰은 폐지되어야 하며 공동체 사법시스템(community justice)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ARTs의 철폐에 같이 일조한 JustSpeak의 Julia Whaipooti - 이 블로그의 뉴질랜드 경찰의 인종차별 - 경찰 이야기 1에도 등장했다 - 도 경찰과 교도소로 구성된 뉴질랜드의 현 사법시스템은 식민주의의 잔존 형식이므로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역시 주장했다. 또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소개된 블로거 Martyn Badbury는 정신건강, 홈리스 그리고 빈곤 퇴치를 위해 쓰여져야 할 예산이 경찰로 가고 있다며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며 경찰에 대한 예산 삭감에 동조했다.
이에 대해 메시대학의 Steve Elers는 미국의 경찰에 대한 예산삭감 요구 시위를 hysterical하고 absurd(터무니없다)하다고 비판하면서 무장화를 의미하는 이전 미국 경찰의 전문화 (professionalisation)와 다른 의미에서 경찰이 전문화(professionalisation)를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지금처럼 18살 젊은이가 16주 교육만 받고 경찰이 되어 사회문제가 발생하는 현장에 출동해서 할 수 있는 대처는 명확히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경찰은 범죄에 대응하고 수사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 카운슬러이자 소셜 웍커이자 심리학자가 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맺음말
경찰에 대한 예산 삭감과 폐지 논의들을 미국을 중심으로 정리하면서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두 개다.
하나는 궁극적으로 국가(state)가 사회구성원을 강제적으로 구속하는 무력(violence) - 현행 경찰의 모습 - 과 사회로부터 배척(exclusion)하는 제도 - 교도소 - 는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의 발생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현상이라면 이는 반드시 사회적 원인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에 이 사회적 질병을 야기하는 근원의 제거가 사회적 평화를 위해서 급선무이자 필수적일 것이다. 이는 결국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전면적 검토와 지양을 의미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경찰은 어떻든지 간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경찰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Steve Elers가 말하는 경찰의 예산삭감대신 오히려 professionalisation에 신경 쓰라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의견 중 경찰이 소셜 웍커가 되기도 해야 한다는 의견은 일정 부분 내 의견과 겹친다. 나는 경찰이나 소셜 워커나 모두 사회 복지에 종사하는 공무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소셜 워커와 경찰은 사회 구성원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찰을 법집행(law enforcement)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라는 정의에서 벗어나 사회복지사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되 일정 부분 비상 상황을 대비해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직으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이 경우 무력을 행사하는 팀은 화재 진압을 위한 소방출동대 혹은 긴급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앰뷸런스 팀 같은 개념이 될 것이다. 그 외의 경우 경찰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또 다른 형식의 사회복지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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