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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알고 지내던 중국 교민과 인도 교민에게 그들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에 대해 대화를 조심스럽게 시도한 적이 있다. 그들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 내용은 명시하지는 않겠다. 이유는 이전 포스팅 ‘Stereotype에 대한 Stereotype’ 에서 언급했듯이 스테레오타입의 공표는 어떤 목적이든지 간에 자칫 그 스테레오타입의 재생산과 견고화라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가 가진 중국인과 인도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은 주변 지인들과 얘기를 하면서 대동소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작한 것은 이들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내포하기 있기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들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나의 완곡하고 우회적인 대화 시도는 짧은 나의 질문과 열변에 가까운 그들의 긴 답변이라는 일문일답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는 내가 두 번째 카운터 질문을 아예 포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의 답변 태도에서 그들이 감정적이 되었음을 충분히 느꼈기에 내 입장에서 아무리 침착하고 타당하게 대화를 이어가려 시도한 들 그들이 감정을 자제하고 내가 기대한 관조적 이성을 찾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까지 가깝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유러피안화 되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었기에 민감한 질문이라도 어느 정도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그들의 인종 혹은 ethnicity에 대한 이슈는 여전히 역린이었다.
그럼 면에서 아래 비디오 클립은 매우 생산적인 접근방식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위 비디오의 남자는 이전 포스팅 ‘다른 에스닉 그룹 간 결혼의 의미와 전망 (上)’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 혼혈로서 미국의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하다가 최근에 한국에서 와서 생활하는데 영어교사이자 유투버다. 여자는 미국의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미국에서 학교를 마치고 한국에 와서 생활하면서 한국인 혼혈에 대한 관심이 많다. 연인 사이인 이 둘이 이 비디오에서 심지어 연인 사이인 그들에게도 어렵게 다가가는 인종 혹은 ethnicity - 이들은 미국에서 자라고 교육받아 ethnicity 대신 미국에서 보편적인 용어 ‘인종’을 사용한다 - 주제에 대해 그들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대화하는지를 얘기한다.
이들의 대화를 듣노라면 스피노자(Spinoza)의 명언 ‘눈물 흘리지 마라, 화내지 마라. 이해하라 (Do not sweep; do not wax indignant. Understand)’가 생각난다. 이들이 얘기하는 인종 관련 주제의 대화 참가자들은 쉽게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이 된다는 점이며 이는 곧 ‘감정적’이 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소수민족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인종 혹은 ethnicity 탓에 현지 사회에서 자신들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victimhood)’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에 관해 얘기를 하면 강하게 반발함으로써 심리적 방어벽을 설치한다.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상당한 정도의 감정적 긴장을 동반하기에 자칫하면 이해는커녕 racist라는 오명(stigma)을 뒤집어쓴 채 허무하게 대화가 끝날 수 있다.
이는 단지 피해의식을 가진 소수민족 사회구성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서구의 패권을 장악한 백인 그룹에 속하는 사회 구성원 역시 덜 공격적 일지 몰라도 충분히 방어적이 될 수 있다. 이들 중 다수, 모두가 아니라면, 는 자신들의 피부가 ‘white’라는 ‘colour 중 하나’라는 생각을 못한다. 이전 포스팅 ‘다른 에스닉 그룹 간 결혼의 의미와 전망 (下)’에서 지적했듯이 이는 그들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태어나면서 성장하기까지 자신들의 피부 색깔과 삶의 방식은 ‘default’이고 ‘normal’이기 때문에 그들의 피부는 말하자면 공기처럼 투명한색으로 여겨진다. 이들이 소수민족 - 예를 들어, 미국 상황에서는 흑인 그리고 뉴질랜드 상황에서는 마오리 - 과 대화를 하다 보면 자신이 서 있는 이해와 인식의 기존 지반에서 더 내려가지 않는 한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주장을 상대방이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하지만 다른 상황의 예를 들자면 한국인이 일본 우익과 얘기하는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한국인으로서 당연히 진실로 여겨지는 인식, 가령 독도나 위안부 등,을 일본의 대화 상대가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울화통이 터져 대화하고 싶은 생각이 더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어렸을 때 학교 교육을 통해서 그리고 이후에도 각종 서적과 미디어를 통해서 우익적 역사관과 사고에 익숙한 일본 대화 파트너 처지에서는 한국 대화 파트너의 주장이 근거 없는 아전인수격 억지로 비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다른 인종 혹은 ethnicity에 대한 이해는 그들의 사회적 역사적 상황(context)에 대한 이해를 필수적으로 동반해야 한다. 자신의 경험에 기반을 둔 기준으로 다른 에스닉 그룹의 생각, 행동 그리고 태도가 이해가 안 된다면 그들이 왜 그렇게 하는가에 대한 환경적 요소들에 대해 이해를 하려고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는 상대방에게 나를 이해시킬 때에도 마찬가지다. 나의 최종 생각, 행동 그리고 태도를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를 둘러싼 역사적 사회적 환경에 대한 설명을 통해 이해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양쪽 다 필요한 태도는 ‘열린 자세(개방성)’다. 이 열린 자세는 단지 상대방의 환경과 그 환경에서 기인한 상대방의 생각, 행동 그리고 태도를 이해하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 자신의 환경과 그 환경에서 기인한 내 생각, 행동 그리고 태도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나에 대한 열린 자세를 의미하기도 한다.
위 두 사람도 자신들이 비록 흑인 혼혈과 백인 혼혈로 다르지만 공통으로 한국인 혼혈이라는 점에서 다른 전혀 다른 인종 혹은 에스닉 그룹 간의 대화보다는 유리할 수 있음을 인정했지만 내가 보기에 결정적인 요소는 이들이 혼혈로서 겪은 정체성 혼란의 과정이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객관적으로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게 하였다는 점이다. 이전 글에서도 적었지만, 혼혈은 이처럼 두 인종과 문화를 다 이해할 수 있는 잠재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터부시 하는 인종 관련 주제에 대해 불필요하게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일 필요 없이 훨씬 적극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준비 자세는 반드시 혼혈만의 특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 사회적 역사적 산물임을 인정한다면 상대방의 그리고 나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대한 ‘겸손한’ 접근은 서로에 대한 몰이해와 스테레오타입의 해소에 이바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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