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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롱스 클라쓰’ㅡ '의사당을 무너트려라! (Knock down the House!)' - 대안시리즈 12

김 무인 2020. 7. 19. 17:06

 

** 찾아주신 분께 안내드립니다. 다음 블로그의 수정/편집 어려움이 있읍니다.  보다 나은 가시성/가독성을 위해 같은 제목/내용의 '네이버 포스트(링크)' 를 권장합니다.

 

 

 

머리말

 

이번 주 휴가라 나름 시간을 느긋하게 즐겼다. 느긋한 시간 보내기 목록 중에 드라마 한 편 보기도 포함되어 있어서 그동안 볼까 말까 망설였던 ‘이태원 클라쓰’를 마음먹고 보았다. 이런 류의 연작 드라마는 재미있고 없음을 떠나 보는 중 막장임을 알아도 결과는 알고 싶기에 중간에 끊지 못하고 끌려다니다시피 하더라도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에 망설였지만 시간적 여유로움이 이 망설임보다 강했다. 결과적으로 나의 인생을 바꿀만한 인생작은 아니었지만 나름 탄탄한 스토리 전개를 한 드라마였다. 특히 내가 남성이라 그런지 새로이(그런데 이름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보다는 이서가 더 귀엽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나 이런 이서도 그리고 그녀가 히로인을 했던 이태원 클라쓰도 이번 기간 시청한 또 다른 드라마, 오카시오 코르테즈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브롱스 클라쓰’ - 오해는 마시라. 내가 붙인 이름이다 - 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번 포스트는 이 ‘브롱스 클라쓰’에 대한 리뷰다.

 

 

 

의사당을 무너트려라! (Knock down the House!)

 

드라마 ‘브롱스 클라쓰’ - 브롱스(Bronx)는 뉴욕의 한 구역 이름이다 -의 공식 제목은 '의사당을 무너트려라! (Knock down the House!)'다. 2018년 미국 상하원 선거를 위한 사전 민주당 당내 경선에 출마한 4명 여성 후보자의 여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중미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2세대로서 술집/식당에서 웨이트리스/바텐더로 일을 하는 Alexandria Ocasio-Cortez, 불공정한 미국 의료보험 시스템으로 인해 딸을 잃어야 했던 Amy Vilela, 비무장 흑인 남성이 경찰에 의해 사살된 것에 분노한 흑인 여성 Cori Bush 그리고 자신의 고향 마을과 아웃 사람들이 석탄 자본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것을 막고자 하는 Paula Jean Swearengin. 정치를 직업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이 4명의 여성이 국회의원이 되어 이 부조리한 현실을 개선하고자 첫발을 내디뎠을 때 그녀들이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산은 당내 경선이었다. 성향상 민주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이지만 그녀들이 출마하려는 각자의 지역구는 이미 민주당의 기존 직업 정치인들이 현직 의원으로 재임하고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즉 이들에게는 공화당 후보와의 싸움에 앞서 치러야 하는 기득권을 가진 당내 경선 후보와의 싸움이 더 높은 산이었으며 이 다큐멘터리는 그 과정의 힘듬을  잘 보여준다. 

 

특히  이 다큐멘터리는 Alexandria Ocasio-Cortez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데 그녀가 당내 경선에서 부딪칠 상대가 차기 하원 의장으로 거론될 정도로 민주당 서열 4위이자 간부회의 의장이고 2004년부터 지금까지 당내 경선 절차 없이 -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 10선을 할 정도의 거물 중 거물인 Joe Crowley이었기 때문이다. 지역구민의 압도적 민주당 지지 특성상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후보가 본선에서 당연히 승리하는 이 지역에서 일개 20대 젊은 식당 웨이트리스가 어떻게 이 골리앗에 도전하는 지를 지켜보는 것은 단지 하나의 정치드라마를 떠나 과연 참여 민주주의가 어떤 형식이 되어야 하며 어떤 사람들이 지역구를 대표해야 하는지 그리고 뉴질랜드 정치 지형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유통을 맡고 있는 넷플릭스가 이 다큐멘터리를 유튜브에 올렸으며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고맙게도 한국어 자막 지원이 된다. 한국어 자막 설정을 할 줄 아는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정 방법을 설명한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톱니바퀴 모양의 버튼이 있다. 이 버튼을 클릭하면 위로부터 Autoplay, Playback Speed, Subtitles/CC 그리고 맨 하단에 Quality 목록이 나타난다. 이 중 Subtitles/CC 항목을 클릭하면 지원 언어가 나열되는데 커서를 내려서 Korean을 지정, 클릭하면 된다. 그러면 자동으로 톱니바퀴 버튼 옆 cc 버튼의 아래쪽에 빨간 선이 생성되며 자막 지원이 됨을 알려준다. 만약 자막 지원을 멈추거나 다시 받고 싶을 때는 이 cc 버튼을 다시 클릭하면 된다. 참고로 화면을 HD롤 보고 싶으면 톱니바퀴 안 목록 중 Quality를 클릭한 후 최상단 1080p를 누르면 된다. 이태원 클라쓰보다 재미있다에 한 표를 던지며 강추!!!

 

 

 



감동적이었던 장면들 그리고 말들

 

이 다큐멘터리에 나온 오카시오 코르테즈의 많은 발언은 나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그중 몇 개를 꼽아본다. 

 

 

‘우린 이기려고 출마하는 것입니다’ (3:05 경부터): 

 

이태원 클라쓰를 보다 보니 작가가 시청자 사이에 두고두고 회자될만한 명대사를 남기고 싶은 의욕이 엿보인다. 그중에 한 대사가 교도소에서 사회 하위 계층의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엽전 의식에 쩐 최승권에게 박새로이가 한 말 ‘니가 내 가치를 정하지 마’이다. 어쩌면 지배계급에 의해 의도적으로 유포된 패권적 패배의식에서 벗어나 미래의 자신 모습을 상상하고 꿈꾸며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자빠지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직진하면 그 언감생심의 꿈도 현실화할 수 있다고 작가는 시청자에게 소리쳐 알리고 싶어 한다. 마찬가지로 오카시오 카르테즈는 자신의 바람을 민주당의 거물 동료 후보에게  칭얼거리듯 하소연하기 위해 출마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꿈의 ‘주연’이 되어 완성하기 위해   출마한 것이다. 

 

이 대목 관련 생각나는 또 하나의 한국 드라마가 있다: 미생. 이 드라마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지라도 좋아하는 가사를 가진 OST가 있다: ‘날개’.

 

 

 



‘이번 선거는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상하의 문제다’ (6:00 경부터)

 

단순히 공화당을 우익 그리고 민주당을 좌익이라고 구분했을 때 오카시오 입장에서는 우익을 만나 이념 대결을 하기도 전에 민주당의 ‘높은 분’들 그리고 그 계층 질서를 공고히 하려는 민주당 지도부와 그들을 후원하는 기업들과의 싸움에서 버티어 살아남는 것이 급선무임을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녀가 보기에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무늬만 다를 뿐 민초(grassroots)와는 별개로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는 집단인 것이다. 즉 민초의 목소리를 이런 그들만의 리그를 뚫고 밑으로부터의 어떻게 위(의회:The House)로 여과됨 없이 전달할 수 있느냐가 오카시오가 바라보는 미국 의회 선거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오카시오 선거를 돕는 자원봉사자의 발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22:48 경부터): ‘진정한 의미에서 지도부와 대결하는 싸움이 될 겁니다’. 또 다른 지지자의 발언(51:35 경부터): ‘정당조직들은 자신들의 후보자를 뽑도록 강요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명령대로 하는 꼭두각시예요’.  

 

‘힘 있는 후보자가 당선되어야 지역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6:30 경부터)

 

한 지역구 주민이 오카시오에게 위와 같은 우려 섞인 질문을 던진다. 이런 질문과 이런 류의 인식은 미국이건 뉴질랜드이건 한국이건 선거 정치판에서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러하기에 후보자들은 자신이 중앙 무대에서 얼마만큼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과시하는 문구나 상징을 반드시 선거 홍보물에 넣는다. 오카시오의 경선 상대 Joe Crowley는 이런 것이 필요 없을 정도로 거물이지만 많은 후보는 자신이 권력의 중심부에서 가까이 있음을 어떡하던지 유권자에서 어필하고자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하는 당내 인물과 사진 찍기다. 내가 유권자로 있는 North Shore의 노동당 공천 후보자 Romy Udanga 역시 아래 사진처럼 예외가 아니다.

 

 

 

 

이에 대해 오카시오는 단호하게 말한다. ‘중요한 건 우리를 위해 (그 권력을) 쓰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자신에게 의원이란 권력을 준 존재가 유권자가 아니라 공천권을 가진 당 지도부 그리고 그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해주는 기업 후원자들임을 오카시오는 정확하게 지적한다. 이렇게 의회 선거에 입후보한 정치인은 자신에게 권력을 가질 기회를 제공해 준 당 지도부와 기업 후원가들의 기대와 직접적으로 표를 준  지역구 유권자들의 기대를 중간에 절충시켜 양쪽 모두를 만족 혹은 양쪽 모두로부터 욕먹지 않는 조정과 타협의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이 조정과 타협의 기술이 바로 정치인의 덕목이라고 그들은 가르쳤고 또 그렇게 배웠다. 

 

 

‘열 번 거절당해도 한 번은 받아주잖아’ (21:04 경) : 

 

2018년 당내 경선에 출마한 다큐멘터리 속의 4명의 여성 중 경선을 통과한 사람은 오카시오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카시오가 자신의 홍보물을 길거리에서 나누어주는 것을 돕는 조카에게 나눠주는 홍보물 받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조카에게 한 말이다. 오카시오처럼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고 나선 우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가슴속에 새겨야 할 말은 이외에도 아래 사진 속 경구, ‘우리 중 한 명이 (의회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백 명의 우리가 도전해야 한다 (For ONE of us to make it through, a HUNDRED of us HAVE TO TRY)’일 것이다. 2018년 West Virginia 상원에 도전했다가 당내 경선에서 실패한 Paula Jean Swearengin은 올해 당내 경선에서 이겨 11월 3일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상원의원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나서게 된다. 

 

 

 

 

소매를 걷어 부치기 시작한 조 크롤리 (1:13:25 경부터) : 

 

마을 회관 혹은 학교 강당에서 열렸음직한 1차 후보자 토론회에는 참석치 않고 대신 자신과 가까운 시의원을 대신 보낸 조 크롤리가 애송이로만 여겼던 상대방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고 느껴서인지 이후 토론회에는 참석했는데 오카시오의 맹공에 당황해하며 한편으로는 열 받은 모습으로 비친다.



‘저 혼자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국회의원이 되는 겁니다’ (1;01;27 경부터) : 

 

이 것이 진정한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이자 초심이라고 본다. 대표자를 뽑은 유권자도 이렇게 생각하고 뽑힌 대표자도 이렇게 생각하면서 중앙 정치 무대에 나서야 할 것이다. 위 4명의 여성은 정치를 직업으로 가져본 적이 없는 여성들인데 이 것은 그녀들의 단점이 아니라 그녀들의 장점이다. 그녀들은 지역구의 한 이웃으로서 당연히 그 지역에서 유권자들이 가질 법한 직업 중 하나를 가졌고 입후보하고 유세하는 동안에도 그 직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평범한 이웃이다. 옆집 노동자가 마을을 대표해서 나선 것이다.

 

어찌 보면 명징한 명제처럼 보이는 오카시오의 이 서술이 모든 정치인에게 적용될 수 있을까? 미국의 상황은 차치하고 뉴질랜드, 그것도 현 집권당 노동당의 당수이자 뉴질랜드 수상인 제신다 아던에게 이 명제를 적용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직업 정치인들이 아니다

 

제신다 아던은 와이카토 대학 졸업 이후 정치와 관련되지 않은 다른 직장을 다녀본 적이 없이 처음부터 정치인이라는 직업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정치인은 노동자가 아니라면 그녀는 노동자였던 적이 없었던 사람이다. Wikipedia에 의하면 그녀는 어릴 때부터 정치인이었던 주변 친척들의 영향을 받아서 17세에 노동당에 입당한 이후 미국, 영국 등을 여행하면서 정치인으로서 경력을 쌓은 사람이다. 이 경력 덕분에 2008년에 서열 20위 리스트 MP라는 지위를 확약받은 상태에서 Waikato 지역구에서 출마하지만 국민당 후보에게 패배하고 이후 2011년, 2014년 계속해서 Auckland Central 지역구에 출마하지만 역시 국민당 후보 Nikki Kaye에게 연속 패배를 당한다. 

 

Waikato 지역구는 목장주들의 지역구라는 특성 때문에 국민당의 텃밭이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자신과 같은 1980년생의 정치 신인 Nikki Kaye가 2008년에 28살 나이로 처음 도전한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시 현역 국회의원 Jackie Blue를 당내 공천 경쟁에서 물리친 후 본선에서 노동당의 90년 텃밭인 Auckland Central의 4선 현직 거물 Judith Tizard를 쓰러뜨리고 당당히 지역구 출신으로 국회의원으로 지금까지 4선을 역임했다. 2008년의 승리는 위 오카시오 코르테즈가 민주당 거물 조 크로울리를 물리친 것에 비유될 수 있는 역사적 승리로 기록되는데 이 해 선거 유세에서 니키 케이는 일만 가정을 가가호호 방문하는 2018년 오카시오가 했던 것과 같은 풀뿌리 민심 확보 전략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제신다 아던은 이후 결과적으로 Nikki Kaye를 피해 2017년 당시 노동당 당수였던 David Shearer가 정계를 떠나면서 비게 된 Mt Albert 지역구의 보궐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된다. Mt Albert는 1946년 지역구가 창설된 뒤 노동당이 100전 100승 한 곳이다. 전 수상 헬렌 클락도 이 곳에서 9선을 한 곳인데 보궐 선거 당시 국민당은 아예 후보를 내지도 않았고 투표율은 27.6%에 불과했다. 한편 제신다 아던은 선거를 처음 치른 2008년부터 매번 선거를 치를 때마다 낙선에 관계없이 당내 서열이 20 - 13 - 5 - 1로  거칠 것 없이 수직 상승한 반면 Nikki Kaye는 같은 기간 모두 당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57 - 33 - 19 - 13에 그쳐 대조가 된다. 당내 서열에 관계없이 결과만 놓고 보면 제신다 아던은 지역구에서 주민들이 직접 뽑는 선거 형식에서 지역구 유권자로부터 선택을 받은 적이 노동당 텃밭 Mt. Albert 지역구를 제외하곤 한 번도 없었다.  

 

제신다 아던과 같은 직업 정치인들은 소위 브로커다. 조정과 타협을 통해 이해 집단 간 절충을 이끌어내는 것을 자신 직업의 본질로 여길뿐 자신이 노동자를 대변하기에 다른 이익 집단의 이익을 무시하고서라도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을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직업 정치인들은 노동자 계급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노동자였던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데올로기적 혹은  심정적 이유로 노동당을 선택했지만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이 한 몸 불사르리라는 각오와 그럴 의향은 없다. 마치 이민자를 가엾이 여기는 우월적 지위의 온정적 인권단체처럼 주류 정치계에서 ‘가능한’ 노동자들을  도와주려는 정책 입안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입지를 넓혀 나아가는 전문 직업인일 뿐이다, 그들은 결코 행동가(activist)가 아니고 될 수가 없다. 이에 반해 오카시오는 분명 다른 입장을 보여준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그녀에게 있어 국회의원의 권력은 자신을 대표로 뽑아 준 이웃 동료들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미국 정치계의 검은 돈의 합법성을 폭로하는 오카시오 

 

이번 포스트는 여러 생각과 느낌이 합쳐졌지만 대안 시리즈의 하나로 간주하고 싶다. 우리가 추구하는 대안은 위 사례처럼 기득권을 가진 직업 정치인들에게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노동자와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 ‘직접’ 참여함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돌아가신 그분의 표현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자신의 배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리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대안의 건설을 기회주의적 지식인이나 동조적 직업 정치인들에게 맡기는 것은 결코 대안을 향한 길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