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뉴질랜드 이야기

'그때 그 아인' 잘 있을까? - 1.5세대 이야기 (1)

김 무인 2021. 1. 21. 18:40

 

** 블로그를 찾아주신 분께 안내드립니다.  다음 블로그 수정/편집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더 나은 교열과 가시성/가독성을 갖춘 '네이버 포스트(링크)' 를 권장합니다.

 

 

머리말

 

세월이 참 빠르다. 1987년 이민 문호 개방 이후, 1990년부터 뉴질랜드에 본격적으로 유입이 시작된 한국인 이민인데 1991년에 10살의 나이로 엄마,아빠 손을 잡고 이 곳에 이민 온 ‘그때 그 아인’ 올해 마흔이 되어 자기가 이민 올 때와 같은 나이의 자녀를 둔 엄마 혹은 아빠가 되었을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때 그 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와 아빠는 이제 연금 수령을 바라보거나 아니면 이미 받는 나이가 되어 이민자로서 삶의 제 2막을 준비하고 있다. 

 

문득 이렇게 세월의 빠름을 느끼면서 그때 그 아인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해진다. 1세대라는 핑계로 나 자신 추스리기에 바빠서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마흔이 된 그 아이들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둘러보고 싶다. 전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자녀를 동반하여 이 곳에 이민 온 소위 1세대의 가장 큰 이민 동기 중 하나는 자녀에게 보다 나은 삶의 환경 - 교육 환경을 당연히 포함한 - 의 제공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사회의 주축으로 성장한 우리와 함께 이민 온 우리의 1.5세대들은 과연 부모 기대대로 부모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걸까?



 1.5세대 이민자인 RNZ 리포터 Hye Ji Lee  Photo: Luke McPake  출처: https://www.rnz.co.nz/news/the-wireless/375280/feature-the-1-5-generation

 

누가 1.5세대인가?

 

한 개인을 특정 카테고리에 집어 넣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러운 행위다.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뉴질랜드에 이민 온 1.5세대로 규정하는 것은 자칫 일반화의 나쁜 예가 될 수도 있다. 특히 개인간 삶의 궤적 편차가 심한 이민자 자녀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지금 사는 곳을 예로 들어봐도, 누군가는 이민 온 이후 한번도 노스쇼어를 벗어나지 않고 살아 온 반면, 누군가는 한국에 가 있으며 또 누군가는 호주로 또 다른 누구는 영국에서 살고 있다. 결혼 대상도 다양해서 오클랜드의 한인 교회에서 만난 오빠와 결혼한 사람, 여행 중 만난 영국인과 결혼 한 사람, 같은 대학에서 만난 파케하와 결혼한 사람, 같은 회사 중국인 직원과 결혼 한 사람 등. 또 어떤 친구는 한번 한국인은 영원한 한국인임을 과시하듯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집하는 한편, 또 어떤 친구는 모처럼 만난 한국인 학교 동창에게도 영어만 사용하는 키위 정체성으로 무장한 친구도 있다. 

 

이런 편차에도 불구하고 이들로부터 1.5세대라는 공통 분모를 뽑아 보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 위 사례처럼 현재 다양한 삶의 여정을 밟아가고 있지만 이들 모두에게는 사춘기처럼 이민자 1.5세대라는 열병을 앓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가볍게 앓고 지나갔지만 누군가에는 지금도 트로마로 남을 만큼 심하게 이 1.5 세대 열병을 앓아 자신의 자녀를 둔 지금까지도 그 열병의 자국이 남은 사람도 있다. 한국에 가 있는 그 누군가는 이 열병의 트로마를 피해 한국으로 갔는지도 모른다. 1세대 부모로부터는 마치 이곳 물정에 완전 통달한 2세대처럼 취급받았다가 정작 자신의 2세대 자녀로부터는 여전히 이곳 물정에 서투른 1세대처럼 대접받기도 하는 이 1.5세대는 또 밖에 나가면 나름 이 곳에 꽤 살았는데도 여전히  ‘Korean’이란 호칭으로 퉁쳐서 넘어가곤 한다.

 

정확히 1.5세대는 물리적으로 어떤 연령층을 일컫는가? 학자들마다 설정 연령대가 달라 넓게는 6-18세 사이의 연령층을 칭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6-13세 정도로 설정하기도 한다. 내가 보기엔 연령 설정대의 차이가 유의미한 질적 차이보다는 경험의 양적 강도 차이 정도로 여겨진다. 여기 교육시스템 상 초중학교(primary and intermediate school) 취학 연령대에 이곳에 왔고 오기 전에 어린 나이지만 한국에서의 사회생활(socialization) 경험과 그 기억이 있으면 1.5세대로 칭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들 1.5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 보인다. 그 중에 가장 출발점이 되는 개념은 ‘in-betweenness’다. 다른 영어 단어처럼 이 단어도 나에게는 번역이 어려운 단어다. 단어 자체는 기초단어 in과 between일뿐인데 어렵다. 한국 포털을 검색해보니 ‘틈새’, ’사이-안’,’ 간성’’, ’중간임’ 등의 번역이 있는데 너무 사전적이라 탐탁치 않다. 1.5세대는 한국 문화와 뉴질랜드 백인 문화 사이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던져지는 한 쪽 문화가 싫어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집에서는 온전히 한국 문화 영향력 하에서 생활해야 하고 아침에 등교한 학교에서는 또 온전히 백인 문화에 노출되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문화 안(in)에 속해 있으면서 동시에 두 문화 사이(between)에 있는 것이다. 아마 가장 유사한 개념은 한국어로 ‘경계인’으로 번역되는 ‘marginal man’이지 싶다. Marginal man의 개념은 비극적 뉘앙스가 있다. 아마 1세대 들에게 경계인이라는 단어가 익숙했다면 그 중 상당 지분은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의 저서 ‘경계인의 사색’과 주인공 명준의 경계인적 삶과 그 비극적 파국을 다룬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1.5세대 담론에서 ‘in-betweenness’ 단어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며 얼마든지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개념이다. 

 

이 기본개념 ‘in-betweenness’에서 출발한 1.5세대에 대한 이해는 다른 두 개념인 ‘transnationalism’과 ‘cosmopolitanism’에 대한 이해를 거치게 된다. Transnationalism은 그 개념이 강조하고자 하는 국가 간 ‘유동성(fluidity)을 고려했을때 ‘초국가주의’로 번역하는 것이 다국적주의로 번역되는 multinationalism과 비교될 수 있어 맞다고 본다. Cosmopolitanism는 ‘세계시민주의’로 번역한다. 

 

 

Hye Ji 'Erica' Lee as a child with her parents.  Photo: Unknown   출처: https://www.rnz.co.nz/news/the-wireless/375280/feature-the-1-5-generation

 

부모가 된 ‘그때 그 아인’ 잘 하고 있을까?

 

1.5세대의 삶의 여정에 대해 살펴보고 싶다고 마음 먹었을 때 가장 궁금한 것이 90년대에 엄마,아빠  손을 잡고 따라온 그 아이들이 지금은 잘 지낼까하는 궁금증이다. 길지 않은 뉴질랜드 한인 이민사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아픈 손가락은 90년대에 부모따라 이민 온 이 자녀 그룹이다.  1987년 이민법 개정으로 1990년도 부터 밀물처럼 아시안 이민자가 유입되자 아시안 침공(Asian Invasion)이란 표현을 서슴치 않고 쓸만큼 뉴질랜드 사회- 파케하뿐만 아니라 마오리도 - 가 당황해하며 새로 입국한 아시안 이민자들에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던 그 시기에 그 적대감을 영문도 모른 채 감당해야 했던 그룹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뉴질랜드에 정착한 한인들과 그 자녀들이 산발적으로 있었지만 집단적으로 움직임을 형성한 것은 90년이 지나면서부터다.

 

뉴질랜드에 한국-뉴질랜드 직항도 없던 시절, 인터넷도 없어서 비행기로 한국의 신문을 며칠씩  다발로 받아보던 그 시절에 이들의 부모는 자신들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뉴질랜드 이민행을 발표한다. 이 이민행 결정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기회가 어쩌면 없었을, 있었어도 부모의 결정을 번복할 영향력이 없었을 이 아이들은 뉴질랜드에 도착해서 렌트집을 구하자마자, 아니 어쩌면 모텔에서 렌트집을 알아보는 그 기간에 하루라도 빨리 학교에 보내려는 부모의 의지에 등 떠밀려 학교에 입학을 하게된다. 지금과 달리 김밥으로 도시락을 싸가면 “yuck”소리를 들어야 했던 그 때, 처음 보는 백인 학생들과 나란히 앉아 선생님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도 못한채 눈치밥을 먹으며 하루 하루를 힘겹게 보냈을 그 아이들이다. 

 

물론 주변을 둘러보면 이미 장성한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 볼 수 있어 직접 대화를 할 수도 있지만 전반적인 그림을 보고 싶었다. 또 한편 설사 이들을 만나더라도 이들로부터 그들의 과거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그러던 차에 마침 2002년 이전에 부모따라 이민와 2012년(인터뷰 시점) 현재, 결혼하여 자녀를 둔 1.5세대에 대한 연구 논문을 발견하여 흥미있게 읽어보게 되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사람은 모두 18명인데 인터뷰를 위해 사용한 언어로 15명이 한국어 그리고 3명이 영어를 선택했다. 이들 모두 이민 온 이후 집에서는 여전히 한국의 집단적 문화에서 생활하다가 학교를 포함한 외부 사회에서는 뉴질랜드의 개인주의 문화에 부딪치면서 자신의 자존감과 자신감 형성에 영향이 있었음을 공통적으로 토로한다.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이들은 정체성 관련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이는 한인 공동체에서만 생활하면서 자신에게 있을 수 있는 뉴질랜드 정체성 일체를 부인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1.5가 아닌 보다 부모 쪽에 가까운 그래서 1.2세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한 한국인 정체성을 가진 이도 있다. 반면 1.8세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파케하 주류 문화에 강하게 자기를 일치화하는 이들도 있다. 한편 백인 사회에도 자의반 타의반 속하지 못한 상태이지만 또 한인 공동체에 편입되기도 싫어하는 이도저도 탐탁치 않은 그야말로 경계인적 위치에 있는 응답자도 있다.

 

자신을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엄마,아빠는 버벅거리는 영어와 손짓 발짓을 동원해야 했지만 1.5세대인 이들은 자기 자녀들을 학교에 입학시키고 담임 교사와 면담할 때 그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자녀들의 학교 생활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학창시절에 적극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시도하지 않은 탓에 현재 자녀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아쉬움을 가진다. 이해가 충분히 가는 상황이다. 이민 초기  가족 생존을 위한 정착에 전력투구하는 부모 입장으로서는 아이를 학교에 입학시켰다는 것 자체만으로 산적한 미션 중 하나를 성공적으로  클리어했다고 완료형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혀 낮선 환경과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이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선천적으로 용감한 천 명중의 한 명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뒤로 주춤하면서 위축된 학교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학교통신문도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는 엄마,아빠로부터 어떤 도움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들 1.5세대 입장에서는 만약 자신의 부모가 파케하였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수 있었던 다양한 학교 활동들을 결과적으로 해보지 못한 채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여 낳은 아이가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도 학부모가 되었지만, 자녀에게 학교 관련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1세대 부모가 자신에게 해준 것보다는 낫더라도  파케하 부모와 비교하여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하며 자신의 학창 시절 치열하게 학교 생활을 하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또 한편으로 자신의 부모만큼 자신의 자녀들에게 한국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즉 뉴질랜드도 한국도 어느것 하나 제대로 자신의 자녀에게 알려주지 못하는 것같은 자신의 처지에 회한의 감정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되면서 가지는 1.5세대의 이런 후회와 회한은 결코 헛되이 끝나지 않고 보다 성숙한 인격과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정체성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자신의 학창 시절, 자신을 한없이 어렵게 했던 ‘in-betweenness’ 위치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성숙함을 갖춘 것이다. ‘In-betweenness’가 과거 자신에게 상처만 줄 줄 알았지만 세계적 시민(cosmopolitan)으로 성장하기 위한 남보다 더 유리한 플랫폼이 될 수 있는 양날의 검이라는 것을 이제 깨달으며 자녀들에게 훨씬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이들은 자녀들에게 과거 일부 1세대 부모처럼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푸시하지 않으며 자녀들이 스스로 필요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지혜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 논문의 어쩌면 가장 중요한 발견은 바로 이들 1.5세대가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자신과 또 자신의 2세대 자녀도 자신과 큰 차이가 없을 ‘경계인(in-betweenness)’적 지위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자녀들도 이 깨달음을 기반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어도 영어도 잘할 수 있다는 실용적 측면이 아니라 내 안에 복수의 정체성이 공존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앞으로도 나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 그리고 나의 문화와 다른 문화를 접촉했을 때도 이들을 내 안에 수용할 수 있는 ‘열린 정체성’으로 틀 자체를 변화시켰다는 의미다. 이 열린 정체성은 내가 파케하의 문화에 동화되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지 않게 하는 한편  파케하로부터 차별적 경험을 받았다고  상처받고 한국인 정체성으로 쉬이 퇴각하지 않으며 ‘세계 시민으로서 나’라는 강한 정체성을 지향한다는 의미다. 

 

30년 전에 열병을 앓았을 그때 그 아인 이렇게 자신의 자녀라는 거울을 통해서 ‘자아발견의 순간들(moments of self-discovery)’를 즐기고 있다.



참고논문:   

 

Kim, H. & Agee, M, N. (2019). Where are you from?' Identity as a key to parenting by 1.5 generation Korean-New Zealand migrants and implications for counselling. British Journal of Guidance & Counselling, 47(1), 3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