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뉴질랜드 이야기

Waikeria 교도소 사태는 왜 일어났을까?

김 무인 2021. 1. 7. 19:48

** 블로그를 찾아주신 분께 안내드립니다.  더 나은 교열과 가시성/가독성을 위해 같은 제목/내용의 '네이버 포스트(링크)' 를 권장합니다.

 

 

서론

 

작년 9월 일본어 공부를 위해 블로그 잠정 중단을 선언한 뒤로는 그때까지 이 블로그에서 다루었던 뉴질랜드 소식을 거의 접하지 않았다. 속세를 떠난 승려처럼 인연을 끊다시피 했다가 다시 블로그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어제부터 다시 뉴질랜드 시사에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 그러면서 Te Awamutu에 있는 Waikeria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의 폭동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블로그 재개를 결정하면서 무슨 주제 혹은 소재로 시작할까 잠시 생각했다. 그동안 공백기간이 있어 뉴질랜드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글로 시작할까도 생각했다가 내가 평소 다루고 싶었던 주제들, 예를 들어 계급의 인종화,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도 생각했다가 이번 Waikeria 교도소 사태를 짚고 넘어가는 것이 긴 시간 걸리지 않고 시의 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번 폭동에 참여한 16명의 재소자는 대부분 마오리로 알려졌는데 뉴질랜드에서 교도소와 마오리의 사회구조적 악연은 이미 이 블로그에서 번역 소개된 ‘A land of milk and honey’의 ‘감금(Locked Up)’편에서 다룬바 있다. 뉴질랜드 교도소 내 마오리 재소자의 전반적 이해를 도모하고 하는 분들은 참조하시기 바란다. 따라서 이 글은 위 이해를 업데이트하고 정보를 추가하는 수준이다.   

 

이번 폭동으로 심각히 손상된  Waikeria 교도소 집중감시지역. Photo / Brett Phibbs

 

폭동(riot)일까 저항(protest)일까?



지난 해 12월 30일에 발생해서 올해 1월 3일에 16명의 가담자가 모두 투항함으로써 막을 내린 이번 사태를 다룬 미디어는 폭동과 저항이라는 단어를 같이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광주 민주화운동일까 광주 폭동일까? 정확하게 일치하는 비유는 아니지만 사태를 바라보는 이해당사자 혹은 관찰자의 입장에 따라 시각은 이렇게 상이해진다. 예를 들어 교도소 직원 노조의 경우 명확히 "It wasn't a protest. It was a riot."라고 단정한다. 

 

반면 나는 이번 사태를 나는 폭동으로 쓸까 저항으로 쓸까 고민하지 않는다.  폭동에 가치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말그대로 폭력적인 움직이라는 의미에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촛불혁명같은 경우는 폭동이 아니지만 역사 대부분 혁명은 이런 의미에서 폭동이다. 대부분의 저항은 기존 체제 내에서 자신들의 목소리가 정해진 틀 안에서는 전달이 안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 현상이므로 마찰음이 날 수 밖에 없다.   이전 블로그에서 다룬 경찰 노조나 이번 교도소 직원 노조의 경우 기존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 조직의 구성원이므로 이 체제를 위협하는 움직임 그리고 자신들의 지위에 위협을 가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다.

 

오클랜드 대학 Tracey McIntosh 교수 역시 폭동(riot)이 이성적 대응은 아니지만 ‘구조적 좌절(systemic frustration)’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다면 택할 수 밖에 없는 수단이 된다고 말한다.   



왜 이런 사태가 일어났는가?

 

폭동에 가담한 재소자에 따르면 이번 폭동의 직접적 원인은 재소자를 위한 시설의 열악함이다. 110년 전인 1911년에  만들어진 이 교도소에서는 재소자에게 기본 생활용품(깨끗한 옷과 침구)과 위생적 음료수를 제대로 공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교도소 측과 해당 장관(Minister of Corrections)은 재소자들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불만을 제기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으나 이에 대해 재소자들과 그 가족들은 불만제기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재반박했다.  

 

이런 열악함은 단지 재소자에 의해서만 주장되는 것이 아니다. 재소자들들 위해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자식사, 용변 그리고 샤워가 모두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며 보통 하루에 45분씩 두 번만 좁은 야외 공간에서 운동이 허락된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옴부즈맨(Ombudsman) 조사단이 2019년 교도소 깜짝 방문 이후 작년인 2020년 8월에 발표한 리포트는 재소자들의 주장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이 리포트에 따르면 집중감시지역(high security complex:HSC)에 있는 방들의 대부분은 이층침대로 채워졌으며 층간 높이가 낮아 1층 침대의 재소자는 허리를 피고 앉아 있을 수가 없을 정도다. 또한 방은 환기가 제대로 안돼 후덥지근한 가운데 재소자들은 덮개도 없는 변기 옆 벙커침대에 걸터 앉아 식사를 해야만 한다. 더 나아가 불만을 제기하는 양식도 제대로 구비가 되어있지 않으며 응답 재소자의 77%는 불만제기와 처리 절차를 신뢰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대답했다. 

 

문제는 이처럼 외부 옴부즈맨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누가봐도 기본 인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정부 측에 1차적 비난의 화살이 돌아갈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너무 많은 마오리들이 교도소에 있다는 것이며 이는 개인의 문제가 사회적 문제라는 점이다. 이번 사태 역시 마오리와 교도소 더 큰 의미에서 뉴질랜드 사법체계와의 악연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



뉴질랜드 교도소 현황 그리고 마오리

 

현재 뉴질랜드에는 전역에 걸쳐 18개의 교도소가 있다. 2000년에 5,270명이던 재소자는 2020년에 9,078명으로 증가했는데 2018년 10,364명으로 정점에서는 내려 온 수치다 (이 하락을 현 정권은 업적으로 자랑하고 있으나 2029년까지 약 11,400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재소자 중 3,244명은 미결수 신분이다. 즉 재판을 받기 위해 구류 중인 상태인데 구류 시작일로 부터 재판을 받는 날까지 기간이 장기화됨에 따라 (1년이 넘는 경우가 허다함) 극적인 변화가 없다면 2029년에는 재소자 인구의 과반수가 이들 미결수로 채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기결수의  60%는 출소 후 2년 안에 다시 범죄를 저질러 재 수감된 경우다. 

 

1명의 재소자 당 매년 10만불의 예산이 소비되며 뉴질랜드의 투옥률은 호주보다 12% 그리고 영국보다 40% 높다. 스웨덴의 교도소 재소자 대비 직원 숫자는 뉴질랜드보다 2.5배 높으며 재범률은 뉴질랜드의 절반 수준이다. 재소자의 압도적 다수는 남성(93.6%)이며 마오리가 인구 대비 불균형적으로 52.9%를 차지하고 그 뒤를 유러피안(30.5%) 그리고 퍼시피카 (11.5%)가 따르고 있다. 





Hokai Rangi

 

Hokai Rangi는 2019년 현 정권이 이런 마오리의 인구 대비 불균형적 투옥률을 낮추기 위해 야심차게 발표한 프로젝트다. 간단히 말해 2018년 현재 52%의 마오리 재소자 비율을 장기적으로 마오리의 인구 비율인 16%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24년 까지 10%를 줄이는 것을 단기 목표로 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재소자들이 수감되어있는 동안 보다 자주 가족들과 원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의 교도 행정 부서와 마오리 그룹이 같이 이 프로젝트의 디자인에 참여했다.

 

허지만 이 프로젝트는 스스로 ‘교도소는 직접적이고 구조적인 인종차별이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곳’이라고 인정했듯이 이번 폭동에 참여한 한 재소자도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 들어는 봤지만 보지를 못했다. 여기에 재활이란 것은 없다. 가둬놓고 갱들이 가득한 곳에 같이 있으라고 하면서 우리가 변하기를 기대한다’라고 진술했다. 교도소 내 마오리의 비율을 줄이려는 이 프로젝트가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이번 사태다.  



맺음말

 

이번 사태를 보면서 결론적으로 드는 생각은 마오리 재소자 비율을 줄이는 노력은 교도소 내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외부 사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하지 않은가? 사회에서 범죄를 저질러서 교도소에 들어왔으니까 사회에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교도소에 들어올 일이 없지 않겠는가?  허나 이 간단한 논리가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는게 문제다. 개인적으로도 뉴질랜드 내 마오리의 문제는 생각할 수록 쉽지 않아 보인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100% 사회 책임도 100% 개인 책임도 아니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허나 뉴질랜드 사회가 ‘마오리 너네가 먼저 책임감 있는 사회 구성원의 모습을 보여주면 우리도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줄게’라고 요청하는 것은 순서가 아니라고 본다. 논리적으로 순서도 아니지만 실제 현실에서도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