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뉴질랜드 이야기

아메리카 컵은 신자유주의 컵? - 아메리카 컵 이야기 (2)

김 무인 2021. 2. 2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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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함께 시작한 뉴질랜드의 아메리카 컵 여정

 

뉴질랜드의 1980년대는 현재 여기서 사는 한국 교민에게도 직접적 영향을 미친 극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있었다. 그 시발점은 1984년 뉴질랜드에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시대의 도래를 공식적으로 알린 소위 로저노믹스(Rogernomics) 경제정책의 시행인데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경제 영역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의 방식 그리고 사회 운영 방식까지 인간 삶의 전 분야를 아우르는 거대한 가치관 체계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이후 뉴질랜드의 시대사조로 자리 잡으며 지금까지 뉴질랜드의 경제,문화,정치 및 윤리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뉴질랜드 사회를 지휘하고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글로벌 자본주의와 맞물리면서 현재까지 뉴질랜드뿐만 아니라 지구촌 전체 국가들을 그 영향권에 두고 압박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뉴질랜드에 이민 올 수 있었던 것도 직접적인 원인은 1986년부터 시행된 개정된 이민법이지만 백인만 고집하던 이민자를 유색인종으로까지 확대한 이 이민법의 개정이 있었던 것은 국가 간 자본과 인력의 이동을 자유롭게 해야 자본의 최대 이익 실현을 할 수 있는 다국적 혹은 초국적 기업으로 상징되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시대적 요구(imperative)가 있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의 1987년 첫 아메리카 컵 도전에 사용된 요트 KZ7

 

1987년부터 시작된 뉴질랜드의 아메리카 컵 도전 - 엄격히 말하면 뉴질랜드라는 국가대표팀의 도전이 아니라 뉴질랜드에 있는 한 요트클럽의 도전 - 역시 1984년에 신호탄을 쏘아 올린 뉴질랜드의 신자유주의와 시간적으로도 그리고 연관성에서도 흐름을 같이 한다. 참고로 1987년은 뉴질랜드 요트팀이 처음으로 아메리카 컵에 도전한 해이기도 했지만, 첫 럭비 월드컵이 뉴질랜드/호주에서 열린 해이기도 했다. All Blacks는 이 첫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반면 뉴질랜드의 요트팀 New Zealand Challenge는 도전자 토너먼트인 루이비통 컵 결승에서 미국 샌 디에고 요트  클럽에게 져서 아메리카 컵 결선에는 나가지도 못했지만, 이들이 귀국했을 때 국민적 환호를 받기는 올블랙스와 마찬가지였다. 

 

한국교민들의 본격적인 유입이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이후부터이기 때문에 1980년대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사회적 사건들을 직접 경험한 분은 지극히 드문데 1980년대는 현 뉴질랜드 사회의 틀을 형성한 시기였다. 나중에 부연 설명할 기회가 있기를 바라지만 당시 뉴질랜드 국민이 이 두 스포츠 행사에 열광한 데는 그만한 사회적 분위기가 배경으로 있었다. 1984년 로저노믹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도입으로 2차대전 이후로 평등주의(egalitarianism)에 기반을 둔 복지국가(welfare state)에 수십 년 익숙해졌던 뉴질랜드 국민은 이 급격한 변화에 불안감을 느낀다. 이 불안감의 곧 국가 정체성(national identity)의 위기로 이어지던 차에 이 두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인구 400만도 안되는 남반구 작은 섬나라가 세계열강들과 어깨를 겨뤘다는 것에 국민들은 다시 자국에 안도감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구 대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요트를 보유했지만, 천문학적 돈이 소요되는 것을 알기에 1987년 이전까지는 감히 도전할 생각을 못했었던 뉴질랜드였다. 1987년의 도전이 가능했던 것은 로저노믹스 이전부터 금융브로커(merchant bankers)로서 금융 자산을 축적하기 시작하던 중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도입하여 실행하기 시작한 당시 노동당 집권 정부가 아메리카 컵 도전에 적극 관여하여 지원해줄 것을 확신하는 한편 아메리카 컵 참가 자체를 단순히 스포츠 행사에 대한 자선 형식의 스폰서가 아닌 수지타산(feasibility test) 결과 돈이 되는 비즈니스 프로젝트가 될 수 있고 아메리카 컵을 통해 국제 금융계에도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 있다고 판단한 Michael Fay라는 인물 덕분이다.




뉴질랜드의 아메리카 컵 도전을 상징하는 세 인물

 

2021년 올해의 아메리카 컵을 기준으로 하면 뉴질랜드 Emirate Team New Zealand의 단장(CEO) Grant Dalton이나 주장(Skipper) Peter Burling이 먼저 떠오른 인물들이겠지만 1987년 이후 아메리카 컵에 참여해 온 뉴질랜드 팀에 대한 역사적 사회학적 이해를 위해서는 이들보다는 아래 세 인물이 내 기준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이후의 글은 이들을 중심으로 연대순으로 서술할 계획인데 일단 이들에게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한다.

 

2019년 기준 NBR에 따르면 자산이  NZ$950mil 로 알려진 Sir Michael Fay

 

첫번째 인물은 바로 위에 언급한 Michael Fay다. 우리에게 익숙한 오클랜드 CBD에 있는 SAP 빌딩(151 Queen St)을 본인 회사 사옥 용도로 지은 인물이기도 하다. 시대적 흐름을 잘 읽고 글로벌 시대 금융 자본주의의 첨병에 서서 1987년 뉴질랜드 아메리카 컵 참가를 하나의 투자 프로젝트로 인식하고 이를 실현하여 참가 결정 1년 만에 이를 통해 3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후 아메리카 컵에 참가하는 뉴질랜드 신디케이트들에게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으며 이 공로를 인정받아 나중에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따라서 Sir Michael Fay다.



아마존 밀림에서 부인과 함께한 생전의 Sir Peter Blake

 

두번째 인물은 아메리카 컵에 관련된 인물 중 뉴질랜드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인물일 것이다. 블로그의 이전 번역 포스트 남자답다고? (Man-Up?) 에서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등정한 Sir Edmund Hillary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위대한 뉴질랜더로 추앙받는 Sir Peter Blake다. 1992년 대회 때부터 뉴질랜드 팀의 아메리카 컵 참가에 관여하며 1995년 뉴질랜드에 최초로 아메리카 컵을 안겨 준 Team New Zealand의 단장이었다. 2000년 오클랜드에서 열린 아메리카 컵 방어전에서 성공적으로 방어한 뒤 단장직을 사퇴했다. 안타깝게도 다음 해인 2001년, 지구 온난화 관련 환경 조사차 브라질 아마존 강을 탐사하던 중 해적에게 총격을 당해 사망했다.  오클랜드 도메인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에는 3만 명의 시민이 운집했다.



Alinghi  주장/조타수 시절의  Sir Russell Coutts

 

세번째 인물은 자타가 공인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아메리카 컵 역사상 최고의 요트맨으로 손꼽고 싶은 Sir Russell Coutts다. 3개의 서로 다른 팀(Team New Zealand, Alinghi 그리고 Oracle Team USA)을 통해 주장/조타수(Skipper/Helmsman)로서 3번의 아메리카 컵 우승 (1995년, 2000년 그리고 2003년)그리고 단장(CEO)으로서 2번의 아메리카 컵 우승 (2010년과 2013년)을 차지함으로써 총 5번의 우승과 주장/조타수(Skipper/Helmsman)로서 3번의 우승을 할 때 15전 무패 전승이라는 전무후무할 기록을 가진 명실공히 아메리카 컵의 남자다. 이런 경기적 요소를 떠나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를 느끼는 인물인데 그가 아메리카 컵의 여정동안 3개의 다른 국적 팀을 전전하면서 보여준 행동 그리고 그에 대한 뉴질랜드 국민의 반응은 아메리카 컵이 뉴질랜드에서 갖는 사회학적 의미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