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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이야기

1995년 아메리카 컵, 마침내…하지만 … - 아메리카 컵 이야기 (4)

김 무인 2021. 3. 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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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대회를 위한 1992년 아메리카 컵 

 

1987년 Michael Fay의 요트팀은 챌린저 대회를 우승하지 못해 아메리카 컵 결선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대회에서 보여준 경기력과 뉴질랜드 국민의 성원 덕분이었을까, 다시 미국 샌 디에고로 건너 간  아메리카 컵이지만  Michael Fay의 요트팀은 1992년 아메리카 컵에 도전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듯했다. 결과적으로 뉴질랜드 요트팀은 이 대회에서도 아메리카 컵을 가져오는 데 실패하지만, 다음 1995년 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움직임이 있었다. 하나는 1995년 대회 우승의 총사령관 역할을 수행한 Peter Blake가 이 대회를 통해 등장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영  미디어기업 TVNZ (Television New Zealand)이 메인 스폰서로서 전면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1992년 대회의 비용은 1987년 대회의 두 배 이상인 4천5백만 달러가 소요될 예정이었다.  1987년은 Fay와 BNZ의 후원으로 버텼지만 1992년 대회는 이들보다 더 큰 결정적인 한방을 제공해 줄 스폰서를 다시 찾지 않는 한 무산될 가능성이 컸다. 이때 TVNZ이 혜성처럼 나타난다. 더구나 TVNZ은 혼자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소위 ‘family of five’ - TVNZ, Steinlager, Toyota, Telecom 그리고 Enza(the Apple and Pear Marketing Board - 의 나머지 4형제를 좌우에 대동하고 등장한다.  TVNZ은 물론 그 이전에도 이익을 내서 정부에 배당을 지급해야 하는 국영 기업이었지만 1989년 11월에 경쟁자 민영 채널 TV3 (현 Three)가 등장하게 됨에 따라 ‘시청률’을 높여 ‘광고수익’에서 경쟁 방송국에 밀리지 말아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던 상황에서 아메리카 컵에 출전하는 뉴질랜드 요트팀의 전면적 후원을 통해 이 상황을 극복하려는 카드를 꺼낸 것이다. 





TVNZ의 전면적 등장

  

국영(State-Owned)이지만 기업(Enterprise)이었던 TVNZ은 자신의 투자에 대해 어떻게든 수익을 내어야 하는 과제를 언제나 안고 있는데 텔레비전 미디어의 특성상 광고 수익의 비중이 절대적이며 이 광고 수익은 방영 프로그램의 시청률에 절대적으로 좌우된다. 따라서 뉴질랜드 요트팀의 아메리카 컵 참가 후원을 조건으로 중계권을 획득한 TVNZ으로서는  어떻게 뉴질랜드 대중으로 하여금 아메리카 컵에 관심을 갖게 할 것이며, 또 어떻게 하면 이들로 하여금 중계 방송을  시청하게 할 것이며, 더 나아가 자신을 믿고 투자해 준 나머지 4형제의 브랜드를 티비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노출시킬 수 있을 것인가가 절대적 과제로 다가갔다.  

 

다행히 TVNZ에게는 5년 전 같은 고민을 한 선배 entrepreneur Michael Fay가 여전히 같은 팀에 있었다. TVNZ은 그로부터 대중의 참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폐쇄적 엘리트 스포츠인 요트 대회를 대중으로 하여금 ‘우리의 대회’로 여기는 것이 핵심임을 배운다. 이 인식 위에 처음부터 TVNZ은 아메리카 컵에 참가하는 승무원이 전부 키위고 요트는 뉴질랜드에서 만들어졌고 최초 스폰서도 외국 자본가가 아닌 토종 자본가 Michael Fay임을 강조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Team New Zealand는 이름이 말해주듯 TVNZ에 의해 ‘공식 뉴질랜드 요트 대표팀’ - 국가 대표가 되기 위한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선발 과정 자체가 전혀 없었음에도 - 으로 홍보되고 Peter Blake는 홍보대사로 임명되었다.

 

이 프레임 위에서  TVNZ은 아메리카 컵 소식 전달에 중계 시간 물량공세를 쏟아 붇는다. 1992년 대회 소식 전달에 TVNZ은 총 200시간을 할애했는데 이는 미국 스포츠 전문 채널 ESPN보다 55시간이 더 많은 세계 국가 중 최장 중계시간이었다. 이런 장시간 중계를 하는 데 필요한 예산은 나머지 4형제의 몫이었다. 이를 위해 TVNZ과 이들 4형제는 협정을 맺어 이들에게 그들의 투자에 상응하는 광고 효과 제공을 약속한다. 그 약속의 실체가 바로  위 사진처럼 선체에 스폰서 업체의 로고를 덕지덕지 부쳐 중계 내내 이들 로고가 노출되게 하는 것이었다. 이 전략에 따라 중계를 보는 시청자는 광고를 보는 것인지 중계를 보는 것인지 경계 짓는 것이 무의미한 상태에서 시청하는 것이다.

 

TVNZ은 이처럼 티비 미디어인 자신의 위치를 100% 활용하여 응원자(supporter)이자 투자자(investor)이자 그리고 저널리스트로서 스포츠, 비즈니스 그리고 국민 단합을 한데 묶어버렸다. TVNZ의 이런 시청자 접근 방식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선체에 붙은 스폰서의 제품을 ‘소비(consumption)’해주는 것이 ‘우리’팀을 응원하고 도와주는 방식이며 궁극적으로 애국하는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케 한다. 우리는 이를 ‘기업민족주의(corporate nationalism)’ - 한국에서도 기업이 자사 제품의 홍보와 판매를 위해 소비자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것을 ‘애국심 마케팅’이라고 하는데 같은 맥락이다 - 라고 부른다. 하지만  스폰서 Toyota(일본)와 Telecom (당시 소유자가 미국 통신사)이 외국 회사인 것처럼 1992년 시점에서도 외국 기업의 투자와 소유는 이미 뉴질랜드에 보편화한 현상이었다.



승리 기원 비디오. 피터 블레크와 러셀 쿠츠를 같이 볼 수 있다.

 

 

1995년 아메리카 컵, 마침내…하지만 ….


1992년 샌 디에고에서 열린 제28회 아메리카 컵에서도 뉴질랜드 요트 팀 ‘New Zealand Challenge’는 1987년 대회와 마찬가지로 챌린지 대회인 루이비통 컵 결승에서 이탈리아 팀 Il Moro di Venezia에게 져서 아메리카 컵 결선에는 진출하지 못하였다. 뭔가 실력은 되는 듯한데 마지막 고비를 두 번 연속 넘지 못한 뉴질랜드 신디케이트는 Michael Fay가 물러나고 대신 그 역할을 Peter Blake가 물려 맡아 펀드레이징부터 시합 진행까지 진두지휘하게 된다. 또 TVNZ은 1995년 대회에서도 4형제를 대동한 채 후원군의 좌장으로서 스폰서들 및 뉴질랜드 대중을 관리하는 총사령관 역할을 다시 맡게 된다.  

 

1995년 3월 뉴질랜드의 Team New Zealand는 Black Magic(팀의 요트 이름)이 미국 팀 Young America를 5:0으로 셧아웃시키면서 3번 도전 끝에 마침내 아메리카 컵을 들어올리게 된다. 단장 Peter Blake와 주장/조타수 Russell Coutts는 이 우승의 쌍두마차로 불리며 이후 이 둘은 5년 뒤 2000년 오클랜드에서  제30회 아메리카 컵의 성공적 방어를 합작한다.  

 

 

 

신자유주의 옹호론자들은 Team New Zealand가 아메리카 컵을 마침내 들어 올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유 시장의 우월성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1984년 로저노믹스를 단행한 이후 제대로 된 신자유주의의 승전보를 전하지 못해 온 상태에서 1995년 아메리카 컵 우승은 신자유주의로의 방향 전환이 맞는 결정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즉 국가의 시장 개입을 배제하고 민간 영역에 아메리카 컵 참가를  맡겨놓으니까 시장원리에 따라 이처럼 세계 최고의 팀을 만들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민간영역이 시장원리에 따라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대중은 이를 지지하고 정부가 격려 함으로써 이런 결과를 나올 수 있었다는 논리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의 이런 주장은 지극히 단순한 진실을 외면한 것이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이건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liberalism)이건 공통된 기본 인식은 ‘국가(state)’가 ‘시장(market)’을 간섭(intervention)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1995년 Team New Zealand는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TVNZ, Lotto 그리고 Enza라는 국가 조직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았다. Team New Zealand는 TVNZ만으로부터 2천만 달러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 이는 명백히 자유주의자들이 입에 달고 외치는 ‘level playing field(평평한 운동장)’ - 국가 개입 없는 왜곡되지 않고 편향되지 않은 시장 -  이데올로기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일이 1995년 뉴질랜드 요트팀의 아메리카 컵 캠페인에서 벌어진 것이다. 결국,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잘 나아가는 자본가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개입으로 변한 것뿐이다.

 

 

 

참고문헌: 

 

B, Evans, (2004). Commercialising national identity: a critical examination of New Zealand's America's Cup campaigns of 1987, 1992 and 1995. Auckland, NZ: Auckland University of Techn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