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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nationalism) 용어에 대한 이해
먼저 nationalism이란 용어에 대해 참고 설명을 하고 가는 것이 필요할 듯싶다. 이번 아메리카 컵 시리즈에서 나는 많은 경우 이를 ‘애국심’으로 번역,표현했다. 일반적으로 nationalism은 ‘민족주의’로 번역한다. Nation이 민족이니 민족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신념체계는 자연스러이 민족주의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는데 나만 그런지 모르지만, 한국과 같이 사회구성원이 스스로 ‘단일’민족이라고 생각하는 경우 민족주의란 번역이 어색하지 않은데 뉴질랜드와 같이 다양한 에스닉 그룹이 공존하는 뉴질랜드 상황에서 민족주의란 용어는 착 입에 감기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민족은 당연히 ‘우리’이지만 뉴질랜드에서 ‘우리’는 누구를 칭하는 것인지 여전히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는 아직도 ‘우리’를 찾는 ‘nation building’과정에 있는 나라다.
따라서 뉴질랜드 경우 nationalism은 ‘우리’가 누구인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뉴질랜드라는 나라를 자랑스러워 하는 정서로 이해해서 문맥에 따라 ‘애국심’ 혹은 ‘애국주의’로 번역했다. 파케하에게는 ‘우리의 나라’라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들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자신들의 나라가 식민화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원주민 마오리, 한 번도 주류 혹은 상류 사회로 진입한 사례가 없다시피 한 퍼시피카 그리고 일천한 이민 역사 때문에 아직도 모든 면에서 주인 행세를 하기 힘든 아시안 이민자들은 ‘우리’ 나라라는 정서를 갖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파케하를 제외한 다른 소수민족 사회구성원도 국가가 충성심(loyalty)을 강요하지 않아도 살다 보면 자연스러이 ‘뉴질랜드’를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는 경향이 있다. 한국과 뉴질랜드가 스포츠 시합을 하면 당연히 한국을 응원하지만, 뉴질랜드가 호주와 시합을 하면 또 당연히 뉴질랜드를 응원하는 정도의 정서적 성원은 다른 에스닉 그룹도 비슷할 것으로 이해한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위험한 민족주의(nationalism), 하지만...
개인주의에 기반을 둔 (신) 자유주의((neo)-liberalism) 입장에서 보았을 때 민족주의는 매우 위험한 가치관이자 정서다. 어쩌면 상극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면 민족(nation) 자체가 ‘집단성’을 가지고 있고 민족주의 혹은 애국심은 국가(state) 혹은 사회(society)에 대한 충성을 사회구성원에게 요구하는데 이 과정에서 개인(individual)의 권리가 침해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고는 (신)자유주의자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을 뛰어넘어 타도해야 할 사고방식인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대모격인 마가렛 대처의 유명한 경구 ‘there’s no such thing as society (사회 같은 것은 없다)’가 이들의 집단성에 대한 혐오감을 잘 표현한다.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표현 양식은 글로벌 자본주의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다국적 그리고 초국적 기업의 국경을 초월한 경제 행위를 필수적으로 동반하므로 그들 기업에게 한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에게 특정 국가에 대한 고착된 충성심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전 세계적 차원의 자본 축적을 방해하는 요소에 불과하므로 기피되어야 할 대상이다.
우리가 뉴질랜드의 아메리카 컵 도전 역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도전을 주도한 신자유주의 신디케이트 그룹이 이 혐오하는 ‘민족주의’를 아메리카 컵 도전의 성공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인지하고 이를 시작부터 줄곧 적극 활용했다는 점이다. 21세기 들어 아메리카 컵을 나눠 가졌던 세 팀, Team New Zealand (뉴질랜드), Alighi (스위스) 그리고 Oracle Team USA (미국) 중 유일하게 국가적 지원을 한 팀은 뉴질랜드밖에 없다. 더불어 전국민적 응원을 보낸 곳도 뉴질랜드뿐이다. 그렇다고 미국민이나 스위스 국민이 전혀 관심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들 역시 자국팀에 응원은 하지만 응원해야 할 상황이 되면 하는 것이지 뉴질랜드처럼 학교에서 아침부터 학생들을 모아놓고 실황 중계를 보여줄 정도의 국가적 관심사는 아니다.
왜 이런 대조적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뉴질랜드에도 Ernesto Bertarelli (알링기 소유주)나 Larry Ellison(오라클 소유주)과 같은 초 갑부가 없어서일까? 아마도. 아무튼, 이렇게 자신의 세일링에 대한 열정과 성취욕을 위해서 금전적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대회 준비에 아낌없이 투자한 이들과 달리 ‘국가’가 나서지 않는 한 ‘우승하면 됐지 뭘 더 바래~~!’정도로 통 큰 스폰서를 구할 수 없는 것이 뉴질랜드 현실이다.
이번 2021년 제36회 대회 준비를 위해 정부와 오클랜드시는 약 2억 5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하지만 이 비용은 대회 인프라를 위한 것일 뿐 요트 제작이나 승무원 급여같이 팀 자체를 위한 비용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2017년 대회에서 Team New Zealand는 단장 Grant Dalton에 의하면 약 5천만 불의 비용이 지출했다고 한다. 다른 팀들이 몇억 달러를 지출한 것에 비하면 매우 검소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번 대회에 참가한 영국의 Ineos의 경우 2억 1천만 달러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질랜드의 Emirate Team New Zealand는 이번 대회에 영국팀의 절반 정도를 지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자유주의의 행동대장이 된 국가
이런 상황이다 보니 국가의 도움 없이는 뉴질랜드 요트팀은 시합에 나가기도 힘들지만 우승해도 대회를 뉴질랜드에서 개최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입할 수밖에 없는 중앙 정부는 이번 대회 준비를 위해 1억 4천만 달러를 시합이 열리는 오클랜드 인프라 개선 등에 투자했다. 문제는 이 투자의 혜택을 눈곱만큼도 누릴 수 없는 남섬 티마루나 웰링톤 근교에 사시는 이 블로그의 독자 분을 포함한 많은 뉴질랜드 국민들이 자신의 세금이 오클랜드에 사용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불공평한 상황을 알고 있는 신자유주의 국가와 신자유주의 신봉자들로 구성된 신디케이트는 자신들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혐오하는 ‘민족주의’ - 인터넷 용어 ‘국뽕’ - 카드를 꺼내는데 동의한다.
신자유주의의 강력함은 이 탄력성(혹은 융통성)이다. 이들은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인 ‘자본의 축적(accumulation of capital)’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상업화(commercialization) 혹은 상품화(commodification)하는 필살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이전의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을 사회에 종속시키려는 복지 국가(welfare state)에 저항하여 시장이 사회로부터 인위적으로 구속됨 없이 자유롭게 자본 축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어쩌면 방어적으로 국가를 상대로 싸웠다. 복지 국가 시절 자본가들은 ‘사회’라는 집단의 안녕을 명목으로 ‘국가’로부터 계속 자유로운 자본 축적을 견제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 선배와 달리 신자유주의자들은 ‘국가’ 자체를 ‘상업화’ 형식으로 삼켜버린다. 즉 상업화를 통해 국가를 더는 신자유주의 방해 세력이 아닌 돌격대로 180도 변신시킨 것이다.
이렇게 신자유주의의 충실한 행동대장이 된 국가는 민족주의를 아메리카 컵에 적용한다. 마침 그들에게는 ‘국가’만이 명분을 가지고 사용할 수 있는 ‘국가의 이익(national interest)’이라는 전가의 보도 같은 카드가 그들 손에 있다. 따라서 민족주의 카드를 통해 정부는 국세를 신자유주의자 신디케이트를 위해 사용할 수 있었으며 국영 미디어를 활용해서 대중을 ‘국뽕’에 취하게 만듦과 동시에 이들을 거대한 ‘집단 소비자’로 전환해 아메리카 특수를 스폰서들에게 안겨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라 그렇지만 만약 국외 여행이 다시 활발해진다면 이 국뽕에 취한 키위들은 국영 기업 Air New Zealand 대신 아메리카 컵을 통해 ‘우리’ Team New Zealand’의 메인 스폰서가 되어줘 ‘고마운’ 외국 Emirate 항공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뉴질랜드의 신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어색할 것 같은 콜라보레이션은 1987년 아메리카 컵 첫 도전 이후 지금까지 불협화음 없이 잘 작동해왔다. 하지만 이들 간의 본질적인 모순 관계는 웃프게도 뉴질랜드가 배출한 아메리카 컵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요트맨인 레전드 러셀 쿠츠(Russell Coutts)라는 한 개인을 통해 그 파열음을 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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