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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Marxist의 관료제 이해에 대한 간략 고찰 (上)- 관료주의 이야기 4

김 무인 2021. 5. 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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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이전 포스트에서 막스 베버와 베버리안의 관료제에 대한 이론을 간략하게 전반적으로 둘러보는 것도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지만 이번 포스트 포함 2회에 걸쳐 요약 번역할 칼 맑스와 막시스트의 관료제에 대한 이해는 어쩌면 관료주의 공부 중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다. 여전히 사회주의적 가치에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현  사회의 대안에 대한 아이디어을 찾으려는 사람으로서 이들 사회주의자의 관료제에 대한 견해를 둘러보는 것은 매우 흥분되는 일이다. 혁명 성공 직후부터 결코 아름답지 못한 과정을 거쳐 씁쓸하게 막을 내렸지만, 피동적으로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자신과 동지 그리고 인민의 운명을 바꾸어 보겠다고 앞장선 이들의 이야기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시도해보지도 않은 자가 실패한 자를 욕할 수 없는 것은 실패한 자는 최소한 실패로부터 배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칼 맑스(Karl Marx)와 자본론(Das Kapital) 표지



막시스트(Marxist)의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

 

1989년 공산권이 몰락하면서 사회이론으로서 막시즘은 위기 국면에 접어든다. 이는 소련을 사회주의의 왜곡 혹은 새 형식의 계급 억압이라면서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던 막시스트들에게도 해당하였다. 이후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 사회주의는 환상으로 치부되면서 기껏해야 자본주의 내에서 일정 부분 실현될 수 있는 것 정도로 인식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2021년 현재, 왜 우리는 아직도 막시즘을 공부하는가? 답은 단순하다: 막시즘은 여전히 경제 시스템으로서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분석과 비판을 우리에게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이 분석과 비판의 유효성은 자본주의가 승리했건, 노조가 쇠퇴했건, 대안에 대한 담론이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던 관계가 없다. 현 시대의 사조가 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는 맑스가 처음 규명한 자본주의 특징들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생산수단의 지속적 혁신; 시장경쟁의 전 세계적 그리고 전 사회적 영역으로의 확산; 사회적 필요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업의 상존; 국가 내 그리고 국가 간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등. 

 

막시스트의 관료제 접근은 노동계급과 그 노동계급의 자본주의 생산시스템으로의 종속이란 프레임으로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노동계급의 종속은 본질에서 자본(capital)에 대한 종속이며 행정 구조 - 관료제 - 에 대한 종속은 2차적인 것이다. 이 종속과 이 종속의 변형 혹은 극복을 이해하는 것은 정치사회학보다는 비판적 ‘정치경제학’의 영역이며 관료제는 이 계급관계의 분석에서 부차적 대상이다. 막시스트에게 권력 구조 관련하여 주 관심사는 노동계급의 집단적 해방이지 베버와 같이 개인의 자유는 아니다.

 

따라서 막시스트는 전통적으로 베버리안처럼 관료제를 체계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시대적으로도 막시스트 이론이 태동한 19세기 중반은 관료제가 전면에 등장하기 전이었기에 관료제에 대한 이들의 관심은 단편적이었다. 맑스도 관료제를 의회제도에 대조되는 국가의 특정 유형 정도로 인식했다. 20세기 들어서야 막시스트들은 관료제를 자본주의 사회 내 국가 행정시스템의 일반적 형식으로 인식하면서 이를 제국주의와 독점 자본주의와 연계시켜 생각했다. 그러나 1930년대 들어 막시스트들은 심각한 질문에 직면한다: 혁명 이후 비자본주의 사회가 된 소련이 관료제 국가로 변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질문과 관련하여 막시스트가 관료제를 베버리안처럼 국가를 초월한 현상으로 인정한 것은 상대적으로 최근의 일이다. 



 

자본주의와 관료제

 

막시스트의 관료제에 대한 이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기본적 세계관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회구성원의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생산행위는 모든 사회의 가장 기본적 활동이고 이 생산이 조직되는 방식 그리고 생산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따라서 사회 전반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다. 초기 공동체 사회 이후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사회에서 생산수단의 소유권과 통제권을 가진 지배계급은 직접 생산자들로부터 그들의 생존과 재생산을 제외한 잉여생산물을 가져갈 수 있었다. 이 잉여생산물을 통해 지배계급은 생산계급 - 노동계급- 과 다른 활동, 생활방식 그리고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잉여생산물 추출 과정을 우리는 ‘착취(exploitation)’라고 부른다. 생산활동이 가장 기본적이듯 지배계급과 종속계급 관계도 한 사회의 가장 근본적 권력관계를 나타내며  다른 사회적 제도는 이 기본 관계에 기생하는데 이 역사적 시스템 혹은 생산양식은 역사적 단계마다 급격히 달라짐에 따라 착취의 방식 그리고 계급 간 사회적 관계도 달라진다.

 

자본주의 생산시스템이 이전 생산시스템과 구별되는 특징은 지배계급과 종속계급의 관계가 시장교환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즉 노예나 농노처럼 수직적 위계 관계가 아닌 최소한 법적으로 평등한 관계에서 이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노동의 자본에의 종속은 자신의 노동 판매를 통한 임금 외에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노동계급의 역사적 현실 때문이다. 이 교환관계를 통해 자본가는 합법적으로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 가치를 초과하여 생산한 잉여생산물을 가져갈 수 있게 된다. 이 잉여노동이 자본가 이익의 근원이다. 한편 자본가는 시장의 경쟁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경비를 줄이고 대신 매출을 높이기 위해 노동력의 착취를 끊임없이 기도하고 이에 대해 노동자들을 저항하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 생산은 이처럼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이 노동조건과 생산물의 분배를 놓고 항상 갈등하는 관계로 특징지어진다. 

 

자본주의사회의 제도들에 대한 적절한 이해는 위와 같이 자본주의 생산시스템을 계급착취와 계급충돌의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맑스 본인도 주장했듯이 기업의 관리구조는 단순히 생산과정의 여러 요소를 조절하기 위한 목적만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통제 수단이기도 하다; 자본을 대신해서 노동자로부터 잉여노동을 추출하며 예상되는 계급갈등을 억제한다. 즉 기술적 행정기능 외에 계급통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관리를 위한 이 방대한 계층적 기구 - 관료제 - 가 단지 복잡한 산업 생산을 조직하기 위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계급적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맑스의 이 단순한 관찰은 이후 막시스트의 관료제 이론의 바탕이 된다. 막시스트에게 국가가 되었든 기업이 되었든 행정시스템으로서 관료제는 계급통제와 계급갈등을 억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들에게 베버리안의 관료제에 대한 이해 - 근대산업의 기술적 복잡성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다 - 는 그 중심의 계급적 특성을 무시한 것으로 비친다. 따라서 관료제의 특징적 요소들 - 가공할만한 권력구조, 비밀주의, 정보와 조직계획에 대한 독점, 사회적 우월성 등 -은 이 계급통제와 갈등억제 기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막시스트는 더 나아가 소위 ‘경영자혁명(managerial revolution) 이론도 반박하다. 경영활동과 구조는 자본가 이익의 논리에 종속되므로 자본가-노동자 관계와  분리해서 분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감독과 통제를 위한 관료구조는 게을러지는 경향이 있는 인간 본성의 결과물이고 기업의 이익은 이 성공적인 감독의 결과라는 일부 정치경제학자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막시스트에 의하면 이들의 주장은 생산수단의 소유가 원인 아니라 결과라는 주객이 전도된 논리다. 또 마지막으로 막시스트는 조직사회학자들의 ‘효율(efficiency)’에 대한 집착과 마치 이 개념을 이론의 여지가 없는 중립적 개념처럼 취급하는 것에 반대한다: 누구를 위한 효율? 그리고 누구의 희생을 통해?

 

관료제에 대한 막시스트의 이론은 계급적 접점이 명확히 드러나는 산업 경영(industrial management)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 관료제는 맑스가 초기 관심을 기울인 부분이지만 더 복잡한 분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맑스는 관료제가 계급적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사회의 보편적 이익을 대변한다는 헤겔의 생각을 처음부터 부정한다. 맑스는 국가 제도들은 사회 지배계급 혹은 과도기일 경우 복수 지배계급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관료제가 자본가 계급의 직접적 통제 밑에 있다 - 공식적으로 정부 내 대표 파견이라던가 비공식적으로 자금지원을 통한 정부의 배후조종 같은 - 는 것을 곧바로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폴레옹 3세

 

가령, 나폴레옹 3세 때 대규모 관료제가 등장했지만, 자본의 지속적 활동과 팽창을 위해 필요한 사회질서와 사유재산 제도를 이들 관료가 보장해주는 것만으로 자본의 이익 실현에 기여할 수 있음을 맑스는 목격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생산의 독특한 특징은 잉여노동의 추출과 자본의 팽창이 국가가 아닌 민간사회 영역 안에서 정치적 과정이 아닌 순수 경제적 과정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사회질서와 사유재산권만 보장된다면 굳이 국가를 직접 통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질서유지와 사유재산권 보장을 통해 이미 관료제는 자본가의 이익과 이들의 민간 사회지배를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만약 노동자 계급이 착취에 저항할 경우 관료제는 이를 사회질서와 사유재산권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여 진압하려 하며 이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진다.

 

맑스가 살던 나폴레옹 3세 치하에서 서구의 국가관료제는 대규모 팽창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상반된 두 동인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자본가의 생산 필요성에 기인했는데 이들은 국가에 자신들의 이익 실현을 위해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줄 것을 요구했다: 가령 물리적 인프라의 제공, 기술노동자의 훈련,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자금 지원, 경제에 대한 통제, 등. 다른 하나는 민주화 과정에서 기인한다. 투표권의 확대가 이루어지기 전에 노동계급은 강압적이며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통제라는 이 둘의 조합에 의해 종속되었었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의 압력에 의해 민주적 제도들이 도입되자 강압은 사라지고 대신 동의를 구하는 형식이 등장했으며 국가는 자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사회적 법규들을 - 가령 의료, 주택, 복지, 노조결성권 - 을 만들어야 했다. 이 두 상반된 동인은 국가로 하여금 상호 충돌되는 임무를 수행하게 하였다: 한편으로 사회적 질서의 유지를 위해서 노동자 계급의 지지를 유지해야 하기에 자본가의 이익을 지속해서 위협해서라도 이들을 위한 국가 예산 배정과 부의 재분배 정책을 시행해야 했다. 이처럼 상호 충돌하는 임무에 따라 국가 행정부는  모순되는 압력에 직면했다.

 

이런 막시스트의 이해는 부분적으로 베버리안의 입장과 겹친다. 국가관료제의 성장은 행정의 양적 팽창과 질적 복잡성 그리고 민주화 과정의 산물이라고 베버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시스트 입장에 베버는 이 임무들의 계급성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예를 들어, 자본가들은 자기의 이익 실현을 위한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복지국가의 심장부에 사회적 통제 요소들을 심어놓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사회보장제도를 담당하는 부서다. 막시스트가 보기에 실업은 이익의 증가를 위해 자본가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노동자를 해고한 결과이며 자본가는 더 나아가 해고를 기존 남아있는 노동자로 하여금 더 강도 센 노동을 받아들이는 압력 수단으로 활용한다. 그런데 이 수단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실업수당을 제공하는 정부의 사회복지 부서가 수당 제공 기준을 엄격히 제공해서 노동자로 하여금 가능하면 실업 상태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 부서가 가장 ‘관료적’ 부서 중 하나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복지국가가 개인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정도는 부분적으로 경제의 전반적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경기가 불황에 접어들며 자본가의 이익이 줄어들 때는 경기 호황 당시 제정된 사회 법률은 사치스러운 것으로 간주하며 더는 적용되기 어렵게 된다. 특히 이 상황에서 영향을 받는 것은 노조의 단체 행동권과 자본가의 생산 필요에 직접 이바지하지 않는 정부 부서들이다. 동시에 기존 국가가 제공하던 서비스를 민간기업에 하청주고 노동력의 보다 강도 높은 착취를 위해 남아있는 행정 부서에 민간 비즈니스 관리기법을 도입하기도 한다. 위에서 보기엔 이는 관료제의 축소이지만 밑에서 보기에 이는 관료제의 증대다. 왜냐면 행정업무가 더욱 위계적이 되며 규정 적용은 더 엄격해지며 업무의 세세한 부분까지 감독 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복지 행정에서 계급적 감시는 더 두드러지게 된다.

 

이런 변화는 국가 최고층의 상응하는 움직임 없이 발생하지 않는데 국가가 어느 정도 상응하는지는 변화에 따른 노동자 계급의 저항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흔하게는 국가 정책의 초점이 사회복지로부터  강제력을 행사하는 제도로 움직이며 민의 대표기관 - 의회 -  대신 행정부에 힘을 실어준다. 경제 불황이 심각하여 계급 투쟁이 격렬한 국가와 민주적 제도들이 오직 제한된 형태로 정착된 국가들 경우 사회적 질서는 독재 형식을 포함해서 의회 권력을 억누른 행정 권력에 의해 유지되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베버리안에 의하면 가공할만한 권력 구조로서 관료제의 발전은 복잡한 산업사회의 행정적 필요 때문에 불가피하게 이루어졌지만 막시스트가 보기에 관료제는 자본주의하에서 계급통제의 기능이 더 본질적이며 이는 관료제 국가에서 그 정점에 달한다. 따라서 계급이 없는 사회가 온다면 이런 류의 관료제는 사라진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즉 행정적 기능은 수행하되 계급통제 기능은 사라진 새로운 유형의 행정 구조가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 행정적 기능수행을 위한 권력도 철저하게 대중들의 동의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우리는 너무나 예정된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소련은 왜 그럼 그 모양 그 꼴이었냐고?

 

 

1918년 붉은 근위대(Red Guard) 앞에서 연설하는  Leon Trotsky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관료적 타락(Bureaucratic degeneration of the proletarian revolution)

 

혁명적 막시스트들 중 관료제가 당과 국가에서 지배적 권력이 될 것은 고사하고 혁명 이후 사회에서 관료적 행정이 존속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역사적 전개에 대한 설명은 필요성의 문제임과 동시에 소련에 대한 서로 다른 정치적 관점과 입장을 엿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영향력 있는 분석은 트로츠키(Trotsky)로부터 나온다. 그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소련의 관료제가 처음에는 당내에서 그리고 곧이어 사회 전반에 걸쳐 프롤레타리아를 대체하는 선도적 권력이 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 과정은 두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관료제 권력의 부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관료제 권력을 견제할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쇠락이다. 트로츠키에 의하면 이 두 측면은 모두 하나의 원인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사회의 후진성(backwardness)과 저개발(underdevelopment).

 

러시아 사회의 후진성은 개혁주의(reformist) 막시스트들이 볼셰비키 혁명의 반대 논리로 항상 사용되었음을 우리는 우선 인식해야 한다. 카우츠키(Kautsky) 같은 이론가는 물질적 문화적 사전 조건이 모자란 사회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시도는 내켜 하지 않는 인민(population)에게 역사적으로 미성숙한 프로젝트를 강요하는 오만한 국가를 가져올 뿐이라고 주장했었다. 그의 관점에서 혁명의 관료제화는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트로츠키와 다른 볼세비키에게 혁명의 퇴보는 볼세비키 프로젝트 자체에 처음부터 내재된 것이 아니라 종전을 활용하여 혁명을 기도해야 했던 서유럽, 특히 독일, 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혁명 실패 속에서 소련이 고립된 결과라고 주장한다. 특히 독일 혁명의 실패에는 바로 카우츠키의 개혁주의 노선이 크게 작용했다. 어떤 동조 국제 혁명이 없는 상황에서 소련은 관료제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Karl Kautsky와  Vladimir Ilyich Lenin

 

 

그렇다면 관료주의와 저개발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의 핵심은 청년 맑스의 성명에 있다: ‘생산력의 발전은 (공산주의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질적 전제이다. 왜냐하면, 발전된 생산력이 없다면 결핍(want)은 보편화하고, 이 결핍으로 말미암아 필요품에 대한 투쟁은 다시 시작되며 이는 곧 구시대 쓰레기(crab) - 자본주의 -가 필수적으로 다시 부활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빈곤하면 할수록 생존을 위한 투쟁은 더 치열해지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경찰의 필요는 더 절박해진다. 이런 상황이 내전 후 소련의 모습이었으며 따라서 사회적 통제의 주요 수단으로서 관료제가 권력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사회 질서 유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관료제는 대중 위에 군림해야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관료들은 자신의 특권을 이용해서 ‘불평등의 주 이식자이자 보호자’가 되었으며 이를 위해 대중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형식으로 통제권을 더 강화했다.

 

관료제화(bureaucratization) 과정의 한편에 물질적 부족과 이로 인한 개인의 궁핍과 사회적 투쟁이 있었다면 다른 한편에는 관료제 성장의 견제를 위해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왕성하게 유지할 수 있는 문화적 힘이 당시  러시아 국민에게 없었다는 점이다. ‘야만적 짜르 통치 상황에서 러시아 국민은 사회주의 혁명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라고 트로츠키는 회고한다. 혁명 과정은 그 자체가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주 교육 수단이 된다는 맑스의 이론은 초기 혁명 과정의 치열한 당내 민주주의에 의해 입증이 되었다. 그러나 내전 기간 프롤레타리아의 가장 활기찬 구성원들이 사라지고 남아있는 자들도 에너지를 다 소진하면서 혁명 과정을 이어나갈 인적 자원은 그 한계를 드러낸다. 관료제가 팽창하고 가장 유능한 인력들을 끌어들이면서 대중들은 적극적인 당 활동 참여와 사회에서의 선도적 역할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이렇게 민주주의는 소멸해가면서 공개토론을 통한 자유로운 의견 개진의 역동성은 관료적 보수주의에 의해 실종되고 사회주의를 향한 과정은 억제되었다. 관료제와 사회적 조화는 반비례한다는 트로츠키의 주장은 자본주의 사회 내 사회적 통제의 수단으로 관료제의 역할을 분석한 막시스트의 이론과 전적으로 일치한다. 그렇다면 소련 관료제는 누구를 위해서 이 통제 기능을 활용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트로츠키의 답은 간단하지 않다. 관료제가 사회주의를 향한 경제적 기초가 되는 혁명의 주 성과물 - 생산수단의 공공소유 -를 손상하지 않는다면 프롤레타리아를 대신한 셈이다. 자본가 계급이 패배했지만, 프롤레타리아가 그 구실을 할 정도가 되지 못할 정도로 약한 상태에서 관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과도기적 정치적 형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관료제가 부르주아의 분배와 불평등 관행을 복구하고 그들 특권을 사유재산 시스템에 이식하는 형식으로 자본주의로 복귀할 가능성도 있다. 이 두 갈래 길에서 어느 길을 갈 것인지는 이 관료제를 지배적 지위에서 끌어내릴 프롤레타리아의 두 번째 정치 혁명에 달렸는데 이 혁명의 가능성은 서구 사회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가능성에 달렸다.



소련 경찰이 거주민의 여권을 검사하고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소련 정권이 불안정하고 단명할 것이라는 생각도 설득력을 잃었다. 그리고 비록 변질하기는 했지만, 소련이 여전히 노동자의 국가라는 관점 역시 노동자 계급이 자신들의 국가에서 어떤 정치적 권리도 실질적 행사할 수 없다는 현실에서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과도기적 형태가 아니라  관료제가 프롤레타리아를 딛고 새로운 통치 계급이 되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단순히 막시스트의 계급이론뿐만 아니라 소련과 다른 공산 국가에 대한 정치적 입장에도 지대한  의미를 갖게 된다. 소련의 관료제를 통치 ‘계급’으로 정의할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새로운 정치적 ‘계층’으로 볼 것인지는 막시스트들 사이에서도 매우 치열한 논쟁 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