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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머리말
이번 에세이의 저자 리처드 울프(Richard D. Wolff)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학의 경제학과 명예교수이며 막시스트 경제학자로 알려졌다. 한국어로 번역된 그의 책도 3권이 있는데 미국에서도 각종 미디어를 그의 생각을 전파할 용도로 활발히 이용하면서 뉴욕타임즈 잡지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저명한 막시스트 경제학자라는 호칭을 받았다. 이처럼 대중을 의식해서인지 그의 이번 에세이는 대단히 평이한 문체로 쓰여서 지금까지 번역한 에세이 중 가장 수월하게 번역할 수 있었다. 더불어, 사회주의의 변천사에 대한 짧지만, 매우 효과적인 그의 서술 덕분에 다른 어느 에세이보다 민주사회주의에 대한 이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원문에 ‘private capitalist’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글에서는 ‘민간 자본가’ 그리고 ‘사적 자본가’라는 번역 용어를 번갈아 가며 사용했다. 이유는 문맥상 state capitalist(국가 자본가)와 비교하는 상황에서는 사적 자본가라는 표현보다는 민간 자본가라는 표현이 좀 더 명확한 비교 효과를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사회적( social) 개념과 비교되는 문맥에서는 사적 자본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사회주의에 민주적 토대 제공하기 (Giving Socialism a Democratic Base)
Richard D. Wolff

서론: 사회주의의 모순들(SOCIALISM’S CONTRADICTIONS)
지난 세기, 실제로 존재했던 사회주의에 살았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기본적인 사회적 결정 과정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없었다. 같은 시기, 실제로 존재했던 자본주의에 살았던 사람들도 이런 무력함에 똑같이 시달렸다. 사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간 투쟁은 종종 어느 쪽이 다른 쪽보다 “더 민주적”인지에 대해 똑같이 수상쩍은 주장을 주고받는 것을 포함했다.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 이후, 비판적 해석들은 종종 이들 국가의 불충분한 민주주의를 주원인으로 손꼽았다. 때로 이런 비판은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방식으로 자본주의로의 회귀를 축복하기도 했다. 다른 비평가들은 실제 존재하는 사회주의가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 큰 정치적 민주주의가 더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이들 비평가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였다 (실질적으로 다른 정책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는 정당들, 모든 정치적 견해에 개방되어있는 대중 미디어 등).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는 다른 이유로 실제 존재하는(했던) 사회주의들을 비판한다: 기존 사회주의들은 민주화된 경제적 토대가 수반하는 의미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혹은 완전히 무시했다).
이들 사회주의의 대부분은 자본주의로부터 고용주(employer) 대 종업원(employee)이라는 기업 내부 조직구조를 자본주의로부터 - 거의 혹은 완전히 비판 없이 - 물려받았다. 이 조직은 소수의 오너, 이사들 그리고/혹은 피고용인 그룹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CEO들로 구성된 계층적 구조였는데 이는 민주주의와 정반대되는 구조다. 기업의 이런 비민주적 내부 조직구조는 민간 자본가 기업을 정부가 규제하는 형식을 취한 사회민주주의 국가에서만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는 정부가 기업을 직접 운영하는 사회주의 국가들(때로 이들은 공산주의로 불린다)도 마찬가지였다.
민간 기업이 되었든 국영 기업이 되었든 이처럼 비민주적으로 조직된 기업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들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들은 비민주적 사회주의 국가들이 되었으며 많은 사회주의자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모순을 드러냈다. 일부 사회주의 사회에서 그들의 비민주적 경제적 기반은 그들의 사회적 안정, 즉 생존에 필요한 능력까지 훼손했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주의가 민주적이고 생존력이 있는 시스템이 되기 위해서는 그 기반으로서 민주화된 기업 조직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주의는 언제나 역사에 따라 결합한 세 요소의 각자 내부의 그리고 그들 사이의 모순들과 투쟁해왔다: 1.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2. 더 나은 대안 사회에 대한 비전, 3.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전략. 첫 번째는 자본주의에 따라다니는 그림자로서 자본주의와 함께 등장한 자본주의에 대한 특정 비판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시스템과 그에 대한 비판 사이의 상호작용은 둘 모두를 바꾸었다. 특히 맑스 이후 이전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초기 원칙과 약속들을 배반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했다.
사회주의자들은 전반적으로 프랑스와 미국 혁명 같은 역사적 사건들을 봉건제 그리고 더불어 귀족(lords)과 농노(serfs) 간 계층적이며 착취적 분업(division)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토대의 폐기로 칭송했었다. 사회주의자들은 위 혁명들이 봉건제 이후 사회 -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 가 자유(liberty), 평등(equality), 박애(fraternity) 그리고 민주주의(democracy)를 제도화할 것이라는 믿음 하에 이들을 환영했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이 되면서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봉건주의를 대체하는 것은 현실화되었지만, 자유, 평등, 박애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 분명해졌다. 내걸었던 혁명적 약속들은 배신당했다.

맑스의 위대한 공헌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이 혁명적 약속들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분배하는지를 보여준 계급 분석에 있다. 자본주의는 결국 이전 봉건시대의 노예 착취 시스템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주인 대 노예 그리고 귀족 대 농노. 대신, 자본주의로의 이전은 또 다른 그리고 매우 유사한 양극화를 가져왔다: 고용주 대 종업원. 자본주의의 애초 약속에 대한 배신은 부분적으로 혁명가들이 자본주의 기업의 계층과 착취의 형식 변화를 완전히 다른 목적을 가진 형식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독창적이며 혁명적 약속들을 자신들의 것으로 폭넓게 받아들이면서 자본주의는 그 약속들을 이행하지도 못했고 이행할 수단이 될 수도 없다고 비판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자본주의를 넘어 사회주의로의 사회적 변혁을 요구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이 기본적 비판(19세기와 20세기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은 논리적으로 역사적으로 현대 사회주의의 두 번째 핵심 요소로 우리를 이끌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 어떻게 차별화될 것냐는 개념적 전망.
예를 들어, 사회주의의 미래는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경제적 불안정성 - 자본주의 시스템이 항상 극복하려고 하지만 절대 그럴 수 없었던 반복적 경기 순환 - 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는 또 어떤 민주적 계획(initiatives)이 수행되더라도 이를 끊임없이 훼손하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경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자본주의의 반복되는 경제적 불안정성으로 인한 충격과 부와 소득의 불평등으로 인해 타락한 정치와 문화로부터 노동자들을 해방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시스템으로서 사회주의는 이 자유를 두 기본적 방법을 통해 달성할 것이다. 생산에서, 생산수단의 소유권 사회화는 사회를 자본주의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자원과 생산물의 분배에서, 시장(markets)을 합리적 계획(rational planning)으로의 대체 (아니면 최소한 시장을 계획에 종속시킴)함으로써 사회주의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계급에 의해 그리고 그들을 위해 운영되는 국가 기구들은 사회화된 생산과 계획된 분배 둘 다 지휘하고 관리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국가 기구 내에서 그들이 민주적으로 선출한 대표들이 우위를 점함으로써 사회발전을 지휘할 것이다.
사회주의의 세 번째 구성요소인 이행 전략은 사회운동(노동조합, 정당, 대중협회 등)의 효과적 협력을 강조한다. 각자의 영역에서 각 운동은 사회주의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설명하고 전파한다. 각 운동은 노동자 대표들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 이후 각 운동은 국가 권력이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 이전이 완수되는 것을 지휘하고 관리하는 것을 돕는다.

자본주의 환경 아래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전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비판을 항상 원활하게 수용하며 적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일단 수립된 사회주의 정부도 자본주의 이후 사회에 대한 사회주의 비전의 핵심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 결정들을 내릴 수도 있었다. 비사회주의 정당들이 지배하는 국가에서 사회주의자들의 투쟁은 사회주의자들, 최소한 표면적으로라도, 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의 사회주의자들과는 다른 관심과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었다. 사회주의의 세 가지 구성 요소 내부 그리고 그들 사이의 모순들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적 환경은 사회주의 자체도 계속 변화하게 하였다. 사회주의에 대한 다양하고 서로 다른 해석들은 상호 교류하면서 서로 변화시켰다.
20세기 사회주의 대 21세기 사회주의(TWENTIETH- VS. TWENTY-FIRST-CENTURY SOCIALISMS)
역사적으로 특별한 두 사건이 현대 사회주의를 변형시켰다. 첫 번째는 1917년의 소비에트 혁명이었고 두 번째는 1989-90의 동유럽 전역에 걸쳐 실제로 존재했던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였다. 소비에트 혁명은 전 세계에 사회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1917년 이전에 사회주의는 위에서 논의한 것처럼 광범위한 정의 위에서 다양한 해석과 변형이 공존하는 논쟁적 영역이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혁명 이후 큰 분열이 일어났다. 성공적인 소련(USSR)의 수립과 유지를 보면서 많은 사람은 사회주의에 대한 소비에트의 해석이 “옳다(correct)”고 생각하며 그들의 관점을 차별화하기 위해 “공산주의자(communist)”라는 이름을 채택했다. 1917년 이후 소비에트의 소위 “성공(success)”에 비판적이거나 회의적인 다른 많은 사회주의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개념, 조직 그리고 전략을 위해 “사회주의자(socialist)”라는 이름을 유지했다.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 분열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사회주의 진영의 모든 것을 지배했다.
유사하게 강력한 충격이 1989년 동유럽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뒤따랐다. 많은 사회주의의 적들과 다수의 그 친구들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역사적으로 종료된 현상으로 “끝났다(over)”고 단언하기에 이르렀다. 자본주의와의 경쟁에서 그들은 “패배(lost)”했다. 자본주의의 승리는 많은 사회주의자로 하여금 그들의 이전 신념을 포기하게 하거나 수정하게 하였다. 일부는 “인간의 얼굴을 한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 with a human face)”로 불리기도 하는 변형된 사회복지제도를 많은 경우 장착한 새로 등장한 패권적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수용했다.
20세기 사회주의는 그 모순과 결함에도, 설사 모두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에 대한 체계적 비판과 더불어 대안으로 선호하는 사회에 대한 비전과 기본적 구조를 상당 부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20세기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불안정성과 불평등(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시장이 원인인)이 사회정의의 기본적 규범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는 대신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국가를 통해)와 자원과 생산물에 대해 국가계획에 의한 분배를 지향했다.
20세기에는 또 몇 주요 변화가 있었다. 사회주의 개념이 확장되었다; 이제 사회주의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사적 소유권과 시장이 지배적인 사회이지만 국가 규제와 통제에 상당 부분 제약을 받는 사회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이들 사회의 정부는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소득과 부를 재분배하고, 불안정성을 줄이기 위해 적극 재정정책을 시행하고, 노동계급을 위한 다른 사회적 목표도 추구했다. 이런 사회들은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ies)로 불리었다. 그러나 20세기 사회주의는 또 국가 관료에 의해 운영되는 국유화 기업이 있는 사회도 여전히 포함했는데 이들 사회는 “공산주의자(communist)”, “국가 사회주의자(state-socialist)” 혹은 간단히 “사회주의자(socialist)” 등 다양하게 불렸다.
자본주의 국가들 내부에서, 사회주의 정당들은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위해 일했다. 사회민주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정당들은 계속적 집권을 위해 힘을 쏟는 한편, 민간 자본주의 기업과 시장을 규제하기 위해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공산주의” 혹은 국가사회주의 국가의 사회주의 정당들은 대부분 경제와 정치 영역에서 행정 업무를 수행했다.
20세기 거의 내내 사회주의 개념화의 지배적 초점은 ‘거시경제(macroeconomic)’였다. 개별 기업의 내부 조직 구조에 대해서는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고용주 대 종업원 위계질서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적절하고 실제 필요한 모델로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단지 사회주의는 부분적으로 혹은 전면적으로 고용주를 개인 자본가로부터 국가 관료로 바꾸었을 뿐이다. 사회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가 통제관이 고용주 계급의 일부(이사회 참여 형식: 역자 주)가 되어 기업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개인 자본가와 함께 기업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여 영향력을 행사했다. 국가가 기업을 소유하고 운영하던 사회에서 국가 관료는 고용주 계급에 속한 개인을 대체하였다.
고용주/종업원 생산시스템 - 즉, 자본주의 시스템 - 이 변함없는 가운데 고용주의 포지션을 차지할 사람을 바꾸는 것은 시스템을 바꾸는 것과 같지 않다. 실제, 20세기 모든 형태의 사회주의는 시스템의 미시적 단계(micro-level)의 조직을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시스템 내 누구에게 고용주 자리를 맡길 것 인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였다. 결과적으로 사회주의는 기업의 생산과 분배의 특정 거시적 단계(macro-level)의 조직을 의미하게 되었다. 고용주는 여전히 종업원과는 다른 사람들로 남게 되었다. 대신, 고용주로서 민간 자본가들이 단독으로 기업을 운영(자본주의의 핵심 부분)하지 않고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파트너(사회민주주의) 혹은 그들을 대체(국가사회주의)하기를 원했다.
20세기 사회주의의 성과와 실패 그리고 강점과 약점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고용주/종업원 시스템 내에서 고용주 역할을 할 사람을 바꾸는 것 이상을 해야 한다. 고용주로서 “관련 노동자(associate workers)”에 대한 맑스의 원래 언급으로 돌아가자. 맑스의 이 언급은 21세기 사회주의에 새로운 정의를 제공해준다. 이 정의에 따른 사회주의는 생산에서 ‘모든’ 오랜 형식의 착취적 이분법을 거부한다: 주인/노예, 귀족/농노 ‘그리고’ 고용주/종업원. 21세기 사회주의 경제는 기업 내 종업원 집단(the collective of the employees) 자체가 고용주가 되어야 한다고 이 새로운 정의의 사회주의는 요구한다. 노동자들은 집단적으로 그리고 민주적으로 그들 자체의 이사회가 될 것이다.

1989-90년 동유럽 사회주의 경제의 붕괴와 20세기 말 기타 지역의 사회주의 쇠퇴에 따라, 사회주의자들은 엄격한 자기비판에 착수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사회주의의 새로운 21세기 개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이전 사회주의의 몇 주요 부분을 계승했지만, 이전 사회주의가 결여했던 미시적 토대를 추가한다. 미시적 토대(micro-foundation)는 자본주의의 고용주/종업원(employer/employee) 조직과 완전히 다른 근본적으로 변화한 기업 내부 조직을 의미한다. 이 미시적 토대는 구조적 경제적 민주주의를 제도화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보완할 것이다. 기업의 민주화는 진정으로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더 낫고 더 굳건한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21세기 사회주의 경제를 통해 노동자들은 각자 자기 회사에서 주인이 될 것이다. 민주적 집단(자치공동체)은 생산적 기업들로 구성될 것이다. 각 구성원 - 기업 내 개별 노동자 - 은 기업이 무엇을 생산하고, 무슨 기술을 사용하며, 어디에서 생산하고 생산물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에 동등한 목소리와 투표권을 가지고 참여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기업의 고용주/종업원 구조 - 공공 기업이든 민간기업이든 상관없이 - 는 노동자-협동조합(worker-cooperative) 구조로 대체될 것이다.
노동자 협동조합으로 구성된 민주적 집단이 개별 기업의 의사결정권자로서 자본가들을 대체할 것이다. 각 기업을 감독하는 노동자 집단은 기업과 교류를 하는 (1) 다른 기업들, (2) 기업 내 개별 노동자들, (3) 기업 생산품의 소비자들, (4) 거주 공동체(지역, 지방, 국가 및 국제)와의 관계를 조율할 것이다. 사회주의의 목표는 민주적으로 조직된 기업들이 민주적으로 조직된 거주 공동체들과 교류하며 상호 존중하는 결정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이런 결정에는 노동자 협동조합 기반 경제 내에서 시장이 공존할 수 있을지, 있다면 어떻게 공존할지, 그리고 기업 간 경쟁을 다스리기 위해 무슨 규칙과 제한 사항이 있어야 하는지 등이 포함될 것이다. 이 결정에는 또 소비자의 취향과 기술의 변화에 따른 기업의 성장과 쇠퇴에 대처하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예를 들어, 협동조합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쇠퇴하는 기업에서 성장하는 기업으로 이직(보상 및 필요한 훈련과 더불어)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연공서열제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민간 자본가가 노동자의 희생 위에서 자기 이익을 증가하기 위해 기술변화를 핑계로 노동력 절감을 꾀하는 것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은 감소할 것이다. 이런 대처는 또 불필요한 광고를 없앨 것이다. 노동자들은 쉽게 다른 기업으로 이직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 내 노동자의 일자리와 수입을 보전하기 위해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취향을 조작하는 것이 더 이상 필요 없기 때문이다.
자본가-기업-기반 경제가 경쟁, 과점, 독점 등을 다루는 결정을 내려야 했던 것처럼, 만약 시장을 포함한다면 노동자 협동조합 기반 경제도 같은 결정에 직면할 것이다. 가령, 허용될 수 있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 정도, 거시적 수준의 리스크 관리, 불균등한 기업 간 성장 등등. 결정적 차이는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이런 결정이 독점적으로 그리고 소유자와 이사(기업 내 소수)를 위해 내려지는 반면 노동자 협동조합 경제에서 노동자 집단(기업 내 다수)은 사회주의를 재생산하기 위한 결정을 내릴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는 자본주의의 세계화 - 세계 자본주의 시장 - 를 가능하게 했다. 동 기간, 특정 유형의 사회주의가 발전하고 지배하면서 국가 규제 혹은 국영 기업을 자본주의의 “본질적 타자(the critical other)”로 만들었다. 19세기와 20세기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간 투쟁으로 특징 지워졌다. 그러나 21세기 사회주의 관점에서 볼 때 - 노동자 협동조합 구조로 자본주의의 고용주/종업원 이분법을 대체하는 - 19세기와 20세기의 이런 대결 구조는 잘못된 이해다. 이 시기는 실질적으로 ‘민간 자본주의 형태와 국가 자본주의 형태’(private and state forms of capitalism) 간 투쟁이었다.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이 약속했던 자유, 평등, 박애 그리고 민주주의를 민간 자본주의와 국가 자본주의 모두 우리에게 가져다주지 못했다. 예를 들어, 민간 자본주의 경제에서 민주주의는, 만약 허락되었다면, 거주 기반 정치에 국한되었다. 경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업은 항상 철저하게 비민주적 상태를 유지했다. 민간 자본주의 사업장에서 소수가 다수 노동자를 상대로 권력(책임을 지지 않는)을 행사했다. 이 소수는 그들의 경제적 지위와 자원을 정치를 지배하는데에도 사용했다. 국가 규제 혹은 국가 운영 경제에서도 사업장은 유사하게 조직되었다: 소수 국가관료들이 민간 자본가의 파트너가 되던지(즉, 규제하던지) 그들을 대체하면서 다수 노동자를 상대로 책임지지 않는 권력을 행사했다. 또 많은 경우, 20세기 사회주의 경제에서 국가에 주어진 권력은 국가 관료들로 하여금 정치적 민주주의를 제한하거나 없애도록 유혹했고 실제 가능하게 했다. 심지어 민간 자본주의 경제보다 민주주의가 덜 허용되었다.
20세기의 많은 사회주의는 지난 20년 동안 쇠퇴했다. 같은 기간, 심화하는 불평등과 주기적 충돌은 많은 자본주의 사회에 경련을 불러일으켰다. 이 모든 변화는 맑스를 비롯한 사람들의 자본주의 비판에 대한 관심과 재발견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의 비판은 또 20세기 사회주의의 주개념과 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초기 실험에 대한 비판을 자극했다.
많은 사회주의자가 자본주의 이후 사회에 대한 최초의 국가적이고 지속적인 실험을 한 국가, 특히 소련과 중국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하나는 붕괴했고 다른 하나는 1990년 이후 급격하게 변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왜 그들의 인상적인 경제적 성취가 많은 사회주의자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더 많은 정치적 자유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이들 첫 번째 사회주의 실험은 다음 실험의 물결을 알려주고 개선할 수 있기 위해 어떤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는가? 새로운 답은 1990년 전에 시작했고 이후 급격히 격렬해진 사회주의 사고의 변화된 해석과 확장으로부터 나왔다.

19세기와 20세기 사회주의들의 과도한 국가주의(statism)는 격렬한 비판적 관심을 불러일으키었다. 그 관심의 한 결과가 사회주의의 미시적 단계(micro-level)에 대한 새로운 초점이다. 이 초점의 주장은 자본주의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의 내부 조직의 부적절한 변형이 국가통제 민간 자본가(“사회주의”) 혹은 국가 자본가(“공산주의”)들이 행사했던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주의(statism)”는 실제 존재했던 사회주의를 지배하고 왜곡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가 규제 혹은 국가 운영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을 막았다.
지난 20년은 또 전 세계의 민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체계적 분석을 강화했다. 냉전의 쇠퇴는 이 분석들의 등장을 촉진했으며 연속적인 경제 위기들(닷컴 거품 붕괴와 2008년 금융위기)은 이들 분석을 시급한 것으로 만들었다. 자본주의는 갈수록 불평등과 불안정(반복되는 위기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엔진으로 간주되고 있다. 투자, 기술, 위치 그리고 순이익의 처분에 대한 결정은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가의 손(법인 이사회 등)에 독점적으로 달려있다. 자본가의 결정은 커다란 사회적 영향과 비용을 수반하지만, 그들은 그 비용을 감당하는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 자본주의 기업들을 노동자 협동조합으로 변화시키면 이 의사 결정들의 목표, 그 결정의 사회적 영향과 비용 그리고 그 결정으로 인한 경제가 직접 변경된다.

2008년의 글로벌 자본주의의 붕괴는 이전까지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자신감을 뒤흔들었다. 그들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자본주의는 주기적 불안정성 혹은 최소한 극단적 주기는 극복했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2008년 이후의 소위 대불황(Great Recession), 자본주의 역사상 두 번째 최악의 경기 하강, 은 자본주의의 관리능력이 허구임을 보여주었다. 적어도 1970년대부터, 자본주의 관리능력에 대한 믿음은 “신자유주의적 (neoliberal)” 규제 완화를 합리화시켜왔다. 동 기간, 자본주의가 중산층의 번영을 보장한다는 장담은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허구임이 증명되었다. 2008년 자본주의가 붕괴했을 때 체계적 의문과 도전이 빠르게 증가했다.
자아비판적 사회주의자들과 사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자들 간 일종의 이심전심은 신세대를 흥분시켰다. 19세기와 20세기부터 내려온 사회주의의 주요 결함이 인식되면서 사회주의자들의 논의와 전략의 중심에 이 결함이 놓이게 되었다. 그때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이후 거시적 단계의 이전 - 그들은 이를 지나치게 강조했다 - 에 대응하면서 이를 보완하고 굳건하게 하는 미시적 단계의 이전을 간과했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사회적 소유로 전환하고 시장을 분배 수단으로서 계획(planning)에 종속시킨 것은 필요한 것이었지만 사회주의로의 전환에는 불충분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존재했던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루어진 것은 부분적 전환이었다. 기업(공장, 사무실 그리고 상점 등)의 조직은 가정(households)의 조직과 마찬가지로 사적 자본주의로부터 물려받은 형태에서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20세기의 실제 사회주의는 과도한 국가주의에서 그들의 부분적 본성을 보여주었다. 사적 자본주의는 이 사회주의에 위협감을 느꼈으며 그들에 대한 극심한 적개심을 그들의 국가주의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했다. 특히 국가가 대부분 기업을 직접 운영했던 나라들에서는, 외부의 정치적 군사적 위협 탓에 그렇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강력한 국가로 하여금 내부적으로 강력한 정치적 문화적 권력으로 무장하게끔 압력을 가했다. 그 결과가 과도한 국가주의였다. 이 과도한 국가주의는 다른 나라로 하여금 남아있는 민간 자본주의 기업들에 대해 국가 규제 이상의 조치(국유화:역자 주)는 취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화시켰다. 이것은 다른 종류의 사회주의(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국제적 환경) 간 여러 상호작용 중 하나로 서로 형성하는 과정이었다.
20세기 사회주의의 회고적 자기비판에서, 한 중요한 관심사는 사회주의가 어떻게 계속되는 과도한 국가주의를 막을 수 있는가였다. 자기 비판적 사회주의자들 대부분은 국가가 개별 기업들의 운영에 의미 있는 통제권(직접이든 규제를 통한 간접이든)을 행사해야 한다는 인식을 유지했다. 마찬가지로 자원과 생산물의 사회적 분배에서 국가 계획(state planning)(통상 규제된 시장과 함께)의 중대한 역할에 대해서는 계속적 지지를 보냈다. 따라서 이들은 국가가 20세기 사회주의보다 훨씬 더 민주적으로 시민에게 책임 있는 입장이 되도록 하는데 주의를 기울였다.
그 결과,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의 미시적 단계 - 기업의 내부 조직 - 에 큰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들은 국가 권력과 정책을 사회의 민주화된 경제적 토대에 정착시킬 - 종속시키는 형식으로 - 사회주의의 변혁을 추구했다.
WSDE 기반 경제 시스템
기업 내부 조직이 노동자/종업원 집단과 다른 사람들(민간이든 국가 공무원이든 관계없이)로 이루어진 이사/고용주로 구성되는 것이 중단되었다고 상상해보라. 대신 노동자/종업원 집단으로 구성된 기업의 리더십/고용주를 상상해보라. 이런 기업은 ‘노동자 자체 주도 기업(Workers’ Self-Directed Enterprises: WSDEs)’이 될 것이다. 국가의 기업들에 대한 모든 관계는 이제 이전처럼 기업 내 소수 인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자기 주도적 노동자 집단을 대상으로 하게 된다.
WSDE에서 노동자 집단은 개별 노동자에게 부과되는 세금과 더불어 “사업(business)” 세금을 납부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 집단은, 만약 있다면, 국채의 기업구매자가 될 것이다. WSDEs를 운영하는 노동자 집단은 이전 고용주 계급을 대체하여 국가와 사회에 대한 정치적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개인으로부터 지지를 구하는 것 외에도, 국가는 재정적, 정치적 그리고 도덕적 지지를 노동자 집단으로부터 - 자본가 고용주가 아닌 - 구하려고 할 것이다. 이 두 종류의 지지는 국가의 정책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 존립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고용주 역할을 하는 독립적 민간 자본가 혹은 국가 관료(20세기 존재했던 공산주의에서처럼) 계급이 기업 내부에서 지휘하는 자리를 더이상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계급은 국가의 파트너 혹은 대리인으로서 더이상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는 개인 노동자들을 직접 대하듯 시스템의 기업을 운영하는 노동자 집단을 직접 대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국가를 상대로 한 노동자의 권력은 극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사적 이익 계산 혹은 국가 관료의 목표 모두 WSDEs의 의사 결정 과정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대신, 그들의 결정은 전 종업원이 민주적으로 결정한 목표들(그들의 “핵심(bottom line))”을 추구할 것이다. 이런 결정이 주거 공동체(지역, 지방 등)에 영향을 미치거나 그리고 반대로 영향을 받게 되면, WSDEs와 지역공동체는 상호 수용할만한 합의 수단을 개발할 것이다. 국가의 목표에 대응할지 여부 그리고 어떻게 대응할지는 WSDEs가 결정해야 할 그들의 존재 조건들에 대한 많은 대응 중 하나로 전락할 것이다.
이와 같은 미시적 단계 사회주의 이행으로부터 비롯되는 경제 발전의 질과 패턴은 이전 민간 자본주의와 국가 자본주의의 것들과는 다를 것이다. 예를 들어, WSDEs에서는 노동자들은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해외로 사업장을 이전하는 것이 합당한지 여부를 서로 다르게 결정할 것이다. 자신의 집과 가족을 파괴하거나 이주시킨다는 것은 민간 그리고/혹은 국가 자본가들과는 달리 WSDE 의사결정권자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서기 때문이다. 기술 선택 역시 달라진다. 만약 일부 잠재적 기술이 노동자들을 위협하는 독성 효과가 있다면 설사 그 기술을 통해 기업의 이익이 기대된다 하더라도 기술 도입에 반대하는 결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자본가들(민간과 국가)에게는 “외부(external)”에 존재하던 모든 종류의 기업비용도 WSDEs의 계산과 결정에서는 “내부(internal)” - 따라서 관련이 있는 - 비용이 된다.
기업의 순이익 혹은 잉여금을 사회적으로 분배하는 방식도 WSDEs와 비교하여 자본주의 기업(고용주 대 종업원)에서는 매우 다르게 결정되고 있다. 현재 지배적 형태의 자본주의 기업 내에서 대주주들은 그들이 선택한 이사회와 함께 그 분배 결정을 내린다. 그들은 주주들에게 지급될 배당금 그리고 이사들(보통 급여와 보너스도 그들이 결정하는 최고 경영자들이 포함된다)에게 지급되는 보수를 결정한다. 그들은 모든 다른 분배도 결정한다. 기업 내 노동자의 절대다수는 이 분배 결정에서 배제된다. 그러나 WSDEs에서 이 관행은 바뀔 것이다.
WSDEs에서 모든 노동자는 기업의 잉여 또는 순이익 분배 방법을 민주적 투표로 결정할 것이다. 그들은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한 몫을 지급하거나 다른 노동자의 수입을 줄여서 소수 노동자에게 거액을 지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 다양한 요소들 - 그들 사이의 연대감, 그들을 둘러싼 더 큰 거주 공동체 등등 - 을 분배 결정 때 고려할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특징인 극심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오직 매우 드물게, 부분적으로, 그리고 일시적으로 극복되었을 뿐이다. WSDEs는 더 나은 실질적 해결책을 제공한다. 그들의 분배 메커니즘은 소득과 부의 재분배 노력에 대한 필요성과 그에 관련된 사회적 갈등을 배제할 수도 있고 실제 그럴 가능성이 높다. 재분배 노력은 지속해서 자본주의 사회를 동요시키고 분열시켜 왔다: 그들이 왜 성공하지 못했는지 보여주는 한 부분이다.
18세기 이후로 자본주의 기업들은 그들 상호 간의 관계, 그들과 상호교류하는 정치적 사법권과의 관계, 종업원과의 관계 그리고 최종 소비자와의 관계를 관리하는 규칙과 규정들을 마련해야 했다. 이 규칙과 규정들에는 독점 금지, 특정 가격과 수수료율을 감독하는 위원회, 생태적 제약, 최저임금법, 아동 노동법 등이 포함된다. WSDEs에 기반을 둔 경제도 이와 같은 규칙과 규정 체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 고용주의 목표가 지배하는 체계와 WSDEs의 민주적 결정이 지배하는 체계는 서로 매우 다를 것이다.
WSDEs에 기반을 둔 경제는 사회주의자들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방식을 통해 비경제적 제도들에 영향을 미치고 그 제도들을 형성할 것이다. 예를 들어, WSDEs의 모든 노동자는 두 개의 직무 기술서를 가질 것이다: 기업의 노동 분업에 따른 특정 업무 그리고 기업 전반의 경영 방향, 설계 그리고 전략에 대한 민주적 참여 업무. 교육은 모든 노동자가 이 두 종류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자본주의에서는, 한 부류의 학교들은 자본가를 양성하고, 다른 한 부류는 자본가를 섬길 전문직을 육성하는 한편 다른 한 부류의 학교는 중하위 직종의 종업원을 준비시킨다. 이에 반해 WSDE 기반의 경제에서는 그런 계층적 학교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교육시스템은 훨씬 더 평등한 학교 시스템을 지향할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WSDEs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하는 기업의 방향, 설계 및 전략적 통제에 민주적으로 참여함에 따라 그들은 관련 사실과 수치를 공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필요는 그들이 내린 기업의 결정이 직접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기업에서의 민주적 참여 경험은 주거 공동체, 사회 조직 그리고 사회 운동에 대한 유사한 정치적 참여 욕구를 강화시킬 것이다. 자본주의 기업이 득세하는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불참 현상은 WSDE 타입의 기업으로 이전함에 따라 사라질 것이다. 이 모든 강화된 사회적 참여는 지난 20세기 사회주의에 해악을 끼친 국가주의에 대한 제약과 대항 세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1989년 이후 사회주의자의 자기비판은 종종 정치적 민주주의(시민의 자유, 복수 정당 등)를 강하게 옹호했다. 왜 그런 민주주의가 결여되었는지에 대한 특정 사회주의적 분석 없이 그들은 기존의 거시적 단계의 사회주의에 서구 자본주의 정치의 절차와 제도를 추가하는 것을 기계적으로 제안했다. 그런 제안들은 대부분 거부되거나 오직 부분적으로만 적용되었다. 어느 경우가 되었든 그것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부분적으로 이는 기존 사회주의 경제가 경제적 혹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위한 충분한 기반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기반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물려받은 거시적 단계 사회주의에 미시적 토대를 추가해야 한다. 그 추가는 기업의 민주화를 통한 사회의 경제적 토대의 민주화이다.
역자 후기
사업장(혹은 직장) 민주주의는 사실 우리가 많이 들어왔던 나름 익숙한 개념이라 저자의 이에 대한 강조가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았을 수 있었는데 저자가 사업장 민주주의의 의미와 중요성을 역사상 존재했던 사회주의들과 비교해서 설명해서인지 매우 의미 있는 개념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저자는 유럽에서 발견되는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 구소련에서 발견된 공산주의(communism) 그리고 21세기에 발견되기를 희망하는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를 18세기 이후 유럽에서 하나의 사상적 조류를 형성한 사회주의(socialism)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서로에 대응하는 형식으로 그리고 역사적 환경에 대응하는 형식으로 분화하고 진화한 사회주의 형식들로 이해한다. 물론 저자는 소련의 공산주의를 서구의 민간 자본주의와 대조하면서 실체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라고 정의한다. 그가 소련 공산주의를 과도한 국가주의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라고 정의한 이유 중 하나는, 어쩌면 가장 결정적으로, 바로 국가주의라는 표현이 말하듯 인민(people) 혹은 노동자(workers)의 시스템 내 실종이다. 인민과 노동자의 대리인으로서 국가에서 인민과 노동자는 사라지고 국가만 남은 형상이다.
이 국가만 ‘과도하게’ 남게 된 데에는 당시 소련의 내부적 외부적 상황이 크게 작용했지만, 저자는 20세기 사회주의자들의 사회학적 상상력 부재를 빼놓지 않는다. 금과옥조처럼 생산수단의 국유화 혹은 사회화라는 거시적 경제 관점만을 고집하면서 저자가 강조하는 미시적 토대(사업장 내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사소한 부분으로 치부하면서 그 중요성을 흘려보냄으로써 노동자 더 나아가 인민이 국가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시민으로부터 분리된, 따라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어떤 정치 체제라도 100프로 타락하면서 독재화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적 사회는 저자가 지적하듯이 거시적 정책의 변화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소해 보이는 개인들의 풀뿌리 민주주의 ‘경험’이야말로 미래의 대안 민주적 사회에 가장 필요한 요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업장이 되었든 거주 지역이 되었든 내가 속한 공동체 혹은 조직의 의사 결정에 참여하여 작은 변화라도 이끌어 내고 또 그 결과에 내 지분이 있음을 확인하는 경험은 민주적 사회의 현실화와 유지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사회적 체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원칙적으로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지만, 과연 2021년 뉴질랜드에서 사업장의 민주화가 어떤 모습이 될지 또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사업장의 민주화에 가까운 형식은 노조와 고용주 간 노동환경을 놓고 벌이는 협상 정도인데 뉴질랜드 민간 기업의 노조가입률은 이전 포스트에서도 지적했듯이 2018년 기준 10%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앞으로 다른 에세이를 읽어가면서 궁금증이 해소될 것을 기대하지만, 근본적인 질문들이 남아 있다. 자본을 투자했기 때문에 의사 결정과 잉여의 분배 과정에서 그에 상응하는 몫을 요구하는 자본가/고용주의 논리를 어떻게 파해 할 것이며 그들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과정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21세기 중소 규모의 3차 산업 비중이 갈수록 커지는 뉴질랜드에서 노동자는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가? 파트타임, 캐주얼 잡, 시프트 웍 그리고 gig work 등이 보편화하는 현 상황에서 연대의식을 가진 ‘노동자 집단’의 형성이 가능할까? 그리고 새로운 땅에 이민 와서 생존을 위해 급급할 수 있는 유색 이민자 노동자들이 과연 자신에게 직업을 준 고용주에게 ‘노’라고 대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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