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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민주사회주의에서 도시의 모습은? - 민주사회주의 이해하기 (5)

김 무인 2021. 7. 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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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머리말

이번 에세이의 저자 레스터 스펜스(Lester Spence)는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시에 있는 존스 홉킨스 대학(Johns Hopkins University)에서 정치학과 아프리카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미국 내 인종 문제, 도시 정치학 그리고 경찰 폭력에 대한 평론과 연구로 알려져 있다. 이 에세이에서도 그의 이 관심사가 그대로 반영되어 그가 사는 볼티모어 시를 중심으로 미국의 도시들에서 이루어지는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주거 측면에서 경찰 폭력 측면에서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하지만, 내 관점에서, 에세이의 제목에서 기대한 상상 속 민주사회주의에 대한 모습은 에세이 말미 민주사회주의 사회에서 도시의 모습에 대한 짧은 서술에 그쳐 아쉬움이 남는다.


 

상상 속 민주사회주의(The Democratic Society Imaginary)

Lester Spence

“민주사회주의”의 가장 간단한 정의는 생산수단의 공동소유를 특정 정부형태 - 대중 선거, 정부 정책과 국가기관 형성에 대한 대중의 참여를 기반으로 하며 정치적 차이를 조율하고, 정부 관료(선출직과 임명직)와 책임부서를 운영하는 - 와 조합한 국가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의에 기초한 민주주의 개념은 현재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개념이다. 그러나 나는 특히 이 개념이 한 중요한 측면 - 우리가 어떻게 “대중(the public)”을 상상하고, 대중에 대해 생각하며 대중 속에서 살아가는지 - 을 형성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지난 40년이 넘는 기간, 신자유주의 덕분에 우리는 현저한 경제적 예속의 증가를 경험하고 있다. 이 경험은 다른 몇 역학 관계도 수반한다. 신자유주의가 시작되면서 정부의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능력이 현저하게 축소되었다. 각 도시의 자치 정부들도 이전보다 조세수입이 훨씬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각 도시는 국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채권에 갈수록 의존해야만 했다. 이 국채와 국채 등급은 직간접 민주주의보다 시의 정책 우선순위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정책 관료와 정책 입안자들의 정책 방향을 결정지었다.

미국 도시들의 이런 징세 능력(그리고 의지)의 감소는 이들로 하여금 고소득 소비자, 고급 부동산 개발 그리고 500여 개의 기업들을 자기 시에 끌어들이기 위한 도심 재개발에 초점을 맞춘 경제성장전략으로 눈을 돌리게 한다. 이 전략은 많은 경우 유치 대상 개인과 기업들에게 노른자 부동산과 세제 혜택의 제공을 포함한다. 지난 몇십 년 동안 볼티모어 시는 “도심 개발을 목적으로 다양한 기업들에게 74억 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디트로이트 시가 파산 위기를 겪고 있을 때, 미시건 주 납세자들은 디트로이트 레드 윙스(Detroit Red Wings)를 위한 새로운 하키 경기장 건립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그리고 최근, 허드슨 야드(Hudson Yards)가 뉴욕에 문을 열었는데 2005년 "특구"로 재지정된 이 메가 프로젝트에 약 250억 달러의 비용이 들었는데 이 중 60억 달러가 공공보조금이었다.

허드슨 야드(Hudson Yards) ​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정부의 능력은 현저하게 줄어들었으며 그나마 안전망으로 남겨진 것들은 많은 경우 수령자가 일자리를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조건들이 붙었다. 우리는 이 대표적 사례로 1996년 빌 클린턴이 서명한 미국 복지개혁법을 들 수 있는데, 이 법안은 복지를 평생 권리로부터 일생 5년 한정의 권리로 변화시켰다 (적극 일자리를 찾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하고 엄격한 요구 조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또 우리는 연금 대신 퇴직 적립금(401Ks)의 활성화를 경험하고 있는데 파산하면서 디트로이트 시가 가장 먼저 삭감한 것 중 하나가 연금 기금인데, 이전 달러에 해당하던 연금액을 이제 페니(pennies) 수준만 “지급(rewarding)” 하고 있다.

플린트(Flint) 시 물 재앙 ​

 

다양한 공공 서비스와 재화가 민영화되고 있다. 21세기의 첫 10년 동안 볼티모어는 수십 개의 공공 주민 센터를 민영화했다. 애틀랜타는 1999년 셜리 프랭클린 애틀랜타 시장이 보건상의 문제를 이유로 수년 후 계약을 취소하기 전까지 상수도 공급을 민영화했었다. 플린트(Flint) 시 물 재앙(이전 포스트 ‘인종차별적 환경정책(environmental racism)은 무엇인가?’에서도 언급된 사건이다: 역자 주)은 민간기업의 관리 잘못으로 현격하게 악화한 사례다. 볼티모어는 대중교통 시스템을 갖고 있는 한편 별도의 통근 시스템(“the Circulator)도 가지고 있는데 사기업에 의해 운영되는 이 시스템의 운영 기업은 바로 플린트 시 물 재앙 당시 상수도 공급을 “관리했던(managed)” 그 회사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Hope VI 프로그램을 통해 공공 주택이 시장 기반 민간 주택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격이 되는 개인에게 주택 “바우처”가 제공되었고 많은 공공 주택은 대체됨 없이 철거되었으며 이전까지 공공 주택에 거주하던 개인들은 그들의 거주 공동체의 외부에 있는 저소득 민간 아파트로 이주해야 했다.

Hope VI  프로그램

서비스를 제공하는 능력이 축소됨에 따라 지방정부들은 그동안 사유화되지 않았던 자신들의 서비스 제공을 위해 “민관협력(public private)” 계획을 추진하게 된다. 디트로이트 시 파산 이후 다양한 자선단체들(대표적으로 the Skillman, Kresge, Kellogg, and McGregor Foundations)이 시 재건을 도와주는 임무를 맡았는데 나는 볼티모어 커뮤니티 센터의 사유화에 주목했다. 쇠퇴한 자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엘리트들은 이전에 시의 레크리에이션과 공원 부서가 담당하였던 업무를 수행하게 하려고 공원과 사람 재단(Parks and People Foundation)을 창설했다. 볼티모어 시에는 나의 고용주인 존스 홉킨스 대학을 비롯한 많은 대학이 입주해있는데 이들 대학은 “services in lieu of taxes (세금 대신 서비스를 제공하여 세금공제를 받는 제도: 역자 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혜택을 누리고 있다.

전국의 도시에 걸쳐, 다양한 민간 기관과 재단들이 기존의 민주적 정부를 전문가, 잘못된 합의 그리고 시장 기반 해결책이 시를 위한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믿음에 기초한 기술관료 통치(technocratic governance)로 대체하기 위해 개입하고 있다. 이 개입 과정이 모든 노동계급 시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특히 한 특정 그룹 시민 - 흑인 - 을 존중받을 자격이 없는(unworthy) 시민으로 묘사하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백인들보다는 흑인들이 복지 수급자들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복지에서 급격한 변화는 발생하지 않는다. 세수의 수령자가 불균형적으로 흑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과세에 대한 대중의 지지에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검시관이 Michael Brown의 사체를 검사하고 있다. ​

 

정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능력은 현저하게 축소되었지만 하나 예외는 치안 유지 활동(policing)이다. 치안 유지 활동은 두 가지 형태 중 하나를 취한다. 예를 들어, 치안 유지 활동은 지방자치단체의 수익을 창출하는 수단(가령 벌금: 역자 주)이 되었는데 많은 경우 가장 지급 능력이 떨어지고 시민에 의해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 되었다. 미주리 주 퍼거슨(Ferguson) 시 - 흑인 Michael Brown이 백인 경찰 Darren Wilson에 의해 살해당한 도시) -는 이 길을 택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은 경찰을 노동계급 인구(특히 비백인)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볼티모어는 이 자치단체 중 하나다.

약 5년 전(2015년: 역자 주), 볼티모어에서 노동 계급에 속한 흑인 프레디 그레이(Freddie Gray)가 거리를 어슬렁거리던 중 경찰이 심문하려고 하자 이를 피해 도망쳤다. 경찰에 잡힌 그는 심하게 맞고 척추가 부러져 이후 병원에서 사망했다. 볼티모어 시는 이미 경찰의 시민에 대한 잔혹 행위에 대한 합의금으로 피해자 측에 수백만 달러를 지급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그레이가 경찰에 의해 살해된 첫 번째 사람은 아니었다. 타이론 웨스트(Tyron West)(2013년 사망:역자 주)가 볼티모어 경찰과의 충돌로 죽은 지 5년이 지나도 그의 누이는 웨스트 죽음에 대한 정의와 경찰의 잔혹성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West Wednesday”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기폭제가 된 것은 비디오로 찍힌 그레이의 죽음이었다.

Freddie Gray가 볼티모어 경찰에 의해 연행되고 있다. ​

 

도심 재개발에서 도심 바로 외곽에 거주하는 흑인 노동 계급이 가장 위협적인 인구임에 따라 이들로부터 도심의 비즈니스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경찰의 지출은 증가하고 있다. 볼티모어 경찰이 대규모 지출을 하는 두 지역은 바로 이 도심 비즈니스 지역과 프레디 그레이가 살해된 동네다. 볼티모어 시는 다른 어떤 예산 순위보다도 경찰(“공중 안전(public safety”))에 더 많은 돈을 쓴다. 경찰은 시의 다른 어느 부서보다도 많은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다른 부서 직원을 합한 숫자보다 많다.

내가 지금까지 추적해 온 볼티모어 시 경찰력의 증가만으로도 충분히 나쁘지만, 문제는 치안 유지 활동이 단지 볼티모어 시라는 자치단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분야에서 치안 유지 활동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도시에 있는 3개의 공립대학(위에서 언급한 모건 주립대학교, 코핀 주립 대학교, 볼티모어 대학교)은 모두 자체 경찰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존스 홉킨스 대학교(내 고용주, 메릴랜드 주에서 가장 큰 개인 고용주)는 최근 경찰력을 구성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대중교통 시스템에는 자체 경찰이 있고 볼티모어 시의 학교들도 자체 경찰력을 가지고 있으며 병원 중 다수 역시 자체 경찰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추가로 몇 동네, 학교 그리고 병원은 유사한 권력을 가진 민간 치안 조직을 거느리고 있다. 따라서 볼티모어 시가 경찰에 한 해 5억 달러의 예산을 소비한다면 볼티모어 시 전체로 보았을 때 경찰 혹은 유사 경찰력에 10억 달러 이상을 소비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찰 예산은 대부분 흑인 노동 계급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레이 죽음과 이어진 봉기 여파로, 활동가들과 조직가들은 redlining의 역사적 관행과 볼티모어의 예산 우선순위에 관심을 기울였다. 비록 신자유주의 사조는 경제적 예속의 증가(필수적으로 인종적 요소를 동반해서)와 함께 찾아왔지만, 이 사조가 기존의 불평등을 악화시켰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볼티모어는 1910년에 인종 분리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최초의 주요 도시였다. 비록 이 법은 1930년에 연방정부가 민간주택 담보대출에 대해 보험을 제공해주기 시작하면서 위헌이 되었지만, 연방정부는 주택 담보 대출자에 대한 위험 평가를 담당하는 주택 소유자 대출 공사(Home Owners Lending Corporation: HOLC)를 설립했다. "레드 라이닝(redlining)"이라는 용어는 약 30개 도시의 각 이웃(neighborhoods)을 담보대출 위험 수준별로 색깔 표시한 데서 기원했다. “빨간색(red)” 등급의 이웃은 가장 높은 대출 위험을 가진 지역으로 이 이웃에 있는 주택은 대출을 받을 수는 있지만, 더 나은 등급을 받은 이웃 주택과는 다른 대출 조건이 부여되었다. 낮은 등급과 높은 등급을 구별하는 데 사용된 주요 요소 중 하나는 인종 구성이었다. 흑인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은 등급별로 가장 낮은 지역이었다.

레드 라이닝(redlining) ​

 

그레이가 그의 삶 대부분을 보냈고 사망한 지역은 볼티모어에서 가장 교육 수준이 낮은 지역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가장 높은 실업률과 더불어 메릴랜드의 그 어떤 지역보다 주민을 투옥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쓴 지역이었다.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자본은 우리가 대중을 개념화하는 방식에 폭넓은 영향을 미친다. 먼저 주택은 노동력을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재생산하는 주요 수단 중 하나가 되면서 자본은 누가 어떤 주택과 이웃에 살며 그리고 어떤 가족 유형을 선택할지에 대해 영향을 미친다. 주택은 민간시장에서 매매되는데 이 과정에서 “핵” 가족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홍보된다. 개발업자들은 인종과 계급에 따라 특정 인구를 배제하고 동시에 집중시킬 목적으로 “이웃”을 설계하며, “잘 사는” 이웃들이 더 많은 양질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만든다. 많은 사람이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간단히 말해 부동산 개발업자, 정관계, 정책 입안자 그리고 기업 소유주들이 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인구를 유입시키기 위해 경제적으로 인종적으로 인구를 특정 지역으로부터 밀어내기 위해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종 카테고리는 어떤 주택과 이웃이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사용된다.

미국 젠트리피케이션 맵 ​

 

비백인 인구 비중이 높은 도시에서 이들 비백인의 보다 공평한 서비스에 대한 요구는 드문 일이 아니다. 주요 도시에서 경찰에 의한 노동계급 흑인들의 죽음이 증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경찰에 의해 감시되는 지역들은 단순히 가난한 지역이 아니라 흑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미국에서 자본은 인종과 계급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다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일하는 활동가들이 도시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형성하는 인종차별주의의 근본적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이 도시들과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계급의 역할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시스템은 그대로 방치한 채 일부 비백인에게 대규모 자원이 집중된 짐 크로 법 (Jim Crow) 시대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지금 “공공(public)” 혹은 “공공선(public good)”을 말할 수 있지만, 이 “공공”은 실제 도시 공간의 매우 작은 부분에 한정되어 있다 - “공공” 공원은 많은 노동자 계급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되어 있다. 다양한 형식의 암묵적 명시적 규정들이 공공 보도, 거리 모퉁이 그리고 “공공 영역”의 진정한 공공 사용을 차단하고 있다.

1971년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와 함께한 앙리 르페브르(백발)

1960년대에, 세계 각지에서 조직가들과 지식인들은 도시에 대한 보다 강력한 비전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거주민들이 토지 소유자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디트로이트에서 제임스와 그레이스 보그스(James and Grace Boggs)는 디트로이트 같은 도시는 노동계급 흑인들의 거주지이기 때문에 도시가 흑인들의 땅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두 개념은 몇 문제 - “권리(rights)”라는 개념은 민주사회주의의 비전과 잘 어울리지 않으며 비록 흑인이 후기산업사회의 신자유주의 사조로 인해 여러모로 가장 많이 고통을 받는 그룹일 가능성이 크지만, 이 그룹만이 피해 그룹은 아니다 - 가 있지만 두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미래 도시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영감을 준다.

제임스와 그레이스 보그스( James  and  Grace Boggs )

민주사회주의의 상상력은 이 역동성에 대해 두 갈래의 반응을 제공한다. 도시는 그 안에서 일하거나 사는 사람들 그리고 단체와 극명하게 구별되는 도시를 소유한 사람들에 의해 그리고 그들을 위해 운영되는 대신, 민주사회주의 상상 속 도시는 사람들 전체의 소유다. 간단히 말해서, 이것은 정치적 경제적 우선순위의 본질적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도시에 입주하는 대가로 기업에 지급하는 수십억 달러의 보조금은 인간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강화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치안 유지 활동 그리고 교도소 국가(carceral state)에 소비되는 수십억 달러는 시민과 거주민들이 충만하고 풍요로운 삶을 사는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결과물 대부분을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강요된 노동 대신 사람들은 더 많은 여가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예산 우선순위의 변화를 떠나 사회주의적 상상은 우리에게 일과 소비에 얽매인 자유 개념보다 훨씬 풍부한 자유 개념을 제공해 준다. 현대 미국 도시는 극명하게 4종류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 소비를 위해 물건을 생산하는 공간, 그 물건의 소비를 위해 판매하는 공간, 그 사이 노동력이 쉴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노동의 특정 형식을 위한 여가를 제공하는 공간. 대부분 도시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노동계급 흑인과 히스패닉이 주로 이용하는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버스 시스템과 상대적으로 자금 지원을 잘 받는 고소득자들이 이용하는 철도 시스템으로 갈린다. 이 모든 공간과 치안활동은 특정 인구 그룹을 다른 유색 노동 계급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혹은 취약한 지방정부 재정을 보완할 목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사회주의적 상상 속 주택은 더 이상 자본주의적 사회적 재생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부동산 자본의 필요가 더 이상 주택 공간의 형태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 되지 않으며 삶의 방식도 더 이상 원자화되거나 “핵가족”에 초점을 맞추지 않게 된다. 사실, “핵가족”은 생물학적 그리고 사회적 노동의 재생산을 일차적 목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가족 형태의 확산 그리고 사회적 공간을 위한 공간 창조를 상상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공간, 소비하는 공간, 일하는 공간 그리고 노는 공간들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일(work)”과 “노는 것(play)”를 구분할 필요가 없는 삶의 방식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사회의 서로 다른 영역(segment)을 분열시키는 대신 이 영역들을 함께 묶어줄 수 있는 교통 시스템을 지향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도심은 자본을 집중하기 위해 설계되었는데 만약 이 도심이 더 이상 자본을 위해 설계되지 않고 도시 거주자들의 공동체와 연대를 목적으로 설계된다면 도심은 과연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기능할까?

현재 도시의 학교들은 학부형, 학생, 직원 그리고 행정에 시장 행위를 주입하기 위한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학부형들은 자녀를 위해 최고의 학교를 고른다. 학교 교장들은 학생들과 자원을 놓고 다른 학교 교장들과 경쟁한다. 이처럼 “인적 자본(human capital)”을 어느 학교가 제일 잘 발달시킬 수 있는가를 위해 학교끼리(그리고 학교 내 교사끼리 학생끼리도) 경쟁하는 대신, 학교는 사회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발전하고 이행하기 위해 서로에게 가르치고 배우는 중심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도시에서는 가장 풍부한 형태의 대중음악이 만들어졌고, 예술가들은 도시를 새로운 소리, 새로운 음향 제작 기술, 새로운 형태의 공동작업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시장(market)이 예술가들로 하여금 어디서 연주하고, 무엇을 연주하고, 심지어 얼마나 오래 연주할지를 결정하게 되면서 이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의 폭은 경직되고 약화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우리는 기업 활동을 강조하는 쪽으로 가사의 방향을 급격하게 선회한 힙합에서 이 현상을 두드러지게 목격한다. 우리는 예술 콘텐츠를 결정하는 시장으로부터 벗어날 때 도시적이 되는 많은 방법을 상상하는 예술과 삶의 개념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