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세상 이야기

사회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리버럴 정치제도의 상관관계 - 민주사회주의 이해하기 (8)

김 무인 2021. 7. 22.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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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말

이번 에세이의 저자 Peter Hudis는 미국 시카고에 있는 Oakton Community College의 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현재 14권 예정의 로자 룩셈부르크 전집(The Complete Works of Rosa Luxemburg)의 주 편집자로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여담이지만 지난 2년 관련 글들을 읽으며 맑스 만큼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로자 룩셈부르크인데 그만큼 21세기 새로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많은 이들에게 로자의 생각과 통찰력은 계속 곰 씹게 하는 깊이와 예지력이 있다는 느낌이다.

이번 에세이가 책의 8번째 에세이다. 어떤 에세이는 읽으면서 또 번역하면서 이해하지 못하거나 번역하지 못하는 부분에 부딪힐 때마다 ‘하, 이렇게밖에 글을 못 쓰나’ 구시렁구시렁 저자를 욕하기도 했다. 이 가당치 않은 불만은 내 지식의 얇음을 적반하장격으로 저자에게 전가하는 측면이 절대적이지만 아주 허무맹랑하지만은 않다는 꿍함을 여전히 마음 한편에 가지고 있다.

가령, 어떤 에세이는 소위 ‘글이 날린다’는 표현을 쓰고 싶을 정도로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불명확하고 글의 전개가 비체계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오죽하면 내가 ‘논리의 전개’가 아니라 ‘의식의 흐름’이라고 표현했을까. 개인적 추측으로 이 책의 편집자가 각 저자에게 책이 전반적으로 지향하는 주제를 설명하고 원고를 청탁하고 받은 후 출판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제대로 매끄럽게 관리하지 못하지 않았느냐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런 유의 서적에서는 보기 힘든 에세이의 오탈자가 걸러지지 않았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한편으로, 이들 저자의 다수는 학자이지만 그 외 정치인도 노동활동가도 있을 정도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큼 이들에게 학자적 엄격함과 일관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저자는 나 같은 입문자를 위해서 매우 친절하게 하나, 둘, 셋 말하려고 하는 핵심을 요약까지 해주어서 아주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번역했다. 중간의 노동과 가치 개념 부분에서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건지 잠시 헷갈렸지만. 쉽게 썼다는 표현이 내용이 평범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라는 것을 이전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번역에서도 강조했지만, 이번 에세이 역시 내가 흐릿하게 알고 있던 개념 간 상관관계 - 가령 리버럴 정치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적 경제민주주의의 관계 -를 정리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글 중간의 파란색 소제목들은 내가 이해의 편의를 위해 임의로 삽입한 것이며 굵은 활자체 역시 강조와 독후 요약을 위해 추가한 것이다. 그 외 강조 따옴표 등은 원저자의 것이다.

 


 

민주사회주의와 진정한 민주주의로의 이행

(Democratic Socialism and the Transition to Genuine Democracy)

Peter Hudis

I.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지난 백여 년 동안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에 대한 방대한 논의와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훨씬 적었다. 왜 그럴까?

이유 중 하나는 사회주의(socialism)와 민주주의(democracy)는 종종 다른 한쪽이 없어도 어느 정도 존립할 수 있는 별개(distinct)의 형성물(formations)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대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종종 비민주적 국가들이 민주적 국가로 이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데, 그들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가 병립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미래에 우선 실현되어야 할 프로젝트라기보다는 이미 이루어진 사실로 간주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많은 사회주의 비판자들은 비록 반대되는 결론을 도출했지만 비슷한 전제에서 출발한 논지를 전개했다.

제1차 세계대전 전에는 사실상 모든 사회주의자가 사회주의 투쟁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정치적(political) 혹은 대의(representative) 민주주의가 최선의 틀이라는 데 동의했다. 그 이후 사회주의 자체 내 민주주의의 역할에 대해 사회주의자들이 만장일치로 동의하는 의견은 훨씬 줄어들었다. 사회 민주주의자들은 정치적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에 편입되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견지했지만, 스탈린주의자들은 정치적 민주주의의 폐지(annulment)를 주장했다. 사회 민주주의자와 스탈린주의자들 간 깊은 차이에도, 두 진영 모두 민주주의를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 등장의 선행 사건으로 인식했다. 그 결과, 어떻게 민주주의로 이행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사회주의로의 이행만큼 그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았다.

민주주의 없이 사회주의도 없고 사회주의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고 했지만...

그러나 만약, 최소한 ‘진정한(truest)’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사회주의 없이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만약, 가장 ‘기본적(basis)’ 의미에서, 사회주의가 민주주의 없이 존재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것을 100년 전에 글로 표현한 바 있다: “생활 속 사회주의는 수 세기에 걸친 부르주아 계급 통치 때문에 타락한 대중의 완전한 정신적 변혁을 요구한다… 대중의 이 재탄생을 위한 유일한 길은 가장 제한이 없으며 광범위한 민주주의를 만끽할 수 있는 공공 생활 그 자체다.” 그녀는 ‘민주주의 없이는 사회주의도 없고(no socialism without democracy) 사회주의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no democracy without socialism)’고 단언했다.

왠지 그냥 ‘로자’로 부르고 싶다 ​

 

그녀의 이 말은 1919년 반혁명 세력에 의해 그녀가 암살된 이후 사회주의 사회를 창조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완성되지 못하고 실패한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위안이 된다고 말할 수 없다. 소비에트 유니언, 공산주의 중국 그리고 그 외 지역의 “막스-레닌주의” 정당들에 의해 주도된 소위,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국가들은 민주주의를 철폐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사회주의로의 이행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들 국가는 모두 세계 시장의 법칙에 순응하게 되었고 자본주의의 가장 소외되고 억압적 관계들을 많이 재현하였다. 이것이 이들 국가가 “자유” 시장을 개방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그렇게 쉽게 변질한 이유 중 하나다. 그들에게는 명백히 민주주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사회주의도 그에 못지않게 없었다.

한편, 유럽과 개발도상국 일부에서 선거를 통해 정권을 획득한 개혁적(reformist) 사회주의자들은 1990년대까지 사회주의 사회를 위한 투쟁을 포기한 채, 국민의 자주권을 심각하게 훼손한 신자유주의 경제 긴축정책을 수용했다. 이들에게는 명백히 사회주의가 없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민주주의도 그에 못지않게 없었다.

지난 100년간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없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시도가 많았지만, 어느 쪽에서도 성공한 걸 발견하기 힘들다.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고려할 때, 새로운 시작이 가능할까?

사회주의적 ‘정책들(policies)’(단일 보험자 의료보험, 공공 소유 기업, 규제된 금융과 노동 시장 등)이 사회주의 사회의 창조 이전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이 거의 없듯이 사회주의(대표 기관, 인권에 대한 인식, 법의 통치 등) 이전에도 민주적 ‘형식들(forms)’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민주적 사회주의 사회가 실질적으로 생겨나지 않는 한 그것들은 여전히 부서지기 쉽고, 불안정하며 부패와 소멸의 대상으로 남게 된다. 사회주의는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이미 존재하는 제도에 추가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는 민주주의 현실화(actualization)이자 민주주의의 진정한 첫 발현이다. 이것이 최소한 맑스가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관계를 이해한 방식이다.

이 에세이의 목적은 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철학적 문제로서 민주적 사회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맑스의 자본주의에 대한 ‘해방적’ 대안 개념을 인용하여 탐색하는 것이다.

II.

맑스: 정치 민주주의는 경제민주주의의 형식

칼 맑스는 그의 정치적 경력을 사회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로서 시작하지 않았다. 그는 정치적 경력을 급진적 민주주의자로 시작했다. 그의 초기 저작을 볼 때 그는 확고한 정치 민주주의(political democracy) 지지자였다. 1841년부터 그는 언론, 사상, 양심의 자유를 옹호하고, 검열을 반대하며, 보편적 참정권에 기초한 대의 정부를 지지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글을 썼다. 그는 아직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 그의 자본주의와의 결별은 1843년 말이 되어서 이루어졌다. 1842년 그는 인간 자유의 열렬한 지지자로서 다음의 글을 썼다: “자유는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에 자유의 반대자들도 자유의 실체와 싸우기 위해 자유를 실행한다… 아무도 자유와 싸우지 않는다; 기껏해야, 인간은 타인의 자유와 싸운다. 그러므로 모든 종류의 자유는 한때는 특별한 특권으로 또 다른 때에는 보편적 권리로 항상 존재해왔다.” 검열관은 언론의 자유에 반대할 수 있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그의 자유를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자유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노력 역시 자유롭게 선택한 행동이다.

맑스의 정치관은 그의 인간 조건에 대한 특정 이해 - 자유로운 “본질(essence)” -에 기반을 두고 있다. 자유는 인간 본성에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식적이고 목적을 가진 ‘행위(activity)’는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가 될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젊은 맑스는 우리의 살아온 경험이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가능성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기존의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삶의 형식들이 우리 인간의 잠재력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인식하고 철저한 비판을 통해 이 형식들을 바꾸려 했다.

사회주의자가 되기 이전 맑스의 저작들은 그의 정치에 대한 ‘독특한(distinctive)’ 태도를 보여준다. 첫째, 그는 정치에 대해 도구적(instrumental) 혹은 실용적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정치를 법적 혹은 논의적 수단을 통해 분쟁 해결을 위한 기술적 메커니즘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가 1842년에 “내용(content)의 형식(form)(내용이 없는 형식:역자 주)이 아니면 형식은 가치가 없다"라고 썼듯이 맑스에게 정치는 우리 인간 잠재력이란 내용을 가장 잘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회적 형식이다. 이런 그의 입장은 정치를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 축소하는 도구주의적 입장과는 거리가 멀다.

둘째, 그는 인간은 본래 반사회적이고 이기적이라는 관점을 거부하면서 대의 민주주의를 지지했다. 따라서 정치 제도가 단순히 우리의 이기적 충동을 관리 혹은 억제하는 ‘부정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정치제도는 대신 우리의 사회적 공동체적 본성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그는 정치제도가 정치적 통일체(the body politic) 안에서 많은 대중을 포함하면서 개인 간 상호 주관적 연결을 강화시키기 때문에 정치 민주주의를 강하게 옹호하였다. 그러나 맑스는 한순간도 정치적 자유주의자였던 적이 없었다. 그의 저작들(비판할 경우를 제외하곤)에서는 홉스, 로크 및 사회 계약 이론의 영향을 발견할 수 없다. 맑스는 자유 민주주의자(liberal democrats) 들에 의해 추진된 많은 정책과 제도를 지지했지만, 그들과 다른 토대와 방향으로 나아갔다. 젊은 맑스는 급진적 공화주의자(radical republican)로 묘사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럼에도 맑스는 그의 이론적 경력의 초기 시점부터 정치 민주주의(political democracy)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에게 정치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다. 1843년, 맑스는 대의민주주의가 ‘빈곤’ 완화에 진전을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빈곤이 정치 민주주의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사실 엄청난 관계가 있다. 가난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은 일련의 사회 활동으로부터 전반적으로 배제되기 때문이다. 많은 대중이 정치 생활(political life)에 참여할 수단을 마련할 수 없다면 공동의 이익에 기초한 정치적 통일체(가령 국가: 역자 주)는 거의 실현될 수 없다.

자본주의 계급 간 모순을 관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리버럴 정치 민주주의

그런데 정치 민주주의는 ‘왜’ 빈곤 완화에 진전을 이룩하지 못하는가? 맑스는 그 이유가 자유 민주주의가 재산을 소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모순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임을 이해하게 된다. 자유민주주의는 재산권을 “빼앗을 수 없는(inalienable)” 신성한 인권으로 간주하며 재산을 소유한 사람에게 특권을 부여한다. 근현대 자유주의 정치사상(liberal political thought)에서 “자유(freedom)”와 “민주주의(democracy)”는 사유 재산에 대한 권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청년 맑스

 

맑스는 1843년 ‘헤겔의 권리 철학 비판’에서 재산 소유자와 재산 소유자(the propertied and propertied)(저자가 이렇게 썼지만 ‘재산 소유자와 무소유자(the propertied and propertyless)의 오타가 아닐까 생각한다: 역자 주) 사이의 모순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모순을 없애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답은 국가가 부르주아 재산권 폐지를 입법화함으로써 시민 사회에 자신의 의지를 실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방식은 이후 실제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권을 제한하거나 폐지한 “사회주의” 정부들이 택한 방식이다. 그러나 맑스는 이 접근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아주 다른 방식을 택했다.

국가는 시민 사회 보다 더 강력해 보이며 또 실제로 헤겔도 이렇게 생각했다고 맑스는 지적한다. 그러나 국가가 강해 보이는 것은 착각이라고 맑스는 주장한다. 국가는 주어(subject)(혹은 능동적 행위자(active agent))이고 시민사회는 술어(대상 혹은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국가는 시민 사회의 반영물이고 시민사회에 의존한다. 재산에 대한 사적 소유가 중심이 되는 시민사회의 결정(determinations)은 국가의 권력을 형성하고 또 제한한다. 재산 소유자와 무소유자(the propertied and propertyless) 사이의 모순을 종식하는 것은 시민 사회의 급진적 변화 없이는 달성될 수 없다. ‘설사 국가가 정치적으로 민주적일지라도’ 위로부터의 강요된 해결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맑스는 자본주의 정치경제학에서 시민 사회의 결정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정치를 경제에 종속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정치 국가(political state)가 ‘보편적’ 이익을 대표한다고 ‘주장’하지만 ‘특정’ 이익을 대표한다는 결정적 통찰력에 맑스는 도달한다. 국가가 시민사회의 이기주의(egoism)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비합리적 시민사회가 있는 곳에서는 “합리적 국가(rational state)”가 존재할 수 없다. 재산 소유자와 무소유자 사이의 모순은 정치적 통일체가 합리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없애야 한다. 하지만 정치 국가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물론, 정치 국가는 시민사회의 불평등한 현실과 대조적으로 형식적(formal) 평등의 보증자로서 자신을 종종 내세운다. 경제적 불평등으로 모든 종류의 갈등과 긴장이 야기되는 시민사회의 무질서한 본성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그런 면에서 완벽하게 일리가 있다. 사회 자체가 ‘진정한’ 평등에 기반을 둔다면 국가에 의한 ‘형식적(formal)’ 평등 선언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 국가에 의한 이 허구적 평등 주장은 시민 사회의 실질적 불평등에 대한 대응인 셈이다.

맑스가 보편적 선거권에 기반을 둔 정치적 민주주의에도 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헌법의 실권자인 국민(people)은 헌법의 원칙이 되어야 하며 진보는 헌법”이기 때문에 그는 대의 정부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국민 중 일부가 다른 일부보다 더 많은 권력과 재산을 가질 수 있도록 헌법이 권리를 보장한다면 “국민(the people)”이 ‘실질적’으로 헌법의 원칙이 될 수 있을까? 계급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헌법은 진정한 국민 주권(popular sovereignty)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진정한 민주주의도 배제되게 된다.

타인의 임금노동에 대한 소유 권리 폐지가 민주주의의 출발점

그렇다면 다른 종류의 헌법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맑스는 “입법부를 통해 기존 헌법을 평화롭고 점진적으로 재조정하려는” 생각을 비판하며 “새 헌법을 위해서는 진정한 혁명이 항상 필요하다"라고 주장한다. 1843년의 맑스는 아직 막시스트가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의 정치 이론은 이미 개혁적 사회주의자들보다 훨씬 급진적이었다.

만약 기존 정치 국가가 재산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면 무엇이 그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가? 그 모순으로부터 이득을 보는 재산 소유자는 해결자가 될 수 없다. 그 해결자는 그 모순으로부터 이득을 보지 못하는 자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이익이 “사유 재산의 부정”을 요구하는 한, “시민 사회의 계급이 아닌 시민 사회의 계급”인 재산 없는 프롤레타리아가 그들이다. 1843년 말에 표명한 맑스의 이 견해는 그의 부르주아 사회와의 결별 그리고 사회주의의 수용을 의미한다. 맑스는 이제 부르주아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를 폐지하는 사회 혁명을 옹호함으로써 정치 민주주의의 관점을 넘어섰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전 통찰을 뒤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여생 동안 정치에 대한 비수단적(non-instrumental)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광범위한 민주적 권리를 지지하고 대의 제도들의 필요성을 옹호했다. 초기 그의 급진적 민주적 관점은 이제 민주주의가 자본주의 폐지 없이 달성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 계급에 기초한 사회주의의 옹호로 접어들게 된다.

맑스의 여기까지의 발전은 내가 민주사회주의의 첫 번째이자 가장 기본적 원칙이라고 부르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타인의 노동을 자신의 사유 재산으로 소유하는 “권리”를 철폐하는 ‘사회 혁명’을 요구한다. 부르주아 재산권의 급진적 철폐 없이는 ‘민주적 사회주의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

III.

바보야, 문제는 사유재산 폐지가 아니야!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부르주아 재산권을 철폐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이다. 맑스 시대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많은 사회주의자가 이것을 생산수단의 ‘개인’ 소유를 ‘집단’ 혹은 ‘국가’ 소유로 대체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국유화 재산이 사회주의라는 생각은 20세기에 권력을 잡은 “맑스-레닌주의” 정권의 가장 기본적 원칙이었다. 이런 이해는 이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회 민주주의자들, 트로츠키주의자들 그리고 시장 사회주의자들도 그것을 달성하는 수단 측면에서 스탈린주의자들과 의견을 달리하지만, 생산수단의 개인 소유 폐지를 사회주의의 ‘pons asini’(이등변 삼각형의 마주 보는 내각은 같다는 정리로 동의어를 의미: 역자 주)로 보았다.

경제 철학 초고는 맑스가 26살에 썼다. ​

 

그러나 혁명적 사회주의자로서 맑스는 초기부터 이 개념에 대해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느꼈다. 그의 1844년 ‘경제 철학 초고’는 개인 소유 재산의 폐지가 필연적으로 사회주의로의 이행으로 이끈다고 생각하는 “조잡한 공산주의자들(crude communists)”을 비판한다. 그는 “우리가 ‘사유재산’에 대해 얘기할 때 우리는 우리 외부에 있는 것을 상대하는 것이다. 노동에 대해 얘기할 때는 우리는 인간 자신을 직접 상대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질문 자체에 그 해결책이 포함되어 있다"라고 서술한다.

맑스를 따르면 사유재산은 임금 노동에 기초한 생산의 결과이다. 따라서 소외된 임금 노동을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유재산을 “철폐” 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근절을 가져오기 힘들다. 이런 이유로 맑스는 소외된 노동이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모든 인간에게로 확대되는” 집단화된(collectivized) 사회를 옹호하는 “조잡한 공산주의자”를 비판하는 것이다. 생산관계 대신 재산 형태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의 논리적 결론은 “공동체를 보편적 자본가(the community as universal capitalist)”로 수용하는 것이다. “사전에 형성된 최소치로부터 도출된 하향 평준화(leveling-down proceeding from a preconceived minimum)”는 자본주의를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재생산하는 것이다.

생산수단에 대한 민주적 통제권이 민주주의의 알파와 오메가

“사유재산(private property)”은 단순히 개인이 소유한 재산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사유재산은 노동 계급이 아닌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다른 ‘계급’의 재산을 지칭한다. 맑스는 소외된 노동 혹은 자신의 노동 ‘활동’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 부재가 사유재산의 원인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사유재산은 노동자들이 생산과 재생산의 과정에 대해 명목상이 아닌 실질적 통제를 할 수 있을 때에만 폐지될 수 있다. 소마 마리크(Soma Marik)가 말했듯이 “생산 시점에서의 민주주의가 보편적 해방을 달성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소마 마리크(Soma Marik)

따라서 부르주아 재산권의 종식은 개별 자본가들을 몰수하고 그들의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 이상을 수반한다. 자유로이 결성된 노동자들은 소외된 노동을 타파하고 제거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 조건으로 생산수단에 대한 ‘민주적’ 통제권을 확보해야 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경제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정치 민주주의는 여전히 필수적이다. 그러나 소외된 계급과 인간관계를 변형할 사회 혁명이 없다면 정치 민주주의는 기껏해야 자본주의 내에서 일시적인 권력 재분배를 낳을 수 있을 뿐이다. ‘진정한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주의로의 성공적인 이행은 경제 민주주의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자본주의의 가치 생산 개념 때문에 소외된 구체적 노동

이것은 단지 청년 맑스의 입장일 뿐만 아니라 ‘자본론’을 집필한 “성숙한(mature)” 맑스의 입장이기도 하다. 자본론에서 맑스는 자본주의의 차별화된 특징은 노동이 가치 형태(value form)를 취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치 혹은 돈으로 측정되는 부는 특정 종류의 노동 표현이다. 따라서 노동 “그 자체(as such)”는 가치의 원천이 아니다. 맑스를 따르면,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을 생산하는데 실질적으로 소요된 시간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전 세계적 수준에서 확립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socially necessary labor time)’에 의해 결정된다. 만약 가치가 실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면 노동시간이 길수록 축적된 가치가 커지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가능한 한 느리게 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치는 실제 노동시간이 아닌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 평균(사회적으로 필요한 평균 노동시간: 역자 주)은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기술혁신 때문에 지속해서 변한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평균 노동시간은 경쟁의 법칙을 통해 그들 뒤에 있는 생산 대리인들에게 전달된다. 자본주의가 진행됨에 따라, 구체적 노동 - 사용 가치(use value)를 창출하는 데 사용된 다양한 종류의 노동 - 은 갈수록 맑스에 의해 “추상적 노동(abstract labor)”이라고 명명된 추상적 평균에 부합하는 노동에 지배된다. 이 추상적 노동 - ‘그리고 추상적 노동만이’ - 이 시장에서 감지할 수 있는 교환 가치 형태를 취하는 가치의 실체이다.

가치는 다소 추상적 범주일 수 있지만, 그것은 매우 구체적인 인간 활동 - ‘노동자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시간 결정에 제약받는 노동’ - 에 의존한다. 추상적 노동이 구체적 노동을 지배하는 ‘이중적’ 형태를 노동이 취하게 되면 생산적 활동은 노동자의 창의성 표현이 되는 것을 멈추고 추상적 시간 결정에 의해 제약받게 된다. 이처럼 노동자들의 구체적이고 감각적 활동을 추상적이며 금전적 형식을 통해 부를 창출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구체화(reification)’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스템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재산 소유 계급의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권을 박탈해야 한다. 둘째, 생산자는 생산과 재생산 수단에 대해 민주적 통제 방식을 취해야 한다. 셋째, 자유롭게 결사 된 대중은 일(work)을 단순한 수단으로부터 의식적이고 목적이 있는 창조를 위한, 우리의 능력을 표현하는 창조적 활동으로 전환함으로써 소외된 노동을 해체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각 지점에서 젠더 및 인종 관계의 철저한 변화는 필수적이다. 이런 중요한 변화가 전개될 때, 사회는 교환가치와 화폐를 그 자체로 증가시키는 대신,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은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힘 - 가령, 시장이나 국가 -에 지시를 받지 않으면서 전체 사회적 생산물을 어떻게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할지를 결정한다. 자유롭게 계획된 노동시간과 자유 시간의 조직은 배후에서 작동하는 추상적 시간 결정을 대체한다. 이런 ‘형식(form)’의 ‘시간’ 조직은 사회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맑스의 이런 관점의 발전은 내가 명명한 민주사회주의의 두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원칙 - 인류를 자본주의 가치 생산으로부터 해방하는 새로운 형식의 노동과 인간관계를 창조해야 한다 - 을 전제로 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일상 존재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사회주의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기 힘들 듯이, 만약 우리가 우리의 통제권을 벗어난 추상적 형식의 지배 때문에 제약받는다면 우리가 민주적 사회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기 힘들 것이다.

IV.

하지만 일국 사회주의가 불가능한 글로벌 시대

이 새로운 형식의 노동과 인간관계의 달성은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이전의 많은 노력에도 실현되지 못한 중대한 역사적 변혁을 의미할 것이다. 이전에 실현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사회주의는 한 나라에서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 세계적’ 변혁을 필요로 하며 그 필요성은 가치 생산 자체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전술했듯이, 상품의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데 실제 소요된 시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확립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socially necessary labor time)’에 의해 결정된다. 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은 기술발전 때문에 인해 점차 줄어드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전 세계 기업들로 하여금 지속해서 변화하는 이 평균(average)의 변화를 확인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그렇다면 특정 국가의 혁명이 생활 수준을 향상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 국가의 생산품들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비용보다 높을 것이며 이는 그것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다.

이 국가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계 시장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킬 수 있겠지만, 이 경우 이 국가는 최신 기술 발전의 수용 측면에서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뒤처질 경향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세계 시장이 주요 자본주의 열강에 의해 지배되어 있는 한, 혁명 정권들은 더 낮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거나 세계 자본에 굴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많은 지지를 받았던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자본주의로의 회귀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라야 두나옙스카야 ( Raya Dunayevskaya )

 

이것은 맑스 시대 이후 거의 모든 혁명의 운명이었다. 라야 두나옙스카야(Raya Dunayevskaya)(러시아 태생 미국 막시스트:역자 주) 주장했듯이 “쿠바처럼 세계 시장의 예봉을 피해 가고 국가 계획이 총체적인 국가에서도 설탕 가격은 여전히 세계 생산에 의해 확립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에 연동된다. 한마디로 계획을 세우느냐 마느냐는 결정적 요인이 아니다. 대중의 자주적 활동(self-activity)이 허용되지 않을 때 기술발전 상태와 축적된 자본이 결정적 요인이 되어 전 세계의 안정을 위협한다.”

이것은 몇 가지 어려운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만약 사회주의가 한 나라에서만 존재할 수 없다면 민주사회주의가 한 나라에 존재할 수 있을까? 진정한 민주주의가 한 나라에서 존재할 수 있을까? 결국, 특정 국가 사람들의 삶이 그들이 통제하지 못하는 사회적 평균(social average)(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의 평균:역자 주)에 의해 지배된다면 어떻게 그것이 진정으로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는 자결권(self-determination)을 포함하지만, 가치의 법칙이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부과되는 한 누구도 진정으로 자결권을 가질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세계 혁명이 모든 곳에서 동시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민주사회주의자에게 정치활동에 대한 적극적 참여가 중요한 것을 고려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1871년 파리코뮌에 대한 맑스의 반응은 이에 대한 큰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는 파리코뮌의 해방적이며 분권적 성격을 “프롤레타리아의 경제적 해방을 이루기 위해 마침내 발견한 정치적 형태”로 보았다. 왜냐하면, “파리코뮌은 이것 혹은 저것, 합법적, 헌법적, 공화적 혹은 국가 권력의 제국주의적 형식에 대한 혁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가 자체에 반대한 혁명이자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사회적 삶의 재개(resumption)였다.

확인된 사망자만 6~7000 명에 추산까지 합하면 2만여 명의 지지자들이 살해된 파리 코뮌

 

파리코뮌은 지배 계급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으로 이전하는 혁명이 아니라 계급 지배 자체라는 이 끔찍한 기계를 무너뜨린 혁명이다.” 맑스의 이런 인식은 사회 민주주의자들과 맑스레닌주의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던 사회변혁에 대한 국가주의적 접근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동시에 맑스는 코뮌이 사회주의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정치적 형식 혹은 지렛대이긴 하지만 한 도시에 국한되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사회주의 혁명은 아니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참여적이고 비국가주의적 형식의 이행을 맑스는 선택했음에도 사회주의는 한 지역과 국가에서만 존재할 수는 없다는 그의 주장은 내가 민주사회주의의 세 번째이자 가장 이론화되지 않은(least theorized) 원칙이라고 칭하는 ‘전 세계적’ 차원의 가치 생산(value production)을 극복할 필요성을 상정한다. 민주주의로의 이행기가 아직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닌 것처럼 사회주의로의 이행기는 사회주의 자체가 아니다. 하나를 다른 것과 혼동하는 것은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개념(idea)’을 오염할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이행의 제한된(중요하지만) 형식을 궁극적 목표로 혼동하기 때문이다. 지난 100 년 동안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개념 자체가 그들의 실제 의미의 (기껏해야) 근사치 - 완벽한 왜곡이 아니라면 - 에 불과했던 형식들과 동일시하려 했던 성급한 시도들 때문에 얼마나 신뢰가 떨어졌는지 너무 많이 경험했다.

혁명을 꿈꾸되 실천은 한 걸음씩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정치 생활에 전반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것에 어떤 변명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민주사회주의 실현의 엄청난 어려움이 기존 사회의 대의 제도에 참여하지 않는 변명이 될 수 없다. 사실 이 참여가 그럴수록 더 절박하다. 민주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초월한다는 장기적 필요성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필요한 개혁을 위해 싸우고 확보하는 정치적 프로젝트에 대중이 참여하는 것을 요구한다. 민주사회주의자는 노동자, 여성, 흑인, 라틴계, 성 소수자의 불만의 시정을 위해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사회주의자는 이 사회가 완전히 뿌리째 뒤엎어지지 않는다면 이 사회의 틀 안에서 이룬 어떤 성과도 궁극적 결실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이런 면에서 맑스는 선견지명이 있었다. 말년의 그는 일부 국가에서는 폭력혁명 없이(그의 마음속에는 미국, 영국 그리고 네덜란드가 있었다) 사회주의 정부가 집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분명 그는 대의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또 영국 부르주아가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의 투표에서 만약 지게 된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새로운 노예-소유주 전쟁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임금 노동 재산권 대 노예 노동 재산권의 충돌: 미국 내전 ​

 

부르주아는 테러리스트가 될 준비가 항상 되어있다.

이와 관련 그는 1861년 링컨의 당선에 대응하여 무장 반란을 일으킨 남부 연합을 거론했다. 만약 남부 농장 계급이 그들의 노예 노동에 대한 재산권을 보존하기 위해 기꺼이 내전을 일으켰다고 한다면 부르주아가 노동자의 임금 노동에 대한 그들의 재산권이 도전을 받는다면 그들이 무엇을 할 것 같냐고 맑스는 묻는다. 이 질문에 그는 명확한 답을 제공한다: “부르주아 공화국은 즉각 부르주아 테러리즘으로 돌변할 것이다.”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끝까지 저항하다 자살로 삶을 마감한 아옌데의 시신이 들려 나오고 있다

기득권 질서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세력들이 행한 반혁명으로 가득 찼던 지난 100년은 맑스의 이 예언을 뒷받침한다: 아돌프 티에르 (Adolphe Thiers)(1871년 파리코뮌을 무력으로 진압한 프랑스 정치인:역자 주)부터 안톤 데니킨(Anton Denikin)(20세기 초, 러시아 내전에서 남 러시아 백군을 지휘한 군인:역자 주)에 이르기까지, 자유 군단(Freikorps)(20세기 초에 활약했던 독일의 우익 준군사조직:역자 주)부터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1973년, 세계 역사 처음의 민주적 사회주의 정권인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쿠데타로 붕괴시킨 독재자:역자 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피그스만 침공(Bay of Pigs)(1961년, 미국 CIA의 사주를 받은 쿠바 망명자들이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려고 기도했던 사건:역자 주)부터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Messias Bolsonaro)(브라질 판 트럼프로 불리는 현직 극우파 대통령:역자 주)기까지. 이것이 현실이다.

피그만 침공으로 카스트로 사회주의 정권을 전복시키려 했던 미국 존 에프 케네디 정권

이런 가혹한 현실의 직면은 여기에 요약된 민주사회주의의 3대 원칙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준다. 왜냐하면, 이 요소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찾을 때 방향감각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가 우리에게 제공한 통찰력의 도움, 희망적으로, 을 받아 우리가 의지할 것은 결국 우리 자신밖에 없다.

 


역자 후기

에세이를 읽고 난 후 머리에 떠오르는 표현이 있었다. 현재 노동당 정부의 교육부 장관인 Chris Hipkins가 뉴질랜드 민주주의와 빈부 격차를 주로 연구하는 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Max Rashbrooke와의 2019년 인터뷰에서 사용한 표현 “radical incrementalism”이다. 한국어로 ‘급진적 점진주의’로 번역된 이 표현이 어쩌면 21세기 민주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 대부분, 전부가 아니라면, 이 ‘혁명을 지향하는 개혁 운동’이란 유사한 표현과 더불어 결론적으로 도달하는 입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을 거쳐 제일 마지막 세 번째 원칙, ‘전 세계적’ 차원의 가치 생산(value production)을 극복할 필요성’에 기대 - 그것도 큰 기대 -를 가지고 읽은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원칙적으로 맑스가 말한 비국가주의적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백번 타당한 듯싶다가도 결국 지금처럼 국가 간 그물처럼 촘촘하게 얽기섥기 경제적 관계가 얽혀있는 21세기에 과연 어떻게 실현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소련과 동구 국가가 왜곡 여부와 관계없이 국가주의적 이행을 한 것은 결국 자본주의 국가에 둘러싸인 국제 환경에 대해 나름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생존전략이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가장 이론화되지 않은(least theorized) 원칙’이라는 진술에서 느낄 수 있듯이 민주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이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