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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중이다.
코로나 재창궐 이전에 신청한 휴가였는데 우연의 일치로 이번 록다운 4와 맞물려 ‘제대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작년에 가졌던 희망과 세웠던 계획대로라면, 올해 가을쯤엔 코로나 상황도 종료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한국과 일본을 여행하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다 어그러졌다. 특히, 일본 여행에서는 지방 소도시를 기차 여행하면서 변두리 이자카야에서 동네 아저씨들과 술 한잔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두런두런할 요량으로 일본어 공부도 나름 열심히 했는데 다 부질없어졌다.
올해가 되어 다시 내년엔 가능할까나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지만 이마저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번 계제에 늘어지게 ‘방콕’하면서 현재 하는 번역 작업을 사치를 부려가면서 할 생각으로 그동안 여행을 위해 모아두었던 휴가를 신청했다.
좋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눈이 떠지면 일어나 이만 닦고 커피를 들고 나만의 공간으로 들어가 음악을 틀어 놓고 에세이를 읽고 번역하고, 번역하다가 궁금한 것은 웹서핑으로 시공간을 여행하며 세상 저편에서 살았던 선현들과 대화하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그러다 시장하면 간단히 요리해 먹고, 번역으로 지친 머리에 휴식을 줄 겸 의례 그러했듯이 영상물을 찾아보곤 한다. 그리고는 창밖으로 해가 지면 해가 지나 보다, 밤이 깊어 가면 깊어 가나 보다 신경 안 쓰고 다시 독서와 번역에 몰두한다. 그러다 졸리면 침대로 가는 생활을 며칠째 계속하고 있다.
오늘 포스트는 이전 포스트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에 이어지는 ‘설레임 시리즈(?)‘ 2편에 해당한다. 머리 식힐 겸 본 영상물은 이전 포스트와 마찬가지로 KBS 전주 방송국에서 제작한 프로그램 ‘백투더뮤직’이며, 나로 하여금 또 설레임을 느끼게 한 주인공은 가수이자 작곡/작사가 김성호이다. 이전 포스트의 주인공 최성수와는 한 살 차이 동년배인 1959년생이다.
개인적으로 가수 김성호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기억/추억이 있다. 학교와 군대를 마치고 들어 간 회사 부서에서 첫 야유회를 갔을 때 장기자랑(?) 시간에 앞에 나가 부른 노래가 바로 ‘김성호의 회상’이었다.
남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 선곡의 기준에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잘 부를 수 있는 노래와 내가 좋아하는 노래. 나는 후자였었고, 노래 후 ‘애썼어’처럼 들리는 헛헛한 박수소리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지금도 철없는 소년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을 생각하는 나이기에, 당시 이 노래의 분위기는 나의 감성을 제대로 저격했었다.
그 김성호가 30년이 지난 지금, 반백이 되어 찾아와 다시 나의 감성을 저격했다.
1993년에 발표한 노래이니까 그의 나이 34살 때 작사/작곡하여 부른 노래다.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을 본 나의 첫 느낌은 ‘비현실적’, 요새 인터넷 밈 용어로 “이거 실화냐?”였다. 보시는 분들도 그렇게 느끼실 것으로 생각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순수함을 고대로 간직한 소년으로 나이를 먹을 수 있는가였다. 분명 그에게도 세월의 굴곡이 지나갔을 터인데, 그동안의 세파(世波)를 마치 초월한 것처럼 그는 보였다.
그다음으로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은 그의 노래를 부르는 자세다. 위 노래 가사다.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까
김 성호
그녀는 너무나 눈부신 모습을 하고 있었죠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죠
나의 더러운 것이 묻을까 두렵기도 했지만
그녀에게 다가갈수록 내 마음은 병이 들었죠
그녀는 천사의 얼굴을 천사의 맘을 가졌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죠
허름한 청바지에 플라스틱 귀걸이를 달고 있던
그녀를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건 너무나 자랑스러워
내가 갖고 있는 또 하고 있는
내가 그렇게도 원했던 모든 것 어느 날 갑자기
의미 없게 느껴질 때 오겠지만
그녀와 커피를 함께했던 가슴 뛰던 기억은
오래동안 내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거예요
사랑이란 말이 점점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요즘이기에
나는 그녀를 감히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싫었어
하지만 밤새워 걸어도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보다 더 적당한 말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외로운 날이면 그녀 품에서 실컷 울고 싶을 때도 있었죠
가느다란 손이 날 어루만지며 꼭 안아준다면
그녀는 나에게 말했죠 친절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기에 그렇게 대한 것이죠
그러나 그녀는 그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죠
(1993)
이전에 한 방송에서 어떤 가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그 가수는 자신이 20대 초반에 불렀던 노래 중 짝사랑하는 마음을 더 늦기 전에 고백해야 한다는 강박감과 망설임을 노래 한 곡이 있는데, 이 노래를 나이 오십이 다 되어 부르려니 감정 이입하는 게 힘들다고 관객에게 토로했다. 지금이면 그렇게 망설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고백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부연 설명과 함께.
그런데 만 62세 김성호가 이 노래를 대하는 태도는 참으로 감탄스럽게 나에게 다가온다. 그가 30대 초반, 물리적 청춘의 남녀 간에 발생할 수 있는 애틋함을 담아 만들었음 직한 이 노래를 여전히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바느질하듯, 마치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르듯 경건하게 부른다. 60을 훌쩍 넘은 할아버지가 감정이입을 하기엔 다소 오글거릴 수 있는 가사인데 그에겐 전혀 그렇지 않다. 심지어 - 나에게만 그렇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 노래 마지막에 그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 있다.
그에게 이 노래 가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어쩌면 그에게 있어 ‘그녀’는 노래 제목처럼, 영원한 소년 김성호의 가슴속에 천사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남아있을 ‘순수’의 이데아일지 모른다.
프로그램의 후반 부(40:18)에 진행자가 과거로 돌아가 청년 김성호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으냐는 질문에 김성호는 주저 없이 오히려 지금의 나에게는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답한다. (이 대목도 인상적이다. 인생이란 여정에서 60이 넘었지만 지금은 과거를 돌이켜 보고 회상하며 마무리하는 시점이 아니라는 것을, 또 결코 그렇게 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단호하게 말해주는 듯 하기 때문이다. 김성호는 미래 자신의 삶을 놓고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과 계속 대화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작곡했고 가수 황규영이 직접 가사를 쓴 노래 ‘나는 문제없어’를 들으면서 위로받고 자신에게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한다. 그렇게 힘을 내어 (더 늦기 전에) 더 무언가를 남겨 보고 싶다는 그는 밴드와 함께 기타 치고 노래 부르면서 스튜디오에서 - 관중이 있으면 떨리기 때문이라고 깨알같이 단서를 단다 - 라이브를 해보는 것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한다.
노래 가사처럼, 그리고 김성호처럼 나 역시 나이를 핑계로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고 다시 다짐해본다.
성호 형, 화이팅! 그리고 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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