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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에서의 약탈 (Plunder in the Promised Land)
마오리 땅 소유권 이전과 뉴질랜드 자본주의의 생성
(Maori Land Alienation and the Genesis of Capitalism in Aotearoa New Zealand)
Matt Wynyard
2014년 수상이었던 John Key는 당시 한 라디오 방송과의 대담프로에서 뉴질랜드는 ‘평화적으로 정착이 이루어진 (settled peacefully)’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국가라는 영국의 뉴질랜드 식민화 과정에 대한 그의 인식을 보여준다. 그의 이런 인식은 대부분 파케하의 인식과 일치한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뉴질랜드의 식민화 역사는 정복, 약탈 그리고 도둑질의 역사이다; 폭력이 핵심 구실을 한 역사이다. ‘정착(settlement)’은 마오리 땅을 탈취하는데 중추적인 ‘공세적 기세’ (aggressive vigor)를 에둘러 완화한 표현일 뿐이다.
John Key는 또 영국 정착민들이 자본(capital)을 갖고 왔다고 주장하는데 미래 뉴질랜드 부(wealth)에 필요한 자본은 이미 뉴질랜드에 있었다. 바로 마오리 땅이다. 그리고 19세기 뉴질랜드에 온 영국 정착민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며 그 중 많은 수는 농노 출신이다.
19세기 뉴질랜드의 식민화는 ‘정착민 사회(settler societies)’에서 보이는 특정 패턴을 따르고 있다. 정착민 사회는 뉴질랜드 캐나다 호주 등에서 보이는 형태로 특정 영토로 이주한 후 영주하도록 많은 사람을 격려함으로써 형성되는 사회이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 이런 정착 형태가 처음부터 실행된 것은 아니다. 초기 바다표범과 고래 사냥과 같은 어획활동을 위해 임시 체류하는 형태가 보편적이었다가 시간이 흐르며 활동 지역의 직접적 통제 연장의 필요성을 느끼는 한편 송출 국가인 영국으로서는 가난하고 잠재적으로 혁명적 잉여 인구를 본토에서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해지면서 뉴질랜드에서의 영구 정착민이 등장하게 된다.
이런 부류의 영구적 대규모 식민지 이주 정책에 기반을 둔 정착민 사회는 원주민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종속이 필요하게 된다. 뉴질랜드는 뉴질랜드 식민화는 원주민 마오리에 대한 정착민의 지배를 완성하고 연장함과 동시에 유지하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이를 위해 마오리 땅의 박탈은 이 식민화의 핵심적 메커니즘이 되며 대규모 파괴와 학살, 마오리 언어, 문화 그리고 정신에 대한 억압이 수반된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 행해진 마오리 땅에 대한 체계적 박탈은 이후 뉴질랜드 자본주의에 필요한 사전 조건을 완성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마오리와 파케하 간의 지속적 불평등의 원인이 된다. 이 박탈 과정은 Marx의 자본론(Capital)에서 서술된 원시적 축적 (primitive accumulation)의 과정이다. 원시적 축적은 자본주의 생산관계로의 전이를 위해 그 이전까지 공동 소유였던 땅과 자원들을 압수하여 개인 사유 재산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땅에서 쫓겨난 원주민은 자신의 노동을 파는 것 외에는 생계수단이 없게 된다.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폭력적임에도 위 John Key처럼 목가적인 역사 서술 때문에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완벽하고 단순한 원시적 축적 (Primitive Accumulation Pure and Simple): 물욕, 정복, 몰수 (Cupidity, Conquest, Confiscation)
18세기 말 19세기 초 뉴질랜드를 찾은 영국인들은 정착 목적이 없던 일시 체류자 (sojourner)로서 정착민(settler)이 아니었다. 이들은 산업혁명 탓에 가로등과 공장 기계 윤활 목적의 기름 획득을 위해 바다표범과 고래 어획을 목적으로 뉴질랜드 바다에만 관심이 있었지 땅은 아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국 일시 체류자들과 마오리의 평화적 공존이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뉴질랜드의 기후가 목초지에 적합하여 땅을 가지고 있으면 이 목초지에서 방목되는 소와 양이 생산하는 양털과 고기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영국인 체류자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마오리들 소유의 땅을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가를 궁리하게 된다.
포경업자로서 부를 축적한 Rhodes와 Jones는 남섬의 마오리 땅을 대규모로 쓸어담다시피 사들이는데 유럽인이 들여온 소총(muskets)과 질병을 통해 엄청난 숫자의 마오리 원주민들이 1800년대 초중반 사망함으로써 거의 저항이 없다시피 이 과정을 마쳤다. 심지어 Jones는 남섬 전체를 사려는 시도도 할 정도였다.
1840년의 와이탕이 조약 (the Treaty of Waitangi)은 이런 식의 정착민들에 의한 마오리 땅 사재기를 종료시켰어야 했었다. 왜냐하면, 이 조약을 통해 영국 정부만이 땅을 팔기 원하는 마오리들로부터 그들의 땅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권리를 가지게 되었으며 또 마오리들도 자기 소유의 땅을 계속 보유하고 싶으면 그 권리 역시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1840년에 약 2,000명 수준이었던 정착민들이 불과 20년 뒤인 1860년에는 약 80,000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새로운 땅에서 목장 경영을 통해서 번성을 꿈꾸는 이들로 인해 북섬의 땅에 대한 수요는 폭증하게 된다. 반면 마오리들은 갈수록 영국 정부에 땅을 팔거나 리스해주는 것을 꺼리게 되자 정착민들은 마오리들을 그들의 정착과 번영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인식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오리들의 땅을 차지하기 위한 압력을 증가시키게 된다.
이 긴장은 1860년 3월 Taranaki에서 드디어 폭발한다. Te Ati Awa 부족의 젊은 족장이 부족 원로들의 의사에 반하면서 부족의 땅을 영국 정부에 파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반대하는 부족과 영국 정부 간 전쟁이 발생한 것이다. 1861년 소강상태에 들어간 영국 식민 군과 마오리 부족과의 전쟁은 1863년 마오리 왕 추대운동으로 인해 재발했으며 이후 간헐적으로 북섬 대부분 지역에서 1872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뉴질랜드 전쟁 기간 정착민들이 보여준 흉포(ferocity)함은 뉴질랜드가 ‘평화롭게 정착’했다는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증명해 준다. 영국 제국주의 군대의 부탁으로 마오리와의 전쟁에 참여한 정착민들의 ‘무자비한 잔인함’은 심지어 제국 군대마저 충격에 빠트리게 할 정도였다. 결국, 영국 제국군대는 이 뉴질랜드 정착민들의 잔혹함에 넌더리를 치면서 전쟁 수행을 이들에게 맡기고 본인들은 떠나고 만다. 정착민들이 원하는 바는 오직 하나 마오리들이 모두 없어져서 그들의 땅을 자기들이 차지하여 하루라도 빨리 목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더 격렬하게 저항한 마오리들이었지만 수적 우세와 나은 장비 덕분에 결국 정착민들은 뉴질랜드 전쟁에서 ‘제한적이지만 확실한 승리’를 쟁취한다.
중요한 것은 마오리들을 반란군으로 낙인찍으며 정착민들은 마오리들을 처벌할 근거를 만들게 된다. 이 처벌은 다름 아니라 전쟁에 참여한 마오리들 소유의 땅을 몰수(confiscation)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1863년 반란억제법(the Suppression of Rebellion Act)과 뉴질랜드 정착법(the New Zealand Settlement Act)을 제정한다. 반란억제법을 통해서 파케하 정착민 정부는 반군들을 최고 사형에까지 처할 수 있게 하였으며 뉴질랜드 정착법을 통해서는 반란에 상당수가 가담한 적이 있는 마오리 소유의 땅에 정착민들이 합법적으로 정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법 덕분에 Waikato, Taranaki 그리고 Eastern Bay of Plenty 지역의 제일 비옥한 땅 상당 지역이 정착민에게 넘어가 이후 그들 후손의 부의 기반이 된다. 이들 지역 중에는 소위 ‘반란’에 가담하지 않는 마오리의 땅들도 포함되기도 했다. Waikato에선 120만 에이커가 Taranaki에서는 128만 에이커 그리고 Tauranga와 Eastern Bay of Plenty 지역에서 74만 에이커의 마오리 땅이 정착민들에게 넘어가게 된다. 이 마오리 땅의 몰수는 물론 충격적이었지만 이후 전개되는 ‘총구가 겨눠진 상태에서’ 이루어진 마오리 땅의 합법적 ‘구매’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합법화된 도적질: 원주민 토지 법원 (Theft Made Legal: The Native Land Court)
뉴질랜드 전쟁의 주목적이 ‘통치권에 대한 확약과 토지 획득’이었다면 같은 목적을 가졌지만 이보다도 훨씬 더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전략이 도입되는데 1865년에 설립된 원주민 토지 법원 (The Native Land Court)이 바로 그것이다. 이 악명높은 기관은 마오리의 공동 토지 소유(communal land tenure)를 파괴함으로써 파케하 정착민들로 하여금 토지를 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마오리의 부족체계를 해체(detribalize)’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마오리에게 땅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했을 때 그때까지 마오리 부족이 집단 공동으로 소유해 왔던 땅을 강압적으로 개인 명의로 전환하는 것은 ‘정착민들이 마오리들에게 행한 가장 파괴적인 공격이었다’. 원주민 토지 법원은 마오리들 공동소유의 땅을 해체하여 정착민들이 개별적으로 이 땅들을 구입할 수 있게끔 하는 구실을 한다.
이 구실을 하기 위해 법원은 마오리 공동소유의 땅을 소수의 ‘소유권자 (owners)’, 보통 10명, 들 명의로 소유, 등록하게끔 유도한다. 이 소수의 소유권자는 최소한 이론상으로는 공동체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피신탁인(trustee)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10명의 소유권자들은 법적으로는 씨족(hapu)이나 부족(iwi)에 규제받음 없이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적당하다고 판단하면 땅을 처분할 수 있게 된다. 당시 마오리들에게는 생산적 경제활동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 토지 증서의 소유권자 중 많은 수는 빚의 유혹에 넘어갔다. 마오리들은 ‘약탈 무리 같은 가게주인들, 독주 판매인들, 측량사들, 변호사들, 부동산 중개인 그리고 대금업자들’처럼 마오리 토지 소유권자들을 빚으로 옭아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집단에 둘러싸여 있었으며 마오리 소유권자들이 마침내 그 덫에 걸려들면 이들은 빚을 근거로 땅을 강제로 팔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원주민 토지 법원은 마오리 땅의 엄청난 면적을 빨아들이는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1861년과 1891년 사이에 북섬의 마오리 소유 땅은 2천2백만 에이커로부터 1천1백만 에이커 혹은 80%로부터 40%로 줄어들었다. 약 1/6은 몰수에 의한 것이지만 나머지는 판매에 의한 것이었다. 마오리들을 정말로 비참하게 느끼게 하는 것은 전쟁의 패배나 토지 몰수가 아니라 바로 이 땅 매매의 야비하고 의기소침하게 하는 시스템이었다. 이와 유사하게 1891년부터 1912년까지 집권했던 자유당(Liberal Party)은 문명화의 전파라는 명목하에 마오리 토지매입 프로그램을 실행했으며 이 프로그램을 통해 310만 에이커의 땅이 마오리로부터 넘어오게 된다.
가장된 강탈: ‘정직한 Jock’ McKenzie와 자유당 정부의 토지매입 프로그램 (Dispossession in Disguise: ‘Honest Jock’ McKenzie and the Liberal Land-buying Programme) 1891년부터 21년간 집권한 뉴질랜드 자유당 정권은 세계 최초로 여성참정권 인정(1893년)과 노후연금제 도입(1898) 등으로 칭송을 받았는데 사실 이 정권의 가장 큰 관심사는 땅이었다. 정착민들과 자유당 정권은 땅에 관한 한 일치된 입장이었다. 즉 마오리 소유의 천연 열대우림으로 가득 찬 땅보다는 경작되어있고 그 옆에 정착민이 거주하는 땅이 진보와 문명화된 형태의 땅이다. 이렇게 땅을 목초지로 개발하고 싶어하는 자유당 정권과 정착민이었지만 1891년까지도 많은 땅이 여전히 마오리 소유로 남아 있었다. 자유당은 정권을 잡자마자 곧바로 식민지 초기 Rhodes와 Jones에 의해 제한 없이 매입되었던 소위 Great Estates 들의 해체 작업에 착수해서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둔다. 집권 말년까지 자유당 정부는 130만 에이커의 땅을 되사들이며 이곳에 2만 2천 명을 정착시킨다. 하지만 압도적 다수의 정착민은 감언이설로 마오리 주인으로부터 헐값에 사들인 땅에 정착한다. 결과적으로 마오리들은 뉴질랜드 전쟁에 뒤따른 토지 몰수만큼 엄청난 규모의 땅을 다시 잃게 된다. 존 맥켄지 (John McKenzie)는 자유당 정부 집권 기간 마오리 땅의 탈취를 진두지휘한 토지부 장관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존 맥켄지 본인도 이미 고향에서 땅을 박탈당하는 공포의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다: 1845년 5월 맥켄지는 아버지와 함께 스코틀랜드 Highland에 있는 County Sutherland에 있는 가족들을 방문하고 오는 길에 Croick에 있는 작은 장로교회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90여 명 되는 사람, 10세 미만의 어린이 23명을 포함한, 들이 공동묘지에서 간이 천막 아래 추위에 떨며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소작농으로 정착해 살고 있던 이 사람들이 토지 사유화와 박탈을 통해 부랑자 신세가 된 것인데 똑같은 일이 뉴질랜드에서 벌어지게 된다. 마오리가 자기 땅에서 쫓겨나 공동묘지에서 잠을 자야 하거나 아님 체포되거나 부랑자 신세가 된 것이다. 맥켄지는 어린 시절 고향 스코틀랜드 소작농들의 토지 박탈에 따른 고통을 목격했음에도 자유당 집권 시절 내내 파케하 정착민들을 위한 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다. 맥켄지의 사회정의는 마오리에게까지는 확장이 되지 않는 사회정의였던 것이다. 1890년대 자유당 정부의 토지매입 프로그램은 뉴질랜드 전쟁 이후 최대의 프로젝트였다. 자유당 정부가 이 매입 과정에서 활용한 방법의 하나는 원주민 토지법 (Native lands Act of 1892)이었다. 이 법은 원주민 토지 법원의 판사 권한을 강화시켜 분쟁이 되는 토지의 판매를 조사하여 새로운 토지등록증을 발부하는 것이다. 외견상 이 법은 마오리와 파케하 모두를 과거의 불합리한 토지거래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안전한 토지등록증에 완벽한 토지소유권을 부여하는 절차를 통해서 토지 매매를 신속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결론 자유당 정부의 토지 탈취 방식은 초기의 원시적 축적 방식과는 달랐으나 마오리에게 미친 영향은 똑같았다: 마오리는 그들의 땅, 자유, 권리 그리고 땅에 딸려오는 가능성까지 모두 잃었다. 마오리들은 경제적 기반을 박탈당했고 그들 선조로부터 내려온 땅에서 쫓겨났다. 19세기 말의 마오리 토지 박탈의 결과는 ‘마오리의 빈곤 화, 부족 원로들과 족장 권위의 추락 그리고 파케하 지배와 마오리 종속이라는 구조적 관계였다’. 다른 말로 1890년대에 이르러 마오리는 정착민의 정치와 법체계에 종속되면서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받는 한편 투기와 기만 그리고 마오리 농부를 방해하는 정착민들의 공작 과정을 통해 그들의 땅으로부터 계속해서 분리되어 갔다. 이렇게 원주인인 마오리로부터 탈취된 땅의 압도적 대다수는 그 땅에 있던 자연림을 불태워 없앤 후 양과 소들을 위한 목초지로 전환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땅은 뉴질랜드 자본주의의 기초와 국가 부의 핵심이 되었다. 전술한 원시적 축적과정을 통해 마오리들은 많은 경우 노동자 계급으로 전환되었다. 현재 진행 중인 구조적 불평등 그리고 재소자 비율부터 시작해서 실업률, 열악한 신체적 정신적 건강 지표에 이르기까지 다른 에스닉 그룹 대비 마오리의 부정적 사회적 위치는 이 폭력적 식민화 역사와 마오리 땅과 자원에 대한 체계적 수탈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뉴질랜드 현대 사회를 괴롭히고 이 책의 다른 논문들을 통해 탐구될 '불평등'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다: ‘착취(exploitation)와 불평등(inequality)은 뉴질랜드 자본주의 경제에서 권력을 쥔 (powerful) 특권 계층 (privileged actors)이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필수적 요소들이다’. 다른 말로 하면 현대 뉴질랜드 부(wealth)는 다수 마오리의 상대적 빈곤에 기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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