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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우리는 왜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란 단어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가? - 민주사회주의 이야기(2)

김 무인 2022. 1. 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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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질문의 ‘우리’에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성공적인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유럽 일부 국가 대중은 아마 제외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많은 국가의 대중은 이전 포스트에서 인용한 뉴질랜드 국민당 의원들처럼, 공산주의는 물론 사회주의라는 용어에 대해 경기 반응을 일으킨다. 지난 70여 년, 세대에 걸친 반공 이데올로기에 노출된 남한 대중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에서는 ‘노동자’와 ‘인민’이란 용어도 계급적 뉘앙스가 입혀져 이 용어를 구사하는 사람의 사상적 배경을 의심하기 조차한다. 이번 글은 남한 대중처럼 북한으로 현실화된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와의 직접적 경험을 갖지 않은 뉴질랜드나 미국과 같은 서구 대중의 인식을 대상으로 한다.

 

확실히 사회주의라는 용어보다 공산주의라는 용어가 더 거부감을 일으키는 듯하다. 과거 우리는 공산주의라는 궁극적 단계를 가기 위한 과정에 사회주의가 있다고 배웠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과도기로서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 데 따라 받는다"라는 성명이 대표적 예다. 그러나 우리가 공산주의라는 용어에 대해 더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사회주의보다 더 심화한 단계이어서가 아니다. 실제로, 계급 없는 이상적 공산주의 사회로 가기 위한 사회주의 사회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단계이므로, 어쩌면 더 거부감을 가져야 할 용어는 사회주의이어야 할지 모른다. 게다가, 맑스도 많은 경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용어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고 사용했기 때문에, 공산주의 용어에 대한 거부감은 다른 역사적 맥락에서 찾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격동의 러시아 혁명기>

이데올로기로만 존재했던 사회주의를 인류 역사상 최초로 현실 국가로 구현함으로써, 이후 인류에게 ‘사회주의란 이런 건가요?’라는 구체적 개념을 자리 잡게 한 레닌의 볼셰비키는 ‘공산주의’를 자신들 정체성을 차별화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전까지 사회주의는 광범위한 정의를 가진 채, 다양한 해석과 변형이 공존하는 논쟁적 영역이었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며 이 사회주의 진영에 큰 분열이 일어났다. 그동안 머릿속에서만 상상되고 대중 연설 속에서만 존재했던 사회주의를 현실화한 볼셰비키와 이후 소비에트 연방을 보면서, 볼셰비키의 사회주의 해석이 옳다고 생각한 많은 사람은 자신을 ‘공산주의자’(Communist)라고 칭했다. 반면, 소비에트의 ‘성공’에 비판적이거나 회의적인 다른 많은 사회주의자는 그들의 개념, 조직 그리고 전략을 위해 ‘사회주의자’(Socialist)라는 이름을 유지했다.

 

강제노동수용소, 굴락(Gulag)

 

이후 지난 세기, ‘공산주의자’들이 세운 소비에트 연방(소련)에서 일어난 많은 사건은 서구 대중이 공산주의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게 했다. 집권 초기, 소비에트는 공장을 짓고 공중보건 및 문맹 퇴치 캠페인을 조직했으며, 대학교 과정까지 등록금 없는 공교육을 제공했다. 그들은 또 유대인의 권리를 제약했던 차르 법을 폐지했으며, 소비에트 연방에 살았던 많은 소수민족의 문화와 언어를 지원했다. 그 결과, 공산주의하에서 많은 소비에트 시민의 삶은 향상되었다. 그러나 볼셰비키는 혁명 이전부터 프롤레타리아는 가르치고 이끌어야 할 대상이란 인식 위에서 탄생한 ‘전위대’(vanguard)에 의존했다. 이에 따라, 정권 수립 후 공산주의 사회라는 필연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를 향한 여정이란 명분으로 그들의 모든 독재적 통치를 정당화했다. 볼셰비키의 이런 엘리트적 독선은 1924년 레닌이 사망하자, 소비에트의 정체성 그 자체인 ‘소비에트’(노동자 평의회)를 모두 없애 버리며 오늘날 서구 대중에게 본격적 ‘비호감’을 불러일으킨 스탈린 시대로 접어들었다.

 

1937년, 대 숙청기 우크라이나 Vinnytsia에서 약 만명에 대한 대학살이 행해졌다.

스탈린 시대의 대대적 탄압과 폭정은 소련을 공포 지배 사회로 몰고 갔다. 그중 몇 사례를 들면, 산업화와 현대화 명목으로 추진된 농업 집산화는 1932~33년 우크라이나에서  ‘홀로도모르’(Голодомор;Holodomor)로 알려진 3백만 명 이상의 아사자를 불러왔고, 1936~38년의 대숙청은 70~12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약 1천4백만 명이 굴락(Gulag)으로 알려진 강제수용소에 들어가야 했으며 이 중 150~170만 명이 이로 인해 사망했다. 그 외에도 정당 조직의 금지, 자유선거 폐지, 언론 자유 제약 그리고 반종교 캠페인은 노동계급을 포함한 서구 대중에게 소련의  공산주의를 결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수 없었다. 

 

1937년, 우크라이나 도시인 카키브(Kharkiv) 길 거리에 쓰러진 아사 직전 시민들

소련의 공산주의는 서구에 이미 존재하는 자본주의보다 질적으로 더 해방적인 정부, 경제적 삶, 혹은 문화적 경험을 제공해 주는 데 실패했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제국주의적이고 착취적이며 인종차별주의자였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경제적으로 더 발달했고, 다원주의와 개인주의를 수용했으며, 종종 공산주의 경쟁국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포괄적인 복지국가를 운영했다. 소비에트(노동자 평의회) 자체는 현대 포퓰리스트들에게 언젠가 실행 가능한 모델은 아닐지라도 유토피안 사회주의에 대한 꿈을 남겨주기라도 했지만, 소련의 공산주의는 폭정 하에서의 평등이라는 이미지 외에는 세계 인류에게 남겨준 것이 없었다.

 

<1989년 모스크바 슈퍼마켓 풍경>

소련을 벗어나, 동구 그리고 이외의 지역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사회주의”(actually existing socialism: 현실사회주의라고도 불린다) 역시, 우리의 사회주의에 대한 개념과 공감에 치명적 해악을 끼쳤다. 그들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흉내를 내기 위해 국가 소유, 무료 혹은 매우 저렴한 의료 및 교육 그리고 엄격한 중앙 계획을 수행했지만, 시민의 자유와 민주적 권리는 외면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시도는 생산양식이 자본주의 이전 경제에 머물던 나라들에서 이루어지면서, 이런 상황 속에서 탄생한 사회주의 정권은 필연적으로 비민주적으로 정치적 반대 세력을 억압하는 무력 정치를 구사했다. 이처럼, 실제로 존재했던 자칭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체제는 대공황기를 거쳐 케인스식 수정자본주의 복지국가를 통해 20세기 중후반 자본주의 황금기를 누렸던 서구 대중에게는 폭력적 국가 독재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거부감은 이제 위협감으로 이어졌다.

 

이런 위협감에 결정적으로 기름을 부은 사건이 1956년 발생한다. 1956년, 흐루쇼프(Nikita Sergeyevich Khrushchev)(1894~1971)는 소련 공산당 제20차 대회 연설에서 스탈린의 범죄를 거론했는데, 이것이 세계 곳곳의 공산당 그리고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직속 후계자의 내부고발을 통해서 드러난 스탈린의 범죄적 통치행위는 그렇지 않아도 미국에서 대성공을 거두고 있던 매카시(Joseph Raymond McCarthy)와 그 지지자들의 ‘사회주의 = 폭정’이라는 주장에 실질적 근거를 제공해 주었다. 그 결과, 미국과 서유럽에서 공산당은 상당수의 당원을 잃었으며, 서구 대중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혐오감을 확정 짓게 된다.

 

 

<1956년, 후루쇼프가 역사적인 스탈린 격하 연설을 한다>

정치적으로 민주적이지도 못했고,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도 못했으며, 심지어 분배의 평등조차 서구 자본주의 국가보다 우월하지 못했던 공산주의 국가 소련과 동유럽 국가를 포함해 실제 존재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이었다. 1989년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로 그들의 역사적 실효성에 대한 검증은 끝난 것처럼 보였으며, 이들에 대한 역사의 판정은 ‘패배’였다.

 

이처럼 오래전에 패배 혹은 사망 판정이 내려진 사회주의를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우파에게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도발일 것이다. 그리고 이 불순한 좌파의 도발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이들에겐 대중의 정서를 언제든지 자극할 수 있는 과거 사회주의/공산주의 정권의 피의 대숙청과 강제노동 수용소가 항상 대기하고 있다. 이처럼, 20세기 소련의 공산주의 그리고 동유럽의 사회주의는 21세기 폭주하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대안으로 ‘진정한’ 사회주의를 모색하는 이들의 발목을 여전히 붙잡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서히 시간이 지나면서, 서구 대중에게 사회주의라는 것이 꼭 소련식, 동유럽식 더 나아가 중국식과 같은 국가주의 형식이 아닐 수 있다는 인식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국가주의적 사회주의 모델로 많은 이들이 민주사회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