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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21세기 현재, 갈수록 많은 이들이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를 얘기한다. 이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로자 룩셈부르크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서유럽 중심으로 지금까지 일정 부분 사회주의적 성과를 보여왔던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를 반대하는 급진적 혁명적 막시스트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 급진적 혁명이 전위 정당에 의해 이루어지고 이후 사회주의 사회 건설이 국가(state) 주도로 이루어지는 레닌주의식 국가 주도 사회주의도 반대했다. 그녀는 항상 노동자에 의한 밑으로부터의 사회주의, 이름하여 민주사회주의를 지향하였다. 로자 신념의 이 민주적 성격을 고려할 때 철저하게 권위와 지배를 거부하고, 관료주의를 배척하는 한편, 인민의 급진적 해방을 지향한 아나키즘(Anarchism)과 코드가 잘 맞을 법도 하지만, 그녀는 아나키즘에 대해 늘 반대 입장을 취했다.
많은 부분에서 사회주의자들과 지향점이 겹치는 아나키스트들의 사회주의에 대한 개념은 19세기 초 막시즘 이전의 공상적 사회주의 요소들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맑스가 믿었던 것처럼 계급 투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협동공동체의 확산과 영향력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라고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믿었다. 이에 반해, 아나키스트들은 사회주의는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 간 충돌을 통해 건설할 수 있다는 맑스 의견에는 동의하며, 자본주의를 이어받는 사회는 맑스가 공산주의라고 부른 사회와 비슷하다는 관점을 가졌다. 그 사회는 분권적이고 자유롭게 형성된 “협동공동체”(cooperative communities)로 구성된 새로운 사회였다. 이 협동공동체는 맑스가 말하는 “자유 생산자 협회”(free association of producers)와 유사한 개념으로서, 구체적 조직 형태의 대표적 예는 ”노동자 평의회”(worker’s council)다. 노동계급의 자체 통치를 통한 정치적 해방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아나키즘과 맑스의 구상은 일치했다.
그러나 맑스와 그의 지지자들은 프루동 지지자들로 구성된 아나키스트들과 국제노동자협회 (International Workingmen’s Association:IWA) - 제1 인터내셔널 (1864~1876) - 에서 충돌했다. 아나키스들이 혁명 이후 첫 번째 단계의 새로운 사회는 중앙집권적 국가 혹은 일정 형태의 국가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는 맑스의 견해 그리고 그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맑스가 구상하는 중앙집권적 국가는 권위주의로 빠질 위험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맑스의 의도와 달리 전개되었더라도,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아나키스트들의 우려는 이후 레닌의 전위당 주도의 혁명 그리고 이어지는 스탈린 독재로 현실화하였다. 이처럼 혁명 이후 탈 계급, 탈 권위, 그리고 궁극적으로 탈 국가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비전은 두 진영 모두 공유했지만, 혁명의 현실화 과정 그리고 혁명 이후 통치 방식을 놓고 두 진영은 대립했다. 심지어 레닌의 국가주의를 반대한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민주사회주의자들도 아나키스트들은 반대하였다. 21세기 현재, 아나키즘의 사상적 전통은 “아나르코 막시즘(Anarcho-Marxism)” 그리고 “자율주의적 맑시즘(Autonomous Marxism)과 같은 형태로 사회주의 운동 주변을 배회하면서,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에서처럼 여전히 그 에너지를 분출하곤 한다.
이 글은 이론적으로는 여전히 이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적 현실에서는 제대로 된 영향력을 보여준 적이 없는 아나키즘이 21세기 민주사회주의 담론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형식으로 짚어본 글이다. 이 글에서 혁명적 막시즘은 개혁주의적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국가 주도의 혁명적 사회주의(레닌주의)와 비교되며, 맑스 사상의 민주주의 전통을 강조한 급진적 민주사회주의로 이해될 수 있다.
아나키즘과 혁명적 막시즘의 공통점
칼 맑스와 미하일 바쿠닌(Mikhail Bakunin) 시대부터 지금까지, 상호 반대의 오랜 헝클어진 역사에도 혁명적 막시즘과 아나키즘은 1968년 프랑스 혁명과 2011년 Occupy 운동 등에서 보는 것처럼 많은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이 공통점 중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민주적이고 해방된 사회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가(state)를 “부숴야(smash)” 한다는 생각이다. 사실, “국가를 부숴라 (smash the state)”는 맑스의 표현이다. 이 반국가주의는 맑스의 초기 저작과 활동 때부터 나타났지만, 국가 형태가 분명 아니라는 이유로 맑스와 바쿠닌 모두 열렬히 지지했던 1871년 파리 코뮌 이후 더 뚜렷해졌다.
맑스와 바쿠닌 간 두 번째 공통점은 법적으로 공개적 활동이 가능한 곳에서마저 혁명 운동을 위한 조직의 엘리트주의, 계층주의, 그리고 비밀주의에 대한 반대였다. 맑스는 모든 사회운동은 내부적으로 민주적이야 하며, 대중 혁명 역시 톱 다운 접근 방식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맑스와 바쿠닌이 의견의 일치를 본 세 번째 이슈는 반자본주의였다. 둘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폐기를 진정한 민주주의 혹은 인간 해방의 전제 조건으로 보았다. 바쿠닌이 맑스의 공산당 선언의 첫 러시아판 번역 작업을 하고 자본론을 열렬히 찬양한 것에서 보는 것처럼, 맑스의 자본주의 비판을 거듭 인정했다. 그러나 바쿠닌과 그의 후계자들은 맑스의 자본에 대한 비판을 더 심화시키려고는 하지 않았다.
네 번째 공통된 인식은 해방된 사회는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자치 (self-rule)로 운영되는 계급 없는 사회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1871년의 파리 코뮌은 이 둘 모두에게 모델과 같은 것이었다. 이들에게 혁명은 노동 계급과 농민들이 부르주아 혹은 토지 소유 귀족들의 자리를 빼앗는 자리바꿈이 아니다. 대신 혁명은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계급사회 전체 구조를 타파하는 것이었다.
아나키즘과 혁명적 막시즘의 차이점
맑스와 바쿠닌 간 첫 번째 차이점은 민족(에스닉) 운동에 관한 것이었다. 이들 간 첫 논쟁은 파리 코뮌으로 그들이 재결합하기 직전인 1869~70년에 벌어졌다. 1867년, 영국 식민 정부에 무력 봉기한 아일랜드 혁명가들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지자, 맑스를 포함한 제1 인터내셔널 지도부는 빅토리아 여왕에게 공개 탄원서를 제출한다. 철폐되어야 할 국가에 호소하는 것이 못마땅한 바쿠닌에게는, 더 나아가 아일랜드 독립운동은 계급 운동이 아니었기에 이를 반대했다. 이에 맑스는 바쿠닌이 민족(그리고 에스닉) 억압과 계급 억압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아일랜드 민족해방 운동의 민주적 성격과 혁명적 핵심을 놓쳤다고 대응했다. 맑스가 보기에 이는 모든 것을 계급 문제로 이해하는 일종의 계급 환원주의(class reductionism)였다.
두 번째로 잘 알려진 차이점은 무신론과 재산상속권을 둘러싼 것이었다. 이 차이점은 혁명 주체로서 농민에 대한 맑스와 바쿠닌의 관점과 연결되어 있다. 무신론자였던 맑스는 결코 무신론을 정책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무신론의 정책화는 특히 종교적 정서가 강한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대중 계급의 상당 부분을 소외시킬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상속권 폐지 역시 소규모 자작농이 그들의 토지를 후손에 물려줄 수 없다면 사회주의에 등을 돌릴 것이라는 이유에서 반대했다.
세 번째 논쟁은 위에서 언급한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놓고 1869~70년에 맑스와 바쿠닌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배경이 된 아나키스트들의 정치로부터의 기권 성향이었다. 개혁주의적 막시스트 뿐만 아니라 혁명적 막시스트들도 맑스가 아일랜드 이슈에 대응한 것처럼, 쟁점이 되는 이슈에 대해서는 현실 정치 운동에 참여하곤 했다. 막시스트 운동가들은 그들의 지지 세력이 있는 사회의 선거 정치에도 참여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나키스트들은 20세기 초 아르헨티나,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미국에서 대규모 아나르코-생디칼리슴 (anarcho-syndicalism)(산별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자 조합을 통해 경제와 사회시스템을 변혁하려는 아나키즘의 이론) 운동으로 노조를 결성할 수 있었을 때조차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시 아나키스트들은 프랑스 개혁주의 사회주의자들이 리버럴과 별 차이 없는 정책을 도입하는 것을 보고, 선거 정치의 실효성을 회의적으로 보았던 것이다.
막시스트와 아나키스트 간 네 번째 차이점은 자주적 관리(autogestion), 노동자 자체 경영(worker self-management) 혹은 직장 민주주의(democracy at work)라고 불리는 영역에서 발견된다. 프루동(Proudhon)의 영향을 받은 많은 아나키스트는 노동자들이 소유하고 통제하는 협동조합의 형성을 옹호해왔다. 혁명적 막시스트들은 이 협동조합 실험에 반대하지 않았지만, 사회경제 시스템의 근본적이고 혁명적 변혁이 없다면 이 실험들은 한계가 있음을 강조했다. 궁극적으로 노동자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가치 생산 방식과 세계 시장의 지배 아래 운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들은 막시스트의 이런 비판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노동 계급의 해방 문제를 본질에서 자본주의 생산시스템과 연결된 문제라기보다는 노동자들에 대한 직장 내 권위주의적 지배의 종식 문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차이점은, 혁명적 막시스트들이 보기에, 아나키스트들의 혁명 과정에 있어 과도한 주관성이다. 1968년 프랑스 혁명에서 아나키스트가 옹호했던 유명한 슬로건 “Be Realistic, Demand the Impossible”(현실적이되 불가능을 꿈꾸라)은 점진적 개혁과 대비되는 진정으로 혁명적 태도를 보여주는 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슬로건은 순수한 혁명 의지만으로 변화가 가능하다는 아나키스트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더 나아가, 이런 개념은 전투적 엘리트 소수가 대중 운동을 장악하는 블랑키스트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대중운동의 주체를 초 급진적인 자신들로 대체하려는 시도다. 2011년 Occupy Oakland 운동에서 “반란주의(insurrectionist)” 아나키스트들이 극좌적 행동으로 민주적 의사 결정을 방해한 사건이 그 비근한 예다.
혁명적 막시즘과 아나키즘 간 여섯 번째 논쟁은 중앙집권화 대 지방분권화,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혁명 정치의 틀 안에 머물면서 어떻게 개혁을 위해 투쟁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추상적 원칙으로서 지방분권화를 옹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종종 교조적으로 빠진다. 혁명적 막시스트들도 중앙집권화된 국가에 의해 조직된 사회주의 형태에는 아나키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그러나 많은 특정 상황 - 가령, 최저임금 혹은 민권법 -에서 혁명적 막시스트들은 공산주의를 위한 투쟁을 진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자본주의 국가의 규제력을 지지한다. 그러나 일부 아나키스트들은 국가는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민권법 등은 대중 동원을 통해 관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혁명적 막시스트들은 억압받는 그룹의 삶과 노동 조건을 개선(일시적일지라도) 하는 구체적 투쟁은, 최소한 단기적으로, 국가 권력의 이용을 때때로 피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이런 맥락에서 아나키스트들의 혁명적 순수주의는 자본주의 국가 현실에서 민주주의를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21세기의 혁명적 막시즘과 아나키즘
아나키스트와 혁명적 막시스트 간 많은 생산적 공통점은 현시점에서 매우 관련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두 전통 모두 자본과 국가에 반대하며 지배의 모든 형식이 소멸한 진정한 계급 없는 사회를 추구한다. 두 전통은 적갈색 동맹(Red-Brown Alliance)(권위주의적 사회주의자들과 파시스트들 간 전략적 동맹) 그리고 좌파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다른 이데올로기 형식을 모두 반대한다. 이것은 반국가주의 혁명적 막시즘과 아나키즘에 깊숙이 자리 잡은 민주주의 전통을 말해준다.
한편으로, 아나키스트와 혁명적 막시스트 간 새로운 차이점도 다시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아나키스트는 베네수엘라와 쿠바와 같이 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권위주의적 정권에 대해 반권위주의라는 기치 아래 이들이 미 제국주의의 공격적 위협에 직면하고 있음에도 이들 정권의 전복을 요구해 왔다. 2018~19년, 이들은 미국의 개입도 반대했지만, 베네수엘라의 반정부 대중 집회를 지지했다. 한편, 이들 정권에 비판적이기는 하지만, 혁명적 막시스트들은 이들에 대한 미국과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공격 반대에 초점을 맞춘다.
민주사회주의자가 보기에 이 반국가주의 혁명적 막시즘과 아나키스트 간 차이점은 본질에서 아나키스트 전통 안에 있는 민주적 결함들 때문이다. 아나키스트들의 공산주의 이론과 실천은 처음부터 존재한 기본적 문제들을 다루는 데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분권화와 수평적 조직에 대한 집착은 역사적으로 노동계급 대다수로부터 지지를 받은 적이 없었다. 아나키스트 공산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 복지정책 혹은 그것들을 시행할 수 있는 제도(기관)의 필요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국가가 사라지고, 관료제가 없으며, 상품이 사라진 자유의 세계로 곧바로 도약할 것을 지향했다. 역사 속에서 노동자들은 그들의 열악한 조건을 향상할 수 있는 구체적 제안을 원했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의 분권화된 평의회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팽창하는 시장에 대해 유의미한 대응을 전혀 하지 못했다. 노동자 평의회는 러시아 혁명기 지극히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어느 곳도 통치하지 못했다. 1921년, 혁명 이후 반동적 백색군과의 내전으로 바쁜 와중에 “공산주의자 없는 평의회(soviets without communists)”를 요구하는 아나키스트들의 반란을 접하자, 볼셰비키는 주저 없이 노동자 평의회를 분쇄해버린다. 아나키스트들의 이상적 조직 ‘노동자 평의회’는 제대로 꽃을 피워보지 못한 채 그렇게 세계 역사 뒤편으로 사라졌다. 노동자 평의회는 이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서 직장 내 자치관리체제(Socialist self-management)로 부활되었으나 소련과 마찬가지로 관료화되면서 톱다운 조직으로 변질했다.
자유, 해방 혹은 계급 없는 공산주의와 같은 원칙은 현실의 역사적 정치적 단계에 대한 변증법적 고려를 통해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나키스트들의 바람처럼 모든 노동자와 대중이 어떤 권위에도 지배받지 않는 해방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실에서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당연히 그 전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1921년에 분쇄된 노동자 평의회는 경제(직장) 민주화를 통해 부활할 필요가 있을 것이며, 이 분권적 수평적 풀뿌리 조직이 더 넓은 공동체(가령 국가) 전반의 공익을 위해 작동할 수 있는 정치적 제도도 필요할 것이다. 그 제도는 어떤 종류의 종속, 통제 혹은 지배 없이 시민의 자유가 최대화된 상태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상위 단계의 평의회를 의미한다. 그 구체적 형태는 아나키스트들이 전통적으로 거부해 온 ‘공화주의’(republicanism)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아나키스트들이 이 대안적 정치 제도에 대해 진지한 고려를 할 때, 민주사회주의자들의 탈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운동에 힘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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