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세상 이야기

민주주의는 민주사회주의의 시작이자 끝 - 민주사회주의 이야기 (5)

김 무인 2022. 1. 5. 17:41

** 블로그를 찾아주신 분께 안내드립니다.  좀 더 나은 교열과 가시성/가독성을 원하는 분에게는  '네이버 포스트(링크)' 를 권장합니다.

 

 

 

머리말

 

21세기 오늘날, 여전히 많은 이들이 사회주의에 질색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회주의는 독재주의라는 인식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1917년 러시아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그 현실 모습을 드러낸 이후, 중국을 포함해 오늘날까지 사회주의를 자처한 국가들치고 세계 대중에게 민주적 사회로 인식되는 나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결과, 1990년경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했을 때, 해당 국가의 많은 사람은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국가의 정치 체제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소련과 동유럽 대중은 붕괴 이후, 경제적으로 자본주의를 정치적으로는 자본주의 민주주의, 즉 리버럴 민주주의를 선택했다. 그들은 붕괴의 주원인을 서구식 민주주의의 미비에서 찾은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표현처럼 역시 독재를 그 본질적 특성으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오직 자본주의 국가만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역사적 경험과 달리, 일부 사회주의자들은 오직 사회주의만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어떤 민주주의인가? 그들의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국가의 민주주의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먼저 자본주의 국가의 민주주의에 대해 짚어보자.

 

 

2010년 독일방송국 ZDF에서 만든 로자 룩셈부르크 다큐 (번역: utitel)

형식적 평등으로서 자본주의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기준에 따라 그 정의가 달라진다. 첫째, 민주주의가 포함하는 대상, 즉 시민의 범주가 얼마나 포괄적인가? 이 기준을 따르면 서구의 자본주의 민주주의는 분명 민주적이다. 이전처럼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란 이유로, 혹은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민주주의 제도에서 배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외적 경우가 아니라면 민주적 자본주의 국가에서 모든 시민은 대의 선거제도에 참여할 수 있다. 1인 1표와 같이 자본주의 민주주의는 정치적 평등을 시민에게 제공해 준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두 번째 기준이다. 모든 민주주의 제도의 참여자 - 가령, 대의 선거제도에서 유권자 - 가 의사 결정 과정에 같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이 지점이 자본주의 국가의 민주주의가 끊임없이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지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권자들은 투표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가지지만, 이 영향력의 행사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더 많은 경제적 권력을 가진 사람이 더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들, 가령 무엇을 생산할 것인지(친환경 제품 여부),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화석연료 혹은 재생 에너지), 그리고  얼마나 많이 생산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 과정에 일반 대중과 노동자들이 행사하는 영향력은 지극히 제한된다. 이런 결정은 대부분 선거로 선출되지 않은 자본가들에 의해 내려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업은 항상 비민주적이다. 사업장에서 소수 자본가는 다수 노동자를 상대로 책임지지 않는 권력을 행사하며, 더 나아가 그들의 경제적 지위와 자원을 정치권력을 지배하는 데에도 사용한다. 다른 말로, 자본주의 국가 유권자들의 정치적 평등 권력은 경제적 불평등 권력에 의해 지속해서 훼손된다. 

 

애초 기대와 달리 정치적 민주주의가 자본가의 경제적 독재에 속수무책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을 특히 지난 40여 년간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국가 대중은 지켜보고 경험했다. 자본주의 정치적 민주주의의 이런 한계에 실망한 대중은 대의 선거제도를 점점 더 중요시하지 않게 된다. 결과적으로 유권자의 선거 참여율은 갈수록 떨어지며, 어부지리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힘 없이 더 노골적으로 경제적 이익 추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정치적 민주주의(형식적 평등)와 경제적 민주주의(실질적 평등)의 분리, 다른 말로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권력의 분립이 오늘날 자본주의 민주주의를 본질에서 결함 있는 제도로 만들었다. 이 두 권력의 분립은 자본주의의 탄생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서구의 근대화는 개인주의를 같은 아버지로 하는 이복형제 자본주의와 리버럴리즘에 의해 주도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정치적으로는 리버럴리즘이 콜라보로 자본주의 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 산업자본주의 시대가 열리며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신흥 자본가 계급은 자신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인간이 필요했고, 이에 따라 자유와 평등을 이념으로 하는 리버럴 민주주의를 정치 이념으로 도입하였다. 

 

청년 맑스

자본주의 초기, 프롤레타리아 포함 대중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했던 이 형식적 평등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시간이 갈수록 노동자의 경제적 착취라는 뼈를 취하기 위해 자본가가 내준 살이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정치적 형식적 평등은 경제적 실질적 불평등에, 그리고 정치적 민주주의는 경제적 독재에 압도되기 시작했다. 칼 맑스는 그의 정치적 경력을 사회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로 시작하지 않았다. 그는 정치적 경력을 급진적 민주주의자로 시작했다. 그랬던 그는 이 자본주의의 정치적 민주주의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1843년 말에 자본주의와 결별하고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그에게 자본주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대의민주주의가 당시 빈곤 완화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가와 리버럴은  개인의 기회와 존중에 기반을 둔 형식적 평등을 물질적 혹은 경제적 차원의 실질적 평등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에 열중하고 있다. 이제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는 별개의 영역으로 간주되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있더라도 경제 영역에서  민주화로 해결하려는 움직임 대신, 정치권력에  호소하는 절차가 이제 표준이 되었다.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정치권력의 적극적 개입을 20세기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국가들 그리고 뉴딜 시기의 미국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와 달리 케인스식 자본주의를 채택한 이들 사회였지만, 근본적으로 민주주의가 정치 영역의 형식적 평등에 한정되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12살 때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

형식적 평등의 허구성

 

맑스는 인간은 본래 반사회적이고 이기적이라는 관점을 거부하면서, 대의 민주주의를 초기 지지했다. 그는 정치 제도의 목적이 우리의 이기적 충동을 관리 혹은 억제하는 부정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정치제도는 우리의 사회적 공동체적 본성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정치제도가 정치공동체 안의 대중을 포용하며 개인 간 연결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정치적 민주주의를 강하게 옹호하였다. 그러나 맑스는 리버럴 민주주의자들에 의해 추진된 많은 정책과 제도를 지지했지만, 그들과 다른 토대와 방향으로 나아갔다. 급진적 민주공화주의자 젊은 맑스의 주 관심사는 “왜 정치적 민주주의가 빈곤 완화에 진전을 이룩하지 못하는가?”였다. 맑스는 곧 그 이유가 자본주의 국가의 리버럴 민주주의가 재산을 소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모순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임을 이해하게 된다. “국민 중 일부가 다른 일부보다 더 많은 권력과 재산을 가질 수 있도록 헌법이 권리를 보장한다면, 모든 국민이 어떻게 실질적으로 평등해질 수 있단 말인가?” 맑스는 반문한다.

 

자본주의 국가는 시민 사회의 불평등한 현실과 대조적으로, 형식적 평등의 보증자로서 자신을 종종 내세운다.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다양한 갈등과 긴장으로 야기되는 무질서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그런 면에서 완벽하게 일리가 있다. 자본주의 국가의 평등 관리자 주장은 자본주의 사회의 실질적 불평등에 대한 대응인 셈이다. 하지만 사회 자체가 진정한 평등에 기반을 둔다면 국가에 의한 형식적 평등 선언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맑스는 생각한다.

 

그의 질문은 이어진다. “정치 국가가 재산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면 무엇이 그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가?” 그의 답은 경제적 실질적 평등을 보장하는 새로운 헌법이었다. 그리고 이 새 헌법을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하다고 그는 결론 내린다. 1843년 말에 표명한 맑스의 이 견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와의 결별 그리고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수용을 의미한다. 맑스는 이제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를 폐지하는 사회 혁명을 옹호함으로써, 정치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 그의 초기 급진적 민주적 관점은 이제 진정한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폐지 없이는 달성될 수 없다는 인식에 도달한다.

 

1904년 제2 인터내서널 6차 대회에 참석한 로자(가운데)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관계

 

그동안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방대한 논의와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훨씬 적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는 종종 다른 한쪽이 없어도 존립할 수 있는 별개의 형성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역사상 존재했던 그리고 존재하는 자칭 사회주의 국가 중 민주적이라고 할 만한 사회를 발견하기 힘들다. 즉, 민주주의 없이도 자칭 사회주의 국가로 이행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대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리버럴들은 이들 사회주의 국가가 민주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위에서 언급한 정치적 민주주의, 즉 형식적 평등이다.

 

이런 리버럴과 달리 사회주의자들에게는 다른 의미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적었다. 민주주의는 19세기 중반, 맑스 혹은 다른 이들에게 논의의 중심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 계급이 사회주의를 지지할 것이므로 사회주의 사회는 자연스럽게 민주적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역사에서 보듯, 사회주의 경제를 도입한 사회가 비민주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주적 사회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만이 진정한 자유다" - 로자

지난 100여 년간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없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시도가 많았지만, 그 어느 쪽도 성공하지 못했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상호 불가분 관계 때문이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는 단지 서로 연관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사실 상호 구성적이다. 사회주의는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이미 존재하는 제도에 추가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의 현실화이자 민주주의의 진정한 첫 발현이다. 사회주의 운동은 19세기 위대한 민주화 운동과 함께 일어났다. 사회주의는 무엇보다도 민주주의 이론이었다. 리버럴 민주주의가 봉건 군주의 전횡적 명령에 굴복해야 하는 상황의 해방을 목표로 했다면, 자본가의 전횡적 명령에 굴복해야 하는 상황 역시 해방을 필요로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인 것이다.

 

민주사회주의의 대모이자 선각자인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생활 속 사회주의는 수 세기에 걸친 부르주아 계급 통치로 타락한 대중의 완전한 정신적 변혁을 요구한다… 대중이 재탄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제한이 없는 광범위한 민주주의를 만끽할 수 있는 공공 생활 그 자체다.” 그녀는 “민주주의 없이는 사회주의도 없고(no socialism without democracy), 사회주의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no democracy without socialism)”라고 단언했다. 더 나아가, 사회주의가 일당독재가 아닌 다원적 민주주의 시스템임을 천명한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만이 진정한 자유다"(Freiheit ist immer die Freiheit der Andersdenkenden, sich zu äußern). 역사상 존재했던 자칭 사회주의 국가들 대부분은 민주주의를 철폐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1907년 대중 연설을 하는 로자 룩셈부르크

 

민주사회주의에서 민주주의의 의미

 

지금까지 존재했던 자칭 사회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발견할 수 없었다면, 21세기 민주사회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까? 오늘날, 선거판에 대한 집착은 마치 선거가 민주주의가 태어나고 민주주의가 속한 곳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투표는 대중 참여의 가장 소극적이며 분열적 형식이다. 리버럴 민주주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한, 투표는 자본주의와 어울린다. 왜냐하면, 투표는 민간 기업과 민간 자본 축적을 전제로 하는 사회에 필수적인 개인주의를 반영하고 강화하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민주사회주의는 다른 형식을 상상한다. 사회의 중요 기능을 지휘하고 결정하는 사회 기구에의 직접 참여다. 이 기구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선거판에서 제공해 주는 것보다 훨씬 더 견고한 주권 행사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민주사회주의의 부활은 그 이유의 상당 지분이 그것이 사회주의의 길잡이여서가 아니라, 민주주의, 특히 경제민주주의의 회복자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주의에 대한 흥분은 자본주의가 아닌 보다 평등하고 협동적이며 민주적 사회의 비전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이 경우 사회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한 수단이다. 민주사회주의의 지향점은 노동 없는 사회의 구축 혹은 호사스러운 공산주의와 같은 이상이 아니라, 보다 민주적으로 조직된 사회다. 역설적으로, 소련과 같은 반민주적 사회주의가 붕괴함으로써 진정으로 민주적이고 해방적인 사회주의의 비전이 마침내 세계 인류에게 돌아온 것이다. 민주사회주의의 부활은 자본주의 사회주의 가릴 것 없이, 본질에서 비민주적 사회에 대한 반응이다.

 

민주사회주의 지지자들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동어반복인 것을 알면서도 사용한다. 많은 권위주의 정권과 정당들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악용하고 남용했기 때문이다. 이제 민주사회주의란 용어는 소련과 다른 곳에서 ‘실제 존재했던 사회주의’와 좌파 대부분이 꿈꾸는 사회주의 사회 간 거리를 강조하려는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비교적 새로운 용어이긴 하지만, 적어도 맑스 시대부터 좌파 운동가와 이론가들 사이에 민주사회주의 개념은 존재해왔다.

 

민주사회주의는 민주주의의 개념 확장을 추구하지만, 사회 내 특정 지지 그룹인 노동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사회주의 정치는 역사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계급 정치와 연계되어 있다. 만족스러울 정도로 급진적인 민주주의 혹은 사회주의 개념이 현 자본주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지만, 현존하는 리버럴리즘 정치의 파편들이 민주사회주의로 가는 길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르주아 리버럴 민주주의는 충분할 만큼 사회주의적인 적은 없었지만, 유색인종, 젠더 그리고 성적 정체성에 대한 포용성을 향한 새로운 투쟁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19년, 폭도군인(프라이콥스)들이 로자를 죽인 후 시신을 던져버린 운하에 세워진 기념조형물

민주사회주의는 풀뿌리 민주주의 사회주의

 

통상 사회주의는 전통적으로 개혁주의(reformist) 대 혁명주의(revolutionary), 혹은 민주주의(democracy) 대 독재주의(dictatorial)로 구분된다. 비록 이 구분이 여전히 유효하지만, Hal Draper의 ‘위로부터의 사회주의’와 ‘밑으로부터의 사회주의’ 구분이 민주사회주의를 이해하는데 더 효과적이다. 이 구분에 따르면, 추정 상 반대일 것 같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소련 및 동유럽의 관료적 집단주의, 그리고 유토피안 모델이 모두 같은 카테고리인 위로부터의 사회주의에 속한다. 그들 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모두 소련식 공산당이 되었든, 의회가 되었든, 아니면 유토피아 사상가가 되었든, 엘리트들에 의해 사회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밑으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그룹은 사회주의는 오직 밑으로부터 대중의 자기활동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하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밑으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지향하면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간 불가분 관계가 명확해진다:민주주의는 사회주의의 수단이자 목적이다. 민주사회주의는 정확히 이 밑으로부터의 사회주의, 즉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이 과정에서 토론과 실험은 필수적이다. 실수도 할 것이다. 그러나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했듯, “혁명적 노동운동을 진심으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는 가장 훌륭한 중앙위원회의 무결함보다 역사적으로 훨씬 더 생산적이고 가치가 있다.” 따라서 민주사회주의에서 풀뿌리에 해당하는 개인의 권리와 정치적 자유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베를린에 세워진 로자 동상

좌파 내 일부는 자본주의 민주주의의 총체적 한계와 위선을 핑계로 리버럴 정치적 자유를 아예 거부하거나, 심지어 리버럴 민주주의 개념을 폄하하기도 한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고 맑스의 입장도 결코 아니다. 맑스는 부르주아 정부의 검열에 반대하여 언론의 자유를 옹호했고, 이 원칙에서 한 번도 후퇴한 적이 없었다. 민주사회주의자는 현 자본주의 민주주의에서 단지 말뿐만 아니라, 화석연료 기업과 같은 기득권에 도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조직해 투쟁할 수도 있다. 투쟁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 대중을 참여시킴으로써 참여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사회주의’라는 용어에 ‘민주’라는 단어를 더한 것은 공공 소유권은 최대한 민주적으로 통제되어야 하며, 경제는 소수가 아닌 대중의 이익을 위해 운영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럽에 현존하는 대부분 사회민주주의도 혼합 비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사적 소유권/ 관리 그리고 공적 소유권/관리가 혼합되어 있다. 민주사회주의는 공산당 간부가 국가 기구를 통제하고, 그 통제를 통해 권력을 키워가는 소련과 중국 방식과 같은 ‘관료적 집단주의’와 차별화된다. 사회 차원이든 국가 차원이든 집단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그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모든 패러다임은 필연적으로 엘리트 지배를 초래한다. 레닌주의에 영감을 받은 많은 정권은 억압적 보수 그리고 파시스트 정권과 마찬가지로 개인들이 주축인 모든 형태의 자율적 조직에 반감을 보이는 것이 그 예다.

 

민주사회주의는 일정 수준의 국가 계획 혹은 국가 소유를 포함하지만, 시민의 인권과 자유는 그런 권력의 집중화로부터 보장될 것이다. 시민의 인권과 자유가 발전하고 보호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필수적이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핵심적 교훈은 권력은 부패한다는 것이다. 소위 노동자 정당이 이끄는 노동자 국가의 순수성에 대한 이상적 언어들은 1917년 이래 끔찍한 실험을 통해 반복적으로 망상임이 판명되었다. 국유화가 최소한 특권 계층의 개인적 상속을 막는다고 스스로 위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중국과 소련 과두제 집권층들의 부 축적 과정을 추적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 특권 계층은 노골적 원시적 축적을 통해 매우 빠르고 효과적으로 정치적 권력을 경제적 권력으로 전환한다. 

 

 


"붉은 로자도 사라졌네
그의 몸이 쉬는 곳조차 알 수 없으니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말했고
그 때문에 부자들이 그를 처형했다네"

- 베르톨트 브레히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