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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수단의 국유화가 아닌 생산과정의 민주화
민주주의 이론가 로버트 달(Robert Dahl)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민주주의가 국가를 통치하는 데 정당화된다면, 기업을 통치하는 데에도 정당화되어야 한다; 기업을 통치하는 데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국가를 통치하는데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민주사회주의자들이 리버럴 민주주의자들과 다른 점은 민주적 가치의 이런 논리적 확장이다. 사회주의자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 국가의 정치 민주주의와 경제 민주주의의 분리는 근본적 문제이자 모순이다. 따라서, 정치 민주주의는 기껏해야 자본주의 내에서 일시적인 권력 재분배를 낳을 수 있을 뿐, 진정한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주의로의 성공적 이행은 경제 민주주의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현재 한국을 포함해서 자본주의 국가에서 종종 언급되는 경제민주화는 민주사회주의에서 말하는 경제 민주주의가 아니다. 경제 영역에서 자본가의 권력 행사 그리고 시장의 힘을 국가가 일정 수준 통제하여, 노동자를 포함한 비자본가 대중이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불균형적으로 감당했어야 할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일 뿐이다. 민주사회주의가 지향하는 경제 민주주의는 구조의 근본적 변화다. 이 경제 민주주의가 민주사회주의의 중추적 이념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으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케인스주의에 기반한 복지국가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에 자리를 내줌에 따라 갈수록 심화하는 경제적 불평등이고, 다른 하나는 소련과 동유럽과 같이 생산수단을 국유화한 역사상 존재했던 사회주의 국가에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생산과정에서 소외되었다는 인식이다.
1989~91년 동유럽과 소련의 붕괴 그리고 이에 따른 기타 지역의 사회주의 쇠퇴는 사회주의자들이 엄격한 자기비판을 하게 하였다. 19세기에 이어 과도한 국가주의가 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많은 정권이 산업과 기업을 국유화했지만, 노동자와 인민에게 큰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 생산수단의 소유권이 민간 자본가에서 국가로 바뀌었지만, 노동자는 여전히 생산과정에서 소외된 채, 직장에서의 노동자 통제권은 구체적 알맹이 없는 슬로건에 그쳤다. 국유화 혹은 사회적 소유가 노동자 소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이 드러났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사회적 소유로 전환하고, 분배 수단으로서 시장을 계획에 종속시킨 것은 필요한 것이었지만, 사회주의로의 전환에는 충분조건이 아니었음이 증명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것은 맑스에게는 예견된 것인지 모른다. 맑스 시대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많은 사회주의자는 부르주아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철폐하고 집단 혹은 국가 소유로 대체하면 사회주의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맑스는 소외된 임금 노동 형식을 없애지 않은 상태에서 사유재산을 철폐하는 것은 오히려 모든 인간에게로 소외가 확산된 집단화 사회로 이끈다며 이들을 ‘조잡한 공산주의자’로 비판했다. 맑스가 보기에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자 소외의 근본적 원인은 생산수단에 대한 노동자 소유권의 부재가 아니라, 생산과정에 있어 자신의 노동 활동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의 부재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소외된 노동을 타파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 조건으로, 생산수단에 대한 ‘민주적’ 통제권을 확보해야 한다. 이럴 경우, 소유권 폐지는 자연스레 따라 온다고 맑스는 생각했다. 이런 면에서 폐쇄된 공장을 하나의 커다란 노조로 통합해 협동조합으로 전환 후, 생산에 대한 노동자 통제권을 확립하려고 한 1871년의 파리코뮌은 맑스에게 전면적 사회주의로 향해 바른길을 가는 것으로 비쳤다.
20세기에 존재했었던 사회주의 국가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소유권의 국유화/사회화에 초점을 맞춘 ‘거시경제적’ 변화에만 집중했다. 개별 기업(공장, 사무실 그리고 상점 등)의 내부 조직 구조에 관해서는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고용주 대 종업원 위계질서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적절하고 필요한 모델로 폭넓게 비판 없이 받아들여졌다. 사회주의는 단지 부분적으로 혹은 전면적으로 고용주를 민간 자본가로부터 국가 관료로 바꾸었을 뿐이다. 사회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가 통제관이 이사회 참여 형식으로 고용주 계급의 일부가 되어, 기업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민간 자본가와 함께 기업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회주의자들의 이런 자기 비판적 성찰은 사회주의의 미시적 단계, 즉 개별 기업의 내부 조직 구조에 초점을 맞출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20세기에 존재했었던 사회주의와 달리, 민주적이고 생존력 있는 시스템이 되기 위해서 새로운 사회주의는 ‘미시적’ 토대를 추가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미시적 토대는 자본주의 그리고 고용주 역할을 할 사람만 바꾼 20세기 사회주의의 고용주/종업원 조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기업 내부 조직을 의미한다. 고용주/종업원은 그 이전 계급 사회의 주인/노예 그리고 귀족/농노의 착취 형식과 다를 바가 없다. 21세기 사회주의 기업의 미시적 토대는 고용주가 사라지고 종업원 자신이 생산활동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기업의 이 미시적 토대는 경제 민주주의를 완성할 것이다.
경제 민주주의는 직장 민주주의; 그 모습은?
경제의 민주화 원리는 실제 서구의 폭넓은 정치적 전통 안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름하여 ‘공화주의(republicanism)’다. 공동체 전반의 공익을 위한 자치로 해석되며 시민의 자유를 최대화하도록 디자인된 특정 정치적 제도이다. 민주화된 경제에서는 생산수단의 소유자/관리자도 생산 관련 결정을 위한 표결에서 단 한 표만 행사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개인 소유의 기업 형태는 폐지되거나, 오늘날 주주처럼 인위적 사람의 형태로 개별 종업원의 투표를 뛰어넘어 경제적 권력을 행사하는 형식은 없을 것이다. 기업의 모든 결정은 개별 노동자로 구성된 ‘노동자 집단’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이것이 직장 민주주의의 모습이다. 이런 형식의 기업 운영 구조는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역사상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했었다: 러시아 혁명 직후의 ‘노동자 평의회’(worker’s council), 과거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의 ‘자치관리제’(self-management), 제한된 형태이지만 오늘날의 스페인 몬드라곤 기업(Mondragon Corporation)과 같은 ‘노동자-협동조합’(work-cooperative) 그리고 Richard Wolf의 개념, ‘노동자 자체 주도 기업’(Workers’ Self-Directed Enterprises: WSDEs) 등이 그것이다.
각 기업을 이끌게 되는 노동자 집단은 자신이 주인이기 때문에, 이전 자본가 고용주들이 수행했던 역할 그리고 그 이상을 수행한다. 우선 자기 기업과 교류를 하는 다른 기업들, 기업 내 개별 노동자들, 기업 생산품의 소비자들, 그리고 지역 공동체(지역, 지방, 국가 및 국제)와의 관계를 조율할 것이다. 민주적으로 조직된 기업들이 민주적으로 조직된 주거 공동체들과 교류하며 상호 존중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이전 개별 노동자에게 부과되었던 개인 세금과 더불어 사업체에 부과되는 세금을 낼 것이며, 만약 있다면 국채의 기업 구매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전 고용주 계급을 대신하여 국가와 사회에 정치적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므로, 국가는 일반 대중 외에도 기업의 노동자 집단에게 다양한 방면에서 지지를 구하려고 할 것이다.
노동자 집단의 모든 노동자는 기업의 잉여 또는 순이익 분배 방법을 민주적 투표로 결정할 것이다. 이를 위해, 유고슬라비아 노동자치관리제의 유명무실을 교훈 삼아, 21세기 민주화된 기업의 노동자 집단은 개별 노동자의 자치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각종 제도들을 신설하고 활성화할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자 집단의 모든 노동자는 두 개의 직무 기술서를 가질 것이다. 하나는 노동자로서 기업 내 노동 분업에 따른 특정 업무에 대한 직무기술서이며, 다른 하나는 기업 운영자로서 기업 전반의 경영 방향, 설계 그리고 전략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참여하여야 할 교육을 포함한 업무에 대한 직무기술서이다.
인간과 노동의 가치가 언제나 평등한 경제 민주주의하에서도 개별 노동자에 대한 보상의 차별은 있을 것이다. 노동자 집단의 어떤 구성원이 기업의 이익을 위해 특출나게 기여할 경우, 노동자 집단 평균 보수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고난도의 관리 책임, 혁신적 기술 개발, 그리고 기업 확장 등 예외적 능력을 발휘한 노동자가 그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보상은 권력을 추가로 부여하는 형식은 아니며, 보상 범위는 노동자 집단의 토론을 거쳐 민주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이 집단의 구성원 노동자들은 기여도가 높은 동료 구성원을 위한 차별화된 보상에 기꺼이 찬성할 것이다.
임금 보상 범위의 예를 들면,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시간당 20달러, 대략 연간 4만 달러의 급여를 받는다면 한 기업 내 가장 낮은 급여와 가장 높은 급여 간 격차는 3 대 1 정도로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 간 노동자당 수익성도 비슷한 격차(3 대 1)를 보인다고 가정하면, 국가 내 노동자의 가장 낮은 소득과 가장 높은 소득 간 격차는 10 대 1 정도가 될 것이다. 종업원이 8만 명이 넘는 몬드라곤의 경우, 최저 임금을 받는 노동자와 최고 임금을 받는 CEO 간 임금 격차가 5 대 1 정도인데, 대부분 노동자가 최저임금보다 많이 받으므로 이 격차는 실제로는 더 작다. 반면, 2020년 미국의 CEO는 평균 노동자 임금의 351배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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