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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시장사회주의’(Market Socialism)란 개념은 정통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일부 좌파에게 ‘개량주의’ 혹은 ‘수정주의’란 표현을 들으면 다행이고, 많은 경우 부르주아적 혹은 반 막시즘이란 혹독한 비난을 듣는다. 하지만 시장사회주의 이론은 매우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졌다. 따라서 경제시스템에 시장이란 용어 혹은 원리가 포함되었다고 듣자마자 무조건 경기를 일으키며 반대할 일은 아니다. 민주사회주의자들이 신경 쓸 대목은 경제시스템 내에 시장 개념이 들어가 있는지가 아니라, 시장이 시스템 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가이다.
현재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Socialist Market Economy:SME) 혹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Socialism with Chinese characteristics)라고도 불리는 경제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1970년대 박정희가 표방한 ‘한국식 민주주의’의 실체가 독재였듯이, 앞에 ‘사회주의’가 들어가 있지만 ‘시장경제’에 방점이 찍힌 용어이고 실체도 그렇다. 따라서, 많은 학자가 현 중국의 경제시스템을 사회주의 경제라고 부르지 않고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시장사회주의는 시장이란 단어가 앞에 붙었지만, 사회주의로 개념을 마무리 짓는다. 그렇다면 시장사회주의는 시장 개념을 포함하지만, 여전히 본질에서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이 아닐까 궁금증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과거 소련 그리고 현재의 중국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실험이 이루어진 다른 국가에서도 “계획(plan)이냐 시장(market)이냐?”는 많은 논쟁 중에서도 가장 중심적 논쟁이다. 중앙집권화된 계획이 어느 정도까지 시장 교환을 대체할 수 있는가? ‘시장사회주의’ 옹호자들은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적 계획’ 옹호자들은 ‘그럴 수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맑스 시대에는 역사적 실험 결과의 부재로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21세기의 우리는 20세기 사회주의 실험으로부터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중앙집권적 계획이 산업화를 추구하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경제에는 극적으로 긍정적 변화를 줄 수 있지만, 현대의 산업 경제는 상세하고 포괄적 중앙 계획으로 운영하기엔 너무 복잡해졌다. 따라서, 이 바뀐 사회경제 환경에 적용될 수 있는 사회주의 경제 모델을 찾아야 하는 것이 민주사회주의자들의 과제이며 이 과정에서 경제시스템 내 시장의 역할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게 된다.
여기서 핵심 질문은 사회 내 시장의 위치다. 설사 자본주의 이후 사회주의 사회가 미시적 차원에서 노동자 소유 기업(가령, 오늘날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들로 구성된다 해도, 거시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시장시스템이라면 생태적 위기를 포함해 현재 우리가 직면하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노동자 소유 기업들은 시장의 정치적 경제적 힘에 의해 여전히 현재와 같이 같은 물건을 같은 방식으로 생산할 것을 요구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에 시장 원리를 도입하더라도 이 시장을 어떻게 ‘민주적 계획’의 통제하에 둘 수 있는지에 따라서 ‘시장사회주의’인지 ‘사회주의 시장경제’인지 판가름 날 것이다. 아래는 ‘경제민주주의’(Economic Democracy)라는 이름으로 David Schweikart가 제안한 시장사회주의 모델이다.
시장의 구분
맑스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주의 깊게 읽으면, 맑스의 비판은 사실 시장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은 세 영역에 걸친 시장이다: (1) 상품과 서비스를 위한 시장, (2) 노동 시장 그리고 (3) 자본 시장. 맑스의 비판은 이 중 노동과 자본 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착취는 노동 시장에서 ‘노동의 상품화’와 함께 시작했다. 노예제와 봉건제에서의 노골적 착취가 자본주의의 노동 시장에서 두 ‘자유로운’ 주체의 매매계약에 뿌리를 둔 고용주와 피고용인이라는 형태의 착취로 변한 것이다. 따라서 맑스의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이런 이해를 기반으로 우리는 '경제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새로운 시장사회주의 경제시스템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상품과 서비스 시장의 유지
'경제민주주의'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위한 시장은 존속한다. 지금처럼 기업들은 소비자를 위한 상품과 서비스 판매를 놓고 경쟁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상품과 서비스가 판매와 경쟁의 대상은 아니다. 의료와 교육과 같은 많은 것들은 납세자가 지원하는 ‘공공재’(public goods)로 지정되어 필요한 사람에게 무료로 제공될 것이다.
과거 소련에서는 소규모 기업들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었다; 소규모 기업들은 자본주의로의 회귀 위험 그리고 계획 개념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중앙 계획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버리면, 사회주의 사회에서 소규모 기업을 장려할 강한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사업과 협동조합을 시작하는 것은 지역 주민에게 그들이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고용을 제공하고, 지역 공동체의 필요를 충족시키며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들 기업은 직원, 고객 그리고 환경 관련 이슈들을 관리하는 규제 시스템 내에서 운영되어야 하며,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지면 조직 구조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노동의 탈 시장: 직장 민주주의
'경제민주주의'에서 대부분 기업은 자본주의하에서의 기업들과 매우 다를 것이다. 그것들은 팔거나 살 수 있는 독립체가 아니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형식의 임금노동은 협동 노동(cooperative labor)으로 대체될 것이다. 경제민주주의에서 기업은 하나의 공동체다. 사람들이 자신의 거주지를 통치하는 시 혹은 지역 카운슬의 투표권을 가지듯, 노동자는 입사하면서 노동자 평의회 멤버 선출권을 가진다. 이 노동자 평의회는 고위 관리자를 임명하고 주요 기업 결정을 감독한다. 모든 노동자는 기업이익을 나누어 가질 것이다. 노동자 간 이익 배분 비율은 같을 필요가 없다. 이 비율은 각 노동자의 기업에 대한 기여도를 근거로 노동자들에 의해 민주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직장 민주주의에 관해서는 이전 포스트 '민주사회주의에서 경제민주화란? - 민주사회주의 이야기 (6)'를 참조하기 바란다.
자본의 탈 시장
노동 시장을 벗어난 노동이 직장 민주주의를 통해 민주화되듯, 자본도 금융시장을 벗어나 민주화될 것이다.
금융 시스템은 사회주의 미래에서도 자본의 희소성 덕분에 여전히 게이트키퍼 역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신용을 제공하는 기관은 사회에 대한 가치와 대출을 신청한 기업 혹은 가구의 특성을 모두 고려하여 대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것이다. 이들 기관이 신용도를 평가하고 자본을 배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의사결정 규칙은 현재의 규칙과는 다를 것이다. 자본주의 자본 시장에서 금융 기관은 가장 수익성 높은 기업에게 최상의 자본 조달 기회를 제공하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된다. 민주화된 금융 시스템에서의 결정은 프로젝트의 가치와 성공적으로 완료될 가능성에 기반을 두고 내려질 것이다. 더 나아가 국가와 비영리 금융기관 모두 사회의 가장 긴급한 부분을 다루는 기업에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자본을 배분할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일부 지역에서 저렴한 주택의 공급이 불충분했다면 이 지역에 주택 공급을 하는 기업들은 우선으로 자본에 접근할 것이다. 이에 반해, 오직 고소득 소비자들이나 구입 가능한 사치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신용 대출 신청 때 훨씬 더 높은 금리에 직면할 것이다. 이 새로운 금융 시스템은 소규모 비즈니스와 협동조합 기업에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적용될 것이다. 이 기업들이 양질의 보육이나 노인 돌봄과 같은 중요한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킨다면 이들 역시 유리한 금리를 적용받을 것이다. 가계 대출은 다소 다른 기준이 적용될 것이다. 대부분 경우, 카테고리별로 표준 금리가 적용될 것이다. 성인들에게 고등교육과 고급 기술교육을 무료로 제공하는 사회에서도, 일부 가구는 교육이나 훈련에 집중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줄였을 때 발생하는 소득 손실을 상쇄하기 위해 대출을 받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자본의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는 소련과 동유럽 그리고 아시아 지역의 국가 사회주의 경험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이들 사회는 고도로 훈련된 기술관료 집단이 사회에 중요한 모든 투자 결정을 내리는 중앙 계획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경제적 정치적 측면에서 모두 문제점을 드러냈다. 사람들의 필요와 기술이 수시로 변하는 상황에서, 소수의 계획자가 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정치적 측면에서, 권력이 이 계획자들에게 집중된 것은 인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 결정은 인민 자신이 내린다는 사회주의 사회의 비전에 반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들 사회에서 계획자들을 포함한 공산당 엘리트는 새로운 지배 계급이 되었다.
자본의 민주화를 위한 새로운 금융 시스템 구축에서의 도전은 위와 같이 자신의 지위를 자신의 권력과 특권 강화에 사용할 수 있는 엘리트 그룹에 이 권력이 집중될 기회를 줄이는 제도적 설계를 하는 것이다. 분권화를 통한 견제와 경쟁은 엘리트 권력을 견제하는 한 메커니즘이 될 것이다. 분권화와 더불어 서로 다른 금융 업무를 여러 기관으로 나누는 것도 타당성이 있다. 물론, 이 경쟁이 파괴적 형태로 이어지지 않도록 규제 구조가 작동해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는 훨씬 더 평등한 임금 체계 그리고 의료와 고등교육에 대한 대중의 무료 접근을 제공하겠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현실 소득으로는 당장 지불할 수 없는 필요(needs)를 여전히 가질 것이다. 따라서 가까운 미래에는 모든 가구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비차별적 신용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이 신용시스템은 1인 1표를 행사하는 조합원으로 구성되어 가계와 소기업에 금융을 지원하는 신용조합(credit union)으로 조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프라와 대기업을 상대로 하는 금융기관을 협동조합으로 조직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이 경우 부를 탈취할 수 있는 엘리트 그룹을 만들어 낼 뿐이다. 대신, 이런 기관은 선출 기관으로부터 운영의 자율성을 가진 공공 기관으로 조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조직들도 궁극적으로는 국가 혹은 다양한 정부 기관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금융기관은 비영리 기반으로 운영될 것이다. 정부기관이 소유하는 금융기관들은 이익을 정부 기관에 환원할 것이다. 수백 혹은 수천 명의 개인 멤버가 소유주인 조합은 이익을 조합원들에게 균등하게 배분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민주주의'는 모든 기업에 대한 단일 세율의 재산세를 의미하는 ‘자본자산세’(capital-asset tax)를 통해 투자 자금을 공적으로 투명하게 조성할 것이다. 투자 자금은 장기적 사회발전의 중심이며 따라서 민주적 통제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자본주의 경제처럼 자금 조성과 투자를 민간 투자자에게 의존한다면 투자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자본자산세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주주 및 채권자에게 자본 공급을 대가로 지불하는 이자와 배당금을 대신할 것이다. 또 오늘날 대기업이 기술적으로 회피하는 법인소득세도 이 세금이 대신할 것이다. 이 자본자산세 수입이 ‘국민투자기금’이 되며 모든 자본자산세 수입은 경제에 재투자된다. 개인 소득세 그리고/혹은 소비세는 정부의 다른 서비스와 일상 지출을 위해 사용될 것이다.
이렇게 조성된 공적 자금인 ‘국민투자기금’은 시장 기준과 더불어 국가, 지방 그리고 지역공동체 계획을 모두 고려하여 배분될 것이다. 국민투자기금의 일정 부분은 국가 공공사업에 배정되고 나머지는 지역별로 배분될 것이다. 각 지역은 기금을 놓고 경쟁하지 않는다. 대신, 각 지역은 통상 인구 비율에 따라 투자기금의 공정한 몫을 권리로서 매년 받는다. 지역 공동체는 지역 내 ‘공공 투자은행’을 통해 기술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사업구조를 조정하거나, 생산 확대를 원하는 기업들에 이 자금을 빌려준다. 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는 개인과 기업에도 대출해 준다.
개인 저축으로 조성된 자금은 투자 자본이 될 필요가 없으므로 통제 대상이 될 필요가 없다. 신용조합 혹은 노동자 협동조합으로 구성된 독립적 저축/대출 협회는 개인에게 소비자신용을 제공하고, 빌린 사람들은 이자와 함께 상환하게 된다. 주택담보 대출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이 대출의 주요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상품과 서비스 시장의 유지, 직장 민주주의 그리고 민주적 투자 통제가 '경제민주주의'의 핵심 특징들이다.
사회주의에서 기업가의 역할
맑스는 자본주의에 대한 날카롭기 짝이 없는 비판에도, 사회에서 ‘기업가’(entrepreneur)의 역할을 무시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의 분석은 자본 제공자로서의 자본가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부’ 자본가가 수행하는 다른 기능은 창조적 ‘기업가’ 역할이다. 이 역할은 자신만의 작은 사업을 시작한 다수의 ‘소자본가’에 의해 수행되지만, 혁신적 생각을 주요 산업으로 만든 소수의 ‘대자본가’에 의해 수행되기도 한다. 비록 ‘직장 민주주의’가 '경제민주주의'의 표준이지만, 모든 사업체가 이를 따를 필요는 없다. 소 자본가는 에너지, 진취성 그리고 소규모 사업을 운영할 능력을 가져와 열심히 일한다. 소규모 사업은 많은 이를 위한 직업을 제공하고, 더욱 더 많은 사람에게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소자본가는 사회주의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우리의 새로운 시스템에는 또 주요 기술과 조직 혁신을 도입한 대규모 기업가적 자본가를 위한 명예로운 역할이 있다. 기업가적 자본가 계급은 우리 경제의 민주적 구조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 민주적 기업들은 그들이 투자 자금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한, 이들 자본가 기업들과의 경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들 자본가 기업은 민주적 기업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이익 분배와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놓고 그들 자신의 운영 방식을 민주화해야 하는 압력에 직면할 것이다. 더 나아가, 다소 간단한 법적 장치가 이 자본가 계급을 견제할 것이다. 예를 들어, 기업의 판매, 창업자 퇴직 혹은 사망의 경우 국가에만 매각이 가능하며, 국유화된 기업은 이후 노동자 집단이 관리하게 된다.
민주적 기업들은 해외로 이전하지 않고, 투자 자금도 공적으로 조성되어 법에 따라 국내 기업에만 투자되어야 하므로, 직업도 자본도 유출되지 않을 것이다. 매입할 주식이나 민간 기업(소규모 사업 제외)도 없으므로, 많은 외국 자본(있다면)이 국내로 유입되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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