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세상 이야기

녹색 식민주의(Green Colonialism), 엘사를 울리다

김 무인 2022. 2. 12. 11:48

 

** 블로그를 찾아주신 분께 안내드립니다.  좀 더 나은 교열과 가시성/가독성을 원하는 분에게는  '네이버 포스트(링크)' 를 권장합니다.

 

 

 

알자지라에 올라온 기고문 중 하나가 나의 눈길을 끈다. ‘Norway must stop violating Indigenous rights’(노르웨이는 원주민 권리 침해를 중단해야 한다)라는 제목을 가진 이 기고문은 제목이 말하듯 물론 원주민 권리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원주민 권리 보호 차원을 넘어,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기후변화를 억제하기 위한 선진 자본국가의 현행 소위 녹색 정책이 어떤 모순과 위선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 기고문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문제의 Fosen 풍력발전소

 

2013년부터 2021년까지 노르웨이는 Erna Solberg 수상이 이끄는 보수당(Conservative) 연합정권이 통치하에 있었다. 이 기간 노르웨이 Fosen 지역에 대규모 풍력발전소가 건설되었다. 2016년에 시작하여 2021년 3월 완성된 이 프로젝트(Fosen Vind)에 11억 유로가 투입되었다. 이 풍력발전소의 최대 주주는 국영기업 Statkraft(52.1%)다. 즉, 국책 사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2016년 착공 당시부터 환경보호 운동가와 해당 지역에서 순록 목축을 하는 원주민 사미족(Sami people)의 반대에 부딪혔다. Sami족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겨울왕국의 무대가 되었던 노르웨이 북부에 거주하는 원주민이다. 그러나 적법 절차를 밟았다고 주장하면서 국영발전소 측은 공사를 강행했고, 2021년에 발전소는 완공되었다. 초기부터 발전소 건설을 반대했던 원주민 사미족은 지방법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어진 법정 공방 끝에 발전소 완공 이후인 2021년 10월, 노르웨이 대법원은 이 발전소 건설이 국제인권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을 위배했다면서 허가 무효를 선언했다.

 

 

사미족(Sami people)의 젊은 여성. 엘사를 연상시킨다.

 

이 대법원 결정을 환영한 원주민, 환경보호 운동가 그리고 법학자들은 완공된 풍력발전소를 해체하는 것이 법원 결정에 대한 유일한 실행방안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11억 유로를 이미 투자한 상태에서 프로젝트를 취소할 경우, 공동 참여한 민간 기업에 수 억 달러를 배상해야 할 처지에 놓일 노르웨이 정부는 환경 영향 재평가와 그에 따른 후속 조치 제시로 어떻게든 넘어가려고 하는 상황이다.

이번 노르웨이 대법원 결정과 이에 대한 노르웨이 정부의 초기 대응은 21세기 인류가 그리고 각 국가가 탈 화석연료 친환경 재생에너지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번 노르웨이 대법원 결정은 풍력이 친환경 에너지라는 이유로 다른 자연적 사회적 요소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위 녹색운동(Green Movement)이라고 다 환영할 것은 아닌 것이다. 무엇을 위한 그리고 누구를 위한 녹색인가를 반드시 물어보고 넘어가야 한다. 이번 경우 원주민 사미족 눈물 위에 구축될 노르웨이 주류 백인을 위한 녹색이 그 본질인가? 한 국가의 녹색운동은 이처럼 그 구현 방식에서 국가 내 사회적 약자/소수 혹은 다른 국가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소위 Green Colonialism(녹색 식민주의)이다.

노르웨이는 대외적으로 기후환경 변화에 선도적으로 대처하는 나라처럼 보인다. 전기의 대부분은 수력발전으로 생성되며 빌딩 난방에 화석연료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2021년 8월에 팔린 신차의 70%는 전기차이며, 세계에서 최초로 탄소세(carbon tax)를 1991년에 도입한 나라이기도 하다. 개발도상국의 산림 황폐화를 막기 위해 상당 자원을 기증하고 Green Climate Fund의 최고 기여자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한 많은 연구 투자를 진행함으로써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인다.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선진국이다. 원유와 천연가스는 노르웨이 수출의 41%, GDP의 14%, 정부 수입의 14% 그리고 고용의 6~7%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천연가스 수출국이며 원유 최대 수출국 중 하나이다. 그리고 당분간 관련 석유제품의 증가는 계속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더 나아가, 1인당 에너지 소비는 유럽의 나머지 국가보다 높다. 1990년 이후 온실가스 배출은 거의 줄어들고 있지 않다. 그리고 전 세계가 2030년까지 최소한 50%~55% 감축을 목표로 하는 탄소 배출도 지금 추세라면 노르웨이는 오직 14%~21%만 달성할 수 있을 뿐이다.

노르웨이의 이 지킬과 하이드 같은 모습은 대외 정책에서도 잘 드러난다.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 천연가스 수출 대국인 노르웨이는 유럽의 현 에너지 부족의 완화를 명분으로 20억 입방미터의 천연가스 증산에 동의했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가난한 나라들이 천연가스를 자체 생산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아프리카를 포함한 다른 지역 국가의 천연가스 개발 프로젝트에 어떤 투자 지원도 하지 않도록 World Bank에 압력을 넣는 것이 그 한 예다. 노르웨이는 이들 국가가 대신 녹색 수소(green hydrogen)와 마이크로 그리드 네트워크(micro-grid networks)와 같은 청정에너지를 개발하는데 World Bank가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르웨이 전 수상 에르나 솔베르크(Erna Solberg) (2013~2021)

 

그러나 노르웨이의 주장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가증스럽다. 기존의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 시설조차 아무리 빨리 지어도 저개발 국가가 생활 수준 향상과 산업 발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데 턱 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어쩌면 가장 비싼 고급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이 청정에너지 개발을 이들 국가에 권장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대체 에너지가 개발되어도 화석연료를 보완재로 당분간 활용해야 할 상황에서, 그나마 가장 깨끗한 화석연료인 천연가스 자체 개발에 대한 투자를 멈추라는 노르웨이의 요구는 그 저의가 훤히 보인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노르웨이 수상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데 원유와 천연가스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결론은 간단하다. “가스는 앞으로도 우리만 생산할 테니까 탄소 배출은 알아서 낮게 유지해. 그러면 우리가 자선을 베풀께!”

이것이 21세기 식민주의의 녹색 버전, 녹색 식민주의(Green Colonialism)다. 이 위선은 노르웨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바이든은 거창한 목표를 내세웠지만, 뒤에서는 대규모 원유 증산을 석유기업에 요청했고, 지금은 퇴임한 독일 메르켈 총리도 독일 내 석탄 사용 금지에 거의 20년이라는 넉넉한 시간을 허락했다. 이것이 선진국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둘러싸고 개발도상국을 대하는 기본 입장이다. 사하라 이남 48개국의 10억 명이 넘는 사람은 지구 탄소 배출에 1%도 기여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천연가스만을 사용해 전기 공급을 3배로 늘린다 해도 전 지구적으로 1%의 탄소 배출 증가에 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