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세상 이야기

막시스트가 바라본 2022년 2월의 세계

김 무인 2022. 2. 15. 11:38

** 블로그를 찾아주신 분께 안내드립니다.  좀 더 나은 교열과 가시성/가독성을 원하는 분에게는  '네이버 포스트(링크)' 를 권장합니다.

 

 

 

역자 머리말

 

지난 1월, 미국과의 국경을 넘나들며 운전하는 캐나다 트럭 운전사에 대한 백신주사 의무화에 반대하는 시위(Freedom Convoy)를 필두로, 지금까지 세계 여러 곳에서 이 백신 의무 접종 의무화에 대한 동조 반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옆 나라 호주를 포함해 뉴질랜드에서도 웰링턴 의회를 중심으로 연대 랠리가 이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뉴질랜드에서 벌어지는 시위에 참여한 적이 없다. 블로그를 둘러본 분들을 느끼겠지만, 나 같은 ‘프로불편러’는 어쩌면 시위에 참가했어도 아주 많이 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영어가 여전히 서툴다는 이유로, 백인과 마오리 사이에서 아시안으로서 쭈뼛거림이 싫다는 이유로, 또 나이가 있다는 이유 등을 핑계로 참여하지 않았다. 입으로는 풀뿌리 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를 항상 주장하지만 내가 뉴질랜드의 밑으로부터의 민주주의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바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나이지만 이번 시위는 내가 참여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한다. 이들 시위는 분명 백신 의무화에 대한 반대가 주 명분이다. 개인적으로 ‘백신 의무화 = 자유에 대한 탄압’이라는 공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국가로 대표되는 다양한 단위의 정치적 공동체로부터 부과되는 많은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우리는 ‘공익’(common good)이라는 대의를 위해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실제 그렇게 하고 있다. 백신 의무화가 공익을 벗어난 혹은 다른 저의를 가진 국가의 권력 행사인지에 대해 확신이 없다. 백신의 효능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지만, 차선책 혹은 차악책으로 어떤 과학적 대안이 그들에게 있는지 잘 모르겠다. 따라서 내가 이번 시위에 참여하고 싶다는 충동은 이 개인주의적 자유의 탄압에 대한 저항 차원이 아니다. 

 

<뉴질랜드 Freedom Convoy: 폭력이 보인다>

 

많은 역사적 사건의 시작은 따로 예를 들지 않아도 직접적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번 세계 대중의 Freedom Convoy 시위는 백신 의무화 반대로 촉발되었지만, 만 2년 동안 진행되고 있는 팬데믹과 이에 대한 국가 대응으로 살기가 어려워진 대중의 정부에 누적된 불만이 그 배경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높은 물가가 자리 잡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대부분 국가를 휩쓸면서 각국의 서민층은 살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기름값이다. 오클랜드의 경우 리터당 $3에 육박한다. 출퇴근에만도 기름값이 20달러 든다고 불평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많은 노동자가 출퇴근 기름값만으로 1시간 일당을 날리는 셈이다. 슈퍼마켓에서도 몇 개 짚지 않아도 $100 넘는 것은 기본이다. 모든 게 비싸다. 나도 못 살겠다고 시위하고 싶은 이유다.

 

임금이 인플레이션을 따라갈 정도로 올라간 것도 아니다. 2021년 뉴질랜드 소비자물가(CPI)는 5.9% 올랐다. 1990년 이후 최고치다. 반면, 임금은 2.6% 증가에 그쳤다. 임금 인상 폭이 물가 상승 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실질임금으로 표현되는 소비자 구매력의 대폭적 감소다. 2022년 4월 1일부터 최저 임금이 현 $20.00에서 $21.20으로 오른다. 이에 집권 노동당은 팬데믹 기간 ‘우리’ 필수 노동자들이 고생이 많았으므로, 이들이 임금 인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에 모두 동의할 것이라고 한껏 생색을 내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실질적으로 생활하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떠나, 인상 폭 6%는 작년 물가 인상률 5.9%와 데칼코마니이다. 즉, 인상이 아니라 실질임금의 현상 유지에 불과한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뉴질랜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1년 12월 기준, OECD의 인플레이션은 6.6%로 1991년 이후 최고치다. 미국은 7%를 기록했는데 이는 1982년 이후 최고치다. 유로 지역은 5%로 1997년 통계 이후 최고치다.

 

자본주의 경제 이론에서 인플레이션은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지불 능력을 압박함으로써 억제될 수 있다. 따라서 금리는 계속 올라가는 추세이다. 하지만 이 금리 인상을 통한 인플레이션 억제 시도가 과연 대다수 대중에게 혜택을 돌아갈까 아니면 대출에 투자한 자본가들에게만 그 혜택이 돌아갈까?

 

2월 5일의 오클랜드 폰슨비 주유소.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치솟는 물가, 그리고 각국의 시위 등에서 느껴지는 사회적 불안과 변화의 욕구가 피부로 와닿는 요즘이다. 이번 포스트는 2022년 2월 세계를 지배하는 이런 주요 이슈들을 막시스트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냐를 엿보는 조감도적 글이다. 제목은 Inflation, instability and insurrectionary movements: the ‘new normal’ for world capitalism이다. 원래 연설문이며 저자 Fred Weston는 Marxist.com의 편집자다. 요약 번역이며 필요한 대목에는 관련 정보를 삽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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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불안정 그리고 반란의 움직임: 자본주의 세계의 ‘뉴노멀’

(Inflation, instability and insurrectionary movements: the ‘new normal’ for world capitalism)

 

 

 

11 February 2022

 

Fred Weston

 

 

머리말

 

이번 코로나 팬데믹은 기존 자본주의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다. 어느 정도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자본주의 국가 정부들이 취했던 막대한 규모의 국가 지출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다. 이 물가 상승은 생활 위기로 이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분노와 불안이 증가하고 있다. 지배 계층은 대중의 신뢰를 잃었고 급진적 계급투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묻는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이냐고. 어떤 사람은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는 징후라고도 얘기한다. 그러나 진실은 우리는 현재 세상의 끝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현 사회 형식의 종말을 향해 가는 것이다.

 

우리는 현 자본주의 시스템이 팬데믹 때문에 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라는 것부터 이해해야 한다. 대 유행 이전부터 우리는 이 시스템이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분석, 지적했다. 팬데믹은 이 위기를 심화 시켜 가파른 경제 침체를 초래한 것뿐이다. 물론, 모든 위기 후에는 항상 회복이 있다. 영원한 불황이란 것은 없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회복하는 기간, 시스템의 전반적 건강성 여부다. 이번 팬데믹도 마지막 제한 조치들이 풀리게 되면 경제는 어느 정도 회복될 것이다. 심지어 이탈리아는 작년에 6% 성장을 기록했다. 아마 일부 사람은 이탈리아가 이제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다. 성장에도 불구하고 깊은 위기에 빠져 있다. 이번 회복은 어떤 모습일까? 젊은 세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인플레이션, 경제 둔화를 위한 금리 이상 그리고 부채의 폭발이 이번 회복의 실체다.

 

지난 20년간 세계 부채는 세계 GDP의 두 배 속도로 증가했다. 현재 세계 부채는 세계 GDP의 355%에 달하는 상황에 도달했다. 그 결과 작년 한 해에만 이탈리아 GDP의 4, 5배에 달하는 11조 달러가 이자로 지급되었다. 이 모든 것은 저렴한 신용대출 덕분에 가능했다. 사실상, 자본주의는 지난 20년 이상 이런 식으로 연명해왔다. 싼 신용대출이 호황을 이끌었지만 이제 그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이에 자본가들은 거대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World Bank와 IMF는 향후 2, 3년간 경제는 성장하겠지만 해가 갈수록 그 성장은 더뎌지리라 예측했다. 성장을 촉진해야 할 정책을 시행해야 할 바로 이 시점, 자본주의 정권은 그들이 팬데믹 기간 시행했던 ‘해결책’(solution) 때문에, 그리고 그 결과 발생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경제 성장을 둔화하는 정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지난 1월 발간된 리포트에서 World Bank도 팬데믹으로 야기된 불평등 증가 때문에 사회적 긴장이 높아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경제 회복’, 하지만 그 비용은?

 

현재, 소위 경제 회복과 함께 많은 나라에서 실업률이 어느 정도 하락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 실업률을 줄인 신규 직업의 대부분은 임시직이거나 단기 계약직이다. 현 자본주의 시스템은 팬데믹 위기를 벗어나고 있지만, 모든 지역에서 부채, 특히 공공부채가 엄청난 규모로 증가했고 지난 수십 년 최고의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 국가가 팬데믹 기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시행했던 그들의 ‘해결책’(solution)의 결과물이다.

 

터키는 지난 1월 인플레이션이 48.69%에 달했으며, 러시아는 9%, 스페인은 7% 그리고 영국은 지난 30년 최고치인 5.4%를 기록했다. 선진국 외 나이지리아는 16% 그리고 파키스탄은 13%를 기록했다. 이들 국가 모두 최소 몇 년간 이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지속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얼마나 지속할지 아무도 모른다. 올해 초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카자흐스탄 시위는 이 인플레이션의 시한폭탄이 일찍 터진 사례다. 이 사건을 촉발한 것은 가스와 에너지 가격의 인상이었는데, 카자흐스탄의 2021년 명목상 평균 인플레이션은 8.4%였지만 식료품 가격은 13~18% 인상되었다.

 

카자흐스탄 시위

 

한 달을 버티는 것도 버거운 것은 이제 극빈 노동자 계층만의 상황이 아니다. 영국의 평균 가정은 인플레이션 덕분에 1,200파운드의 구매력 상실이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비슷한 상황을 모든 나라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식품 가격의 인플레이션은 심각하다. 2011년 아랍의 봄의 주원인 중 하나도 식료품 가격 인상이었다. ILO 사무총장 Guy Ryder도 팬데믹으로 야기된 불평등의 증가는 매우 파괴적인 빈곤 그리고 경제와 사회불안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그 우려가 현실화하는 현재다.

 

물가 인상 항의로 시작된 카자흐스탄 시위는 한 지역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경찰과 군부를 상대로 한 시가전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사회 운동이 되었다. 석유와 가스 노동자들, 금속 노동자들, 그리고 광산 노동자까지 참여하는 노동대중 운동이 되면서 노동계급의  전통적 요구인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총파업으로까지 이어졌다. 비록 지도력의 부재로 이 운동은 실패로 끝났지만, 팬데믹과 그 해결책으로 야기된 인플레이션이 노동 계급 존재를 다시 드러내게 했다. 무력으로 진압되었지만, 사건을 촉발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우리는 노동계급의 봉기를 다시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하여

 

이런 갈등은 한 국가 내 계급 투쟁의 형식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자본주의 국가 간 갈등의 증가로도 이어진다. 모든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그들 자신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의 문제를 수출해야 한다. 보호 무역주의의 증가 경향은 각국 자본가 계급이 다른 나라의 희생 위에 자국 일자리를 보호하려는 것이며, 더 중요하게는, 그들의 수출 시장을 정복함과 동시에 자국 시장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모든 강대국이 공격적 외교 정책을 펼치는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현 우크라이나 위기가 대표적 사례다. 소련 붕괴 이후, 역사적으로 러시아 세력권에 있던 지역을 나토가 서서히 잠식해오면서, 점점 러시아 국경에 근접하고 있음을 우리는 목격해왔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합류한다면 러시아는 서쪽 국경을 나토와 마주해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군대를 현대화하고 효율화한 러시아로서는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푸틴은 나토를 뒤로 밀어내고 싶었고, 이를 위해 우크라이나를 택했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전파한다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러시아 입장에서는 뒷마당에서 그들을 위협하는 나토 동맹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푸틴이 협상에서 판돈을 올리기 위해 극한으로 몰고 간다는 관측이 유력하지만, 짧고 제한적 개입을 단행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푸틴은 다른 카드도 가지고 있다. 러시아는 생산 가스의 40%를 EU에 제공한다. 이 공급선은 특히 독일에 중요하다. 미국의 유럽 외교 정책에 독일이 미온적인 이유다. 푸틴은 유럽 내부 분열을 기대할 수도 있다. 봉쇄 기간 중 파티를 즐긴 덕분에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영국의 보리스 존슨은 국내 관심을 돌리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날아가 성대한 응원 쇼를 펼쳤다. 이탈리아 드라기(Draghi) 총리는 푸틴에게 전화를 걸어 이탈리아 가스 공급을 끊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아무튼 전면전의 결과는 세계 경제에 재앙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미국이 러시아에 부과하겠다는 제재는 그렇지 않아도 인플레이션으로 성장이 제약받는 세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우크라이나 위기는 자본주의의 세계적 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자본주의 강대국들 사이의 고조된 긴장과 EU의 심화한 분열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미국과 유럽 사이가 더 멀어지고 미국 제국주의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다른 한편, 우크라이나 침공 협박은 러시아에서 푸틴의 내부적 위기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인기는 2012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러시아의 인플레이션은 8.7%이고 실질소득은 떨어지고 있다. 실업률은 증가해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빈곤은 증가하고 있다.

 

 

팬데믹에 대하여

 

많은 나라가 봉쇄 방역 조치를 해제하고 있다. 그러나 WHO는 코로나가 종료 근처에도 와 있지 않다고 경고한다. 일주일 만에 오미크론은 전 세계적으로 1,800만 명의 새로운 감염자를 발생시켰다. 많은 나라가 겉보기에 덜 공격적으로 보이는 오미크론이 문제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전염성이 있고 심지어 지금은 훨씬 더 전염성이 강한 오미크론 2가 있다. 어쩌면 코로나바이러스는 변형되어 점점 더 풍토병이 되어가면서, 사람들이 희망하는 새로운 독감의 변종이 되어갈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초기이고 자본주의 작동 방식을 고려할 때, 지난 2년간 세계가 겪은 일을 다시 겪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코로나는 사람들의 생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현 시스템에 대해 대중의 눈을 뜨게 하는 결과도 가져왔다. 코로나는 경제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시스템 자체에 문제를 일으켰다. 시스템의 치부가 대중 눈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많은 대중은 더 이상 정부와 기득권층이 하는 일을 신뢰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현재 영국 정부의 위기는 봉쇄 기간 집권층이 한 행동에서 직접적으로 기인했다. 일반 대중이 집이나 병원에 있는 나이 든 친척들을 방문하지 못하는 동안 보리스 존슨은 다우닝가에서 파티를 열었다. 대중에게 비친 정부의 이미지는 명확하다. 국민에게는 집에 있으라고 하면서 자기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일반 국민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롱거리로 전락했지만 아직 사퇴하지 않은 보리스 존슨

 

더 나아가, 팬데믹의 경제적 여파에 대한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공공부채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누군가 갚아야 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노동계급이 될 것이다. 미국 간호사들의 시위가 그 예다. “팬데믹이 극성을 부릴 때 정부는 우리에게 환호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자 그들은 비참한 수준의 인상 제의를 했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문제가 될 대목이다. 여기에 추가되는 문제는 임금 인상이 실질적 임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2021년 미국 임금 인상률 4%는 지난 20년 중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이 기간 물가 상승률(인플레이션)은 지난 40년 동안 가장 높은  7%였다. 

 

이와 같은 노동자의 생활 조건 악화는 사회적 불안과 노동계급의 저항 움직임을 불러일으킨다. 미국의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65%가 노동조합에 찬성한다. 196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특히 젊은이들은 이 문제에 대해 훨씬 더 급진적이다. 18세에서 29세 사이 연령층의 78%가 노동조합에 찬성한다. 이것이 현재 노동계급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중국에 대하여

 

미국에 이어 두 번째 경제적 강대국인 중국의 올해 5% 예상 경제성장률은 과거보다 상당히 둔화한 것이다. 이 상대적 저성장은 내부 불안정의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낸다. 중국의 이런 내부 문제는 시진핑에 대한 권력 집중과 더불어 매우 공격적 외교 정책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중국은 호주와 충돌했고,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일본과 갈등을 빚고 있고, 인도와는 히말라야에서 부딪치고 있다. 더 나아가, 중국은 끊임없이 대만을 위협하고 있으며 홍콩에 대해서 매우 공격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중국특색 사회주의는 중국특색 국가관료자본주의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가?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중국의 비약적 경제 발전은 세계적 차원에서 미국과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시진핑은 이 글로벌 이슈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만, 내부 문제에 대해서도 신경 쓰고 있다. 중국의 증가하는 빈부 격차는 사실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것 중 하나다. 시진핑도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이 사회 양극화가 중국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매우 우려하고 있다. 또 그는 심각한 금융 위기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헝다(Evergrande)가 대표적 사례다. 중국의 주택 사업은 GDP의 30%를 차지한다. 헝다는 세계에서 가장 큰 부동산 개발업체 중 하나인데 3천억 달러의 빚으로 중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위협이 되고 있다.

 

Atlantic Council은 작년 12월 보고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중국은 정부의 권력 장악력을 약화할 수 있는 상당한 사회적 불안정에 직면할 수 있다. 중국이 이 전면적 도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중국이 세계를 대하는 방식 그리고 중국 경제가 미래 글로벌 성장의 원동력이 될지 걸림돌이 될지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세계 경제의 기관차였던 중국은 세계 경제를 끌어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유럽에서는

 

위에서 살펴본 러시아 내부 사정과 더불어 우리는 중국과 러시아가 강대국이지만 더 큰 불안정 요소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세계 차원에서 안정 요소가 아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세계 경제 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하여 러시아를 압박하지만, 중국은 러시아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그들은 공동의 적을 갖고 있다: 미국. 중국은 태평양에서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으며 대만에 대해 공격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러시아와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가 EU에서 가장 약한 고리다. 이탈리아는 독일과 프랑스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경제다. 이탈리아는 EU Recovery Plan의 일환으로 독일과 프랑스로부터 2,000억 유로를 받았다. 이탈리아의 현 수상은 ECB(유럽중앙은행)의 전 총재였다. 즉, 그는 이 돈을 제대로 사용할 책임을 지고 있으나, 문제는 이탈리아 정치 세계와 수백만 명의 삶의 조건 사이에 엄청난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극우파 집단을 제외하고 모든 정파가 현 정부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 중 그 누구도 책임감 있게 EU의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데 관심이 없다. 결과적으로 정치인들을 스스로 권위를 잃었으며, 이는 정치적 위기를 의미한다.

 

총체적 위기의 EU

 

이런 현상은 많은 나라에서 공통으로 발견된다: “‘위에’(up there) 계신 분들은 우리를 신경 안 써”. 따라서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어떻게 이탈리아 같은 나라를 통치하며 이들 정책을 적용할 것이냐, 그리고 동시에 어떻게 계급 투쟁을 피할 것인가? 카자흐스탄 사태는 현재의 이탈리아와 매우 유사한 상황에서 폭발했다. 이탈리아는 에너지 가격 인상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드라기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보다 가스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푸틴에게 전화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FT(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독일은 지금까지의 유럽 경제 기관차 지위에서 뒤처진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 독일은 가계 소비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산업 생산은 여전히 위기 이전 수준을 크게 밑돌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독일 수출 시장이므로 중국의 경기 둔화는 독일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경기 둔화는 유럽의 나머지 국가들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위기가 됨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영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의 대표적 사례다. 우리는 영국 자본주의 300년 역사에서 가장 큰 붕괴를 보고 있다. 브렉시트로 악화한 이 붕괴로  트럭 운전수와 돌봄 노동자들이 부족해졌고 가게 식료품은 재고가 충분치 않게 되었다. 게다가 북아일랜드에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여전히 있다. 더 나아가, 현 영국 정부는 봉쇄 기간 파티 스캔들로 위기에 빠져 있다. 보리스 존슨이 딱 하나 잘하는 것이 있다. 수백만 명의 사람 앞에서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자기 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이 거짓말을 영국 국민은 지켜봤다. 이들은 당연히 “수백만 명이 심각한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이런 식으로 행동하다니..” 식으로 생각할 것이다.

 

 

노동계급이 움직인다

 

이런 일이 영국 지배계층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안 노동계급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조 Unite에 새로운 사무총장이 취임했다: Sharon Graham. 그녀는 12월 30일 Tribune에 기고했다: “우리는 대중적 노동계급 권력을 구축해야 합니다.” 당신은 얼마나 자주 노조위원장으로부터 “대중적 노동계급 권력”(popular working-class power)이라는 말을 듣는가? 최근 다른 국가의 노조 지도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이것은 밑으로부터의, 즉 노동계급의 분노 표출이다. 이 노조는 지금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산업 분쟁에 관여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를 구하러 오는 웨스트민스터(영국 중앙정치를 의미:역자 주) 영웅은 없습니다”. 이 말은 제러미 코빈(Corbyn) 같은 존재가 더 이상 거기에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그녀는 덧붙인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를 구해야 합니다.”

 

Sharon Graham.

 

여기서 우리는 노동계급의 투쟁 전선이 정치 전선에서 노동조합 전선으로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영국의 노동계급은 마지막으로 노동당 코빈(Corbyn)을 통해 자신을 대변하려고 했다. 이 시기 50만 명이 노동당에 입당했지만, 그들 중 다수는 떠나고 이제 없다. 그러나 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코빈을 통해 분출된 분노와 급진화가 이제는 산업 전선에서 표출되고 있다.

 

금융전문지 MoneyWeek에 지난 1월 유머러스한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라: 모든 사람이 그래! (Ask for a pay rise: Everyone else is!). 노동자들이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인 현수막을 들고 시위하는 사진도 있었다: “우리는 파업을 할 수 없습니다”(We can’t afford to strike), 그리고 밑에 “우리는 파업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We can’t afford NOT to strike). 기사는 노조 가입과 노조의 호전성에 관한 내용이었다. 현재는 파업 찬반투표로 이 호전성이 표현되고 있는데, 일정 단계에 도달하면 파업의 물결을 이끌 것이다.

 

 

이제 좌파가 대중 정당 어디에서 등장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 포데모스(Podemos), 시리자(Syriza) 그리고 멜랑숑(Melenchon)을 보았다. 이들은 모두 좌파에 급진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수백만 명의 노동자와 청년을 흥분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자본주의 시스템을 개혁(reform)하고 자본주의 시스템과 호환될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하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뒤로 밀리면서 그들은 이전의 공격적 구호를 포기했다. 이 포기는 이어지는 파업, 시위, 거리 행진 등으로 표출되는 노동자와 청년의 분노를 보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맺음말

 

자본가들은 정상(normality)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정상인가? 그 정상은 인플레이션, 점진적 금리 인상 그리고 결과적으로 성장 둔화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와 러시아 제재와 같은 둔화 요인들이 추가될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심화하는 경제 위기는 정권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의회가 대통령을 선출할 때 그 위기가 명확히 드러났다. 그들은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국가 기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함을 대중에게 드러냈다. 영국에서는 해리 왕자가 앞서서 나머지 왕족들을 인종차별주의라고 비난했고, 그가 미국으로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앤드루 왕자가 재판을 받는 등 군주제 위기를 맞고 있다. 영국 경찰은 연달아 스캔들에 휩싸였다. 미국에서 최근 우리는 다음 선거에 재선이 되면 워싱턴 D.C의 의사당 건물을 공격한 사람들을 사면하겠다는 트럼프의 선동적 연설을 보았다.

 

코로나 규제가 해제되는 것은 압력솥 뚜껑을 여는 것과 같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거리에 쏟아질 것이며 청년들이 앞장설 것이다. 이탈리아 로마와 투린에서 일어난 학생운동은 경찰 곤봉에 의해 잔혹하게 진압되었는데 이는 대중을 급진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청년들의 이런 움직임은 노동계급의 더 큰 움직임의 예고에 불과하다.

 

우리는 현시점에 대한 낙관적 견해를 유지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의 깊숙한 곳에 무엇이 준비되고 있는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파와 같은 나머지 좌파는 비관적이다. 그들이 보기에 현 상황은 출구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제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관적이지 않다. 무엇이 준비되고 있고 지난 수십 년 동안 보지 못했던 노동계급과 청년의 세계적 움직임이 어디를 향해 갈지 알기 때문이다. 지금 이탈리아에는 혁명을 지지하고 혁명적 조직을 찾고 있는 젊은이들이 있다. 우리는 이 젊은이 중 최고를 뽑을 수 있고, 그들을 조직하여 노동계급과 함께 투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일해 충분한 세력을 갖출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시대는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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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

 

연설문을 읽고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첫 번째 생각은 ‘21세기에 소위 민주적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 혁명의 현실적 모습은 어떤 것일까?’였다. 멀리 갈 것 없다. 지금 오타와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펼쳐지는 Freedom Convoy가 그 모습일 것이다. 20세기 체 게바라식의 무장 게릴라 내전 형식은 비민주적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여전히 유효성이 있을지 몰라도 서구권에서는 아니다. 한국 환경에 비유하면 촛불 혁명이다. 무력이 동반되지 않는 비폭력 대규모 대중 동원이 바로 혁명이다. 21세기 혁명은 과거 1970, 80년대 한국 학생운동처럼 자신과 집안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지지하는 이념을 대중에 설파하고, 대중을 거리에 같이 나가게 할 수 있으면 혁명가고 조직가다. 대중 동원을 할 수 있고 대중 동원을 지속해서 가능케 하는 조직이 혁명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혁명이다.

 

다른 하나는 위 연설문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노동계급의 투쟁 전선이 정치 전선에서 노동조합 전선으로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대목이 21세기 민주사회주의자들이 집중해야 할 전선이라고 생각한다. 밑으로부터의 민주사회주의는 대중 조직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만약 정치 전선에서 대중 조직의 의지를 잘 대변하고 실현해 줄 정당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면 대중 조직이 직접 의지를 실현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 영국 노동계급은 코빈이 당수 시절 노동당을 통한 정치 전선의 승리를 기대했었다. 코빈은 시도했었다. 하지만 다른 대중 유권자의 외면으로 그의 선거 혁명은 실패했다. 이에 교훈을 얻은 영국 노조 Unite의 지도자 Sharon Graham은 정권에 대한 ‘직접적’ 도전을 선언한 것이다.

 

21세기의 모든 급진적 사회운동은 대중조직을 통해 의지를 직접 관철할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견고한 대중 기반 조직이 있다면, 혁명의 국내 반동 세력도 반동적 외부세력의 압력도 버텨낼 체력이 되는 것이다. 이 대중조직에 기반한 체력이 없다면, 멀리는 1970년대 칠레 아옌데 정권처럼 그리고 최근 그리스의 시리자처럼 혁명은 무기력하게 무너질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21세기 사회운동 성공의 결정적 키는 대중조직이다. 대중 정당은 간판의 역할에 불과하다. 뉴질랜드 노동당과 제신다 아던의 한계는 분명해졌다. 그들은 사회 변화라는 마차를 앞에서 끌고 갈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변화를 갈망하는 대중 조직이라는 말이 없다면 그들은 엘리트주의를 음미하는 오합지졸 마차에 불과할 것이다. 21세기, 뉴질랜드를 포함해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직장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정권에 직접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대중 조직과 이 조직에 헌신할 수 있는 깨어있는 사회구성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