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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지난주, 한국에서 절망의 눈물이 떨어질 때 지구 반대편 칠레에서는 희망의 싹이 텄다. 한국식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였던 대통령 후보가 한국 대선에서 어처구니없는 좌절을 겪은 날 이틀 뒤, 반-신자유주의를 기치로 내세운 학생운동권 출신 36세 가브리엘 보리치(Gabriel Boric)가 칠레 대통령에 취임했다.
박정희/전두환과 피노체트라는 군사 독재로부터 각각 1987년과 1990년에 민정으로의 이양이라는 비슷한 정치 역사를 가진 한국과 칠레다. 두 나라는 민정 이양 후 소위 보수와 진보 정당이 번갈아 집권하고, 경제적으로도 비약적 발전을 이룩하면서 선진 자본주의 민주 국가로 자리 잡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비슷했다. 한편, 신자유주의가 민정 이양 후 사회경제에 깊숙이 자리 잡으며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한 것마저 닮았다. 하지만, 민정 이양 후 30여 년이 지난 2022년 지금, 두 나라는 이제 완전히 다른 길로 접어들고 있다.
칠레는 형식적 ‘정치적 민주주의’로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로 인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는 국민적 인식하에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대안 사회 - 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주사회주의 - 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반면, 한국은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대안은 커녕, 반세기 전 군사독재 시절의 권위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혼종이라는 최악의 반동적 선택을 했다. 인당 GDP는 한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칠레이지만, 자본주의의 형식적 정치 민주주의를 뛰어넘어 ‘진정한’ 민주주의인 경제 민주주의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대의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국가의 정치적 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로 인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막을 수 없다는 인식을 칠레 국민은 했지만, 한국의 절반 가까운 유권자들은 하지 않았다. 무엇이 이 차이를 갈랐을까?

보리치는 취임과 동시에 24명 장관 중 14명이 여성으로 구성된 여성 다수 내각을 발표했다. 국방부 장관으로는 1973년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죽음으로 저항한 사회주의자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의 손녀 페르난데스 아옌데를 임명했다. 30대 장관이 7명이며 교육부 장관과 체육부 장관은 공개적 동성애자다. 보리치 정권이 지향하는 바를 대략 짐작할 수 있는 내각 구성이다. 한편, 새로 집권한 급진적 좌파 정권의 경제 정책을 가늠할 수 있는 재무장관 자리는 2016년 이후 중도 좌·우파 정권 상관없이 중앙은행 총재 자리를 지켜 온 마리오 마르셀을 임명했다. 이 역시 다른 면에서 보리치 정권의 향후 진로를 짐작게 하는 임명이다.
가브리엘 보리치는 이재명보다 더 급진적인 사회민주주의와 민주사회주의의 중간 어느 지점을 지향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사회적 해악을 완화 혹은 제거하겠다는 면에서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이들 모두 1차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에 실패함과 동시에 반대편 극우파 후보보다 적게 득표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결선 투표제가 없는 까닭에 1차 선거 결과가 최종 결과로 확정됐지만, 칠레는 결선 투표제가 있다. 2021년 11월 21일의 1차 선거 결과 2위로 결선에 진출한 보리치는 이어 실시된 12월 19일 결선투표에서 좌파 대중의 표 결집에 성공하며 5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이재명이 주장한 결선 투표제가 이번 한국 대선에도 적용되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아쉽게 뒤돌아보게 되는 대목이다.
보리치의 등장
젊은 사회민주주의/민주사회주의 정치인 가브리엘 보리치에게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많은 대중과 정치평론가들은 보리치를 백마 탄 기사처럼 큰 기대와 환호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보리치에게 보낸 것과 유사한 기대와 환호를 우리는 2010년대 라틴 유럽의 신좌파(New Left)에게 이미 보낸 경험이 있다. 2013년 그리스의 시리자(SYRIZA)와 2014년 스페인의 포데모스(Podemos)가 그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이후 이들이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음을 역시 곧 발견할 수 있다. 시리자는 정권을 장악한 적도 있지만, 이 두 개혁 정당은 초기의 폭발적 지지를 이어가지 못한 채, 지금도 이상과 현실 중간에서 분투 혹은 고전하고 있다.
이 두 정당은 2022년 현재도 각국 의회에서 제2당과 제4당으로서 존재감을 여전히 갖고 있지만, 보리치가 속한 정당 연합 아프루에보 디그니다드(Apruebo Dignidad:AD)는 제헌회의(Constitutional Convention)의 총 155석 중 28석, 그리고 하원의 155석 중 37석만 차지한 소수 정당 연합에 불과하다. 비록 같은 좌파 계열의 정당들이 주변에 포진하고 있지만, 그가 앞으로 헤쳐 나아가야 할 길이 유럽의 위 두 정당보다 더 험난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보리치는 피노체트 독재 정권에서 제정된 기존 헌법의 철폐와 새로운 헌법 제정을 통해 그의 사회민주주의/민주사회주의 아젠다를 완성할 기회를 갖고 있다. 그가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뿌리 깊은 불평등에 저항한 칠레 국민의 2019년 10월 봉기 그리고 이후에도 이어진 저항 덕분이다. 그의 등장은 많은 면에서 살바도르 아옌데를 연상시킨다. 1973년, 미국 CIA의 사주를 받은 피노체트 쿠데타군에 저항하여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는 신념으로 자살을 택한 민주사회주의자 아옌데의 부활을 많은 칠레인은 기대하고 있다. 아직 진면목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아옌데 이후 가장 급진적 좌파로 평가받는 보리치는 그의 대 선배와 달리 그와 또 그의 국민에게 해피엔딩을 가져올 수 있을까?
다행히 보리치는 시리자나 포데모스가 갖지 못한 엄청난 강점이자 기회를 가지고 있다. 그에게 개혁의 명분과 추진력을 부여해 줄 새로운 헌법이 그것이다. 몇 개월 내에 제헌 회의를 통과하여 선보일 새로운 헌법은 아직 그 구체적 내용이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현재까지 알려진 성 평등, 친환경 그리고 원주민 공동체의 권리 보장 조항 등과 더불어 제헌회의 의원들의 구성과 성향을 보았을 때, 21세기 민주사회주의 지향 이념들의 상당 부분이 담길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을 해본다.
보리치 등장의 역사적 배경
2022년 칠레 새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보리치 대통령의 취임은 그 직접적 기원을 2019년 10월 대규모 민중 봉기에서 찾을 수 있지만, 더 근본적 기원은 아옌데를 죽음으로 몰고 가면서 1973년 집권한 피노체트 이후 지속한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1990년 민정 이양 후, 선거를 통해 좌우파 정권이 번갈아 집권했지만, 한국과 뉴질랜드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정책은 정권과 관계없이 지속하였다. 그 결과, 칠레의 빈부 양극화는 심화하여 OECD 국가 중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한 두 번 째 국가로 자리매김하였다. 여기에 소득에 비해 높은 생활비는 서민 대중의 삶을 고단하게 만들었다. 인당 GDP가 한국의 절반에 못 미침에도 대중교통비는 한국과 비슷한 것이 그 예다.
1990년 민정 이양이 이루어지면서 좌파 정부가 집권도 했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민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라는 하부구조에 대의 민주주의라는 형식적 정치적 상부구조만 추가되었을 뿐이다. 민정 이양 이후 권력을 주고받으며 집권한 소위 ‘중도’ 좌파와 우파는 모두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을 지속하면서 양당 과두체제를 형성했다. 이 기간 대부분을 집권한 중도좌파 연합 ‘콘세르타시온(Concertación)’에는 기민당과 사회당이 그 중심에 있다. 초대 대통령인 기민당의 Aylwin은 1970년대 초반 의회에서 아옌데 축출 쿠데타를 주도한 인물이었다. 사회당도 1973년 아옌데의 그 사회당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기득권을 만끽하는 엘리트 집단으로 전락했다.
이렇게 정치가 대중의 삶으로부터 격리된 사회적 상황에서 학생을 중심으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시정을 요구하는 칠레 민중의 투쟁이 계속 이어졌다. 2006년의 고등학생 시위는 2011년의 대규모 대학생 시위로 이어졌다. 이 학생 운동의 주역 중 한 사람이었던 당시 칠레 대학 학생회장이었던 가브리엘 보리치는 이를 계기로 현실 정치에 발을 내디뎠다. 2013년 총선에 출마하여 의회에 진출한 것이다. 보리치를 위시로 학생운동 출신 활동가들은 “넓은 전선(Frente Amplio)”이란 선거연합 이름으로 하원 선거에서 21석을 쟁취하며 단번에 제3의 정치 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렇게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2019년 10월, 칠레 우파 피녜라 정권은 지하철 요금을 800페소에서 830페소로 아무렇지 않은 듯 30페소(한화 50원에 해당) 인상했다. 이에 통학 학생들의 반발을 시작으로 시민의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피녜라 정권은 수도에서의 시위를 막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했다. 1990년 피노체트 퇴진과 민정 이양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군대 투입이었다. 피노체트의 공포 정치를 떠올리게 하는 군대 투입은 시민들의 분노에 더욱 불을 붙이며 시위는 전국적 규모로 발전했다. 이에 뜨끔한 피녜라는 지하철 요금 인상 방침 철회와 더불어 다른 당근책을 내세우며 분노한 시위대를 달래려고 했다.

하지만 칠레 국민은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면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슬로건을 앞세우며 근본적 변화를 요구했다: “It’s Not About 30 Pesos, It’s About 30 Years” (30페소의 문제가 아니라, 30년의 문제다) 칠레 국민은 칠레의 근본적 문제가 ‘신자유주의’임을 정확히 통찰했다. 2022년, 최악의 선택을 한 동북아시아 어느 국가의 48.56% 국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칠레 국민의 높은 정치의식을 상징하는 감동적 구호다.
칠레는 1990년 민정 이양 이후 칠레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오히려 악화하였다. 1990년 이전에는 군사 독재 정권이라는 예외적 상황이었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정치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그 이후에도 불평등이 심화한 것은 지난 30여 년에 걸친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라는 명확한 인과성을 칠레 국민은 깨달은 것이다. 이 민심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는 듯 보리치는 대통령 선거 기간 중, "If Chile was the cradle of neoliberalism, it will also be its grave" (칠레가 신자유주의의 산실이었다면, 칠레가 신자유주의의 무덤도 될 것이다)라는 매우 매혹적인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웠다.

새 헌법을 위한 제헌회의(Constitutional Convention)의 등장
칠레 국민의 분노가 불평등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확신에 찬 인식에 기인한 것임을 깨달은 피녜라 정권은 부랴부랴 채 한 달도 안되어 새 헌법 제정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다음 해(2020년)에 실시하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하면서 가까스로 급한 불을 끄게 된다. 피녜라 정권으로서는 일단 새로운 헌법 제정을 미끼로 민중의 투쟁 분위기를 잠재우고 그 이후를 도모한다는 속셈이었지만, 아무튼 2020년 10월에 개헌 찬반 투표가 시행되었다. 51%의 유권자가 참여한 가운데 79%의 압도적 다수가 기존 의회가 아닌 새로운 논의 기구인 제헌회의를 통한 개헌에 찬성하였다.
이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2021년 5월에 칠레는 새 헌법을 제정할 기구인 제헌회의 의원 155명을 뽑는 역사적 선거를 했다. 우파 정치인들의 고집으로 제헌의회(Constituent Assembly)라는 호칭 대신 제헌회의(Constitutional Convention)라는 호칭을 사용했는데, 학자들에 의하면 본질적 차이는 없다. 총 의원의 성비를 맞추어야 한다는 규정 덕분에 남성 의원 78명, 여성 의원 77명의 당선되었고, 21살부터 78세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되었다. 아이로니컬하게, 만약 남녀 성비 50 대 50이라는 합의 규정이 없었다면, 여성이 84석을 얻었을 것이라고 한다. 또 유권자의 12%를 차지하는 원주민들에게는 인구 비례에 맞추어 17석이 배분되었다.

총 유권자의 43.43%가 참여한 2021년 제헌회의 선거에서 좌파는 2/3 이상의 의석수를 차지했다. 대통령 피녜라가 소속된 우파 연합은 37석(23.9%)을 얻는 데 그쳐, 새 제정 헌법에 대한 비토권도 확보하지 못했다. 제헌회의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소수 정당 소속 혹은 무소속 의원들의 이념 스펙트럼이 다양한 까닭에 새로운 헌법이 어떤 모습을 갖출지에 대한 기대감도 증가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동안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며 기득권의 티키타카 놀이를 즐겼던 중도우파(37석)와 중도좌파(25석)는 비중이 대폭 축소되었음에도, 여전히 일정 지분을 차지하고 있어 이들이 어떤 형식으로 새로운 헌법에 영향력을 미칠지도 역시 주목된다.
제헌회의의 새 헌법 제정 과정은 절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기존 정당의 정치인들과 혁명적 변화를 원하는 길거리 무정부주의자 출신 의원들 간 헌법 조항을 놓고 격렬한 권력 투쟁이 벌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 민중 봉기 세력은 새로운 헌법에 대대적 세제 개혁안을 담으려 할 것이다. 우유나 빵 같은 생필품에도 무차별적으로 부과되는 악명높은 간접세인 부가가치세의 세율(19%)을 대폭 낮추고 대신 부유층을 겨냥한 조세 누진제를 도입하려고 할 것이다. 현재 0.1%도 안 되는 극소수가 칠레의 GDP와 맞먹는 돈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 2.5%의 세금만 부과해도 50억 달러를 모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전면적 세제 개혁을 통해 세원을 확보하고 탈세를 방지하여, OECD 평균 33.5%에 훨씬 못 미치는 19.3%의 GDP 대비 세수 비율을 급진적으로 증대시키려고 시도할 것이다.
보리치의 당면 과제
민정 이양과 관계없이 피노체트 이래 지속해온 신자유주의 정책을 벗어나는 것은 물론, 칠레를 사회민주주의와 민주사회주의 사이 어느 지점까지 이끌어 갖다 놓을 수 있을 것인가가 보리치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관전 포인트다. 당장 경기 침체, 고 인플레이션 그리고 소수 여당을 포함한 다수의 소수 정당이라는 의회 환경 속에서 무상 보편적 의료, 무상 공교육과 연금제도를 위한 개혁 그리고 환경 규제의 강화를 실행해야 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분명 보수 야당과 협상테이블에 앉아야 할 것이다. 좌파의 최근 역사는 급진적 개혁 의지가 단 기간에 실행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를 뽑은 유권자는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라고 너를 뽑아준 것 아니냐’라면서 압박을 계속 가할 것이다.
따라서 제헌회의의 새 헌법 제정 과정에서의 보리치의 역할과 이후 제정된 새 헌법에 대한 그의 스탠스가 관심 대상이 된다. 과연 2019년 10월 봉기에서 표출된 민중의 바람이 새 헌법에 제대로 반영이 되는지, 제정 헌법이 이후 국민투표에서 무사히 통과할지, 그리고 확정된 헌법 조항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한 정책을 그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수립, 실행할지가 그 관심의 주 내용이다. 최악의 경우, 새 헌법이 민중 봉기의 급진성을 반영하지 못한 타협적 헌법에 그칠 수 있고, 설사 급진성을 담았더라도 기득권층과 국내외 자본가 계급의 압력을 받은 보리치가 상응하는 정책 실행을 주저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90년 민정 이양 후 칠레에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무정부주의자로 규정할 수 있는 “autonomist”(자율주의자) 좌파가 등장했다. 보리치는 이들 중 하나였지만 자신의 학생운동 지도자 명성을 이용해 엘리트 정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칠레 거리에는 여전히 이 무정부주의 좌파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2021년 12월, 대선 2차 결선 투표에서 1차에서 밀리던 보리치가 상대편 극우파 후보보다 거의 100만 표를 크게 앞서며 이길 수 있었던 것도 평소 기존 정치를 불신하며 투표에 관심 없던 이들이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다. 2차 결선 투표를 앞두고 보리치 진영이 이 길거리 무정부주의 노동자와 젊은이들의 계급 본능을 자극하는 전략을 취한 덕분이다. 보리치는 이 무정부주의 좌파 젊은이들에게 부채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보리치에 대한 우려
대통령 취임사에서 보리치는 “I am the president of all Chileans”(나는 모든 칠레인의 대통령입니다)라고 천명했다. 어쩌면 일국의 지도자로서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발언이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는 개혁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칠레인은 칠레 국부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최상위 1%, 다른 표현으로 국부의 거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상위 10%도 포함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가 진정한 개혁을 원한다면 ‘모든’이 아닌 이 소수 기득권 세력을 배제한 ‘다수’ 칠레인 - 이 중에는 국부의 10%만을 차지하는 하위 50% 서민을 포함한다 - 을 이야기했어야 할지 모른다. 새 헌법이 민주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의 가치를 반영한 것이라면 소수 기득권은 반드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는 매우 타협적 레토릭을 벌써 구사하고 있다. 이런 ‘모두를 위한 정치’는 초대 좌파 민간 정부 대통령 Aylwin이 천명하기 시작해서 이후 좌파 정권에도 계속 이어져 왔다. 결과적으로 이 ‘모두’의 대통령은 신자유주의를 ‘모두를 위한 정책’으로 신봉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팬데믹으로 급진적 개혁 추진을 위한 경제적 체력이 달리는 상황에서 보리치는 중도적 재무장관 임명에서 보듯 자본가 계급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단골로 애용하는 슬로건 “slow but firm steps”(점진적이만 확고한 진전)을 꺼내 들면서 현실 정치의 어려움을 국민이 이해해 달라고 요구한다. 반대를 위한 길거리 시위자가 아니라 한 나라의 총체적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에 오른 그로서는 당장의 현실 경제를 좌우하는 자본가 계급을 달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급진 좌파가 정권을 장악했을 때 공통으로 직면했던 이 역사적 교훈을 보리치가 모를 리 없다.
멀리 그리스의 시리자까지 갈 것도 없다. 옆 나라 페루에서도 교사 출신 페드로 카스티요가 급진좌파 정당 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하여 2021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 역시 여느 좌파 집권 정당처럼 초기 급진적 정책을 호기 있게 시행했다가, 국내외 자본가의 압력에 굴복하여 급격하게 중도로 선회했다. 칠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글로벌 자본주의와 미국 제국주의 - 50년 전에 아옌데의 칠레 민주주의 꿈을 무참히 짓밟아버린 그 미국이다 - 의 압력을 이겨내야 하며, 내부적으로는 변화를 손꼽아 기다리는 칠레 민중의 기대감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일 것이다.

만약 올 하반기 국민투표에 부쳐질 최종 헌법 안 역시 2019년 10월 민중 봉기 세력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제헌회의의 헌법 초안 발표 그리고 이어지는 국민투표 과정에서 칠레 민중의 또 다른 분노가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보리치가 결선 투표에서 자신을 지지했던 무정부주의 좌파 대중의 불만에 직면한다는 의미이다. 이미 그들과 서 있는 곳이 달라진 보리치가 배신감을 느낀 이 민중의 저항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궁금하다. 이들의 목소리를 여전히 경청하는 혁명가 보리치로 남을지 아니면 그동안의 신자유주의 좌파 대통령과 별 차이 없이 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기득권 정치인으로 남을지. 용두사미로 끝난 시리자의 칠레판 가능성은 보리치 옆에 항상 존재할 것이다.
사실, 대통령 보리치는 태생 과정 자체가 혁명가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 기반이 거의 없는 타협적 정치인이다. 그는 2019년 10월의 대중봉기를 이끈 혁명가로서 칠레 정치 무대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그다음 달 피녜라 집권 우파가 타협안으로 제시한 개헌안을 수용하면서 등장한 정치인이다. 1990년에 민정 이양이 가능했던 것도 초대 대통령 Aylwin이 군부 독재 세력과의 타협이 있어 가능했던 것처럼, 2022년의 보리치 대통령 탄생도 2019년 우파 피녜라 정권과의 타협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 타협의 결과물인 새로운 헌법이 2019년 봉기의 반동적 종료를 의미할지, 아니면 혁명의 현실화가 될지는 이제 상당 부분 보리치 손에 달렸다. 의회 내에서도 소수 여당인 그의 의지는 앞으로 지속해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맺음말
칠레의 새 헌법 논의를 위한 제헌회의가 기존 정당에 의해서가 아니라 민중봉기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21년의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의 85%는 정당, 정치인 그리고 전문가들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는 민정 이양 직후인 1990년의 57%보다 높은 수치다. 혁명은 말할 것도 없고 진정한 개혁은 미국의 민주당, 영국의 노동당 그리고 뉴질랜드의 노동당과 같이 기득권에 함몰된 직업 엘리트 정치인으로 구성된 기존 정당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권력 쟁취에 직접 나설 때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확인시켜주는 역사적 현장이다.
칠레의 정치적 역동성이 부럽다. 한국에 비해서도 그리고 뉴질랜드에 비해서도. 네오리버럴리즘을 뚫고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허락한 형식적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 경제적 민주주의로 전환하려는 칠레 시민의 살아있는 저항 정신이 부럽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나는 공산주의자요, 나는 사회주의자요, 당당히 외치면서 지지 대중을 규합할 수 있는 사회 풍토가 부럽다. 이렇게 칠레의 민중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국가의 리버럴 대의 민주주의라는 형식적 정치적 민주주의를 벗어나, ‘제2의 민주화’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렇게 칠레가 미래를 위해 진정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위한 두 번째 민주화 경로를 밟아가고 있는 이 순간에 동북아시아의 어느 국가는 오히려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공동체 사회를 위한 제2의 촛불 혁명이 필요한 이 시점에 사회경제 민주화는커녕, 반세기 전의 권위주의 유령과 신자유주의가 결합한 끔찍한 혼종을 지도자로 택했다. 비슷한 혼종은 칠레에도 있었다. 2021년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한국의 혼종과 마찬가지로 군사독재정권을 옹호하고 여가부 폐지를 주장했던 극우 포퓰리스트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는 보리치를 2% 차이로 앞섰다. 그러나 칠레 국민의 집단지성은 역사의 시계를 뒤로 돌릴 수 없음을 자각하고 2차 투표에서 극적으로 보리치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유감스럽게 한국에서 이런 막판 뒤집기는 일어 나지 않았다. 끔찍한 혼종을 선택한 48.56%는 두고 두고 한반도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이다.
지금은 경제 수치상으로 한국이란 나라가 칠레보다 앞설지 모른다. 하지만, 30년 뒤, 아니 심지어 10년 뒤에 어느 나라 국민이 더 행복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지금처럼 깨어있는 시민이 없다면 앞선 자가 뒤서고 뒤선 자가 앞설 것이다.
칠레의 미래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참고/인용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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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orrow, the Chilean Left Has to Do More Than Stop the Far Right
“It’s Not About 30 Pesos, It’s About 30 Years”
Gabriel Boric: From student protest leader to Chile's president
Chile presidential election: increase in working-class vote defeats pro-Pinochet candi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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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칠레 대통령 당선인, '젊은 내각' 발표…24명 중 여성 14명(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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