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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맑스가 돌아왔다 - 디지털 자본주의 이해하기 (1)

김 무인 2022. 4. 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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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머리말

 

책의 공동 편집자이자 책에 포함된 별도의 에세이 기고가이기도 한 서문의 저자들 소개로 시작한다. 

 

Christian Fuchs(크리스천 푸흐스)는 오스트리아의 사회학자다. 그의 이름은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퍽스이지만, 오스트리아식으로 발음하면 푸흐스다. 현재 런던 University of Westminster의 교수로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을 중심으로 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다. 그는 또 ‘tripleC: Communications, Capitalism & Critique라는 개방형 온라인 저널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이 저널을 통해 그는 자본주의 내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논의의 활성화를 시도하고 있다. 푸흐스는 현재 소셜 미디어 연구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학자로 알려졌는데, 유튜브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그의 생각을 전파하고 있다. 매우 왕성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Vincent Mosco(빈센트 모스코)는 캐나다 Queen’s University의 명예교수로서, 커뮤니케이션의 정치경제학과 정보기술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주로 연구하고 있다. 푸흐스와 마찬가지로 매우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해, 26권의 책과 200개가 넘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이 책의 발간 연도는 7년 전인  2015년이다. 그 사이에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2017년)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굵직한 세계사적 사건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디지털 자본주의의 본질적 속성은 책 발간 시점 이후 변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기에,  이 책 에세이의 저자들이 제공하는 통찰력은 여전히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새로운 영역이라 단어의 번역은 가급적 한국의 기존 번역 단어를 참조하려고 애썼다. 가령, audience는 시청자 혹은 관객이란 일반적 한국어 단어 대신 ‘수용자’라는 표현이 한국 학계에서  사용된다는 것을 발견해서 이를 수용했다. 하지만 prosumption처럼 대체 한국어 표현을 찾을 수 없는 단어들은 생산/소비처럼 임의로 조어를 했다. 소제목은 가독성 편의를 위해 내가 임의로 추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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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맑스가 돌아왔다  

오늘날 맑스주의 이론과 비판적 뮤니케이션 연구의 중요성 

 

Introduction: Marx is Back 

The Importance of Marxist Theory and Research for Critical Communication Studies Today

 

 

 Christian Fuchs and Vincent Mosco

 

 

 

맑스가 돌아왔다

 

최근 맑스와 엥겔스의 책들을 발간한 베를린 출판사 Dietz의 대표 Jorn Schutrumpf는 “맑스가 다시 유행입니다”라고 말한다. 매출은 비록 낮은 수준이지만 2005년 이후 세 배로 증가했고 여름 이후 급증했다고 전한다. 캔터베리 대주교 Rowan Williams는 지난달 맑스에게 호평을 내렸다:

 

“오래전에 맑스는 통제되지 않는 자본주의가 일종의 신화가 되는 방식을 고찰했습니다. 그는 현실, 권력 그리고 행위 주체(agency)가 그 자체는 생명이 없는 것에게 귀속되는 것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 심지어 교황도 이 늙은 무신론자가 ‘위대한 분석 기술’을 가졌다고 칭찬했다.

 

오늘날 아무도 자신이 맑스주의자라고 자처하지 않지만, 나는 이 늙은 소년이 일정 부분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우리를 일깨워줬고,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지위에 올라간 전지전능한 괴물(자본가: 역자 주)이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착취적 탐욕에 의해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일 만큼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또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맑스의 저작들은 몇 후계자들이 그렇게 보이도록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서는 아니다. 

 

칼 맑스가 돌아왔다. 이는 최소한 출판업자와 그의 책이 선반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지켜본 독일 책방 주인의 결론이다.

 

 

맑스를 찾는 위기의 자본주의

 

세계를 괴롭히는 금융 공황, 시위 그리고 다른 사회적 병폐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정책 입안자에게 오래전에 죽은 이 경제학자의 책을 읽을 것을 권유한다. 그들이 지금의 위기를 일생에 한 번 겪을 자본주의 위기임을 빨리 인식할수록, 그들은 위기를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타임스지는 2009년 2월 2일의 표지에 맑스를 실으며 다음과 같이 물었다: “맑스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이어지는 커버스토리에서 맑스는 자본주의 구세주로 등장했고 동시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다: “맑스를 다시 생각한다. 자본주의를 어떻게 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지금, 자본주의의 위대한 비판가를 연구할 가치가 있다”.

 

 

전후, 서구 경제 성장기였던 자본주의 황금기에 노동자계급의 안락한 생활 수준과 경제의 전반적 안정은 자본주의의 가치를 극대화한 반면,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맑스는 사기꾼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맑스가 자본주의를 종말로 이끌 것이라고 지적한 많은 것들 - 부의 집중화와 세계화, 실업의 상시화 그리고 임금 하락 - 이 최근 현실화하면서 맑스는 다시 조명 받게 되었다.

 

이런 일련의 동향들은 자본주의의 전 세계적 위기와 더불어 우리가 새로운 맑스주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칼 맑스에 대한 관심이 치솟는 것은 자본주의, 계급 투쟁 그리고 위기의 지속성에 대한 암시이다. 하지만 자본가 언론은 맑스를 자본주의의 새로운 구세주로 해석함으로써 그의 의미를 제한하고 그의 이론을 억제하려고 노력한다.  

 

맑스는 단지 자본주의에 대한 뛰어난 분석가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비판가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세계의 모든 공산주의자는 기존 사회적 정치적 질서에 대한 혁명 운동을 지지한다. 이 모든 운동에서 그들은 발전 정도에 상관없이 주요 질문으로 재산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모든 나라 민주적 정당과의 연합과 합의를 위해 노력한다. 공산주의자는 그들의 관점과 목적을 숨기는 것을 경멸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모든 현존하는 사회적 조건들의 강제적 전복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공산주의 혁명으로 지배계급을 떨게 만들자.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맑스와 엥겔스, 1948년)

 

1977년 댈러스 스마이드(Dallas Smythe)는 그의 기념비적 논문 ‘커뮤니케이션: 서구 맑스주의의 사각지대’ (Communications: Blindspot of Western Marxism)를 발표하면서 서구 맑스주의는 자본주의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복잡한 역할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 신자유주의 등장은 사회 계급과 자본주의에 대한 관심에서 대중을 멀어지게 했다. 대신, 세계화, 포스트모더니즘, 공산주의의 몰락 심지어 역사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실질적으로 맑스주의는 사회과학의 사각지대가 되었다. 맑스주의 학자들은 소외되었고, 젊은 학자들이 사회 분석에 맑스주의 접근 방식을 공개적으로 채용하는 것은 직업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이 되어갔다. 

 

댈러스 스마이드(Dallas W. Smythe)(1902~1992)

 

맑스와 맑스주의에 대한 관심의 감소는 논문의 키워드에 맑스, 맑시스트 혹은 맑스주의가 포함된 사회과학 인용 지수의 연평균 논문 수를 보여주는 아래 Figure 1.1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발표된 논문들은 1968–1977년, 1978–1987년, 1988–1997년, 1998–2007년, 2008–2013년, 다섯 시기로 구분되었다. 이 도표를 통해 2008년 새로운 자본주의 위기가 시작된 이후 변화가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1988~1997년과 1998~2007년의 맑스 관련 논문 생산량의 현저한 감소는 출판된 논문 수의 절대적 증가를 고려할 때 심각한 수준이다. 이 시기는 신자유주의의 강화, 모든 것(많은 나라에서의 공공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를 포함)의 상품화, 그리고 사회과학 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문화주의(culturalism) 열풍이 불던 때이기도 했다. 2008~2013년의 증가는 새로운 자본주의 위기에 따른 맑스와 맑스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징표인데, 문제는 이런 관심이 제도적 변화 속에서 지속하고 구체화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빈부격차의 확대, 불안정 노동의 확산, 그리고 새로운 세계 자본주의 위기로 신자유주의는 더 이상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은 증가하는 계급 충돌과 더불어 세계적 차원에서 드러나고 있다.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2011)은 맑스만큼 왜곡되었던 사상가는 지금까지 없었다면서 맑스의 핵심 사상은 일반적 편견과 배치된다고 주장한다. 2008년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이후 맑스 사상에 대한 상당한 학문적 관심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맑스와 미디어

 

공산주의는 먼 미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공산주의는 자원, 소유권, 부, 학습, 음식, 집, 사회보장, 자결권, 평등, 참여, 표현, 건강보험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빈곤에 저항하는 투쟁에서 표현된 대안에 대한 욕망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빈곤은 다수의 희생 위에 소수만 혜택을 누리는 현재의 전 세계적 계층시스템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공산주의는 사람들이 자본주의에 저항하고 자율적 공간을 만드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존재한다. 공산주의는 “정립되어야 할 상태 혹은 현실 자체가 적응해야 할 이상이 아니라 현재 상황을 철폐하는 진정한 운동”(맑스와 엥겔스, 1844)이다. 공산주의는 경제, 정치, 문화, 신체, 지식, 기술 등을 갖지 못한 재산 없는 자들의 혁명이다. 

 

공산주의가 하나의 운동으로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런 공간의 오늘날 이름은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가 아니라 타흐리르 광장(Tahrir Square), 신타그마 광장(Syntagma Square),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 카탈루냐 광장(Plaça Catalunya), 주코티 공원(Zuccotti Park)이다. 현재 자본주의에 의한 세계의 대규모 식민화가 진행 중이다. 우리에게 다른 세계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창조될지는 불확실하다. 오직 투쟁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Puerta del Sold을 점령하라" 2011년의 스페인 마드리드​

 

자본주의 위기와 그에 따른 빈곤과의 투쟁이 이 책의 배경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커뮤니케이션과 지식 분석에 맑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는 데에 이 책이 기여하기를 바란다. Robert McChesney (2007)는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이 맑스를 연구했지만 “체계적으로 맑스를 읽지 않아 그 누구도 다양한 표현에 담긴 맑스의 커뮤니케이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라고 정확하게 지적했다. 그는 또 맑스가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해 할 말이 더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따라서 이 책의 과제는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에 대한 맑스의 이해를 체계적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맑스주의의 생산 이론은 매우 부분적이어서 문화와 미디어로 일반화될 수 없다”라는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주장은 틀렸다. 또 “생산 이론(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모순의 변증법적 사슬)은 그 대상이 엄격히 동질 대상 - 물질 생산 - 에 국한되어 다른 영역에 적용될 수 없다”(Baudrillard, 1981)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다.  Marshall McLuhan(1964/2001)은 맑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미디어의 역동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라고 주장했는데 이 역시 틀렸다. 이 책은 비판적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맑스의 이론이 지대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맑스주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의 과제

 

이 책의 논문들 대부분은 2012년에 온라인 저널 tripleC: Communication, Capitalism & Critique에 발표된 것들을 업데이트한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발표하면서 각 논문의 핵심 주제들과 관련하여 아래 질문을 던졌다:

 

*맑스주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란 무엇인가? 왜 그것이 오늘날 필요한가? 맑스주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주요 가정, 유산, 과제, 방법 및 범주는 무엇이며, 그것들이 칼 맑스의 이론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가? 맑스주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의 다른 유형은 무엇인가? 그것들과 어떻게 다른가? 그것들과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의 다른 분야, 하위 분야, 그리고 접근 방식에서 칼 맑스 이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를 위한 맑스 이론의 역할, 지위 그리고 중요성은 역사적으로, 특히 1960년대 이후 어떻게 진화해왔는가?

 

*맑스는 이론가이자 활동가이기도 했지만, 그의 경력 내내 실천적 저널리스트였다. 오늘날 저널리즘 실천, 저널리즘 이론, 저널리즘 교육, 그리고 대안미디어에 관해 우리는 그의 저널리즘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신자유주의 시대, 맑스주의에 영감을 받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와 대학 교육을 수행하기 위한 구조적 조건들, 한계, 그리고 문제점들은 무엇인가? 이 조건들에 미치는 자본주의 위기의 실질적 혹은 잠재적 영향은 무엇인가?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 사회 내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을 분석하는데 맑스주의 사고는 어떤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가?

 

*맑스주의 개념들, 가령 계급, 계급투쟁, 잉여가치, 착취, 상품/상품화, 소외, 세계화, 노동, 자본주의, 군국주의와 전쟁, 이데올로기/이데올로기 비평, 페티시즘 그리고 공산주의 등은 현대 자본주의에서의 미디어, 지식생산,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을 분석, 변형, 비판하는데 어떻게 가장 잘 사용될 수 있는가?

 

*맑스의 연구에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정보(information)는 어떻게 다루어지는가?

 

tripleC: Communication, Capitalism & Critique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지식, 지식노동 그리고 기술에 대한 맑스의 분석을 해석하는데 현대 접근법 간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맑스주의에서 영감을 받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를 위한 인식론적 그리고 방법론적 도구로서 변증법적 철학과 변증법적 분석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정보, 지식 생산, 그리고 문화에 대한 맑스의 중심 가정은 무엇이었으며, 이 가정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위해 오늘날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

 

*소셜 미디어에 대한 이해에서 맑스의 연구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오늘날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을 이론화하기 위해 가장 잘 활용될 수 있는 맑스의 연구 성과는 무엇인가? 왜 그리고 어떻게?

 

*테리 이글턴(2011)은 맑스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가진 10가지 편견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맑스에 대한 어떤 편견이 발견될 수 있는가? 그 편견의 결과는 무엇인가? 그 편견에 어떻게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는가? 새로운 자본주의 위기와 관련하여 맑스에 대한 편견은 연속성 그리고/혹은 불연속성이 있는가?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2014)의 저서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은 자본주의 역사는 불평등과 자본 축적의 역사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많은 반응과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대중 토론을 불러왔다.  하지만 이 책은 확실한 이론적 토대가 부족한 탓에 맑스의 자본론과 비견될 정도는 아니다. 피케티는 맑스를 잘못 해석하기도 했는데, 칼 맑스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피케티는 “나는 맑스의 책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한 것을 고려했을 때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피케티의 책은 자본가 이익과 자본가 계급을 약화하는 정치적 조치의 중요성과 특히 자본과 부에 대한 전 세계적 누진세가 이런 상황에서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강조했다. 맑스와 엥겔스도 공산당 선언을 통해 “높은 누진소득세율”을 주장했기 때문에 이런 정치적  논쟁은 맑스주의자들에 의해   환영받아야 할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라면 자본에 대한 전 세계적 누진세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더 급진화했을 것이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1971~present)

 

맑스주의 커뮤니케이션 이론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과 문화가 물질적 행위(practices)인지, 어떻게 노동과 언어가 상호 구성이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커뮤니케이션과 정보가 같은 사회적 활동과 의미의 사회적 구성의 변증법적 사례인지 반드시 입증해야 한다. 이런 과제들을 권력과 저항에 대한 이해를 위한 보다 큰 틀 안에 위치시키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을 오늘날 여전히 살아있고 관련성 있는 맑스주의 전통의 흐름에 직접 위치시키는 것이다”(Mosco, 2009). 맑스주의 커뮤니케이션 이론은 커뮤니케이션을 자본주의와 연계 시켜 이해한다: “권력과 생산관계의 발전, 상품화와 잉여 가치의 생산, 사회 계급 분화와 투쟁, 모순과 적대적 운동과 같은 자본주의 분석을 전면에 배치한다”(모스코, 2009).

 

맑스주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는 최근에만 중요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중요했다. 커뮤니케이션은 항상 계급 사회의 불평등 구조에 편입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등장으로 맑스주의 커뮤니케이션 이론은 시련을 겪게 된다. 신자유주의가 맑스주의 학문을 소외시키고 차별하면서, 맑시즘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대체하는 것이 보편화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맑스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지만 맑스주의자가 되는 것과 맑스주의를 연구하는 것은 항상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부분적으로 맑스주의 연구가 단단한 제도적 기반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맑스의 연구에 관해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관심을 미디어 기관들의 지배적 행정적 특성에 도전하고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비판적 연구의 제도화를 강화하는 제도적 변혁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맑스의 미디어에 대한 이해

 

우리는 맑스의 저술에서 발견되는 미디어의 생산, 이용 그리고 효과의 영역을 다음처럼 요약할 수 있다.

 

상품 생산 영역:

  • 특정(Specific): 미디어 산업에서 합리화 기술로서 미디어 기술
  • 특정(Specific): 미디어 분야에서 자본 집중과 중앙 집중화의 과정
  • 특정(Specific): 미디어 자본의 생산과 미디어 기업의 임금 노동자로서의 지식 노동자
  • 일반(General): 고정적, 가변적 자본 지분을 줄이기 위해 생산의 시공간 조율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기술.
  • 일반(General): 자본주의 생산의 공간 확장을 위한 수단으로써 커뮤니케이션 기술

 

상품 유통 영역:

  • 특정: 미디어 인프라 자본 축적 수단으로서의 전송 기술
  • 특정: 광고 전달자로서의 미디어
  • 일반: 자본의 유통 및 회전 시간 단축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기술
  • 일반: 세계 무역 세계화의 수단과 결과물로서 미디어
  • 일반: 자본의 공간 집중화 수단으로서의 미디어

 

아이디어의 유통과 수용 영역:

  • 이데올로기 전달체와 유통체로서의 미디어

 

대안미디어의 생산, 유통 및 수용 영역:

  • 계급투쟁의 수단과 비판적 아이디어의 유통 수단으로서 기능하며 대체 생산, 유통, 그리고 해석으로 받아들여지는 대안 미디어

 

자본주의 경제에서 미디어의 네 가지 역할은 다음처럼 구분될 수 있다:

  1. 미디어의 상품 형식
  2. 미디어의 이데올로기 형식
  3. 미디어 수용
  4. 대안 미디어

 

자본주의에서 미디어는 정치제도(국가, 시민 사회, 법률 등)와 문화제도(교육, 가족, 종교 등) 간 관계에서가 아닌, 경제의 생산, 유통 그리고 소비 과정에서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 영역 내 자본 축적은 미디어 콘텐츠 영역과 미디어 인프라 영역 모두에서 발생한다. 이 두 영역은 미디어 자본 영역을  함께 구성한다. 맑시즘의 자본 회로는 이 두 영역에서 각각 나타나는데, 두 영역 모두 자본 축적을 지향한다.

 

미디어 기술은 미디어 콘텐츠 산업뿐만 아니라 생산의 합리화를 촉진한다. 더 나아가, 미디어 기술은 생산, 유통 그리고 무역의 세계화를 촉진한다. 이 세계화 과정은 또한 순차적으로 새로운 미디어 기술의 발전을 촉진한다. 

 

미디어 기술은 기업 내 커뮤니케이션에도 사용된다. 합리화, 세계화, 기업 내 커뮤니케이션은 자본의 투자 비용(상수와 변수 모두)을 줄임으로써, 그리고 상대적 잉여 가치 생산의 촉진(더 적은 시간에 더 많은 생산)을 통해 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과정들이다. 미디어 콘텐츠 산업은 잉여가치가 금전적 이익으로 전환되는 자본 실현 과정인 상품의 유통과정에서 상품의 광고와 마케팅을 위해 중요하다. 

 

 

미디어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미디어와 미디어 기술의 사용가치(use value)는 주로 정보를 제공하고,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고, 문화 창조를 촉진하는 능력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용가치는 상품(commodity)으로 구현되는 생산물의 교환가치(exchange value)에 의해 지배된다.  미디어도 상품 형식을 취할 때, 그 사용가치는 오직 자본가에게 자본을 축적하게 하는 교환을 통해서만 소비자에게 가능하다. 구체적 생산물로서 미디어와 기술은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의 사용가치 측면을 대표하고, 미디어의 화폐 가격은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의 교환가치 측면을 대표한다. 

 

상품 가설은 미디어의 교환가치 측면을 다룬다. 이데올로기 가설은 교환가치에 의한 미디어 사용가치의 지배가 지배의 정당화와 재생산에 있어 어떻게 미디어의 역할을 창출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두 가설은 사용가치로서의 미디어와 교환가치로서의 미디어라는 미디어의 모순되는 이중 특성을 통해 연결된다. 상품으로서의 미디어는 그 교환가치를 돈의 형식, 즉 미디어의 가격, 을 통해 현실화하는 화폐 사용가치와 관련 있다. 돈은 미디어와 관련된 교환가치이다. 돈은 미디어 상품에서 사용가치 - 교환의 보편적 등가물 - 를 현실화한다. 

 

신문 미디어의 교환 가치

 

소비자들은 미디어와 기술의 사용가치에 관심을 가지지만, 자본가들은 그들의 자본 축적을 도와주는 교환가치에 관심을 가진다. 미디어와 기술의 사용가치는 자본가들이 통제하는 상품의 교환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만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 이 말은 미디어와 기술의 사용가치는 돈이라는 교환가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의미다. 

 

상품화는 자본주의에서 미디어와 기술의 기반을 구성하는 기본적 과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디어와 기술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는 “양극단 대척점”의 관계다. 미디어와 기술이 소비자에게 도달할 때쯤에 그것들은 상품 형태를 이미 취했으며, 따라서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대안미디어

 

대안미디어는 미디어의 이런 상품화 특성에 도전한다. 대안미디어는 미디어와 기술에서 교환가치를 하위에 위치시고 사용가치를 지배적 지위에 위치시키는 관계의 역전을 목표로 한다. 대안의 수용 과정은 미디어의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초월한다. 수용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상품화 특성에 대해 질문을 던질 권리가 부여된다. 

 

대안미디어는 자본주의 미디어 산업에 도전하는 영역이다. 대안미디어는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비판적 콘텐츠를 창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미디어의 조직과 생산을 위한 대안 방식을 고려한다. 미디어 콘텐츠는 수용(reception)에 좌우된다. 수용은 이데올로기가 재생산되고 잠재적으로 도전받는 영역이다. 미디어 콘텐츠 자본의 일부는 수용자(audience)를 인구통계학적 특성에 따라 결정되는 비율로 광고 고객에게 상품으로 판매함으로써 축적된다. 댈러스 스마이드(1977)도 수용자 상품(audience commodity)을 이런 맥락에서 말했다. 물론 광고 수익이 모든 미디어 자본의 일반적 특징은 아니다. 최근 들어, 수용자들은 점점 더 콘텐츠와 기술을 생산하는 적극적 수용자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현상이 미디어의 민주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수용자와 사용자에 대한 새로운 형식의 착취다.

 

 

맑스의 자본주의 미디어에 대한 분석은 다음 4가지 영역으로 요약될 수 있다. 

 

1)미디어와 상품:

자본 축적, 미디어 기술 산업, 미디어 콘텐츠 산업/문화 산업, 디지털 미디어 산업, 미디어와 금융화, 미디어와 세계화, 수용자 상품화, 미디어 집중, 미디어 합병 등

 

2)미디어와 이데올로기:

미디어 조작, 미디어 선전 필터, 광고, 대중 홍보, 상품 마케팅, 문화 제국주의 등

 

3)미디어 수용 및 사용:

이데올로기적 수용, 비판적 수용, 비판적 미디어 사용 등

 

4)대안미디어:

대안미디어 생산 영역, 대안 공공 영역, 미디어와 사회적 투쟁 등

 

이 책 대부분의 논문은 미디어와 상품화, 미디어와 이데올로기 그리고 대안미디어에 집중되어 있다. 미디어 수용 연구는 별로 없다. 이것은 리얼리티 티브이, 대중음악, 연속극, 스포츠, 영화, 퀴즈쇼 혹은 컴퓨터 게임에 대한 수용자의 해석과 같은 주제는 현대 맑스주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자들 대부분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무료 노동 착취, 연구와 교육의 상품화, 인터넷 이데올로기, 다양한 나라에서 전개되는 미디어 역할을 둘러싼 사회적 투쟁,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 분야에서 맑스주의 학자와 맑스주의에 대한 소외와 차별, 자본주의 위기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노동, 비판적 저널리즘, 사회주의적 개방형 출판 혹은 대안적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SNS)에 상대적으로 더 관심을 가진다. 이런 현상은 우리에게 다음 세 시사점을 짚고 넘어가게 한다:

 

*자본주의 위기와 폭발적 불평등이 펼쳐지는 현 상황에서는 정치 경제 주제, 계급투쟁 문제, 대안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문화 연구 주제들(가령, 팬 문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왜냐하면 문화 연구 주제들은 자본가의 이익을 이해 쉽게 전용될 수 있으며, 세계의 불안정한 생활환경과 불평등과 같은 절박한 문제들을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고전적 수용자(audience) 연구는 생산, 소비, 그리고 광고의 연구 영역인 매개 유희 노동(play labur)과 미디어 생산소비(prosumption)의 정치경제학으로 일정 부분 전환되었다. 맑스주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는 이 전환과 집중화를 환영했으며 관련 주제들 역시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었다. 이 변화의 중요한 의미는 맑스주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가 유난히 수용과 미디어 소비에는 관심이 없다는 고전적 비판이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소비가 동시에 생산이 되어가는 현 미디어 환경에서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상당 부분 진행되면서, 방송 영역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수용자 상품화부터 인터넷 생산/소비의 등장에 대한 분석이라는 새로운 차원으로까지 올라섰다.

 

페이스북에서 사용자(user)가 수용자 상품(audience commodity)이 되어가는 과정

 

*현대 세계와 현대 미디어를 이해하고 변화하기 위해서는 맑스 그리고 계급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책의 논문들은 맑스의 이론에 뿌리를 두면서 비판적 정치경제학과 비판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논문들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이해, 우리가 싸울 수 있고 싸워야 하는 투쟁들 그리고 자본주의 내 미디어의 역할과 대안미디어 구축을 위한 맑스주의자들의 시각을 전달할 것이다. 

 

 

맑스에 대한 편견, 그리고 반박

 

오늘날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맑스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는 학자들의 숫자가 증가한 것은 고무적이다. 맑스의 뛰어난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는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맑스를 오해하거나 잘못 이해하는 것은 흔한 일인데, 이는 부분적으로 그의 저작을 제대로 읽지 못했거나 아예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리 이글턴(2011)은  맑스와 맑스주의에 대한 10가지 흔한 편견을 논하면서, 맑스가 왜 옳고 왜 이 편견들이 틀렸는지를 보여준다.

 

편견 1) 맑스는 시대에 뒤떨어졌다! 

맑스주의는 구식이고 탈산업화 사회에는 적합하지 않다

반박) 맑스주의의 시의적절성!

사회 내 커뮤니케이션을 적절하고 비판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맑스가 필요하다. 

 

편견 2) 맑스주의의 탄압성!

맑스주의는 이론상으로는 좋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테러, 폭정 그리고 대량학살 만을 초래했을 뿐이다. 사회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미디어는 환상에 불과하다.

반박)  자본주의의 탄압성!

자본주의는 좋은 생각/이론처럼 들리지도 않고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규모 불평등, 세계적 전쟁 그리고 환경파괴를 보라. 사회주의와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통해 도래한다.

 

편견 3) 맑스주의=결정론!

맑스는 결정론적 역사 법칙과 자본주의 미디어의 종말을 수반하는 자본주의의 자동 종말을 믿었다.

반박) 맑스주의=변증법과 복잡성!

사회와 미디어의 역사는 구조적 조건, 열린 결말의 투쟁 그리고 구조와 주체의 변증법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을 맑스와 헤겔의 변증법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편견 4) 맑스주의 사회개량주의(Do-Goodism)!

맑스는 인간의 선함에 대해 순진한 그림을 가지면서 인간이 태생적으로 이기적이고, 소유욕이 있으며, 공격적이고 경쟁적이라는 것을 무시했다. 미디어 산업은 필연적으로 이익과 경쟁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운영이 안 된다.

반박) 자본주의의 사악함!

개인주의, 이기주의, 이익 극대화, 경쟁의 논리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하에서 시도되었고 검증되었다. 그 결과 미디어 지형이 바뀌면서 더욱 불평등해졌다.

 

편견 5) 맑스주의 환원주의!

맑스와 맑스주의는 모든 문화적 정치적 현상을 경제로 환원한다. 그들은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의 비경제적 측면을 이해하지 못한다.

반론) 맑스주의의 복잡성!

현대 자본주의에서 경제는 결정적이지 않을 수 있으나, 미디어를 포함해 자본주의 하에서 모든 현상은 계급적 측면을 가지고 있으며 변증법적으로 계급과 연관되어 있다. 현대 사회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분명 아니지만, 계급은 필요하다.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1943~present)​

 

편견 6) 맑스주의는 반인본주의!
맑스는 종교와 윤리에 관심이 없었고 의식을 물질로 환원시켰다. 결과적으로, 그는 스탈린과 다른 독재자들의 반인본주의를 위한 길을 열었다. 맑스주의는 미디어 윤리의 기반을 제공할 수 없다.

반론) 맑스주의는 인본주의!

맑스는 신실한 인본주의자였고 공산주의는 그에게 현실적 인본주의였으며 계급투쟁은 실천적 윤리학이었다. 그의 이론은 진정으로 윤리적이고 규범적이었다.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정치경제학은 필연적으로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윤리학을 포함한다.

 

편견 7) 구시대적 개념, 계급!

맑스주의의 계급에 대한 집착은 구시대적이다. 오늘날, 지식 업무의 확산은 모든 계급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반론) 계급의 중요성!

사회 조직의 모든 단계에서 발견되는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현대 사회가 무엇보다도 다층 계급 사회라는 것을 가리킨다. 지식 업무는 동질적 카테고리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계급 관계와 계층 패턴을 포함한 계급 구조의 공간이다. 콜센터의 매니저와 임시직 응대 직원 혹은 데이터 입력 직원 모두 지식 노동자로 불린다.

 

편견 8) 맑스주의자는 민주주의를 반대한다!

맑스주의자는 폭력혁명을 지지하며 평화적 개혁과 민주주의를 반대한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위한 미디어의 중요한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다.

반론) 사회주의=민주주의!

자본주의는 인권 침해, 구조적 폭력 그리고 전쟁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미디어 영역에서도 반민주적 목표에 대한 자본주의 미디어의 지지 역사를 우리는 볼 수 있다. 맑스주의는 평화, 민주주의 그리고 민주적 미디어에 대한 요구이다. 맑스도 그 자신 실천적 저널리스트로서 언론의 자유, 검열의 폐지, 민주적 저널리즘 그리고 민주적 미디어를 위해 투쟁했다.

 

편견 9) 맑스주의는 독재주의!

맑스주의의 논리는 미디어를 통제, 감시, 조작하고 검열하는 괴물 같은 국가 독재를 초래하는 일당 독재의 논리이다.

반론) 자본주의는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수단을 통해 미디어를 통제하고, 감시하고, 조작하고 검열하는 괴물 같은 경제 독재 체제를 구축한다. 맑스주의 논리는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는  조건을 육성하는 균형 잡힌 인류애의 하나다.

 

편견 10) 비 계급 지향의 새로운 사회 운동!

새로운 사회 운동(페미니즘, 환경주의, 동성애자 권리, 평화 운동, 청년 운동 등)은 계급과 맑스주의를 뒤로 밀어냈다. 대안미디어를 위한 투쟁도 이 새로운 사회 운동과 관련 있는 것이지, 계급 투쟁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다.

반론)  계급 지향의 새로운 사회 운동!

현재 위기에서 기인한 새로운 운동(점령하라 운동과 같은) 그리고 민주적 세계화를 위한 최근의 움직임에서 기인한 새로운 운동은 불평등과 계급에 대한 깊은 관심과 맞물려 있다. 현재의 투쟁은 다수 대안미디어를 이용한 계급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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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 

 

번역을 했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부분이 많다. 당연하다고 본다. 처음 접하는 영역인 데다가 논문의 결론 혹은 초록(abstract)만을 보고 논문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기대가 무모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전 책 번역과 마찬가지로 같은 주제, 하지만 다른 언어와 다른 접근의 글들을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실루엣처럼 보이던 의미의 실체가 어느덧 뚜렷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소재를 놓고 다양한 접근을 할 이후 논문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