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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머리말
많은 경우 문맥의 흐름을 위해 원문의 네트워크(network)를 인터넷(internet)으로 번역했다. 여전히 네트워크로 번역된 용어도 많은 경우 인터넷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간주해도 될 것이다.
저자 Jens Schröter는 Bonn 대학에서 미디어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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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마찰 없는 자본주의”
(The Internet and “Frictionless Capitalism”)
Jens Schröter
1 서문 (Introduction)
1989/90년 이후, 두 측면에서 인터넷만큼 중요한 “뉴 미디어”는 없었다: 첫째, 인터넷은 초국가적 경제의 중심이 되었고, 둘째, 이 새로운 기술은 신화적 이야기의 중심이 되었다: 한편, 부르주아 언론이 비사회적 기술적 유토피아에 열광하기 시작했지만, 사회적 유토피아는 사라지지 않았다. 동구 스탈린주의와 서구 자본주의 간 냉전 이후, 인터넷에 의한 ‘마찰 없는’(빌 게이츠의 표현) 자본주의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서 역사의 다음 단계가 될 것 같았다. 빌 게이츠의 이 표현은 공식적인 부인에도 그 시점까지 자본주의가 마찰로 가득 차 있음을 실토하는 것이었다.
1981년 초에 장 프랑수아 료타르(Jean-François Lyotard)는 다음과 같이 관찰했다: “자본주의, 자유주의 혹은 신자유주의 담론조차도…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데 부족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자신을 정당화하는 방법을 더 이상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사회의 모든 것을 컴퓨터화’하기 위해 ‘정보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데, 그것은 자본주의를 미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료타르는 IT 기술이 현재의 위기를 악화시키는 대신, 해결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발언 당시에는 인터넷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나마 존재했던 인터넷 전신 형태의 네트워크도 대부분 기업은 이용하지 않았다. 인터넷의 가장 중요한 전신 중 하나인 아파넷(ARPAnet)은 군사적(핵 전쟁 상황에서도 여전히 기능할 수 있는 통신) 그리고 학술적(당시에 힘들었던 컴퓨터 자원의 공유) 필요성이 겹치면서 탄생했다. 오랫동안 아파넷은 비상업적 비경제적 매체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1991년 상업적 활용 금지 규정의 해제와 1994년 www의 개시 이후 인터넷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1년 현재, 인터넷은 말 그대로 “세계 시장의 네트”가 된 것처럼 보인다.
인터넷은 기술 자체가 사회 변화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패권에 의해 기술이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인터넷은 1973년 이후, 특히 1989/90년 이후의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에 의해 지배된 자본주의에 의해 이용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 조건도 생산력도 개별적으로 사회 변화의 동인으로 간주할 수 없다; 동인은 항상 그들 간 복합적 상호작용에서 발견된다. 기업의 전 부문을 아웃소싱하는 경향을 가진 “초국가적(transnational) 사업”은 가속화되거나 실제로 인터넷을 통해서만 가능했으며, 이에 따라 인터넷은 점점 더 패권적 자본주의 담론에 통합되었다: “지금까지 ‘비즈니스’라는 용어 아래에 지역적으로, 조직적으로, 제도적으로 그리고 법률적으로 통합된 것들은 분해되고, 해체되어 흩어졌다. 비즈니스는 이제 가상적 존재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런 비즈니스 조직의 “분자화”(molecularization)는 “전 세계적 정보의 실시간 유통”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인터넷이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에 편입되면서 야기한 세계적 혼란에 대한 많은 증거를 열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개인을 영구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지, 새로운 형태의 재택근무와 외견상 자영업이 어떻게 가능한지, 새로운 유통 채널이 어떻게 개설되는지, 어떻게 개인을 타겟으로 한 광고와 소비자에 대한 정보 수집이 가능해졌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대한 금융 섹터가 데이터 네트워크 덕분에 어떻게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등.
이와 관련하여, 인터넷이 “현대 생산 조건에 대한 생산력 반란”의 대표적 사례는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패권적 자본주의 담론은 이 새로운, 따라서 용도가 결정되지 않은 인터넷 기술을 패권적 운영 기술로 전환시키려고 시도하지만, “자본주의 생산의 진정한 장벽은 자본 그 자체”이기 때문에, 이런 시도 자체가 어떻게 제한받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일수 있다. 또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인터넷이 자본주의 주변부에 있던 초기, 그 잠재력에 대한 행복감과 그 안에 있는 패권적 구조들은 역설적으로 인터넷에 의해 좌절될 수 있다. 이것은 인터넷에 “저항적” 하위문화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터넷의 “성공” 때문이다. 뉴 미디어의 패권적 “조정”은 있지만 이 새로운 미디어가 당초 예상대로 발전한다는 보장은 없다.
다음 섹션에서는 1990년대에 발전한 인터넷 담론의 일부를 개략할 것이다. 우리는 특히 “사용자 친화적” World Wide Web 플랫폼이 유행하기도 전에 인터넷을 글로벌 신자유주의 경제의 매개체로 전환하려고 했던 주장들에 주목한다.
2. 마찰 없는 자본주의 (Frictionless Capitalism)
인터넷은 1991년에서야 상업적 이용이 가능하게 되었고, 1994년 이후 www와 브라우저의 확산 덕분에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정치권은 발 빠르게 반응했다. 1994년 초, 미국 부통령 앨 고어는 ‘정보 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라는 용어를 만들면서까지 인터넷 활용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고어는 인터넷의 초기 형태와 함께 발전한 “범용 아카이브”(universal archive)의 유토피아적 모델을 제시했다: “현재 우리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 해결에 이용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1994).” 그는 또 이 정보는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주로 “기업인들”에 의해 다루어져야 한다고 명확히 했다.
문제는 이 엄청난 양의 정보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는 방법이다: “이 엄청난 양의 정보에 직면하여, 우리는 이 정보를 빠르게 분류하고, 정리하고,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장치들의 출현 과정을 보고 있습니다(1994).” 이 “새로운 장치들”(new devices)은 당연히 1990년대 초부터 급속히 퍼진 개인용 컴퓨터(검색 엔진에 접근할 수 있는 브라우저가 탑재된)다. 이 개인용 컴퓨터는 정치에서처럼 경제적 문제 해결에도 가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백악관에 있는 내 사무실에서 하는 일의 90%는 컴퓨터 터미널에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정보를 이용할 수 있으려면 컴퓨터끼리 연결되어야 한다. 데이터 네트워크의 개발이 주로 군대와 대학, 그리고 최소한 부분적으로 공적 자금의 지원에 의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고어는 국가 정보 인프라의 개발을 민간 기업의 주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연히 유럽은 미국에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서둘러서 작성한 ‘글로벌 정보사회’라는 제목의 “Bangermann Report”는 고어의 정보 고속도로 비유를 가볍게, 하지만 더 낙관적으로 언급한다: “정보 사회는 유럽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우리 사회 및 경제 조직의 효율성을 개선하고,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동유럽이 붕괴한 지 5년 후, 인터넷은 사회적 결속력을 창출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인식될 뿐만 아니라 생산성을 제고하는 방법으로도 인식되었다.
그러나: “개인이 이 새로운 정보 문화와 그 수단들을 거부할 위험이 있다.” “다원주의”를 자주 인용함에도 불구하고, 보고서는 인터넷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반대자들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기술의 광범위한 대중적 수용과 실제 사용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앨 고어와 마찬가지로, 대학과 군대에 상당 부분 의존했던 데이터 네트워크 (인터넷) 개발의 본질에 대한 시장 이데올로기의 억압은 여기서도 두드러진다. “시장 주도형 혁명”은 “완전한 경쟁”을 요구하고 장려하는데, 여기에서 동어반복적 추론이 뒤따른다: “정보 인프라는 개방된 시장 환경에서 국경이 없기 때문에, 정보사회는 본질적으로 글로벌한 차원을 가지고 있다.” 선험적 가정은 글로벌 시장이며, 새로운 매체는 이에 부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식 시대를 위한 대헌장’(Magna Charta for the Knowledge Age)은 1994년에 발표되었다. 뉴트 깅그리치(Newt Gingrich)를 중심으로 한 보수적 사상가들이 참여한 이 선언문은 사이버 공간에 대한 “보편적 접근”, 즉 ‘말 그대로 보편적 바이오일렉트릭 환경”을 반복해서 요구한다. “오늘날 실제로 우리는 개인 컴퓨터에 보편적인 접근을 할 수 있다”라고 이 선언문은 선언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주장을 한다: “대화형 멀티미디어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려면 정부 정책의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이미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다는 말과 모든 사람이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 간 모순은 이 대헌장이 정보 사회에 대한 명확한 개념 혹은 정책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오히려 이 선언문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로의 전환 과정에서 국가 역할의 변화와 맞물려 단순히 새로운 옷으로 단장한 고전적 자유주의 이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의 요구는 모든 사람이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사회적) 국가 제약도 없는 “사이버 공간 시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정부 역할에 대해 부정적인 그들 태도 때문에 선언문 저자들은 국가의 임무로 간주되는 정보 고속도로 구축 비유를 거부한다. 대헌장이 의미하는 보편적 접근이라는 이상은 결국 시장에서 정보가 사고 팔릴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할 뿐이다.
선언문은 “자유의 의미, 자치 정부의 구조, 재산의 정의, 경쟁의 본질, 협력의 조건, 공동체 의식 그리고 진보의 본질은 지식 시대를 맞이하여 재정의될 것이다”라고 명시했다. 디지털 미디어의 압력으로 다음 현상들도 재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음악 파일 공유 서비스 Napster나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CD 굽기로 음악 CD를 복사하는 것도 지식 재산권이나 저작권에 대한 전통적 개념 (“재산의 정의”)이 디지털 코드와 그것의 재생산 가능성에 의해 훼손될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정보는 …거의 비용 없이 복제될 수 있으므로 모든 개인은 (이론적으로) 사회의 전체 산출물을 소비할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이 이론이 현실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헌장의 저자들은 재산에 대한 보다 전통적 정의를 상기하면서, 신자유주의 담론에서 그 역할이 많이 훼손된 국가에게 결정적 행동을 취할 것을 요구한다: “분명하고 집행 가능한 재산권은 시장이 작동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재산권을 정의하는 것은 정부의 핵심 기능이다.” 냅스터와 같은 파일 공유 사이트에서 디지털 인터넷 기술 사용은 음악 산업의 요구(분명하고 집행 가능한 재산권)를 수용한 국가 감시 활동에 의해 억제되고 있다. 특히 이 사례는 국가가 필요하다면 경찰력을 동원해서라도 새로운 미디어를 기존 사회 구조에 편입시키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런 면에서 “디지털 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혁명”이란 용어는 좋든 나쁘든 기존 사회 구조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1990년대 이후 빠르게 확산되는 지식 시대와 이어지는 “지식 사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선언은 그저 익숙한 신자유주의의 요구를 반복할 뿐이다: 국가의 퇴각, 쉬운 접근과 낮은 장벽으로 이루어진 역동적 경쟁으로 특징지어지는 시장의 팽창, 그리고 “보편적 참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시장 참여의 의무화. 여기서 핵심은 인터넷의 상업적 활용이 허락된 지 불과 4년 후, 사이버 공간이 궁극적으로 하나의 목적을 추구하는 “전형적 경쟁 시장”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미국 비즈니스 및 기술 리더십의 르네상스.” 이 사이버 자유주의는 동시에 반국가적(anti-state) 정서를 동반하면서,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Californian ideology)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알려지게 되었다.
John Perry Barlow의 사이버 공간 독립 선언(Declaration of the Independence of Cyberspace)도 이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았다. 제퍼슨의 미국 독립 선언에 기반을 둔 이 선언은 비록 시장에 대한 자유주의적 이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사이버 공간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거부한다. 이 선언문의 거의 모든 텍스트는 독점권의 축소를 요구하는데, 오늘날 컴퓨터 시장에서 인텔과 특히 마이크로소프트가 차지하는 역할을 고려하면 터무니없다 (오늘날의 구글 혹은 페이스북은 말할 것도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이자 전 CEO인 빌 게이츠(Bill Gates)는 “고속도로 비유의 진짜 문제는 응용 프로그램보다 인프라를 강조한 것”이라면서 정보 고속도로 비유에 거부 반응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그의 응용 프로그램 언급은 정보 고속도로가 충분히 상업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 비유를 거부했음을 보여준다. 게이츠의 글은 유토피아적이라고 할만한 그의 생각을 드러낸다: “대화형 네트워크가 궁극적 시장이 될 것이다. “그는 계속 이어간다:
“만약 모든 구매자가 모든 판매자의 가격을 알고, 모든 판매자가 모든 구매자가 구매할 것을 안다면, ‘시장’에 있는 모든 사람은 충분한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고, 사회의 자원은 고르게 분배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애덤 스미스의 이상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구매 희망자와 판매 희망자가 완전한 정보를 갖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은 전자 시장을 확장해 궁극적으로는 중개, 보편적 중개인이 될 것입니다… 이 시장은 쇼핑객의 천국이 될 것입니다.”
즉, 인터넷을 통해 가능해진 구매자와 판매자 간 보편적 소통, 그리고 각 가정의 컴퓨터가 모든 종류의 상품에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시장 참여자는 “불안전하고 제한된 정보”라는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요지이다. 빌 게이츠가 보기에 보편적 소통과 접근은 “광범위하고 효율적 경쟁”을 가져오며, 시장이 완전히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이다 (빌 게이츠의 실제 모델은 “건전한 전자 시장”으로서의 주식 시장이었다. 마치 폭락과 같은 것은 없는 것처럼…). 이 보편적 경쟁은 몇 가지 구성 요소를 갖고 있다: 빌 게이츠는 제품이 인터넷에서 잠재 고객으로부터 명령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언급했다. 그는 또 인터넷에 의해 급속도로 개인화된 광고와 그 제작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그에게 특별히 매력적으로 다가간 것은 옷의 개별 맞춤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치수를 사전에 알려줄 수 있다면 인터넷을 통한 맞춤 제작이 가능할 것이다. 그의 쇼핑객의 천국이라는 유토피아는 이 사례에서 더욱 명확하게 그 모습이 드러난다:
“점점 더 많은 Levi Strauss & Co. 매장에서 고객들은 약 10달러를 추가로 지불하고 자기 신체에 맞는 청바지를 제작합니다. 즉, 엉덩이, 허리, 다리 길이 그리고 신장 치수 및 스타일을 조합한 8,448벌의 청바지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 생각은 거의 동일한 8,448개의 대안 사이의 선택으로 구성된 이상한 “자유”다. 하지만 이 자유는 이 엄청난 양의 선택 대상에서 최종 선택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없다. 이런 현상은 www의 전형적 특성인데, www의 가장 큰 문제는 선택의 복잡성을 감소시키는 중앙 디렉토리와 메커니즘의 부재이다. 이 부재로 인해 이용자들은 다원성과 정보의 풍부함이라고 종종 칭송받는 이 엄청난 양의 산재한 정보에 직면해야만 한다. 결과적으로, “12,000개에 달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검색은 풍부한 정보가 아니라 백색 소음을 전달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 이에 검색 엔진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역사적 해결책을 제공했다.
더 나아가, 빌 게이츠의 주장은 당황스러운 변화를 보여 준다. 그의 주요 초점은 더 이상 이용자가 시장 기반 정보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광고와 제품이 어떻게 고객에게 접근할 수 있느냐이다. 이제 소비자는 단지 자기 신체 치수를 온라인으로 등록만 해서는 안 된다. 게이츠는 “소프트웨어 에이전트”가 소비자의 잠재의식을 상업화할 수 있는 장기 목표를 구상한다:
“설문지는 고객의 미묘한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이미지를 포함할 수 있다. 에이전트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방법에 대한 피드백을 고객에게 제공함으로써 이 과정을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전체주의적 질서는 소비 효율의 큰 상승을 가능하게 한다. PC는 앨 고어의 주장 측면뿐만 아니라, 구매 측면에서도 효율성 기계 역할을 한다. 실제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소비자게에게 제품을 권장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이 “기술 종말론”은 “무한한 팽창에 대한 자유 시장 비전과 기술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을 결합한 것이다. 이 외에도 유사한 웹 선언문은 많다: Dertouzos(1997)는 다음과 같이 썼다: “컴퓨터와 네트워크의 미래 세계가 아테네의 벼룩시장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하고 불가피해 보인다. 시장의 상품은 물리적 제품 대신 정보 제품에 지배된다.”
이상 논의된 모든 텍스트에는 공통점이 있다: 장벽은 무너지고, 시장은 전 세계로 확장되며, 제약 없는 경쟁과 더불어 인터넷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은 단지 요구될 뿐만 아니라, 종종 “우리”라는 익명으로 명령되어진다. 이것은 www의 구조와 완벽하게 어울리는 것처럼 보인다: “인터넷 프로토콜은 거의 제한 없는 확장을 가능하게 하므로, 축적과 팽창을 하려는 자본이 압력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이와 맞물려 1990년대 중반 새로운 마법의 단어가 생겨났다: 신경제 (New Economy). 새로운 자본주의의 매개체로서 인터넷의 끝없는 마법은 그 목표에 도달한 것처럼 보였다. 닷컴 벤처 기업이 주식은 하늘 높이 치솟았고, 인터넷은 정말로 돈 버는 기계가 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거품은 이내 큰 소리와 함께 터졌다.
3 인터넷의 생산력과 생산 관계 (The Productive Force of the Internet and the Relations of Production)
1990년대부터의 논의들은 프로그램 작동이 가능한 기계를 위한 프로그램을 보여준다: 이 논의들은 개인의 내면 포함, 세계 구석구석까지 자본주의의 완전한 팽창을 위한 것이다. 이베이(eBay)의 등장으로 모든 아파트는 세계 시장의 일부가 되었고, 모든 개인 홈페이지는 자신의 마케팅을 위한 쇼윈도로 변했다. Paul Treanor는 1990년대 인터넷에서 확산된 신자유주의 담론이 전체주의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일찍이 언급한 바 있다;
“이 논리는 사실상 ‘그 누구도 자유 시장밖에 머물 수 없다’라고 말한다. Net-ism(인터넷주의)은 선택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네트, 하나의 네트, 하나의 글로벌 네트, 모든 곳을 커버하는 하나의 네트, 하나의 전 세계적 사이버 공간을 원할 뿐이다. 자유 시장(더 나아가 리버럴리즘 전반) 이데올로기 하에서 인터넷과 공존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미 여러 번 지적했듯이, 이 인터넷의 재적응 과정이 실제로 ‘마찰이 없는’ 것인지 의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경제(New Economy) 거품 붕괴는 이미 이를 보여준 바 있다. Napster와 같은 파일 공유 사이트와 CD 굽기, 불법 영화 공유 등과 같은 현상에 대한 법적, 경찰력 동원 논쟁에서 보듯, 디지털 미디어의 확산인 “제3차 산업혁명”은 실제로 자본주의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종류의 암시는 이미 있었다. 1948년 Norbert Wiener는 사이버네틱스에 관한 그의 저서에서 “초고속 컴퓨팅 기계”(ultrarapid computing machine[s])의 미래 가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인간 노동자가 없는 전자동 공장과 조립 라인을 향한 발전 속도는, 예를 들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레이더 기술을 개발하는 데 투자된 것과 같은 노력을 엔지니어링에 쏟으려는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다. … 기계로 하여금 사소하고 불쾌한 작업을 하게 하는 것은 인류에게 좋은 일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새로운 잠재력이 시장 관점에서 평가되는 것은 좋지 않을 수 있다. 굴착기와 경쟁할 정도로 낮은 임금률의 미국 곡괭이 노동자는 없다. 현대 산업 혁명은 이와 비슷하게 인간의 뇌를 평가절하할 수밖에 없는데, 적어도 더 단순하고 일상적인 결정에서는 그렇다… 제2차 산업 혁명을 완수된 것으로 간주한다면, 보통 혹은 그 이하 능력을 갖춘 인간은 타인이 돈을 주고 살만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없는 셈이다.”
1964년,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는 그의 기념비적 미디어 이론서 ‘Understanding Media’를 통해서 “실업에 대한 경고의 어리석음”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16년 전에 Wiener는 제3차 (그는 제2차라고 불렀지만) 산업 혁명이 비용 절감 경쟁 (McLuhan 자신은 “경쟁적 분노”라고 표현했다)을 초래하면서 직장에서의 대규모 합리화(인원 감축:역자 주)를 가져올 것이라고 이미 예견한 바 있다. 100년 전의 맑스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
“언제 일해야 하는지는 단지 ‘생산 과정의 감시자이자 통제자’로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며 (최소한 대부분 사람에게), ‘노동은 더 이상 부의 위대한 원천이 되지 않게 된다. 갈수록 제품 생산이 ‘직접적으로 투입된 노동’에 의존하는 않게 되면서, 교환 가치에 기반을 둔 제품 생산 체계는 무너지게 된다.”
이런 움직임의 한 예는 자동차 산업부터 완전히 자동화된 비디오 렌탈 가게에 이르기까지 수백만 명의 노동자를 해고하게 만든 산업용 로봇이다. 이 움직임의 직접적 결과는 현재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대량 실업이다. 현대 대량 실업은 실질 임금이 지속해서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증가하고 있으며, 내수 시장 침체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사태는 소위 떠오르는 ‘서비스 사회’. ‘정보 사회’, 혹은 ‘지식 사회’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인터넷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특히 이 분야의 디지털 기술에 의해 직업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사람들은 기차와 비행기 표, 책, cd, 벽지, 옷장 등을 살 수 있다; 온라인으로 사람들은 은행 거래를 할 수 있고, 수많은 기록보관소를 검색할 수 있으며, 더 싼 가격에 모퉁이 가게에서 맛본 와인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따라서 수많은 영업 사원과 구매 조언 직원 또한 불필요한 존재가 된다:
“산업용 로봇에 의해 생산 업무가 축소되거나 완전히 폐지된 것과 마찬가지로, 사무실 업무와 서비스 업무 역시 인터넷에 의해 축소되거나 폐지되고 있다.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혁명의 첫 물결 혹은 첫 단계는 자본주의 착취 과정이 제품 생산 비용을 낮춤으로써 가능해진 시장 팽창을 통해 재흡수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인력 감축을 가져왔다. 만약 초기 산업 혁명 당시 생산력 발전에 따른 보상 메커니즘이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혁명의 첫 번째 단계보다 효과적이지 않았다면, 두 번째 인터넷 단계에서는 훨씬 덜 효과적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추가적 대량 실업의 현저한 증가만 있을 뿐이다: 독일연방공화국에는 4백만 명이 아니라, 8백만 혹은 1천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할 것이다.”(Kurz, 2000)
현재 RFID 칩 (Radio-Frequency Identification Chip: 일명 전자태그: 역자 주)이 슈퍼마켓, 웨어하우스 등에서 가장 성공적 네트워크 제품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슈퍼마켓과 웨어하우스의 대부분 노동자는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2005년 기준, 200개 대기업이 전 세계 경제활동의 25% 이상을 차지했지만, 그들은 전 세계 인구의 오직 0.75%만을 고용했을 뿐이다. 시뮬레이션, 자동화 그리고 네트워킹은 생산잠재력을 치솟게 만들지만, 갈수록 많은 사람은 생계를 위한 직장 사이클과 소비에서 배제되고 있다. 이는 결국 시장 경제 전체를 위기로 몰고 간다.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소비하지도 않고 세금도 내지 않는다. 즉, 생산된 제품이 팔릴 수 없을뿐더러 (내수 시장의 붕괴를 초래한다), 시장의 법적, 교육적, 정치적 구조의 관리를 책임지는 국가가 계속 기능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여러 유럽 국가의 부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직장을 잃었거나 파트타임으로 일해야 하는 소비자들은 그들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출받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기업들도 갈수록 빨라지는 생산성 향상을 따라잡기 위해서 빚을 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 국가 그리고 기업들 모두 대출을 필요로 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디지털 기술의 확산, 구조적 대량 실업의 증가, 그리고(신용 기반) 금융 시장의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생산 조건과 디지털 혹은 네트워크 생산력 간 갈등의 신호이다.
신기술이 새로운 산업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반론은 이베이에서 주문한 제품을 배달하는 직원들을 제외하고는 유감스럽게도 근거가 없다. 현재, 사라지는 것보다 훨씬 적은 수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다. 심지어 창출된 일자리도 많은 경우 저임금 불안정 직장이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은 결코 빌 게이츠가 주장한 ‘마찰 없는 자본주의”와 “궁극적 시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디지털 기술은 현재 우리가 유일한 옵션으로 여기는 시장 경제를 덜 효율적으로 기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맑스가 말한 “생산의 물질적 발전과 그 사회적 형태 사이의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맑스는 기술 결정론도 사회 결정론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생산의 기술적 힘과 사회적 형태 간 관계에 주목했을 뿐이다:
“사회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은 기존 생산 관계와 충돌하게 된다… 생산력의 발전 형태에 이 특정 단계의 생산 관계는 그 사회의 족쇄로 변한다. 이에 따라 사회 혁명의 시기가 도래한다.”
이것이 “디지털 혁명”이라는 캐치프레이즈의 진정한 의미이며, 이는 보통 무의식 상태로 남아있다.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분야의 선도적 사상가 Norbert Wiener는 이미 이를 예견한 것으로 보인다: “답은, 물론, 팔고 사는 것이 아닌 인간의 가치에 기반을 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컴퓨터 기술의 잠재력과 재생산의 자본주의적 사회 형태 사이에서 Wiener가 예상한 갈등이 현대 미디어 연구의 사이버네틱스 논쟁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학문은 맑스를 다시 읽음으로써 많은 혜택을 누릴 것이다.
4 결론 (Conclusion)
2000년 이후 우리는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1990년대 말, 빌 게이츠의 ‘마찰 없는 자본주의’라는 낙천적 개념은 닷컴 기업들의 붕괴로 조롱거리가 되었다. 2008년 경제 위기가 시작되기 전, 이번에도 ’웹 2.0’을 둘러싸고 비슷한 낙관적 담론이 있었다. 새로운 인터넷 애플리케이션인 ‘소셜 미디어’가 새로운 종류의 일, 가치 그리고 부의 원천이 될 것처럼 떠들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소셜 미디어가 새로운 통제, 규율 그리고 무의식의 상업화 기술을 이용했음에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것은 디지털 미디어는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없고, 양립시킬 방법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간단히 말해, 디지털 미디어는 맑스의 표현대로 생산 관계와 충돌하는 생산력이다. 물론, 이 현상 자체가 자본주의 이후 사회 형태로 저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인식을 높이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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