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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머리말
지난번 포스팅이 5월 8일에 이루어졌으니까 한 달여가 지났다. 그동안 몸이 많이 안 좋았다. 장 쪽 트러블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증상으로 인해 밤에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는 까닭에 낮에 극심한 피곤 상태가 지속하였다. 게다가 계속 문제가 되어 온 잇몸/치아 질환이 더욱 악화되어 몇 주간은 진통제에 의존할 정도였다. 뉴질랜드에서 내과 전문의와 치과를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치료를 시도해 보았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개인 의료보험에 가입해있음에도 뉴질랜드 의료비는 국립 병원 서비스를 받지 않는 한 여전히 비싸고 의료 서비스도 제한적이다. 치과 치료도, 예를 들어, 임플란트 시술 같은 경우 한국에 비해 비용 차이가 크게 났다.
그래서 큰맘 먹고 한국에 가서 장기간에 걸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5월 하순에 한국에 도착해서 치료받을 병원 수소문하고 이후 치료받고 있지만 여전히 몸 상태가 온전치 않음에 따라 번역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번 포스팅도 어렵게 어렵게 마무리했다. 충분한 휴식과 치료가 진행되면서 몸 상태가 호전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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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원시적 축적 이론이 미디어/커뮤니케이션에 미치는 영향
(The Relevance of Marx’s Theory of Primitive Accumulation for Media and Communication Research)
Mattias Ekman
3. 자본 축적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의 전반적 역할 (The General Role of Media and Communication in the Accumulation of Capital)
자본 축적 과정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한 많은 이론적 실증적 연구는 맑스의 자본 이론에 의존한다. Fuchs(2011)는 산업으로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 내부적 측면들과 전반적 설명으로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외부적 측면들을 구분하였다. 이 구분은 자본 축적 과정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의 특정 역할을 밝혀줄지 모른다. 나는 이 측면 중 원시적 축적 혹은 강탈에 의한 축적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몇 측면만 다룰 것이다.
첫째, 미디어 콘텐츠의 이데올로기적 측면과 뉴스 시스템과 금융 부문 간 구조적 관계를 다룰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요소는 경제적, 정치적, 사법적 방식 등 다양하게 자본주의를 재생산하는 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미디어는 일상생활의 사유화(privatization)를 정상적으로 보이게 하고 촉진하는 방식을 통해 사회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막강한 위치에 있다. 미디어 콘텐츠가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자로서의 청중을 생산하는 것은 그 예다. 이 글에서는 이데올로기 비판에 대한 역사적 논의에 치중하기보다는, 강탈에 의한 축적에서 핵심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을 밝히는 데 치중한다.
둘째, 개인의 자유시간이 전용(appropriation)되어 잉여노동으로 변형되어 가는 방식에 대한 논의를 통해 소셜 미디어가 자본 축적을 촉진하는 광고 인프라로서 작동하는 방식을 다룰 것이다. 소셜 미디어와 현대 정보 기술은 일상에서 상품의 순환을 위한 시공간 압축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거나 온라인에 접속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소비자로서 광고의 타겟이 된다. 사실 인터넷의 대부분은 상업화되었고 상품화 과정은 끊임없이 이용자를 종속시킨다. 인터넷에서 상업적 콘텐츠를 비상업적 콘텐츠와 분리하기는 쉽지 않다.
3.1 뉴스 미디어와 강탈에 의한 축적의 자연화 (News Media and the Naturalization of Accumulation by Dispossession)
나는 원시적 축적과 강탈에 의한 축적 과정에서 뉴스 미디어의 구조적 이데올로기 측면이 드러나는 몇 사례를 다루고자 한다. 첫 번째는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에서 뉴스의 역할과 뉴스 미디어가 금융 부문의 이해관계와 어떻게 일치하면서 그 관행을 따라 하는지에 대한 논의다. 두 번째는 스웨덴 매스미디어가 전 세계적 정의 운동, 전 세계적 시위와 세계 소셜 포럼(World Social Forum)을 다루는 방식이다.
3.1.1 민영화 승인 및 금융화 촉진 (Endorsing Privatization and Facilitating Financialization)
1980년대와 1990년대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의 신자유주의 전환으로 인해 전 세계 대부분 나라는 민영화 물결에 휩쓸렸다. 공공 부문이 경제적으로 우선시되며 잘 발달하였던 스웨덴에서도 탈규제와 민영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스웨덴의 상황은 전반적으로 서유럽의 경향을 따라갔다. 1990년대의 민영화 물결에 맞추어 “시장”(market)은 경제 뉴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명사로 등장했다. 최종 판단 주체로서 “시장”의 등장은 어떤 정치권력이 좋고 나쁜지, 전반적 경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결정하면서 경제 문제에 대한 뉴스 보도의 담론을 변화시켰다.
“시장” 개념은 자본주의 경제의 신자유주의 전환과 탈규제의 이데올로기적 요소로 등장했다. “시장”의 등장에 발맞춰 뉴스는 금융 부문에 초점을 맞추면서 주식 시장 뉴스가 주요 흐름이 되었다. 이는 금융계 인물들이 전문가로서 일상 뉴스를 지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 이슈의 부상은 노동 시장, 노동조합 등으로부터 금융 부문 그리고 민간경제 주체로서의 시민(임금 노동자, 시민, 혹은 금융 투기 영역에 외부에 있는 사람의 반대 의미로서)으로의 무게 중심 이동을 의미한다. Almiron(2010)이 2006년에 스페인의 두 주요 일간지를 대상으로 한 연구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금융계 소식과 각종 지표로 도배된 뉴스를 보여주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대부분 정보에서 독립적 저널리즘에 입각한 조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Mörtenson(2003)과 Viscovi(2006)가 발견한 뉴스 내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도 강탈에 의한 축적 과정과 일치한다.
서민들의 저축을 금융 시장으로 이전하는 것을 촉진함으로써 민영화를 지지하는 스웨덴 뉴스 미디어의 구체적 사례와 더불어, 전 세계적 공통된 현상으로 뉴스 전달이 금융 흐름과 어떻게 연관되고, 금융 뉴스가 금융계 이해관계와 어떻게 일치하는지 고찰하겠다.
2000년 6월, 국영 통신회사 Telia가 부분적으로 민영화되었다 (30%의 주식이 대중에게 팔렸다). 엄청난 상업 광고와 정치적 캠페인 그리고 이를 지원한 미디어 덕분에 거의 백만 명의 스웨덴 국민이 이 회사의 주식을 구매했다. 이 민영화 과정에서 회사 주식은 “국민주”(people’s share)로 홍보되었다. 이 이데올로기적 단어는 대중이 이미 자신이 갖고 있는 것(국영 회사이므로)을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다시 구매한다는 역설적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민영화 시행 몇 주 전부터 스웨덴에서 두 번째로 큰 타블로이드 신문 Expressen은 독자에게 주식 구매를 촉진하는 기사를 여러 차례 실었다. 한 기사는 유혹적 제목을 달았다: “Telia 주식을 사야 하는 8가지 이유… 주식 소유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이유.” 타블로이드와 일간지는 민영화와 빠른 이익을 만들 기회를 홍보하기 위해 금융 관계자를 동원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큰 횡재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 “Telia가 좋은 출발을 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국민주를 사라고 조언한다.” 일부 기사는 주식 구매 방법을 쉽게 설명해 주기도 했다: “새로운 국민주, Telia를 구매하는 방법,” “어떻게 국민주를 살 수 있는가.” 이 외에도 많은 기사가 민영화를 적극 지지했다.
이와 같은 대규모 “국민주” 프로젝트는 금융 부문과 갈수록 긴밀히 얽혀가는 미디어 현실을 보여준다. 스웨덴 최대 언론 기록보관소 Mediearkivet를 검색해 보면, Telia 민영화 이전에는 “국민주”라는 용어가 총 186건 등장한다. 그러나 민영화가 시작된 1999년부터 정점을 찍은 2000년을 포함해서 모두 1,113건 등장한다. 2000년 한 해에만 스웨덴의 7대 신문사는 220건의 기사에서 “국민주”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통신 서비스와 같은 공공 인프라의 민영화는 뉴스 생산의 시장화와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 뉴스의 상업화, 금융 뉴스와 금융 부문 간의 공생, 그리고 저널리즘 업계의 제한된 경제적 자원과 시간적 제약은 무비판적 저널리즘을 초래했다 (물론 주목할 만한 예외도 있다). 매출 감소와 더불어 이익률 증가 압력에 직면한 뉴스 저널리즘은 자연스럽게 경제적으로 잘 자리 잡은 금융 시장이라는 손쉬운 타겟을 대상으로 한 금융 뉴스를 생산한다. 따라서 자본의 순환을 촉진하는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역할과는 별개로, 전통적 뉴스 미디어의 금융 시장에서의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제 뉴스 미디어가 금융 시장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면서 금융 시장을 활성화는 현상을 세계적 차원에서 살펴보자. 이를 위해 돈에서 돈이 생성된다(M-M’)고 맑스가 정의한 자본 축적 과정으로 돌아가 보자.
뉴스 미디어와 금융 부문과의 유착 관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들의 유착 관계는 한 은행가 가문이 소유한 최초의 유럽 신문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금융 부문의 대규모 탈규제와 1990년대 정보/커뮤니케이션 기술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금융 투기 수단의 등장 결과, 뉴스 미디어의 정보와 금융 부문의 정보는 실시간으로 겹치게 되었다. 블룸버그(Bloomberg)와 CNBC와 같은 방송사들이 대규모 투기 금융 경제를 홍보하면서 금융 부문 내 자산 이동을 촉진하는 엔진이 되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대형 티브이 방송사들은 금융업계와 결탁하면서 전 세계 저널리스트들에게 방대한 양의 금융 정보를 제공했다. 어떤 사람은 이 금융 방송이 (숫자, 지수, 요율. 금융 전문가 담론 등의 형태로) 전 세계 뉴스 매체에 기초 정보를 제공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이 기초 정보는 다양한 미디어 환경과 다양한 경제적 지리적 상황에서 뉴스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었다.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 주식 시장의 빠른 움직임은 금융 부문과 미디어 부문 모두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중반, 인터넷으로 모든 금융 정보가 실시간으로 유통되었다.
1980년대 어느 정도 모습을 드러내 금융 자본과 뉴스 저널리즘의 이해관계 일치는 1990년대 정보통신 기술의 급속한 발전 이후 표준이 되었다. 21세기, “대부분 상위 뉴스 미디어 대기업은 그들의 금융적 연결 고리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하였다.”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통한 정보의 실시간 전달 덕분에, 지난 10년 초기 몇 년 동안 금융 부문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웹 기반 금융 활동 주체들의 증가는 컴퓨터에 의해 생성된 알고리즘을 통한 거래, 비밀 헤지 펀드, 파생 상품 거래, 자산 매각 등과 함께 번성하면서 거대한 가상 자본 시장을 구축했다.
이처럼 저널리스트들의 소유권과 개인적 이해관계 측면에서 뉴스 미디어 산업과 금융 산업 간 경계는 더욱 모호해졌다. 예를 들어, 유명 저널리스트는 금융 블로그의 조언자가 되었고, 이 블로그들은 금융 인쇄 매체 및 비즈니스 텔레비전 채널의 정보 환경을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뉴스와 금융 부문의 이런 일치된 이해관계는 2008년 경제 위기 당시 저널리즘의 총체적 실패의 큰 요인이었다. 2008년의 경제 붕괴에 대한 저널리스트들과 뉴스 생산자들의 망각적 태도는 내부 비판을 초래했다. 그러나 금융 뉴스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논의는 여전히 비판적 미디어 연구의 주변부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금융 뉴스 매체와 경제 기자들의 역할을 고려할 때 뉴스 미디어는 금융화 과정을 촉진함으로써 의심할 여지 없이 금융 시스템의 투기 증가에 기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금융 정보의 ‘과잉’(superfluousness)은 금융 활동 주체들에 대한 의존도 증가 그리고 그들 소유권 증가와 더불어 경제적 이슈에 대한 무비판적 뉴스 전달에 기여했다. 따라서 금융 뉴스의 주요 역할이 금융 자본의 이익을 위한 정보 인프라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맑스가 신생 신용시스템(기본적으로 오늘날 금융 시스템)이라고 정의한 것과 관련하여, 은행, 신용 기관 및 기타 금융 활동 주체들의 역할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통한 시공간 압축과 연계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 의심할 여지 없이, 금융 기관에로의 빠른 자본 집중화를 촉진하는 ICT와 금융 뉴스 전달 기능은 자본주의 원시적 축적의 역사적 과정에서 은행과 신용시스템만큼이나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3.1.2 전 세계적 정의 운동: 폭력과 정치 (The Global Justice Movement: Violence and Politics)
전 세계적 정의 운동이 강탈에 의한 축적에 반대하는 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이 운동은 맑스가 묘사한 원시적 축적의 특징과 유사한 특정 관계를 반대하는, 다양하지만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일관성 있는 운동이다. 다양한 사회 운동으로 전개되는 이 투쟁은 농민 추방, 천연자원의 사유화, 토지와 생산수단의 강탈, 원주민에 대한 억압, 채무 금융 시스템과 구조조정 프로그램 등을 겨냥한다. 이 모든 것은 국내 자본 그리고 다국적 자본에 의해 강요되고 국가 권력이 지원하는 것들이다. 결론적으로, 전 세계적 정의 운동은 강탈에 의한 자본 축적 과정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대항으로 이해될 수 있다.
20세기 말 일련의 세계 정상 회의에 반대하는 시위는 1999년 11월 말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회의 반대 시위로 전 세계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유사 행사에서 전 세계적 항의가 분출한 이후, 전 세계적 정의 운동은 세계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노동력, 자원 그리고 토지의 강탈로 야기된 다양한 정치적 저항들은 2001년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WSF)의 창설을 통해 그 공통 기반을 마련했다. 세계사회포럼은 다양한 정치적 협력, 플랫폼, 캠페인 그리고 결정을 끌어낼 토론, 미팅, 세미나 그리고 사회적 접촉을 위한 독특한 공간을 제공한다. 간단히 말해, 세계사회포럼과 전 세계적 정의 운동은 탈 정치 시대의 자본에 저항하는 글로벌 조직의 첫 번째 단계다.
그렇다면 어떻게 전 세계적 정의 운동의 사회적 저항이 (스웨덴) 주류 뉴스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었는가? 초기, 부채 탕감, 금융 투기 그리고 탈규제 영향과 같은 강탈에 의한 축적의 특징을 가졌지만 보다 온건한 정치적 이슈들이 뉴스에 등장했다. 채무 탕감에 대한 요구, 금융 투기에 대한 과세, 그리고 기본 필수품(특히 물)에 대한 권리가 주류 뉴스에서 다뤄졌으며 때로는 심지어 전 세계적 정의 운동 외부의 정치 평론가 및 활동가들이 지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종국에는, 이런 뉴스의 대부분은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서 어떤 대대적 변화는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뉴스 미디어에서 총체적 채무 탕감과 같은 정치적 요구는 다루어졌지만, IMF나 World Bank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반대하는 사회적 운동 등은 무시되었다. 대신 글로벌 정상회담 어젠다에 이런 이슈들을 올려놓은 것을 놓고 서방 정부 정치 지도자들은 칭찬받았다. 미국 뉴스 미디어에 대한 연구도 비슷한 결과를 내놓았다. Lance Bennett와 동료들은 미국 뉴스 미디어에 대한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저널리즘 관점에서 세계화 논쟁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세계경제포럼(WEF) 엘리트들이 불균형적으로 주목을 받는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이 다룬 이슈는 활동가들이 오래전부터 그들만의 방식으로 뉴스화하려고 시도했던 것들이었다.”
강탈에 의한 축적에 반대하는 대규모 사회 운동 투쟁은 대부분 무시되었고, 그 투쟁이 뉴스에 등장할 때는 종종 쓸모없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한 지배적인 리버럴 담론은 농민 시위와 투쟁은 빈곤 국가의 경제적 진보와 번영을 가로막는 것으로 규정했다. 적어도 세계사회포럼(WSF)의 정치적 어젠다에 대한 주류 미디어의 보도는 이런 방식을 취했다.
세계 경제와 정치 구조의 작동 논리를 정면으로 다루는 보다 급진적 정치적 이슈들은 잘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뉴스 보도의 상당 부분은 전 세계적 정의 운동의 소위 정치적 사회적 일관성 결여 혹은 시위 중 발생한 폭력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정상 회담에 반대하는 전 세계적 시위에 대해 뉴스는 폭력 혹은 심지어 잠재적 폭력에 대한 보도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잠재적 폭력에 대한 보도는 실제로는 놀랍도록 평화적임에도 불구하고 다가올 시위가 폭력적 위협이며 폭력적 대립이 불가피하다는 논평의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정치적 문제가 다루어졌을 때, 전 세계적 정의 운동은 정상 회담의 지배적 제도적 관행과 절차에 비교되면서 부정적으로 묘사되었다.
폭력에 대한 묘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뉴스 보도가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폭력에 대한 초점은 경찰력 기반의 법과 질서 담론을 재생산하는 경향이 있으며, 시위자의 폭력적 시위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제도적 폭력이 필요하다는 이미지를 저널리즘은 재생산함으로써 국가 권력 사용을 정당화한다. 예를 들어, 2003년 Cancún의 WTO 미팅에 반대하는 시위를 묘사하면서 뉴스 미디어는 시위를 “안보” 이슈로 규정함으로써 미팅의 군사적 보호를 합리화했다. 몇 뉴스 기사는 군과 경찰(2만 명 이상), 무장 헬리콥터, 군함 그리고 경찰 바리케이드를 WTO 대표단을 위한 “보호”로 묘사했다. 동시에 시위를 “자유 무역”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하였다. 이런 형식의 객관적 폭력은 국가/자본의 군사화와 뉴스 미디어의 교차점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전 세계적 정의 운동에서 동원된 폭력은 양날의 검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전 세계적 정의 운동에 대한 뉴스의 묘사는 세계화, 경제, 사회적 저항 그리고 정치에 관한 패권적 담론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이론적 근거는 “globalism”(전 세계주의)이라는 지배적 담론으로 나타난다. 전 세계적 시위와 저항에 대한 뉴스 보도는 세계 경제 시스템에 대한 포괄적 논의나 구조적 설명이 없이 묘사될 뿐이다. 대신 묘사되는 현실은 파편화되고, 단순화되고, 포장되면서 복잡한 사회적 관계는 세계 경제의 지배적 담론을 반영할 뿐이다. 따라서 강탈에 의한 축적에 반대하는 대규모 전 세계적 시위는 전통적 미디어 노출을 통해서는 어떤 유의미한 정치적 합법성을 획득하지 못한다.
3.2 일상 속 온라인 활동의 강탈 (Dispossession of Everyday Online Activity)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하비의 강탈에 의한 축적 이론이 사용될 수 있는 두 번째 영역은 온라인 커뮤니케이션과 플랫폼의 특정 역할에 대한 탐구 영역이다. 이 영역에서 잉여가치가 어떻게 생성되는가에 대한 맑스의 고찰은 소셜미디어 이용자에 의해 수행되는 작업이 어떻게 자본에 의해 전용되고, 어떻게 잉여노동으로 전환되는지를 설명해 줄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웹 2.0 소셜미디어의 일상 이용자(종종 produser(producer + user의 합성어:역자 주)라고도 불린다)에 의해 수행되는 활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다룰 것이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이용자의 활동을 착취함으로써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이용자, 구체적으로는 그들의 작업(work)을 광고주에게 판매함으로써 가능하다. 상품으로서 미디어 수용자(media audiences) 개념은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 분야에서 잘 논의되어 왔다. 스마이드(Smythe)의 주요 주장은 청중(수용자)이 매스미디어의 주요 상품이라는 것이다. 스마이드의 개념은 광고주와 연계하여 수용자의 미디어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청중(수용자) 상품화라는 개념은 또 미디어 조직을 자본 순환 과정에 통합된 “총체적 자본주의 경제”의 한 부분으로 보았다.
그러나 티비 시청을 통해 청중(수용자)이 미디어 소유주를 위한 일을 한다는 개념은 정치경제학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논의되어 왔다. 미디어 학자 Bolin(2011)은 티비를 시청하는 것은 “노동자 노동력 재건의 한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티비 시청은 무언가를 생산하는 활동은 아니나, 광고주와 미디어 회사에 의해 수행되는 생산 과정에 사용되는 원재료로 규정될 수 있는 과정이다. 자본순환의 첫 단계에서 자본가가 상품의 구매자 역할을 할 때 기업들은 광고 생산에 사용될 신청자 인구 통계를 구매한다(Marx, 1867). 따라서 티비 시청은 생산수단의 일부이지만 노동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그러나 Mosco(2009)는 스마이드 개념에서 수용자가 노동을 수행하는지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신 “미디어 회사 - 수용자(청중) - 광고주”라는 삼자 간 상호 관계에 대한 유물론적 접근 방식이 그의 주요 통찰이라고 주장한다.
매스미디어가 이데올로기의 생산자 혹은 유포자일 뿐만 아니라, 자본 순환에 완전히 편입되었다는 관찰은 매스미디어 정치경제학에서 매우 유용한 발견이다. 더 나아가, 오늘날 인터넷 이용은 이용자의 구체적 활동 덕분에 전통적 매스미디어 청중(수용자)의 수동적 ‘일(work)’과 다르기 때문에, 스마이드 이론은 전통적 티비 시청이나 신문 읽기에 비해 더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
푸흐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디지털 소셜 네트워크에서 사회적 가치는 계속 계량화되고, 측정되고, 집계되고, 구체화된다. 상업적 소셜미디어 서비스 개발자들은 맑스가 ‘독특한 상품’(peculiar commodity)으로 정의한 광고주에게 판매하기 위한 노동력을 전용하고 개선하기 위해 보다 발전된 감시 시스템을 지속해서 개발한다. 수용자(청중) 노동은 노동 시간과 이용자 상호작용에서 생성된 메타데이터로 구성되며, 디지털 노동은 “무료”이기 때문에 자본의 “노동 생산성 향상을 위한 …. 내재적 추진력”은 가변 자본의 상대적 감축에 의존하지 않고, 노동 시간과 노동 강도(즉 생산성) 면에서 적절한 (잉여) 노동의 확장에 의존한다.
자본에 의해 강탈되는 일(work)은 다양한 인터넷 상업적 플랫폼과 사이트를 통해 이용자가 소통할 때 하는 모든 행동이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과 다른 네트워킹 플랫폼에서 모든 이용자의 온라인 활동(잉여노동)을 자본의 순환으로 전환하는 과정은 인터넷상 웹 트래픽, 선호도, 그리고 네트워킹 사이트 등으로부터 수집된 정보에 기반을 둔 특정 이용자 계층에 대한 정보를 광고주에게 판매하는 형식이 된다. 결국, 우리가 온라인과 접속하고 있을 때 하는 모든 행동은 전용된다.
인터넷 이용자가 수행하는 대부분의 작업은 서로 다른 네트워킹 사이트, 검색 엔진, 이메일 서비스 등에 의해 모니터링되면서 포위되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생산 수단(지적, 창의적 그리고 소통 가능한)을 노동자(produsers)로부터 분리하는 과정을 목도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직접적 강제 분리가 아니라 간접적 분리다. 간접적 강제 분리 요소는 기본적으로 페이스북과 같은 네트워크 플랫폼에 가입하지 않았을 때 겪을 수 있는 불이익, 예를 들어, 취업 기회, 인맥, 사회적 관계, 그리고 다른 비물질적 자산 손실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네트워크 외부에 머무는 대가를 피하고자 네트워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의 상업적 개발자/소유주에게 당신의 모든 정보와 활동 기록을 “판매”해야 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일상의 온라인 활동은 잉여가치로 전환될 준비가 된 잠재적 잉여노동의 역동적 분야를 구성한다. 감시 시스템은 이용자의 행동을 추적하고, 활동을 모니터링한다. 무엇이 업로드되었는지, 무엇이 “좋아요”를 받았는지(페이스북의 경우), 이메일에 무슨 내용이 포함되었는지(지메일의 경우), 어떤 사이트를 규칙적으로 방문했는지 등처럼 기본적으로 웹 서핑할 때 발생하는 모든 것을 모니터링한다.
그러나 자본에 의해 강탈되는 것은 무료 노동으로 이루어지는 텍스트, 이미지, 비디오 그리고 다른 개인 정보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시간과 작업뿐만 아니다. 페이스북과 같은 네트워크 사이트는 이용자와 사업체 간의 사회적 관계도 변화시킨다. 이용자가 회사, 브랜드 그리고 다른 상품들을 그들의 일상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통합할 때, 생산자-소비자 관계는 마치 일상 속 사회관계처럼 또 다른 개인적 관계로 변화한다. 예를 들어, 코카콜라는 4천만 명(2022년 6월 8일 현재, 1억 9백만 명:역자 주)에 가까운 팔로워를 페이스북에 가지고 있다. 회사, 브랜드 그리고 제품들은 페이스북과 같은 네트워킹 사이트에 자체 페이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기업과 소비자의 상호 작용은 잠재적으로 실시간이며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에서의 활동은 또 생산과 소비에서 개인 간 의사소통 방식을 변화시킴으로써 상품화된 개인주의를 발전시킨다. 다국적 대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은 소비자의 사회적 존재 그 자체를 포섭하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사생활과 개인 생활의 모든 부분을 식민화하는 환경을 창출한다. 이것은 Jhally(2000)가 “우리 문화에 대한 압도적이고…. 상업적 식민화”라고 정의한 것이다. 이 식민화의 가장 궁극적 모습은 아마도 브랜드로서 혹은 상업적 브랜딩을 위한 플랫폼으로서 개인의 자아 건설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와 실천일 것이다.
이것은 블로그에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광고 수익을 염두에 두고 광고 회사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수천 명의 블로거는 그들의 소비를 웹 2.0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에 편입시킴으로써 브랜드 이름과 제품의 홍보대사처럼 행동한다. 결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플랫폼과 인프라는 일상적 임금노동 외부에 존재하는 노동과 “삶”의 강탈을 위한 매우 역동적 현장이 된다.
일상생활의 자유 시간과 사회적 조건들이 자본 축적의 생산-소비 관계로 편입될 때 이용자들은 이미지, 텍스트, 비디오, 스토리 등의 무급 생산자로 재탄생한다. 이 과정을 통해 그들은 광고주와 기업들에게 팔리는 상품으로 전환한다. 페이스북과 같은 상업적 플랫폼에서 이용자가 생성하는 모든 콘텐츠는 잉여가치를 창출할 목적으로 소유, 저장 그리고 처리 과정을 거친다. 이것은 당연히 기업 투자 개념이다. 사실, 인터넷은 자본의 이익 추구 공간이기 때문에 인터넷은 “기업이 지배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통신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공공 공간(커먼즈)의 상품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공공 공간의 사유화 과정에 대한 전통적 논쟁은 공공 공간이 어떻게 쇼핑몰, 기업 단지, 외부 출입이 제한된 지역공동체처럼, Sennett(1992)이 말한, “죽은 공공 공간’으로 변모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렇게 기업에 의해 통제되고 상품화된 공간들은 전 세계적으로 점점 더 눈에 띄고 있다. 이 공간들의 특징은 소비 패턴을 수용하고 일상생활의 조직에 스며들어 감으로써 사회적 관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휴대전화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사용자들을 자본 축적의 생산-소비 관계로 유인하면서 잠재적으로 모든 공공 공간을 상품화한다. 휴대폰을 통해 페이스북 계정에 지속적으로 로그인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공 공간 상품화의 새로운 차원이 열린다. 이것은 최소한 잠재적으로 이용자들은 지속해서 기업에 의해 감시되고, 온라인 네트워크에 관여한 여러 주체에 의해 모니터링되면서, 자본에 의해 전용되는 무급 노동을 수행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생활 개념, 더 나아가 무엇이 자유 시간이며, 무엇이 일이고, 무엇이 공공 공간인지에 대한 전반적 개념에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
스마트폰은 QR코드 등을 사용해서 전통적 광고(광고판, 포스터 등)와 온라인 활동 간 상호 교류를 가능케 하므로, 물리적 공공 공간에서의 활동(가령, 출근길 지하철이나 동네 벽에 붙은 광고 포스터)은 가상 공간에서의 활동과 합쳐진다. 더욱이, 개인의 의사소통을 용이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앱”(apps)은 또한 사적 주체를 식민화하고, 일상생활에서의 사회적 행동 패턴을 자본 축적의 생산-소비 관계로 전환한다. “앱”은 이중으로 상품화되어있다: 이용자가 구매하는 제품이자, 이용자가 더욱더 소비자로서 활동하게 한다. 더 나아가, 이용자들은 갈수록 스마트폰 앱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갈수록 감시 기술 시스템에 자신을 노출하게 된다. 스마트폰 앱은 이용자의 이름과 비밀번호, 이용자/전화기의 물리적 위치, 성별/나이/연락처에 관한 정보, 그리고 송수신 텍스트 메시지와 같은 민감한 개인 정보를 앱을 소유한 회사와 제3자에게 전송한다.
물론, 휴대폰의 발전과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공간 초월은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비상업적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더 나아가, 정치적 사회적 시위 그리고 노동 착취를 지지하는 자본과 정치 구조에 대한 저항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문제는 통신 기술의 급속한 발전 자체가 아니라, 자본에 의한 의사소통의 사회적 관계의 식민화이다.
강탈에 의한 축적 특성과 관련하여 페이스북, 구글, 야후 등과 같은 인터넷 기업에 의한 감시와 사생활 침해는 사회적 관계와 자아의 구체화를 확장하는 수단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원시적 축적 과정에 내재한 또 다른 요소인 폭력의 가능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지젝의 체계적 폭력 - 주관적(물리적) 객관적(구조적 혹은 상징적) 차원 - 개념을 인용한다면, 온라인에서 우리가 업로드하는 정보와 참여하는 활동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한 기업의 감시는 잠재적 객관적 폭력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 거대한 양의 정보가 어떻게 저장되고 사용되는지에 대한 투명한 공개 없이 사적 개인과 기업에게 소유된다는 것은 이용자들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할 수 있다. 광고 기반 네트워크와 플랫폼들이 광고주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특정 콘텐츠와 활동을 검열하고 금지한다는 사실 외에도, 개인 이용자의 정보는 잠재적으로 누구에게나 판매될 수 있다. 이것은 정치적 이슈 혹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정보가 상업적 광고 외에 다른 목적으로 취합되어 사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런 측면에서 인터넷 기업의 감시는 정보가 무슨 목적으로 사용되는지, 누가 정보를 구매하는지, 그리고 개인/사적 정보가 어느 정도까지 유통되는지에 대한 보장이 없기 때문에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할 수 있다. 페이스북과 같은 기업에 의해 취합되고 가공되는 민감한 정보는 군산복합체 혹은 정치 집단에 상품으로 팔릴 수 있다. 감시 대상 이용자에 관한 정보는 시장 상품이 되므로 현재의 지배적 정치적 경제적 권력의 이익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는 근본적 위협을 가하는 객관적 폭력으로 나타난다.
4. 결론 (Conclusion)
비판적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뉴스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자본의 지속적 축적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기능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맑스의 원시적 축적 개념과 하비의 강탈에 의한 축적 이론이 필요하다고 나는 주장했다. 자본의 확장 재생산의 지속적 특징인 원시적 축적 개념은 현대 뉴스 미디어 콘텐츠, 뉴스 흐름과 뉴스 미디어 시스템, 그리고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발전의 특징들을 이해하기 위해 유용하다.
전 세계적 신자유주의 팽창의 시대에 자본 축적 과정은 맑스가 묘사한 자본주의 이전 생산 양식에서 자본주의로 이전하는 방식과 많은 부분 일치한다. 현재 진행 중인 전 세계적 경제 위기는 자본의 확대 재생산이 많은 제약에 직면해 있음을 보여주며, 따라서 자본 축적을 위한 새로운 방법의 모색은 점점 더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자본 재산 관계로 이전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이 이전 과정에서 새로운 상품화 영역이 발견되고, 새로운 무급(자유시간을 이용한) 노동 전유 방식이 개발된다. 이 과정에서 뉴스 미디어 시스템과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은 적극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 챕터는 원시적 축적 그리고 강탈에 의한 축적이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의 정치경제학에 기여할 수 있는 두 영역을 논의했다.
첫째, 뉴스의 특정 이데올로기 측면과 자본 축적과 관련된 금융 뉴스 흐름과 시스템의 기능을 다루었다. 둘째, 일상생활 속 인터넷 사용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관련하여 잉여가치가 어떻게 생산되는지에 대한 다양한 측면을 논의했다.
첫 번째 측면으로, 뉴스 미디어가 어떻게 커먼즈의 사유화를 촉진하고, 어떻게 공공 자산을 사유재산 관계로 전환하며, 어떻게 자본에 반대하는 사회적 저항을 탈정치화하고 비 정당화하는지를 논의했다. 또, 뉴스 흐름과 뉴스 미디어 시스템이 금융 흐름 그리고 금융계와 어떻게 이해관계가 일치하며 연동하는지, 즉 금융 뉴스와 금융 부문의 긴밀한 관계를 다루었다. 이 관계는 정보통신기술 내부의 급격한 변화와 자본축적을 위한 시공간 압축에도 연관되어 있다.
두 번째 측면은 produser를 상품화하고 광고주에게 판매하는 방식과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에서 이용자가 수행한 작업이 자본에 의해 어떻게 전용되는지에 특별히 초점을 맞추어 웹 2.0의 정치경제학을 해부했다.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이용의 상품화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자본에 의한 자유 시간의 식민화 그리고 여가, 개인적 사회적 관계 그리고 심지어 자아의 총체적 상업화를 통해 기업은 소셜 네트워크와 다른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이용자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상업적으로 개인 정보를 수집, 소유 및 가공하는 인터넷 감시는 자본 순환의 주요 자산 중 하나로서 이용자에게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심지어 자본주의 착취의 객관적 폭력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 챕터는 주류 뉴스 미디어가 어떻게 자본의 착취를 촉진하고 재생산하는지,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의 이용이 어떻게 자본에 의해 식민화되는지, 그리고 상품화 과정이 어떻게 전 세계적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의 정보 흐름을 지배하는지와 같은 부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미디어 생산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이와 반대로 글로벌 맥락에서 반패권적 움직임 형성을 위해 열려있는 측면도 있다. 대안적이고 급진적 미디어의 역동적 생산과 유통 그리고 커먼즈 기반 인터넷을 위한 지속적 투쟁은 비판적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중요한 측면이다. 뉴스 미디어 생산과 커뮤니케이션 기술 영역은 절대 단일하지 않으므로 새로운 대안 관점에서 이론화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의 획기적 이론도 궁극적으로 자본의 총체적 착취에 대한 대안의 필요성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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