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한국 이야기

서열 사회 한국에서의 치과 선정기 - 한국 방문 감상문 (2)

김 무인 2022. 7. 3. 14:57

 

치과 선정기

 

불면으로 인한 극심한 피곤 때문에 그 원인으로 추정되는 내과 질환에 대한 조속한 치료도  필요했지만, 치과 질환은 지속되는 파상적 통증으로 더 시급한 대책이 필요했다. 뉴질랜드에서 방문했던 치과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예약한 후 출국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게 느껴지는 힘든 시간이었다. 그래서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치료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출국 전 뉴질랜드에서 한국의 치과를 예약하기로 했다. 

 

문제는 믿고 다닐만한 치과를 선정하는 작업이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뉴질랜드도 해당하지만, 가령 과잉 진료와 치과의사의 임상 경험 유무가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한국 가족과 지인에게 추천받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서, 인터넷상 리뷰를 보면서 세 군데를 선정, 한 날에 시차를 두고 모두 상담받기로 했다. 물론 인터넷의 리뷰라는 것이 많은 부분 조작되어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으나, 그걸 감안하고라도 참조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경우가 되었든 세 군데를 돌아보면 내 증상과 치료 계획에 대한 나름 객관적 판단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세 군데 치과 중 “네, 00 치과입니다”라고 응답한 곳은 한 군데에 불과했다. 두 곳은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 혹시 00 치과인가요?”라고 확인해야 했다. 친절 여부를 떠나 비즈니스 전화 응대 예절의 기본 중 기본인데 두 군데는 이 기본이 안 되어 있었다. 전술했듯이 많은 동네 치과/의원의 직원들은 건강보험의 부작용(?) 탓인지 문의 고객에게 기본적 예의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전화 예절의 부재는 이어지는 경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입국 후 첫 번째로 방문한 치과에서 나는 이 예의 부재의 정수를 쇼킹(나에게는) 하게 경험하게 된다.     

 

전화 응대 직원이 치과나 의원의 매출을 올리는 일등 공신이 될 수 있다

 

외래환자에 대한 예약을 아예 받지 않는 의원에 비해 예약을 받는 치과는 상대적으로 환자 고객에 대한 배려가 있는 것처럼 처음에는 느꼈다. 하지만 한국 치과의 예약 시간은 엄밀하게 말하면, 치과 의사 면담 대기 시작 시간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는 듯싶다. 독립적 방 형태이든 칸막이 형태이든, 예약 환자들은 우선 대기실에서, 이후에는 지정된 방 혹은 칸막이에서 치과 의사를 기다리는 시스템이다. 이런 상태에서 치과의사가 각 방 혹은 칸막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환자를 진료한다. 배구로 비유하면 이동 공격인 셈이며, 치과의사의 시간당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물론 이런 시스템은 응급 환자를 받는 일부 뉴질랜드 치과에서도 발견된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빈 진료 의자에 앉아 멀뚱멀뚱 치과의사 ‘선생님’의 왕림을 기다리던 첫 번째 치과에서 나는 당황스러운 수모를 당하게 된다. 임플란트를 뼈이식이나 상악동 거상술 시행 여부와 관계없이 고정된 가격, 그것도 매우 낮은 가격으로 시술한다고 광고를 낸 곳이라 내심 기대하고 갔던 치과였었다. 이윽고 방에 들어 온 치과의사는 의례적 ‘안녕하세요? ‘ 인사도 없이 곧바로 미리 찍어둔 엑스레이와 내 입안 상태를 보고 어디 어디 몇 개 임플란트 해야 한다고 신속하게 설명했다. 문제는 그 설명 후에 내가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았을 때 발생했다. 내가 질문을 하자 안색과 말투를 동시에 돌변한 그 치과의사는 짜증을 가득 담아 내가 질문하지도 않는 치아와 구강 구조 - 사전에 나름 공부하고 갔다 - 에 대해 혼내듯이 일장 훈시를 하더니, 다른 환자 때문에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말을 던지고 휑하니, 방을 나갔다. 

 

 

순간 ‘아니, 이런 X 같은 경우가 있나’라는 욕이 속에서 저절로 나왔다. 인생 살면서 처음으로 당한 충격적 수모였다. 치과의사의 나에 대한 그 안하무인 태도는 마치 “싼 맛에 찾아왔으면 찍소리 말고 ‘예, 예’만 할 것이지 얻다 대고 질문을 해?”라는 표현일 뿐이었다. 그자 앞에서 나는 ‘의사 선생님’의 권위에 도전한 못 배운 무지렁이 중년으로 졸지에 전락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똑같이 시간에 쫓기는 까닭에 환자가 질문 좀 안 해주거나 최소화했으면 하는 마음은 뉴질랜드 치과의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뉴질랜드 치과의사는 최소한 형식적으로라도 환자의 ‘알 권리’ 따라서 ‘물어볼 권리’를 존중한다. 하지만 이 첫 번째 치과의사의 사전에는 ‘환자의 권리’라는 단어 자체가 없는 듯하다. 그가 공부한 치대에서는 환자의 권리라는 개념 대신 박리다매라는 상술을 가르쳐 주었는지 모르겠다. 그자에게 고객은 불편함으로 찾아온 환자가 아니라, 치과 공장의 계속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조립해 주어야 하는 반제품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컨베이어 벨트 돌아가는 속도에 맞추어 신속하게 조립해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질문하는 나는 그의 조립 시간을 추가로 잡아먹는 불량 반제품이었을 것이다.

 

첫 번째 방문에서 한국 치과의 쓴맛을 제대로 보았다고 생각하자 두 번째 치과에 대한 궁금증이 배가되었다. 태어나서 이민 오기 전까지 쭉 살았었고, 그 뒤로도 한국 사회의 변화는 인터넷을 통해 수시로 접하고 있었기에, 적당한 영혼 없음과 적당한 권위주의까지는 마음의 준비를 했었던 나였다. 하지만 현대 천민자본주의와 전통적 권위주의로 완전히 무장한 첫 번째 치과의사에게 나는 보기 좋게 허를 찔렸다. 과연 그자가 한국 치과의사의 스탠더드인가가 두 번째 방문의 관전 포인트였다. 

  

두 번째 치과는 통로를 따라 나란히 배치된 파티션으로 진료 공간이 나누어져 있었다.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첫 번째 치과와 마찬가지로 먼저 엑스레이를 찍은 후 치과의사의 왕림을 기다렸다. 이윽고 면담하게 된 치과의사는 첫 번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질의응답이 가능한 상식적 - 한국에서는 리뷰에서 ‘친절해요’라고 표현된다 - 의사였다. 결국 첫 번째 의사가 나쁜 X이었던 것이다.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진단과 치료 계획을 그 의사는 나에게 제시했다. 의사가 떠난 후, 나는 상담실장이라는 직책의 직원과 마주 앉아 치료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기억이 흐릿해졌는데, 어금니 임플란트는 각각 140만 원, 위쪽 어금니 임플란트를 위한 상악동 거상술 100만 원, 브릿지 50만 원, 뼈 이식 각각 40만 원 정도로 견적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중 브릿지 50만 원은 원장님에게 이야기해서 빼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금니 3개와 브릿지를 하는데 총비용이 640만 원 정도였다. 질의응답이 가능한 치과의사를 만났다는 나의 안도감은 인터넷 시세보다 상당히 높은 견적과 50만 원이라는 금액이 선심처럼 공제되는 가격 구조에 불안감을 가지게 되었다.     

 

비싼 임플란트 시술. 뉴질랜드는 훨씬 더 비싸다

 

세 번째 치과는 머무는 곳에서 상당히 먼 곳에 있다. 지금 다니고 있는 곳인데, 자전거로 편도 1시간 가까이 걸린다. 머무는 곳 근처에도 치과가 많이 있음에도 이곳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첫인상이었다. 전화 문의한 곳 중 유일하게 “네, 00 치과입니다”라고 상식적 전화 응대를 한 곳이다. 그리고 직원의 고객 응대에서도 영혼이 어느 정도 담겨 있었다. 더불어 환자를 가르치려 하지도 않았다. 이런 비 진료적 환경이 나에게는 무척 중요하다. 진료비가 싸도, 의사가 실력이 좋아도, 내가 인격적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 없는 곳에서는 치료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직원들의 태도는 조직의 수장인 원장의 운영 철학과 평소 환자 대응 방식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의 추측은 치과의사와 진료 상담이 시작되면서 크게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다른 치과와 마찬가지로 여기 치과의사도 나 이외에도 다른 환자를 동시에 진료했다. 그럼에도 나와 그 사이에는 질의응답의 티키타카가 가능했고, 더 나아가 그 치과의사는 ‘자신의 의견’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까지 환자와 같은 눈높이를 유지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서구권 치과에 대한 이해도 있어 보였다. 전형적 뉴질랜드 치과의사에 가까운 모습을 그는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는 대단히 신중했고 보수적 치료 계획을 내놓았다. 대대적 리노베이션을 작정한 나로서는 다소 김빠진 치료 계획이었다. 또 이 치과의사의 자기방어적 접근은 대화 도중 뜬금없이(내가 보기에는) 나보고 다른 치과 가셔서 치료하셔도 좋다는 다소 무책임한 선심성 발언으로까지 이어졌다. 

 

그의 다른 면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몇 개월이 소요되는 임플란트 시술에 나의 3개월 방문 비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제출할 방문 비자 연장 신청서를 위한 증빙 자료로서 임플란트 시술 계획 개요가 담긴 편지를 부탁한 적이 있었다. 일차적으로는 그에게 직접 설명/부탁했고, 그 후 반응이 없어서 직원을 통해 다시 요구했으나 끝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생깠고 나는 까임을 당했다. 나중에 자위 삼아, 환자 2, 3명을 동시에 의자에 눕혀 놓고 뛰어다니다시피 이동 치료를 하는 그가 평생 한 번도 써보지 않았을 형식의 편지 작성, 게다가 그 편지 작성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내가 약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을 낼 이유는 없었을 것이라고 그의 행동에 명분을 부여해 본다. 

 

뉴질랜드 치과의사라면 어땠을까? 내가 경험한 그들은 써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받지 않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뉴질랜드 치과에도 수백만 원의 돈을 치료비 조로 지불한다면, 이 정도 협조는 치료의 일환으로 그들은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 치과의사는 모르쇠로 일관했고, 나 역시 더 이상 채근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서비스에 대한 기대,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낮출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1 달여 체류하면서 깨달은 이치다. 기대치를 높였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즉, 맘에 드는 치과의사를 찾으려 하다가는 영영 치료를 못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그가 바로 내가 찾던 완벽한 치과의사가 되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접고, 다른 치과의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장점이 있는 친구이기 때문에 그에게 치료받는 것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따라서 치료 2개월 차인 지금, ‘선생님만 믿습니다!’로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는 경계심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 다니는 치과의 좋은 점을 다시 강조하는 것으로 나의 치과 선정기를 마친다. 위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이 치과의 치과위생사들 태도를 다시 칭찬해 주고 싶다. 내가 한국에서 접한 많은 간호사와 직원은 기본적으로 영혼 없는 간호사 박진주와 본질에서 다르지 않았다. 여기에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 태도가 추가되었느냐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치과의 치과위생사들은 모두 나름 영혼을 담아 환자를 응대/치료한다. 신기할 정도다. 며칠 전 보철물을 위해 임시 치아 제작을 했던, 치과에서 제일 막내라는 치과위생사는 1시간 반 동안 나의 입과 씨름하는 반복되는 작업임에도, 내내 상냥함을 담아 나를 대해 주었다. 영혼 없는 극존칭 혹은 과유불급 사물 존칭을 쓰지 않으면서도, 좋은 딕션으로 사람을 진심으로 대한다는 느낌을 받게 해주었다. 다음에 갈 때 카페 기프티콘이라도 선물하고 싶은 정도다.  



서열 사회 한국 

 

흔히들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친절하다고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우선, 전통적으로 잘 살고 힘 있는 서구권에서 온 교양 있어 보이는 백인들에게는 친절한 것 같지만, 못 살고 힘없는 동남아 등에서 온 유색 외국인에게는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한국인들의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는 처음부터 명확하게 드러난다. 친절하든지 불친절하든지. 그런데 나처럼 똑같은 한국인 외모의 이방인에게는 처음부터 그들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 같다. 이하는 40여 일에 걸친 나의 경험을 사회학적 상상력 - 어쩌면 시쳇말로 ‘뇌피셜’일 수 있다 - 을 발휘해 일반화해 본 글이다. 

 

백인이 길을 물어보니 과잉(?)친절을 베풀고 유색인이 물어보니 외면한다

 

유튜브 콘텐츠 중 사회 실험이라는 명목으로 외국인이 길을 물어보았을 때 한국인이 과연 친절하게 응대해 주는지 몰래카메라로 촬영한 콘텐츠가 있다. 조회 수를 의식해서인지 대부분 해피엔딩의 결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40여 일, 나의 경험은 그런 유튜브 콘텐츠와 달랐고, 나의 기대와도 달랐다. 한국 원주민에 대한 나의 길 물어보기 경험 결과를 간단히  말한다면, 불친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대부분 무뚝뚝했고 질문에 대한 답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어 했다. 친절하고 상세하게 길 안내를 해주지 않을까 막연하게 기대한 내가 민망스러웠다. 

 

많은 경우 한국 사람은 모르는 사람과 특정 밀접 공간에서 마주쳤을 때도 인사하는 것에 인색하다. 이민 초기, 뉴질랜드에서는 모르는 사람이라도 길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서로 인사를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던 것이 시대가 변해서 지금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특정 밀접 공간에 함께 있게 될 경우는 어색함을 모면하기 위해서라도 서로 가벼운 대화를 던지고 받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런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투명 인간 취급하는 것이 빈번하다. 심지어, 아파트 같은 라인의 엘리베이터를 탔는데도 그렇다. 한국에 와서 모르는 사람과 인사를 한 경우는 등산할 때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이런 분위기이다 보니, 처음 마주친 사람에게 분위기를 가볍게 하려는 목적으로 가벼운 인사말을 던지면 곤혹스러운 상황에 종종 직면한다. “당신, 나 아세요?”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곤 한다. 마치 그런 말은 친한 사이에서나 하는 것이지 처음 본 사람끼리는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는 것처럼 반응한다. 이렇듯 많은 이가 유머 감각 제로인데, 유머 감각이 없다는 것은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마음의 여유는 기본적으로 물질적으로 쫓기지 않아야 생긴다. 이전 방문기에서도 썼지만, 다른 차들보다 그리고 심지어 횡단보도 보행인의 안전을 위협하면서까지 필사적으로 빨리 가려는 한국 운전자들로 상징되는 물질 우선 인명 경시 한국 천민자본주의에서 농담과 유머는 여전히 미국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딴 세계의 생활 문화다. 같은 선진국이더라도 K- 선진국에는 유머와 농담이 없다. 

 

배운 바는 있으나 본 바는 없는 어린이도 인사를 안한다. 출처: 세계일보

 

이런 물질만능주의 사회 풍조에서는 모르는 타인을 처음 만나면 상대방이 자신에게 이익이 될 사람인지, 아니면 피해를 줄 사람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소위 영양가 없는 사람인지에 대한 판단을 먼저 하려고 시도한다. 이후 헛심을 쓰지 않기 위함이다. 판단이 내려지고, 이 판단에 근거해서 상대방과 자신의 서열을 정립한 후에서야 비로소 접근 여부/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자신이 높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을 을로 취급하고, 자신이 낮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을 갑으로 모신다. 서로 나이 확인 후 호칭과 존칭을 정하듯 말이다. 이런 상황을 혹자는 한국 사람은 처음에는 무뚝뚝하지만, 알고 나면 매우 친절하다고 에둘러 미화하기도 한다. 

 

이처럼 한국 사회 인간관계의 자본주의적 특성과 권위주의적 서열 특성 덕분에 관계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머와 덕담을 통한 친교 행위는 ‘쓰잘데기 없는’ 것으로 비친다. 상대방에 대한 신상 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방이 먼저 유머를 던지면 상대방이 자신을 이용하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 차 그러는 것은 아닌지, 상대방이 뭔가 아쉬워서 부탁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의심부터 한다. 

 

이런 수직적 서열 관계에 익숙한 한국 사회이다 보니 주변에서 보는 대부분(전부가 아니라면) 인간 접촉도 이런 식이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인력은 갑으로 여겨지는 고객에게 극존칭과 더불어 ‘커피가 나가실께요~!’ - 이러다가 ‘커피님이 나가실께요’로 진화할 것 같다 - 식의 사물 존칭까지 습관화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강요된 서열 관계이기 때문에 서비스에서 영혼은 뺀다. 반면 자신의 업을 서비스라고 생각지 않는 일부 의원/병원 직원은 자신을 갑으로, 그리고 내방 환자 고객을 을로 서열 정리해서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이렇게 서열 관계를 정리하면, 그 이후 자신보다 낮은 서열의 상대방이 자신에게 질의하는 것과 행동은 자신이 정의한 서열 관계에 대한 의심 혹은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다. 첫 번째 치과의사가 그랬고 이번 종합건강검진 받을 때 내시경과 직원도 그러했다. 

 

이런 서열식 인간관계에서는 대화가 활성화될 수 없고, 사회구성원은 대화에 서툴 수밖에 없다. 대화는 기본적으로 수평적 인간관계와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서구 리버럴리즘이 21세기에도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점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진행 중인 천민자본주의 덕분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서열 문화가 자리 잡았고, 아시안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수직적 권위주의 문화가 이에 혼합되었다. 여기에 한국 유권자의 48.56%는 지난 대선에서 천민자본주의와 권위주의의 끔찍한 혼종을 지도자로 뽑았다. 갈 길이 더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