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한국 이야기

마마챠리, 아리가토우(ママチャリ、ありがとう) - 한국 방문 감상문(4)

김 무인 2022. 10. 10. 15:49

 

지난 5월 하순에 한국에 도착해서 이번 달 하순에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가니까 만 5개월을 한국에서 체류했다. 여러 방문 목적 중 신병 치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체류 중 각종 의료 기관에 어떻게 방문 왕래하고, 더불어 지난 몇 년 계속해오던 조깅을 위해 가까운 조깅 코스까지 어떻게 접근할 것이냐는 이동 수단이 도착 직후부터 시급한 현안으로 떠 올랐다. 도착 후 며칠간 전철과 버스를 이용하던 중 어머니 아파트 베란다에서 먼지가 쌓인 자전거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뉴질랜드와 달리 한국은 많은 경우, 특히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지역, 자전거 도로가 인도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것을 도착 후 이미 봤던 차라 자전거가 향후 나의 주 이동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한국에 도착한지 4일만에 발견한 마마챠리. 유래카~!

 

오클랜드에서 나는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내가 아는 한 오클랜드 포함, 뉴질랜드에서는 자전거 도로가 인도의 한 부분으로 되어 있는 곳이 없다. 자동차용 도로의 한 부분을 할애해 전용 도로를 마련했든지 아니면 자동차 주행 도로를 자동차와 공유해야 한다. 오클랜드 동네 길의 자동차는 한국과 비교해서 많지 않지만 이런 자동차와 도로 공유 상황은 나에게는 위험으로 다가온다. 더 나아가, 오클랜드는 평탄한 지역이 제한되어 있다. 많은 경우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 이런 지형적 특성도 나로 하여금 오클랜드에서의 자전거 활용을 제약하는 요인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도시는 인도에서의 자전거 통행을 허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또, 내가 머무는 지역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평탄한 지역이라 그런 면에서 내가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는 셈이다. 

 

여러 부작용이 있지만 인도 내 자전거 도로는 자전거 운전자의 안전 측면에서 환영할만 하다.

 

내가 체류하고 있는 숙소와 대부분의 관련 의료 기관은 거리상 멀지 않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지역 특성상 의료 기관이 밀집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버스 기준으로 두세 정거장 거리가 대부분이다. 걸어가기에는 애매한 1.5킬로 안쪽의 거리다. 근처 하천을 따라 잘 조성된 조깅 코스 역시 비슷한 거리에 있다. 내가 도착했던 올해 5월의 한국은 유난히 무더웠다. 걷고 뛰는 것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뉴질랜드에 오래 살아서인지 매연을 마시며 그 더위 속을 걸어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발견한 자전거는 안성맞춤의 대안으로 다가왔다. 

 

짱구 엄마의 초기 마마챠리. 전기 배터리도 기어도 없어서 힘들다.

 

10여 년 전에 구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 자전거는 아파트 베란다의 햇볕에 노출된 채 보관(혹은 방치?)되어서 타이어의 고무가 이미 삭은 상태였다. 앞에 장바구니가 있고, 접이식도 아니며 기어도 없는 가장 기본적 모델의 동네 쇼핑용 자전거였다. 일본 만화 ‘짱구는 못말려’에서 짱구 엄마가 초기에 타고 다녔던 자전거 모델이다. 이름하여 ‘마마챠리’(ママチャリ). 한국어로 엄마인 마마(ママ)와 자전거를 의미하는 챠링코(チャリンコ )가 합쳐진 용어이므로 한국어로는 당연히 ‘엄마 자전거’가 되겠다. 주부가 쇼핑할 때 그리고 어린 자녀를 데리고 다닐 목적의 자전거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마마챠리는 단지 주부에 국한되지 않고 남녀노소 모두가 애용하는 생활 자전거로서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마챠리만을 위한 ‘마마챠리 레이스’가 지역마다 열릴 만큼 일본 국민의 사랑을 받는 생활문화이다. 지금의 짱구 엄마는 배터리가 장착된 전기자전거를 타고 다닌다고 하는데 내가 발견한 마마챠리는 초창기 짱구 엄마의 마마챠리처럼 자전거의 가장 기초적 원리에만 충실한 자전거였다.

 

축제와 같은 일본의 지역 마마챠리 레이스

 

발견 후 근처 자전거포로 끌고 가 타이어 (8만 원)와 안장(2만 원) 그리고 자물쇠(8천 원) 교체에 10만 원 이상을 투자했다. 쿠팡을 찾아보니 기어가 달린 접이식 유사 모델이 10만 원대 중반인 것을 고려할 때, 당시 구매 가격이 10만 원대 초반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결과적으로 자전거 구매 가격에 육박하는 비용을 쓴 셈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 투자 비용은 아깝지 않았다. 한국 체류 중 나는 최소 주 5일 의료기관 혹은 도서관을 방문했고 조깅을 했다. 버스/전철 편도 요금이 1,250원인 점을 고려했을 때 나는 매일 두 번의 왕복 교통수단을 이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매일 5천 원씩, 매주 2만 5천 원을 교통비로 지출했을 것이다. 5개월로 환산하면 50만 원이다. 훌륭한 투자가 아닐 수 없다.

 

과로로 탈골이 된 적도 있다.

 

자전거 이용은 이처럼 경제적 절약 효과만 나에게 가져다준 것이 아니다. 동네 의원, 도서관, 슈퍼마켓뿐만 아니라 제법 먼 거리도 자전거를 이용했다. 도착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주 다닌 치과는 머무는 숙소에서 8킬로 남짓 떨어져 있다. 이 치과 역시 자전거로 왕래했다. 더 나아가 심지어 지난 추석에는 왕복 50킬로 되는 돌아가신 아버지 묘소도 자전거로 다녀왔다. 이 외에도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코스를 여러 차례 자전거로 여행했다. 그 결과 아파트 경비분으로부터 “사장님은 다리가 전부 근육이시네요”라는 칭찬을 들을 정도로 장딴지와 종아리 근육이 딴딴해지는 건강 효과도 얻었다. 도랑 치고 가재도 잡은 격이다.     

 

나름 많이 알려진 고속도로 중앙에 마련된 자전거 전용도로. 위에 태양광 파넬이 설치되어 있다.

 

한국은 하천을 따라 자전거 전용도로가 상대적으로 많이 개발되어 있어서 자전거로 국토 종주하는 것이 동호인들의 Wishlist 혹은 To-do-list에 항상 포함된 것처럼 보였다. 이전 등산이 한참 유행일 때 각 산의 등정 기록 수집이 자랑이었듯이 말이다. 그런 것에 관심 없는 마마챠리 애호가(자의 반 타의 반이었지만)인 나이지만, 종종 근처 4대 강 자전거 종주 도로로 마마챠리를 끌고 나가곤 했다. 종주 도로 여행이라곤 하지만 수시로 멈추어 근처 동네 마을을 돌아보는 식이었다. 나는 소위 라이더도 아니었고 라이딩을 한 것도 아니었다. 자전거 유람을 했다고나 할까.. 헬맷도 아닌 차양 모자를 쓴 채 쇼핑용 바구니 달린 마마챠리를 천천히 타고 가는 내 옆으로 아주 비싸 보이는 사이클과 근사한 헬멧과 복장으로 무장한 동호인들이 힐끗힐끗 나를 쳐다보면서 휙휙 지나가곤 했다. 마치 라이더를 위한, 라이딩을 위한 신성한 국토 종주 자전거 전용도로에 감히 혹은 어떻게 마마챠리가 들어올 수 있었냐는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성스러운(?) 자전거 전용 도로에는 다소 불경한 나의 마마챠리 복장

 

내가 4대 강 자전거 종주 도로에 나가보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동네 자전거포 사장님도 침 맞으러 다니는 한의사도 모두 말렸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어도 없는 마마챠리로는 체력 소비가 엄청나고 오르막에서는 제대로 올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그들에게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우려는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물론 나는 며칠에 걸친 종주 코스를 여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지만, 체력 소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오르막도 경사도가 7도 이상이 아니면 오를 만했다. 운동은 자고로 힘들어야 운동이라는 말이 있듯이 오르막에서는 비록 마마챠리이지만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참가 선수처럼 페달 위에 서서 힘차게 아래로 밀어주는 것이 내 다리 근육 강화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오르막 경사가 심하면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면 되었다. 중간에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도 다리에 좋은 휴식이자 스트레칭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푸시업도 천천히 할 때 근육에 더 큰 자극을 줄 수 있듯, 빨리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이처럼 다양하게 다리 근육에 자극을 주는 것도 절대 나쁘지 않은 자전거 운동 법이라고 생각한다.   

 

마마챠리는 기동성이 뛰어나서 수륙양용, 어디든 갈 수 있다.

 

종주 도로 여행 중 말리고 있는 땅콩을 발견해서 주인 할머니에게 만 원어치 샀다. 한보따리였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지난 몇 년 죽어 있던 자전거가 생명을 얻었다면서 어머니는 나의 마마챠리 활용을 크게 반색하셨다. 그런 어머니께 “뉴질랜드 돌아가기 전에 마마챠리에게 큰절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라고 웃으면서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그만큼 마마챠리는 지난 5개월 동안 거짓이나 과장 없이 정말 나의 발이 되어주었다. 마마챠리를 이용한 이후 나는 시외로 나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철과 버스를 이용한 적이 없다. 근처 하천변으로 조깅하러 갈 때도 마마챠리로 가서 조깅하고 다시 마마챠리로 돌아오곤 했다. 약식 철인 2종 경기를 매일 한 셈이다. 

 

야생 고라니를 종종 접할 수 있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마마챠리를 이용하면서 다시 한번 느낀 점은 사람이건 사물이건 대상은 내가 의미를 부여할 때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시 구절이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나는 고철에 불과했던 마마챠리,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고, 마마챠리는 그 부름에 응답하여 나에게로 와 다시 자전거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같은 아파트 자전거 보관소에는 이름이 불리지 못한 숱한 자전거가 체인에 녹이 벌겋게 슨 채 도살장 행을 기다리는 소처럼 여기저기 겹쳐 세워져 있다. 

 

마마챠리, 지난 5개월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