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세상 이야기

자본주의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상품화 (1/5) - 디지털 자본주의 이해하기 (9)

김 무인 2023. 2. 28. 10:27

 

역자 머리말

 

이번에 번역할 챕터의 원문 길이는 89 페이지이다. 물론 각 페이지 하단 주석과 뒤의 인용 자료를 포함한 길이이기 때문에 이들을 생략한 번역문은 이보다 훨씬 짧아지겠지만, 다른 챕터의 논문들과 달리 주제에 대한 전반적 고찰을 담고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이 논문은 ‘상품’(commocity)과 ‘상품화’(commodification)라는 개념이 맑스의 자본주의 분석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천착한다. 이에 따라 현대 자본주의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상품화에 대한 국소적 집중과 분석이 아닌 상품 그리고 상품화 개념에 대한 전반적 고찰에 논문의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맑스의 자본주의 분석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 독자에게는 기초적이고 반복되는 내용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인식을 점검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본문에는 상품과 상품화 설명에 빠질 수 없는 사용가치(use value)와 교환가치(exchange value)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비교는 딱히 학문적 상황이 아니어도 일상에서 우리는 자주 접한다. 물론 일상에서의 비교 상황은 많은 경우 엄밀한 의미에서 맑스의 자본주의 분석에서 제시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개념과는 다르다. ‘돈값을 톡톡히 한다’와 같은 주관적 만족도 측면에 구매 물품의 사용가치를 구매 가격(교환가치) 대비 높게 평가하는 경우가 한 예다. 

 

내가 세 달 전에 K-mart에서 구입한 슬립온 슈즈는 $3.50이었는데, 구매 후 인근 카페에서 사 마신 스몰 사이즈 플랫 화이트는 $5.80이었다. 세 달이 지난 지금, $3.50은 매일 나의 발이 되어 내가 임금을 위한 노동력을 파는데 혁혁한 기여(사용가치)를 하고 있는데 반해, $5.80은 당연히 어디에서도 그 흔적(교환가치)을 찾을 수 없다.  맑스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개념을 따르자면 이 경우에도 신발을 만든 중국의 노동자는 그 신발을 본인 또는 가족/친구의 ‘사용’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 노동’을 통해 그 신발을 만든 것이 아니라, 세계적 노동 분업 환경에서 국제 시장에서의 ‘교환’을 겨냥해 ‘추상적 노동’을 통해 그 신발을 만들었으므로 가성비가 훌륭하다는 의미에서 그 신발의 ‘사용가치’를 운운하는 것은 비학문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식적 수준에서 상품의 효용성과 구매가격의 괴리를 발견할 때마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본질적 괴리를 생각하게 된다. 유사한 현상은 그 외에도 아주 많다.  증권 시장의 금융장세에서 기업의 주가는 실제 가치(사용가치)와 별개로 높은 주가(교환가치)로 매매가 되는 것도 그 한 예일 것이다.   

 

이런 비교는 우리 사회 내 많은 영역 - 사실 노동력을 팔고 사는 자본주의하에서는 모든 영역일 것이다 - 에서 전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이전에 코로나가 극성일 때 한참 회자되었던 ‘필수 인력’ 개념도 마찬가지이다. 전파력에 대한 공포가 극심하던 초기에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이들로 정부와 미디어는 묘사했다. 의료 인력, 청소 인력, 버스 기사 등도 비슷한 항렬에 들어갔다. 이들의 사용가치에 대한 극찬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 당시도 그랬지만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이 급격하게 낮아진 지금 이들의 교환가치는 여전히 매우 낮다. 매일 더러운 공중 화장실을 청소하는 청소인력은 그 역할의 중요성(사용가치)에 따라 노동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들 노동력의 질이 낮다는 이유로, 또 노동 시장에서 쉽게 구매가 가능한 노동 상품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급여(교환가치)는 시장에서 매우 낮게 형성되고 있다.

 

저자 Jernej A. Prodnik는 슬로베니아 수도에 있는 류블랴나(Ljubljana)  대학에 재직 중이다. 그의 주요 연구 관심사는 (미디어와 통신에 초점을 맞춘) 정치 경제학 비판과 신기술에 의해 야기된 기술 변화와 민주적 잠재력의 광범위한 사회적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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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C: 자본주의에서 커뮤니케이션 상품화

(3C: Commodifying Communication in Capitalism)

 

Jernej A. Prodnik



 

1 서론(Introduction)

 

“정보 흐름은 채널의 협소함을 벗어나 보다 큰 환경에 노출되기 위해

그들이 순환하고 있는 네트워크를 넘쳐흐르려는 경향이 있다. “

 

Tiziana Terranova (2004, 2)



 

상품형식(commodity-form)과 상품화(commodification)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테오도어 아도르노(Adorno)(2001), 기 드보르(Debord)(1970), 루카치 죄르지(Lukács)(1971), 알프레드 존 레텔(Sohn-Rethel)(1978), 아르망 마틀라르(Mattelart)(1978), 해리 클리버(Cleaver)(2000), 이매뉴얼 월러스틴(Wallerstein)(1983), 빈센트 모스코(Mosco)(2009), 어슐러 휴즈(Huws)(2003), 그레이엄 머독(Murdock)(2006), 모이셰 포스톤(Postone)(2003), 댄 쉴러(Dan Schiller)(2007) and 앙드레 비텔(Wittel)(2013) 등과 같은 학자들은 맑스가 내린 상품의 정의에 따라 이런 소위 “자본주의 세포 형식”(cell-form of capitalism)에 관심을 집중했다. 

 

기 드보르 (Guy Debord)(1931~1994)

 

상품형식은 맑스 저술의 핵심 개념(category)이다. 정치경제학에 대한 그의 초기 저술에서부터 자본주의 사회의 성립과 재생산에 있어 상품이 수행하는 역할의 완전한 발전을 포함한 그의 후기 개념화 작업에 이르기까지 상품형식은 그의 전 저술 활동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심지어 소위 포스트모던 시대에서도 상품화 과정은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전반적 보전과 자본의 지속적 팽창을 위한 절대적 전제 조건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는 (허구적) 상품의 사유화된 형식으로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상품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은 따라서 자본주의의 부상과 지속적 재생산 모두에 매우 중요하다. 자본가들이 노동으로부터 잉여가치를 뽑아낼 수 있는 것도 오직 교환을 전제로 한 상품의 생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상품화 과정은 종종 주체 그리고 주체 상호 간 레벨에서 개인의 1차적 경험에 매우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한편,  더 넓은 사회와 그 사회 내  관계들에 대해서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사회 영역 전반에 걸친 상품형식의 확장은 항상 사회적 실체를 관찰이 가능한 변화로 이끌며 규칙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상품형식은 시장에 기반을 두지 않은 사회적 유대와 가치조차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며 필연적으로 사회의(내) 개인화를 강화한다. 동시에 시장은 자체적으로 작동하면서 인간의 직접적 통제를 벗어난다. 

 

맑스의 상품물신성(commodity fetishism) 이론의 핵심 중 하나는 상품이 단지 인간의 직접적 통제를 벗어나 자체적 삶을 영위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사람을 지배한다는 주장이다. 자본주의 사회 형성에서 “생산 과정은 그 반대가 아니라 인간을 지배한다”라고 맑스는 말했다. Harvey(2010)가 잘 요약했다: “우리 중 아무도 개별적으로 통제하지 않는 시장의 힘이 우리를 통제한다.”

 

 

이 챕터에서 나는 넓은 의미에서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초점을 맞추어 상품화와 상품형식을 다룬 그동안 연구 성과에 기여하고자 한다. 상품형식과 상품화는 이론적, 개념적,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될 것이며, 사회와 사회적 관계를 겨냥한 상품형식의 전 세계적 보편화의 주요 결과 역시 강조될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먼저 맑스의 저작에서 상품형식이 어떻게 분석되었는지, 그리고 상품형식이 어떻게 더 넓은 자본주의 사회 구성에 적용되었는지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맑스를 지지하는 여러 비평가들이 이 적용 과정을 각각 어떻게 분석했는가를 비교하는 것은 상품물신성의 등장에서 상품화의 역할과 어떻게 자본주의적 생산과 교환이 인간 개인화에 기여하는지를 명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섹션 3에서는 문화, 창의성, 정보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분화 형태들을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한 지속적 상품화가 세계적 차원에서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이 분석을 더 확장할 것이다;  이런 사회적 카테고리(개념)들은 자본주의적 정보 사회라고 불리는 것의 바탕이 되고 있다. 나는 역사적 변증법이 사회적 관계의 연속성과 생산 수단의 불연속성으로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며 진행 중인 자본주의의 모순적 사회 변혁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접근법이라고 확신한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역사화 방법을 통해 분석을 시도한다.

 

첫 번째,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longue durée 접근법을 사용할 것이다. 이 접근법은 15세기 이후 커뮤니케이션, 정보 그리고 문화가 시장 교환을 위해 생산되는 상품으로 서서히 바뀌는 장기적 변화 과정을 잘 분석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정치적, 경제적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현재라는 역사적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커뮤니케이션과 정보의 영향력 증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를 위해 수 세기 전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처음 등장한 이래 커뮤니케이션과 정보 그리고 문화와 같은 자원이 어떻게 자본주의 시장 관계에 종속되어 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들의 상품화를 역사적 방식으로 분석할 것이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1930~2002)

 

이 분석을 통해 이들의 상품화는 반복되는 갈등, 모순 그리고 적대적 투쟁을 동반한 발전하는 자본주의의 일부분임을 나는 지적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가 목격해 온 정보통신 시스템과 자원의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중요성의 증가는 특히 정치적 동기와 개입(정책 수립, 연구 개발 자금 지원 등)이 주도했음을 인지해야 한다. 

 

더 나아가, 나는 커뮤니케이션 (비판적) 정치경제학이 이 상품화를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다.(섹션 4) 이 관심은 커뮤니케이션의 정치경제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사각지대 논쟁”(blind spot debate)(그리고 동시에 진행된 “수용자 상품론”(audience commodity))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섹션 5에서는 디지털화 덕분에 어떻게 상품화가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침투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어떻게 새로운 상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를 규명할 것이다. 이 규명 과정은 최근의 신-맑스주의 접근법 중 일부, 특히 자율주의/탈-노동자주의(autonomist/post-operaist) 학자들과 관련이 있다. 이 사조에 대한 통찰은 우리에게 소통적(communicative), 생물 언어학적 자본주의(bio-linguistic capitalism) 그리고 사회 공장(social factory)과 같은 개념을 통해 진행 중인 상품화 과정에 대한 이해를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과 어떻게 일정 부분 겹치는지 보여줄 것이다. 나는 또 반복되는 원시적 축적 과정을 통해 자본 아래 서로 다른 영역이 통합되는 것을 우리가 목격하고 있음을 강조할 것이다. 이 과정은 사회 전반에 걸쳐 상품화의 추가적 확장과 강화의 가능성을 가져왔다.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품화

 

이 챕터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이전 섹션의 통찰을 바탕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는 이 역사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상품화, ‘a seeping commodification’(스며드는 상품화)을 개념화할 것이다. 이 개념화를 통해 상품화 과정에서의 질적 변화를 우리가 목격하고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 이 질적 변화는 부분적으로 그 경제적 중요성이 증가한 광범위한 통신 분야가 자본주의 영역에 확실히 편입되었음을 의미한다. Williams(2011)의 용어를 빌리자면 커뮤니케이션과 정보 자원의 상품화는 긴 혁명이지만, 이 과정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더 넓은 커뮤니케이션 영역에 대한 정치적 개입으로 가속되었다. 

 

이 글의 주요 전제는 탈포드주의 자본주의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은 모든 사회 영역으로 확산되고 또 그곳으로부터 나온다. 특히 이런 생각은 현재 같은 역사적 시대에 특히 중요해 보인다. 왜냐면 현대 사회는 인간과 사회적 삶의 모든 단계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완전히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은 거의 완전히 상품화되어 있다. 탈노동자주의자들(Post-operaist)은 커뮤니케이션이, 혹은 심지어 언어 능력과 같은 것도, 현대 사회에서 패권적 우위를 차지함과 동시에 자본주의 축적의 새로운 원천을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맑스, 그의 초기 후계자들, 그리고 “사각지대 논쟁”에 참여한 학자들이 제기한 몇 주장들은 상품화의 추가적 확장을 가능케 한 최근의 중요한 사회적 환경과 기술 변화 때문에 다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2 상품형식과 상품화의 개념화 (Conceptualizing Commodity-Form and Commodification)

 

 

‘그들은 모든 것의 가격과 그것이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

 

 

 

루카치(1971)에 따르면 맑스가 자본주의 사회의 전체성(totality)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기로 결정했을 때 상품에 대한 분석으로 그 그림을 시작하기로 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루카치는 상품 문제는 사실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중심적이고 구조적 문제”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상품 문제는 고립되어 있거나, 경제학의 중심적 논제로만 여겨져서 안 되며, 현실 속 사회적 관계에 대한 비판에서 이 상품 개념은 결코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카치 죄르지(György Lukács)(1885~1971)

 

맑스에게 있어 추상적 인간 노동이 구체화되는 상품형식은 현 역사적 시대의 경제적 세포 형식(cell-forms) 중 하나이다. 맑스는 이 상품형식의 개념화를 통해 자본주의를 가장 추상적 단계에서 분석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가장 근본적인 단계에서도 분석할 수 있었다. 맑스는 외양을 뛰어넘어  사회의 과학적 분석을 위한 수단으로 변증법과 더불어 이 추상화(abstraction)를 (어쩌면) 유일한 수단으로 보았다. 

 

상품 개념의 이런 중요한 역할은 정치경제학에 대한 맑스의 초기 저작에서 후기 개념화에 이르기까지 발견되며, 많은 학자들은 상품 개념이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하기 위한 탁월한 출발점이라고 믿었다. 1847년 프랑스에서 출판된 ‘철학의 빈곤’(The Poverty of Philosophy)과 같은 초기 저작에서 맑스는 상품의 사용가치 그리고 특히 교환가치를 다루었는데, 여기서 교환가치는 상품을 교환하는 생산자 사회에서 상품 생산의 필수적 동인이었다. 맑스가 상품의 가치는 그 안에 내재된 노동 시간으로 결정된다고 정의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는 이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노동력(labour power)이 아닌 노동(labour)이라고 썼는데, 노동력이 보다 정확한 개념화이며 그의 후기 저작에도 이렇게 표현했다)

 

 

따라서 노동 시간은 가치의 척도이며 맑스가 지적한 것처럼 노동은 그 자체가 상품이었다: 시장에서 매매가 되는 노동 상품. 두 생산품(상품)의 교환이 있다면 그것은 동일한 노동량의 교환 혹은 보다 정확히 말하면 노동 시간의 교환이 있는 것이다. 맑스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시간이 모든 것이다.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은 기껏해야 시간의 운반체일 뿐이다. 질(quality)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양(quantity)이 모든 것이다; 시간을 위한 시간, 하루를 위한 하루.” 물론 이것은 당시 프루동이 생각했던 것처럼 영원한 법칙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적 특수성이다.

 

Murdock(2006)에 따르면, 맑스가 ‘철학의 빈곤’을 저술할 때 이미 그는 “상품화가 자본주의 팽창의 중심 원동력”이라고 인식했다. 따라서 육체부터 도덕에 이르기까지 이전 인류 역사상 결코 매매된 적이 없었을 모든 것이 시장에 매물로 나와 교환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따라서 처음부터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상품형식의 역할은 결코 과장될 수 없다. 상품형식은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부분으로 간주될 수 있고 축적 순환의 혈관과 같아서 지속적 재생산에 필수적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진지한 비판에서 이 상품형식은 항상 그 대상이 되는데, 특히 스마이드의 뒤를 잇는 비판적 커뮤니케이션 연구 학자들이 이런 움직임을 이어 간다. 예를 들어, Mosco는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전환하는 과정”으로 정의되는 상품화 과정을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의 출발점을 형성하는 중심적 과정 중 하나로 이해한다.  

 

맑스는 초기 저작에서 이미 상품형식을 분석했지만 자본주의의 재생산뿐만 아니라 사회적 삶에서 상품형식이 차지하는 역할에 대해 구체적 개요를 제공한 것은 그의 후기 저작들이다. 가장 상세한 개요는 아마도 1858년과 1859년 사이에 쓰인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A Contribution to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일 것이다. 이 개요는 ‘자본론’ 제1권의 상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에 대한 기초가 되었다. 이 두 저작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의 소위 세포 형식들의 모든 것이 설명되었는데, 이 설명에는 교환가치의 근원이 되는 추상적 노동과 다양한 사용가치를 무한히 다양하게 만들어 내며 물질적 부의 실제 원천이 되는 구체적 노동과의 차이점도 포함되어 있다. 

 

 

교환가치, 혹은 단순히 가치, 와 추상적 노동 모두 그런 역사적 세포 형식으로 볼 수 있으며 또 둘 다 상품형식의 필수적 부분이다. 이 모든 개념들이 가장 추상적 의미에서 자본주의 경제의 기초를 형성한다. 맑스에 따르면, 추상적 노동(abstract labour)과 구체적 노동(concrete labour)의 핵심적 차이점은 “교환가치를 전제로 하는 노동은 추상적이고 보편적이며 획일적 노동이다.” 이에 반해 “사용가치를 전제로 하는 노동은 구체적이고 개별적 노동으로서 그 형식과 적용되는 재료와 관련하여 무한히 다양한 종류의 노동으로 구성된다.” 추상적 노동은 말하자면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이지만 개인에게는 특별한 사용가치가 없는 노동이다. 

 

맑스에 따르면, “보편적 노동(universal labour)은 결과적으로 이미 만들어진 전제 조건이 아니라 새롭게 등장한 결과이다”; 보편적 노동은 잠재적 상태로 상품에 존재하며, 교환 과정을 거쳐야만 보편적이 된다. 정치경제학의 연구 주제는 오직 추상적 노동과 교환가치일 뿐이며 교환가치로 간주되는 모든 상품은 “단순히 확정된 ‘총 노동 시간의 양’”이다. 이런 인식은 후에 맑스로 하여금  “시간(moments)이 이윤의 요소”라는 명제를 주목하게 했으며, 이 명제는 이후 테일러주의 경영학이 생산 과정에서 완전히 발전시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환가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물질적 장막으로 가려진 관계”라는 것이다. 이 지속적 신비화는 맑스가 지적한 가장 중요한 전제 중 하나로 볼 수 있으며, 후에 물신성(fetishism) 개념을 통해 완전히 발전한다. 하지만 이 중요한 전제 조건의 핵심 아이디어는 훨씬 이전에 개발되었다:

 

“개인의 사회적 관계가 사물 간의 사회적 관계라는 왜곡된 형태로 발현되는 것은 교환   가치를 전제로 하는 노동의 특징이다… 일상의 관습은 생산의 사회적 관계가 사물의 모양을 가정하는 것을 자연적이고 평범하게 보이게 한다. 즉, 사람들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관계는 사물들 간의 관계이자 사람들 간의 관계로 나타난다. 이런 신비화는 상품의 경우 여전히 매우 단순한 것이다.  교환가치로서 상품들 간 관계가 사람들이 생산 활동에서 다른 사람과 형성한 진짜 관계라는 것을 모든 사람은 명확히 이해한다. 단순해 보이는 외관은 더 발전된 생산관계에서는 사라진다. 화폐 시스템에 대한 모든 착각은 돈이 비록 뚜렷한 특성을 가진 물리적 실체이지만 생산의 사회적 관계를 표현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한다.” (맑스와 엥겔스)

 

맑스와 엥겔스의 이런 발견으로부터 우리는 여러 중요한 다른 발견을 유추해낼 수 있는데 그중 주목할 만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맑스의 접근법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지는 지를 이해하기 위한 추상화의 필요성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상품 교환이 지배적이었던 이전 역사적 시대에도 역시 실제 추상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생산의 사회적 과정에서 추상화는 매일 이루어진다”라고 맑스는 강조한다. 이 추상화는 실질적으로는 불평등한 것들의 등가화를 위한 전제 조건이다. 예를 들어, 서로 다른 종류의 노동을 동질적 추상 노동으로 변형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추상 노동으로의 변형을 통해 상품에 내재된 서로 다른 사용가치 간 통화 교환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둘째, 맑스와 엥겔스의 이런 발견은 기존 사회에서 사회생활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대해 엄청난 후속적 통찰을 가져왔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질문은 상품물신성(commodity fetishism)의 개념에서 상품형식의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역할은 무엇이며, 또 상품 교환이 인간의 개인화에 어떤 역할을 하며, 그리고 어떤 유형의 도구적 합리화가 개발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이어지는 섹션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2.1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적 변화와 사회적 관계 (Historical Changes and the Social Relations in Capitalist Societies)

 

상품은 추상적 노동을 통해 생산되며 그 생산은 전 세계적 노동 분업 환경에서 이루어진다. 상품은 명확한 사회적 특성을 가졌으며 시장을 통해 개인들 그리고 그들의 사적 노동은 중개된다. 이미 강조했듯이 상품이 교환될 때 중요한 것은 상품의 물리적 특성이 아니라 사회적 특성이다: 핵심은 교환이 가능한 다른 상품과의 관계(서로 다른 종류의 노동 산물이므로)이다. 상품 사이의 이런 관계와 이에 따른 서로 다른 종류의 노동 간 등가성은 시장을 통해 이뤄진다. 

 

모든 상품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통일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품은 ‘일련의 등식’을 통해 다른 상품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상품의 ‘교환 과정’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실제’ 관계이다. 상품의 교환 과정은 개인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사회적 과정이다.” 맑스가 ‘자본론’에서 유명하게 말했듯이 상품의 교환 과정은 사물을 통해 확립되는 매우 특별한 사회적 관계를 창출하고 상품물신성의 기초를 형성한다:

 

 

“상품의 교환 과정은 사물들 간  관계의 환상적 형식을 가정하는 사람들 사이의 명확한 사회적 관계일 뿐이다. 다른 말로, 개인의 노동은 생산품 간 교환 행위가 수립한 관계와 생산자 간 중재를 통해서만 사회 총 노동의 한 요소로서 그 성격을 뚜렷이 드러낸다. 따라서 생산자들에게 그들 개인 노동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는 사람들 사이의 물질적 관계 그리고 사물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로 보여진다. 즉, 일에서 사람들 사이의 직접적 사회적 관계로 보이지 않는다.”(맑스)

 

따라서 사람들 사이를 중재하는 사물들 간 사회적 관계는 결과적으로 현대 사회생활의 핵심적 신비화를 만들어 낸다.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는 다른 것, 즉 상품들 사이의 관계로 대체되면서 물질적 베일로 가려진다(이 과정은 뒷부분에서 다룰 개인화 문제로 우리를 이끈다). 대체와 상품물신성의 배경에 있는 이런 전반적 사고는 전체적으로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동시에 악명 높게 어렵기도 하다. 특히 이 개념이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사회에 미치는 이런 영향에 대한 분석에 매우 중요한 맑스의 추상적 역사적 주장의 핵심을  홉스바움(2011)이 간결하게 요약했다. 그에 따르면 맑스의 사회경제적 진화론은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분석한 그의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는 인간 본성에 관한 맑스의 근본적 존재론적 입장으로 볼 수 있다. ‘그룬트리세’의 특정 사회경제적 형성 단계에 대한 맑스의 꽤 추상적 설명은 자연 속에서 노동을 하고, 자연을 변화시키며, 자연으로부터 생산물을 획득하는 인간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과정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창조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기초이자 자연적 조건이다. 자연의 한 부분을 획득하고 바꾸는 것은 아마도 첫 번째 종류의 전유(appropriation)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전유는 인간 노동의 단순한 한 측면으로서 생존을 위한 자연과 인간 사이의 물질적 교환이다. 전유는 재산 개념에서도 등장하지만 이때의 전유 개념은 자본주의 사회 특유의 역사적 특정 사유 재산 개념과는 매우 다르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은 협동과 노동의 사회적 분업 둘 다 발전시켰는데, 후자는 사람들이 개인과 공동체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데 필요한 것보다 많은 ‘잉여’를 생산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의 전문화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잉여와 노동의 사회적 분업의 존재는 ‘교환’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초기에 생산과 교환은 단지 ‘사용’ 목적만을 가졌다.” 인간이 자연으로 해방되기 시작하고 자연을 “조종”하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생산관계도 변한다) 그들이 맞이하는 사회적 관계에도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역사적 의미에서 이러한 변화는 앞서 언급한 노동의 전문화, 더 나아가 화폐 형태의 발명, 그리고 상품 생산과 시장 교환의 결과물이다. 이 변화는 “자본 축적을 포함해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기반을 생산자들”에게 제공한다. 

 

자본주의의 가장 최근 단계에서 노동자는 결과적으로 노동력(labour power)에 지나지 않았다. 생산 과정에서는 사용가치, 교환가치 그리고 축적 간 전면적 분리가 이루어지는데, 이는 이 시대의 매우 독특한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재생산은 사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적 형태에서 통일성이 존재했던 (상품의) 생산과 분리되거나 심지어 반대되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목표는 모두 알다시피 인간 삶의 재생산과 관련하여 사용가치의 생산에 초점을 맞춘 이전의 생산 양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것은 상품 생산이 “자본주의 생산의 근본적 지점, 그리고 자본주의 자체를 특징짓는 법”으로 포지셔닝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요 목표는 더 많은 자본의 끝없는 축적, 축적을 위한 축적이 된다. 이 축적을 최대화하려는 합리적 의도는 자본주의의 모든 활동을 지배하는 “법”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개발되어야 할 - 질적 사회 변화를 만들어내는 - 다양한 개념의 복합체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추상적 노동, 교환(그리고 결과적으로 교환가치의 지배)만을 목적으로 생산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상품형식과 상품화 개념부터 생산 과정에서의 잉여가치 전유, 노동의 사회적 (그리고 최종적으로 세계적) 분업, 축적을 위한 축적 그리고 끝없는 축적의 역사적으로 새로운 가능성 개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끝없는 축적의 역사적으로 새로운 가능성은 생산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구매 상품 가치의 지속적 증가를 전제로 한다. 이 복합체는 또한 특정 자본 관계와 그 재생산, 즉 한편으로는 자본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임금 노동자가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특정 시대인 자본주의 시대의 보다 구체적 분석을 위해서는 우리는 자본론 제1권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를 표면적으로 보면 자본가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사이에 명백한 균열이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는데, 프롤레타리아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않거나 생산 수단에의 직접 접근이 가능하지 않은(따라서 소외된) 자들로 정의된다. 이 치명적인 생산 수단으로부터의 분리는 특히 소위 원시적(혹은 일차적) 축적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본질적으로 경제 이외의 과정으로 볼 수 있으므로 경제가 “정상적으로”(normally) 재생산되는 방식과는 관련이 없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시대적으로 공유지의 포섭, 공유지의 징발, 토지로부터의 농민 추방, 다른 사회 활동과 영역의 교환 관계로의 편입,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영역들을 자본주의 사회관계로 편입시키는 것은 정확히 원시적 축적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존재에 필수적인 것 중 하나인 이 과정은 상품으로서 노동력 생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이 원시적 축적 과정은 효과적으로 사람들이 생산 수단과 그들 자신의 생계 수단에 접근하는 것을 막으면서, 결과적으로 이들을 임금 노동으로 밀어낸다(동시에 사회의 매우 많은 변화된 제도들을 생산한다). Murdock(2011)은 상품화 행진을 강탈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임금을 위해 노동력을 팔도록 강요한 포섭(enclosure)의 역사적 역할과 축적의 과정을 꾸준히 강조한 정치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생산수단에 접근할 수 없는 사실적 무능력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주요 특징이며, 시간 경과에 따른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발전은 역사적 시스템으로서 자본주의 내 노동력의 프롤레타리아화에 기여한다. 사람들이 생산수단에 접근하는 것이 - 종종 폭력적으로 - 거부됨에 따라 그들은 생존을 위해 노동 시장에서 그들의 노동력을 팔아야 했는데, 이것은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만의 새로운 현상이었다.

 

사람들은 노동 시장에서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구매자(자본가)와 판매자(노동자) 사이에서 자유롭고 공평하게 교환한다. 그런데 대부분 경우 노동력은 프롤레타리아가 가진 유일한 상품이다: 그들 자신의 육체와 그 육체에 내재된 능력으로서 이것들은 시장에서 상품으로서 교환될 수 (혹은 정확히 표현하면 반드시 교환되어야) 있다. 노동력이란 상품의 구매자로서 자본가는 노동자(더 정확히 말하면 노동 능력)를 특정 기간만 “고용”할 수 있다. 이 교환 관계는 리버럴 정치 경제와 사회 내 인간 자유에 대한 리버럴의 핵심 신조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관계는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이 두 당사자 간 자유 교환과 노동 시장 자체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마르쿠제가 지적했듯이, 개인이 자신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팔 수 있다는 사실은 사실 노동력이 상품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따라서 노동 계약은 리버럴 자본주의에서 자유, 평등 그리고 정의(그리고 물론 착취될 필요도 있다)를 상징한다. 맑스 자신이 말했듯이, “노동력은 소유자, 즉 노동력을 가진 개인이 그 노동력을 상품으로서 판매할 때에만 상품으로서 시장에 나타날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소유자는 자신의 의지대로 처분이 가능한 노동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특정 기간 구매하기 때문에 자본가는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으며, 직접 그들을 통제할 수 있고, 그들이 하는 일을 감독한다. 마지막으로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는 (교환)가치와 잉여가치를 모두 생산하는데 후자는 자본주의 착취의 원천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