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뉴질랜드 이야기

우리는 왜 다른 에스닉 그룹 간 결혼에 관심을 가지는가?

김 무인 2020. 3. 5. 08:48

 

** 블로그를 찾아주신 분께 알려드립니다. 다음(daum) 블로그의 지속적 편집 에러로 제대로 된 교정/편집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같은 제목/내용의 '네이버 포스트'를 권장합니다.

 

 

양한 조합의 다른 인종/에스닉 그룹 간 결혼

 

유튜브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조합의 커플들이다. 출신 소개는 국적과 상관없이 인종 혹은 에스닉 그룹으로 했다.

 

한국인 아내와 흑인 남편

 

 

한국인 남편과 흑인 아내

 

 

한국인 남자와 뉴질랜드 마오리 여자 커플

 

 


한국인 아내와 뉴질랜드 백인 남편

 

 

한국인 남편과 미국 백인 아내

 

 

한국인 남편과 일본인 아내

 

 

한국인 남편과 러시아 아내

 

 

한국인 아내와 파키스탄 남편

 

 

한국인 아내와 대만인 남편

 

 

 


한국인 아내와 중국인 남편

 

 

한인 2세대가 다른 에스닉 그룹과 결혼할 가능성은?

 

2020년 기준 이민 1세대들 부부들의 자녀 - 1.5세대가 되었든 2세대가 되었든 - 가 결혼 적령기에 도달하면서 이민 오기 전 한국 사회에서는 가뭄에 콩 나듯 접하기에 무시해도 좋을 가능성 중 하나인 외국인 며느리 혹은 사위를 볼 가능성이 급증하고 있다. 실제 주변을 둘러보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은 교민 자녀가 다른 ethnic 그룹 혹은 인종과 결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이 가능성의 급증을 이전 블로그에서 번역 소개한 Table 5는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Table 5: 배우자 모두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커플, 2013


                               배우자가 같은 
                            에스닉 그룹인 비율
마오리 남성 52%
마오리 여성 51%
   
퍼시피카 남성 33%
퍼시피카 여성 40%
   
아시안 남성 33%
아시안 여성 28%
   
유러피안 남성 96%
유러피안 여성 94%

                                출처:Statistics NZ

 

2013년 센서스를 분석해 도출한 이 수치는 에스닉 그룹 간 결혼 추세를 이해하는데 상징적으로 매우 도움이 된다. 도표의 이해를 돕자면 센서스에 응답한 기혼자들의 출생지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이다. 뉴질랜드에서 출생한 기혼 아시안 남성 응답자 중 33%는 자신의 아내가 뉴질랜드에서 출생한 아시안이라고 답했고 한편으로 뉴질랜드에서 출생한 기혼 아시안 여성 응답자 중 28%는 자신의 남편이 뉴질랜드에서 출생한 아시안이라고 답했다. 뉴질랜드가 일부일처제임을 고려할 때 남편과 아내의 응답 비율에서 차이는 자신과 배우자의 ethnicity를 어떻게 정의했는지 그리고 하나 이상의 ethnicity를 답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reddit.com 

 

남녀 평균을 내보면 뉴질랜드에서 출생한 아시안 남녀는 대략 30% 정도만 같은 아시안 ethnicity를 가진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한다는 의미이다. 다른 말로 여기서 태어난 아시안들은 70%가 여기서 태어난 같은 아시안이 아닌 사람과 결혼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오해의 소지를 먼저 없앨 부분이 있다. 여기서 태어난 아시안의 약 70%는 여기서 태어난 같은 아시안이 아닌 사람과 결혼한다는 의미이지 비아시안과 결혼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즉 여기서 태어난 아시안이지만 중국에서 인도에서 혹은 한국에서 태어난 같은 ethnic 그룹의 배우자와 결혼을 해도 이 70%에 포함된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수치는 우리 한인 교민사회에서 이후 세대들이 어떤 결혼 양상을 띨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론적으로 아시아 국가로부터의 이민이라는 외부 유입 변수가 배제되고 - 현실적으로 이는 발생하지 못하겠지만 - 몇 세대 이후 한국인 후손들을 포함한 모든, 혹은 절대다수의 아시안이 뉴질랜드에서 태어나고 뉴질랜드 태생 배우자를 선택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몇십 년 이후 우리 한국 교민 자녀 중 10명 중 7명은 같은 한국인은커녕 아시안이 아닌 다른 ethnic 그룹 혹은 인종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왜냐하면, 위 수치는 아시안이라는 큰 ethnic 그룹을 범주로 하였기에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 같은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아시아 내 국가의 자체 ethnicity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위 가정에 근거하면 여기서 태어난 한국 교민 2세대 이후가 같은 한국 교민 자녀와 결혼할 확률은 30%보다 떨어진다는 의미다.

 

이제 한인 1세대 부모들은 2세대 이후 세대들이 어떤 ethnic group 혹은 인종에 속하는 배우자를 며느리로 혹은 사위로 소개하더라도 놀랄 준비를 하지 말아야 할 시대가 되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자연스럽게 한국인 배우자를 만나 결혼한 후 가정을 꾸린 후 뉴질랜드에 이민 온 부모 한인 1세대들은 이런 자녀 그리고 이후 손주들의 다른 에스닉 그룹 혹은 인종과의 결혼에 대해 과연 놀라지 않을 준비가 되어있을까? 



         자녀의 다른 ethnic 그룹 혹은 인종과의 결혼을 두려워하나? 그렇다면 왜?

 

20세기에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20대를 보낸 후 뉴질랜드에 이민 온 한인 1세대 부모는 소수의 해외 생활 경험을 이전에 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소위 ‘국제결혼’에 대한 일부 부정적 인식이 어떻게든 잔영처럼 남아 있다.  주관적 관찰에 의하면 이는 크게 두 가지 역사적 경험과 그 목도에 기인한다고 본다. 

 

하나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의  소위 내선일체(内鮮一体)의 기치 아래 추진된 내선결혼(內鮮結婚)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1937년 조선총독부 통계에 의하면 1,206명의 당시 조선인과 일본인이 결혼 관계에 있었다. 전국 단위로 보았을 때는 절대 크지 않은 수치인데  1920년대는 조선인 남자와 일본인 여자의 결혼이 많았지만 1930년대는 일본인 남자와 조선인 여자의 결혼이 증가하였다. 조선총독부의 동화정책의 하나로 조선에서 1920년대부터 추진된 내선결혼은 1860년 Half-Caste Disability Removal Act의 제정을 기점으로 마오리를 ‘문명화’한다는 명목하에 추진된 뉴질랜드에서의 파케하와 마오리 간의 결혼 권장과 유사하다. 

 

참고로 같은 정착민 사회(settler society)이지만 미국은 초기부터 가족단위로 이주하였기에 원주민 인디언과의 결혼이 필요하지도 따라서 권장되지도 않았지만, 뉴질랜드는 예를 들어 1861년에 백인 남자 1,000명당 백인 여자는 622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마오리와의 결혼은 현실적 필요성의 문제이기도 했다. 물론 파케하 남성의 마오리 여성과의 결혼 권장은  마오리 소유 땅의 소유권을 노린 측면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은 1967년이 될 때까지도 다른 인종 간 결혼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뉴질랜드는 이보다 107년 전에 마오리와 파케하라는 서로 다른 인종/ethnic 그룹 간의 결혼을 인정했다. 

 

또 다른 하나는 한국전쟁 이후 현재까지 계속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과 한국여성과의 결혼 현상이다. 2016년 한국의 한 연구자료에 의하면 정전 이후 줄잡아 10만여 한국 여성이 미군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들 중 많은 커플들은 소위 기지촌에서 유흥업과 매춘업에 종사한  여성과 고객 관계로 시작해서 결혼으로 이어진 경우다. 양공주와 기지촌은 한국의 경제력이 상승한 1990년대 이후 소멸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형태의 국제결혼 역시 쇠퇴하였다.

 

위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조선인과 일본인과의 결혼 그리고 정전 후 기지촌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국여성과 미국인(주한 미군)의 결혼(혹은 연인 관계)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강한 권력을 가진 국적의 배우자와의 결혼이란 점이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인과 일본인 결혼은 조선남자와 일본여자의 경우 그 성격이 다르지만 조선여자와 일본남자의 결혼은 지배국가의 국민과 피지배국가의 국민 간의 결혼이라는 측면에서 그 관계에서 권력의 치우침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주한 미군 남성과의 결혼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1953년 휴전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로 세계 109위의 최 극빈 국가였으며 1960년 1인당 국민소득도 79달러에 그쳤다. 이런 경제적 궁핍 상황에서 세계 최고의 경제력을 가진 미국 군인과의 결혼은 명백히 신분상승을 목적으로 한 결혼(hypergamy) 성격을 짙게 가진다.

 

이런 성격을 띤 국제결혼은 주변 조선인 그리고 한국인들로 하여금 이중 감정을 가지게 하였다. 한편에서는 부러움을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그 부러움을 희석하기 위한 질시와 차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남성과 결혼한 식민지 조선여성과 주한 미군과 결혼한 한국여성은 당시 절대다수의 조선인과 한국인들이 접근할 수 없었던 식민국과 점령국의 경제적 캐피탈과 사회적 캐피탈에 접근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던 사람들이었다.  일본남성과 결혼한 식민지 조선여성은 남편의 국적 덕분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사회망을 제공받을 수 있었고 주한 미군과 (사실)혼인 관계를 유지한 한국 여성은 미제물품으로 상징되는 현실의 경제적 풍요로움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인 미국으로의 이주라는 꿈같은 꿈을 현실화할 수 있는 지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자신들이 누릴 수 없었던 혜택을 누리는 이들에 대해  당시 조선인들과 한국인들은 뒤돌아서서 잔인한 상징적 린치를 가한다. 일본인과 결혼한 식민지 조선여성에게는 쪽발이와 결혼한 여자로 손가락질하고 주한 미군과 (사실)혼인 관계를 유지한 여성에게는 양갈보라는 멸칭을 붙였다. 

 

20세기 조선과 한국에서의 국제결혼은 이처럼 식민국 그리고 점령국의 국민과의 결혼이라는 인식이 크게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이런 형식의 결혼은 한편에서는 신분상승의 기회라는 점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자신이 먹지 못하는 밥이기에 많은 조선인과 한국인들에게는 질시와 차별의 대상이 동시에 된다. 특히 당시 국제결혼 한 식민지 조선여성과 기지촌 한국여성이  일반인들이 애초 부러워했던 이 결혼이 내포한 신분상승의 가능성이 이들에게서 사라지게 되면 노골적인 차별을 가한다. 가령 흑인 주한 미군과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여성이 자녀를 출산한 후 미국으로의 결혼 이주를 하지 못한 채 자신의 검은 ‘튀기’ 자녀와 함께 다시 한국 사회의 하위 계층으로 추락할 때 이들에게 쏟아지는 사회적 차별과 차가운 시선이 그것이다.

 

이처럼 20세기 한국의 국제결혼은 배우자의 배경 캐피탈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안정적 경제력을 가진 미국 중산층의 백인 남자와의 결혼은 한국신부의 부모로 하여금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주저함은 하게 할지 모르지만, 딸의 사회경제적 신분상승이 보장된다고 믿는  탓에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 된다고 할 부모는 많이 없을 것이다. 반면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못사는 국가 출신에 본인도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은 유색 인종의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딸에 대해서는 부모로서 우려가 없지 않을 수 없다. 일단 미래의 경제적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았다는 것이 걱정될 것이고 다음으로 한국에서 살 경우 겪어야 할 차별적 시선이 그것이다. 가령 ‘어쩌다 저런 남자랑 결혼하게 됐대?’와 같은 주변의 동정적 혹은 비하적 시선이다.

 

중국과 일본을 제외하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외부인과의 접촉이 거의 없다시피 살아온 한민족에게  한반도 사회에 편입된 외부인에 대한 수직적 서열정리는 어쩌면 새로운 환경에 대한 생존전략일지 모른다. 예를 들어 한국인 배우자와 함께 한국에 살고 있는 많은 백인은 한국어를 하지 못한 채 생활한다. 그들을 둘러싼 한국인들도 이에 대해 당연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자연스럽게 받아넘긴다. 오히려 자신들이 영어로 상대해 주지 못함에 미안해하기까지 한다. 이에 익숙한 일부 백인들은 당당하게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고 이 시도에 영어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대방에게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반면 동남아 등에서 한국으로 이주 결혼을 한 여성이 한국어를 못하거나 서툴게 하면 잔인하게 변한다. 한국사회에 동화될 자세가 안되어있다는 등.

 

이처럼 국제결혼으로 대표되는 다른 인종 혹은 다른 에스닉 그룹과의 결혼에 대한 20세기 한국인들의 인식은 외국인 배우자의 배경 권력과 이에 따른 한국 배우자의 신분상승 가능성에 초점이 맞추어진 경향이 있다. 1990년대 이후 뉴질랜드에 이민 온 1세대 부모들도 자녀의 다른 인종 혹은 ethnic 그룹과의 결혼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런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본다. 



뉴질랜드 상황

 

이 프레임을 뉴질랜드에 적용하면 당연히 뉴질랜드 사회의 패권을 차지하고 있는 파케하에 대한 결혼에 대해 많은 1세대 한인 부모들은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 주변 교민들을 봐도 반대했다는 부모를 접하지 못했다. 다만 언어 소통이 어려워서 아쉽다는 정도다. 파케하 사위 혹은 며느리의 사회적 캐피탈이 자녀의 뉴질랜드 생활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자녀가 파케하가 아닌 이민자 출신의 유색 인종과 결혼을 하겠다면 우려를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아주 쉽게 뉴질랜드 사회는 직업에서 ethnic 계층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인구 비율 대비 불균형적으로 많은 저임금 직업군이 한국인을 포함한 이민자 출신 유색 인종들로 채워지고 있고 백인들은 고 임금 직업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자녀의 이민자 출신 유색 인종 배우자와의 결혼은 자녀의 사회계층 상향이동에 걸림돌로 작동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심이 발동하는 것이다.

 

뉴질랜드는 미국과 달리 19세기 정착 초기부터 파케하들로 하여금 의도가 불순했다 하더라고 마오리와의 결혼을 권장했기 때문에 사회 내 다른 인종 혹은 ethnic 그룹과의 결혼에 대해서는 전혀 터부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이들이 biculturalism으로 상징되는 이 나라의 두 건국 ethnic group이기 때문에 이들 간의 결혼과 그 혼혈 자녀는 뉴질랜드에서 당연히 받아들여지지만, 예를 들어 비교적 최근에 유입된 아시안과의 결혼과 그 혼혈 자녀에 대해서는 아직 사회적으로 적응 초기단계다. 파케하와 아시안과의 결혼과 그 혼혈 자녀는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한 쪽 배우자가 패권 그룹에 속해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소프트랜딩에 대한 기대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파케하가 가진 사회적 캐피탈(사회적 네트워크)을 가지기 힘든 유색 인종 이민자 출신끼리의 결혼은 자녀가 결혼 이후에 1세대인 자신들처럼 여전히 이방인(other)으로서 주류 사회에 진입을 못하고 뉴질랜드 사회의 주변부에서 위치할까 걱정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후 태어날 혼혈 자녀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자리매김 될까도 우려의 대상이 된다. 지금은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한국에서 혼혈 자녀의 사회적 위치를 생각하면 타당한 우려다. 다양한 인종과 에스닉 그룹이 혼재한 뉴질랜드이고 특히 파케하 마오리 퍼시피카 그룹은 서로 간 결혼 역사가 오래된 까닭에 그룹 구분이 애매할 정도이지만 아시안와 타 에스닉 그룹과의 결혼으로 탄생하는 혼혈 자녀들를 위한 사회적 공간이 제대로 갖추어졌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여지가 다민족 국가 뉴질랜드이지만 여전히 있다. 과거 미국 교민사회를 보면 혼혈자녀는 한인 사회에서도 차별을 겪은 사례가 보고되었다. 예를 들어 파케하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자녀 - 주변에 많이 있으며 이들 중에는 결혼한 이들도 있다 - 이 자신의 에스닉 정체성을 아버지 쪽에 더 무게를 둘지 (대부분은 이 쪽이다) 아니면 어머니 쪽에 둘지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더 나아가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현상은  세계적으로도 혼혈은 이제 한 사회 내 주요 인종 혹은 에스닉 그룹의 경계에 있는 주변인이 아니라 새로운 에스닉 그룹 형식으로 당당히 자리 잡기 시작했으며 뉴질랜드 아시안 혼혈에도 이런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기대된다.  

 

 

맺음말

 

이번 글은 대부분의 1세대 부모가 자녀의 혼인을 경험하는 시점에서 자녀의 다른 인종/ethnic 그룹과의 결혼을 바라보는 시선을 부모의 처지에서 정리해보았다. 사랑은 부모의 이런 우려 섞인 시선과 관계없이 자녀에게 찾아온다. 우리 세대라면 절대로 콩깍지 씌지 않을 것 같은 상대방과 사랑에 빠지고 상대방의 피부색도 그리고 그의 미약한 사회적 경제적 캐피탈도  문제가 되지 않으며 그들 앞에 전개될 불확실한 미래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과거 세대인 우리는 이렇게 자녀들의 결혼을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지만, 미래 세대인 자녀의 혼혈 자녀(손주)는 훗날 자신들 부모의 결혼을 돌이켜 보면서 당시 사회적 대세인 동족결혼(endogamy)에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사랑 감정에 충실하여 이를 행동에 옮긴 부모를 존경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