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뉴질랜드 이야기

다른 에스닉 그룹 간 결혼의 의미와 전망 (下)

김 무인 2020. 3. 20. 15:54

 

* 블로그를 찾아주신 분께 알려드립니다. 다음(daum) 블로그의 지속적 편집 에러로 제대로 된 교정/편집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같은 제목/내용의 '네이버 포스트'를 권장합니다.

 

 

 

하와이, ‘aloha spirit’?

 

이 지구 상에 인종 간 차별 없는 사회가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즉각적으로 ‘에이, 그런 사회가 있을 수 없지’ 같은 응답을 들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이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런 것처럼 어떤 형식이던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인종 혹은 에스닉 그룹 간, 특히 소수 에스닉 그룹에 대한, 차별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이 상식처럼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뉴질랜드에서 서로 다른 에스닉 그룹 간 결혼(ethnic intermarriage)이 에스닉 그룹 간 조화로운 공존에 이바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하와이를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구 약 140만 명의 하와이에는 뚜렷한 다수 인종이 없다. 아시안이 37.3%로 가장 많은 인종이며 백인이 26.7%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미국 주(state) 중에서 아시안이 백인보다 높은 인구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곳은 하와이가 유일하다. 하와이 원주민을 포함한 퍼시피카 사람들은 9.9% 그리고 흑인은 2.6%이다. 둘째, 본 주제와 관련 가장 흥미로운 그룹인 혼혈 인종은 23%로 거의 1/4에 육박한다. 따라서 하와이에서는 피부 색깔과 외모가 궁금증과 호기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셋째, 하와이 거의 절반의 기혼자가 다른 에스닉 그룹/인종의 배우자를 가지고 있다. 또한 ‘aloha spirit’라고 불리는 하와이 특유의 사회 구성원 간 상호 존중하며 잘 어울리는 분위기도 이에 한몫을 한다. 에스닉 그룹 간 결혼이 활성화되는 뉴질랜드도 이 수치를 향해 가고 있다고 한다면 하와의 현 ethnic/racial relations는 우리에게 일정 부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백인이 minority인 사회

 

2019년 6월 뉴욕타임스에 기고가 Moises Velasquez-Manoff 가 하와이의 인종 관련 흥미로운 글을 기고했다. 제목은 ‘Want to Be Less Racist? Move to Hawaii (덜 인종차별주의자가 되고 싶으세요? 하와이로 가세요)'. 하와이에서 일본인 엄마와 유럽(이탈리아-아일랜드) 출신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 심리학자 Kristin Pauker의 연구를 기반으로, 자신의 관찰과 연구 결과를 덧붙여 서술한 에세이다. 민감한 인종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덕분에 그의 이 에세이에 대해 많은 독자도 댓글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밝혔다. 댓글 중 매우 흥미로운 글들은 아래 별도로 소개한다.

 

Kristin Pauker는 미국 본토에 살다가 하와이에 유학 온 백인 학생들을 상대로 그들의 인종 관련 개념의 변화에 관해 연구했다. 연구 결과, 본토에서 살았을 때 학생들은 ‘인종(race)’이  개인에게 태어날 때부터 생물학적으로 고정된 특성이라는 소위 ‘essentialist’ 사고방식을 가졌었지만, 하와이로 이주한 후 인종이 더 유동적인 ‘ethnicity’ 개념에 가깝다는 인식을 하게 됨을 발견한다. 이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그녀의 연구 결과물에서 나의 이목을 끈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백인 학생의 ‘소수자(minority)’ 경험이다. 

 

본토에 살 때  다수 ethnic 그룹 혹은 인종의 구성원이었던 백인 학생은 전혀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본토에 살 때는 자신의 피부 색깔과 삶의 방식은 ‘default’ 였고 ‘normal’였다. 그러하기에 백인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자신의 피부 색깔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투명한 백색(white transparent)’ 이었는데 하와이에 살면서 자신의 피부색이 투명한 백색이 아니라 white라는 수많은 색깔 중 한 색깔임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다. 즉 자신이 서로 다른 피부색을 가진 여러 인종 중 하나라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런 메이저에서 마이너로의 전환은 누군가에는 전락(downfall)이라는 부정적 경험으로 다가가기도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는 해방적(emancipatory) 경험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부정적 경험의 한 예는 미국 본토에서 유색 인종의 학업 중도 포기율이 백인 학생들보다 높았지만, 하와이는 반대다. 하와이 대학(the University of Hawaii) 백인 학생들의 학업 중도 포기율이 다른 인종 학생들보다 높다. 이에 반해 긍정적 경험의 한 예는 미국 본토에 살다가 하와이에 자발적으로 이주한 이들 중, 이런 소수자로서의 사회 내 위치를 즐기는 경우이다. 위 기고문 댓글 중 하나가 이를 잘 보여준다.

 

“나는 내가 성장한 인종적으로 분리된 중서부 마을을 떠나 하와이로 이주했습니다. 이는 내가 지금까지 한 일 중 제일 잘한 일이었습니다! 마침내, 난 소수(minority)가 된 겁니다. 나는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는 것이 신이 납니다. 다른 음식,문화,언어 그리고 삶의 방식들이 이 섬에 넘쳐나고 이것들은 나로 하여금 이 인류의 활력(vibrancy)의 한 부분이게끔 해줍니다. 나는 내가 떠난 고향보다 새롭고 다른 사람들과 관습이 있는 이곳을 더 고향처럼 느낍니다.

 

보수적 백인 마을에서 성장한 본토 백인 중에는 나와 같지 않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아웃사이더와 소수자가 된다는 경험은 그들로 하여금 스트레스를 받게 하고 더 나아가 분노를 일으키면서 이전보다 더 강한 인종차별주의자로 되게 만듭니다. 나는 이 경험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왜 이토록 다른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위 본토 출신 하와이 거주 백인의 경험과는 반대로 하와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계 미국인이 미국 본토에 건너간 뒤 경험하는 일들은 하와이가 본토와 비교하면 얼마나 다른 인종/에스닉 환경을 제공해주는지 엿볼 수 있게 한다 

 

“나는 남한으로부터 이민 온 가족의 자녀로 하와이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텔레비전에서 Ferguson 사태(2014년 Ferguson 시에서 백인 경찰이 흑인 소년을 총으로 쏴 죽임으로 촉발된 시위:역주)를 보면서 그 인종 간 갈등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내가 본토에 있는 대학으로 이주,진학했을 때 나는 내 정체성에 딸려 붙은 스테레오타입과 함께 token Asian(스터디 그룹에서 외로이 지내는 아시안을 비유:역주)이 되었습니다. 난 곧 각 인종 그룹들이 자가 분리(self-segregated)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Aloha’, 동지애(camaraderie),다양성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난 어느 한순간 나의 인종적 특징에 기인한 추정에 기반을 둔 집중적 관찰의 세상의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위 두 댓글의 저자들은 서로 다른 처지이지만 본토와 하와이를 모두 경험하면서 하와이가 상대적으로 인종 간 긴장감이 훨씬 낮음을 증명하고 있다.

 

 

하와이의 인종 간 조화로운 공존의 배경

 

이런 하와이의 일견 인종 간 평화로운 공존의 이유는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첫째, 압도적 다수 인종이 없다는 점. 둘째, 기존 부부 절반 가까이 서로 다른 인종/에스닉 그룹 간 결혼이라는 점인데 하와이는 미국 본토와 달리 다른 인종/에스닉 그룹과 결혼을 금지하는 법률이나 관습이 없었다. 셋째, 상당한 비율의 혼혈 인구 (약 ¼)의 존재로 인종 간 구분이 어렵고 의미가 퇴색했다는 점. 즉 외모만 봐서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가늠할 수 없으므로 특정 인종/에스닉 그룹에 적용하는 스테레오 타입을 적용할 수 없게 된다. 또한, 하와이에서는 개인 혼혈의  복합성이 그대로 인정되는 반면 미국 본토에서는 한 인종으로 끼어 맞추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중국/미국인디언/흑인/유러피안 백인의 피를 물려받은 어떤 사람은 본토에 가면 자신이 그냥 흑인으로 취급받게 되는 경험을 이야기한다.

 

미국은 측정 기준에 따라 약 2.6% ~ 6.9%의 인구가 혼혈인데 현재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인구 영역(segment)으로 2060년까지 이 비율은 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Kristin Pauker의 실험에 따르면 혼혈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더 높은 창의력(creativity)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단지 혼혈 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혼혈이 많은 사회환경을 접한 본토 출신의 백인 학생들도 이전보다 훨씬 유연한 문제 해결 접근 방식을 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 이유 외에도 역사적 경험도 한 몫을 차지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하와이 백인 농장주들은 농장에서 일할 노동자들을 중국, 일본, 한국,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그리고 포르투갈에서 골고루 모집했다.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채용한 ‘divide and rule’ 원칙에 충실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2차 대전 후 사회 질서가 변하면서 하와이의 항만과 농장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하기 시작하고 이들 노조 지도자들은 노조 운동의 성공은 노조구성원들의 서로 다른 인종/ethnic group 간의 차이를 뛰어넘는 단합이 key라고 여긴다. 이에 따라 노조원들에게 노동자라는 상위(umbrella) 정체성으로 자신을 규정하게끔 격려한다. 다양한 인종/에스닉 배경을 가진 노조원들도  자신의 노동 환경과 조건의 개선을 위한 계급 투쟁에서 노조원들 간 인종/ethnicity 차이는 극복해야 할 과제로 함께 인식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에스닉 혹은 인종적 정체성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지만 서로 ‘다름(otherness)’에 대한 인식이 공존할 수 있고 공존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와이의 인종차별과 계층화

 

하와이는 이처럼 많은 이들에 의해 ‘racial paradise’ 혹은 ‘everyone is minority’로 불리면서 최소 인종 관계 측면에서만큼은 외부로부터 우호적 시선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하와이가 실제로 이처럼 인종/에스닉 그룹 간 조화로운 공존을 하는지 아니면 관광객을 더 불러 모으기 위한 과장된 레토릭에 불과하며 실제는 다른 사회와 마찬가지로 인종/에스닉 그룹 간 부(wealth), 자원(resource) 그리고 권력(power)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사회인지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선 우리가 보고 있는 다민족 하와이의 현재 모습은 뉴질랜드와 마찬가지로 원주민 (indigenous people)인 Native Hawaiian 인구의 붕괴와 그들 땅에 대한 박탈의 기반 위에서 시작하였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하와이 원주민 (Native Hawaiian)의 지위는 원주민(indigenous people)이라는 입장에서 뉴질랜드 마오리 위치에 비견될 수 있다. 마오리에게 토지 박탈과 통치권 상실의 역사가 있듯이 하와이 원주민들도 자신들 국가의 전복이라는 trauma와 같은 역사적 경험이 있다. 

 

1893년, 당시 왕국(monarch)였던 하와이는 미국 초기 선교사의 후예들인 백인 농장주들의 쿠데타 때문에 왕국이 멸망하고 대신 백인들에 의해 공화정 국가가 들어선다. 이 쿠데타의 중심에 있던 것이 Dole 가문으로, Dole Food의 창업자 중 한 사람인 James Dole과 그의 사촌이자 쿠데타 후 대통령이 된 Sanford Dole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농장에서 생산되는 파인애플 같은 농작물의 미국 본토 무관세 수출을 위해 하와이의 미국 합병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고, 결과적으로 1898년에 하와이는 미국의 식민지로 합병되었고 1959년에는 미국의 주(state)가 되었다.

 

하와이에는 특정 인종에 대한 차별과 각 인종 간 계층화(stratification)가 존재한다. 미크로네시안(Micronesian)에 대한 학대(maltreatment), 하와이 원주민들의 높은 빈곤율, 반 흑인 정서, 폴리네시안들의 불균형적으로 높은 투옥률 그리고 필리피노와 포르투갈 사람들의 관습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에 기반을 둔 차별 행위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 중 가장 큰 사회적 정치적 동요를 일으킬 수 있는 잠재적 요소는 여전히 하와이 원주민의 원주민으로서의 정체성(indigenous identity) 움직임이다. 자신들 조상의 왕국을 전복하고 점령해 온 백인을 향한 이들의 지속적인 적개심은 세대를 이어서 내려오면서 여전히 폭발의 잠재력이 있다.

 

하와이 원주민들의 백인들에 대한 적개심은 이들 백인을 haole(‘하올리’로 발음한다:역주)라는 경멸적 호칭으로 부름과 더불어, 특히 하와이에 거주하는 로컬 백인보다는 미국 본토에서 건너온 백인들에게 집중적으로 표출된다.  호칭 haole는 뉴질랜드에서 마오리가 유러피안 백인을 부를 때 사용하는 Pakeha와 그 용도가 처음에는 비슷했다. 뉴질랜드에서 파케하는 물론 정황에 따라 다른 뉘앙스를 띨 수 있지만, 일상 대화 속에서 서술적 단어로 사용할 수 있지만 haole는 과거와 달리 적대적 감정이 실린 경멸적 호칭이 되었다. 

 

이런 적개심의 표출에 대해 일부 백인들은 하와이에서 자신들이 역 인종차별을 받는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는 뉴질랜드 일부 파케하의 불만과 궤를 같이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원주민들에게 어떤 일을 저질렀던지 간에 그 이후에 태어난 자신들이 이렇게 원주민으로부터 적대적 대접을 받을 이유도 없고 또 원주민들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들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는 것은 불공평한 차별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허나 이런 불만은 타당성을 인정받기 힘들다. 일단 차별은 다수 혹은 권력을 가진 집단이 소수 혹은 권력을 가지지 못한 그룹에게만 가능한 행위이다. 만약 반대 행위가 일어난다면 이는 저항일 것이다. 하와이 원주민의 백인들에 대한 적개심의 표출은 역 인종차별이 아니라 빼앗긴 권력에 대한 불만의 표출로 봐야 할 것이다. 

 

반면 일본계와 중국계는 백인들과 더불어 지배 에스닉 그룹/인종을 구성한다. 특히 백인들은 막강한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여전히 행사한다. 가장 큰 인종 카테고리를 적용할 경우 아시안이 제일 큰 인종이지만 아시안을 다시 하위 그룹으로 나누면 백인은 하와이에서 가장 큰 인종이다. 2010년도 인구 조사에 근거해서 아시안 인구를 세분하면 필리피노가 14.6%로 제일 많으며 일본인이 13.6%, 중국인이 4% 그리고 한국인이 1.8%이다. 반면 백인은 26.7%이다.

 

일본계 하와이인들은 1920년대에 하와이 전체 인구의 41%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음에도  7%에 불과한 백인들이 당시 경제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법 시스템까지 장악했었다. 백인이 수적 소수자 위치에 있음에도 유일한 지배 그룹임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 있었다. 1928년 일본계 청년 Fukunaga는 자신의 가족들을 위협했던 백인 은행원의 10살짜리 아들을 유괴한 뒤 살해했었는데  체포된 후 불과 3주 만에 사형 선고가 내려지고 곧 이어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이는 하와이 대학 일본계 교수 Okamura에 의하면 한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백인 집권 계층을 위협하는 에스닉 그룹으로 부상한 일본인들에게 대한 상징적 경고였다. 

 

Okamura에 의하면 일본은 1990년대에 들어서야 top tier를 형성하고 있던 백인과 중국계에 합류하면서 현재와 같은 백인, 중국계 그리고 일본계라는 지배그룹 구도를 형성했다. 그러나 그 뒤로 다른 에스닉 그룹의 집단적 사회 상향 이동은 없었다. 물론 개인 차원에서 하와이 원주민 혹은 필리피노의 사회 상향 이동은 있었지만, 집단 이동이라고 할 정도의 규모는 아니었다.  그는 그 이유를 하와이 경제의 관광업에 대한 절대적 의존을 들고 있다. 하와이 총생산량의 90%가 관광업에서 창출되는데 관광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급여는 절대다수가 저임금이기 때문이다.   

 


위기의 하와이 인종 평등

 

하와이는 이처럼 밖에서 보기보다 더 많은 자체 인종/에스닉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미국 본토나 다른 유러피안 국가와 비교하면 여전히 인종/에스닉 그룹 간 이질감이 적은 사회로 인정받을 이유가 분명히 있는 사회이다. 그러나 하와이의 장점이 될 수 있는 이 인종/에스닉 그룹 간의 aloha spirit도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위협받고 있는 증상들이 감지되고 있다.

 

최근 하와이는 매우 높은 비율로 많은 학생이 사립 학교에 다니면서 공립학교는 보다 인종화되고 에스닉화 되어가면서 과거에 중요시 여겨졌던 각 인종/에스닉 그룹 간 상호 교류가 막히고 있다. 또 인종/에스닉 그룹 간 벌어지는 사회경제적 격차를 줄이려는 움직임에 대해 지배 인종/에스닉 그룹이 제동을 거는 움직임도 있었다. 2018년 하와이 교사 협회는 공교육의 강화를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투자 부동산에 대한 부가세(tax surcharge)를 신설할 것을 제안했는데 이를 지역 사회가 반대함으로써 부결되었다. Okaumra에게 이는 평등한 기회의 제공에 대한 반대로 비추어졌는데 왜냐하면 공립학교 학생의 70%가 하와이 원주민, 필리피노, 사모안, 미크로네시안 그리고 다른 소수 민족 이민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하와이의 지배 계급을 형성하고 있는 백인, 일본계 그리고 중국계의 현 ethnic 상태(ethnic status quo)를 유지하려는 기도로 이해될 수 있다. 



맺음말

 

“미국에서 계급과 인종은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연관되어 있으며 특정 그룹, 특히 흑인, 미국 인디언 그리고 하와이 원주민, 에게 몇백 년 간에 걸쳐 행한 박해의 영향을 고려함 없이는 의미 있는 진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적극적 행동 - 가령 소수인종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과 보상(reparation) - 을 취할 때입니다.”   

 

글 서두에서 하와이가 미국 본토보다 인종 간 긴장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로 백인 인종이 다수가 아닌 소수라는 점, 서로 다른 인종/에스닉 그룹 간 결혼 자들이 많다는 점 그리고 결과적으로 선명하게 인종 간 경계선을 그을 수 없는 혼혈 인구가 많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이런 상대적 비차별적 인종관계는 표면적이거나 특정 그룹들에게만 해당하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령 백인, 일본계 그리고 중국계 간에는 표면적 인종적 평등뿐만 아니라 실질적 평등도 이루어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지배 계급을 형성하고 있는 세 인종/에스닉 그룹과 나머지 인종/에스닉 그룹 간에는 여전히 다른 나라의 백인 지배 그룹과 그 밑의 유색 인종 피지배 그룹과의 관계처럼 차별적이고 계층적이다.

 

단지 하와이가 다른 유러피안 정착민 사회보다 전반적 사회분위기가 덜 차별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기저 이유 중 하나는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아시아(중국계와 일본계)계 유색 인종과 백인 간 배분된 권력 구도 때문일 것이다. 다른 말로 백인이 상대적 소수라는 점, 서로 다른 인종/에스닉 그룹 간 결혼이 보편화하였다는 점, 그리고 혼혈 인구가 많다는 점 모두 이런 느낌에 이바지하지만 어쩌면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일본계와 중국계라는 백인들의 전통적 인종 시각에서 보면 열등 유색인종이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권력 일부분을 장악했기 때문에 백인들은 이들에 한해서만큼은 좋든 싫든 자신들과 동등한 지위에 있는 사회 구성원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종(race)과 계급(class)의 관계는 현대 사회학에서 지속해서 다루어지는 주제이다. 막시스트의 이데올로기적 접근을 따르면 계급 갈등이 본질적이며 인종 갈등은 부수적 때로는 지배계층에 의해 계급 갈등을 가리거나 호도하는데 사용된다. 그럼에도 세계 각국의 역사는 많은 경우 서로 다른 인종/에스닉 그룹 간 관계가 계급 간 갈등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함을 보여준다. 이는 계급 의식(class consciousness)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적 패권(ideological hegemony)에 의해 약해질 수 있지만 - 가령 자신이 중산계급에 속한다거나 속할 수 있다는 생각 - 에스닉 의식(ethnic consciousness)은 외양의 선명함 그리고 그에 따른 전선의 명확함 덕분에 쉬이 약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와이 혼혈소녀:

 

그럼에도 하와이의 현재 인종/에스닉 그룹 간의 관계가 뉴질랜드의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는 권력 -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 의 분배가 수반될 때 다른 인종/에스닉 그룹 간의 결혼이나 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자녀의 존재가 앞으로 인종차별 없는 사회의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예를 들어 하와이에서 상위 계층의 백인, 일본계 그리고 중국계 간의 결혼과 하위 계층의 하와이 원주민, 필리피노 그리고 폴리네시안 간의 결혼은 같은 서로 다른 인종/에스닉 그룹 간의 결혼일지라도 인종/에스닉 그룹 간 차별의 해소라는 면에서 의미를 달리한다. 

 

결론적으로 뉴질랜드에서도 서로 다른 에스닉 그룹 간 결혼은 분명 인종 차별의 해소를 위한 긍정적 움직임 중 하나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이 계급과 인종은 현대 사회에서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다. 진정한 인종 차별의 해소는 계급 차별의 해소를 동반해야만 가능하다. 따라서 서로 다른 에스닉 그룹 간 결혼과 혼혈 자녀의 증가 현상은 계급 간 격차의 해소 움직임과 병행되었을 때 그 사회적 역사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