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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2004년 단어가 생성된 뒤 2014년 Oxford English Dictionary에 의해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selfie’는 이제 완전히 하나의 Meme으로 우리 디지털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Facebook, Facebook Messenger, Instagram 그리고 Snapchat 등이 이 셀피서비스를 제공하는 소셜 네트워크 회사들로 잘 알려져 있다.
2017년, Instagram은 5억 명이 매일 자사 셀피 app을 이용하고 있으며 8억 명이 매월 적극적으로 이 앱을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Snapchat 역시 약 1억 8천만 명이 매일 자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마트폰 제조업체 Samsung에 따르면 18세에서 24세에 이르는 사용자들이 찍는 사진의 30프로가 셀피라고 밝혔고, Google에 따르면 2014년 Android phone으로만 매일 1억 가까운 selfie가 찍혔다고 한다. 또한 Instagram에는 5천4백만이 넘는 사진들이 #selfie 해시태그가 붙어져 있다고 한다.
이 셀피에 대해 적지 않은 이들은 허영심(vanity) 많거나 자아도취(narcissism)에 빠진 이들 혹은 유명해지고 싶은(fame-seekin) 이들이나 하는 짓 정도로 치부하기도 한다. 실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청소년들과 접견할 때 대부분 청소년들이 교황과의 악수보다는 셀피찍는 것에 더 몰두하는 것을 보고 청소년들이 가상세계에 빠져 현실 세계를 망각한다며, 셀피로 상징되는 가상(virtualized) 세계로 인해 현실 세계로부터 소외(alienation) 되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Selfie는 디지털 시대의 자화상?
Oxford 사전에 따르면, 셀피는 개인이 스마트폰이나 웹캠을 이용해서 자신을 찍은 후 소셜미디어 웹사이트에 올리는 사진이다. 사실 자화상(self-portraiture)은 동서를 통틀어 이전부터 사진이나 그림 형식으로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셀피가 별도의 자화상 형식으로 주목을 받는 것은 social networks을 통한 유포(dissemination)를 전제로 사진을 찍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셀피는 사적 행위가 아닌 사회적 혹은 공적 행위인 셈이며, 이 특징으로 인해 셀피는 이전의 자화상들과 본질을 달리한다.
온라인 가상 세계가 없었고 오프라인이란 현실 세계만 존재했던 아날로그 시대의 자화상 - 사진이나 그림 - 을 찍거나 그리는 작업은 진정한 self를 찾기 위한 자아 탐구 작업이었다. 초상화의 영어 표현 self-portrait의 portrait는 ‘끄집어내다’ ‘밝히다’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protarahere’에서 유래했다. 즉 자신의 진정한 내면을 찾기 위한 작업과 더불어 이를 표현해 내는 것이 자화상 제작의 주 목적인 것이다.
서구 계몽시대의 자화상은 이처럼 사적인 영역에서 자신과의 대화 과정 속에서 태어난 반면, 셀피의 경우 자신과의 대화보다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타자의 시선을 처음부터 의식해서 자신의 identity를 '가공'하는 작업이다. 즉, 같은 identity work이라도 전자는 자신이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진정한 자기의 identity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후자는 남들에 비칠 자신의 모습을 염두에 두고 그 타인들의 머릿속에 기억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셀피를 통해 원하는 identity를 기획하고 창조하는 작업인 셈이다.
이 기획된 자신의 모습을 위해 셀피 앱을 서비스하는 회사들은 조작(manipulation)과 filtering의 기능을 앱에 넣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실제 모습이 소셜 네트워크 상의 타인들에게 비치고 싶은 자신의 모습과 괴리가 있다고 본인이 느낄 경우, 성공적인 셀피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잘 가려 이 괴리를 없애는 것이 관건이 된다. 이는 아날로그 시대의 자화상이 얼마만큼 자신의 내면을 잘 드러내는 가가 관건인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From Self to Selfie
이처럼 스마트폰을 이용한 셀피의 등장은 우리에게 주체(Subject)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스마트폰(cellphone)의 등장을 기점으로 BC(Before Cellphone) 시대의 우리는 소위 서구 계몽시대의 자주적 행위자(autonomous agent)였던 인간 주체들('Self')이었던 반면, AC(After Cellphone) 시대의 인간들은 타인의 시선과 그들의 승인과 검증 – 소셜 네트워크 상 Likes나 긍정적 comments와 같은 – 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대상적 주체인 'Selfie'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정체성 환경에서 인간은 더 이상 social creature가 아닌 social media creature라는 새로운 정체성 카테고리에 속하게 된다.
이는 현실 세계에서 실현할 수 없는 인간 본질을 이상화하여 그것을 외부로 투사(projection) 하여 창조한 가상적 존재가 신이라고 주장하면서, 인간의 종교적 소외를 주창한 포이어바흐(Feuerbach)의 종교적 소외 프레임을 이 셀피에도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현실에서는 실현할 수 없는 혹은 실현할 자신이 없는 타인의 시선 속에 비추어질 자신의 이상적 모습을 셀피에 투사하여, 비록 그 셀피에서 자신은 소외되었지만 자신의 주체성을 셀피에 이전함으로써 자신의 Selfie - 이 경우 아바타(Avatar)가 된다 - 에 쏟아지는 likes를 자신(Self)에게 향한 것으로 mindset를 튜닝하는 것이다.
Selfie의 사회학적 구성
셀피의 사회학적 구성을 살펴볼 때 프랑스 철학자 Gilles Deleuze의 개념 ‘Assemblage’를 차용하는 것이 편해 보인다. Assemblage는 특징 혹은 정체성을 표현하고 영역을 확정 짓는 이질적 요소들(구조물, 행위들, 물질들, 감성들 그리고 공표들)의 역동적 모음 혹은 배치라고 정의될 수 있는바, 이에 의하면 셀피는 5개의 겹치는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셀피를 찍는 행위를 하는 '인간'; 생산되고 소비되는 셀피의 '이미지'; 셀피가 창조되고 그 셀피를 관람하는 행위가 일어나는 물리적 '공간'; 셀피에 사용되는 '기기'; 그리고 그 셀피의 이미지가 유통되는 '소셜 네트워크'.
이 여러 요소들의 Assemblage 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셀피의 창조부터 소비에 이르는 과정을 Senfit의 경우 ‘grabbing’이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코자 한다. 즉 셀피에 대한 소비는 영화관 영화처럼 집중해서 관람(gazing)하는 것도 아니고, 방에 켜진 티브이처럼 대충 보는 glancing도 아닌, 낚듯이 혹은 잡듯이(grabbing)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첫 단계에서는 원하는 이미지를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잡듯이 찍고, 두 번째는 유통하고자 하는 네트워크에 원하는 셀피를 잡아서 업로드한 후 share나 forward와 같은 terminology를 다시 선택해서 유통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셀피 창조자인 유저가 주도적으로 grabbing을 하나 일단 소셜 네트워크에 이미지가 올라간 이후부터는 업로더가 통제할 수 없는 세 번째 단계인 invisibility의 세계로 접어들게 된다. 이 단계부터는 grabbing 행위가 Facebook이나 Instagram 같은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제공자의 tickers나 newsfeeds와 같은 알고리듬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다. 이 sorting 과정을 거치면서 이 영리추구 자본가 기업들은 ‘mining’(채굴)이라는 과정을 통해 광고주에게 셀피 이미지들에 대한 data를 팔아 궁극적 목적인 이익 창출을 하게 된다. 마지막 단계는 이전 포스트, 'Nosedive, Uber and Social Credit System in China' 에서의 중국처럼 국가가 국민 통제, 감시를 위한 안면인식, 법 집행 그리고 프로파일링을 위해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제공 회사의 selfie data를 grabbing 하기에 이르게 된다.
Selfie를 관통하는 후기 자본주의 논리
최근의 Selfie의 급속한 보편화에는 다른 사회적 사건과 마찬가지로 여러 배후 요인들이 함께 작동한다. 가령 모바일폰 제조업체의 경우 새로운 소비창출을 위해 front-facing 카메라를 장착한 제품을 내놓고 이의 수요 창출을 위해 Facebook, Instagram, SnapChat, Tumbler, WeChat 그리고 Tinder와 같은 photo-sharing platform (소셜네트워크 회사들)과 함께 셀피를 하나의 meme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대대적인 광고를 한다. 그리고 자체 콘텐츠 없이 가입 유저들의 콘텐츠((UCC: User Created Content)만으로도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이들 소셜네트워크 회사들은 끊임없이 셀피를 부추긴다. 더 나아가 파편화된 피상적 이미지로 상징되는 21세기의 후기 자본주의 문화적 행태에 익숙해진 젊은 소비자들은 쉽게 만들고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셀피에 무의식적으로 경도된다. 결국 이 3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유저들이 만든 digital selves들을 판매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창시자인 Facebook의 경우, 2013년 한 해 약 9억 5천만 명이 모발폰을 통해 그 사이트를 접속함으로써 89프로의 수익을 광고를 통해서 올릴 수 있었고 그중 절반은 모발폰에서의 광고였다. Selfie를 통한 소셜네트워크 회사들의 이와 같은 이익 창출은 우리에게 후기 자본주의의 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막시스트 이론가 Guy Debord는 이 현상을 그의 저서 The Society of the Spectacle에서 잘 표현했다. "the commodity has completed its colonization of social life(상품이 사회적 삶의 식민지화를 완성했다)." 자본은 그 속성 상 끊임없이 자신의 이익실현을 위한 상품의 개발과 그 판매를 위한 시장을 찾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셀피의 상품화는 매우 효과적인 저비용 고부가가치 상품인 셈이다.
일단 소셜네트워크 회사들은 셀피라는 상품을 제작하는데 비용이 들지 않는다. 어느 유저도 자신의 셀피를 업로드한 것에 대해 회사에 인보이스를 보내지 않는다. 셀피 제작에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는지에 대해서 소셜네트워크 회사는 관심을 가지지도, 가질 필요도 없고, 심지어 유저들도 그러길 기대하지 않는다. 유저들은 자본가들이 새로운 상품 판매를 위해 설계한 셀피라는 meme 의식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타인으로부터 likes를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할 뿐, 자신의 셀피 판매를 통해 회사가 수익을 얻는 만큼 자신도 일정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스마트폰을 통한 셀피는 유저들로 하여금 자신이 셀피를 생산하는 것인지 아니면 소비하는 것인지, 셀피 제작이 사회활동인지 아님 경제활동인지조차 경계를 지을 수 없게 만든다. 회사 입장에서는 노조도 없고 주 40시간 일일 8시간 근무규정 없이, 24시간 내내 전 세계에서 상품을 생산해 주는 자발적 무임금 레저 노동자를 둔 셈이다.
Love Yourself, Not Yourselfie
많은 심리학자들이 셀피에 대해서 공통적으로 건강한 narcissism 은 우리 자존감(self-esteem)의 향상과 보존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나, 타인의 자신을 향한 시선에 집착할 경우 이는 self-obsession(자기 집착)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연기처럼 금세 사라질 소셜 네트워크 상 자신의 셀피에 대한 likes를 통해서 자신의 자존감을 확인하려는 몸부림은 마약 중독을 연상시키며,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의 손에 맡겨둔 꼴이 된다. 이는 마치 화장한 얼굴만 배우자에게 보여온 여성이 자신의 민낯이 드러날까 봐 계속 화장한 상태로 있어야 하는 악순환과 같은 모양새다.
셀피 이전의 자화상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자신에 대한 고찰 과정이다. 이는 마치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거울을 바라보면서 자신과의 대화를 하는 것과 같다. 셀피의 문제는 자신을 정직하게 반사 투영해 주는 거울을 외면하고 타인의 시선을 거울 대신 택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소셜 네트워크에 피상적이고 즉흥적으로 셀피를 올리고 싶다는 충동 혹은 욕망에서 벗어날 때, 그리고 자화상을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고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 고찰의 수단으로 이용할 때, 우리는 기술발전이 가져다준 붕 뜬 디지털 가상 세계가 아닌 사람끼리 부딪히는 진정한 현실 세계에서 소외되지 않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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