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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머리말
아래 글은 상업화된 기존 장례 산업에 대한 대안으로 친환경적 , 비상업적 그리고 고인과 유족 주도의 장례 문화를 위해 장례 컨설팅 회사를 직접 설립한 장례업계 종사자의 에세이다. 저자 회사의 서비스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지만 그녀의 지적 -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족의 죽음을 맞이할 경우 기존 장례업계의 장례사에게 이후 절차를 일임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시간에 쫓기고 사전 경험의 부재로 유족의 선택 폭이 제한된 상태에서 장례사의 안내에 따라 피동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 에 기본적으로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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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장례 (Greening our goodbyes)
Lynda Hannah
Jane은 2013년에 암으로 죽었다. 그녀의 삶은 다채로왔고 결코 순응적이지 않았으며 도전적이고 생산적이었다. 그녀는 생전 가족, 친구들과 함께 그녀의 장례 계획에 대해 논의했고 그녀의 가족, 친구들은 그녀의 소원대로 장례를 치를 것을 의결했다. 그녀의 죽음이 다가왔을 때 그녀의 요청대로 친구, 가족들은 장례 절차에 대해 자문을 구하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런 행사를 전에 경험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권리, 책임 그리고 가능성에 대해 매우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다. 우리는 집에서 같이 그녀를 씻고 수의를 입힌 후 옮겼다. 시청에서 요구한 절차를 밟았고 그녀의 정신을 반영한 추모식을 마련하여 그녀의 삶을 축하하려는 모든 사람을 초빙했으며 그녀를 Motueka Natural Burial Park에 매장했다. 그녀를 묻은 후 우리는 꽃잎을 뿌리고 노래를 불렀으며 이어 자연수를 그 위에 심었다. 매년 그녀의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그곳에 묻힌 다른 이들의 친구와 가족들이 모여 점심을 같이하면서 공원을 관리했다: 같이 잡초뽑기와 식수를 하면서 고인에 대한 이야기로 추억을 같이 했다. 우리 모두는 그곳에서 재충전하고 서로 연결되었다는 느낌 그리고 공동체 소속감을 느끼곤 한다.
이 장례 절차는 필수적으로 높은 비용과 생태 발자국 그리고 추모객들로 하여금 무기력하고 공허한 분노마저 느끼게 하는 ‘현대’의 전통적 장례(지난 50-100년 동안 장례 산업에서 제공한)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감사하게도 진화하는 우리 사회를 보다 잘 반영하는 다양한 종류의 장례 의식을 갈수록 우리는 보고 있다.
2000년에 나는 뉴질랜드 장례 산업이 사람들의 필요를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하에 연구를 시작했다. 이런 생각은 나의 고향 마을에서 여러 젊은이가 일찍 죽음을 맞이하고 내 10대 딸이 거의 죽을 경험을 했을 때 대부분의 부모처럼 나 역시 준비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자각에서 출발했다. 현 장례 산업의 문제점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가는 장례비인데 대다수 사람은 심지어 비용을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슬픔의 한 가운데에서 이 비용 때문에 매우 잔인한 충격을 받는다. 또 비용에 대해 알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도 종종 비합리적 수준의 불안과 걱정을 가져다준다 (뉴질랜드 장례사 협회에 따르면 평균 장례비용은 8천 불에서 1만 불 사이인데 선택 옵션에 따라 2만 불까지 치솟는다). 죽는 비용이 이처럼 불균형적으로 큰데 반해 죽음은 선택이 아니다.
또 다른 문제로 이런 장례는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존 장례에는 환경에 해로운 많은 관행이 있다: 많은 화학 약품을 사용하는 방부 처리; 대기와 토양으로 퍼지는 접착제와 화학제를 사용하는 MDF로 만들어진 관; 그리고 재생 가능하지 않은 연료의 사용과 이로 인한 다이옥신과 탄소 배출을 야기하는 화장 절차 등. 이런 죽음의 환경 비용을 고려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리고 기존 장례는 사회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 조부모 시절에는 가족들이 가족 구성원의 죽음을 돌봤지만 - 집에서 여동생에 의해 씻긴 후 딸이 수의를 입히고 아들이 판 장지에 동생이 만든 관속에 들어가 묻혔다 - 21세기 들어 이 모든 것들이 장례 산업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 누군가 죽었을 때 장례사를 호출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기술, 자신감 그리고 용기들은 오래 전에 사라졌고 대부분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사람들이 점차 죽은 사람을 돌보는 역할을 장례사에게 위임함으로써 이와 관련 필요한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과 자신감이 사라졌다. 지난 50 - 100년 사이 출산은 의료화 되고, 집 건축은 상업화되었으며 음식 준비도 상품화되었듯 죽음 역시 전문 직업화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문제이지만 가장 큰 우려는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 관련하여 우리의 권리와 책임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은 할 수 있고 무엇은 할 수 없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고 있으며 또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고 있다. 장례 산업은 기술적으로 자신들을 장례 관련 모든 것을 관장하는 권위자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장례 산업을 겪은 이들은 나에게 그들의 경험에 대해서 얘기해주었다. 그들이 장례사에게 장례 관련 선택할 수 있는 옵션에 대해 물어보면 비싼 가격의 제한된 선택 옵션만 주어졌다. 더 나아가 그들 질문에 대한 장례사들의 대답이 항상 정확하거나 - ‘예, 우리는 ‘친환경 관’을 사용합니다’ - 혹은 정직 - ‘암으로 죽은 사람은 ‘반드시’ 방부 처리해야 합니다’ - 한 것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장례사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응답은 그들 비즈니스 이익을 위해 의도된 것처럼 보이며 종종 주관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권위적 환경과 선택 옵션이 추모객에게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은 환경에서 장례사들이 환경 규정을 만들지도 또 그 규정을 집행하지 않는데도 일부 사람들은 장례사에게 정보를 묻는 대신 그들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나는 1990년대 초반 Cumbria 지방에 삼림지대 매장지가 개장되면서 영국에서 시작된 ‘녹색 장례 운동(green funeral movement)’에 대해 들었었다. 난 뉴질랜드가 당시 이 운동을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에 놀랐다; 왜냐하면 종종 우리는 사회적 변혁 관련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이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에는 자연 매장 공원 - 방부처리되지 않은 시신이 땅에 얇게 묻힌 후 그 위에 비석 대신 나무를 심는 매장 공원 - 이 없었다.
현재 장례 회사에 대한 대안이 없다. ‘친환경 관(eco coffins)’도 없다. 장례사를 고용하지 않고 장례를 어떻게 치를 수 있는지에 대해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는 안내 지침 문헌도 거의 없는 상태다. 스스로 장례 절차를 수행하려는 가족들에 대한 지원도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다. 장례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의식도 없다. 그냥 별생각 없이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그냥 계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 선택을 좋아한다. 선택 옵션을 가지고 싶고 무슨 옵션이 있는지 알고 싶고 내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도 알고 싶으며 더 나아가 내 선택 권리가 지지받기를 원하며 마찬가지로 또 다른 사람이 제대로 선택할 권리를 지지한다. 장례를 둘러싼 사람들의 선택이 지구, 나, 내 후손들 그리고 다른 모든 생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나는 뭔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01년에 나는 뉴질랜드 최초의 자연 장례 회사인 Living Legacies를 설립했다. 처음부터 이 회사는 평행하면서도 서로 얽힌 두 개의 미션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우리의 독특한 자연생태계를 보전하고 우리의 자연림과 뉴질랜드의 재 산림화(reafforestation)를 통해 환경 변화를 억제하는 생태학적 미션이다. 둘째는 타인, 우리가 사는 지역 , 지구 공동체 그리고 우리의 소중한 땅에 대한 개인과 집단 책임에 대한 관심을 고양시킴으로써 사람들 자신의 생명과 이 지구 상의 모든 생물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을 향상하는 사회적 미션이다.
Living Legacies는 이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직접적 목표들을 설정했다: 유족, 고인 그리고 지구의 개별적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개인 맞춤형이며 환경 친화적인 장례 서비스의 제공하는 것과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사람들이 준비할 수 있게 도와주고 남아있는 살아 있는 자들에게 치유의 경험을 제공하며 삶을 축복하는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지난 17년간 내가 겪은 흐뭇한 경험의 대부분은 사람들이 이전까지 그들에게 그렇게 넓은 선택의 폭이 있었는지 몰랐었는데 내가 그들에게 어떤 옵션이 가능한지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장례 과정 내내 그들을 성원해주었다는 것에 대해 고맙게 여긴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선택을 제 때 인지하면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지만 그것을 너무 늦게 알게 되면 쉽게 속았다고 느낀다.
사실, 사람들이 선택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장례 측면은 매우 적다. 가령:
- 모든 사람은 죽는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
- 시신은 공중 보건에 위협이 되기 전에 합법적으로 처리가 되어야 한다. (솔직히 시신은 설사 길거리 혹은 집 거실에 부패되도록 방치해도 대부분 경우 공중 보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물론 유쾌하지 않고 당연히 인간 존엄성도 훼손되지만 위험할 가능성은 매우 작다)
- 필요 서류는 관련 정부 기관에 의해 작성, 완성되어야 한다.
- 시신은 항상 존중과 품위를 갖추어 대해야 한다.
- 일반 대중은 시신의 목격으로 불쾌함을 느끼지 않도록 보호되어야 한다.
그 외는 모든 것은 옵션이다: 장례식, 방부 처리, 장례사, 화장, 관, 아스파라거스 롤, 목사, 영구차, 꽃, 찬송가, lamingtons(케이크 일종), 기도, 위스키, 매장,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 ‘Another one bites the dust’, 미사 집전, 비석, 추모, 춤 …. 누가 알겠는가?
지난 17년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상황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사람들의 환경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요구에 부응하여 우리는 이제 이전보다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장례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가 변화함에 따라 이제 뉴질랜드는 전역에 걸쳐 자연 매장 공원이 조성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그들의 삶과 더불어 죽음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다. 관리가 많이 필요한 공동묘지에 묻히는 것은 단순히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는 땅을 차지한다는 것 외에도 관리를 위한 시간, 잔디 깎는 기계에 사용되는 연료 그리고 평생 유지되지 않는 콘크리트처럼 관리에 소중한 자원이 사용되며 이는 모두 납세자의 세금이다. 한때 공동묘지의 땅을 차지하는 매장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른 화장 역시 이제는 자원의 낭비로 간주되고 있다. 그렇다. 화장은 갈수록 고갈되는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를 소비하여 당신 육체의 경이로운 영양분을 공기 중 매연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경제적 이유로 화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순위에도 변화가 있다. 한때 공동체와 가족 내에서 필요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 필수적인 시대에서 장례는 이제 비용과 스타일 면에서 보다 상대적이고 보다 의미를 추구하며 보다 현실적으로 변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사람들은 이제 장례에 쓰이는 돈이 더 이상 고인이 현세에서 얼마나 사랑받았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갈수록 종교적 표현과 전통적 과시 의식이 줄어들고 대신 더 간단하고 창의적이며 개인화된 행사로 변화하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심지어 ‘장례(funeral)’란 용어도 덜 사용되며 대신 ‘작별 (farewell)’, ‘배웅 (send-off)’, ’ 기념식 (memorial ceremony)’, ‘매장 (burial)’ 혹은 ‘인생의 축전 (celebration of life)’ 등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하게 유족들은 이제 그들이 만약 선택한다면 그들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리와 지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이제 안다는 점이다. 유족들은 이제 장례를 성대하게 혹은 간단하게, 공동 행사로 혹은 사적 행사로, 혹은 공식적 혹은 캐주얼 행사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치를 수 있다. 유족들은 적극적으로 모든 장례 과정에 참여할 수도 있고 전문 장례사에 모든 것을 위임할 수도 있다. 유족들은 그들의 결정을 뒷받침할 정확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환경이 그들에게 우선순위라면 유족들은 환경친화적 선택을 할 수 있고 실제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 대부분은 이제 기후 변화, 환경 악화 그리고 우리 행동 간의 연결 고리를 이해하고 있다. 아직도 이 연관성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이들이 있지만 이들은 갈수록 소수가 되어가고 있다.
또 죽음과 관련하여 국가(state)와 종교(church) 간 분리가 목격된다. 죽음의 의례에 대해 종교 기관이 현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공동묘지가 교파 별로 분리되는 때도 있었지만 이제 고인 그리고/혹은 유족이 비종교인이면 더 이사 교회, 모스크 혹은 유대교 회당에서 장례를 치를 이유가 없으며 찬송도 기도도 그리고 다른 종교적 의례도 필요 없게 된다. 장례의 기본 틀이 변했다.
매장과 화장법에는 여전히 다른 종교 그룹에만 한정된 다른 관습을 허락하는 조항이 있다. 이는 유효 기간이 지난 조항이며 21세기인 지금 잠재적 차별 조항이다. 이와 관련 나는 Law Commission의 법률 리뷰에 나의 의견을 개진했다. 예를 들어, 불교 신자는 보건부에 야외에서 장작을 이용해서 화장할 수 있는 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불교 신자가 야외에서 장작을 이용한 화장이 안전과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같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법은 사람들이 특정 장례 의식을 허락받기 위해서는 그들의 종교적 연관성을 증빙해야 한다. 이것은 종교를 국가 법에 귀속시키는 불필요한 규정의 한 예다. 다른 종교, 문화 그리고 인종은 서로 다른 죽음 관련 관습과 요구 사항이 있는데 이것들은 축복받을 대상이다. 한 때 나는 유대교/천주교/불교 신자를 모두 가진 가족이 각 종교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장례식을 창조한 것을 목격하면서 성원한 적이 있다. 어떤 믿음이나 세속주의도 삶과 죽음을 기념하는데 장애가 될 수 없으며 사망 관련 규정(death legislation)은 이제 사회에 무엇이 안전하고 건강한지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뉴질랜드 법률 위원회는 시대에 뒤처진 1964년의 매장과 화장법에 대한 리뷰를 통해 이런 사회 변화에 대응했다. 위원회는 127개의 권장 사항을 정부에 건의했는데 아직 의회에서 입법이 되지 않았지만 그중 다수는 언젠가 입법될 것이다.
이 건의 사항에는 아래 사항들이 포함되어 있다:
- 사망 원인 증명서
- 매장과 화장 -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모든 사람 혹은 그룹은 시골 사유지에 묘지를 만들거나 매장을 할 수 있는 허가를 지방 정부에 신청할 수 있어야 한다.
- 장례사(funeral directors) - 대부분 등록 절차를 커버하며 비용이 투명해야 한다.
- 매장 결정 - 누가 결정을 내리는가? 어떤 환경에서 이 결정이 바뀔 수 있는가?
이 권장 사항들은 잠재적으로 미래에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는 삶의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여 이전에 비해 장례에 대해 덜 교조적이며 보다 개방적이며 창조적인 자세를 취할 것이다. 규칙과 의식에 대한 필요는 우리가 개인적 표현에서 기쁨과 의미를 발견함에 따라 점차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이런 경향은 죽음과 장례를 포함해서 미래 우리 삶의 많은 면에 반영될 것이다. 자연환경에서의 우리 위치에 대한 인지와 책임은 엄격한 전통에 얽매이는 것을 뛰어넘을 것이다. 그리고 유족은 대부분의 인류 역사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 스스로가 가족의 죽음을 맞이하고 대처하는 것이 보다 쉽고 자연스럽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의 관점에서 대할 것이다.
한편 DIY와 그린 장례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다수 국민들로부터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갈수록 많은 장례사들이 이런 추세를 인지하고 있으며 이런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한다 (때로는 포장만 그럴듯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하고, 유언장을 작성하고, 장례 일정을 미리 작성하고, 위임자를 선정하고, 미래 자산과 의도를 보호하기 위해 가족 신탁을 설립하고 가까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원하는 장례에 대해 토론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전보다 더 주도적으로 참여하려 하고 집에서의 장례, 친환경 매장 그리고 사전 계획된 장례식 등은 우리가 죽음에 대해 자주적으로 책임지려는 것을 보여준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자연 장례(natural funeral)는 천연 생산품과 절차를 이용하는데 가령 가족들의 참여, 쉽게 분해되는 관, 방부 처리 금지 그리고 땅 속에 얇게 묻은 후 그 위에 나무를 심는 것들을 포함한다. 장례사가 고용될 필요가 없으며 대신 가족 대표가 시신 처리와 장례식 주관부터 서류 작업과 매장(혹은 화장)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관장한다. 이제 뉴질랜드에는 여러 곳에 자연 매장 공원이 생기고 있다: Motueka, Takaka, Wellington, Otaki, Hamilton, Marlborough, Dunedin, Carterton, New Plymouth, Thames, Nelson 등. 매장과 화장 법이 개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가정 하에 앞으로는 사유지에 매장 공원과 묘지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중요한 변화를 통해 새로운 방식의 이별과 추모 그리고 우리 자신, 타인 그리고 지구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들이 형성될 것이다. 이 같은 죽음에 대한 우리 접근 방식의 진화는 이 세계에서 인류의 진정한 자리를 축복하고 삶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성숙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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