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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머리말
아래 글은 온라인 언론 newsroom에 기고된 글이다. 기고가 Satra Browne은 미국 출신의 의사로 현재 뉴질랜드에서 일을 하고 있다. 외국인으로서 그리고 또 유색 인종으로서 그녀가 경험하고 관찰한 뉴질랜드 사회는 그녀가 뉴질랜드로 이주하기 전에 상상했던 모습과 다르며 미국 사회에 만연한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과 유사 형태의 인종 차별이 뉴질랜드에도 행해지고 있음을 그녀는 지적한다. 인종적으로는 흑인이지만 사회경제적으로 높은 지위의 의사인 그녀 역시 뉴질랜드에서 예외 없이 인종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과 나름 엄격한 인성 테스트를 거쳤다는 뉴질랜드 의사 세계에서도 인종 차별이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음에 놀랐다.
저자가 지적했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에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차별에 대한 경험에 우리도 익숙해지면서 무감각해지는 경향이 있다. 하루하루를 차별적 경험에 고통스럽게 반응하다가는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영위할 수가 없다는 생존적 선택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익숙함이 인종 차별이라는 불균형을 자연스럽고 정당화하는 빌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하는 사회적 악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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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 인종차별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Racism in New Zealand runs deep)
미국 의사 Satra Browns이 뉴질랜드에 일하러 왔을 때 그녀는 인종차별이라는 문화적 짐은 미국에 놓고 올 줄 생각했다. 그녀의 이런 생각은 뉴질랜드 도착과 동시에 착각이었음을 얘기한다.
뉴질랜드에 사는 흑인 미국인으로서 조지 플로이드 죽음 이후 나는 이 곳에서 독특한 위치에 놓여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이 어리석은 또 다른 살인 후 이 상황에 대한 전후 관계와 내면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경찰에 의해 한 흑인 남성이 살해된 것은 새로울 게 전혀 없다. 우리 모두는 노예제와 식민주의의 후유증 속에서 유색 인종이 직면해야 하는 잔혹 행위에 면역된 것처럼 무감각해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 뉴질랜드의 많은 사람보다 미국의 인종 차별에 대해 나는 더 명확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 나는 흑인으로서 내 위치가 끊임없이 상기되었다. 나는 쇼핑 몰에서 쇼핑을 할 때 직원이 뒤에서 쫓아다니거나 슈퍼마켓에서 내 십 대 여동생과 깔깔거릴 때 사람들이 원숭이라고 우리를 부르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 안다. 나는 뒷마당에서 놀고 있을 때 이웃으로부터 검둥(n*gger)이라고 불리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 안다.
뛰어난 학업 성적과 학생회장에도 불구하고 내가 특별 여름 프로그램에 합격했을 때 백인 학생의 아버지는 내 합격에 이의를 제기하며 학교에 내 SAT 성적표를 요구했다. 나는 의대에서 내가 의대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차별 철폐 조처(affirmative action)와 “특별 대우(special treatment)” 때문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
나는 내 피부색 때문에 내 삶에 두려움을 가지기 시작했다. 버지니아 주에서 긴 버스 여행 끝, 한 외진 곳에서 나는 화장실이 절실하게 가고 싶었다. 난 택시를 잡아 탄 뒤 흑인 운전수에게 근처 Bar로 빨리 가 달라고 요청했다 -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불을 밝힌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이라면 거기 가지 않을 겁니다”라고 그는 천천히 신중하게 대답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하지만 인종차별이 무서워서 이런 기본적 요구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게 싫어서 “나는 진짜 가야 해요. 그리고 지금은 2011년이에요…” 나는 갑자기 백미러를 통해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느꼈다. 그의 우울한 얼굴과 음울한 눈동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너는 단지 검둥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라 강간당하거나 죽을 수 있어… 나는 방광을 누르면서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침묵 속에 20분을 더 달려 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건 단지 나에게 국한된 경험이 아니다. 나는 반복적으로 내 의대 클래스의 흑인 남성 학생의 통과의례를 지켜보았다 - 아무 이유 없이 구치소에서 하룻밤 보내기. 지적이고 말 잘하고 말끔히 차려입은 미래의 의사들 -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흑인일 뿐이다. 그들의 범죄?: 의대 캠퍼스에 운전하고 들어오거나 그들이 사는 아파트에 걸어 들어온 것뿐. 체포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다. 다음 날 아침 갑작스러운 석방. 그들은 제2의 에릭 가너, 월터 스코트, 조지 플로이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조용히 차분하게 그리고 아무런 저항의 움직임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수년이 지난 후 나는 일을 위해 이 곳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부족한 의사 자리를 채우기 위함도 있었지만 내 자아 발견의 여정이기도 했다. 이 여정을 통해 미국에서 내 일생을 내내 지배했던 인종차별의 굴레를 벗어던지기를 희망했다. 여기는 자유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 좋아하는 운동 팀의 이름이 All Blacks이지 않는가? 국가는 영어와 더불어 마오리어로 불린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백인 남성들이 나에게 길을 물어보기도 했다. 나는 뉴질랜더들이 주문처럼 반복하는 것을 들었다: “뉴질랜드에는 인종차별이 없다.” 나에게 장밋빛 안경이 주어졌고 나는 그것을 단단히 꼈다.
그러나 멀지 않아 실체가 명확해짐에 따라 나는 안경을 벗었다. 나는 뉴질랜드에서 단지 환자로부터만 아니라 심지어 동료 의사, 아마 농담이었는지 모르지만, 로부터 검둥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병원 안팎에서 나는 지속적으로 조롱을 받는다: ”네 머리는 빗이 들어가질 않아” 혹은 “난 네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 르완다”. 질문도 없다. 단지 일방적 선언뿐.
슬프게도 이런 경솔한 인종차별이 나에게만 한정되지 않는 다. 한 수련생은 나에게 한 시니어 의사가 자신에게 “Eenie, meenie, miney, mo ... catch a n*gger by the toe” - 술래 뽑기 놀이의 rhyme을 흑인 차별하는 것으로 변질시킴 - 를 반복하라고 시켰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녀 역시 갈색 피부를 가졌다. 마오리 동료는 ‘의사’ 명찰이 부착된 유니폼을 입고 있음에도 규칙적으로 자신이 단정한지 물어보았다. 인디언 친구는 비싼 임대료를 냄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주인으로부터 그의 태국 아내가 냄새나는 음식을 조리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이런 일상적 모욕, 경멸 그리고 무시는 미세한 차별(microaggressions)로 불린다. 이런 류의 차별은 차별은 받는 사람에게 현저한 심리적 상처를 줌은 물론 더 중요하게는 구조적 인종 차별 그리고 더 나아가 증오 범죄와 인종 청소가 성장하는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런 인종 차별은 유색 인종의 삶을 위협한다. 제도적 차별은 수입을 감안해도 마오리의 평균 수명을 5 - 7년 정도 단축시킨다. 심지어 잘 사는 마오리도 못 사는 비마오리보다 수명이 짧다.
뉴질랜드에 사는 외국인(denizens)은 내가 미국에서 경험했던 ‘보다 심각한’ 인종 차별에 비해 이 곳의 인종 차별은 덜 심각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음에도 이 곳에서 Black Lives Matters 시위가 신속히 조직된 것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억압된 자들에 대한 연대와 연민은 진정 놀라웠다. 시위를 보면서 명확해진 것은 그들이 단지 연대 차원에서만 시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고통과 괴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시위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뉴질랜드에서 유색 인종의 고통은 오랜 기간 침묵 속에 가려졌다. 우리는 피곤하다. 우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계속 ‘과거를 뛰어넘어라” 혹은 ”언제까지 인종에 대해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 같은 얘기를 들어야 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곪을 대로 곪은 종기가 터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고통은 지나갈 것이다라던가 감각이 무뎌져 들은 것도 못 들은 것처럼 될 거야라는 허위의식 끝에 마침내 상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미국과 뉴질랜드의 경험을 합한 이 고름의 양은 엄청난 것이다.
난 미국의 불타는 도시에서 시위하는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다. 동시에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주류사회 뉴질랜더들이 이 곳에 존재하는 인종 차별에 마침내 눈을 떠 이 문제를 피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나 역시 과거를 뛰어넘고 싶다. 인종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진절머리 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 그 과거는 여전히 살아 있다. 백인 특권은 여전하고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은 우리의 삶을 위협한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어쩔 도리가 없다. 피하지 말고 얘기를 해야 한다. 작가 Zora Neale Hurston (조라 닐 허스턴) - 20세기 초 활약했던 미국 흑인 여성 작가로 가장 유명한 작품 ‘Their Eyes Were Watching God’은 한국에서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 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고통에 대해 당신이 침묵한다면 그들은 당신을 죽이며 당신이 죽음을 즐겼다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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