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뉴질랜드 이야기

출구전략을 위한 떡밥 깔기 그리고 뉴질랜드에서 마스크의 명예 회복?

김 무인 2020. 8. 12. 08:31

** 블로그 찾아주신 분께 안내드립니다.  더 나은 가시성/가독성을 원하는 분은 같은 제목/내용의 '네이버 포스트(링크)' 를 권장합니다.

 

 

머리말

 

오클랜드 록다운 레벨 3조치 발표가 있자 슈퍼마켓이 다시 붐빈다

 

오늘 (8월 12일) 슈퍼마켓 입구에는 이른 아침 7시부터 사람들이 쇼핑을 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어젯밤에 슈퍼마켓 웹사이트는 폭주하는 주문 신청에 작동이 중단되었다고도 한다. 오클랜드에서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감염자 4명이 월요일(8월 10일) 확인되면서 오늘 정오를 기해 발동되어 1차적으로 금요일(8월 14일) 자정까지 지속되는 Level 3 조치 때문이다. 나 역시 혼잡을 피해 미리 간단하게 쇼핑을 할 요량을 나갔다가 줄을 보고 기겁해서 커피만 한 잔 사서 돌아왔다. 커피 사면서 직원과 잠깐 얘기할 시간이 있었는데 그 직원은 캐비닛 안에 있는 푸드를 가리키면서 이거 다 버려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예정된 록다운?

 

뉴질랜드 정부의 이번 대응 방식은 지난 3월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초기 이 블로그의 포스트  ‘세계를 멈추게 한 20페이지짜리 리포트(2)’를 통해 소개한 영국 Imperial College COVID-19 Response Team의 대응 시나리오를 연상케 한다.

 

 

이 리포트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리면 위 그래프의 박스들처럼 - 날짜도 거의 비슷하다 - 록다운 조치를 시행하여 잠잠하게 만든 후 록다운을 해제해 일상적 경제생활을 영위하게 하다가 다시 발발하면 다시 록다운을 시행하는 록다운 시행- 잠잠 - 록다운 해제- 재발-록다운 재시행이라는 사이클을 백신 혹은 상응하는 치료제가 개발될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다. 나름 이 리포트의 처방을 ‘go hard, go early’라는 슬로건 하에 처음부터 도입 시행한 제신다 아던 정권은 지난 102일 동안 지역 감염자가 없었다는 공식 발표가 뒷받침하듯 성공적 대처사례로 손꼽히며 다음 달 총선까지 이 공적을 최대 무기로 별다른 정책 발표 없이도 노동당만으로 과반수를 형성할 수 있을 정도의 압도적 승리를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그러나 국경 봉쇄를 통해 코로나바이러스를 독 안에 든 쥐처럼 몰아놓고 박멸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현 코로나바이러스 정국이 이번 주 초 경로를 알 수 없는 - 매우 중요하다 - 감염자 발견으로 일순간 불확실성의 회오리로 빠져 들어가게 되었다. 오클랜드 시민들은 집에 강제적으로 머물러야 하며 식당은 다시 문을 닫고 준비한 식재료/음식을 폐기해야 하고 소매점은 영업을 포기해야 하며 고용주는 다시 종업원 wage subsidy 규정을 살펴 보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젠 마스크를 의무화한다고?

 

오늘 아침 기사를 보니 보건부는 오클랜드에서 마스크 착용을 법적으로 의무화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 블로그를 이전부터 보아왔던 분들은 알겠지만 나는 뉴질랜드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발발과 대응 초기부터 뉴질랜드 정부의 마스크 활용에 대해 대단히 보수적이고 소극적이며 비창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했었다 (참조: ‘뉴질랜드 한국이 될까? 이탈리아가 될까?’, ‘또 다시 마스크 이야기, 그리고 …’). 이런 뉴질랜드 정부의 마스크 접근 방식 변화가 지난주부터 감지되었다. 지난 6월까지도 마스크가 바이러스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된다는 확실한 증거(convincing evidence)가 없다는 이유로 대중에게 마스크를 권장하지 않던 현 정권이 지난주 목요일 (8월 6일) 보건부 장관 Chris Hipkins의 입을 빌어 뉴질랜드 대중은 Level 2가 되면 마스크 착용을 권장한다고 발표했다. 기자가 지적했듯이 ‘왠 뜬금없는 유턴?’이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장관은 ‘the evidence had changed, and that "we are now in a different situation to where we were previously" (증거가 변했고 “우리는 과거와 다른 상황에 처해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수개월 동안 한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마스크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수많은 서구권 국가들도 대중들에 대한 마스크 착용을 권장 심지어 의무화한 마당에 뉴질랜드만 이 변화된 증거가 8월에서야 전달되었는지 궁금하다. 또 과거와 다른 상황은 무엇인가? 발표날 8월 6일까지 세 달 넘게 지역 감염 사례가 ‘보고 되지’ 않은 청정국 뉴질랜드였는데 무슨 상황이 달라졌다는 말인가? 왜 갑자기 도래하지도 않은 미래의 Level 2 시나리오까지 동원하면서 마스크 착용의 필요성을 역설했을까? 흥미로운 대목은 8월 6일 발표가 있고 불과 4일 뒤인  8월 10일 102일 만에 첫 지역 감염 사례가 보고되었다는 점이다. 정말 우연의 일치일까?



출구전략을 위한 떡밥 깔기?

 

지난 주 목요일 8월 6일에는 보건부 장관이 만약 레벨 2가 되면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발표하더니 Politik의 기사에 의하면 다음 날 8월 7일 금요일에는 ’ 예정에 없던’ ‘국내외 안보조정위원회 (Officials Committee for Domestic and External Security Coordination: ODESC)’ - 정부 산하 위원회로서 안보와 정보 관련 수상에게 전략적 정책에 관한 어드바이스를 한다 - 가 소집되었다. 이 회의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주제가 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같은 날 이번 사태의 실무 책임자 Bloomfield는 뉴질랜드 국민을 대상으로 올바르게 마스크를 착용하는 방법과 일주일에 한 번 마스크를 착용하여 습관 들여야 한다고 계몽 연설을 했다. 그리고 이틀 뒤 일요일 (8월 9일) - 지역 감염자 확인 사례 바로 전날 - 에는 재 확산에 대비하여 뉴질랜드 국민은 준비를 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기에 이른다.    

 

8월 6일부터 8월 10일까지 이어지는 timeline에서 우리는 합리적 의심과 추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당 Gerry Brownlee의 말처럼 이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비하여 ‘떡밥(educated hunch)’을 미리 깔아놓고 국민들의 충격 혹은 분노를 완화시키려 한 것이다. 우리의 의혹 중 하나는 102일 동안 지역 감염 사례가 진짜 없었는지 있었는데도 발표를 하지 않은 것인지 이번 지역 감염 사례도 실제 발견일이 이번 월요일이 아니라 그 전인지와 같은 정권의 도덕성과 관련된 것일 수 있다.

 

허나 이런 정권의 도덕성에 대한 음모론적 의심을 거두어들이더라도 이번 정권은 분명 쇄국정책으로 언제까지 이 코로나바이러스 정국을 이끌어갈 수 없다는 것을 시간이 흐르면서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언제까지 국경을 봉쇄할 수도 없고 또 록다운 시행- 잠잠 - 록다운 해제- 재발-록다운 재시행 방식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3 달이 지난 지금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듯하다. 오클랜드 경우 3일간 레벨 3 록다운이 시행되는데 3월 록다운은 국민들도 이전 유사 경험이 없으니 정부를 지지하며 불편을 감수하고 따라주었지만 두 번째인 지금 똑같이 대중의 지지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더구나 이 록다운이 금요일 자정에 끝난다는 보장이 없는 상태다. 

 

지난 4월 Bloomfield는 뉴질랜드는 미국과 상황이 달라 마스크 착용이 필요없다고 주장했다

 

현 정권은 록다운과 같은 충격요법의 위험성을 분명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선거(9월 19일)가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노동당으로서는 지역 감염 사례 zero의 신화를 선거 날까지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내부적으로 이 억제 상황이 임계점에 다다른 것을 인지한 것처럼 생각된다. 그렇다고 록다운 시행- 잠잠 - 록다운 해제- 재발-록다운 재시행 방식을 되풀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오클랜드 레벨 3 조치도 기간에 관계없이 시민들에게 주는 피로감과 경제적 후유증은 대단할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며 이는 당연히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임은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이 약빨이 떨어진 록다운 처방을 쓰지 않으면서 감염 확산에 대처하기 위한 소프트랜딩 전략이 현 정권에게는 절실했을 것이다. 그 전략의 핵심에는 마스크가 있다.



뉴질랜드에서 마스크의 명예 회복?

 

모든 사람들이 다 알듯이 21세기와 같이 사람과 물자의 국가 간 이동이 빈번하고 필수적인 글로벌 사회에서 국경 봉쇄를 통해서 한 국가의 바이러스를 퇴치하겠다는 전략은 항구적 혹은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한 일시적 시간 벌기 용도일 뿐이다. 뉴질랜드도 그동안 시간을 잘(?) - 신규 감염자가 없었다는 면에서는 ‘잘’ 이지만 향후 대책의 준비라는 측면에서는 의문부호다 - 벌었다. 이제 지속 가능한 대책으로 전환할 때가 된 것이다. 그 전환의 모델은 한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애초부터 국경의 봉쇄라는 일시적 응급조치조차 거부한 채 바이러스와 정면 대결해 온 한국이다. 바이러스를 원천적으로 피하려 하는 대신 우리 옆에 있음을 인정하고 백신 혹은 치료제가 개발되는 그날까지 일상생활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감염을 막는 방식이다. 이 것이 소위 ‘뉴 노멀’이고 한국은 이 뉴 노멀을 나름 확립해가고 있다.

 

뉴질랜드는 이런 뉴 노멀이 없었다. 그저 바이러스와 얼마만큼 멀리 피해야 하는가라는 레벨에 따른 조치만 있었을 뿐이다. 마스크라는 대항 툴 없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일상 경제 활동을 - 비록 100%는 아닐지라도 -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뉴질랜드 정권은  뒤늦게 자각한 듯싶다. 그동안 적극적으로 마스크 사용을 검토하지 않은 것에 대해 상황이 변했느니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었느니 구질구질하게 변명을 해가면서 남사스러운  태도 전환을 합리화하려는 정권이 처량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마스크 착용을 적극 활용하여 록다운 아니면 정상적 생활이라는 이분법적 선택 사고에서 이 정권이 벗어나 주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