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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러셀 쿠츠를 미워하는가?
1995년 첫 우승을 적지에서 거둔 후 1999/2000년 오클랜드 앞바다에서 열린 제30회 아메리카 컵 방어전에서 팀 뉴질랜드는 결선에 올라온 이탈리아 팀 Prada Challenge를 5:0으로 가볍게 셧아웃시키면서 방어했다. 그러자 아메리카 컵 역사에서 새로운 뉴질랜드 왕조가 드디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에 화답하듯이 두 번에 걸친 승리의 주역 중 한 명인 단장 피터 블레이크는 키위들의 ‘애국심(nationalism)’을 연이은 승리의 요인으로 언급했고 다른 한 명인 주장 러셀 쿠츠도 우리(뉴질랜드)는 왕조를 건설할 수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랬던 러셀 쿠츠는 우승 샴페인의 거품이 다 꺼지기도 전인 불과 두 달 후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한 알링기 팀으로의 이적을 발표한다.
이적 발표에 대해 뉴질랜드 대중과 미디어는 충격에 빠지면서 한결같이 그를 돈에 영혼을 판 배신자(traitor)며 용병(mercenary)이라고 칭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키위들이 이처럼 러셀 쿠츠를 증오하다시피 하는 이유는 당연히 배신감을 느껴서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두려움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지난 두 번에 걸친 Team New Zealand 승리의 절대적 지분이 러셀 쿠츠에게 있으며 그가 처음이자 끝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2000년 우승 후 러셀 쿠츠가 이적을 발표하고 주역 중 다른 한 명인 Peter Blake도 사퇴를 발표한 상황에서 남아있는 러셀 쿠츠 후계자 Dean Barker로서는 2003년에 러셀 쿠츠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직감적으로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재앙의 시작, 2003년
러셀 쿠츠의 여기까지 행적은 괘씸했지만, 아직 키위들의 인내심 한계를 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3년 공포의 외인구단 알링기 팀 - 이 팀은 전부 용병으로 구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을 이끌고 오클랜드 앞바다에 나타난 그가 자신이 3년 전에 Team New Zealand 주장으로서 아메리카 컵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그 자리에서 과거 자신이 몸담았던 고향 팀을 3년전 자신이 이탈리아 팀에 했던 것처럼 무자비하게 5:0으로 셧아웃시킨다. 그러면서 마치 ‘내가 빼앗아 온 컵이니까 내가 다시 가져간다’고 말하는 것처럼 아메리카 컵을 스위스로 가져간다. 이후 키위들의 러셀 쿠츠에 대한 인내심은 임계점을 넘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처럼 되어버린다.
2003년 제31회 아메리카 컵 방어전을 앞두고 Team New Zealand의 캠페인의 주제는 Loyal(충성)이었다. 명확히 2000년 조국을 버리고 돈을 찾아 떠난 러셀 쿠츠와 그 일당을 겨냥한 주제다. 아래 비디오는 방어전에서 러셀 쿠츠의 알링기에 완봉패당한 뒤 오클랜드 시민의 격려를 받는 팀 뉴질랜드 승무원들의 모습인데 내내 노래 ‘Loyal’을 들을 수 있다. 노래 Loyal에서 패배를 당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팀에 끝까지 지지를 보내자는 비장감이 내내 흐른다.
더 큰 재앙, 2013년
하지만 러셀 쿠츠의 고향 뉴질랜드에 대한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함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전형적 특성인 초국적 성향이 있는 이 우승청부사는 2003년 스위스 팀 알링기에 우승을 안겨 주곤 그 다음 해 알링기를 떠난다. 러셀 쿠츠가 빠진 것을 알고 내심 좋아했을 뉴질랜드 팀이지만 러셀 쿠츠가 떠난 뒤 줄곧 주장/조타수 역할을 담당한 Dean Barker의 역량 부족일까 아니면 이 없어도 튼튼한 잇몸이 있어서일까 알링기는 러셀 쿠츠와 함께 알링기로 이적했던 팀 뉴질랜드 출신 승무원들로 팀을 꾸려 2007년 제32회 아메리카 컵 결선에서 팀 뉴질랜드를 물리치고 성공적으로 컵을 방어한다.
한편 2007년 팀 뉴질랜드와 알링기가 결선 레이스를 펼친 그 시간에 러셀 쿠츠는 미국 Oracle Team으로부터 CEO이자 주장 스카웃 제의를 받는다. 우승청부사답게 그는 2010년 제33회 아메리카 컵을 이번에도 ‘내가 빼앗아 준 것 다시 내가 가져간다~’로 말하듯이 알링기로부터 빼앗아 자신의 고용주 Larry Ellison에게 건네준다. 이후 2013년 대회에서 러셀 쿠츠는 단장(CEO)의 자격으로 과거 자신의 후배 Dean Barker가 주장/조타수를 맡고 있는 Team New Zealand를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에서 10년 만에 다시 적으로 만나게 된다. 2003년 아메리카 컵을 오클랜드 앞바다에서 ‘배신자’ 러셀 쿠츠에게 빼앗긴 키위들에게 이번의 리턴 매치는 와신상담 벼르고 벼른 복수전이었다.
15전 8선승제 승부에서 팀 뉴질랜드가 7:1로 앞서며 남은 7번의 레이스 중 한 번의 레이스만 이기면 아메리카 컵을 탈환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이 복수극은 멋지게 성공할 것임을 그 누구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도 러셀 쿠츠의 매직 - 물론 러셀 쿠츠만의 노하우가 작용한 것은 아니지만 - 이 발휘된다. 7:1로 지는 상황에서 타임 브레이크 요청을 한 그는 요트의 맞바람 주행 능력을 향상시키는 선체 교정 작업을 한다. 이후 오라클 팀은 믿기지 않은 7연승, 8:7 대역전극을 연출하면서 아메리카 컵을 성공적으로 방어한다. 2003년 오클랜드 앞바다에서 키위들의 가슴에 못을 박은 뒤 다시 한번 못을 박는 순간이다. 이번은 대못이다.
아마 이 2013년을 기억하는 교민분들이 많을 것이다. 남아있는 7번의 레이스 중 한 번만 이기면 되기에 각 학교나 기관 업체 등에서도 아침 중계 시간에 모두 모여 이제나저제나 하루라도 빨리 팀 뉴질랜드가 한 번의 레이스를 이겨주길 정말 간절히 바랐던 시간이었다. 결과적으로 Team New Zealand는 러셀 쿠츠가 2000년 떠난 이후 그가 속했던 다른 팀을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채 그가 아메리카 컵을 떠난 후 2017년에서나 다시 아메리카 컵을 찾을 수 있었을 뿐이다. 팀 뉴질랜드는 러셀 쿠츠가 아메리카 컵에 몸담고 있는 동안 적수가 되지 못했었다.
러셀 쿠츠가 간과한 것
러셀 입장에서는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애국심이 없이 돈을 보고 외국팀으로 떠났다고 욕하는 작자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아니, 그럼 Team New Zealand가 토요타 후원은 돈 보고 받은 것 아녀? 그렇게 애국심 찾을 거면 뉴질랜드 기업으로부터 후원받아야지 왜 이건 뭐라고 안하는겨?’ ‘Michael Schumacher(독일인)가 Ferrari(이탈리아 차)를 타고 F1 독일 대회에서 BMW와 Mercedes(둘 다 독일 차)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고 독일 사람 중 아무도 그를 뭐라 하지 않는데 왜 나한테만 그래?’ 등등.
그의 항변은 일리 있다. 그는 기업이 자본 축적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듯이 자신에게 최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한 것 - 신자유주의의 인간에 대한 기본적 이해이기도 하다 - 말고는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본이 더 높은 이익 실현을 위해 국경을 넘나드는 것이 너무도 당연시되는 신자유주의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그는 더 높은 연봉 그리고 더 나은 커리어 환경을 위해 자국을 떠나 다른 국가로 이동한 것일 뿐이다. 그는 국적을 바꾼 것도 아닌 활동 무대를 옮긴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랄까 인생의 기구함이라고 할까? 그는 뉴질랜드 ‘일개’ 요트 클럽의 요트팀으로부터 다른 나라 요트 클럽의 ‘일개’ 요트팀으로 이전했을 뿐이지만 뉴질랜드의 신자유주의는 이 뉴질랜드의 ‘일개’ 요트팀에게 자기들의 전략적 필요에 의해 ‘국가대표’라는 갑옷을 입힌 것이다. 만약 러셀 쿠츠가 그 재능을 가지고 스위스나 미국에서 태어나 같은 행보를 보였다면 스위스 국민 혹은 미국 국민으로부터 같은 욕을 먹었을까? 결코, 혹은 전혀 라고는 못하겠지만 뉴질랜드 국민으로부터 먹은 욕만큼은 절대 아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에게 아메리카 컵에 참가하는 요트팀은 자국의 요트 클럽에 속해있을 뿐 ‘대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과거 아메리카 컵에서는 미국의 여러 요트 클럽이 한꺼번에 챌린저 대회에 참가하곤 했기 때문에 대표성을 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뉴질랜드만 Team New Zealand의 Mast 위에 ‘뉴질랜드’라는 국가의 무게를 얹힌 것이다. 알링기에서 그리고 오라클 팀에서 그는 항상 ‘유능한 용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계약한 만큼 그리고 기대한 만큼 성적을 안겨다 준 프로페셔널한 신자유주의적 인간의 전형을 보여준 그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그를 뉴질랜드에서 태어나게 했고 신자유주의의 다른 나라와 달리 뉴질랜드에서 자본은 이익 실현을 위한 기본 전략, ‘localization’의 뉴질랜드 버전으로 ‘nationalism’을 준비했다. 인구가 적고 국가(state)의 직접적 개입과 투자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애국심’ 마케팅이 필수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러셀 쿠츠는 이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했었을 수도 아니 설사 이해했었디 하더라도 그의 결정을 번복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아무튼 이렇게 신자유주의라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리며 먹지 않아도 될 - 본인 입장에서는 - 욕을 먹은 것이다.
뉴질랜드 대중은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큰 역사적 흐름 속에서 다국적 혹은 초국적 기업들이 뉴질랜드에 아무 장애 없이 들어와 비즈니스를 해 이익 실현을 하는 것도 또 정부가 내 세금을 팀 뉴질랜드라는 사적 요트팀에 쓰는 것도 ‘뭐 세상이 그러니 어쩌겠어’라며 체념적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러셀 쿠츠가 외국팀을 위해 뛰는 것에 대해서는 잔인할 정도로 태도를 바꾼다. 동쪽에서 뺨 맞고 서쪽에서 화풀이하는 격이라고 할까? 어쩌면 뉴질랜드 대중들의 사회학적 상상력 부재를 탓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교묘하게 서서히 주위를 적셔오는 기업민족주의(corporate nationalism) 혹은 다국적 혹은 외국 기업의 애국심 마케팅에 대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대신 이들이 대중(이라고 쓰고 소비자 집단으로 읽는다) 동원을 위해 설치한 민족주의(애국주의) 덫으로 러셀 쿠츠를 마녀 사냥하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과 러셀 쿠츠는 법인과 개인이란 형식의 차이만 있을 뿐 똑같이 글로벌 자본주의 환경에서 신자유의적 행보를 보이는 이익 실현의 주체(entity)들이다.
맺음말
애초 예정대로라면 내일(3월 6일), 첫 레이스가 시작되었어야 할 제36회 아메리카 컵이었기에 처음부터 개막 전까지 아메리카 컵에 관한 이야기를 시기적절하게 마무리 짓고 싶었다. 그러나 이야기 시리즈 시작하던 당일 오클랜드 지역 록다운 레벨 3가 발표되면서 대회가 연기됨에 따라 마감일 부담은 사라졌지만, 관성적으로 쭉 밀어붙였다.
다른 포스트 주제와 달리 이번 이야기는 마치 쪽 대본을 가지고 그날그날 드라마 찍듯이 지난 7일 매일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니 큰 틀에서 보았을 때 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느낌이 있다. 하지만 이 블로그가 소 논문이 아니라 학습노트 성격이므로 이 정도 수준에서라도 이야기를 마무리진 것에 만족한다. 그렇지 않고 완벽한 기승전결을 노리다 보면 제풀에 지치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잊고 지냈던 아메리카 컵에 대한 새로운 정보 그리고 이해를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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