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뉴질랜드 이야기

2년 만에 우리를 다시 찾아온 'They are Us'

김 무인 2021. 6. 2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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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2019년 블로그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해 6월, 2회에 걸쳐 처음으로 올린 포스트의 소재가 3.15 크라이스트처치 무슬림 집단 학살이었다. 블로그 소개에 나와있듯이 관심사 중 하나가 ethnic relations이기에 이 사건을 둘러싸고 이후 전개되는 정치권의 대응과 여론의 변화가 관심 있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포스트에서도 제신다 아던이 국가적 비극에 직면하여 국민의 단합을 호소하면서 대표적으로 인용한 슬로건 ‘They are Us’의 자기 모순성과 허구성에 대해 비판했었다.

그랬던 ‘They are Us’가 2년이 지난 2021년, 다시 뉴질랜드 사회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영화라는 문화적 양식을 통해서다. 개인적으로 본 적이 없지만, 꽤 알려진 영화, 트루먼 쇼(The Truman Show)의 각본가이자 공동제작자였던 뉴질랜드 영화인 Andrew Niccol이 메가폰을 잡고 두바이에 소재한 영화제작업체 Barajoun Entertainment - 애니메이션 영화 Bilal: A New Breed of Hero를 제작했다 - 를 운영하는 Ayman Jamal이 제작을 맡았다. 미디어에는 벌써 제신다 아던 역할을 할 여배우까지 공표된 상황이다.

제신다 아던의 역할을 할 배우로 내정된 호주 배우 Rose Byrne. Photo / RNZ

 

이 영화 제작을 둘러싸고 뉴질랜드 여론은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반대의 목소리가 현재로선 더 커보이는데 이 찬반을 둘러싼 논쟁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이 ‘They are Us’의 복귀에 대해 찬반 논쟁을 정치평론가 Bryce Edwards가 언제나 그랬듯이 그의 Political Roundup – The case for and against the “They Are Us” film - 에서 잘 정리해 놓았기에 이를 토대로 내 생각을 정리해본다.

반대 입장

2019년 3월, 사건이 터진 후 제신다 아던이 ‘They are Us’ 슬로건을 들고 나왔을 때부터 이 슬로건에 비판적인 무슬림들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이 구호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뉴질랜드 무슬림에 대한 타자화(othering)를 고착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무슬림에 대한 ‘우리(Us)’로의 포용 노력이 사회적 차원에서 전혀 없던 상태에서 사건이 터지자 수습 차원에 들고 온 이 구호는 위선적이고 허구적이라는 것이다. 만 2년이 지난 지금, 이 슬로건을 타이틀로 사건을 영화화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무슬림들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이 2년 전 인식의 연장선에 있다.

무슬림 공동체를 포함해서 이 영화 제작에 반대하는 이들의 이유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나 역시 이전 포스트에서 같은 지적을 했지만, 이 영화의 초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 영화가 사건의 희생자 그리고/혹은 그 사회학적 의미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이 국가적 재앙을 ‘훌륭히 극복한 위대한 지도자 백인 제신다 아던의 친절의 정치 리더십’에 맞추어지리라는 것이다. 두 번 째는 이 사건의 의미를 반추하기에 2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과 직접 연관된 크라이스트처치 무슬림 공동체와의 사전 협의 및 동의 과정이 없었다는 점이다.

백인우월주의(white supremacy)의 또 다른 버전 백인구원주의(white saviorism)

2년 전 테러를 저지른 자는 백인 우월주의자인데 2년 후 이 테러를 소재로 만든 영화는 이 백인 우월주의의 또 다른 형식인 ‘백인 구원주의’를 보여준다고 반대자들은 입을 모은다. 2년 전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Mohamed Moustafa의 말은 이를 바로 보여준다. “Not much has changed in terms of racism and Islamophobia in this country (인종차별과 이슬람혐오 측면에서 이 나라는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이런 류의 영화는 자상한 백인의 온정주의를 강조함으로써 같은 백인이 저지른 죄악의 불편함으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어하는 대다수 파케하들의 심리를 반영한다고 보는 것이다.

Mohamed Moustafa ​

 

무슬림 저널리스트 Mohamed Hassan의 코멘트는 이를 잘 반영한다. “In its essence, it is a story about an act of white supremacy that is centred around white voices, white feelings and white heroism. The irony is nauseating (본질에서 이 영화의 이야기는 백인의 목소리, 백인의 감정 그리고 백인 영웅주의를 둘러싼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것이다. 이 아이러니가 역겹다).” 2년 전 이 블로그 포스트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었던 무슬림 공동체 지도자 중 한 명이자 이번 영화제작 반대 청원자 중 한 명인 Guled Mire도 “At the very worst, the film represents torture porn (최악의 경우 이 영화는 고문 포르노가 될 것이다)”라고 비판한다.

저널리스트 Saziah Bashir도 그녀의 기고문 제목, 'How is it okay for others to profit off our pain?(우리의 고통으로 타인이 이익을 챙기는 것이 어떻게 괜찮은가?)',이 말 해주듯, 이 영화는 착취적(exploitative)이라고 비판했으며 Newstalk ZB’의 Jack Tame도 제신아 아던에 초점을 맞춘 할리웃 영화라고 각을 세웠다. 이외에도 녹색당의 이란 출신 국회의원 Golriz Ghahraman 그리고 크라이스트처치의 현 시장 Lianne Dalziel도 자기 도시에서 촬영이 진행될 이 영화에 대해 반대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렇게 날 선 반대의 여론을 등에 업고 현재 진행 중인 영화 제작 반대 탄원은 이미 서명자가 73,000명을 넘어선 상태다.

청원사이트

 

찬성 입장

하지만 영화 제작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부분적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영화 제작업체는 크라이스트처치 무슬림 공동체와 사전 제작 협의를 한 바 있다. 다만 그들이 전 무슬림 공동체와 접촉해서 동의를 구한 것이 아니라, 그 중 한 단체인 Muslim Association of Canterbury (MAC:캔터베리 무슬림 협회)와 접촉하여 그들의 협조를 이끌어 낸 것이다. 이에 대해 영화 제작 반대 탄원을 주도하고 있는 다른 단체 National Islamic Youth Association (NIYA: 전국이슬람청년협회)은 MAC가 이전 미디어 인터뷰에서 대변인 Abdigani Al가 한 말을 인용하면서 태도변화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한다.

“There needs to be a lot of work done in New Zealand in terms of hate speech laws, recognising islamophobia does exist in our society and the institutional prejudice within our government apparatus before a blockbuster film comes out stating that we’ve done a great job here in New Zealand (뉴질랜드에서 우리가 큰일을 해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기 이전에 뉴질랜드에는 헤이트 스피치법, 우리 사회의 이슬람 혐오 그리고 우리 정부 기구 안에 존재하는 제도적 편견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 의심을 받고 있는 MAC 대변인 Abdigani Al

 

여늬 집단이 다 그렇겠지만, 이 무슬림 공동체에서도 구체적 배경과 내부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입장이 엇갈림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저렇게 미디어에 인터뷰까지 했던 MAC(캔터베리 무슬림 협회)가 입장을 바꾸어 영화 제작에 적극 협조하게 된 과정과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긴 하다.

피해 당사자 그룹인 무슬림 공동체가 이런 상황인 가운데 일부 파케하 논객은 지지 입장을 표명한다. Stuff의 저널리스트 Lana Hart는 전 세계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뉴질랜드 헤럴드의 Roughan은 제신다 아던이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 아니냐는 이유로, 자칭 좌파이지만 인종차별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Chris Trotter는 이 영화를 통한 국민의 단합을 좌파가 반대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이 블로그에서도 가끔 소개된 블로거 Martyn Bradbury는 좀 뜬금없는 다른 이유와 더불어 표현의 자유를 주된 이유로 이 영화 제작을 지지하고 있다.

중간 입장 혹은 다른 시각?

이에 반해 칼럼니스트 Mike Yardley는 양비론적 혹은 초월적 스탠스를 취하면서 영화 제작을 하는 것은 자유이고 그 영화가 싫으면 안 보는 것도 자유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사단(?)의 주인공 제신다 아던은 표정관리 모드에 있는 듯하다. “There are plenty of stories from March 15 that could be told, but I don’t consider mine to be one of them(3.15에 관해 얘기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나 자신이 그 중 하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고 본다.

이런 나를 포함한 대중의 의심 눈길을 The New Zealand Initiative의 경제 선임 연구위원 (chief economist) Dr Eric Crampton이 잘 대변하고 있다. 만약 이 영화가 제작되어 2023년에 방영된다면 이는 ‘선거 광고’로 활용될 것이며, 따라서 특정 정치인에 대한 선거 홍보가 될 영화 제작에 우리 세금이 지원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나의 생각

이 뉴스를 접하고 다른 건 차치하고 이 영화는 당연히 다큐멘터리 형식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상업용 극영화 형식이다. 물론 다큐 영화도 제작자의 의도가 반영되지만, 극영화만큼 절대적 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본다면, 3.15를 소재로 영화를 제작하기에 너무 이르다는 의견도 다큐 영화에서는 다소 수그러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만 2년이 지난 시점에서 2년 전 사건을 우리 사회가 그 이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사건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가, 만약 있었다면, 있는지에 대해 다방면으로 중간 점검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극 영화다. 그것도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용 극영화다.

이 영화 제작자 Ayman Jamal이 본인 입으로 말했지만, 이 사람의 영화 제작 목적 중 하나가 알려지지 않은 자들의 영웅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람의 말을 전적으로 믿으면 이 영화에서 영웅은 제신다 아던이 아니라 그 비극적 사고에서 남을 구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현장의 희생자들이 될 것이고 따라서 그들의 영웅적 스토리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대목에서 그의 영웅 바꿔치기에 ‘아, 내 오해가 풀렸네’라고 안도의 숨을 내 쉴 사람이 몇이나 될까? 왜냐하면, 우리 대부분 - 상처가 이미 아물었으니 더 이상 상처의 원인에 대해 묻지 않기를 바라는 집단을 제외하고 - 은 이 사건에서 영웅을 찾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3.15 피해 유족들은 피해자들이 영웅처럼 묘사되는 - 설사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 영화를 보며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받는 경험을 할까?

더 나아가 무슬림 일부 단체가 영화제작업체에 협조하기로 했다고 하는데, 피해자 측에서 적극 협조적으로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 영화 제작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그 사건은 단순히 나와 관계없는 제3자와 또 다른 3자 간의 교통사고 같은 것이 아니다. 그 사건은 다인종 다문화 해가는 뉴질랜드에 사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그렇기에 제신다 아던이 Us, They 운운하면서 사회적 결속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 제작의 의도와 목적은 결코 피해 무슬림 집단 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백인우월주의의 똑같은 피해 대상이 될 수 있는 소수민족 이민자로서 이 상처를 이런 식으로 쉽게 봉합하는 것은 용납이 안 된다. 이 상처는 영화라는 연고로 쉽게 치유되는 피부 긁힘 정도의 상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영화 제작업자들이 영화를 제작한다면 나 같이 반대하는 사람은 이 포스트를 준비하면서 서명한 청원서처럼 집단적 의사 표시를 통해 사회적 힘을 과시하는 수밖에 없다. 저쪽은 저쪽 나름대로 사회적 힘을 과시해서 종국에는 이 두 사회적 힘이 부딪쳐서 승패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드는 것도 자유고 반대하는 것도 자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류의 상업용 영화에 내 세금이 투여된다는 것은 반대의 정도를 달리 할 수밖에 없다. 내 세금이 3.15를 이런 유의 영웅 만들기 - 그것이 희생자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더라도 - 영화에 소비되는 것은 절대 반대다. 3.15 관련 내 세금이 투입되어도 괜찮은 영화, They are Us, 는 아래 조건 중 하나를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하나는, 제목 They are Us를 고집하고 싶다면 뒤에 물음표를 붙여 ‘They are Us?로 하고 영화 - 다큐가 되어야 할 것이다 - 도 그 사건 이후 무슬림에 대한 뉴질랜드 사회의 포용성이 어느 정도로 향상되었는지, 변함이 없는지 아니면 퇴보했는지를 취재한 내용으로 채워야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제목 다음에 마침표를 붙여 ‘They are Us!’로 하고 They 지시대명사의 지시 대상을 무슬림이 아니라 ‘백인 우월주의자’로 바꿔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백인 혹은 파케하 사이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백인 우월주의가 결코 3.15처럼 우발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백인인 ‘우리(us)’ 사이에서 제도적으로 행해지고 있는지 여부를 신랄하게 들여다보는 내용으로 꾸미길 바란다.

만약 3.15의 영화화를 통해 우리가 앞으로 더 나아가길 기대한다면 위와 같이 인기 없는 ‘지루한’ - 누군가에게는 - 영화가 될지 모르므로 이 영화의 제작 지원에 나의 세금이 투여되는 것에 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