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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머리말
이번 에세이의 저자는 동독 출신 정치인이자 민주사회주의자 그레고어 기지(Gregor Gysi)이다. 독일 재통일이 이루어지던 1990년 전후 민주사회주의당 (PDS:Party of Democratic Socialism)의 지도자였으며 현재도 PDS의 후신인 좌파당(The Left: DIE LINKE)의 유력 정치인으로 활동 중이다.
자유와 민주사회주의(Freedom and Democratic Socialism)
Gregor Gysi

정치인으로서 나는 항상 민주사회주의 사상을 위해 싸워왔다. 그것은 내 당에서도 시행되었다. 물론 당내에는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가 붕괴한 데에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 않는 정통파 의원들이 있었다. 만약 사회주의에 또 다른 기회를 주고 싶었던 이가 있다면 그는 이 문제를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1990년대 초(소련과 동유럽의 연쇄적 몰락 시점: 역자 주), 믿을 수 없는 승리감과 동시에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보다 바람직한 사회 형식이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위로받을 수 없었다. 그들은 저항해야만 했다.

오늘날 상황은 달라 보인다. 10년 동안 우리는 여러 가지 위기를 겪었다. 금융위기는 금융자본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생태적 위기는 우리에게 현대화의 대안적 길을 고려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심하게 손상되었고 국제관계 체계는 완전히 협력 원칙을 벗어나는 위기에 처해 있다. 민주주의는 역시 서구 사회에서 공격을 받고 있다. 내가 빠트린 것이 있는가? 그렇다! 이 모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수비적인 위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사회주의가 대안이다. 내 생각에 그것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작은 정의와 큰 정의
나는 이 글에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데 동반되어야 하는 몇 기본적 사고에 대해 얘기하겠다. 내 글은 별로 논쟁의 여지가 없다: 사회주의 사고의 중심에는 생각의 자유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전제가 정의(justice)에 대한 의미 있는 논의를 가능하게 한다. 정의는 매우 간단한 것이다: 모든 사람은 공평하게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정의(justice)를 달성했다는 주장과 무엇인 공평한 것인지에 대한 정의(definition)는 격렬한 투쟁의 한 가운데 있다. 그리고 이미 - 특히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 - 간단하게 보이는 것들이 매우 복잡한 것으로 변하고 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를 불러내어, 나는 “작은(small)” 그리고 “큰(great)” 정의를 구분하고 싶다.
그의 급진적 희곡 “The Measure Taken (Die Maßnahme) (영어로 Decision으로 번역되기도 했는데 사전적 의미로 좌익의 정치적 메시지를 퍼뜨리기 위해 제작된 문화 학습 극: 역자 주)에서 합창단이 공장 노동자들에게 파업하라고 촉구하며 외친다:
“Come out, Comrade, risk the penny that is not a penny (. . .)
나와라, 동지여. 푼돈도 안되는 푼돈은 접어라(...)
And the job you lose tomorrow (. . .)
그리고 내일 잃게 될 직업 (...)
Help yourself by helping us: practice
우리를 돕는 것이 너 자신을 돕는 것이다: 움직여라
solidarity.”
연대하자.

이것은 브레히트가 다룬 왜곡된 갈등이다: 임금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직접적 이해는 종종 전체의 이익과 모순된다. 손안의 새 한 마리는 숲속의 새 두 마리 가치가 있다. 이 갈등은 ‘더 큰 규모’ - 단지 개인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위한 -에서 환경 개선을 위해 개인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것, 개인이 반드시 씨름해야 할 것 등이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이와 대조적으로 “큰 정의(great justice)”는 사회적 해방 문제를 다룬다. 큰 정의는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참여하며 상식이 결정적이며 진정한 정의인 정치적 공동체에 관한 것이다. 이 “큰” 정의는 여전히 낙관적 가정으로 남아있으므로 미래의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멈출 수 없는 투쟁 관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이미 쟁취하고 발전시킨 “작은” 정의의 성과물들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에른스트 블로흐를 따르면, 인간은 “지체 없이 그리고 삶 대부분을 허송함 없이” - 다른 말로, 즉각 - 나은 세계를 바란다는 반박의 여지없는 진실을 부정하는 어떤 구속력 있는 반론도 칼 맑스에게서 발견하지 못했다. 이것은 우리의 물리적 수명의 한계에 기반을 둔 정당한 바람으로서 지금 당장의 행동과 전략적 행동 간, 그리고 전략적 사고와 유토피아적 사고 간의 관계를 갈등으로 몰고 가는데 이 갈등은 쉬이 해결되지 않는다.
“작은 정의”라는 개념은 우리 사회에 확립된 정의의 규범(norms)으로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으며 또 정확히 그 이유로 우리로 하여금 자본주의를 비판하게 하고 사회정의를 계속 요구하도록 우리 자신을 격려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법을 지지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제국을 전복하는 것만큼 명예로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좌파 급진적 오만함을 가지고 말을 해서도 안 되고 “작은” 정의가 의미한 것들을 비정하게 무시해서도 안 된다. 이것은 인간 본성보다 비정함을 우선시하는 태도다.
정치적으로 좌파인 사람은 누구나 사회주의적 경험과 판타지를 매력적으로 느끼면서 “큰” 정의의 마법에 쉽게 걸린다. 혁명에 대한 비판과 반대 입장에 서지만 항상 근본적 단절을 즉각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현실주의는 대신 민주적 이행 과정들 - 가령, 노동조합주의자, 민권 운동가, 학부형 그룹 등울 위한 - 을 신뢰하는데 그 결과 우리에게 부르주아적 적응 과제를 남긴다. 이것은 용기 있고 헌신적인 시민사회라는 개념에 대한 정의(justice)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잘못된 사고방식이며 현대 좌파 사고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로자 룩셈부르크 이후, 결연한 헌신과 많은 작은 정의들을 위한 싸움도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자본주의 사회의 장애물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작은 평화는 갈망하던 평화는 구축한다. 공평함(fair)은 모두를 - 그러나 나를 위해서도 - 위해서 좋은 것이다. 내일이 아닌 오늘 - 하루 일과가 아침에 시작되는 이유다. 한 번에 한 발짝 한 발짝씩
그리고 해방을 향한 장애물과의 싸움은 일직선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것은 종종 미로와 같다. 아마 당신은 잘못된 길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발견할지 모르고 해방 과정에서 부딪치는 장애물은 당신이 생각한 곳과 다른 곳에 있던가, 때로는 당신 혼자 그곳에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일상생활 속 투쟁의 실질적 우선순위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과거 레닌으로 대표되는 직업적 혁명가들이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할지 안 상태에서 모든 상황을 거침없이 헤쳐나간 역사적 과정을 알고 있다. 우리는 또 안다: 이 과정이 매우 빠르게 일어날 수 있고 또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이 억압자로 변할 수 있으며, 무자비한 권력이 끊임없이 자신을 재생산한다는 것을. 만약 좌파 운동이 경험과 교육을 통해 더 이상 스탈린주의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면 개방된 과정으로서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 - 진정으로 해방된 사회의 등장 - 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평등 규범이 잘 확립된 부르주아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젠더, 사회적, 종교적, 지역 혹은 성적 취향으로 인한 차별에 반대하는 폭넓은 공감대가 있다. 내가 “폭넓은(broad)”이란 표현을 쓴 것은 여전히 성적으로 억압적, 인종차별적 혹은 종교적으로 근본주의적인 사람들이 있어 이 규범을 어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이 심지어 같은 일을 해도 여전히 남성보다 현저하게 적은 수입을 받고 승진의 기회도 적다는 사실은 여전히 위태롭고 심지어 터무니없기조차 하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기본적 정의 제도는 임시직 노동자 혹은 계약직 노동자가 회사의 핵심 인력의 부분이어도 그들 동료보다 덜 번다는 현실에 의해 침해받고 있다. 이것은 동료애를 잔인하게 훼손하면서 집단 교섭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 핵심인력에 압력을 가한다: 우리는 언제든지 너를 대체할 인력이 있으며 그들은 심지어 더 싸!
가장 충격적인 부당함 중 하나는 물질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정의 어린이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교육의 기회가 적다는 것이다. 여기서 “교육 수준(educational levels)”이란 개념은 이런 불평등에 대한 핑계와 합리화일 뿐만 아니라 사회의 낙오자로 하여금 그들의 현 사회적 지위의 책임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그들 자신에게 돌리게 하거나 권력관계의 특정 자연적 조건 때문임을 주장하는 옹호론자들의 수사적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1988년 처음으로 강의를 위해 파리를 가면서 서유럽을 여행하는 것이 허락되었을 때 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 전철을 타고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 전철요금과 박물관 입장료로 내 지갑은 금방 비워졌다: 나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박물관에 가는 것은 동독(GDR)에서는 거의 비용이 들지 않았다. 예술과 문화에 대한 대중의 접근 관련 사회 정치적 차이가 있다는 것이 파리에서 명확해졌다. 동독에서 나를 괴롭힌 것은 검열인데 반해 자본주의에서 나를 괴롭힌 것은 예술과 문화를 접하는데 너무 큰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복지금을 수령하는 싱글 부모의 셋째 자녀도 베토벤 9번 교향곡 연주회에 참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이유 때문에, 베토벤을 좁은 방 안에서 랩톱으로 듣도록 해서는 안 된다.

착취 개념에 대하여
우리가 정의에 대해 얘기할 때 우리는 착취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야 한다. 착취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바로 노예 노동, 강제 매춘, 아동 노동, 극도로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의 생산을 떠올린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에게 분명해 보이며 따라서 착취하는 사람들과 그것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 사이의 최전선도 분명해 보인다. 이런 일들이 아직도 발생하는 세상에서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한 반응은 잊지 않고 나타난다.
하지만, 자본론을 읽다 보면 맑스가 착취(exploitation)라는 개념에서 규범적 의미를 생략한 것처럼 사용한 것에 대해 놀란다. 일반적으로 그는 극히 드물게 도덕적 판단을 한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을 막기 위해 이렇게 말하겠다. 나는 결코 자본가와 지주들을 장밋빛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은 경제 범주의 의인화, 특정 계급 관계 및 이해관계의 전달자(Tréger)로서 여기에서 다루어진다.”
우리는 여기에서 맑스가 전반적으로 말하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어떤 연구, 어떤 판단에서도 단순한 패턴으로 전락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맑스는 그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성찰- 이것은 매우 흥미롭다 -에서 모든 사람이 자유인으로서 행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상품(goods)으로 생산된 그들의 상품을 교환함으로써 법적 구속력이 있는 계약에 참여하는 사회를 상정한다. 계약 당사자들은 법적으로 유효한 계약을 통해 서비스 교환 형태로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킨다. 물론 노동력 외에는 아무것도 제공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고 실제 이 노동력을 구입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계약은 고정 급여 형태(a fixed rate)로 맺어진다. 이 계약은 계약 당사자 누구도 상대편에게 폭력적으로 계약할 것으로 강요하지 않는 등가교환이라는 측면에서 자발적인 것이다. 임금(wage)은 특정 기간 노동 사용과 등가(equivalent)다. 잉여가치(surplus value)를 창출한다는 의미에서 착취는, 맑스를 따르면, 자본가와 노동자를 구체적 계약 관계에 놓는 교환이다. 맑스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잉여가치의 원천이 노동 계급에 대한 자본주의 폭력 행위로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비록 자본주의 역사는 항상 야만성(brutality)의 역사였지만 - 맑스는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 이 직접적 힘이 잉여가치의 원천은 아니다.

따라서, 착취의 개념은 맑스에게 중립적이고 거의 기술적인 의미가 있다: 원자재 공급원은 만약 혜택이 노력을 정당화하면 생산적이 된다 - 그러면 착취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자본가에 의한 인간 노동력의 사용이 자본의 비용을 정당화한다면, 따라서 만약 그 인간 노동력이 사용이 생산적이라면 그것 역시 사용된다 - 즉, 착취된다. 자본가의 잉여 노동력의 전용(appropriation)은 형식적 의미에서만 정당(legitimate)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맑스가 자본론에 썼듯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자본가 입장에서는 “노동 과정(labor process)은 단지 그가 구매한 상품, 노동력,의 소비이며 이 노동력이란 상품의 소비는 그가 생산수단을 투여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노동 과정은 자본가가 구매한 것들 간의 과정이다. 돈의 주인은 자본가로서 일하고 노동력의 주인은 자본가의 노동자로서 자본가를 따라간다. 한 사람은 의미 있는 미소를 지으며 부지런한 반면 다른 사람은 마치 자신의 피부를 시장에 갖다 놓고 이제 가죽 공장 외에는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수줍어하고 주저한다.
등가교환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만약 맑스가 이처럼 무자비하게 착취를 묘사하지 않았고, 그의 분석을 통해서 이 자본주의 최악의 표출(expression)을 도덕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다면, 모든 노예 형태를 뛰어넘는 이 자본주의 시스템이 뭐가 잘못되었단 말인가? 그것은 자본주의 협동 형식(form of cooperation)에 내재한 자유의지(free will)의 결여다: 노동자는 기계의 부속물이고 자본가는 자본의 명령에 따라 지휘권을 행사하는 자다. 노동자들은 협력하지 않는다; 자본이 노동자들을 ‘협력하게’ 만든다: 즉, 자본주의 생산 형태에는 해방된 사회라는 개념이 없다. 자본주의의 “잘못(wrong)”된 부분은 사회적 자기 결정(social self-determination)이 많은 영역을 포함하겠지만 생산 양식은 포함되지 않았거나 되었어도 불충분하다는 점이다. 이 생산 양식은 사회적 자기 결정의 생성에 필수적이라고 묘사되었지만 이제 우리는 그것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안다.
우리는 자본주의 생산 양식이 완벽하게 해방되지 못한 사회의 결과물로 이해할 수 있다. 노동자는 그의 노동력을 항상 다시 팔아야 하는 그 위치에서 나오질 못한다. 직업의 자유는 있지만 자기가 태어날 계급의 선택권은 없다. 이 강요(coercion)는 보통 이런 식으로 경험되지 않는다; 그것은 조용하고 익명의 형태를 띤다. 그것은 협력의 형태로부터 전 사회 구조로 퍼지는 관계의 의무적 형태이다. 따라서, 맑스는 더 많은 해방을 희망했고 보다 자유로운 형식의 사회 조직 가능성을 기대했다. 여기에도 자본주의가 해방에 제약을 두려는 “잘못(wrong)을 저지른다: 필요 노동시간과 잉여 노동시간 간 시간 관계를 초과 근무에 유리하도록 변경(shifting) 함으로써 노동력에 대한 착취를 항상 강화한다.
그리고 폭력에 관해서: 물론 폭력은 존재한다 - ‘구조적으로’. 모든 임금 분쟁과 파업은 맑스가 소위 사회적 파트너들 사이의 특별한 “평등”에 대한 썼던 것을 확인해 준다: “폭력은 동등한 권리 사이에서 결정을 내린다. 따라서 자본주의 생산의 역사에서 노동일(working day)의 표준화는 노동일의 제한을 위한 투쟁을 대표한다. 이 투쟁은 자본가 전체, 즉 자본가 계급, 와 노동자 전체, 즉 노동 계급, 간 투쟁이다. 정상적 노동일의 확립은 자본가 계급과 노동 계급 간 장기간에 걸친 일종의 숨겨진 내전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해방의 장애물(barriers to emancipation)”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정치가 경제적 과정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일지 모른다. 어쩌면 좋은 일인지도 모른다. 국가 사회주의에 대한 경험은 이와 관련 - “내부 반동 혁명(internal counterrevolution)” -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한다. 국가사회주의는 내부 반동 혁명을 제압에 실패하지 않았는데 그들을 실패로 몰고 간 것은 부정적 미래의 경제였다. 더 나아가, 국가 사회주의는 민주적 토대가 부족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에서 장애물은 어디에 있는가?
1990년대에 독일연방공화국에서는 CDU(기독교 민주연합:기민련)과 사회민주당 둘 다 “노동의 비용 요소(cost factor of labour)”가 너무 높다는 견해를 가졌다. 명목상 임금(nominal wage)의 삭감은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인 독일에서 고려할 옵션은 아니었기에 나머지 세 가지 선택이 남았다. 첫 번째는 임금 관리(wage moderation)로 불렀으며 “Labor Alliances(노동 연합)”이 추진했다. 두 번째는 비임금(nonwage) 노동 비용의 인하로 사민당이 추진했다. 구체적으로 이는 사회복지 지급의 감소를 의미했으면 고용주에 대한 국가 부담도 줄어든다. 세 번째 역시 사민당이 추진했는데 저임금 섹터와 불안정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이었다 - 어차피 Hartz 개혁 이후 창출된 고용은 거의 모두가 저임금 일자리였다.

만약 누군가 이 부당한 정책이 어디에서부터 유래했는지, 왜 적절한 노동에 대해 적절한 급여가 지불될 수 없는지, 왜 경제적 혁명이 임금 인상을 수반하지 않는지를 비판적으로 묻는다면 대답은 바로 위치 문제(location question)이다! 나라에서 자본을 유치하려면 반드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대기업과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은 낮다. 자본은 너무 강력하고 국가와 너무 연결되어 있다 - 모든 신자유주의와 반국가 통제 이데올로기에도 불구하고.
집중된 자본의 힘과 민주적 자결권 사상을 추구하는 사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위험한 대립으로 치닫는 모순의 한 쌍이다. 자유시장 전도사들은 신뢰할 수 있는 국교 - 패배자들(사회주의자와 노동자들: 역자 주)은 옛 영광이 재현되기를 기대하면서 반항하지 말고 자신이 가진 작은 소유물을 위해 그저 기도하는 -를 가지고 싶어 한다: 그들은 사회적 약자들의 투쟁의식을 희석하기 위해서 “사회적 민주화(social democratization)”를 휴전 방안으로, 그리고 일시적 진정제로 “사회적 동반자 관계(social partnership)”를 동원한다.
진정한 자유란?
해방의 장애물은 또 다른 차원을 포함한다: 문화. 이제 의심할 여지 없이 부르주아 사회의 것들보다 훨씬 비문화적 조건들이 존재한다. 계몽운동, 가장 부르주아적 문화운동일 수 있는, 은 교육, 대중 그리고 비판 사이 매우 존중받는 분리할 수 없는 연결고리를 구축했다. 따라서 계몽주의는 좌파에게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날 일종의 멍든 문화적 사고를 목도한다. 많은 이들에게 문화와 예술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불명확하다. 문화는 몇 공공 박물관과 도서관을 중심으로 하는 예술 비즈니스(art business)의 단순 보완물이 아니다. 계몽주의 모델을 따르면 나는 문화를 통해 행위(과학, 예술, 지식의 분산)의 필수적 형식들을 포함하는 정신적(geistige) 운동과 그에 상응하는 제도를 이해한다.
근대에, 과학과 예술은 자율적으로 발달한다는 이미지를 발전시켜 왔다. 이 이미지는 역사적으로 기독교와 궁정(courtly)의 감독에게서 벗어난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런 자기 이미지는 또 비판의 빌미를 제공한다. 유감스럽게, 새로운 타율성(heteronomy)은 기독교와 궁정의 타율성으로부터 이 문화적 해방을 감염시켰다. 교육을 훈련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법률가 Andreas Fischer-Lescano는 대학을 금융시장의 “사관학교(cadet school)”라고 불렀다. 전통과 품질(quality)은 제 궤도에 머물러있지만, 이들의 자본주의 착취 과정에 대한 즉각적 적용은 쉽게 구별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미래 직업 세계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예술에 대한 공부는 이 격언의 뒷자리를 차지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정확히 매우 특별한 종류의 냉소주의의 문을 여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모차르트 오페라를 듣는 것이 혁신적인 사고를 촉진하고 젊은이들의 신생기업 설립에 힘을 실어준다는 것이 밝혀지면, 여러분은 모차르트를 들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듣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예술은 최소한 프리드리히 실러 (Friedrich Schiller)에게는 인간의 가장 “고귀한 수단(noblest tools)”으로서 인간으로 하여금 “가장 완벽한 자유의 영역”에서 움직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상상 속에서, 발명 속에서 심장에 의해 형성된 생각은 사회의 평등과 정의의 개념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나는 정의에 대한 어떤 절대적이고 침범할 수 없는 기준이 해당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이 기준들이 확실히 명명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정의는 법과 정치적 참여의 형식적 평등 그 이상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가 모두를 위한 자유의 전제 조건인 자유로운 결사(free association)를 보장하는 맑스와 엥겔스의 유토피아는 매력적이다. 이 생각은 정의의 개념(모두를 위한 자유)이 구체적으로 개인의 자유에 의해 채워진다는 면에서 매력적이다. 정의의 개념은 몇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첫째, '무언가로부터(from sometghing)' 자유(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 장애물을 떠올릴 수 있다); 둘째, '무엇으로서의(as something)' 자유(여기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참여와 사회적 필요를 고려할 수 있지만, 이들에 대한 정의 실현의 방식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개인의 자유로 이는 개인적 '필요의 충족'을 의미하며 정치적 문화적 순간을 포함한다.
이런 상태를 향해 끊임없이 함께 노력하는 것이 모두를 위한 자유일 것이다. 그것은 자유의 ‘발명’은 아니지만, 여전히 완전히 새로운 것일 것이다.
역자 후기
저자가 독일인임에 따라 위 에세이는 독일어로 쓰였고 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을 내가 다시 번역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이중 번역 과정 때문이지, 다른 에세이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이 에세이는 저자 논리와 의식 전개를 일관성을 유지하며 따라가는 것이 힘들었다. 심지어 문맥상 내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문장은 생략하기조차 했다. 군더더기 없는 에세이의 유려함을 지향하기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다소 흐름에서 비껴가더라도 덧붙여 말하고 넘어가는 정치인으로서 대중연설 방식이 이에 한몫하지 않았나 추측한다.
위 번역문의 중간 소제목은 내가 임의로 나의 이해 편의를 위해 삽입했다. 관심을 두고 읽은 부분은 맑스의 착취에 대한 비규범적 접근 방식이다. 착취라는 단어 자체가 비윤리적 뉘앙스를 지니고 있는 현실에 비해 맑스는 임금 노동이 최소한 명목상으로는 자본가와 노동자 간 강요 없는 등가교환 계약이었음을 중립적으로 묘사한다. 저자는 이 임금노동의 매매계약이 미시적으로는 착취라는 비윤리적 단어를 붙일 수 없는 비폭력적 행위임은 인정하지만, 이 노동 매매에 응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생산 양식이 비윤리적임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직접 노동자에게 임금 노동을 강요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구조적으로는 강요한 상황인 셈이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에서 개인은 이렇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임금노동 중 직업 선택이란 자유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생산양식을 바꾸어서 진정한 의미에서 선택의 대상이 ‘있는’ 상황에서 자기 일을 고를 수 있는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처럼 자본주의의 장애물을 벗어나 새로운 자유는 복지 수당을 받는 싱글맘의 셋째 자녀도 유튜브가 아닌 음악회 현장에서 베토벤 9번 교향곡을 들으면서 가장 완벽한 자유의 세계를 음미하게 하는 것이 사회주의 사회의 자유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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