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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말
개인적으로 이번 에세이를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편저자의 서론 빼고 지금까지 10편의 에세이를 읽고 번역했는데 대부분 나에게 새로운 가르침과 시각을 제공해주었기에 감사하게 읽었지만 그중에는 큰 흥미를 갖지 못한 에세이도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반면 이번 에세이는 내가 그런 게 있었지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아나키즘(anarchism) 그 자체와 막시즘과의 연결고리를 간결하고 명확하게 요약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아나키즘이 왜 민주사회주의 담론에서 빠질 수 없는지를 알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이 에세이의 제목을 접하고 민주사회주의 담론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이 책에 왜 뜬금없이(?) 아나키즘 소개 에세이가 끼워져 있을까 생각했을 정도로 나는 아나키즘에 무지했다. 이 무지 덕분에 나는 이전 에세이들에서 등장한 아나키즘 용어는 아무 망설임없이 무정부주의로 번역했었다. 무정부주의라고 번역하는데 아무런 저항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은 아나키즘 = ‘국가(state)의 현실적 필요성을 부정하는 공상적 이상 이론’이라는 등식으로 아나키즘을 이해했었기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 내가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아나키즘의 이론을 한국어 버전 위키피디아를 출발점으로 둘러보는 순간, “뭐지 이건? 지금까지 번역했던 이 책의 에세이 저자들이 한결같이 주장했던 이론이 다 여기 있었잖아?”라는 탄식성이 나왔다. 특히 바쿠닌이 1873년에 쓴 ‘Statism and Anarchy(국가주의와 아나키)’를 읽다 보면 20세기 구현될 사회주의 형식인 국가주의(statism) - 소련 -의 등장을 50년 전에 이미 자리를 깐 것처럼 너무나 정확히 예언한 것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의 국가주의의 폐해에 대한 통찰은 21세기 민주사회주의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긴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령,
“한번 되물어보자. 프롤레타리아가 지배 계급이 된다면, 그들은 누구를 지배하게 되는가? 간단히 말해서, 이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지배에 굴복해야 하는 또 다른 프롤레타리아가 남아있어야 하는 것이다......”
“ ‘프롤레타리아가 통치계급이 된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인가? …. 막시즘 이론에서 인민에 의해 선출된 소수 대리자들이 인민의 정부를 꾸리는 것이다…. 이 소수가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렇겠지만, 그들은 ‘전(前) 노동자’일 뿐이다. 그들이 대표자나 통치자가 되는 순간 더는 노동자가 아니게 되며, 국가 권력의 가장 높은 곳에서 노동자들을 내려다보게 될 것이다. 결국, 그들은 더는 노동자를 대변하지 않게 될 것이고, 단지 민중을 지배하고자 하는 그들 자신의 욕구만을 대변하게 될 것이다. “
“공화국에서는 자신이 민중의 의지라고 주장하는 국가가 합법적인 방법으로 진짜 민중을 계속해서 억압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몽둥이로 맞고 있을 때, 그 몽둥이가 “민중의 지팡이”라고 불린다고 해서 행복해하진 않을 것이다’.”
19세기 맑스에서 출발했지만 20세기 국가사회주의(혹은 국가자본주의) 형식으로 현실 인류에게 데뷔한 혁명적 막시즘은 이후, 특히 소련과 동구권 붕괴 이후, 그 사상에서 국가주의(statism) 냄새를 빼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야 했다. 민주사회주의 역시 막시즘의 인본주의적(humanistic)이고 민주적(democratic) 본질을 21세기에는 빠트리지 않고 구현하겠다는 좌파의 몸부림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 Kevin B. Anderson은 현재 캘리포니아 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에서 사회학과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의 아내 Janet Afary도 같은 대학에서 역사, 종교학 그리고 여성학을 가르치는 캠퍼스 커플이다.
막시즘, 아나키즘 그리고 민주주의(Marxism, Anarchism, and Democracy)
Kevin B. Anderson
사회주의 민주주의(socialist democracy)는 지난 1세기 반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해왔다. 개혁주의적(reformist)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는 종종 “민주적 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로 불리며, 세계 많은 곳에서 투표를 통해 집권 혹은 연정파트너가 될 만큼 대중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런 조직들은 또 1차 대전 이전의 독일사회민주당(German Social Democrats)부터 최근 그리스 시리자(Syriza)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료화, 보수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 챕터에서 나는 더 좌파적인 두 전통을 다룰 예정이므로 개혁주의적 사회민주주의는 많이 다루지 않을 것이다: (1) 혁명적 반국가주의 막시즘(revolutionary anti-statist Marxism) 그리고 (2) 아나키즘. 이 두 전통 모두 민주적 목적과 민주적 유산을 옹호한다고 주장한다. 이전 세대들은 이 두 전통을 서로 정반대되는 것으로 보았다. 예를 들어,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막시스트는 사회주의의 관료적 그리고 개혁주의적 형태에 반대하여 밑으로부터의 대중 노동계급 민주주의를 옹호하였지만 아나키즘에 대해서는 늘 반대했었다. 그러나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 이후, 당시 지도자였던 다니엘 콩-방디트(Daniel Cohn-Bendit)의 활동에서 볼 수 있듯이 “아나르코 막시즘(anarcho-Marxism)”이란 용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아나키즘은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때로 자율주의적 막시즘(autonomous Marxism)과 같은 막시즘 조류와 공존하면서 1960년대보다 훨씬 더 강하게 성장했다.
이같은 아나키즘과 혁명적 막시즘의 동일시 경향에 반대하여 나는 이 챕터에서 혁명적이고 반국가주의적 막시즘과 아나키즘을 구분 짓는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 차이점들은 비록 그것들이 스탈린주의와 마오주의(Maoism)와 같은 권위주의적 비교하여 덜 두드러진다 하더라고 아나키스트 전통 안에 있는 민주적 결함들 때문이다. 아나키즘 내 민주적 결함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미하일 바쿠닌(Mikhail Bakunin)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노동 계급과 다른 피억압 그룹에 속한 다수의 경험을 지워버리는 일종의 계급 환원주의(class reductionism)를 선호하면서 억압과 저항의 에스닉 그리고 인종적 형식들에 대한 무감각의 역사이다.
두 번째 차이는 많은 아나키스트가 진정한 대중 혁명 운동의 주체를 초 급진적 그룹인 자신들로 대체하려는 일종의 혁명적 주관성(revolutionary subjectivity)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아나키즘, 최소한 아나키즘의 다양한 변종, 과 혁명적 반국가주의적 막시즘 간 차이는 민주적이고 혁명적인 사상가와 활동가들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명확히 하는데 도움을 주므로 이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맑스와 바쿠닌 시대부터 지금까지, 오랜 상호 반대의 헝클어진 역사에도 혁명적 막시즘과 아나키즘은 1968년 프랑스 혁명과 2011년 Occupy 운동 등에서 보는 것처럼 많은 공통점도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직접 경험한 것은 2016-17년 겨울에 로스앤젤레스 평화혁명사회정의연합(Los Angeles Coalition for Peace, Revolution, and Social Justice (CPRSJ))에 좌파 사회주의자들, 맑스-휴머니스트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이 함께 반전 운동의 다른 형태 모임에 참가한 사례였다. 우리는 시리아 혁명을 지지하고 미국의 전쟁과 제국주의에 반대하며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또 다른 제국주의 세력인 러시아의 개입을 반대했다. 우리는 또 주변 지역 예멘의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의 이란 그리고 팔레스타인 영토의 이스라엘과 같은 작은 제국주의 세력들의 살인적 개입에도 반대하고 싶었다. 이 에세이는 또 2107년 오렌지 카운티 아나키스트 북페어 워크숍에서 만난 Javier Sethness와 Alexander Reid Ross의 대화도 참조하고 있다.
공통점(COMMONALITIES)
막시즘과 아나키즘의 공통점은 이들 용어가 생기기 이전 맑스와 바쿠닌이 활동했던 제1인터내셔널(1864-1875)로 거슬러 올라간다. 후세 사람들은 이들 간 차이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두 혁명가와 그들의 정치적 지적 후계자들은 몇 중요한 점에 대해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다.
이들의 공통점 중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민주적이고 해방된 사회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가(state)를 “부숴야(smash)”한다는 생각이다. 사실, “국가를 부숴라(smash the state)”는 맑스의 표현이다. 이 반국가주의는 맑스의 초기 저작과 활동 때부터 나타났지만, 국가 형태가 분명 아니라는 이유로 맑스와 바쿠닌 모두 열렬히 지지했던 1871년 파리 코뮌 이후 더 뚜렷해졌다. 이들의 관점은 당시 영국의 개혁주의적 노조 지도자들 혹은 독일의 국가 사회민주주의자인 페르디난트 라살(Ferdinand Rassale)(우리에게 잘 알려진 용어, 야경국가(night-watchman state)의 창시자이기도 하다:역자 주)과 같은 인터내셔널의 다른 조류와 배치되었다. 이런 종류의 반국가주의는 오늘날 좌파에게 일정 부분 공감을 얻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챠베스주의자들(Chavista) 혹은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자들처럼 매우 다른 두 중앙집권 국가가 사회주의를 가져오거나 가져오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시각을 약화시키고 있다.
맑스와 바쿠닌 간 두 번째 공통점은 법적으로 공개적 활동이 가능한 곳에서마저 혁명 운동을 위한 조직의 엘리트주의, 계층주의 그리고 비밀스러운 형태에 대한 반대다. 맑스는 운동의 내부 민주주의 그리고 대중의 민주적 혁명운동 건설 모두를 억제하는 두가지 톱다운 접근방식으로부터 탈피하는 전통을 세웠다. 그 중 하나는 프랑스 혁명 이후 “인민(people)”의 대의를 위에서 진전시키기 위해 덕망있는 혁명가들이 행하는 철권독재를 지지했던 자코뱅주의(Jacobinism)였다. 그러나 자코뱅파(Jacobins)는 경제 영역에서 자본가 지배의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오히려 그 기반 형성에 도움을 주었다. 또 다른 전통은 더 급진 좌파로서 국가의 무력 장악을 위해 소수의 혁명적 노동자를 준비했던 블랑키스트(혁명가로서 파리 코뮌의 상징적 인물인 루이 오귀스트 블랑키를 추종하는 그룹: 역자 주)였다. 이들은 자본주의에 반대했지만, 자코뱅파와 유사하게 그들이 노동계급 대중을 대신하려고 노력했다.
이 두 사조와 달리 맑스와 바쿠닌은 자신들의 이론을 출판해 준 조직들을 지지했으며 영국이나 스위스처럼 이 조직들의 정치적 활동이 가능한 곳에서는 자신들의 이론과 목적을 논의하기 위한 공개적 대중 미팅을 개최하였다. 이것은 비밀스럽고 위계적 혁명 중심지를 만들기보다는 보다 큰 내부 민주주의를 의미하기도 했다. 물론, 비밀은 러시아 제국과 같은 절대 왕정국가 안에서 활동하는 혁명가들에게는 필요하였다. 그러나 자코뱅주의와 블랑키즘과의 결별은, 최소한 이후의 막시스트들 혹은 많은 아나키스트들에는, 전부가 아니었다는 점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맑스와 바쿠닌이 의견의 일치를 본 세 번째 이슈는 반자본주의였다. 둘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폐기를 진정한 민주주의 혹은 인간 해방의 전제 조건으로 보았다. 이 부분에서 바쿠닌은 그의 공산당 선언의 첫 러시아판 번역 작업 혹은 자본론에 대한 그의 열렬한 찬양에서 보는 것처럼 맑스의 자본주의 비판을 거듭 인정했다. 그러나 바쿠닌과 그의 후계자들은 맑스의 자본에 대한 비판을 더 연장하거나 심화시키려고는 하지 않았다.
네 번째 공통된 인식은 해방된 사회는 전적으로 계급 없는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의한 자치(self-rule)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1871년의 파리 코뮌은 이 둘 모두에게 모델과 같은 것이었다. 혁명은 그들 생각에 노동 계급과 농민들이 산업계의 거물들 혹은 토지 소유 귀족들의 자리를 차지하는 자리바꿈이 아니었다. 대신 혁명은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계급사회의 전체 구조를 타파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때로 사회적 계급을 철폐하길 원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위계적이고 착취적인 자본 관계를 내재화하고 구체화하는 개인들을 바라는 오늘날 우익 자유의지론자들(libertarians)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차이점들( DIFFERENCES)
맑스와 바쿠닌 간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처음부터 민족과 에스닉 운동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맑스와 바쿠닌 간 첫 번째 공적 논쟁은 파리 코뮌으로 그들이 다시 재결합하기 직전인 1869-70년에 벌어졌다. 맑스와 대륙 유럽의 다른 혁명가들의 촉구로 제1인터내셔널은 영국 식민 국가와 그 대표들에 대한 무장 공격으로 교수형에 처할 상황에 놓인 페니언 형제단(Fenian Brotherhood) 소속 아일랜드 혁명가들에 대한 관대한 법적 처분을 강력히 지지했다. 이 입장의 일환으로 런던의 제1인터내셔널 총회는 영국 노조 지도자들과 맑스 같은 대륙 출신 정치적 망명자들이 포함된 저명한 지도자들의 서명이 들어간 공공탄원서를 빅토리아 여왕에게 제출하였다. 바쿠닌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공개적으로 이런 입장에 반대했다: 아일랜드 혁명가 문제는 명백히 노동계급의 이슈가 아니고 또 전복해야 할 대상인 국가에 호소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맑스는 바쿠닌이 민족(그리고 에스닉) 억압과 계급 억압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해 아일랜드 민족해방 운동의 폭넓은 민주적이고 혁명적 핵심을 놓쳤다고 대응했다.
두 번째로 잘 알려진 차이점은 무신론과 재산상속권과 관련된 것인데 이들은 혁명주체로서 농민에 대한 맑스와 바쿠닌의 관점과 연결되어있다. 바쿠닌을 지지하는 아나키스트들은 이탈리아와 스페인과 같은 농경 국가의 가장 가난한 농민층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이들 가난한 농민층과 토지가 없는 농촌 노동자들은 바쿠닌의 무신론과 상속제 폐지를 지지했다. 그러나 맑스는 이 둘 모두를 반대했다. 바쿠닌처럼 개인적으로는 무신론자였던 맑스였지만 그는 무신론을 결코 정책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는데, 무신론이 대중 계급의 상당 부분, 특히 종교적 정서가 강한 농촌 지역에서,을 소외시킬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막시즘 내에서 공격적 무신론은 레닌과 1917년 러시아 혁명을 통해 정책으로 이후 등장했다.
상속 관련, 맑스(그리고 이후 레닌)는 만약 상속이 상류계급을 넘어 확대 적용된다면 상속제 폐지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맑스에게 소규모 자작농 - 이들의 숫자는 종종 가난한 농민과 땅 없는 농촌 노동자들보다 많았다 - 은 노동계급의 잠재적 동맹 세력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들 소규모 자작농이 그들의 토지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없게 된다면 그들은 사회주의자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전반적으로, 상속제 폐지에 대한 반대는 농촌 대중 계급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보다 포괄적이고 민주적인 틀을 제공해주었는데, 특히 농민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러시아와 같은 국가들에게 중요했다.
세 번째 논쟁은 아일랜드를 놓고 맑스와 바쿠닌 사이에 벌어진 1869-70년의 논쟁의 배경이 된 아나키스트들의 정치로부터의 기권(abstention) 정책이었다. 개혁주의적 막시스트 뿐만 아니라 혁명적 막시스트들도 맑스가 아일랜드 이슈에 대응한 방식처럼 쟁점이 되는 이슈에 대해서는 때때로 정치 운동에 참여하곤 했다. 이들 막시스트는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사회의 선거 정치에도 참여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나키스트들은 심지어 20세기 초반 아르헨티나,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대규모 아나르코-생디칼리슴(anarcho-syndicalist)(산별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자 조합을 통해 경제와 사회시스템을 변혁하려는 아나키즘의 이론:역자 주)에 의한 노조를 결성할 수 있었을 때조차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당시 아나키스트들에게는 프랑스 개혁주의 사회주의자들이 리버럴들과 별 차이가 없는 정책을 도입하는 경향을 보였을 때 이미 선거 정치의 문제점을 보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레닌, 룩셈부르크 그리고 트로츠키와 같은 혁명적 막시스트들은 이 개혁주의를 비판했지만 1차 대전 이전까지 완전 결별은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서 유럽의 막시즘이 개혁주의와 현 상태의 수용이란 엄청난 퇴보를 하고 있었을 때 아나르코-생디칼리즘은 자신들의 혁명적이고 급진적 민주적 정치를 계속 밀고 나아갔다. 이 상황은 1914년 1차 대전이 발발하고 막시스트 제2인터내셔널의 다수 거대 정당들이 공개적으로 그들의 군국주의 정부를 편들고 따라서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에 굴복하게 되면서 극적으로 조명되었다.
그러나 혁명적 막시스트들이 제2인터내셔널과 결별하고, 또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면서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혁명적 막시즘으로 넘어갔는데 빅 빌 헤이우드(Big Bill Haywood)(미국의 생디칼리스트 노동운동가로서 소련으로 도피해서 그곳에서 사망한다:역자 주)와 빅토르 세르주(Victor Serge)(벨기에 출신 저술가이자 혁명가로서 아나키스트로서 아나키즘의 이론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지 멕시코에서 망명자로 죽을 때까지 탐구했다: 역자 주)와 같은 인물이 스탈린주의 이전의 제3인터내셔널을 고수한 것에서 볼 수 있다.
막시스트와 아나키스트 간 네 번째 차이점은 자주적 관리(autogestion), 노동자 자체 경영(worker self-management) 혹은 직장 민주주의(democracy at work)라고 불리는 영역에서 발생한다. 프루동(Proudhon)의 영향을 받은 많은 아나키스트들은 노동자들에 의해 소유되고 통제되는 협동조합의 형성을 옹호해왔다. 최근 이런 모델의 주요 사례는 스페인의 몬드라곤(Mondragon) 혹은 프랑스의 LIP 시계 공장이다.
<LIP 시계 공장 노동자들의 회합 현장>
국가주의 막시스트들은 이런 실험들에 반대하는 경향이 있지만, 더 많은 좌파 막시스트들이 때때로 이 실험들을 수용했는데, 이런 전통은 1860년대 영국의 노동자 협동조합에 대한 제1인터내셔널의 지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혁명적 막시스트들은 이런 실험들은 광범위한 증식에도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근본적이고 혁명적 변혁 없이는 새로운 사회를 창조할 수 없다는 것을 아나키스트보다 더 강조하는 쪽이었다. 왜냐하면, 노동자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가치 생산과 세계 시장의 지배 아래 운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이런 비판을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경향은 아나키스들이 노동 계급의 해방 문제를 기저에 깔린 자본주의 근간과 그 가치 생산의 구조에 대한 충분한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노동자들에 대한 상사(bosses)의 권위주의적 지배의 종식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입장의 예는 비록 아나키스트 자체는 아니었지만, 프랑스 단체 Socialisme ou Barbarie(영어 “Socialism or Barbarism”의 프랑스어로 이차 대전 후 설립되어 1967년까지 존재했던 사회주의 그룹:역자 주)가 1960년대에 현대사회는 관리자와 피관리자로 나누어져 있다는 개념을 강조한 방식이다. 이것은 자본관계와 이 자본관계의 총체적 전복에 대한 진지한 인식을 가로 막았다.
다섯 번째 차이점은 혁명적 막시스트들이 보기에 아나키스들은 혁명 과정에서 주관적 면을 과도하게 강조한다. 혁명적 막시스트들이 혁명 과정의 주관적 면에 대한 과도한 강조라고 생각하는 영역에 존재한다. 확실히 아나키스트가 옹호했던 1968년 프랑스의 상황주의적(Situationist) 유명한 슬로건 - Be Realistic, Demand the Impossible (현실적이되 불가능을 꿈꾸라) - 은 점진적 개혁의 편협함에 대비되는 사회를 향한 진정으로 혁명적 태도의 한 예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슬로건과 그에 따른 실천들이 강하고 순수한 혁명 의지만으로 충분하다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그것들은 전투적 소수가 대중 운동을 장악하려는 블랑키스트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비근한 예는 2011년 Occupy Oakland에서 “반란주의(insurrectionist)” 아나키스트들의 극좌 행동들이 민주적 의사결정을 저해한 사건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아나키즘은 너무 자주 극단적 주관주의에 빠지는데 이는 맑스의 유명한 격언 -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지만, 이는 단순히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때로는 수 세기에 걸쳐 계급과 다른 지배 구조가 형성된 상황 안에서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 과 배치되는 것이다. 아나키즘뿐만 아니라 마오주의(Maoism) 같은 막시스트 한 조류도 자발적 주관주의로 빠지는 경향이 있었다. 마오쩌뚱은 이 주관주의를 그의 유명한 슬로건 “Dare to Struggle, Dare to Win (투쟁하면 승리한다)”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혁명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자발주의를 피함과 동시에 실제 위기로 이어지는 경제적 조건이 성숙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결정론적이고 운명론적 객관주의 둘 다 피하는 것이다.
혁명적 막시즘과 아나키즘 간 여섯 번째 논쟁은 중앙집권화 대 지방분권화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혁명 정치의 틀 안에 머물면서 어떻게 개혁을 위해 투쟁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추상적 원칙으로서 지방분권화를 옹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종종 교조적으로(dogmatically) 빠진다. 혁명적 막시스트들도 국가의 중앙집권화로 조직된 사회주의 형태의 반대에 아나키스트들과 원칙적으로 입장을 같이한다. 그러나 많은 특정 상황 - 가령, 최저임금 혹은 민권법 - 에서 혁명적 막시스트들은 국가의 규제력을 공산주의를 향한 추진력의 일환으로서가 아니라, 공산주의를 위한 투쟁을 진전시키기 위한 즉각적 수단으로 지지한다. 예를 들어, 맑스 자신도 자본론에서 하루 최대 노동시간을 10시간으로 제한하는 법 시행에 영국과 프랑스 정부가 충분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불평했다.
오늘날, 일부 아나키스트들은 우리의 권리를 지켜야 하는 국가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민권법은 공동체 대중 동원만으로 시행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혁명적 막시스트들은 억압받는 그룹의 삶과 노동 조건을 개선(일시적일지라도)하는 구체적 개혁을 위한 투쟁은 최소한 단기적으로 국가의 행동을 동원하는 것을 때때로 피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이에 따라, 미국의 많은 혁명적 막시스트들은 학교 내 인종차별 폐지 혹은 1960년대의 민권과 투표권법의 시행을 위해 1957년에 Little Rock, Arkansas(대법원 판결에 따라 백인 전용 학교에 처음으로 흑인 학생이 등교하는 것을 주지사가 주 방위군을 동원해 막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주 방위군을 연방군으로 편입시키며 이들 흑인 학생의 등교를 보호한 사건: 역자 주)에 연방군을 파견하는 것을 지지했다. 여기에서 아나키스트 대안은 가장 반동적 세력의 일부가 지역 권력 구조, 특히 남부 주, 에서 발견되는 미국 인종 자본주의의 특정 사회적 형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추상적 정치로 빠지는 위험을 보여준다.
또 아나키스트의 대안은 설사 운동의 초기 단계에서 국가의 행동을 찬성하더라고 대중의 자기동원이 더욱 포괄적이고 혁명적 요구와 행동으로 진화할 수 있는 범위를 최소화한다. 오늘날 이런 종류의 이슈는 바로 그 남부 주의 흑인들 투표권이 훼손당하면서 다시 표면화되고 있다. 따라서 혁명적 막시스트들은 수 십 년간 흑인 투표를 금지했던 이들 남부 주의 선거를 감독할 권한을 연방정부가 가진 것을 명시한 투표권법 1965(the Voting Right Act of 1965)의 시행을 요구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혁명적 순수주의(purism)는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
오늘날(TODAY)
이 모든 것이 오늘날 무엇을 의미할까? 민주적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 혁명가들, 둘 다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트를 포함, 은 함께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어떻게?
우선, 오늘날 우리는 네오파시스트 그리고 이와 유사한 정권과 운동 그리고 이들이 받고 있는 기이한 형태의 지지의 전 세계적 부활이라는 전적으로 새로운 현실과 직면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끔찍하게도 민주주의에 대해서 관심이 거의 없는 일부 국가사회주의자들은 러시아의 푸틴, 시리아의 아사드 혹은 필리핀의 두테르테 같은 정권을 용인하거나 심지어 옹호하기조차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파시스트의 심리(mentality)가 1945년 히틀러와 그의 정권과 함께 죽지 않았듯이, 스탈린주의 심리 역시 1991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죽지 않았다.
이것의 첫 번째 징조는 1990년대 초반 보스니아 전쟁 기간 목격되었는데, 이 당시 사회주의 좌파 진영의 상당수가 세르비아의 네오파시스트 밀로셰비치(Milošević) 정권을 지지하거나 중립을 지키면서 오히려 보스니아인들을 돕기 위한 서구의 개입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때, 아나키스트와 일부 혁명적 막시스트들은 좌파 내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민족주의자뿐만 아니라 파시즘과 무슬림 근본주의에 반대하는 사람으로 포장한 밀로셰비치를 확고히 비난하였는데 이는 1940년대 히틀러와 맞서 싸운 좌파 빨치산(partisan)의 전통을 물려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밀로셰비치를 지지한 프랑스 국민전선(French National Front)과 같은 네오파시스트 그룹과 서구 좌파의 목소리가 함께 하는 기인한 형태의 적갈색동맹(red-brown alliance)이 형성되었다.
이런 태도는 1998-99년의 코소보 봉기와 전쟁 기간 반복되었으며 친 아사드 좌파에서 잘 드러나듯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프랑스 국민전선과 미국 녹색당 같은 좌파 세력에서 시리아 아사드 정권에 대한 기이한 친화감을 발견할 것이다. 이 적갈색 동맹의 발흥은 이에 반대하고 시리아 혁명과 시리아 쿠르드족과 같은 진보적 대중 세력의 지지를 호소하는 아나키스트와 혁명적 막시스트를 단결시켰다. 이 모든 것들이 좌파 내 친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 요소에 반대하는 아나키스트와 혁명적 막시스트의 공동투쟁의 새로운 기반을 만들었다.
아나키스트와 혁명적 막시스트 간 이 새로운 친밀감이 등장하는 동시에 이들 사이의 차이점도 다시 드러나고 있다. 새롭고 공격적인 제국주의 위협에 직면한 베네수엘라 혹은 쿠바 같은 정권에 대해 많은 아나키스트들은 반권위주의라는 기치 아래 이들 정권의 전복을 요구해 왔다. 2018-19년 이들은 미국의 개입에 반대도 했지만, 베네수엘라에서 정권에 반대하는 대중 집회를 지지했다. 한편 이들 정권에 비판적이기는 하지만 혁명적 막시스트들은 미국과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이들에 대한 공격의 반대에 방점을 찍는다.
첫째, 혁명적 막시스트들은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우소나루의 브라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남미 내 우파 블록의 전면적 부상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이들 우파 정권이 비록 자생적이긴 하지만 미 제국주의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해왔다. 아울러, 베네수엘라 야당의 극우파 성향과 노예 시절 이후 가장 반동적인 미국 행정부로부터 대규모의 공개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둘째, 혁명적 막시스트들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차베스 정권이 비록 국가주의 방식이긴 해도 어느 정도 민주적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넘어서려 했다는 것을 강조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2019년 말 현재도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부는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 부패 그리고 권위주의에도 우파 야당, 미국 그리고 그 동맹 세력이 집권할 경우 겪을 억압과 수탈을 두려워하는 노동계급의 극빈층으로부터 일정 지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혁명적 막시스트들은 남미의 일부 국가들 그리고 그 국가의 다수 국민이 쿠바나 베네수엘라를 미 제국주의에 저항해온 작은 나라로서 계속 지지하고 있는 민족적 요소를 지적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전 아일랜드의 봉기를 둘러싼 맑스와 바쿠닌 간의 균열이 다시 전면에 떠오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막시스트와 아나키스들의 이런 대화와 연대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주는가? 아나키스트와 원칙적 혁명적 막시스트 간 많은 생산적 공통 영역은 현시점에서 매우 관련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전통 모두 자본과 국가에 반대하며 지배의 모든 형식이 소멸한 진정한 계급 없는 사회를 추구한다. 현재 상황에서 두 전통은 적갈색 동맹 그리고 좌파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다른 이데올로기 형식에 대해 모두 반대한다. 이 모든 것이 혁명적 반국가주의 막시즘과 아나키즘에 깊숙이 자리 잡은 민주주의 성격을 말해준다.
동시에 혁명적 막시스트와 아나키스트 간 주요 차이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자신을 막시스트-휴머니스트(Marxist-Humanist)로 정의하는 저자인 내가 보기에 아나키스트의 추상적 보편(abstract universals) 추구 경향이 이 둘 간 차이의 핵심이다. 자유, 해방 혹은 공산주의처럼 보편 역시 단지 옹호되고 결코 배신 되어서는 안될 원칙으로서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정치적 단계에 대한 변증법적 고려를 통해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헤겔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모든 소가 검게 보이는 밤과 같은 관점 혹은 덜 우아하지만 더 간결하게 말하자면 인간 해방에 대한 일률적이고 진부한 접근 방식을 피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접근은 우리가 민주적 혁명과 자본주의의 초월을 위해 투쟁할 때 우리의 비전을 왜곡시킨다.
역자 후기
소개말에 간략히 소개한 바쿠닌의 국가 그리고 더 나아가 지배 통치 시스템 대한 부정적 통찰은 여전히 부르주아 사회와 자본주의 국가 안에서 살고 있으며 세계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로 둘러싸인 현 상황에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이들의 투쟁 과정에 현실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관심의 뒤편으로 미루어둘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민주사회주의는 단순히 ‘혁명 전략과 전술’이 아니라 ‘통치(governance)의 전략이자 전술’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비록 자본주의 국가이기는 하지만 서구 리버럴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다가올 민주사회주의 사회 역시 어떻게 노동자 그리고 대중이 가장 효율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최종 의사 결정 과정에 반영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아나키스트들에게 현실적 대안 제시 없이 구시렁구시렁거린다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딴죽을 거는 듯한 비판과 불만족을 겸허하게 듣고 수용할 부분은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나키즘 자체는 21세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추구해야 할 완전체 이론은 아닐지라도 그들의 비판 칼날은 결코 피해 갈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전에 나의 고민을 담아 관료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21세기 사회주의 담론에서 20세기 국가사회주의는 두말할 여지 없이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 낙인 찍혔다. 하지만 최소한 당분간 경제적으로 글로벌 자본주의 세계에 편입되어야 하고 정치적으로는 국가사회(혹은 자본)주의 국가- 가령 중국 - 와 서구자본주의 국가의 위협 속에서 버텨야 하는 사회주의 혁명 혹은 정권 교체에 성공한 국가는 대외적으로 강력한 방어 시스템으로서 중앙집권적 국가를 구축해야 하는 한편 내부적으로 지방분권적 민주주의를 동시에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 예상된다. 여기에 체제를 떠나 관료제라는 고질병을 어떻게 예방할 것이냐는 과제가 함께 주어진다.
1844년 바쿠닌은 맑스와 만난 후 이렇게 말했다.
“배움에 관한 한 맑스는 여전히 나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앞서있다. 나는 정치 경제학에 대해선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으며, 아직까지 형이상학적 관점을 완전히 치워버리지 못했다… 그는 나에게 감상적인 이상주의자라고 불렀는데 아마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나는 그를 자만심이 많고 믿을 수 없으며, 교활한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이 또한 맞을 것이다.”
나처럼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이라는 공통된 이상을 추구하는 누가 나의 아픈 곳을, 설사 건방지고 빈정거리는 태도로 찔렀다 하더라고 그의 말이 맞을 수 있다는 겸허함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에세이 마지막 독후감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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