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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사회주의의 은행 시스템은 어떤 모습일까? - 민주사회주의 이해하기 (19)

김 무인 2021. 9. 1.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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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머리말

궁극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화폐가 사라진다는 것이 기존 내 인식인데, 저자가 이런 나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는 있는 듯 에세이는 ‘일견, 사회주의자들이 왜 금융 조직에 관심을 가지는지 이해가 잘 안 갈 수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10페이지 에세이에서 사회주의 사회의 금융 제도 전모를 볼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없듯이, 이 에세이에서 저자는 그중 사회주의 사회에서 은행의 존속 여부 그리고 그 역할 및 기능에 집중한다. 인상적인 것은 완벽한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금융의 역할과 기능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여기서는 미국)에서 사회주의로의 점진적 이행을 위한 ‘수단’으로서 사회주의적 금융 제도 그리고 그 현실화에 그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의 이런 입장은 21세기 사회주의 운동에서 ‘혁명성’과 ‘계급성’을 빠뜨렸다는 비판도 받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현시점에서 그 정도 비판까지 멀리 나갈 능력도 의지도 없기에 그의 이 짧은 에세이를 통해 보다 공정한 사회를 위해 우리가 은행이란 기관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은 것에 만족한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고 사회주의적 제도와 삶의 방식을 직접 실천해보지 않은 사람은 세상이 하루아침에 바뀌어 ‘자, 오늘부터 사회주의 사회입니다. 그러니 사회주의적으로 행복하게 사세요~!’해도 그렇게 못 산다. 왜냐하면, 그렇게 사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 배우지도 경험해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개혁을 지향하건 혁명을 지향하건 지금 현실에서 사회주의적 그리고 민주주의적 활동 참여 - 가령, 노조 활동, 사회 운동 혹은 최소한 투표 참여 -를 통해 그 참여 활동이 변화, 크건 작건 상관없이,를 이끌어내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우리 - 나를 포함해서 -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에세이에서 우리는 뭔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프레드 블록(Fred L. Block)은 2011년 한국을 방문해서 경희대에서 ‘지구적 근대성, 그 위기의 기원’ 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한 바 있는 미국 정치경제학 사회학자로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에 적을 두고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양자택일 식 사고로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어려우며 현실적으로 자본주의 내에서 개혁을 통해 전진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와 금융 민주화 (Socialism and the Democratization of Finance)

Fred Block

 

일견, 사회주의자들이 왜 금융 조직에 관심을 가지는지 이해가 잘 안 갈 수 있다. 왜냐하면, 은행과 다른 금융기관들은 자본주의의 가장 혐오스러운 특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증가하는 금융 섹터 비중은 지난 40년에 걸친 급격한 소득과 부의 불평등 증가의 주 요인이었다. 더 나아가, 금융기관들은 파괴적인 방법으로 부자들의 권력을 집중시켰다. 2008~9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에는 거대 은행들이 책임이 컸지만, 어떤 은행도 그리고 그 은행을 운영했던 그 누구도 이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대신, 그 은행들은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노동자들과 실업자들이 그 어려움을 대신 떠맡는 긴축정책을 시행하도록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

사실, 19세기와 20세기 대부분 사회주의자는 은행 시스템과 금융기관들은 사회주의로의 이행과정에서 폐지되어야 할 순전히 자본주의적 제도라고 생각했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금융은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위한 투자 결정이 계획 체제로 대체될 것이며 계획자들은 노동자에게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활동에 자본을 배분하게 될 것이다.

 

소련의 국영은행, Godbank

21세기, 사회주의자들이 금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다. 20세기의 경험이 우리에게 남긴 두 가지 교훈 때문이다. 첫 번째 교훈은 소련(1917~1991)과 동유럽 그리고 아시아 지역 국가 사회주의의 경험이다. 이들 사회는 고도로 훈련된 기술관료 집단이 사회에 중요한 모든 투자 결정을 내리는 중앙 계획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측면에서 모두 문제점을 드러냈다. 사람들의 필요와 기술이 수시로 변하는 상황에서 소수의 계획자가 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정치적 측면에서, 권력이 이 계획자들에게 집중되는 것은 인민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 결정은 자신이 내린다는 사회주의 사회의 비전에 반하는 것이다. 사실, 이들 사회에서 계획자들을 포함한 공산당 엘리트는 새로운 지배 계급이 되었다.

두 번째 교훈은, 선진 세계의 소비자 사회에서 많은 사람은 주택과 다른 큰 규모의 구매에 대한 자금 조달과 안정적 가계 소득을 위해 신용 제도를 이용했던 경험이 있다. 물론, 이 신용 제도는 여성과 소수 인종을 차별함으로써 기존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신용 제도를 이용했던 사람들에게 일정한 수입과 큰 구매를 위한 신용 이용은 시간이 지나면서 가계 운영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사회주의는 훨씬 더 평등한 임금 체계 그리고 의료와 고등교육에 대한 대중의 무료 접근을 제공해야겠지만, 사람들은 그럼에도 현실 소득으로는 당장 지불할 수 없는 필요(needs)를 여전히 가질 것이다. 따라서 가까운 미래에는 모든 가구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비차별적 신용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이 두 교훈은 소기업과 직원이 주인인 협동조합에 특히 중요하다. 소련 모델에서는 소규모 기업들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었다; 소규모 기업들은 자본주의로의 회귀 위험 그리고 계획 개념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중앙 계획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버리면, 사회주의 사회에서 소규모 기업을 장려할 강한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사업과 협동조합을 시작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고용을 찾고, 그들 공동체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그리고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를 개발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들 기업은 직원, 고객 그리고 환경 관련 이슈들을 관리하는 규제 시스템 내에서 운영되어야 하며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지면 조직 구조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향식 기업 프로젝트는 신용에 대한 접근, 더 나아가 사회주의 금융 시스템을 창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구조적 경제적 불평등, 위험하고 불안정한 투기 활동 그리고 소수 엘리트로의 권력 집중과 같은 자본주의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사회주의 금융 시스템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할까? 이 질문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임박한 것처럼 보이는 이때, 나중으로 미루기엔 너무 중요하다. 더 나아가, 사회주의 금융 시스템을 구상해 놓으면 우리는 이 제도들의 구축을 시작할 수 있고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가속하는 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 금융에 대한 구상 (ENVISIONING SOCIALIST FINANCE)

이 책이 보여주듯, 사회주의 사회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한다. 막시스트 전통에서 사회주의의 핵심은 사유재산 제도의 종식이며 기업이 어떻게 조직되고 관리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가로부터 서로 다른 의견이 제시되었다. 나의 사회주의에 대한 관점은 칼 폴라니(Karl Polanyi)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사회주의를 “의식적으로 민주적 사회에 종속시킴으로써 자율 규제 시장을 뛰어넘으려는 산업문명에 내재한 경향”이라고 정의했다. 이 개념화에 기반을 두어 사회주의는 사람들에게 어떤 임금이 지급될지, 소득은 어떻게 분배될지, 어떤 종류의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지 그리고 어떤 기술이 사용되고 어떤 기술은 피해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을 포함해서 어떻게 경제가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을 포함한 견고한 대중 민주주의의 확장을 의미할 것이다. 이 비전은 기존 의회 제도를 훨씬 뛰어넘는 새로운 인민 민주주의 제도의 창설이 있어야 한다.

 

이런 사회주의 개념하에 대기업을 조직하는 여러 가능한 방법이 있다. 국가 소유일 수도, 종업원 소유일 수도 아니면 일부 개인 소유를 포함한 복합적 지배 구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기업들이 파괴적 활동에 관여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을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자 소유 기업은 노동자 자신의 수익을 증가시키기 위해 안전하지 않은 제품을 판매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소유 구조와 관계없이 이 기업들이 공해를 배출하거나, 불안전 혹은 불필요한 상품을 판매하거나, 종업원이나 공급자 혹은 지역 공동체를 착취하여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지 않도록 민주적으로 이를 통제하는 기관이 필요할 것이다.

민주화된 금융 시스템이 이 규제 기구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 금융은 가장 수익성 높은 기업들에게 최상의 자본 조달 기회를 제공하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된다. 국가와 비영리 금융기관 모두 사회의 가장 긴급한 부분을 다루는 기업에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자본을 배분할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일부 지역에서 저렴한 주택의 공급이 불충분했다면 이 지역에 주택 공급을 하는 기업들은 우선으로 자본에 접근할 것이다. 동시에, 오직 고소득 소비자들이나 구입 가능한 사치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신용 대출이 필요할 때 훨씬 더 높은 금리에 직면할 것이다.

이 새로운 금융 시스템은 소규모 비즈니스와 협동조합 기업에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적용될 것이다. 이 기업들이 양질의 보육이나 노인 돌봄과 같은 중요한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킨다면 이들 역시 유리한 금리를 적용받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고급 고객을 위한 새로운 레스토랑은 훨씬 더 높은 금리를 적용받을 것이다. 특히 환경피해를 복구하는 것과 같은 중요한 일을 하는 기업은 국가 보조금과 더불어 저금리 혜택을 누릴 것이다.

가계 대출은 다소 다른 기준이 적용될 것이다. 대부분 경우, 카테고리별로 표준 금리가 적용될 것이다. 성인들에게 고등교육과 고급 기술교육을 무료로 제공하는 사회에서도, 일부 가구는 교육이나 훈련에 집중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줄였을 때 발생하는 소득 손실을 상쇄하기 위해 대출을 받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이런 종류의 자기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1% 혹은 2%의 금리로 대출이 가능할 것이며, 반면 주택 개선을 위한 대출 금리는 4% 혹은 5%가 될 수 있는데 이는 사회 차원에서 이 대출의 혜택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금융 시스템은 사회주의 미래에서도 자본의 희소성 덕분에 여전히 게이트키퍼 역할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력, 기계류 그리고 원자재 총공급의 한계 때문에 모든 유망한 인프라 프로젝트들이 동시에 자금 조달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제약으로 대규모 주택 개량 프로젝트도 제한될 것이다. 따라서 신용을 제공하는 기관은 사회에 대한 가치와 대출을 신청한 기업 혹은 가구의 특성을 모두 고려하여 대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출기관은 또 프로젝트의 시간적 민감성에 따라 대출 우선순위를 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프로젝트는 즉각 녹색불이 켜지지만, 어떤 프로젝트들은 12개월 혹은 24개월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기관이 신용도를 평가하고 자본을 배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의사결정 규칙은 현재의 규칙과는 다를 것이다. 현재는 이미 충분한 자원이 있는 사람들이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받을 가능성이 큰데, 이들이 대출 상환을 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민주화된 금융 시스템에서의 결정은 프로젝트의 가치와 성공적으로 완료될 가능성에 기반을 두고 내려질 것이다. 더 나아가, 역사적으로 소외된 그룹의 대출 신청은 특별 고려가 될 것이다.

사회주의 금융을 조직하는 방법 (HOW TO ORGANIZE SOCIALIST FINANCE)

어떤 활동에 대출되고 어떤 활동에 안되는지를 결정하는 권력은 대단한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금융 시스템 구상에서 도전은, 자신의 지위를 자신의 권력과 특권 강화에 사용할 수 있는 엘리트 그룹에 이 권력이 집중될 기회를 줄이는 제도적 설계를 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도래가 일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권력을 행사하려는 욕구의 제거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부패와 권력 장악의 위험을 제거할 제도적 구조는 가능하지 않지만, 일부 제도는 다른 제도들보다 엘리트로부터 좀 더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

분권화는 명백히 엘리트 권력을 견제하는 한 메커니즘이다. 예를 들어, 만약 모든 대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하나의 중앙 집중 공공은행만 존재한다면, 그 은행의 최고 경영자들은 그들의 권력을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진 어떤 민주적 감독 메커니즘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캐피털을 취급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하지만 분권화는 엘리트 권력에 대항하는 데 필요하지만 충분한 보호책은 아니다. 설사, 모든 결정을 내리는 10개의 지역 공립 은행이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이 지역 은행의 경영진은 막대한 결정권을 가진다. 따라서 분권화와 더불어 서로 다른 금융 업무를 여러 기관으로 나누는 것도 타당성이 있다. 이렇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금융 업무의 특화가 조직이 특정 영역에서 전문성을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것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계와 소규모 비즈니스 전담 대출 기관,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 전담 기관 그리고 대기업 전담 기관 등이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금융시장에서의 일정 수준 경쟁은 한 기관에 대출 거절을 당한 개인 혹은 그룹이 다른 기관을 통해 대출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할 것이다. 대출 여부 심사 기준은 주관적 측면이 존속할 것이므로, 경쟁기관의 존재는 대출 신청자를 특정 대출기관의 편견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 중 하나다.

물론, 이 경쟁의 파괴적 형태를 갖지 못하도록 규제 구조가 작동해야 할 것이다. 위험성이 높은 대출 혹은 환경적으로 사회적으로 파괴적인 대출에 의존하려는 기업들은 제약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경쟁은 이들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새로운 대출 상품을 개발하거나 이전에 소홀히 했던 대출 수요에 대응함으로써 혁신을 이끌 수 있다.

가계와 소기업에 금융을 지원하는 기관은 1인 1표를 행사하는 조합원으로 구성된 신용조합(credit union)으로 조직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금융기관의 최고 경영진이 내린 결정을 뒤집어엎을 수 있는 기회를 조합원이 가지기 때문에, 민주적 보호막에 또 다른 층을 추가할 것이다. 더 나아가, 만약 공동체 구성원들이 그들의 필요가 기존 기관들에 의해 충족되지 못한다고 느끼면, 그들은 새로운 신용조합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충분한 규모가 되는 그룹은 새로운 신용조합을 출범하기 위한 공공 투자 자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저소득 지역사회를 위해 초기 공공투자를 받을 수 있는 문턱이 낮아질 것이다.

 

오클랜드 Papatoetoe에 있는 신용조합 Aotearoa Credit Union(ACU)

그러나 인프라와 대기업을 상대로 하는 금융기관을 협동조합으로 조직하는 것은 맞지 않다. 이 경우 부를 탈취할 수 있는 엘리트 그룹을 만들어 낼 뿐이다. 대신, 이런 기관은 선출 기관으로부터 운영의 자율성을 가진 공공 기관으로 조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조직들도 궁극적으로는 국가 혹은 다양한 정부 기관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가장 근본적으로, 이 모든 금융기관은 비영리 기반으로 운영될 것이다. 근무 직원들에 대한 급여와 복리후생은 감독기관이 정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따라서 매우 성공적 금융기관도 최고 경영자들을 부유하게 하거나 고급 주택과 같은 “장부에 기록되지 않은” 혜택을 이들에게 제공할 수 없다. 정부기관이 소유하는 금융기관들은 이익을 정부기관에 환원할 것이다. 그러나 수백 혹은 수천 명의 개인 멤버가 소유주인 조합은 이익을 조합원들에게 균등하게 배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금융기관들이 대출의 양과 우선순위를 정할 때 그들은 중앙정부와 지방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경제에서 수요와 공급 간 최선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는 실험이 필요할 것이다. 최적 수준의 고용과 생산 능력을 창출하기 위해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을 병행할 여지가 계속 남을 것이다. 중앙 정부는 공공지출을 늘리고 비영리 금융기관의 신용 창출 속도를 높임으로써 경제활동을 가속할 수 있다. 큰 차이는 긴축과 균형 예산을 요구하는 강력한 기관들이 더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금융과 자본주의 잠식 (FINANCE AND ERODING CAPITALISM)

최근 유명을 달리한 막시스트 사회학자 에릭 올린 라이트(Erik Olin Wright)는 21세기 반자본주의자들은 네 가지 별개의 전략을 조합해서 자본주의를 점진적으로 잠식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책 ‘21세기를 살아가는 반자본주의자를 위한 안내서 (How to Be an Anti-Capitalist in the 21st Century)를 참조하라) 잠식 전략은 사회주의 운동은 a) 규제와 재분배를 통한 자본주의 길들이기; b) 직원 소유 협동조합과 같은 대체 제도를 구축함으로써 자본주의에서 벗어나기; c) 임금 인상과 근로 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으로 자본주의에 저항하기; d) 자본가의 힘을 약화하는 구조적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자본주의 해체하기를 동시에 시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라이트는 이런 접근이 기존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대체할 사회주의 대안을 건설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에릭 올린 라이트(Erik Olin Wright) (1947~2019)

민주적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프로젝트는 이 전략적 관점에 완벽히 부합한다. 현재, 미국 소비자 은행(consumer bank) 예금의 90%가 시중 상업은행(commercial banks)에 보관되어 있으며, 그 대부분도 Citibank나 Bank of America에 속해 있으며 10%의 예금은 1인 1표 그리고 비영리로 운영되는 신용조합이 보유하고 있다. 만약 신용조합이 반대로 90%를 그리고 시중 상업은행들이 10%를 보유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보라.

첫 번째로, 거대 시중 상업은행들은 그들의 재정적 정치적 영향력을 크게 잃을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의회 로비스트들에게 자금을 댈 수 없고 동조하는 정치인의 선거 자금으로 수백만 달러를 퍼부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금융 투기자들 그리고 생존 가능한 기업을 매입한 후 파괴적인 비용 절감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쥐어짜는 사업모델을 가진 약탈적 사모펀드들(private equity firms)에 대한 저비용 대출을 대폭 줄여야 할 것이다.

이에 반해, 공동체 기반의 신용조합은 수조 달러를 보유하게 되면서 그들은 이 자금을 저렴한 주택 프로젝트 그리고 사람들이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대체할 수 있는 매력적 지역 경제 개발 계획에 사용할 것이다. 이렇게 지역 사회가 새로운 직업과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한 대안 전략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지방 정부들이 대기업에 뇌물을 주어가면서 자기 도시에 사무실이나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시대는 끝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그들의 돈을 나쁜 은행으로부터 지역공동체 지향 금융 기관으로 옮기는 결정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 결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 급진적 변화의 비전을 가진 사회운동은 지역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 활동을 조직하고 동원해야 한다. 이 사회운동은 지역 기반의 상향식 경제 개발 프로젝트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참여시켜야 하며, 의회로 하여금 대규모 정부 대출 프로그램을 통해 기존 신용 조합에 활력을 불어넣고, 많은 새로운 신용 조합을 만드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라이트가 주장하듯이 이런 노력은 자본주의 기관의 힘을 현저히 잠식하고 사회주의로의 진전 가능성을 창출할 것이다.

이 전략은 초기 사회개혁 유산을 기반으로 한다. 1870년대 이후, 미국 농업 급진주의자들은 상인들이 높은 금리로 농부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함에 따라 시위에 나섰다. 결국, 의회는 1916년 Federal Farm Loan Act를 통과시키면서 농부들의 저금리 대출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협동조합의 설립을 촉진했다.

 

1916년 Federal Farm Loan Act

뉴딜 정책에서 연방 정부는 농촌 지역이 국가 전기 망에 연결되도록 돕기 위해 지역 전기 협동조합에 저비용 대출을 실행했다. 유사하게, 정부는 30년 만기 주택 담보대출을 위한 금융 인프라를 제공하기 위해 저축 및 대출 산업을 촉진하였다. 더 나아가, 1934년 연방 신용 조합법은 기존 은행들의 붕괴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상황에서 기존 신용조합을 지원하고 새로운 신용조합의 발전을 장려하기 위한 틀을 만들었다. 그리고 1970년에 통과된 법안은 상업 은행 계좌에 제공되는 보험에 필적하는 신용 조합 계좌에 대한 예금 보험 시스템을 신설했다.

줄이자면, 지역 단위에서 신용 창출을 위한 조치를 하도록 연방 정부에 성공적으로 압력을 행사한 사회운동의 오랜 역사가 있다. 기존 은행들은 자신들이 부담스럽고 수익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대출에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계획에 강하게 반발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것은 자본주의 권력을 잠식할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이다.

결론 (CONCLUSION)

우리는 종종 “당신이 세상에서 보고 싶은 변화가 되어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전투적 반자본주의자들에게 사회주의 미래를 여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은 새롭고 다른 유형의 은행가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환영받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 직업 내 인종차별주의자, 계급주의자, 가부장적 협회를 제거한다면 은행가는 다른 방법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자원에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개인과 집단의 삶을 보다 편하게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사회주의 은행가라는 생각은 모순이 아니다; 급진적으로 민주적 사회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없어서 안 될 역할이다.

따라서 급진적 지역공동체 조직가들이 지역 은행가들과 긴밀히 협력하여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저비용 대출에 대한 접근을 도와줌으로써, 지역 수준에서 권력을 구축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은 그 자체로는 근본적으로 다른 우선순위를 가진 사회를 만들지 못하겠지만, 사회의 부가 모두를 위해 배분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투쟁의 필수적 부분이다.

 


 

역자 후기

독서 후 인상에 남는 부분은 첫째,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가계자금이 되었든 기업 자금 - 공기업 포함 - 이 되었든 자원(resource)의 한 종류로서, 캐피털의 공정한 배분을 위해서는 이를 관리할 금융기관의 존재는 필요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또 다른 차원에서,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수단으로, 사회주의적 형식의 금융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신용조합의 기능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부분은 저자가 짧은 에세이임에도 누차 강조했듯이, 이 엄청난 권력을 가지게 될 금융기관 엘리트의 독자적 권력화를 어떻게 방지 혹은 견제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부분이다. 저자의 대책은 ‘분권화와 경쟁’ 그리고 ‘밑으로부터의 견제’이다. 개인적으로 분권화와 경쟁이란 개념은 결코 리버럴 사회의 전매특허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법 없이도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것일까? 다 ‘연대’ 의식을 공유한 ‘동지’들이니까? 하지만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동지로 만들기 위한 국가사회주의 국가들의 속성 노력의 비극 - 가령, 중국 문화대혁명 - 을 우리는 역사에서 충분히 보았듯이 개인적으로 회의적이다. 따라서 최소한 과도기적으로라도, 금융 섹터뿐만 아니라 전 사회 영역에 걸쳐 권력의 다원화는 필수적이라는 생각이다. 더 나아가 적정한 새로운 모델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조직 간 건전한 경쟁도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지금으로서는 견제 받지 않은 국가사회주의 관료 조직의 폐해를 반박 혹은 대체하는 의견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쟁은, 예를 들어, 오클랜드 시 산하 Auckland Transport가 오클랜드 시내버스 각 지역 운행권 입찰을 놓고 민간 업체끼리 경쟁시키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Auckland Transport는 지방 정부라고 할 수 있는데 입찰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협동조합이 아니라 자본가들이 운영하는 사기업이기 때문에, 이들 자본가는 자신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끊임없이 비용 절감 노력을 한다. 왜냐하면, 운행을 잘한다고 매출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입찰 때 Auckland Transport로부터 받는 금액(매출)이 사전에 정해지기 때문에, 이익을 증가시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비용 절감인데 대표적 항목이 인건비다. 자연스러이 노동착취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오클랜드 지방 정부가 시민을 위해 경쟁 구도를 도입한 결과 동료 시민인 운전사를 착취하는 끔찍한 혼종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우리가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경쟁이 파괴적 자본주의적 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고 싶은 말은, ‘건전한’ 경쟁이라는 것은 견고한 사회주의적 원칙과 함께 실행에서 섬세한 균형감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