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뉴질랜드 이야기

뉴질랜드를 상상한다(Imagining Aotearoa New Zealand)

김 무인 2019. 12. 19.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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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를 상상한다(Imagining Aotearoa New Zealand)

 

뉴질랜드 상상의 정치학 (Imagining Aotearoa New Zealand: The Politics of National Imaginings)

 

Avril Bell

 

 

번역에 앞서 (역주)

 

이번 논문은 한국어로 번역함에 적지 않은 부분 신경이 쓰인다. 영어 표현과 이에 대응하는 한국어 찾기의 어려움이 근본 원인이다. 물론 다른 논문들에 나오는 단어들도 적합한 한국어를 찾기 힘들어 영어를 원용하는 예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ethnicity이다. 과문해서인지 몰라도 이 단어에 적합한 한국어를 찾지 못해서 계속 ethnicity 원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문화인종’이라고 억지로 풀어헤친 단어를 조어해서 쓰곤 했지만 절대 적확한 번역이 아니다.

 

이 논문에서 수없이 등장하는 nation 역시 비슷하다. 한국의 영어사전을 살펴보아도 국가, 민족, 나라 등 여러 단어로 번역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민족국가의 영어표현은 nation-state이다. 이 경우 nation은 민족이다. 반면 (스포츠) 국가대표팀의 영어 표현은 national team이라고 한다. 이 영어 표현을 역으로 민족대표팀이라고 번역하지는 않게 된다. 그나마 한국은 민족과 국가라는 용어가 큰 사려 없이 호환해 사용해도 독자들에게 큰 무리 없이 다가갈 수 있는 경우인데 이는 한국이 긴 역사 기간 단일민족을 유지한 까닭에 민족(nation)과 국가(state)가 동전의 앞뒷면처럼 동일시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질랜드와 같이 신생국가이며 한국과 달리 다양한 ethnic 그룹이 있는 경우 한국에서 경험되어지는 민족(nation)의 단계에 뉴질랜드는 도달한 적이 없다. 뉴질랜드는 아직도 그런 단계에 도달하기 위한 민족형성(nation building) 과정 중의 국가(state)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경우라면 민족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도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한 이 논문 - 다른 논문도 마찬가지이겠지만 - 에서는 많은 경우 민족이라는 단어 대신 국가라는 단어로 번역했다. 가령 national identity는 한국의 경우 민족 정체성이 보다 자연스럽고 적확한 번역일 수 있겠지만, 뉴질랜드 상황에서는 국가 정체성으로 번역했다. 아직 실체가 완성되지 않는 뉴질랜드 민족을 두고 민족 정체성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읽은 이로 하여금 제대로 포인트를 못 집게 하거나 심지어 잘못된 이해로 안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논문의 경우 - 반복하지만 다른 논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nation은 대부분 국가로 번역되었으며 state는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라는 표현 대신 정부라는 용어로 많은 경우 대체했다. Nation과 State는 간단히 표현하면 내용과 형식의 관계이다. State의 틀 안에 존재하는 공동체가 Nation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읽는 이로 하여금 최대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번역을 했고 더 나아가 많은 경우 영어 원 표현을 괄호를 이용해서 함께 적었다.

 

 

서론

 

국제적 재난 - 항공기 사고, 쓰나미 혹은 테러 - 이 발생할 때마다 뉴질랜드 주요 미디어의 초점은 희생자 중에 뉴질랜드 사람이 있느냐 여부이다. 이 경우 ‘모국’에 있는 ‘우리’는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이들의 안위를 걱정한다. 또한, All Blacks(뉴질랜드 럭비 국가대표팀: 역주), Black Caps (뉴질랜드 크리켓 국가대표팀:역주) 혹은 Silver Ferns (뉴질랜드 넷볼 국가대표팀:역주)가 국제 경기에서 이길 때 혹은 Peter Jackson (뉴질랜드 출신 반지의 제왕 영화감독)이 새로운 영화를 출시할 때 ‘우리’는 그들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고 아무런 인적 관계가 없음에도 그들의 성공에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우리는 그들의 성공이 또한 ‘우리’의 성공이라고 느낀다.

 

 

 

이것이 바로 국가 정체성(national identity)이며 이것은 개인들과 더 넓은 공동체 간의 연결고리, 중요하게는 우리와 국가(nation), New Zealand, 라는 개념 간의 연결고리를 창출한다. 이 연결고리는 개인 정체성을 집단 정체성으로 ‘확산’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리고 중요하게도 이 연결고리는 이성적이거나 사무적이거나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감성적이고 이타적이라는 점이다. 국가 정체성(national identity)은 강력하고 감성적인 형식의 문화적 공동체와 모국에 대한 애착인데 이 감정은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스럽게 여겨지는 까닭에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눈치채지 못할 정도이다. 이 같이 강력하지만 당연스럽게 여겨지는 감성적 형식의 집단 정체성은 많은 측면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우리는 국가 정체성을 전술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하지만, 지극히 사회적이고 역사적이다 - 그것은 사회적 형성 물이고 시간과 상황에 따라 중요성과 의미에 변화가 생긴다. 이글에서 나는 국가 정체성이 작동하는 방식들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어떻게 우리의 감정 몰입이 정치적 목적과 연결되는지; 언제 그리고 어떻게 국가 내 공동체 (national community)가 어떤 부분을 배척하고 타자(others)로 밀어내는지; 어떻게 국가적 통합이 스포츠 같은 사회적 활동과 우리의 과거 역사에 대해 담론을 통해 구축되는지; 그리고 이런 통합과 공동체 감정이 정치인들과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어떻게 이용되는지.

 

 

국가 정체성은 무엇이며(What is National identity) 어떻게 형성되는가(How is It Constructed)?

 

Benedict Anderson은 민족(Nations)(워낙 잘 알려진 명제라 이 경우는 민족이라고 번역한다:역주)은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라고 주장한다. 국가공동체 (national community)에 대한 소속감은 우리의 동포 뉴질랜더를 개인적으로 아는 것으로부터 발생하지 않고 그들과의 연결에 대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이 연결의 느낌은 뉴스와 광고를 통해 하나의 시청자로 우리를 취급하는 미디어를 통해서;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뉴질랜더에 의해 쓰인 책을 읽고 국가를 배우는 등의 교육제도를 통해서; 그리고 정치인들의 연설과 수많은 다른 평범한 매일의 상징들과 행동들로 형성된다. 예를 들어 미디어에 의해 사람들과 장소 그리고 사건들이 특정 사회적 상황 속에서 동시적 상황으로 연결된다 - 같은 날 Westport에서는 홍수가 나고 Hamilton에서는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들이 같은 날짜 그리고 같은 나라(nation), 뉴질랜드, 에서 발생했다는 것 외에는 연결고리가 없다.

 

이렇게 사건들을 연결하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미디어는 또 국가(nation)를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그리고 우리가 죽은 후에도 영속하는 존재로 만든다. 상상이 된 국가(nation)는 그렇게 지리적 위치,과거,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지면서 지리와 역사 그리고 공유된 공통 문화에 대한 동일시를 통해 한 국가의 국민(population of nation)으로 만든다. 국가공동체 (national community)는 보통 몇백만 명 이상의 구성원으로 구성된 공동체인데 십억이 넘는 공동체도 있다. 당연히 아주 다양한 공동체이지만 여러 방식을 통해 단일화되고 문화적으로 통일된 공동체로 상상이 된다.

 

 

감성과 정치: 민족과 국가(Feelings and Politics: The Nation and the State)

 

국가 정체성(national identity)의 감성적 요소 - 예를 들어 All Blacks 경기 전 Haka가 행해질 때 혹은 국가가 불릴 때 감정 - 는 국가 정체성이 정치와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국가 정체성은 좋은 기분, 단합 그리고 공동체에 관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맞는 말이지만 국가 정체성은 또한 특히 정부(state)에 의해 육성되는 정치적 기획물(projects)이기도 하다. 민족주의(nationalism)에 대한 담론 혹은 레토릭에 의하면 정부(state)는 국민(people)을 대변하고 ‘국가적 이해(the national interest)’에 따라 통치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수상이 ‘우리’ 중 한 사람이며 다른 곳에서 온 외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이런 관점에서 관계를 살펴보면 정부(state)는 국가(nation)/국민(people)을 위해 일을 한다. 그러나 또 국가구성원(nation)이 국가(state)를 위해 헌신하고 정치지도자들의 이해에 따라 행동하는 중요한 방식들도 있다. 이글을 통해서 내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주장은 정치적 경제적 이해는 국가(nation)에 대한 우리의 강력한 감성적 애착을 조작하고 이용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국가 정체성은 국가(nation)를 단일화하고 통일된 것으로 만든다; 이해, 문화 그리고 가치를 공유한 상상공동체에 초점을 맞춘다. 국가구성원들(nation)이 어떻게 정부(state)를 지지하고 혹은 정부(state)에 의해 어떻게 이용되느냐는 측면에서 이런 사회응집력의 형성은 특정 정치적 방향 혹은 정책 지지를 위한 공동체의 동원 수단을 제공한다. 정부(state)는 국가(nation) 혹은 ‘우리의’ 우방을 지지함으로써 국가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 군대를 보낸다; 정치인들은 그들의 정책을 국가(nation)의 이익이라는 명목하에 홍보하고 ‘평범한 키위(ordinary Kiwi)’를 표방하면서 선거 기간에 유권자들을 설득한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정치지도자들은 그들의 정책 제안에 대한 대중의 동의를 얻기 위해 국가 정체성의 감성적 힘에 의지하려 한다. 이것은 또한 국가(nation)를 상상하는데 결코 한 방식만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Michael Billing이 주장하는 것처럼 무엇이 국가공동체를 특징짓는가와 무엇이 국가의 핵심가치(core national value)를 결정하는가에 대한 ‘패권 다툼(battle for hegemony)’은 항상 있는 것이다; 국가(nation)에 대한 지배적인 서사들과 이에 저항하는 서사들은 언제나 공존해 왔다.

 

 

뉴질랜더를 상상한다(Imagining New Zealanders): 수용, 배척, 중심과 주변(Inclusions, Exclusions, Centres and Margins)

 

Etienne Balibar는 국가 정체성(national identity)을 정부(state)에 의해 만들어진 ‘가공의 (fictive) ethnicity’라고 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많은 증거가 있으며 뉴질랜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식민 정착 초창기 ‘뉴질랜더(New Zealanders)’라는 용어는 마오리를 칭한 것이었다. 파케하 정착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후 백인 정착민들은 뉴질랜더 중 ‘그들(themselves)’로 일컬어졌고 뉴질랜드 구성원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 단계에 이르러 해안에 퍼져있던 정착민들의 초기 지방 정부들은 중앙 정부로 일원화되었으며 마오리는 매매와 몰수를 통해 대규모로 땅을 잃게 된다 더불어 중앙 정부는 영토를 철도와 도로망을 통해 통합시킬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말이 되면서 뉴질랜드 정부(state)는 국가공동체 의식을 통해 영토에 대해 통치를 할 수 있음을 발견한다. 뉴질랜드 국가정체성의 태동 기간은 우리들에게 이 것이 식민주의자들의 기획, 식민주의자들인 파케하를 위한 정체성과 소속감을 형성하기 위한 수단임을 상기시킨다.

 

뉴질랜드 국가 정체성의 형성 이후 초기 표준 서사는 파케하 단일문화와 남성성 - 개척자, 군인 그리고 럭비선수가 합치된 Kiwi bloke의 원형- 으로 대표된다. 이후 새로운 버전을 요구하는 마오리의 정치적 활동의 결과 1970년대 이후 변화하기 시작하여 와이탕이 조약 150주년이 되는 1990년대에 이르러 공식적으로 마오리와 파케하 두 민족(peoples) 공동 창립의 서사로 바뀌었다. 이 서사는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으로 끝난다 - 우리는 지금 우리 공동체의 일원이 된 많은 이민자를 포함한 다문화 국가 (multicultural nation)를 상상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는가? 우리는 지금 bicultural 국가인가 다문화 국가인가? 혹은 이 두 형식을 어떻게든 조합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국가 상상에서 중요한 바를 시사한다 - 국민 (national people)과 국가(state)의 시민(citizen)(여권 혹은 영주권을 소지한 자) 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가 정체성은 시민권보다 다소 포용적이다. 일부 시민과 거주자들은 국가공동체(national community)의 상상으로부터 배제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보다 주변부에 위치하는 한편 어떤 사람들은 좀 더 중심부에 위치한다. 1986년 이민법 개정으로 인한 대규모 이민의 결과 국가공동체의 상상에 중국인들과 다른 아시안 뉴질랜더를 위한 공간이 열리게 되었는데 이는 첫 중국 정착민이 발을 디딘 후 150년이 지나서이다. 국가 표준서사에는 많은 진실이 있다. 명백히 ‘뉴질랜더’라는 이미지는 파케하의 가치와 관심사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개척자 시절 그들이 보여줬던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태도(그리고 동반된 반지성적 반대급부 이미지)와 뉴질랜더들의 친절함과 자유분방함은 아마도 20세기 기간 대부분 지속한 평등주의 혹은 무계급에 대한 강한 지향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었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심화한 불평등은 이것을 지금은 명백히 진실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심지어 초창기에도 이는 거짓이었다. 본국인 영국보다 사회적 신분상승의 기회가 훨씬 많았던 많은 영국 출신의 이민자들에게는 이런 평등주의와 무계급사회가 진실처럼 경험되었을지 몰라도 파케하에게 제공된 이런 경제적 기회로부터 대부분 배척당한 마오리, 중국인 그리고 남태평양 출신 이민자인 Pasfika 사람들에게는 진실이 아니었다. 이 경제적 배척 행태는 '백인 뉴질랜드 국가'라는 상상을 통해 상당 부분 견고화되고 정당화되었다.

 

이런 백인 뉴질랜드 국가에 대한 상상은 19세기말 20세기 초반의 중국인 정착민들을 배척하는 백인 이민정책을 지지하게 하고 이미 이민 온 중국인들에게는 심한 인종차별을 하게끔 하였다. 이같은 비 백인 시민과 거주자들에 대한 배척은 또 정치적이다. 뉴질랜드 정부 요직은 아주 최근까지도 항상 압도적으로 파케하 남성 차지였다. 최초의 여성 총리는 1990년대에 들어서 처음으로 선출되었으며 아직도 마오리, 남태평양 출신 혹은 아시안 수상을 가져보지 못했다. 전 국민의 이익(national interest)을 옹호해야 할 뉴질랜드라는 국가(state)는 항상 남성 파케하의 이익을 대변해 왔으며 종종 역사를 통해서 공동체 다른 영역의 이익을 훼방해 왔다.

 

그러나 이 백인 파케하 표준서사는 마오리에 관한 한 전부 틀린 것은 아니다. 마오리는 바이컬처럴 시대 이전부터 파케하의 ‘뉴질랜드’ 상상 속 그림에 ‘상징적’으로 중요하게 자리매김해 왔다. 뉴질랜드 사회 내, 마오리의 실질적인 물질적 소외에도 국가 이미지로서의 마오리 문화와 상징성은 항상 국가(nation)로서  ‘뉴질랜드’의 차별화된 독특함을 유지하는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마오리 없는 식민지 정착민 문화인 파케하 문화는 그저 그런 영국의 파생 문화에 불과할 뿐이었다. 파케하들은 그들의 자녀에게 마오리 이름을 지어주기도 하고 마오리 장신구를 걸치고 또 ‘마오리랜드’와 연관시킨 독특함에 기반을 둔 뉴질랜드 문학을 창조하기도 했다. 

 

세계의 다른 나라와 조우할 때 파케하의 뉴질랜드는 뉴질랜드 사회의 독특한 국가정체성으로  항상 마오리 문화를 끌어왔다. 예를 들어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의 관광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은 중요한 관광명소로서 Te Arawa 마을의 Whakarewarewa와 더불어  스파 리조트로서 Rotorua 건설에 초점을 맞추었다. 또한, 중요한 외국 방문객은 지금도 그렇지만 변형된 powhiri (마오리 환영행사: 역주)로 환영해 주었다. 

 

뉴질랜드 사회생활 중 일부 영역 - 물론 럭비 포함 - 에서도 마오리는 중심 구실을 했다. 1888-89년 영국 투어를 한 뉴질랜드 최초 럭비 국가대표팀은 ‘the Natives (원주민)’ 로서 팀 구성 선수가 거의 마오리 혈통이었다. 이 팀의 선수 Tamati Ellison은 그 뒤에 최초로 공식 럭비 국가대표팀의 주장이 되고; 경기를 위한 초기 코칭 매뉴얼을 제작했으며; 하카 (haka), 검은 유니폼 그리고 은빛 고사리문양(silver fern)을 국가대표팀의 상징으로 도입했다. 이런 초기 마오리의 관여는 뉴질랜드의 럭비 스타일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국가결속의 구축(Constructing National Unity): 스포츠와 전쟁 (Sport and War)

 

전 세계적으로 스포츠는 국가 정체성을 규칙적으로 생산, 재생산하는 아주 영향력 있는 수단이다. 우리가 ‘우리’의 국가대표팀 경기를 보거나 신문이나 스마트폰의 스포츠 뉴스를 찾아볼 때 우리는 국민(national subjects)이라는 자리를 차지한다. 스포츠를 보고 이에 관한 기사를 읽는 것은 종종 한 국민임(nationhood)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 특히 남성적 국민성 (masculine nationhood). Billing이 스포츠 뉴스에 대해 말한 것처럼 ‘신문이나 인터넷에는 항상 스포츠 섹션이 있으며 이 섹션은 비는 날이 절대 없다. 매일 전 세계에 걸쳐 수백 수천만 명이 이 섹션을 들여다보고 승리와 패배소식을 공유하면서 고향 기분을 느낀다.

 

이런 규칙적 레저행위 - 그리고 이것이 제공하는 강력한 즐거움 - 는 생생하게 느껴지는 공통점과 충성심의 공유로서 국가(nation)에 연결되어 있다는 감정을 형성 그리고 재형성하는 중요한 매일의 메커니즘이다. 정신 외상과도 같았던 1981년의 스프링복스 투어 경험 - 스포츠, 인종차별주의 그리고 정치 간의 관계를 달리 이해하는 두 방식의 충돌 탓에 뉴질랜드가 분열되었었다 - 을 제외하고는 스포츠는 항상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보편적 수단이 되어 왔다. 스포츠는 이처럼 우리에게 공통이란 느낌과 목적의 단일성을 제공해주는데 이것이 과연 좋은 것이느냐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물론 많은 긍정적 요소들이 있지만, 우리의 국가에 대한 애착은 우리가 다른 이들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상된 공동체’에서 Benedict Anderson은 왜 사람들이 조국(nation)을 위해 죽을 각오 (전쟁의 경우)가 되어 있는지 묻는다. 그의 대답은: 군인들이 싸우다가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적군에 대한 미움 때문이 아니라 그의 조국(nation)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다 - 이것은 긍정적이고 강력한 상상된 공동체에 대한 애착으로서 전쟁에서의 죽음 감수에 대한 동기 부여이자 정당화와 위안을 제공한다.이런 생각에 기초하여 Billing은 좋아하는 스포츠를 통한 국가에 대한 충성은 전쟁 시 국가(state)의 부름에 응할 준비가 되게끔 하는 예행연습 같은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아마 언젠가 우리 - 혹은 우리의 아들들, 조카들 혹은 손자들 - 는 국가가 우리를 부르면 준비된 열정을 가지고 혹은 의무감을 가지고 응해야 할지 모른다. 그 부름은 이미 친숙해질 것이다; 의무는 준비되어 있다: 그들의 말들은 이미 우리 기쁨의 영토 안에 깊숙이 새겨져 있다’.

 

뉴질랜드 국가 정체성의 문화적 역사를 통해서 Keith Sinclair는 스포츠와 전쟁 간의 연결고리는 20세기 초 뉴질랜드에서 광범위하게 인식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 예로 1차 세계대전 때 전쟁을 스포츠로 비유한 갈리폴리의 한 병사가 집으로 보낸 편지를 인용한다. 이 병사는 갈리폴리의 전투 경험을 럭비에 비유하면서 아직도 모국에 있는 남자들이 ‘team’에 합류해서 진정한 ‘game of life’를 할 것을 종용한다 - 스포츠는 단지 ‘연습’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이 병사의 전쟁과 스포츠를 연관 짓는 방식은 스포츠 경험은 전쟁을 이해하는 수단이자 전쟁 수행 시 역할을 위한 연습 형식이라는 것이다. 이 깊숙이 자리 잡은 팀 결속 정서는 정부(state)가 국민이 전쟁에 참여하길 원할 때 의지하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이런 시기가 되면 국가적 결속은 계급과 에스닉 구분을 압도하게 되며 전쟁에서 목숨을 걸 정도로 개인의 이해를 뛰어넘는다. 

 

 

국가결속(National Unity)의 구축과 경제적 이해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호소하는 주체는 비단 정부(state)와 정치인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영리 기업들도 자주 이를 활용한다. ‘Kiwi kids’는 Weet-Bix (시리얼 브랜드:역주)를 먹어요라는 광고와 우리가 즐겨 먹는 ‘Kiwi Burgers’ 등이 그 예이다. 심지어 특정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다국적 기업들 - 뉴질랜드에 세금을 거의 내지 않고 이익을 해외로 송출함으로써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부분이 거의 없는 - 도 그들의 상품을 팔기 위해 뉴질랜드 국가 정체성을 이용한다.

 

한 미국 회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 뉴질랜드의 애국 정서를 동원한 예는 2010년 뉴질랜드에서 영화 The Hobbit 3부작을 찍을 때 배우 노조(Actors Equity)와 Warner Brothers 간 노조에 가입된 노동자들의 고용을 거부한 것을 둘러싼 분쟁에서 잘 볼 수 있다. 이 영화제작사의 거부는 노조로 하여금 이 제작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게 했다. 이  Warner Bros와 노조 간의 대치로 인해 영화 제작이 해외로 옮겨질 수 있을 것이며 그러면 ‘직업을 잃게 되고 영화산업이 파괴되고 국가 자존심에 흠집이 날 것이다’라는 반대 여론이 생성된다. 결국, 일부 뉴질랜드 대중들은 2010년 10월 25일 몇천 명이 모여 영화 제작이 해외로 옮겨갈 수 있다며 반 노조 집회를 개최하면서 그들의 감정을 표출했다. 이 집회의 주 동인은 Peter Jackson (뉴질랜드 출신 영화제작자:역주)과 그의 회사들에 대한 국가적 자부심임이 명백했다.

 

나중에 Warner Bros와 반 노조 성향의 John Key 국민당 정권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애국 정서를 고의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노조는 대중 집회 며칠 전에 영화제작사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철회했음에도 불구하고 Warner Bros, Jackson 그리고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국민당 정권은 Warner Bros에게 250만 불의 세금을 환급해주려는 계획과 그 관철을 위해 국민의 애국 정서(nationalist sentiment)를 활용했고 국제 영화산업의 이익을 위해 관련 산업법을 개정하였다. 이것은 특정 경제와 정치적 이해관계를 마치 우리 국민 모두의 이해관계인 것처럼 포장함으로써 애국 정서를 동원한 선명한 예다.

 

 

국가결속(National Unity): 기억과 망각 (Remembering and Forgetting)

 

국가결속 구축의 한 핵심은 국가(nation)의 과거에 대한 서사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국가의 역사 역시 수용과 배척 혹은 기억과 망각의 혼합물이다. 우리는 역사를 지난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사실로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지만 모든 역사는 오로지 특정 서사만이 선별되고 특정 사실에 대한 해석만이 우리에게 전달될 뿐이다. 국가 역사는 국가(nation) 설립 과정에서 발생한 내부적 충돌들은 전형적으로 ‘잊히거나’, 주변부로 밀려나거나 혹은 배제된다. Walter Benjamin이 말한 것처럼 역사는 ‘승리자의 이야기(tale of victors)’이다. 1880년대 프랑스 철학자 Ernest Renan이 주목한 것처럼 ‘망각은 국가 설립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국가 설립 초기 수반된 폭력에 대한 기억은 국가결속 서사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뉴질랜드가 마오리와 파케하라는 두 민족(peoples)에 의해 설립된 두 문화 국가(bicultural nation)라는 표준 서사 역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2014년 와이탕이 재판소는 Nagapuhi 부족의 이의 제기에 대해 1840년 와이탕이 조약 서명 시 이 부족의  조상들은 영국 정부에 통치권을 양도할 의사가 없었다는 결과보고서를 발간했다: 다른 말로 현 뉴질랜드는 두 문화 민족에 의해 건립되었다는 표준 서사와 달리 영국 통치에 필요한 마오리의 동의가 없었다는 의미이다. 이 결과보고서에 대한 의견을 묻는 말에 당시 수상 John Key는 ‘내가 보기에 뉴질랜드는 평화적으로 정착이 이루어진 세계의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라고 답했다. 이런 수상의 답변은 국가결속에 필요한 과거 충돌의 망각이라는 파케하 전통에 충실한 것이었다. 뉴질랜드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19세기 마오리와 영국/정착민 군대 간의 전쟁은 뉴질랜드 국가 형성 서사에서 반복적으로 ’잊혀 왔다’.

 

이런 역사적 기억장애의 대표적 형식 중 하나는 뉴질랜드 중등학교에서 19세기 역사에 대한 교육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19세기 식민정착기에 발생한 뉴질랜드 전쟁과 다른 물리적 충돌들은 여전히 논쟁적이고 분열적이라고 비추어지고 있다. James Belich는 이 역사적 기억장애를 ‘문화적 자가-전두엽 절제술(self-lobotomy)’ (전두엽을 제거함으로써 감정을 제거하는 시술:역주)로 비유했는데 위 와이탕이 재판소의 결과보고서 발간과 같이 명백히 의미 있는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뉴질랜드 대중들의 제대로 된 인식을 방해하고 있다. 한편 뉴질랜드의 파케하와 마오리 간 물리적 충돌들에 대한 역사는 조약 정착 과정을 통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최근에 이 19세기 충돌들에 대한 의도적 기억장애의 변화에 대한 조짐이 보이고 있다. 2015년 Otorohanga College 학생들에 의해 주도되어 의회에 제출된 탄원서는 2016년 정부로 하여금 이를 기억하기 위한 국가적 기념일이 제정될 것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이날은 의심할 것 없이 이 충돌의 유산을 돌이켜보는 중요한 연례행사가 될 것이며 미래를 향한 국가적 기억과 망각의 균형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결론

 

국가정체성(national identity)는 ethnicity, 성별(gender), 성적특질(sexuality), 종교, 정치, 직업 등과 더불어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많은 면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 중 누군가에게는 덜 중요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특징들 탓에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바로 이 국가 정체성의 힘이다. 현대와 같이 외연이 넓은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국가 정체성은 우리가 모르는 동료 시민들과 우리가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제공해 준다. 이것은 우리를 묶어주는 강력한 사회적 ‘접착제(glue)’이다. 동시에 우리는 뉴질랜더로서 우리의 감정과 신념에 대한 호소(appeal)들에 대해 신중해야 하며 이 호소들 덕분에 누가 배척되며 주변부로 밀려나는지; 누가 그리고 왜 이런 호소들을 하는지; 이 호소의 배경에 무슨 정치적 그리고/혹은 경제적 이해가 있는지; 그리고 그 이해가 우리의 이해와 일치하는지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