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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저번 달, 한국 사회 다문화 현상에 대한 나의 이해를 담은 책 - ‘다문화 쇼크’ - 을 출판했었다. 다른 일도 그렇겠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한국 다문화 현상에서 빠뜨릴 수 없는 그룹인 ‘조선족’(朝鲜族)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점이 마음에 걸렸다. 코로나로 인해 변동은 있지만, 약 이백만 명에 달하는 한국 내 외국인 중 70여만 명이 조선족이다. 외국인 그룹 중 최대의 에스닉 그룹이다. 그럼에도 한국 다문화 현상을 글로벌 자본주의 차원에서 조명하다 보니, 다소 국지적인 조선족의 한국 이주에 대해서는 소홀히 했다. 이에 다시 책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엄격성을 가지지는 않지만, 이들에 대한 나의 이해를 부연하고자 한다. 조선족에 대한 전반적 개관이 아니라, 이전 책 기조처럼 그들의 이주, 에스닉 정체성 그리고 이를 둘러싼 자본주의 논리에 초점을 맞춘 글이다.
조선족 호칭
조선족은 한국(조선) 계 에스니시티(ethnicity)를 가진 중국인(nationality)을 일컫는다. 2020년 기준, 중국 내 조선족 인구는 1,702,479명 그리고 한국 내 조선족 인구는 708,000명이다.
호칭은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 같은 단어라도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 혹은 다른 뉘앙스를 가진 용어가 된다. 예를 들어, 여기 뉴질랜드에서 마오리 혹은 퍼시픽 아일랜더라는 호칭은 맥락에 따라 중립적 혹은 비하적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마오리가 자신을 뉴질랜드 마오리라고 소개할 때는 중립 이상의 자부심을 느낄 정도이다. 하지만 복지 수당을 제공하는 Work and Income 사무실에서 백인 파케하 직원들이 남 듣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마오리나 퍼시픽 아일랜더를 언급할 때는, 이들을 수당에 의존하는 그룹이란 불명예스러운 의미를 담아 사용하는 경우를 의심할 수 있다.
한국의 조선족 호칭 역시 이와 비슷한 사회적 맥락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조선족이란 호칭은 중국 정부의 국내 여러 민족에 대한 공식 호칭 중 하나이다. 주류 민족 한족(漢族)도 공식 명칭이 한족이다. 따라서 중국 내에서만큼은 조선족 호칭은 중립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 사는 조선족 입장에서 한국의 조선족 호칭은 차별적 요소가 있다고 느낀다. 미국에 사는 한민족 후손은 미국 동포라고 불리는데, 자신들은 왜 중국동포보다는 조선족으로 불리냐는 불만이 대표적이다. 일리 있는 불만이다. 한편, 구소련 출신 고려인이 고려인 호칭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다. 왜 중국 동포라는 용어가 자리 잡지 못했을까? 여러 요소가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한국으로의 유입 과정 측면에서 짚고 넘어간다.
미국 교포라는 말이 한때 한국 사회에서 상류사회의 느낌으로 다가간 적이 있다.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미국이란 경제적 선진국 배경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조선족 호칭에는 분명히 이 계층적 요소가 작용한다. 못 사는 나라 출신 그리고/혹은 못 사는 계층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한국 사회의 이런 인식은 한국 정부가 중국과 구소련 출신 한민족 후손에게만 허용하는 방문취업비자의 성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방문취업비자(H-2)는 한국 내 저임금 단순직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이들 특정 지역 동포에게만 적용하는 취업비자다. 식당이나 건설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선족이 대부분 이 비자를 갖고 있다.
다른 국가 재외 동포에게는 이 비자가 허용되지 않으며, 대신 재외동포비자(F-4)가 발급된다. 재외동포비자를 가진 사람은 위 방문취업비자 소지자가 수행하는 단순 노무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즉, 한국 정부는 한국 사회가 필요한 저임금 단순직은 구소련/중국 출신 동포가, 그리고 그 외 상향 직종/업종은 다른 국가 재외 동포가 맡도록 업무분장까지 해 준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 비자 구분과 업무 분장은 구소련/중국 출신은 고려인과 조선족으로, 그리고 다른 국가 출신은 재외 동포로 달리 불리는 연쇄 효과를 가져왔다. 경제적 지위의 차이가 비자의 차별을 가져왔고, 이 비자의 차별이 호칭의 차이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조선족 에스닉 정체성
나도 조선족이라고 부른다. 내가 이 그룹을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조선족이라는 것이 한 에스닉 그룹의 호칭이기 때문이다. 에스닉 그룹은 구분 기준에 따라 여러 계층적 단위로 구분할 수 있다. 중국 조선족은 중국 한족과 같은 국적이지만 다른 에스닉 그룹이다. 국적은 에스닉 그룹의 명칭이 아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은 많은 원주민에게 중국 국적이란 이유로, 그리고 중화사상에 동화되었다는 이유로, 중국인이라는 큰 카테고리의 일부로 치부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조선족 중 일부는 자신의 정체성을 중국인으로 규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들은 전형적 중국인 - 가령, 한족 - 과는 차별화된 독립적 에스닉 그룹이다.
중국 동포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히 한국 정부 관점의 정책 용어다. 따라서 객관적이고 학문적인 에스닉 그룹 호칭이 될 수 없다. 조선족은 중국과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도 미국에도 그리고 여기 뉴질랜드에도 존재한다. 이들을 중국 동포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다. 중국에 있을 경우 ‘중국조선족’이지만 해외의 이들은 그저 ‘조선족’(朝鲜族)이다. 에스닉 한국(조선)인 밑에서 중국에서 태어났거나, 조상은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다른 국가에 거주하면서 중국과 한민족 정체성을 혼합하고 변형한 독자적 정체성을 가진 에스닉 그룹이다. 이들은 북한 사람도, 남한 사람도, 중국 사람도, 심지어 자기(혹은 조상) 출신 중국조선족과도 다른 에스닉 그룹이다. 다른 말로, 조선족은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초국가적 유목민 이주 형태가 탄생시킨 새로운 유형의 에스닉 그룹 중 하나이다. 현대 중국조선족 학자들도 비슷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조선족은 중국과 한국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으로는 그 실체에 제대로 다가설 수 없다. 한일 혼혈에게 ‘너는 네가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니,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니?’라는 질문이 무지하기 짝이 없는 거처럼, ‘중국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한국 사람으로 살던지!’라며 조선족에게 훈수질하는 것도 이들 정체성의 복잡성과 경계성을 모르는 탓이다. 이들 정체성의 복잡성과 경계성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자기에게 유리하고 필요할 때만 한국을 찾는 얄미운 중국인으로 보인다. 이들과 같은 제3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중국과 한국 그리고 중국 조선족 공동체 안에서의 경험을 종합해 자신의 정체성을 키워나간다. 그렇다면 미국에 사는 조선족은 어떨까? 당연히 ‘미국 거주’가 그들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추가될 것이다. 당장 이들은 경제활동 측면에서 한인 교민 공동체와 중국인 교민 공동체를 넘나들 수 있다. 한국과 중국 출신 이민자에 비해 여전히 캐피털 부족으로 이들 공동체에 기생하는 형식을 취할 수 있겠지만, 한국이나 중국에서처럼 소수라는 이유로 차별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중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다 소수민족 이민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조선족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미국 조선족이라는 차별화되고 세분된 에스닉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조선족 내에서도 출신 지역에 따라 정체성은 더 세분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족의 한국 사회 내 위치와 정체성은 일본의 데카세기(出稼ぎ)와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다이아스포라로 인해 많은 일본인이 일본 이외 나라에 정착해 살고 있는데, 브라질에는 2백만 명의 일본계가 거주하고 있다. 1980년대 브라질의 경제 상황 악화 그리고 이에 대조적으로 일본 경기의 활황이 서로 맞물리면서, 일본 정부는 브라질의 일본 이민 3세대 이상 후손들에게 취업비자를 발급해 일본 내 3D 업종에서 일하게 했다. 이전까지는 이 업종을 파키스탄, 중국, 태국, 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 취업자들이 담당했었다. 일본 정부는 이들을 혈연적, 문화적 공감대가 있는 일본계 재외 동포들로 채우려고 했다. 그 결과 이 시기에 대략 30만 명의 일본계 브라질인이 들어왔는데, 이들이 데카세기이다.
이들은 일본에서 한국의 조선족보다 더 천시를 받았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한국 조선족과 달리 일본어를 할 줄 몰랐다. 무늬만 일본인이었다. 차별과 천시 속에서 여전히 외국인으로 대접받던 그들은 일본의 경기 호황이 끝나자 불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귀국 장려금을 주어가면서까지 이들의 본국 송환을 격려한 결과, 현재 약 20만 명이 데카세기가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팽창에 따라 똑같이 저임금 단순 인력 부족 현상을 겪던 일본과 한국은 모두 혈연민족주의를 명분으로 자국 내 소프트 랜딩의 가능성이 높은 재외 동포들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들을 자국 내 노동 계급 최하부에 위치시켰다. 이들 일본 데카세기와 한국 조선족의 정체성은 이런 환경 속에서 형성되었다.
조선족에 대한 혐오 정서
1992년 한중수교를 기점으로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그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이후, 문근영이 댄서의 순정이란 영화에서 조선족으로 나왔던 2005년 당시만 해도 한국 사회의 조선족 혐오 정서는 현재와 같은 수준이 아니었다. 그냥 아직도 못 사는 나라에서 온 불쌍한 동포 정도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본격적 혐오 정서가 대두된 시점으로 우리는 2012년을 상징적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2012년에 중국에서는 시진핑이 집권했다. 시진핑의 중국은 다른 국가사회주의(혹은 자본주의) 정권처럼 체제의 비민주성을 민족주의로 극복하려는 전략을 취했고, 이를 위해 전통적 중화사상을 국가 차원에서 강화했다. 이후 중국의 민족주의는 글로벌 경제에서 중국 위상이 급상승함에 따라 노골적 패권주의로 전환하였다. 중국의 이런 오만한 패권 국가로의 태세 전환은 한국 사회구성원으로 하여금 중국이란 나라에 대한 비호감을 갖게 했고, 중국 출신 조선족도 그 비호감 대상에 포함되었다. 2012년은 조선족 오원춘이 토막살인 사건을 일으킨 해이기도 하다. 2년 뒤인 2014년에 같은 조선족 박춘풍은 또 다른 토막살인 사건을 저질렀다. 2012년 국내외에서 발생한 이 두 사건을 기점으로, 2010년대에 본격적으로 조선족에 대한 혐오 정서가 한국 사회에 자리 잡게 된다. 중국이란 나라 자체에 대한 비호감, 원주민 공동체 안전을 위협하는 국내 조선족의 행동 그리고 그들의 후진적 공중 의식이 그 주 배경이다.
여기에 조선족의 자기 정체성 인식 변화도 한몫 거든다. 중국이 급격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강한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가운데 한국 조선족도 경계인 혹은 중간인으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게 된다. 한국 사회의 차별과 중국 사회에서 소수민족으로서 받은 차별이 맞물리면서, 중국과 한국 사회 어디에도 소속감을 가질 필요 없이 양국이 주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여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생겼다. 한국 원주민에게는 자기가 필요할 때마다 중국인 정체성과 한국 동포의 정체성을 박쥐처럼 바꾸어 활용하는 것 같은 조선족의 이런 모습이 기회주의적으로 비친다.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구성원에게 조선족은 자기 조상의 모국이자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한국 사회를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그룹으로 비침에 따라 이들에 대한 비호감도는 올라간다.
이들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다른 중요한 요소는 조선족이 한국 저소득 노동계층을 위협한다는 인식이다. 이 인식은 특히 요식업과 건설업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상당 부분 바르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한국 원주민이 기피하는 업종을 이들 조선족이 대신한다는 논리도 한편에서는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임금 상승에 대한 필요성과 절박함이 원주민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약한 조선족 노동자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들 업종에 대한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한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그리고 그로 인한 원주민의 이들 업종에 대한 기피라는 악순환에 조선족이 기여하는 것이다. 자연스러이 이 악순환은 조선족 때문에 일자리를 뺏긴다는 인식의 확산을 가져온다.
조선족을 위한 변명
현 중국의 패권적 민족주의는 연대(solidarity)와 국제주의(internationalism)라는 사회주의의 본질적 속성을 결여한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배타적, 우월적, 패권적 민족주의에 현혹 세뇌된 중국인은 싫어한다. 조선족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특성 때문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기회주의적 행복 추구 방식을 이유로 그들을 비난하고 혐오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회주의적이라고 부정적 함의를 가진 용어를 사용했지만, 모든 인간은 기회주의적이지 않은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잘못되었는가? 자신에게 가용한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인권이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행복추구권을 방해하거나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저해하면 문제가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구도 이런 방식에 거부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조선족의 생성 과정 자체도 이 행복 추구를 위한 과정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19세기 중엽부터 한반도에서 만주로 건너가 정착하기 시작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자유로운 정치적 활동과 더 나은 경제적 삶을 위해 건너갔다. 1960년대에는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이 살기 어려워지자 더 나은 환경을 위해 많은 이들이 당시 더 잘 살던 북한으로 역 이주했다. 1990년대 이후, 중국이 경제 도약을 하자 이들은 다시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갔다. 이처럼 행복 추구를 위해 사람은 지리적 사회적 이동을 한다. 그리고 이들은 이동 후 새로운 사회에서의 정주를 위해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한다. 정체성은 생존전략이다. 자신이 새로운 환경에서 사회적으로 정서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적응 수단이다. 소수 사회구성원에게 - 가령, 이주자 - 이 정체성은 많은 경우 차별에 대한 반발적 정체성이다. 다만, 고려인처럼 자신의 출신 국가가 한국보다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자신에게 제공해 줄 수 없다고 판단하면 반발적 정체성보다는 순응적 정체성 경향을 띨 것이다.
조선족도 중국의 비약적 경제 발전 이전에는 고려인과 마찬가지로 한국을 유일한 옵션으로 간주했을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경제 발전을 이룬 지금도 다수의 중국 노동자 임금은 한국보다 여전히 낮기에 지금도 큰 틀에서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히 기회는 이전보다 많아졌다. 한국의 조선족에게 선택의 여지가 생긴 셈이다. 한국은 더러워도 참고 버텨야 할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라, 출신국 중국과 비교하여 고를 수 있는 대상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서의 차별 경험은 중국의 좋은 면을 부각시켜 자신의 정체성 한 부분으로 있던 ‘대국’ 중국인임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로도 작용할 것이다. 이제 좀 더 당당하게 한국 사회가 자신에게 준 기회를 비교 저울질할 수 있다.
맺음말
양꼬치는 좋지만, 조선족은 싫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문화와 인종의 분리다. 책, ‘다문화 쇼크’의 결론적 메시지는 인종 간 혹은 에스닉 그룹 간 갈등의 해결은 계급 문제를 떠나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순화하면, 조선족의 한국 사회 출현은 이역만리 못 사는 동포에 대한 선진국 한국 사회구성원의 따뜻한 민족애의 발로 덕분이 아니다. 저임금 노동력이 필요했던 한국 자본주의 요구에 응답하여 한국 정부가 정책을 실행한 결과일 뿐이다. 완전히 다른 이질적 외국인 노동자보다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은 조선족 노동자는 생산성 측면에서 우수한 노동력이다. 따라서, 이 경우 ‘우리가 남이가’식의 동포 의식을 강조하는 한국의 혈연민족주의는 한국 자본주의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현재 한국 사회 내에 존속하는 조선족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이 혈연민족주의의 허구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인간 간 관계는 상품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이 관점에서 조선족은 한국 자본가에게 구매된 재외 저임금 노동 상품이 그 본질이다. 가장 싼 이 노동 상품은 수입 후 한국 자본주의 노동계급 내 최하단부에 자리 잡게 된다. 조선족에 대한 ‘혐오’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중국의 패권적 민족주의와 조선족의 한국 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그들 행동 때문이지만, 이들에 대한 ‘차별’은 많은 경우 계급 차별이다. 혐오는 인식 개선 노력을 통해 완화될지 몰라도 차별은 자본주의 계급 위계가 남아 있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조선족이 되었든, 중국인이 되었든, 파키스탄인이 되었든, 저임금 섹터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 사회에서 겪는 소외와 차별은 대동소이하다. 같은 최하단부 계층의 노동 계급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 문화와 한국어에 대한 높은 이해에서 기인한 활용성으로, 별도의 방문취업비자 카테고리를 통해 다른 외국인 노동자 그룹에 비해 나은 노동조건 - 제한되었지만, 업종과 직장 선택의 자유 - 이 주어졌을 뿐이다. 아무튼 덕분에, 획일적 단순화가 허용된다면, ‘한국 원주민 노동자 - 구소련/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출신 재외 동포 노동자 - 조선족/고려인 - 이질적 외국인노동자’라는 위계 체계가 성립한다. 그러나 이질적 외국인 노동자보다 살짝 위에 위치한다는 것이 이들이 경험하는 차별, 소외 그리고 그에 따른 불만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조선족은 다른 외국인 노동자와 달리 ‘같은’ 동포임에도 차별받는다는 의식이 있기 때문에 한국 원주민과 사회에 대한 이들의 불만은 오히려 더 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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