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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산미디어 시대, 맑스주의의 중요성(1/3) - 디지털 자본주의 이해하기 (3)

김 무인 2022. 4. 2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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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머리말

 

특별히 미디어/커뮤니케이션에 학술적 관심을 가지지 않은 일반인도 지난 몇십 년 사이에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지형에 큰 변화가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과거에는 방송(라디오와 티브이)과 인쇄 출판물(신문, 잡지, 책 등)과 같은 미디어(매체)가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지만, 이제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원한다면 대중에게 어렵지 않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블로그 글들도 과거 같으면 기껏해야 잡지의 독자 기고란 정도가 유일한 전달 통로였을 것이다. 이처럼 커뮤니케이션의 매체(미디어)가 다분화된 현재의 미디어 지형을 우리는 분산미디어(Distributed Media)라고 부른다. 이는 전통적 방송/출판과 같은 매스미디어(Mass Media)와 여러모로 비교된다. 이번 에세이는 이렇게 변한 미디어 지형에서 맑스주의 미디어 정치경제학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가 주목적이다.  

 

저자 Andreas Wittel은 영국 Nottingham Trent University에 재직하고 있으며, 그의 주요 연구 분야는 이 에세이처럼 디지털 미디어 정치경제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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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맑스: 분산미디어의 정치경제학을 향하여

Digital Marx: Toward a Political Economy of Distributed Media

 

 Andreas Wittel





1. 서론

 

이 글 주장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매스미디어 시대에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다소 제한적 방식으로 맑스주의 개념을 사용해 왔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맑스주의 이론은 이 연구 분야에 훨씬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될 수 있고 사용되어야 한다. 이런 발전은 맑스 개념의 확대 적용을 의미하기 때문에 맑스주의 이론가들은 환영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2단계 접근법으로 이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매스미디어 정치경제학이 맑스주의 이론을 제한적으로 인용한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다. 더 나아가, 이런 제한적 인용의 배경을 설명하고, 왜 디지털 미디어 - 혹은 디지털 사물(digital things) - 가 정보 시대의 디지털 미디어(특히)와 (보다 전반적으로) 자본주의 분석을 위해 맑스주의 핵심 개념들을 폭넓게 수용하는 새롭고 긍정적 가능성을 여는가를 설명할 것이다.

 

이 에세이의 핵심인 두 번째 단계는 ‘노동, 가치, 재산, 그리고 투쟁’과 같은 맑스 정치경제학의 핵심 개념들에 대한 탐구와 더불어 이 개념들과 디지털 미디어 혹은 디지털 사물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의 관련성에 대한 개요다. 이 개념들은 비시장(non-market) 생산, 동료(peer) 생산, 그리고 디지털 커먼즈와 같은 현상을 깊이 이해하고, 더 나아가 자유로운 문화, 지적 재산, 그리고 무임금 노동(free labour)에 대한 논쟁을 이해하는 데 특히 유용하다.

 

이 글의 일부는 무임금 노동 개념에 대한 비판적 탐구이다. 무임금 노동 개념은 소셜 웹의 새로운 발전에 대한 분석에는 매우 생산적이지만, 분석의 엄격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다소 다른 개념들과 혼재되어 있다. 디지털 자본주의의 핵심 도전 과제 중 하나는 임금이 없는 곳에서의 활성화된 인간 노동 그리고 다른 형식의 상품화된 노동에 대한 재고찰 필요성이다. 무임금 노동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노동 자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우리는 재산, 가치 그리고 노동가치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의 결론 중 다수는 투쟁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 투쟁에 대한 짧은 언급은 디지털 미디어와 사회운동 간 관계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직접적 행동과 그것의 다양한 매개 형식에 대한 탐구를 통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2. 매스미디어 정치경제학 (The Political Economy of Mass Media)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선형의 일방적 커뮤니케이션 흐름으로 특징지어지는 매스미디어 시대의 한 학문 분야로 자리 잡았다. 매스미디어에서 콘텐츠는 소수의 생산자로부터 다수의 수용자에게 배포된다.

 

 

한 학문 분야의 핵심 이슈들, 질문들, 토론들, 그리고 연구 성과를 몇 단락의 글로 요약하는 것은 항상 힘든 일이다. 지나친 단순화, 의심스러운 일반화, 그리고 보다 미묘한 관점 대신 일관성 있는 서술을 우선시하는 경향 때문이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 학문 분야가 무엇을 탐구하는지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가 존재하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여러 학자의 이 분야 소개 글을 비교해 보면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에서 다루어지는 주요 이슈, 질문 및 연구 성과에 대해 큰 이견이 없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미디어 기관들이 갈수록 민영화되고 비즈니스로 변하고 있다는 관찰로 이 글을 시작한다. 미디어 산업이 그냥 일반적 산업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미디어 산업의 특이한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디어 산업이 생산하는 콘텐츠의 이중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 콘텐츠는 상품(commodity)이자 공공재(public good)이다. 미디어 기업은 그들의 생산품을 이익 축적을 위해 사용하므로 콘텐츠는 사적 제품 즉, 상품이다. 동시에 콘텐츠는 공적 영역의 한 부분을 차지하므로 공공재이다. 따라서 미디어 기업들은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기능을 수행하는 한편, 경제적 이익에 의해 움직인다. 미디어 콘텐츠의 이런 이중성은 미디어가 독립적 힘으로 민주주의와 공공 이익을 보호한다는 가정을 의심스럽게 만든다. 매스미디어가 대중의 여론을 반영한다는 가정 역시 덩달아 의심스럽다.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미디어가 강력해서 대중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대중 담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성립한다. 따라서 더 넓은 정치적 경제적 맥락에서 미디어 콘텐츠의 생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다른 학문 분야와 차별화하는 것은 이런 물질성, 그리고 콘텐츠가 생산되는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기술적 조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가령, 문화 연구와 시청자(수용자) 연구 중 많은 긍정적 조류는 일반적으로 권력과 통제권을 미디어 기관 내에서 찾지 않고, 소위 의미의 진정한 생산자인 능동적 시청자에게서 찾는다.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분석만큼 사회 분석적이다.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주로 다음 이슈들에 관심을 가진다: 

 

  1. 미디어 시장에 대한 이해. 미디어 회사들은 어떻게 수입을 창출하고 이익을 생성하는가?
  2. 미디어 조직(공공, 상업 및 민간 비영리 조직)의 소유권 문제에 대한 조사와 미디어 생산품(특히 뉴스 생산) 관련 소유권 구조의 의미에 대한 분석.
  3. 미디어 섹터의 변화하는 역동성, 특히 미디어 산업의 국제화, 미디어 조직들의 집중화와 복합체화, 그리고 미디어 생산품의 다양화. 이는 문화 제국주의와 미디어 제국주의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4. 미디어 규제, 미디어 정책, 그리고 국가 단위에서 시작해서 점점 세계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는 미디어 거버넌스. 

 

이 관심 영역들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실제 상당히 중복된다.

 

데니스 맥퀘일(Denis McQuail)(1935~2017)

 

미디어 정치경제학의 핵심 주장을 소개하기 위해 데니스 맥퀘일(Denis McQuail)(2005)이 요약한 미디어 정치경제학의 그동안 연구 성과물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1. 경제적 통제와 논리는 결정적이다
  2. 미디어 구조는 집중화 경향이 있다
  3. 미디어의 전 세계적 통합이 발전하고 있다
  4. 콘텐츠와 시청자(수용자)가 상품화된다
  5. 다양성이 증가한다
  6. 반대와 대안 요구의 목소리는 소외된다
  7. 커뮤니케이션에서 대중의 이익은 사적 이익에 종속된다

 

미디어 정치경제학계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는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는 사실 정치경제학적 접근을 최초로 시도한 사람 중 하나이다. 영국 신문 산업의 성장에 관한 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언론의 역사는 반드시 경제적, 사회적 역사 속에서 해석되어야 하는데 지금도 이런 시도는 전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는 170년에 걸친 언론의 역사를 실증적으로 연구하면서 이런 관점을 발전시켰다. 그의 발견은 매우 회의적이다:

 

“이 수치들은 언론이 더 나은 방향을 향해 꾸준히 발전한다는 생각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광고 수입과 직결되는 시장은 꾸준히 전문화되고 있으며, 다양한 유형의 독자를 겨냥한 대중 잡지들이 꾸준히 생기고 있다. 이런 현상은 잘 교육된 민주주의 사회의 발전하는 언론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신 조직된 커뮤케이션 시장으로 보이며, 언론의 다양한 기능은 이 시장을 겨냥한 “selling point”(세일즈 포인트)를 찾는 것에 제한된 것처럼 보인다”(Williams, 1961).

 

만약 우리가 이 구절을 위 McQuail의 요약과 나란히 본다면, Williams는 향후 50년 동안 이 분야에서 논의될 많은 주제와 결과를 이미 예상했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그의 주장은 이 분야의 축소판이다.



3. 맑스와 매스미디어 정치경제학(Marx and the Political Economy of Mass Media)

 

매스미디어 정치경제학의 이론적 뿌리는, 최소한 비판적 전통 측면에서, 맑스주의에 있다. 이름 자체가 가리키듯, 매스미디어 정치경제학은 미디어 연구 중 정치경제학 관점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탐구하는 학문 분야다. 그렇다면 이 학문 분야는 맑스와 얼마나 깊숙이 얽혀있는가? 짧은 대답은: 어느 정도 관련이 있지만, 상당히 제한적이다. 이 대답을 증명하기 위해 이 분야의 중요한 기여로 간주되는 저작을 검토했다. 첫 번째 놀라운 발견은 상당수 책들이 맑스나 맑스주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거나, 매우 적은 양이라는 점이다. 후자의 경우도 정치경제학의 리버럴 전통과 맑스주의 이론을 구분하기 위해 언급하는 정도다. 저자들은 심오한 방식으로 맑스주의 이론을 천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는 맑스주의 이론,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맑스주의 이론의 특정 부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부구조(혹은 토대)(base)와 상부구조(superstructure) 모델. 맑스에 의하면, 인간 사회는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물질적 하부구조는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구성되며, 상부구조는 비물질적 영역, 즉 문화, 종교, 사상, 가치, 그리고 규범의 영역이다. 하부구조와 상부구조의 관계는 상호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 이 모델은 맑스와 엥겔스의 여러 저작을 통해 발전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정치경제학 비판(A Contribution to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맑스, 1858)의 서문과 독일 이데올로기(the German Ideology)(맑스와 엥겔스, 1846)이다. 

 

 

“물질적 삶의 생산양식은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지적 삶의 전반적 과정을 규정한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결정한다”(맑스, 1858).

 

“모든 시대마다 사회의 물질적 힘을 지배하는 지배계급은 동시에 지적 힘을 지배한다. 물질적 생산 수단을 통제하는 계급은 동시에 정신적 생산 수단도 통제하기 때문에, 이 정신적 생산 수단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생각은 일반적으로 지배 계급의 생각에 종속된다. 지배적 사고는 지배적 물질적 관계가 사고로 표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배 계급은 사회를 전방위적으로 지배한다. 그들은 사상가로서, 또 이념의 생산자로서 지배하며, 시대사상의 생산과 유포를 지휘한다: 따라서 그들의 사상은 그 시대의 지배적 사상이 된다(맑스와 엥겔스, 1846). 

 

위에서 언급한 매스미디어 정치경제학자들의 저작들은 다른 산업 분야와 달리 하부구조와 상부구조 모델을 상부구조의 생성에 기여하는 미디어 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적용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 모델을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하며, 따라서 단순한 결정론적 모델 그리고 비변증법적이고 환원주의적 관점으로 간주되는 것을 놓고 상당한 시각차를 드러낸다. 

 

Meenakshi Gigi Durham

 

Meenakshi Gigi Durham과 Douglas Kellner(2006)는 다음과 같이 관찰했다: “미국에 기반을 둔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의 초점은 소유권, 기업화 그리고 소비와 같은 경제적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영국에서는 공공 부문 방송, 국가가 지원하고 규제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 그리고 방송의 정치성과 같은 정치적 측면에 초점이 모였다.” 나는 이 관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미국의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전반적으로 하부구조와 상부구조 모델에 더 일치하는 반면, 영국은 물질적 혹은 경제적 환원주의에 좀 더 비판적이다. 나는 이 차이가 양국의 미디어 지형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자유시장 미디어 지형 그리고 영국의 여전히 강한 공공 부문 방송. 

 

미국에서 선전(propaganda) 모델(Herman and Chomsky, 1988)이 개발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더 나아가 이라크 전쟁 보도 관련 비판적 저널리즘의 총체적 시스템적 실패를 진단하면서, 미국 미디어가 “민주주의의 파괴”를 가져왔고, “고도로 집중된 이익 추구 미디어 시스템은 저널리즘 파괴를 이성적인 것으로, 자유로운 사회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콘텐츠 제공을 비이성적인 것으로 만들었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미국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다. 하부구조와 상부구조 모델에 다소 비판적인 영국에서는 이런 주장을 발견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제임스 큐란(James Curran)은 “현장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라고 지적했는데, 이는 대부분 “맑스주의 설명적 프레임워크의 전체화에 대한 거부”에 관한 것이다.

 

제임스 큐란(James Curran)

 

지금까지 맑스주의 이론에 대한 인용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단순 언급 차원에 그친 문헌들만 참조했다. 그러나 맑스, 특히 그의 하부구조와 상부구조 모델을 심오한 방식으로 인용한 문헌도 있다. 이 분야의 문헌에 대해 아마도 가장 상세한 분석을 제공하는 빈센트 모스코(Vincent Mosco)(1996)는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소개로 그의 책을 시작했다. 그레이엄 머독(Graham Murdock)(1982)은 특히 하부구조와 상부구조 모델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를 더 실용 지향적 관점과 비교한다.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1958)는 이 모델을 상세하게 다루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더 복잡하다고 주장한다. “기본적인 질문은 경제적 요소가 실제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지이다. 나는 이 논란을 계속 추적해왔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궁극적으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처럼 니콜라스 간햄(Nicholas Garnham)(1990)도 경제 환원주의라는 비난에 맞선다. 그는 맑스 모델이 매스미디어 정치경제학 이해를 위한 충분한 기초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하부구조와 상부구조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결정론적 시각에서 벗어나, 상호적 그리고 변증법적 관계로 이해한 모델을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나중에 논의할 댈러스 스마이드와 같은 몇 드문 예외들을 제외하고, 매스미디어 정치경제학은 다소 제한적 방식으로 맑스주의 이론을 인용한다. 이 학문 분야가 맑스의 하부구조와 상부구조 개념을 인용하는 경우는 대부분 생산 수단의 소유권(그리고 소유권의 집중, 미디어 재벌 등)과 미디어 콘텐츠, 이데올로기, 조작, 권력과 민주주의에 관한 주장을 할 때이다.



4. 디지털 기술(Digital Technologies)

 

이와 같은 미디어 정치경제학의 맑스주의 이론에 대한 제한적 인용의 배경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하부구조와 상부구조 논쟁을 다시 언급하면서, 맑스는 하부구조에 더 관심이 있었고 따라서 상부구조에 대한 분석을 소홀히 했다고 지적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맑스는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할 말이 많지 않았다고 지적할 것이다. 이 지적들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지만, 디지털 시대에 맑스주의 개념들이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에서 왜 훨씬 넓은 의미로 적용될 수 있고 또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만약 우리가 관심을 ‘미디어 기술’(media technologies) 쪽으로 돌리면,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매스미디어 시대에는 이런 미디어 기술(생산 수단)이 비쌌다. 대부분의 사람은 출판 미디어와 방송 미디어를 소유할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그 결과, 수많은 소비자/수용자에게 미디어 콘텐츠를 생산해서 배포하는 미디어 조직들의 숫자는 한정되었다. 따라서 매스미디어는 소수의 콘텐츠 제작자와 다수의 시청자/수용자로 특징지어진다. 리버럴 민주주의를 자처하는 사회에게 이런 구조는 다소 문제가 있는 출발점이다. 실제로 매스미디어에서 생산 수단의 소유권, 미디어 기술의 소유권, 그리고 미디어 조직의 소수 ‘미디어 재벌’(media moguls)로의 집중화만큼 심각한 문제는 없다. 매스미디어 시대에서 맑스주의 이론의 제한된 인용은 매우 특정 ‘역사적 실체’(historic reality), 즉 ‘매스미디어 기술’에서 기인한 것이다. 

 

디지털 기술은 근본적으로 다른 미디어 지형을 가져왔다: 매스미디어는 이제 더 이상 유일한 미디어가 아니다. 전통적 매스미디어는 점점 ‘분산미디어’(distributed media)에 의해 대체되어 가고 있다. 분산미디어는 매우 다른 조직 논리로 운영된다. 매스미디어가 소수 생산자가 통제 센터를 통해 다수의 수용자에게 미디어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계층적이고 단선적 시스템이라면, 네트워크화되고 비선형적인 분산미디어의 미디어 콘텐츠는 다수 생산자로부터 다수 소비자에게로 제공되는 다방향적이고 상호적 시스템이다. 

 

‘분산’미디어와 ‘디지털’ 미디어라는 용어는 유사하지만 동일하지 않다. 나는 분산미디어를 미디어의 ‘사회적 조직 측면’(물론 인터넷 기술을 가리킬 때도 사용하지만)을 강조하기 위해,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는 ‘기술 측면’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 그러나 사회가 기술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은 다시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모든 미디어는 기술적이며 사회적이다. 기술 구조와 인간관계는 서로 맞물려 있고 상호 구성적이다.

 

분산미디어 콘텐츠 유통 채널

 

분산미디어의 작동 방식은 디지털 기술의 특징과 기능에 결정적으로 의존하는데, 디지털 기술은 훨씬 싸고 여러 면에서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점에서 매스미디어 기술에 비해 우월하다:

 

  1. 오래 미디어 형식의 문헌, 사운드, 이미지 그리고 동영상 등을 디지털 코드로 복원할 수 있다.
  2. 커뮤니케이션과 정보, 혹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편지나 전화)를 매스미디어(라디오, 티브이, 신문)와 통합할 수 있다.
  3. 최소한의 비용으로 콘텐츠 복제 생산이 가능하다.
  4. 빛의 속도로 배포될 수 있다.

 

비트(bits)와 원자(atoms)에 크게 의존하는 디지털 기술의 이런 현상학적 특징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1.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는 미디어 생산자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한다. 휴대폰 혹은 랩톱을 가지고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누구나 미디어 콘텐츠의 잠재적 생산자다.
  2. 디지털 기술은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생산과 미디어 배포를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미디어 콘텐츠의 대규모 ‘공유’(sharing)와 오픈 소스 코드와 같은 대규모 형태의 협업과 동료 제작.
  3. 미디어 생산자의 숫자가 증가함에 따라 미디어 자체도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일상화되어 간다. 그리고 우리의 삶도 전 세계적 공공 영역에서부터 우리 존재의 가장 친밀한 영역에 이르기까지 연결(mediated) 된다(Livingstone, 2009).
  4. 어쩌면 가장 중요하게 디지털 기술은 단순히 미디어 기술이 아니다. 디지털 기술은 모든 생산적 과정에 적용된다(Castells, 1996). 디지털 경제는 이제 단순히 ITC 경제가 아니라 경제 그 자체다. 

이 과정의 결과, 디지털은 단순히 미디어 영역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ITC에 기반한 새로운 형태의 생산, 어쩌면 새로운 생산 양식, 그리고 ‘공동 기반 동료 생산’(commons-based peer production)(Benkler, 2006)을 지칭한다. 이런 이유로 디지털 미디어의 정치경제학은 진정으로 디지털 사물(digital things)의 정치경제학이다. 이제 미디어는 소수의 전문가에서 많은 아마추어로, 국가와 시장에서 비시장으로, 그리고 미디어 산업과 다른 산업 분야 간 경계가 불명확해지는 시대가 열렸다. 이런 움직임은 맑스주의 이론이 더 폭넓게 필요할 가능성을 의미한다. 디지털 시대에 맑스 정치경제학의 모든 면은 실제로 비판적 미디어 이론과 관련이 있다. 

 

 

기술결정론(technological determinism)에 대하여

 

‘기술결정론’(technological determinism)에 대해 짧게 논평하고 넘어가겠다. 디지털 사물과 그것의 함축적 의미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은 내가 보기에 기술결정론의 예가 아니다. 디지털화가 기술 발전 덕분에 이루어졌고, 사람들은 그 변화에 반응하는 방관자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 이에 대한 반대 주장에도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 사회결정론(social determinism)은 기술결정론만큼 위험하다. 나의 주장은 맑스의 생각과 대체로 일치하는데, 기술이 사회적 생산과 사회 조직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기술은 자본주의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미래는 오직 억압받는 자들의 투쟁에 의해서만 결정될 것이다.

 

평론가들은 매스미디어와 분산미디어 간 현격한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 주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매스미디어 정치경제학 내 존재하는 기술결정론에 대한 강한 혐오감 때문일지 모른다. 소위 디지털 혁명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것이 매우 과대평가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대응과 전략이 동원되었다.

 

첫 번째 유형의 대응(예, Murdock, 2004)은 디지털 시대는 매스미디어 시대와 유의미한 차이가 없고, 역사적 연속성이 차이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디지털 가능성’에 빠지지 말고 정치경제학자들은 ‘시장 실체’(market reality)를 연구해야 한다.” 정보 사회(information society)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추정’(presumed)일뿐이다(Murdock과 Golding, 2001). 두 번째 대응 유형인 방관 접근 방식(예, Curran과 Seaton, 2003)은 더 신중하다. 이 유형은 디지털 기술과 관련된 변화에 대해 어떤 특정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세 번째 대응 유형(예, Mosco, 2004)은 특히 인터넷 중독자(Internet-philiacs)의 주장에 맞서 기술결정론의 해체를 주장한다. 

 

연속성을 무시하는 것이 확실히 순진한 것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위험한 것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매스미디어 정치경제학 담론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던 생산 수단의 소유권 문제는 분산미디어 시대에도 그 중요성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관심사가 등장하면서 이 문제는 더욱 중요한 논의 주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두 중요한 방식으로 재개념화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매스미디어 시대에 생산 수단의 소유권 문제는 오직 미디어 콘텐츠와 관련이 있었을 뿐이다. 반면, 분산미디어 시대에 생산 수단의 소유권 문제는 단지 미디어 콘텐츠뿐만 아니라 연결성 측면에도 관련이 있다. 이 의미는 이데올로기와 메시지 조작의 문제(하부구조와 상부구조 모델)일 뿐만 아니라, 이용자들이 사회화하고, 소통하고, 그리고 협업하는 인프라와 네트워크 및 플랫폼의 소유권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은 의미와 표현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 온라인 상호작용의 통제에 관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특정 형태의 사회성과 주관성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의미한다.

 

재개념화의 두 번째 이유는 ‘생산 수단’(means of production)이다. 분산미디어 시대에 생산 수단은 보다 민주화되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사용자(10억 명이 넘는다)로서 약간의 기본적 컴퓨터 기술을 가진 사람은 미디어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수단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미디어 콘텐츠의 ‘유통 수단’과 ‘온라인 저장 수단’이 없다. 이 유통 수단과 저장 수단은 소수 미디어 재벌 손에 있다. 이들이 정보의 흐름을 통제한다. 이들은 McKenzie Wark(2004)가 말한 벡터 계급(vectoral class:매개체 계급)이다. “벡터 계급은 세계를 재난 직전까지 몰고 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파괴적 경향을 극복하기 위한 자원도 세계에 개방한다.” 인터넷의 미래 구조를 놓고 벌어지는 노동 주체와 자본 간 계급 투쟁에 대한 분석은 Nick Dyer-Witheford(1999)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이다. 

 

요약하자면, 생산 수단과 관련하여 우리는 중요한 역사적 연속성과 더불어 주목할 만한 변화도 목격하고 있다.

 

드미트리 클라이너(Dmytri Kleiner)

 

인터넷과 자본주의

 

드미트리 클라이너(Dmytri Kleiner)(2010)는 그의 책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정보화 시대에 가능한 것은 우리에게 허락된 것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인터넷과 같은 동료(peer) 네트워크로 가능해진 비계층적 관계는 폐쇄와 통제를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와 모순된다. 이것은 죽음을 향한 싸움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터넷이 없어지던지, 우리가 알고 있는 자본주의가 없어지던지.”

 

물론, 이것은 약간 과장된 주장이다. 양측 간 전쟁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협력 그리고 새로운 모델과 협약이 양측 간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위 선언을 좋아한다. 디지털 미디어와 분산미디어 시대에 정치경제학의 책임을 압축해서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생산력을 여는 기술이 있다; 기존 생산 관계에 어울리는 정치 경제 시스템이 있다. 기존 생산 관계를 지키려는 자와 극복하려는 자 사이에 투쟁이 있다.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창조하는 방법에 대한 암시가 있다. 통제되지 않는 인터넷은 사회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맑스 정치경제학의 한복판에 있다. 다음 섹션에서는 맑스 정치경제학의 핵심 개념이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 분석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논의하고 싶다. 나는 노동, 가치, 재산, 그리고 투쟁이라는 중심 개념들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 중 노동(labour) 개념은 더 자세히 탐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