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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Brown 선입견 부수기 (Deconstructing the Big Brown Tails/Tales)
*Big Brown은 상대적으로 많은 남태평양 이민자들이 비만자임을 조롱 조로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뉴질랜드의 남태평양 이민자들 (Pasifika Peoples in Aotearoa New Zealand)
Karlo Mila
Niu Sila (역주: 뉴질랜드의 사모아 언어), 젖과 꿀의 땅. Niu Sila, 기회의 땅. Niu Sila, 교육의 땅. Niu Sila, 좋은 직장의 땅. 호주가 금, 석탄, 광산과 좋은 기후의 땅이지만 남태평양 이민자들에게 뉴질랜드만큼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은 없었다. 하지만 여러 의미에서 이 꿈은 실현되지 않았는데 누가 지적한 것처럼 이 꿈은 연기된 것인지 모른다. 이글은 남태평양 출신 이민자들인 퍼시피카(Pasifika) 사람들이 뉴질랜드에서 한 에스닉 그룹으로 자리매김하고 비치는 방식에 관해 탐구하는 글이다.
퍼시피카 사람들은 2013년 센서스에서 뉴질랜드 인구의 7.4%(295,941명)를 차지했다. 압도적 다수는 사모아 출신(144,138명)이며 그 뒤를 쿡 아일랜드 (61,839명), 통가(60,336명), 니우(23,883명), 피지(14,445명), 토켈라우(7,176명) 그리고 투발루아(3,537명)가 차지하고 있다. 이 출신 국가 구성은 남태평양에서 뉴질랜드의 역사적 식민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퍼시피카 사람들은 ‘마오리’와 ‘아시안’의 뒤를 이어 세 번째로 큰 소수 에스닉 그룹이다. 퍼시피카 사람들에 대한 최근 통계를 보면 이들은 뉴질랜드의 다른 그룹에 비해 단명하고 더 많은 질환과 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 뉴질랜드에 사는 퍼시피카 사람들은 뉴질랜드 평균 국민보다 2.6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퍼시피카 젊은이들은 자살할 확률과 불안과 우울증을 겪을 확률이 평균보다 2배 높다. 퍼시피카 사람들의 실업률은 2003년부터 2013년 사이에 거의 두 배가 되어 파케하가 5.5%지만 16%에 달한다. 또한, 퍼시피카 사람들의 주당 소득은 파케하보다 $160이 적다. 자녀 교육이 이민의 주목적임에도 불구하고 퍼시피카 자녀는 유치원 교육을 받는 확률이 낮고 NCEA 레벨 4 합격률도 국가 평균보다 절반 정도로 낮으며 같은 연령대와 비교 약 ⅓ 만 학사 학위를 받고 있다.
이런 숫자는 언제든 변할 수 있겠지만, 퍼시피카 사람들에게 이런 상황이 지속하여 왔다는 것을 이해하고 다른 뉴질랜드 시민과 비교했을 때 심각할 정도의 사회경제적 열악함 그리고 훨씬 나쁜 건강과 교육 결과물 등 각종 국가 통계에서 ‘꼴찌(tail)’에 있음을 직시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가? Avtah Brah는 ‘어떤 그룹이 한 사회 내에서 자리매김하고 그룹들이 상대적으로 위치하는 방식은 다양한 담론, 경제적 진행 과정 그리고 국가 정책과 제도 실행 등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룹의 미래에 아주 중요하다.’ 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글에서는 퍼시피카 사람들이 뉴질랜드의 한 에스닉 그룹으로서 구성되고 자리매김하는 방식에 관해 탐구한다. 구조적 경제 변화가 퍼시피카 사람들로 하여금 젖과 꿀이 주는 혜택을 누리게 하는 대신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놓이게 했음을 주장할 것이다. 또한, 남태평양 국가들과 뉴질랜드의 식민 관계가 퍼시피카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었는지 그리고 이들이 뉴질랜드에서 어떻게 두드러지게 차별화된 소수 민족으로 사회적으로 자리매김하고 담론적으로 생산되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이 퍼시피카 사람들의 차별화된 인종화는 다음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함으로써 누가 이득을 보는가? 추가로 퍼시피카 사람들의 삶과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적, 사회역사적 그리고 문화적 조건들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인종, Ethnicity 그리고 식민화 (Race, Ethnicity and Colonisation)
Ethnicity는 ‘개인의 현실에 대한 이해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형성하면서 오늘날 세계인들을 그룹으로 만들어 나누는’ 가장 중요한 동력 중 하나이다. 인종이란 개념은 학문적으로 사장되었지만 ethnicty는 여전히 카테고리를 형성하는 동력으로 남아 있다: ‘사람들의 에스닉 정체성은 종종 그들이 인종적으로 카테고리 지워지는 방식에 의해 특징 지워지고 형성된다’.
뉴질랜드의 퍼시피카 사람들은 식민 관계에 뿌리를 둔 역사적 과정을 통해 인종화되었다. 식민화와 이민의 사회역사적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퍼시피카 사람들과 다른 뉴질랜드 사람들의 관계가 형성되는 물질적 상징적 조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1700년대부터 시작된 영제국의 남태평양에서의 식민지 확장은 뉴질랜드를 포함한 남태평양 국가들의 기존 원주민 자체 통치를 폭력적으로 뒤집고 제거했다. 이런 식민화 과정은 ‘사람들을 유아,사춘기 그리고 성인과 같은 성장 단계로 순위를 매기는’ 인종차별적 논리에 의해 합법화되었는데 유러피안은 당연히 우월적 ‘타인(other)’였다.
이 인종차별적 논리가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았는가를 보여주는 예가 있다. 1914년부터 1919년까지 사모아에서 근무했던 뉴질랜드 행정관 Robert Logan은 유행성 독감에 걸린 승객들이 있는 기선에 대해 아무런 검역조치 없이 사모아에 기항하는 것을 허락했다. 이 폐렴성 유행성 독감 때문에 당시 사모아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7,542명의 사모안들이 죽게 된다. 이 비극이 한참 진행 중일 때 이 행정관은 비통에 찬 사모안들을 보고 이렇게 묘사한다: ‘어린애들처럼 잘 보살펴주면 그들은 잊을 것이다… 그들이 과도하게 생각하게끔 하지만 않는다면 그들은 나중에 지난 4년 모든 것들이 그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개 식민관료가 남태평양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식민주의자들과 남태평양 국가들의 조우는 불평등한 권력관계, 통치권 상실, 법과 결정에 대한 원주민들 자치권의 축소, 현재의 에스닉 불평등의 시작을 알리는 강탈의 역사로 정의될 수 있다. 뉴질랜드 경우 파케하와 마오리 간의 지배 종속 관계 그리고 전쟁을 통한 마오리 토지의 강탈이 퍼시피카 사람들의 뉴질랜드로의 대규모 이민 이전의 뉴질랜드 식민 상황이었다. 마오리와 영 제국 간의 이 제도적 관계가 퍼시피카 사람들이 뉴질랜드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것 같은 지를 또한 결정했다. 와이탕이 조약 3조는 마오리가 뉴질랜드의 시민으로서 영국 국민과 같은 권리와 특혜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만약 이 특혜가 같은 평균 수명, 좋은 건강, 경제적 안정, 일할 기회, 감금으로부터 자유 등을 의미한다면 조약의 이 약속은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 유사하게 퍼시피카 사람들은 같은 뉴질랜드 시민임에도 평등한 시민으로 누려야 할 권리와 특혜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현재 처한 환경에 이르게 한 역사적 과정은 매우 다르지만 - 원주민(roots) 대 이민자(routes) - 마오리와 퍼시피카 사람들은 현재의 사회경제적, 건강 그리고 열악한 교육 측면에서 여러모로 유사하다.
남태평양 국가로부터의 대규모 이민이 시작된 1960년대는 마오리에 대한 정책이 동화(assimilation)로부터 융화(integration)로 이동하는 시점이었다. 이 변화는 동화 정책이 애초 기대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1961년 Hunn Report의 공식 인정 때문에 촉발되었다. 이 정책 변화 덕분에 몇 마오리 문화의 지속과 정책 입안 과정에의 마오리의 참여가 가능했지만 마오리가 주류 파케하 서비스에 편입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융화정책은 1975년 와이탕이 조약 법(the Treaty of Waitangi Act)이 제정되면서 종료되고 대신 마오리 자치, 조약 정착과 마오리 이익에 대한 정부의 증가한 수용이라는 새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민사 (A Story of Migration)
‘이민은 상당한 부분 국가 내 그리고 국가 간 사회경제적 기회의 실제 그리고 인지된 불평등에 대한 반응이다.’ 특히 남태평양 국가들에 상대적으로 ‘사회경제적 진보를 위한 기회가 적음’을 고려할 때 뉴질랜드로의 이민은 중요하게 간주하였다. 남태평양 이민자들은 뉴질랜드가 노동력 부족을 겪던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대규모로 입국했다. 이들은 특정 영역의 제조업에서 저 숙련 혹은 단순 기술직으로 일할 것을 권장 받았다.
Lay에 의하면: ‘대부분 이들은 파케하들이 더는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했다: 교대근무, 공장노동, 조립라인 생산, 청소, 열악한 근무환경에서의 장시간 노동 등.’ 당시 뉴질랜드에 영주권자로 입국하는 기회가 제한되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임시 비자로 입국했다가 체류 기한을 넘겨 머물게 된다. 이런 상황은 정부와 고용주에 의해 용인되었다 - 제조업으로부터 그들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있었기 때문이다.
1973-74년의 석유 위기는 전 세계 경제의 뿌리를 흔들면서 뉴질랜드도 불황기로 접어든다. 이 기간 실업률은 0.1%로부터 5.6%로 치솟게 되는데 이 중 대다수 퍼시피카 노동자가 일하는 제조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된다. 한때 흔하던 일들이 없어지게 되었다. 이런 경제적 쇠퇴, 실업 그리고 치열한 취업 경쟁에 대한 대응 중 하나는 남태평양 노동자들을 ‘인종화(racialise)’하는 것이다. 1974년부터 1976년 사이에 뉴질랜드 정부는 ‘불법체류자 추방운동(overstayers campaign)’을 시행한다. 이 추방 운동의 주 대상은 퍼시피카 사람들로 이들을 불법 이민자로 규정하고 ‘뉴질랜더’의 직업을 위협하는 존재로 낙인찍었다. 이 추방 운동에는 악명높은 새벽 색출(Dawn Raids)과 마오리를 포함해서 ‘뉴질랜더’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불시 검문 체포가 포함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 국민당 정부에 의해 이처럼 외국인 혐오증이 조장되었으며 단어 ‘섬나라 사람들(Islander)’이 이때부터 경멸의 의미를 담아 사용되기 시작했다.
경기 불황은 이민을 중단시킨 것은 물론 1984~1992년 기간 동안 뉴질랜드에서는 퍼시피카 사람들에게 심각하게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고강도 구조조정과 신자유의적 개혁이 이루어진다. 뉴질랜드 제조업은 그동안 외국 경쟁 업체로부터 자국 업체를 보호해 주는 관세에 의존해 왔는데 이 관세가 철폐되면서 많은 마오리와 퍼시피카 사람들이 일하던 제조업에서 대규모 실직 상태가 발생하게 된다. 불안정한 산업에서 미숙련 기술자로 일하던 이들에게 이런 경제적 불황과 구조 개혁은 직격탄이었다. 일차 산업과 이차 산업에서 수 십만 개의 직업이 증발했다. 대신 삼차 산업이 성장했지만, 이 산업은 퍼시피카 사람들이 갖지 못한 기술적, 전문적 그리고 비즈니스 기술 등을 필요로 했다. 채 10년이 안 되는 기간 퍼시피카 사람들의 실업률은 6%에서 29%로 치솟았다. 1986년 퍼시피카 사람들의 평균 수입은 국내 평균의 89%였으나 5년 뒤에는 69%로 떨어지게 된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초반에는 이들 중 상당수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역이민 상황마저 발생한다.
전술한 이 일련의 사건들은 어떻게 퍼시피카 사람들이 뉴질랜드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남태평양 이민자들은 뉴질랜드 정부에 의해 뉴질랜드로 입국해서 제조업의 미숙련직 혹은 단순기술직을 채워줄 것을 요청받았었다. 경쟁 시장에서 그들은 제한된 캐피탈 때문에 저부가가치 산업에 종사했다. 이 퍼시피카 노동자의 상황과 관련하여서 한 사회학적 분석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이민자들을 즉각적으로 사용하다가 수요가 없어지면 폐기처분을 할 수 있는 일회성 자원으로 비인간화(dehumanise)시킨다. 특히 에스닉 소수 이민자는 불황기에 ‘필요없는 잉여(surplus to need)’로 간주하여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폐기처분이 된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어떻게 자본주의, 식민주의 그리고 인종주의가 함께 작동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인종주의(racism)부터 알아보자.
인종주의와 상상된 공동체로서 퍼시피카 사람들 (Racism and Pasifika Peoples as an Imagined Community)
Ifekwunigwe는 인종주의는 ‘생물학과 문화가 잘못 융합된 과정이자 육체적 특징에 딸리는 특정 사회적 의미는 정치적으로 충전되고 만들어지며 흑인과 백인과 같은 계층적 개념들을 만들어 내고 이 것은 이후 그룹들 간의 관계를 결정짓는 과정’이라고 묘사한다. 뉴질랜드에서 퍼시피카 사람들은 인종적으로 차별화되었으며 이들의 모습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비추어진다. 럭비 경기장 위에서 그리고 All Blacks 내에서 퍼시피카 남성의 신체는 축복의 대상이다. 반면 범죄와 처벌의 상황에서 퍼시피카 남성의 신체는 폭력, 강간, 갱, 공포 그리고 위험과 같은 인종차별적 담론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퍼시피카 사람들은 긍정적 역사, 언어 그리고 문화와 더불어 지배 그룹에 의해 생산된 부정적이고 스테레오 타입화된 사고와 믿음의 교차점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뉴질랜드 인권위원회(the Human Rights Commission)는 ‘마오리, 퍼시픽 에스닉 그룹들은 뉴질랜드에서 인종차별을 겪고 있으며’ 마오리와 퍼시피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구조적 차별의 대상이 되고 경제적으로 주변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2012년 UN에 보고한 바 있다. 2008년과 2010년의 뉴질랜드 사회 서베이 결과 뉴질랜더의 10%는 차별을 겪은 경험이 있으며 이 중 6%는 피부색, 인종, ethnicity 혹은 국적이 차별의 주요 원인이었으며 차별이 발생한 장소는 공공장소 혹은 직장이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뉴질랜드를 포함해서 세계 각국의 노동시장 차별 현황을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모든 12개 국가에서 상시적인 차별이 존재하였으며’ ‘제도적 인종차별과 문화적 차별’로 인해 소수 구성원은 완전한 경제적 수용(inclusion)과 정의(justice)에 대해 열악한 미래 전망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 특정 남태평양 에스닉 카테고리로 누가 이득을 보는가? 뉴질랜드에서 파케하의 대척점에서 퍼시피카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어떻게 하면 에스닉 카테고리 ‘남태평양다움 (Pacific-ness)’을 없앨 수 있으며 젊은 퍼시피카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가능할까? 에스닉 퍼시피카 사람으로 어느 정도까지 삶의 궤적, 배움, 취업, 세상의 즐거움 그리고 제대로 된 삶을 사는 것에 자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Somers가 썼듯이 ‘우리는 모두 우리가 쓰지 않은 사회적 서사 속에서 우리가 발견되거나 우리를 발견하는 것에 의해 우리가 누구인가가 결정된다.’. 이것은 본질에서 ‘현재라는 항상 열려있는 의미를 어떻게 결정하고, 속박을 풀고 규정하는가’에 대한 권력투쟁이다. 심각한 물질적 불리함과 퍼시피카 사람들의 능력을 스테레오타입화하고 고착시키고 한정 짓는 강력한 담론을 고려할 때 퍼시피카 사람들을 위해 무엇이 해방적 진보적 옵션이며 변화를 위한 가용한 수단이 될 수 있을까? 퍼시피카 사람들의 소망과 이익을 위해서 현재 맹위를 떨치는 인종차별적 서사에 도전하는 한편 이 에스닉 그룹이 상상이 되는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물질적 조건을 향상하고 굳어진 불평등을 줄일 수 있을까? 쉬운 답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 복잡한 역학 관계를 단순화시켜 부적절한 정책적 답을 내놓으려는 충동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결론 (Conclusion)
불평등과 심각한 불리함(disadvantages)에 대한 통계적 신호들을 무시할 수 없다.: 뉴질랜드에 사는 많은 퍼시픽 사람들에게 차지하는 그 의미 탓에 그것들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 가능할지에 대해 포기하지 말아야 하며 퍼시피카 사람들을 ‘교정(fixing)’이 필요한 문제 집단으로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 퍼시피카 사람들에 대한 인구통계 - 높은 청년 실업률, 불균형적으로 낮은 경제적 캐피탈, 사회적 상향 이동을 위해 필요한 기회의 축소와 제한된 수단 -는 이 과제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체제 내에서 자신들의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부족이라고 희생자들을 비난하는 강력하고, 설득력 있으며 자비심 없는 신자유주의적 담론에 도전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체제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불평등에 의존하고 권력과 특혜를 가진 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변화를 위한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사회 문화적, 담론적 그리고 경제적 조건들에 대한 공감 가는 분석이 절실하다. 이 과제는 변화를 위한 지렛대를 찾고, 장점은 현실화하면서 도전을 극복하고, 개인 차원과 정치적 차원에서 활동하고, 개인과 집단 방식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거시와 미시 모두를 목표로 한다. 유사하게 중요한 것은 회복력, 저항, 대리인과 가능성을 위한 리서치의 과제다. 만약 우리가 영향력 있는 참여의 장을 인지할 수 있다면, 퍼시피카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다양한 뉴질랜드 기여를 확인할 수 있다면, 한정되고 불리한 환경 속에서 현실화된 기회를 축복할 수 있다면, 이것들은 지배적 담론에 대항할 수 있는 반박 담론이 될 수 있으며 시민권에 내재한 자격에 대한 인식과 결합하여 이후 세대들이 강력한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퍼시피카 사람들은 다음 세대에도 불안한 사회적 지위는 이어질 것이다.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현 제도 내에서 좁고 쉽지 않은 길이지만 개인적으로 경제적 상향이동의 꿈을 추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state)와 현 상황에 도전함으로써 집단으로 모두를 위한 전략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후자 옵션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많다: 비판적, 사회역사적 그리고 사회경제적 분석, 탈식민화 어젠다, 지배적 담론을 연구하고 해체하기 위한 분석적 도구들 그리고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헌신. 물론 명백히 이보다 더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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