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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회사, 국영 기업이 되는가?
지난 8월 15일, 뉴질랜드 중앙 정부는 각 지자체가 현행 민간 업체가 수행하고 있는 지역별 버스 운행을 지자체가 직접 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자체 단위의 버스 회사 (부분적) 국유화 허용 조치인 셈이다. 이 조치는 그동안 계속 삐걱대던 각 도시의 시내버스 운행을 더 이상 민간 기업에 맡겨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한 인식을 중앙 정부가 가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구체적 내용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이 법이 시행되면 지자체가 시내버스 운행에 대한 기본 설계를 한 후, 도시의 각 지역 운행을 담당할 버스 회사를 선정하고, 이후 이들의 운행을 지휘 감독만 하는 현 PTOM(Public Transport Operating Model) 제도에서 벗어나 지자체가 버스 운행을 포함해 경영까지 직접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법이 제정되어도 전국에서 일제히 새로운 법이 시행되지는 않는다. 현재 지역별로 운행권을 가진 버스 회사와의 PTOM 계약이 종료될 때까지 지자체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내버스 운행은 역사적으로 항상 시와 민간 버스 회사 간 협업 형태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춘 현 PTOM에서 드러난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각 지자체(오클랜드는 AT:Auckland Transport)가 버스 기사의 노동 조건과 근무 환경까지 직접 챙길 수 있을 정도로 경영에 개입하는 부분적 국유화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교통부 장관 Michael Wood는 이 새로운 시스템을 21세기 유행어 “지속가능한”(sustainable)을 포함시켜, “지속가능한 대중교통 체제”(Sustainable Public Transport Framework)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였다. ‘지속가능한’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새로운 시스템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차량의 보급과 더불어 지금처럼 만성적 기사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기사의 노동 조건에 대한 개선도 포함할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향후 3년에 걸쳐 버스기사의 노동 조건 개선에 4천 3백만 달러를 투입한다고 한다. 기존 PTOM이 구조적으로 버스기사의 임금을 포함한 노동 조건 개선을 방해하는 주범이었음이 명확하기에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은 환영할 만하다. (시내버스 기사의 열악한 근무 환경 실태와 그 원인에 대해서는 2019년에 올린 포스트 “Race to the Bottom - 뉴질랜드 시내버스 이야기”를 참조하기 바란다.)
국유화 결정의 배경은?
최근 오클랜드 지역에서 시내버스를 운행할 기사가 400명이나 부족해지면서 연이은 기록적인 버스 운행 취소 사태가 발생하자, 지난 7월 28일, AT는 8백만 달러를 투입해서 오클랜드 시내버스 기사 2천 명의 임금을 평균 8%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오클랜드 경우 주 중 매일 약 1,500건의 버스 운행 취소가 발생하는데, 지난 7월 18일에는 1,743건의 버스 운행이 취소되었었다. 물론 아직도 진행 중인 코로나와 더불어 겨울철 특성으로 아픈 기사들이 많은 이유도 있지만, 만성적 기사 부족의 근본 원인 중 하나로 저임금이 지적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존 평균 시간당 임금 $23.72가 $25.62로 인상되었다. 일부 회사는 $27.15(Waiheke Bus Company)로 인상하기도 했지만, 한국 교민이 가장 많이 근무하는 Ritchies는 $24.75에 그쳐 회사별로 온도 차이가 있다. 그런데 2022년 2/4분기 인플레이션이 7.3%임을 감안할 때 8% 인상이 실질 임금의 대폭적 상승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소식을 멀리서나마 접한 나의 관전 포인트는 두 개다. 첫 번째는 지난 몇 년 오클랜드 지역 운행 시내버스 업계가 열악한 노동 조건과 근무 환경으로 만성적 인력 부족 현상을 겪었음에도, 대책을 계속 미루다가 불똥이 대중의 불편함으로 튀면서 이들의 불만이 AT 관료의 귀에까지 들어가자 뒤늦게 행동을 취했다는 관료주의의 향기다. 그 간 시내버스 기사들은 회사를 통해서, 노조를 통해서, 혹은 AT에 직접 임금 인상을 포함한 근무 환경 개선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잡음은 항상 있었어도 꾸역꾸역 그런대로 시내버스 운행이 되자 AT는 그간 이들의 요구를 외면하거나 무시했었는데, 종기가 마침내 곪아 터지자 뒤늦게 외양간을 고치러 나선 모양새다. AT의 한해 대중교통 운영 예산은 5억 달러로 알려졌다. 5억 달러에서 8백만 달러를 미리미리 버스기사 임금 인상을 위해 썼다면, 올해와 같은 “bustastrophe”(버스 대재앙: 2018/19년 당시, 웰링턴의 시내버스의 높은 운행 취소율을 빗댄 용어)는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두 번째는 이 임금 인상을 AT가 주도하고 AT가 부담한다는 것이다. 지역 운행권을 놓고 버스 회사 간 경쟁적 입찰을 주 골자로 한 현 PTOM 제도하에서 AT와 버스 회사 간의 계약은 일종의 턴키(turnkey) 방식이다. 버스기사의 임금을 포함한 모든 운영 비용을 지역 운행권을 따낸 버스 회사가 떠맡는 조건의 계약인 것이다. 따라서 버스 회사에 소속된 버스기사의 임금은 각 회사 경영진의 결정 사항이고, 그들의 부담 사항이다. 회사는 지지든 볶든 비용을 어떻게든 아껴 AT로부터 받은 약정 금액 한도 내에서 그들의 이익을 최대한 추구하는 구조다. 따라서 각 회사가 버스기사의 임금을 올리든 내리든 원칙적으로 회사가 책임지고 결정하는 사항이다. 그런데 이미 완성된 계약에 의거 나 몰라라 해도 될 AT가 팔을 걷어붙이고 자신에게 유리한 계약을 무시한 채 추가 부담하기로 나선 것이다. 더구나 AT는 코로나 영향으로 줄어든 승객 탓에 대중교통을 통한 수입이 줄어들었고, 여기에 높은 인플레이션과 비용 증가로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전체 예산을 놓고 볼 때 8백만 불이 큰 금액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쉽게 결정 내릴 상황 역시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버스 기사 부족으로 예정된 버스 운행이 취소될 경우 해당 버스 회사는 운행 취소 횟수만큼 AT에 벌금을 낸다. 어찌 보면 AT 입장에서는 급할 것도 아쉬운 것도 없는 계약 조건이며, 발등에 불 떨어진 곳은 AT가 편성한 시간표대로 운행을 제때 하지 못해 날마다 벌금을 내야 하는 버스 회사이다. AT는 예정대로 버스 운행을 하지 못한 버스 회사로부터 벌금을 받아 재정 수익을 올리는 한편, 그 회사를 닦달해서 이후 운행 취소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엄중 경고’하는 것까지가 딱 그들의 할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AT가 직접 나섰다는 것은 운행 취소와 그 원인이 된 버스기사 부족이 특정 회사의 문제가 아닌 모든 회사의 문제, 즉 업계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버스 회사를 쪼아도 개선하기 힘든 마른 수건 쥐어짜기라는 것을 이해한 듯하다. 실제로 시내버스 운전기사 부족은 오클랜드만의 문제가 아니라 뉴질랜드 전국에 걸쳐 발생하고 있는 문제다.
버스기사들은 왜 떠나는가?
현 PTOM 제도하에서 버스 운행의 효율성이 그 전에 비해 향상되었다는 여러 지표가 있다. 그런데 버스기사들은 왜 자꾸 떠나려고 하고, 2종 이상 대형 면허를 가진 사람들은 왜 버스 대신 흙먼지가 나고 육체적 노동이 더 필요한 트럭 운전을 하려고 하는가? 어쩌다 버스기사는 다른 직장에 취직하기 어려운 사람이 마지막에 고려하는 last resort가 되었을까? PTOM 효율성의 어두운 이면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PTOM의 향상된 효율성 지표는 버스 기사의 열악한 노동 조건과 근무 환경이라는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버스기사의 고혈을 짜내서 높아진 효율성이다.
과거 한 버스 기사의 운행 일정표를 볼 기회가 있었다. 2019년 5월부터 뉴질랜드 모든 직장의 피고용인은 Employment Relations Amendment Act 2018에 따라 2시간 노동 후에는 10분간의 유급 휴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버스 업계는 아침과 저녁 출퇴근 시간에 승객이 몰리는 특성이 감안되어 엄격하게 2시간 규정을 적용하지 않기로 이후 노사정간 타협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본 그 버스기사의 운행 일정표는 법과 노사정간 타협이 기대한 신의성실 원칙을 무시한 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버스 기사의 노동을 착취하려는 버스회사의 의지가 노골적으로 보였다.
예를 들어, 그 기사의 운행 일정표에는 종착점에 도착해서 10분 뒤 그 종착점을 다시 기점으로 승객을 태우고 다른 목적지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이 10분을 버스 회사는 노동자가 2시간 노동 후에 가질 권리가 있는 10분간의 유급 휴식으로 처리한 것이다. 당연히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 버스기사의 경우 종착점에 도착하면 승객을 내리고, 또 필요할 경우 다른 대기 장소로 이동할 필요도 있다. 그리고 출발 시간 몇 분 전부터는 승차장에 미리 가서 승객을 태워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업무의 일부이며 실제로 10분 사이에 그 버스기사가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화장실 갔다 오는 시간 정도이다. 그나마도 교통 체증 때문에 늦게 도착하면 화장실도 갔다 오지 못한 채 다음 트립을 시작해야 한다. 그럼에도 단지 이전 트립의 도착 시간과 다음 트립의 출발 시간 사이에 10분간의 갭이 운행 일정표상 있다는 것을 이용해 이를 유급 휴식 시간으로 처리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 버스기사는 4, 5시간을 제대로 된 휴식 없이 계속해서 운전하는 것이다. 이래 놓고 그 버스 회사는 법을 준수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버스기사가 직장에 정을 붙이고 싶어도 정이 갈 수 없는 환경이다.
과연 해결책은 무엇인가?
버스기사 부족 현상에 대한 접근/해결 방식도 당연히 접근 주체의 사회적 계급적 위치 그리고 그에 따른 이데올로기에 따라 차이가 있다. 전통적으로 사회적 책임보다는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리버럴 국민당의 경우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극우 성향의 국민당 의원 Simeon Brown은 이번 노동당 정권의 버스 운행권 국유화 허용 조처에 대해 전형적 신자유주의 독트린에 따라 비판한다: “비효율적이며 납세자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대중교통 국유화의 문을 열었습니다….PTOM 입찰 방식은 비용의 투명성과 절감을 가능하게 하는 민간 업체 간 경쟁을 가져옵니다.”
국민당보다 더 우경화되어있는 Act 당 역시 국민당과 기본적으로 같은 입장인데, 한 발짝 더 나아가 이민을 통해 이 버스 기사 인력난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웰링턴 카운슬 의장 Daran Ponter 역시 지난 7월, 교통부 장관 Michael Wood에게 공개서한으로 이민 문턱을 낮추어 버스 기사를 해외로부터 수입해야 한다고 건의한 바 있다. 마침 Michael Wood가 6월부터 이민부 장관도 겸직했기 때문에 장관 한 명이 마음만 먹으면 교통 문제를 이민으로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하에, 이전부터 버스 회사를 중심으로 계속 시도되었던 버스기사 수입을 다시 제안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우파 정당은 버스기사의 저임금 및 열악한 근무환경과 효율성(누구를 위한?)은 별개의 문제이거나,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냐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들의 접근 방식은 결국 이민자라는 이등 시민 혹은 해외 수입 상품 노동자는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 환경도 참고 견디므로 이들을 통해 해결한다는 입장이다.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 환경의 개선을 통해 근본적 문제 해결을 도모하자는 입장과는 거리가 멀다.
버스 회사 고용주들의 모임인 Bus and Coach Association of New Zealand의 회장 Ben McFadgen의 인식도 Simeon Brown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이번 중앙 정부의 국유화 방침에 대해 “중앙집권 모델에서 서비스가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경쟁이 효율성을 창출합니다.” 그러면서 국유화의 부작용으로 모든 부담이 납세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여론에 호소까지 한다. 회원이었던 각 지역 버스 회사가 국영화(지자체 소속)될 경우 자신의 존립 기반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그의 입장에서는 무슨 명분을 대서라도 반대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와 고용주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의 국회의원과 버스 회사 고용주를 대변하는 단체가 이처럼 납세자를 걱정하지만, 버스 기사 역시 그들이 걱정해야 할 납세자 중 한 명이라는 것은 간과 혹은 외면한다.
이와 관련하여 버스기사의 저임금을 비용 절감으로 인식하는 Simeon Brown 식의 입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으나, 경쟁이 효율성을 가져온다는 그의 리버벌 시장 경제 원칙에 대해서 우리는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국영화는 2022년 현재도 여전히 많은 이에게 과거 소련과 동구권의 고압적 관료 그리고 그들에 의해 운영되는 비효율적 시스템을 연상시킨다. 버스기사가 공무원이 된다면 지금도 기대하기 쉽지 않은 버스 기사의 친절함은 더 사라지고, 대신 불친절하고 갑처럼 행동하는 버스기사가 등장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효율성과 친절한 대민 서비스는 국영 기업 - 뉴질랜드 상황에서는 국가 소유 기업(state-owned enterprise :SOE) - 으로부터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을 다시 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 시내버스 운영의 국영화 허가 조처는 남반구 섬나라에서만 뜬금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영국의 많은 좌파를 설레게 했던 전임 영국(UK) 노동당 당수 제레미 코빈의 2015년 당내 경선 도전을 유일하게 지지했던 당시 현직 장관 Mark Drakeford가 이끄는 현 웨일스의 집권 노동당 역시 지난 5월 버스 회사 국영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두 나라의 국영화는 그 배경이 약간 다르다. 웨일스의 국영화 방침은 민간 버스 회사가 돈 되는 루트만 운영하면서 시민 전체의 공익적 편의를 외면한 데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반면 뉴질랜드, 예를 들어 오클랜드는 시민의 공익적 측면에서 루트 선정과 운행 지침은 여전히 AT가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PTOM의 한계로 말미암아 버스기사의 빈번한 퇴사와 같은 문제점으로 지속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인식에서 기인한다. 이런 차이에도 웨일스나 뉴질랜드 모두 시내버스 운영을 사기업에 맡긴 결과 대중교통 운영의 궁극적 목적인 시민 편의 제공에 실패했다는 같은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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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버스회사 소유주가 외국 회사일 경우 뉴질랜드 시민 편의와 더욱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2020년, 해밀턴에 본사를 두고 있는 Go Bus가 호주 Kinetic Group에 팔렸다. 다음 해인 2021년,Ritchies는 미국 투자회사 KKR에 팔렸다. 그리고 올해 2022년 초, 웰링턴에 본사를 둔NZ Bus역시 Go Bus를 인수한 호주 회사Kinetic에 팔렸다. 이로써 뉴질랜드에서 시내버스를 운행하는 빅 3 모두 외국 회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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