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뉴질랜드 이야기

Biculturalism, Binationalism으로 돌아오다

김 무인 2023. 4. 12. 11:01

 

머리말

 

이 블로그의 초창기였던 2019년, “Biculturalism과 Multiculturalism 사이의 딜레마”라는 제목으로 뉴질랜드 정치와 사회가 당면한 구조적 딜레마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한 글을 쓴 적이 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아시안 이민자를 받아들이면서 다문화, 다인종화 되어가는 뉴질랜드이지만 역대 정부는 이 사회 변화에 부응하는 장기적 정책을 수립, 실행하지 못한 채 그때그때 여론의 향배를 봐 가면서 이민/이민자 정책을 실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와이탕이 조약에 기반한 biculturalism 때문이라고 그 글에서 주장했었다. 다문화/다인종 되어가는 뉴질랜드 현실과 마오리와 비마오리 이주민(조약 당시는 파케하)이라는 두 당사자 간만의 조약 정신을 고집하는 biculturalism과의 긴장 관계는 정점에 달했던 1990년대 이후 어느 정도 수면 아래로 가라 앉은 듯 보였다. 그런데 그  biculturalism이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co-governance라는 구체적 실체를 가진 binationalism으로. 

 

 

1840년의 와이탕기 조약 (The Treaty of Waitangi)

 

 

Co-governance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직역하면 ‘공동통치’로 번역될 수 있는 co-governance는 약 10년 전에 등장한 용어다. 조약 정착(Treaty settlements) 과정에서 해당 지역 마오리 부족(iwi)과 지방 혹은 중앙 정부가 천연자원을 관리하기 위해 파트너십으로 관리 조직을 형성할 때였다. 이런 유형의 조직 창설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co-governance가 최근 뉴질랜드 정치권뿐만 아니라 파케하를 중심으로 한 일반 시민 사회에서도 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Co-governance가 현 뉴질랜드 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된 데에는 전임 제신다 아던 정권이 추진했던 Three Water reform programme - ‘삼수(三) 개혁’이라는 다소 생뚱맞고 코믹한 한국어로 직역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 개혁안의 핵심 중 하나로 이 개념이 소개되었고 마오리 지도층은 이를 강력히 지지하는 반면 야당과 파케하를 중심으로 많은 대중은 이 개념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이 들고 있 때문이다.

 

 

 

 

비즈니스 세계의 동업 개념처럼 공동통치라는 용어 역시 일반인에게는 권력의 분점이라는 뉘앙스를 일단 강하게 느낄 것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뉴질랜드 사회구성원의 다수이자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파케하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는 듯하다. 리버럴 민주주의 사회에서 최소한의 요식 행위인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도 않은 그룹이 자신의 일상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결정권자로 참여한다는 사실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절반의 권력을 가지고 통치 행위에 참여하는 그룹이 전혀 모르는 그룹이 아니라 이 땅의 원주민(tangata whenua)을 자처하는 마오리다. 일견 리버럴 민주주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co-governance(공동통치) 개념을 가볍게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아니나 다를까 마오리의 공동통치 요구 뒤에는 강력한 두 후원군이 존재한다. 

 

하나는 당연히 1840년의 ‘와이탕이 조약’( 영어: Treaty of Waitangi, 마오리어: Te tiriti o Waitangi)이고, 다른 하나는 2007년 유엔의 ‘원주민 권리 선언’(Declaration on the Rights of Indigenous Peoples)이다. 한때 일부 마오리에 의해 사기라고 치부되었던 와이탕이 조약은 20세기 후반부터 조약에 근거, 정부로부터 나름 진지한 해석과 그에 따른 보상이  진행됨에 따라 아오테아 뉴질랜드(Aotearoa New Zealand)라는 호칭처럼 건국 당사자 중 하나로서 동업권(partnership)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마오리에게 제공한다. 그리고 유엔의  원주민 권리 선언은 유럽 정착민이 세운 국가들(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입장에서 보면  수백 년에 걸쳐 구축된 기존 정치권력 체계의 기반을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원주민의 권리를 급진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따라서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그리고 미국은 이 선언에 대한 승인을 거부한 유일한 네 나라가 되었다.  마오리에게 전통적으로 우호적인 노동당의 당시 수장 헬렌 클락도 승인을 거부했었는데, 이후 정권을 장악한 국민당의 존 키는 2009년 이 선언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엔의 ‘원주민 권리 선언’

 

 

원주민 권리 선언을 뉴질랜드에서 실현하기 위해 조직된 워킹 그룹이 내놓은 리포트가 바로 He Puapua다. 제신다 아던의 지시에 따라 2019년에 만들어진 이 워킹 그룹이 준비한 리포트 역시 급진적이다. 즉, ‘집단으로서 마오리는 다른 모든 뉴질랜드인과 동등한 목소리를 가지며 뉴질랜드를 공동으로 통치해야 한다’(a bi-governed state where Māori as a bloc have an equal voice to all other New Zealanders)고 제안하기 때문이다. 영어 원문에서는 의미가 확실히 전달되는데, 마오리가 다른 에스닉 그룹에 속하는 뉴질랜드 시민과 동등한 목소리를 가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오리의 목소리는 다른 모든 뉴질랜드인의 목소리를 합친 것과 같은 무게를 가진다는 의미이다. 다른 표현으로 2022년 기준, 약 17.2%(892,000명)의 마오리가 나머지 82.8%의 인구와 동등한 50%의 권력을 가진다는 뜻이다. 즉 뉴질랜드는 마오리와 나머지 에스닉 그룹(파케하 포함)이 공동으로 통치하는 국가(bi-nation state)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He Puapua (출처: NZCPR)

 

 

와이탕이 조약과 유엔의 원주민 권리 선언에서 마오리가 특히 강력하게 의지하는 조항은 자결권이다. 자치권(영어: self-governance 혹은 sovereignty, 마오리어: kawanatanga)과 항상 동반되는 자결권(영어: self-determination, 마오리어: tino rangatiratanga)이다. 누군가에게 (특히 백인 기득권층) 와이탕이 조약과 유엔의 선언에서 천명된 원주민의 자결권은 상징적이고 원칙적 의미로 다가가지만, 일부 마오리에게는 현재도 진행 중인 파케하에 의한  식민화를 타파하고 궁극적으로 구현해야 할 역사적 행동 목표가 된다. 여기에 올해 2023년 2월 뉴질랜드 인권위원회(the Human Rights Commission)가 마오리의 공동통치를 옹호하는 차원을 넘어 강력하게 촉구하는 리포트를 발표하면서 공동통치를 요구하는 마오리 측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지만 반대로 파케하에게는 불안감을 가중하였다.  

 

 

뉴질랜드 인권위원회 커미셔너 Meng Liu Foon

 

 

높은 인기를 등에 업고 친마오리 행보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던 제신다 아던이 시작한  삼수개혁의 co-governance 프로그램은 마오리에게는 삼수자원과 인프라에 대한 공동통치라는 기대를, 그리고 파케하에게는 삼수자원과 인프라를  마오리에게 넘겨주는 것 아니냐는 공포와 불안감만을 남긴 채 제신다 아던은 번아웃을 선언하고 돌연 사퇴하였다. 이제 그 공은 새로운 수상 크리스 힙킨스에게 넘어갔다. 올해 10월 선거에서 승리를 자신할 수 없을 정도로 이전에 비해 인기가 많이 떨어진 집권노동당으로서는 파케하 유권자의 표를 의식,  마오리와의 공동통치 제안이 대중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개혁안을 일단 뒤로 미루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전 글 Biculturalism과 Multiculturalism 사이의 딜레마”에서 식사 초대를 받고 방문한 집에서 초대한 남편과 초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아내가 싸우느라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눈치껏 냉장고에서 먹을 것을 찾아 먹는 손님으로 1990년대 아시안 이민자의 처지를 비유한 적이 있다. 2023년 현재, 남편 파케하와 아내 마오리 사이에 또다시 시작된 부부싸움을 우리 아시안 이민자 역시 또다시 멀뚱멀뚱 지켜보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 멀뚱멀뚱 상황에서 이 글은 일차적으로 삼수 개혁으로 촉발된 공동통치 개념에 대한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함이고, 더 나아가 부부 싸움 기세에 눌려 제법 ‘쪽수’가 됨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시안 이민자는  언제까지 어정쩡한 손님으로 남을 것인가에 대해 같이 생각해보기 위함이다.



삼수개혁(Three Waters reform programme)이란 무엇인가?

 

이 글에서 Three Waters reform programme는 삼수(三)개혁이라고 번역된다. 삼수는 사실 우리가 거주하는 주택(특히 단독)에서 매일 접하는 대상이다. 플러머(plumber)가 되기 위해서 제일 처음 배우는 것이 이 세 가지 물에 대한 구분이다. 우리 주택에는 세 종류의 물이 파이프를 통해 흐르고 있다. 하나는 상수돗물이라고 부르는 drinking water 혹은 tap water로서 우리가 일상에서 마시고 세탁 등에 사용하는 깨끗한 물이다. 상수원에서 각 가정으로 실핏줄처럼 물을 공급하는 배관으로 연결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하수라고 부르는 watse water다. 화장실 변기 물이나 주방 싱크 설거지 후 물 등이 그것인데 각 가정의 하수 배관을 통해 하수처리장으로 집결한다. 마지막으로 stormwater다. 빗물이다. 빗물은 하수처리장을 거칠 필요가 없이 곧바로 강이나 바다로 빠져나가면 되므로 하수 배관과 별도의 배관을 통해 배출된다. 지금 정부가 대대적으로 손보려 하는 것은 이 세 종류의 상하수 인프라  모두다. 

 

 

웰링톤의 노후 상수관이 터졌다 (출처:stuff)

 

 

내무부의 2021년 리포트에 따르면 노후되고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상하수 인프라에 대한 대대적 정비를 위해서는 향후 30~40년에 걸쳐 천백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집권 노동당의 삼수 개혁 프로그램은 이런 정비 필요성에 대응하고, 향후 상하수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정비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이 67개 지방정부가 각자 관리하는 시스템보다는 권역을 크게 4개로 나뉘어 중앙집중식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에서 나온 것이다. 참고로 2021년에 설립된 Taumata Arowai(정부 조직이지만 영어 이름은 없다)는 물의 질을 관리하는 전국 조직이지만 수돗물만 관리한다.

 

 

Taumata Arowai

 

 

2020/21년 기준, 뉴질랜드 가구의 86%는 상수도와 연결되어있고 85%는 하수도와 연결되어 있다. 10% 이상의 가구 - 대부분 시골 지역 - 는 빗물 등을 마실 물로 이용하고 있으며 비슷한 가구수가  자체 정화조(septic tank)를 통해  하수 처리를 하는 셈이다. 현재 67개의 지방 정부가 이 상하수 인프라를 각각 관리하고 있는데 시설의 노후화와 제대로 된 보수 미비로 상수도의 경우 약  21%의 물이 운반 과정에서 누수로 사라지고 있다. 더 나아가 제대로 된 관리 미비로 지역 주민의 건강이 치명적으로 위협받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6년 Hawkes Bay Hastings의 바로 아랫 마을 Havelock North의 관정이 있는 상수원이 장마로 오염되면서 지역 주민 40%에 해당하는 5,500명이 캄필로박터 감염증(campylobacteriosis)에 걸려 58명이 입원하고 4명이 관련 질병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오염이 된 Havelock North의 관정(출처:RNZ)

 

 

이전부터 다들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지만, 결정적 실행 동기를 찾지 못한 채 차일 피일 미루던 상하수 정비 문제가 이 2006년 사건으로 발등의 불이 되었다. 2017년 당시 집권당이었던 국민당도 Havelock North 사건을 리뷰했고, 정권이 바뀐 후 2019년 집권 노동당은 마침내 개혁을 추진하기로 한다. 2021년 6월, 준비한 개혁안 추진을 위해 본격적인 캠페인에 돌입한 집권당은 그러나 각 지방정부뿐만 아니라 대중의 저항에도 직면하게 된다. 이 저항에 따라 원래 2021년 12월에 의회에 상정될 예정였던 개혁안은 2022년 12월까지 일단 연기된다. 개혁안을 보완할 필요성을 느낀 집권 노동당은 2021년 11월에 워킹그룹을 결성하고 이 그룹은 다음 해인 2022년 3월, 리포트를 작성해 정부에 제출했고 정부는 그 리포트에 기반을 둔 수정안을 4월에 발표한다. 이 수정안에 따르면 전국을 4대 권역으로 나뉘어 각 권역의 삼수 인프라를 총괄 지휘 감독하는 조직인 Water Services Entities를 설립한다. Water Services Entities를 설립하는 법안은 작년 2022년 12월 노동당 단독으로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 법안에 따르면 각 지역 정부는 여전히 수자원에 대한 소유권을 보유하나 운영권은 이 4개의 Water Services Entities로 이양된다. 이 조직은 이사회라고 할 수 있는 지역대표모임(regional representative group)에 의해 운영된다. 이 모임의 인원 구성은 50%의 지방 의회 임명자와 50%의 지역 마오리 부족(iwi) 임명자로 구성되며 의결은 다수결이 아닌 전원 동의를 원칙으로 한다. 그리고 이 지역대표모임은 지역 사회와 환경이 최상의 상태로 유지되도록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수자원 정비 관리를 직접 담당하지는 않는다. 대신 이 정비 관리를 담당할 하청 조직의 이사회 구성을 책임진다. 집권 노동당의 원래 계획대로라면 2021년과 2024년 사이에 현재 지방정부에 있는 상하수 인프라에 대한 모든 권한이 이 4개의 조직에 이관되어야 한다. 

 

 

삼수개혁에서 제안된 4대 권역

 

 

그러나 국민당과 Act 당은 물론 대부분 지방정부 수장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 2022년 10월의 지방선거에서 선출된 새로운 시장들의 76%도 삼수 개혁안을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오클랜드 시장 웨인 브라운도 오클랜드시 산하 수자원 관리 운영 조직인 watercare에게 개혁안에 협조하지 말라고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정부가 개혁안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수자원 관리에 있어 지방정부의 배제다. 지방정부는 오래전부터 수자원 관리에 대한 개혁을 주장해왔는데 그들 보기에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당사자인 자신들을 배제하는 것이다. 한편 납세자로서 지역 주민은 수자원에 대한 자신의 통제권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정부는 전국 수돗물의 질을 관리하는 중앙 조직 Taumata Arowai는 찬성하지만, 지역 수자원 소유와 관리는 지방정부가 계속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중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개혁안이 처음 선보인 2021년 10월 여론 조사에서 54%의 응답자는 이 개혁안을 반대했다. 지금도 개혁안에서 제안된 마오리 부족과의 공동통치 개념을 중심으로 반대 움직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편 대다수 마오리 부족은 수질과 환경 개선을 명목으로 이 삼수개혁안에 찬성을 보내고 있다. 2021년 5월 남섬 최대의 마오리 부족  Ngāi Tahu은 “우리는 남섬 수자원 인프라의 50% 소유권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운영에 참여하고 싶을 뿐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소규모 마오리 부족은 새로운 개혁안에서는 자신의 참여가 어렵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제신다 아던이 마무리 짓지 않은 채 물러나면서 그 뒤를 이어받은 힙킨스는 야당, 지방정부 그리고 대중의 저항에 직면해 원칙적으로는 여전히 강행 의지를 보이고 있으나, 삼수 개혁을 주도했던 지방정부 장관 Nanaia Mahuta를 해당 보직에서 물러나게 함으로써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를  의식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못미' : 제신다 아던은 끝까지 Nanahia Muhauta를 지키려고 했다 (출처:NZ Herald)

 

 

 

삼수 개혁의 뜨거운 감자, co-governance 

 

삼수 개혁안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부분은 각 지역 삼수 자원의 관리를 총괄 지휘하는 조직인 소위 water service entities의 이사회 격인 지역대표모임(regional representative group)이다. 이들이 해당 지역 삼수 자원 관리에 대한 전략적 방향을 결정하는데 이 모임의 구성원 전부가  리버럴 민주주의의 대의제처럼 지역 주민의 선거를 통해서 선출되는 것이 아니다. 50%는 지역 의회에서 지명하지만 다른 50%는 지역 마오리 부족이 자체적으로 지명한다. 이 지점이 논쟁이 된다. 

 

대의제도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지만 최소한 민의를 대변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반해 지역 마오리 부족이 지명하는 이사회의 이사는 마오리 부족이 아닌 지역 주민과는 별개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기 의사를 반영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생존과 일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삼수 자원의 관리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 많은 대중, 특히 리버럴 민주주의와 평등주의에 익숙한 파케하에게는 쉽게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선출하지 않은 사람이 나와 관련된 것을 통치하다니?”라는 반응일 것이다. 더 나아가, 선출 대표들의 정책 결정이 실패로 판명될 경우 이들에게 책임을 묻고 교체할 수 있는 권리 같은 민주주의 핵심 요소들이 이 마오리 부족 지명 이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지역 마오리 부족의 엘리트들을 도전할 수 없는 권력 지위에 올려놓는 셈이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일부 마오리 지도자들은 co-governance 용어의 대체를 요구한다. 아무래도 governance(통치)라는 용어가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대신 ‘파트너십’(partnership) 혹은 마오리어 ‘마히타히’(Mahi Tahi:working together)를 제안한다. 제신다 아던이 후속 조치 없이 갑자기 ‘나몰랑’ 물러나면서 oo-governance에 대한 파케하 대중의 저항에 준비 없이 직면한 힙킨스 수상은 이들의 불만을 완화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못할 것이 없다는 식으로 그 중 마히타히 용어를 고려해보자고 제안한다. 개인적으로 파트너십보다는 나은 선택 같다. 파트너십도 문제를 제기하기 쉬운 친숙한 영어 개념이기 때문이다. 대신 마히타히는 직관적으로 비판하기에는 주저할 수밖에 없는 낯선 마오리 용어다.

 

 

끝까지 웃을 수 있을까?

 

 

(주제와 관련 없지만 앞으로 뉴질랜드에서 살려면 마오리 용어에 대해 친숙해져야 한다. 관공서의 호칭부터 마오리어는 이제 상징적으로 영어 옆에 혹은 밑에 병기하는 수준을 넘어 영어 없이 자체만으로 활용이 된다. 개인적으로 마오리 사전을 컴퓨터 즐겨찾기에 올려놓았다. 어떤 기사는 마오리 사전 없이는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마오리 용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파케하 대중과는 별도로 그동안 제대로 관리를 못 했다 치더라도 지역 주민의 납세로 운영되던 지역 삼수 관리 운영권을 하루아침에 빼앗기게 된 지방정부의 박탈감과 소외감에 근거한 삼수 개혁안 반대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만하다. 수자원의 소유권이 여전히 지방 정부에 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통제권을 갖지 못한다면 그만큼 지방 정부의 권력은 축소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는 뭐니 뭐니 해도 직접 민주주의에 가까운 형태의 민주주의가 최고다. 67개 지역으로 세분되어있다는 것은 삼수 관리의 효율성 측면에서는 단점일 수 있겠지만 풀뿌리 민주주의 관점에서 보면 유권자의 목소리가 훨씬 더 잘 반영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명분에서도 공감이 간다.   

 

납세자이자 국가 자산의 궁극적 소유자인 시민, 그 중 특히 파케하의 이 삼수 개혁안에 대한 불만과 불안은 뉴질랜드라는 국가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1인 1표 리버럴 민주주의 사회에서 왜 마오리라는 특정 그룹에 자꾸 특혜를 주느냐”가 이 불만과 불안의 기본 출발점이다. 왜 17.4%의 유권자에게 50%의 권리를 부여하느냐는 원론적 질문이 다시 등장한다. 특히 파케하는 자신은 알지도 못하는 자신 조상이더라도 마오리에게 한 범죄적 행위를 나름 인식하고 그에 대한 정부의 보상도 수용할 수 있으나, 그 보상이 “언제까지?” 그리고 “어디까지?”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볼멘 목소리를 할 수 있다. 이런 근본적 불만과 불안을 가진 상태에서 이번 삼수 개혁안에서 앞으로 나라의 삼수 관리와 운영을 마오리와 함께하겠다고 하니까 파케하들은 이제 불안을 넘어 공포까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말이 함께 하는 것이지 현실적으로 지역 마오리가 동의하지 않는 결정은 있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2022년 5월 기사에 따르면, co-governance와 마오리들만을 위한 건강 관리부서  the Māori Health Authority 신설 구상이 드러난 이후 특히 온라인으로 반 마오리 정서가 고양되고 있다.  

 

 

삼수개혁의 co-governace와 함께 파케하를 불편하게 만드는 마오리 전담 건강 부서

 

 

Co-governance 찬성자들

 

이에 대해 삼수 개혁안을 찬성하는 노동당 소속 정치인이나 마오리 인사들은 “두려워할 것 없다. 이것은 애초 와이탕이 조약에 명시된 국가(crown)와 마오리와의 파트너십 정신을 반영한 것뿐이다. 마오리에게 수자원 소유권을 넘기겠다는 것이 아니다. 공통 목표를 위한 공동 경영 개념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반대편을 점잖게 설득하려 한다. 그러는 한편  미디어를 통해 co-governance라는 것이 그렇게 공포의 대상이 아닌, 알고 보면 매우 적합한 민주주의 수단으로서 이미 다양한 형식의 co-governance가 친숙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우리 주변에 존재해왔음을 주지시킨다. 예를 들어, 오클랜드의 Newton Central School의 학부모 이사회가 절반의 마오리 학부모와 절반의 비마오리 학부의 전원합의체로 매우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co-governance임을 상기시키면서 co-governance는 추악한 권력과 자원의 다툼에 관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협력에 관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Newton Central School의 학부형 이사회의 파케하와 마오리 공동의장(출처:newsroom)

 

 

실제로 co-governance 형식은 뉴질랜드에 산발적으로 분포해 있다. 그리고 이들 형태를 보면 자원 소유권의 공유가 아니라 자원의 경영 혹은 운영의 파트너십 형태에 가깝다. 예를 들어, 테 우레웨라 국립공원 (Te Urewera National Park), 와이카토와 황가누이 강 (the Waikato and Whanganui rivers) 그리고 오클랜드의 14개 화산분화구(puna maunga) 관리도 현재 지역 마오리 부족(iwi)과의 co-governance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중 와이카토강 관리국(Waikato River Authority)은 대표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10년에 창설된 이 조직은 해당 지역 마오리 부족으로부터 빼앗은 강 주변에 파케하가 고밀도 목축업을 운영하면서 강을 둘러싼 생태계가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되자 해당 지역 부족인 Waikato  Tainui가 불만을 제기함에 따라 정부가 Waikato  Tainui 부족과 손을 잡고 공동으로 강을 관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와이카토강 관리국은 마오리 부족 출신 이사 5명과 정부 임명 이사 5명으로  구성되며 의장도 양측에서 한 명씩인 공동의장제를 운용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특별한 불협화음 없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와이카토강을 돌보고 청소하는 데 드는 비용을 결정하고 집행, 관리한다. 또 비교적 최근인 2022년 6월, 타우포 지역 의회는 지역 씨족(hapu) Ngāti Turangitukua와 Turangi 지역의 천연자원 개발을 놓고 co-governance 협정을 맺었다. 어떻게 보면  백인 정착민이 오기 전까지 해당 지역에서 수백년을 살아왔던 지역 마오리 부족의 의견을 존중하는다는 것은 상식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와이카토 강 관리국이 관리하는 와이카토 강 유역

 

 

사실 이런 형식의 co-governance는 파케하 대중에게도 큰 거부감이 들지 않을 것이다. 정부 기관과 해당 지역 터줏대감이자 현지 지식이 풍부한 마오리 부족이 같이 미래를 위해 지역 천연자원의 보존과 활용에 머리를 맞대는 형식은 명분도 있을뿐더러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권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일이 없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와이탕이 조약에 명시된 마오리의 자결권과 자치권이 이런 식으로 특정 범위와 특정 지역에 국한되어 적용된다면 반대할 일도 없을 것이다. 한편 자신들의 자결권과 자치권이 분명히 와이탕이 조약에 명시되어 있는데도 지금까지 파케하 정권에 의해 의도적으로 무시되었다고 생각하는 마오리로서는 이 co-governance 개념이 어떤 형식으로든 현실 정치에 도입되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기존 co-governance 사례를 제시하면서 찬성 정치인과 마오리들은 반대측을 설득한다.  하지만 여의찮다 싶으면 매우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 적극적 반대 세력에 대해서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전가의 보도를 서슴지 않고 꺼내 든다. 하지만 이런 돌변적 태도는 co-governance에 우호적인 대중조차 등을 돌리게 하는 파시스트적이며 매우 비민주주의적  태도다. Co-governance 찬성 측 입장에서는 와이탕이 조약 자체가 마오리와의 파트너십을 의미하므로 국가 자원의 운용에 마오리가 50% 지분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므로 이를 반대하는 것은 인종차별적 감성에 근거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충분한 대중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야당도 반대한 상태에서 여당 단독으로 입법 통과가 된 이 법안은 여전히 국민적 공감대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는데도, ‘한 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라고 전의를 다지면서 이런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뿐이며 찬성자들의 진의에도 의구심을 가지게  만든다. 

 

Co-governance의 가장 큰 장점으로 홍보되는 것 중 하나는 다수결이 아닌 전원동의제라는 점이다. 파케하식 다수결 민주주의의 희생양이 되어왔다고 생각하는 마오리는 co-governance의 전원동의제 장점을 누누이 강조해왔다. 그러던 사람들이 이 법안 실행은 다수결로 밀어붙이려고 하고 있다. 이들의 전투적 입법 실행 강행 의지는 입장을 제대로 정하지 않은 많은 대중에게 co-governance의 미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태로 다가가지 않을까? 다수결보다 전원 합의가 원칙적으로 그리고 보기에도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이 논의 과정에 참여할 수 없다면 전원 동의라는 것은 빚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것이다. 더 나아가 삼수 개혁에서 제안된 이사회의 전원 동의제도는 전원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장시간이 흐를 경우 마지막 수단 (vote-as-a-last-resort)으로 75%의 다수결로 의제를 통과시킨다는 규정을 남겨두고 있다. 결국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는 결정은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적 목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집단적 의사 결정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마오리 측 이사들이기 때문에 마오리 측에서 25%의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마오리 측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은 마지막 순간까지 내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마찰음을 일으키는 co-governance 모델들 

 

실제 기존 co-governance 모델 중 마찰음이 계속되는 곳도 있다. 우리에게는  테러리스트들이 모여 테러를 준비하고 있다는 첩보를 근거로 뉴질랜드 경찰이 2007년 감행한 습격으로 잘 알려진 우레웨라 산맥(Te Urewera)에 대한 co-governance 모델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 이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거주하는 iwi(부족)는 투호이 부족(Ngāi Tūhoe)이다. 티비를 통해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마오리 운동가 타메 이티(Tāme Iti)도 이 부족원이다. 투호이 부족은 와이탕이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투호이 부족은 2013년, 정부로부터 1억 7천만 달러의 보상금을 받았고 그때까지 국립공원이었던 Te Urewera는 국립공원 지위에서 벗어나 하나의 법인체가 되었다. 정부와 투호이 부족은 Te Urewera의 보존과 협력을 염두에도 co-governance 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 협약은 이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최근 코로나 사태로 장기간 공원이  폐쇄되면서 관련 시설물은 더욱 황폐화 되었다. 

 

 

Te Urewera 이사회는 기존 산장도 임의적으로 철거해 반발을 사고 있다 (출처: newshub)

 

 

이에 대해 환경부(DOC)는 개선을 위해 자금을 투입할 의사를 밝혔지만 Te Urewera 이사회 의장 Tamati Kruger는 자금을 받으면 이는 다시 Te Urewera가 정부 산하 국립공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또 자금 지원이 지역 마오리의 삶을 향상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또한 이  Urewera를 찾는 방문객의 허용 여부를 놓고 환경부와 Te Urewera 이사회는 부딪히기도 했다. 정부의 입장은 마오리 이사회는 방문객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입장인 반면, 위에서 언급한 마오리의 완전한 자결권과 자치권을 지향하는 이사회 의장 Tamati Kruger에게는 그 역시 마오리의 결정 사항인 것이다. 국립공원에서 공동 관리로 변경된 이후 적절한 유지보수를 거부하고 일반 방문객의 공원 방문도 2년간 금지한 투호이 부족은 환경부 장관의 어필이 있고 나서야 공원을 재개장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몇 년 전 Occupation of Ōwairaka/Mount Albert 캠페인으로 미디어에 하루가 멀다고 등장했던 co-governance 조직이 있었다. 위에서도 언급한 오클랜드 14개의 화산 분화구를 관리하는 Tūpuna Maunga Authority다. 2014년에 설립된 이 기관은 마오리가 지정한 6명의 이사와 카운슬이 지정한 6명의 이사로 구성된 이사회에 의해 운영되는데 마오리 측이 이사회 회장을 맡고 카운슬 측이 부회장을 맡는다. 이 조직이 문제의 중심이 된 것은 이사회에서 식민화 이후 유러피안에 의해 분화구에 심어진 유러피안 수종(소위 파케하 나무) 대신 토종 수종(소위 마오리 혹은 원주민 나무)을 심는다고 결정하고 기존 나무를 제거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 집행 과정이 지역 주민(많은 경우 백인)과 어떤 토론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실행되자 지역 주민이 이에 반대하며 물리적으로 분화구를 점령하는 상태가 발생한 것이다. 단순히 말하면 마오리는 식민화의 상징인 파케하 나무를 없애고 자기들의 나무를 심자는데 입장인 데 반해 파케하는 “나무가 무슨 죄냐? 나무에 인종이 있냐?”면서 나무를 구하자는 입장인 셈이다. 이 갈등은 결국 대법원까지 올라가면서 수목 제거 계획은 중단되었다. 이 과정에서 파케하로 구성된 카운슬 측 이사들은 지역 주민의 반대 입장을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한 채 전원 기존 수목 제거에 동의하였다. 이 사례는 왜 많은 이들이 co-governance를 두려워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배경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동네 주민이 Mt.Albert에 모여 시위하고 있다 (출처: RNZ)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가볍게 지나치지 말아야 할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Tūpuna Maunga Authority 이사회 의장 Paul Majurey는 지역 마오리 부족과의 연결 고리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부동산 개발 업자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이익과 co-governance 조직의 공익 간 이해관계의 잠재적 충돌도 이사로 선정되는 데 문제가 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삼수 개혁 역시 같은 우려를 가질 수 있다. 삼수 관리를 둘러싼 자원의 사용 과정에서 크고 작은 많은 이권이 달려있는데 이 이권이 삼수 co-governance 조직 이사회(Regional Representative Groups) 마오리 측의 사적 이익을 위해 이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Paul Majurey (출처:newsroom)

 

 

확실히 co-governance는 와이탕이 조약에서 지향한 ‘파트너십’ 이데올로기의 구체적 형태다. 하지만 지금까지 특정 천연자원에 국한되었던 이 파트너십이 공공서비스와 지방 정부에게까지 확대되려는 시점에 있다. 마오리의 관심사는 담수, 기후변화, 보존, 자원관리, 주택, 정의, 건강, 헌법 등을 포함 거의 전방위적으로 광범위한 문제를 다룬다. 즉 마오리와 관련된 것은 마오리와의 co-governance 형식을 거쳐야 한다면 실질적으로 뉴질랜드 국가의 모든 의사 결정 과정(자결권)과 결정 집행 과정(자치권)에 마오리가 참여할 수밖에 없다.

 

일부 마오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co-governance를 조약에 명시된 자결권과 자치권의 완전 실현을 위한 교두보로 여길 뿐 이것을 최종 목표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노동당 정권의 co-governance는 마오리 권리를 인정한 과거보다 진일보한 계획이지만 그 권리는 어디까지나 뉴질랜드 국가 시스템 안에서의 인정일뿐이다. 그들에게 자결권과 자치권은 뉴질랜드라는 국가시스템과 별도로 작동하는 완전한 독립적 권리인 것이다. 

 

2023년 지금도 파케하와 마오리의 사회적 역학 관계는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 혹은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와 흙수저로 집단으로 구분되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개인주의에 기초한 리버럴 평등 개념이 확고한 파케하들에게는 이런 마오리 그룹의 그룹 정체성에 기초한 독립 요구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불편함과 불안함 그리고 더 나아가 공포감은 이해할만하다.  그래서 반대하는 정치인은 co-governance를 분리주의 혹은 분열주의로 몰아붙인다. 



‘마오리’에 대한 환상?

 

뉴질랜드는 아오테아로아라고 불린 섬에 살던 마오리 원주민 부족 사회가 자본주의 국가 영국에 의해 식민화를 통해 탄생한 유러피안 정착민 사회이다. 20세기 후반부터 등장한 정착민 국가(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미국)에서의 원주민 권리 회복 운동을 통해 원주민의 아픈 과거 피식민화 과정이 재조명되면서, 정치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그들 권위가 복구되어야 한다는 의식은 확산, 정착되었다. 이런 의식은 2023년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더구나 다른 나라와 달리 와이탕이 조약이라는 서구적 관점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공식 계약서가 존재하는 뉴질랜드에서 마오리의 권리 회복 주장은 결코 힘으로 쉽게 찍어 누를 수 있는 특징의 것이 아니다. “이번에는 또 뭐야?”라는 신경질적 반응을 대다수 백인 대중(파케하)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마오리 측에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상황에서 나는 “마오리”라는 지칭 대상의 추상성과 낭만화에 주목하고 싶다. “그동안 마오리는 파케하 그리고 파케파 정권에게 많이 차별당하고 약탈당했으니까 그 차별과 약탈에 대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라는 원칙적 공감대가 그간 형성되었고, 그에 따라 일부 파케하의 불만 그리고 진행 과정에서의 잡음도 있었었지만, 지금까지 보상 과정에 큰 마찰음은 없었다. 여기서 내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과연 이 보상이 구체적으로 마오리 ‘누구’에게 전달되었고, 이후 마오리 ‘누구’에 의해 그 보상이 사용되었냐는 점이다. 즉, ‘마오리’에게 보상이 이뤄졌으니까 이제 되었지라고 쉽게 넘어갈 수 있느냐가 나의 문제의식이다. 나의 이 문제의식은 상대적으로 막대한 보상이 이뤄졌음에도 왜 내가 목격하는 많은 마오리는 여전히 가난하고, 건강하지 않으며, 높은 범죄율에 시달리냐는 궁금증에서 시작한다. 보상의 수령 주체와 혜택을 누려야 할 많은 - 대부분이 아니라면 - 마오리 대중 간에 큰 갭이 있다는 느낌이다. 다른 말로 보상의 열매가 마오리 사회 전반의 삶의 향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물론 긍정적으로 눈길을 끄는 사례도 있다. 2023년 기준 약 16억 달러의 자산을 소유하면서 뉴질랜드에서 세 번째 부자 부족으로 알려진 오클랜드의 Ngāti Whātua Ōrākei 부족은 약 4,000명의 부족원에게 무료로 건강보험에 가입해주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마오리는 여러 질병뿐만 아니라 흡연과 비만에서 다른 에스닉 그룹보다 높은 비율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들이 의사나 치과를 찾아가는 비율은 타 그룹에 비해 낮다.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비용 때문이다. 이들을 위해 부족은 부동산 투자 수익의 일부를 부족원의 사립 건강보험 비용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30채의 주택을 건설함으로써 부족원의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서도 이익금을 활용하기도 했다.

 

 

마오리 부족(iwi)의 재산 (출처: nzherald)

 

 

하지만 모두 Ngāti Whātua Ōrākei 부족같지는 않다. Ngāti Whātua Ōrākei부족보다 더 부자인 뉴질랜드 두번째 부자 부족인 Waikato Tainui 부족(2023년 기준, 약 20억 달러)은 약 84,000명의 마오리가 부족 소속이라고 알려졌다. 이 부족의 의장  Tukoroirangi Morgan는 마오리 기업 대표들 모임인 The National Iwi Chairs Forum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NZ First Party 출신의 우파 전직 국회의원이다. 이 부족의 중심 거주지라고 할 수 있는 Hamilton 시를 가보라. 낮부터 술에 쩔은 마오리 남성들, 아이들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마오리 엄마들, 옷은 언제 빨았는지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짐작할 수도 없는 가운데 부모 제약 없이 슈퍼마켓에서 설탕이 잔뜩 들어간 탄산음료를 사는 마오리 어린이 등, 도시 빈민 마오리의 전형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2022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이 부족 기업은 약 2억 7천만 달러의 세후 수익을 기록했다. 물론 현재의 수익은 미래를 위한 재투자에 사용되어야 하기도 하겠지만 이 부족 기업의 막대한 수익이 전체 마오리는 차치하더라도 자기 부족원의 삶의 질 향상에 사용된다는 흔적은 발견하기 힘들다. 물론 장학금과 대출 제도 같은 부족원들을 위한 서비스는 제공하고 있지만 본격적이고 전반적 삶의 질  향상과는 거리가 멀다. 

 

 

Waikato Tainui 부족 의장 Tukoroirangi Morgan (출처:newstalkzb)

 

 

이런 관찰은 마오리 집단 내에서도 계층 그리고/혹은 계급이 존재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마오리 부족은 서구 자본주의의 개별적 자본가 대신 부족 자본주의(tribal capitalism)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개인 명의가 아닌 부족 명의로 보상금 그리고 그를 통해 구입한 비즈니스 자산을 소유하고 있지만, 이들 자산의 운용은 부족의 지도자 그룹 혹은 특권 계층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부족 기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은 부족의 지도자 회의를 통해 그 분배 및 운용 방향이 결정된다. 이 과정은 일반 서구권 기업의 이사회 운영 방식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즉 마오리 부족이 운영하는 기업은 여느 자본주의 기업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전술했듯이 이들 부족 기업의 수익은 등록된 부족원의 보편적 복지를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 돈을 잘 버는 마오리 부족 기업이 있음에도 여전히 우리 주변의 마오리는 하류 계층의 삶을 사는 이유이다. 더 나아가 1/4의 마오리는 어느 부족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70%의 마오리는 그들 부족의 전통적 거주 지역을 벗어나 살고 있다. 이들에게는 더더욱 혜택이 미치지 않는다. 

 

마오리 자체 경제(Maori economy)는 지난 20년 160억 달러에서 700억 달러로 급성장했으며 매년 5% 성장을 유지해서 2030년에는 1천억 달러의 자산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갈수록 많은 공공 서비스가 마오리 부족 기업에게로 이전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학교, 사회 복지 그리고 최근은 ‘By Māori for Māori'를 표방한  새로운 Māori Health Authority가 그것이다. 이에 따라 마오리 사회 내에서도 사업가, 학자, 법률가, 정치가 그리고 국영 기업 중역과 같은 특권 계층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절대다수 마오리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다른 에스닉 그룹이 9%인데 반해  마오리 가구는 36%가 복지 수당에 의존하고 있다. 2013년과 2018년 사이에 마오리의 복지수당 신청은 3배로 증가했으며, 2018년 기준 마오리 가구의 가계 부채는 90억 달러, 마오리 직업의 절반 가까이는 저숙련, 불안정, 저임금 직업이다. 

 

 

투호이 부족원 타메 이티도 부족 내 반민주주의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출처: nzherald)

 

 

마오리 부족이라는 집단은 결코 낭만화될 수 없는 현실 속 자본주의에 적응한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부족 내에서도 물질적 자원을 놓고 씨족(hapu)들끼리 경쟁하기도 하고, 기득권을 가진 부족 지도자 계층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오롯이 부족원의 웰빙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 주변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기도 한다. 그 한 예가 위에서 언급한 투호이 부족이다. 정부로부터 보상금 1억 7천만 달러를 받은 이 부족은 2021년  부족  이사회 의장 Tamati Kruger에 대한 불신이 부족원들 사이에 급속도로 커졌다. 타메 이티(Tāme Iti)도 불만을 가진 사람 중 하나였다. 그에 따르면 정부로 받은 보상금은 부족원 전체를 위해 공평하게 사용되지 않았다. 어떤 씨족은 자금 지원을 요청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부족 이사회는 보상금을 아무런 제약없이 임의적으로 사용한다. 이에 불만을 제기한 씨족에게는 각종 불이익을 주는 등 독재를 하고 있다면서 그의 사임을 촉구했다. 

 

 

투호이 부족 의장 Tamati Kruger​

 

 

이처럼 마오리 사회의 안을 들여다보면 일반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뉴질랜드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를 ‘부족자본주의’(tribal capitalism)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부족 내에는 자본가라고 할 수 있는 부족 특권층이 존재하고 그 밑에 일반 노동자가 위치해 있다. 정리하면, 와이탕이 조약 정착 절차에 따라 뉴질랜드 정부의 마오리에 대한 보상은 부족 별로 차별화되어 이루어졌으며, 보상금은 부족 내 지도자 계층으로 구성된 이사회 결정에 따라 부족 자체가 기업이 되어 뉴질랜드 자본주의에 투자, 편입된다. 마오리 부족 기업의 수익은 일반 자본주의 기업과 마찬가지로 종업원 주주라고 할 수 있는 부족원들에게 전격적으로 환원되지 않아 부족원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마오리 부족 기업이 성장하고 마오리 자체 경제 규모가 커져도 많은 마오리 - 특히 도시 노동자 - 는  여전히 현재의 가난, 저 교육, 고 범죄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Co-governance와 마오리 부족 기업과의 연결 고리

 

현재 와이카토강 관리국(WRA)은 매년 6백만 달러를 관리비 명목으로 용역 계약 업체에 지불한다. 이 업체들에는 마오리 기업도 포함된다. 새로이 신설되는 삼수 개혁 의사 결정 기구 Water Services Entities와 그 산하 하청업체에 용역비로 지급될 예산 규모는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향후 30년에 걸쳐 1천 2백억 달러 ~ 1천 6백 5십억 달러의 자금을 집행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삼수 개혁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엄청난 비즈니스 기회가 해당 지역 마오리 부족과 끈을 가지고 있는 사기업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마오리 부족이 삼수 개혁의 co-governance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도 와이탕이 조약 정신의 이행이라는 명분뿐만 아니라 관련 마오리 부족과 기업의 상업적 이해관계가 전반에 깔려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국민당와 Act 당이 co-governance를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도  그런 비즈니스 기회가 파케하 기업가에게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것이 현재 삼수 계획의 co-governance를 둘러싼 나의 우려다. 이사회 결정 과정 참여는 그렇다 치더라도 삼수 계획에서 필수적으로 동반될 하청업체 선정에서 마오리 부족 기업 혹은 해당 지역 마오리 부족 혹은 부족 특권층과 사적 연결고리가 있는 기업에 대한 특혜가  예상된다. 즉 삼수 계획의 co-governance가 대의명분과 달리 프로젝트에 참여한 마오리 (관련) 업체 - 이는 분명 사적 자본주의 기업이다 -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삼수 관리와 운영의 사유화는 있어서는 안 된다. 마오리 (연관) 기업이 삼수 프로젝트에 독점적으로 참여한다면 삼수 자원의 소유권이 여전히 지역 카운슬에 있다 하더라도 마오리 (관련) 기업에 의한 사유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치적 주권도 원칙적으로 유권자 시민에게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도 지방정부도 시민 유권자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삼수개혁이 실행되고 이후 결정권을 쥔 Water Services Entities에 관료제가 정착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이 운영 관리의 하청을 담당하면 삼수자원에 대한 소유권이 지방정부에 있다하더라도 시민의 삼수자원 관리에 대한 주권 행사는 어려워질 것이 뻔하다. 

 

뉴질랜드 자연 유산의 보존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원주민 마오리만 가지고 있지 않다. 파케하도 가지고 있고, 나를 포함한 아시안 이민자도 갖고 있고, 미래를 생각하는 모든 이들이 갖고 있다. 자연의 소중함과 자연과의 공존의 중요성을 체험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마오리의 적극적 환경 정책 참여가 파케하 자본가들의 무절제하고 무책임한 낙농업에 제동을 걸어줄 구원 투수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 적이 있었다. 그 기대는 아직도 일정 영역에서 유효하다. 하지만 이제 구별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면에서 이번 삼수 개혁에 마오리 참여의 명분으로서 마오리의 자연 친화적 특성을 든다면 이는 어폐라고 본다. 자연 보존을 줄기차게 주장해 온 그린피스도 있지 않은가? 

 

삼수자원은 본질적으로 자연 자원이 아니라 인간이 구축한 인프라다. 그리고 뉴질랜의 자연 유산을 위협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백인이라는 인종이 아니다. 백인이 주가 되어 온 자본가 계급이다. 마찬가지로 마오리 부족이 현재 집착하는 것은 여전히 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고있는 고향 산천에 대한 애착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자원에 대한 소유권 혹은 영향력 확보를 통한 금전적 이득의 추구로 보인다.  마오리를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범신론적 정령 집단으로 보는 것은 환상이다. 삼수 개혁 관련 그들의 참여 의지는 상당 부분 자본 증식 욕구이다. 



맺음말: 바이네이션 기반의 다문화주의?

 

co-governance 아젠다를 삼수 개혁에 집어 넣은 노동당 엘리트들은 뉴질랜드를 두 민족(bi-nation) 국가 속 다문화(multicultural) 사회라는 프레임으로 재구성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co-governance는 1990년대 뉴질랜드 사회에서 자주 거론되던 biculturalism의 2020년대 버전인 셈이다. 그동안 골치가 아팠지만, 솔로몬의 해법을 찾지 못해   “biculturalism이냐? multiculturalism이냐?”라는 양자 선택적 상황에서 그 결정을 계속 뒤로 미루었던 역대 정권들이었는데, 마오리와의 관계를 biculturalism으로부터 binationalism으로 격상시켜 더 이상 multiculturalism과 충돌하지 않은 다층적 구조 설정을 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렇게 다층적 구조를 공식화한다면 뉴질랜드 정부는 이후 보다 공격적인 다문화 정책을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대외적 국가 브랜딩과 관광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마오리를 배려한 binationalism이 뉴질랜드 파케하 정부는 필요했고, 대외 정책과 무역을 위해서는 아시안 이민자를 배려한 multiculturalism이 필요한 뉴질랜드 정부로서는 언젠가 정리해야 할 역사적 숙제였다. 다만 이 두 과정이 현재처럼 신자유주의 자본 논리 - “비상품화 영역도 상품화하라!” - 에 의해 주도될 경우 사회적 정의 차원에서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신자유주의의 만물 상업화 논리에 따라 이루어질 binationalism과 multiculturalism의 조합은 공정하고 평등하며 다양한 에스닉 그룹 사회의 선순환이라는 이상적 미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다층적 설계 덕분에 결과적으로 마오리의 아시안 이민자에 대한 입장도 변화하기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오리는 이전까지 아시안 이민자 유입으로 자신들의 원주민 지위가 위협받고 심지어 다른 이민자와 동일한 소수 민족 중 하나라는 지위로 전락하지 않을까 경계해 아시안 이민자에게 비우호적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자신들의 지위 - nation - 가 아시안 이민자의 지위 -culture - 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서인지 여유 있는 우호로 변했다. 반면 파케하 및 유럽 이민자에 대해서는 경계심이 증가하는 현상을 보였다. 이는 부디칠 일이 없으면 아시안 이민자가 같은 항렬 백인 파케하의 패권을 경계하는 원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그동안 뉴질랜드에는 다문화주의를 표방한 정책도 법안도 없었다. 유일하게 있다면 원주민 마오리의 사촌 격에 해당하고 다른 이민자 그룹에 비해 사회경제적 지위가 현저하게 처지는 남태평양 출신 이민자들에 대한 배려 정책이 있을 뿐이다. 더 나아가 마오리에 대한 그동안의 특혜 정책 역시 이들에 대한 지위를 건국 파트너로서 인정해서 실행했다기보다는 20세기 복지 국가의 전통 속에서 공동체 내 사회 경제적 약자에 대한 affirmative action 차원의 성격이 강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신생 국가로서 국가 정통성과 정체성의 확보, 이질적 사회구성원의 공동체 의식과 소속감의 강화, 그리고 대외 무역과 관광 촉진을 위해 마오리 문화의 적극적 활용이 필요했던 역대 파케하 정권의 필요성 속에서 마오리에 대한 이런 특혜성 정책은 뚜렷한 헌법적 근거 혹은 국민적 공감대가 없는 상태에서도 양쪽 모두 큰 불만 없이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시기 경제적으로 뉴질랜드에 불황이 없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영국이 EU에 편입되면서 우호적 대외 무역환경이 사라짐과 동시에 불황이 시작되자 이어 등장한 신자유주의 정권들은 불황 타개책의 한 방편으로 비백인 국가에 대한 이민 문호를 열어젖히면서 많은 유색 이민자가 급속하게 들어왔다. 대부분 저소득 노동자 계층으로 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그렇지 않아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마오리는 이에 더해 자신들의 원주민 지위에 대한 불안감을 급격히 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마오리들의  지위에 대한 불안감과 불만은 이후 와이탕이 조약에 대한 재해석과 그에 따른 대대적 보상 요구의 길을 터놓았다. 그 결과 1984년 데이비드 롱이 노동당 정부부터 와이탕이 조약은 본격적으로 건국 합의 문서의 지위를 쟁취하게 된다. 물론 이런 움직임은 세계적 차원에서 정착민 사회 내 원주민의 지위에 대한 전면적 회복이라는 큰 물결과 함께 이루어졌다. 이 중 가장 상징적인 기폭 역할을 한 것은 2007년 유엔의 원주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UNDRI)이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마오리에게 culture가 아닌 nation 지위를 부여했지만 향후 뉴질랜드 정부는 실질적으로 국가 권력의 할애를 하기보다는 여론과 미디어를 통해 마오리의 실질적 권력 분할 혹은 독립 요구에 대해서는 지속적 차단을 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삼수 개혁의 co-governance 요구에서 보듯 마오리 특권 계층과 파케하 엘리트들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면 일정 권력 공유 그리고 마오리에 대한 일정 특혜(자결권과 자치권)는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부쩍 강화된  관공서의 명칭과 문서에서의 마오리 용어 사용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질적 binationalism을 일부에서 주창하지만, 마오리도 현재의 뉴질랜드 국가에서 완전한 분리 독립의 길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선택할 수  없을 것이다. 뉴질랜드라는 서구 국가 시스템과 인프라는 최대한 활용하는 한편 토지, 자원 그리고 복지서비스 등에 대한 자체 운영 관리가 이들이 지향하는 자결권과 자치권의 궁극적 지향 모델일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 개인적으로 이런 기회가 그들에게 주어질 경우 그들이 과연 공평하고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그 자결권과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이 우려는 위에서 계속 언급한 마오리 부족 내 특권 계층의 기득권화에서 기인한 것도 있지만 내가 목격한 마오리 사회의 전반적 기풍에 대한 불안감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다. 이 불안감의 근원이 나의 편견과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하에 솔직하고 싶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과거 한때 많은 한국 교민이 학생 수당을 받을 요량으로 다니는 학교들이 있었는데, 그 중 유명한 곳 중 하나가 마오리 기관에서 운영하는 학교였다. 내 기억에, 일주일에 이틀만 그것도 짧은 시간 수업을 하고 시험과 같은 학사 일정 관리도 매우 느슨해서 많은 사람이 편하게 학생 수당을 받을 수 있다고 좋아했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관련해서 마오리 학교 기관에서 발행한 학위에 대해서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의견을 밝힌 파케하 학자의 논문을 읽은 기억도 난다. 마오리가 자신들의 자결권과 자치권을 다른 에스닉 그룹도 지지해주길  원한다면 보다 책임감있고 유능한 자결과 자치 선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그들이 사용할 자원은 결국 나를 포함한 뉴질랜드 노동자 대중의 노동으로 생산된 자원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강조하고 싶다. 건국 파트너인 마오리에 대한 지위 인정과 그에 따른 특혜 혹은 보상이 뉴질랜드 사회의 가장 저열한 사회 계층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대다수 마오리 노동자 삶의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은 채 마오리 자본주의 경제 내 마오리 자본가와 그를 둘러싼 특권계층의 이익에 국한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시선을 거둘 수 없다. 더 나아가 와이탕이 조약은 원칙적으로 비마오리 이주민(tangata tiriti – people of the Treaty)과 마오리 원주민(tangata whenua – people of the land)간의 조약이다. 즉 마오리 입장에서는 파케하이건 아시안 이민자이건 그저 똑같은 외지인이다. 따라서 와이탕이 조약에 근거한 binationalism은 파케하와 아시안 이민자 간에 형성되는 잠재적 긴장 관계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한다. 21세기를 사는 아시안 이민자로서 이는 19세기 와이탕이 조약에 근거한 bi-nationalism의 명확한 한계다.

 

bi-nationalism에 기반한 multiculturalism으로 뉴질랜드가 향해 간다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두서없는 질문들의 열거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과연 이 프레임은 한국 교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리는 우리와 다른 반열에 오른 마오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들도 몇백 년 전에 이 땅에 들어온 이민자이므로 지금의 우리와 궁극적으로 같은 지위로 봐야 할까? 아니면 일제강점기 한반도를 생각하면서 내 땅을 내 눈앞에서 뺏긴 그 심정을 헤아려 그들에 대한 정치적 복원/보상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그들 땅에 살고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할까?  그렇지만 마오리의 높은 실업률, 범죄율, 흡연율, 알코올 마약 중독률, 높은 복지 의존율 등을 언제까지 식민화의 트라우마 결과라는 사회 역사적 책임으로 전가할 수 있을 것인가? 마오리는 스스로 노력하고 있는가? 마오리의 원주민으로서의 집단 정체성에 대한 국가 차원의 특별한 인식과 배려는 과연 뉴질랜드에 미래를 위해 언제까지 유효한 처방일까?  나같은 1세대는 파케하와 마오리 간 집안싸움에 멀뚱멀뚱 눈칫밥을 먹는다 치더라도 우리의 2, 3세대는 파케하와 마오리가 벌이는 이 와이탕이 굿판에서 언제까지 구경꾼, 정치적 이등 시민으로 남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