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블로그의 지속적 편집 에러로 교정/편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 교열이 되었고 보다 나은 가시성/가독성을 가진 '네이버 포스트'(링크)를 권장합니다.
풍요로운 땅의 빈곤(Poverty in a Land of Plenty)
가난한 자는 영원히 우리에 함께 하는가? (The Poor Will Always Be with Us?)
Kellie McNeil
20년 넘게 떠나 있다가 살기 위해 어릴 적 살던 동네에 다시 돌아왔던 어느 일요일 오후, 한 청년이 음식을 구걸하기 위해 내 집 문을 노크했다. 나는 그의 상황을 묻지 않은 채 부엌에 있는 음식을 되는대로 싸서 그에게 주었다. 이후 저녁을 먹으며 내가 살았던 이 동네가 어쩌다 낯선 사람에게 음식을 구걸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았다. 풍요로운 땅에서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래서 나는 뉴질랜드의 빈곤에 대한 이해와 우리가 이 빈곤에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대한 사회학적 탐구 여정을 시작했다.
모든 국민의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이 있는 나라에 빈곤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게 하는 명제이다. 이글은 현대의 빈곤, 그 역사적 구조적 배경 그리고 뉴질랜더 중 누가 가장 영향을 받는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빈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실제 현실임을 외면하려는 태도에 대해서도 이 빈곤의 지속에 대한 배경으로 탐구될 것이다.
극심한 빈곤, 상대적 빈곤과 결핍의 구별 (Differentiating Extreme Poverty, Relative Poverty and Deprivation)
‘빈곤’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20세기 초에 발전된 생계 개념과 종종 연관되어 있다. 이런 접근 방식에서는 빈곤은 ‘인간의 기본적 필요품 - 음식, 안전한 마실 물, 위생 시설, 건강, 쉴 곳, 교육과 정보 - 에 대한 심각한 부족으로 특징지어지는 절대적 혹은 극심한 조건으로 이해된다. 빈곤은 수입뿐만 아니라 서비스에 대한 접근과도 직결된다’. 우리 대부분은 미디어에 규칙적으로 등장하는 야윈 어린이들의 모습에 친숙할 것이다. 이 이미지는 많은 뉴질랜더로 하여금 빈곤은 오직 가난한 나라에서만 벌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강화시킨다. 뉴질랜드는 빈곤을 호소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부유한 나라이고 따라서 ‘자립’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연민 혹은 도움을 받을 자격이 덜 하다고 여긴다.
이런 극심한 형식의 빈곤은 분명 대부분의 가난한 뉴질랜더들이 직면하고 있는 형식의 빈곤은 아니지만 ‘상대적 빈곤’은 부자 나라들에서도 존재하는 현상으로 널리 인정된다. 이 빈곤의 형식에서 가난한 자는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 소득보다 훨씬 낮은 소득을 가진 개인들로 정의된다. 이런 상황은 ‘그 사회에서 최소한의 적정한 표준적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경제적 사회적 자원에의 접근을’ 어렵게 만든다. 상대적 빈곤에는 3가지 큰 특징이 있다. 첫째, 일부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항상 빈곤하게 되어 있지만, 상대적 빈곤의 핵심은 그 사회의 표준적 삶을 기준으로 정의된다는 것이다. 한 사회의 상대적 빈곤은 다른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둘째, 상대적 빈곤은 그 것에 수반되는 사회적 오명 탓에 종종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형태로 경험되어진다. 예를 들어, 나의 식량 부족에 관한 연구에서 사람들은 자주 그들의 음식이 없는 상태를 감추기 위한 경험들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당신은 당신이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고 또 그렇게 느끼고 싶지도 않을 겁니다. 외부에서 보았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당신이 온갖 노력을 했는데도 극복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들춰내는 것을 정말 싫어할 것입니다.
빈곤에 대한 상대적 접근의 세 번째 특징은 단순히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물질적 자원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같은 권리, 기회 그리고 시민권과 공동체 의식을 가진 한 사회의 완전한 구성원으로서 다양한 사회활동에의 참여 같은 사회적 측면도 포함한다. 식량 부족으로 발생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소외에 관해 내 연구의 한 참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주 외출을 하지 않습니다. 만약 음식을 지참해야 하는 사회적 모임이라면 그런 것은 이제는 나에게 해당하지 않습니다. 만약 내가 이바지하는 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면 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내 사회적 삶을 급격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나는 그들이 필요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뭔가 기여를 하고싶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나를 마음 아프게 합니다.
더 나아가 상대적 빈곤과 ‘결핍(deprivation)’ 간의 구분이 필요하다. 상대적 빈곤이 양적인 면에서 자원에 대한 개인의 객관적 물질적 접근을 반영한다면 결핍은 더 주관적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 결핍 여부는 사회적 상황과 한 사회가 ‘충분함(adequacy)’이라고 판단하는 주관적 기준에 따라 다르다. ‘물질적 결핍’은 상품, 서비스, 자원, 부속 시설과 물리적 환경에 대한 부족을 의미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회적 결핍’은 가정이나 자신의 공동체를 포함한 한 사회 내 구성원에게 주어진 역할, 관계, 기능, 관습, 권리와 책임 등을 개인이 떠맡을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사회-경제적 결핍(socio-economic deprivation)’이란 용어는 여러 영역에서 동시에 다양한 형식의 결핍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영역들에서 사람들의 능력은 ‘사회의 구조 안에서 개인과 그룹의 위치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경제적 요소들’에 의해 방해를 받는다. 줄이자면, 결핍은 개인, 가족 혹은 그룹이 사는 사회와 관련하여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느낌의 경험 상태를 의미한다. 빈곤이 종종 사회적 물질적 결핍을 가져오지만, 결핍의 ‘경험’은 또한 개인의 경제적 상황과 관련되지 않은 이유로 발생할 수 있다.
빈곤에 대한 이해: 빈곤 측정(Poor Accounting: Measuring Poverty)
상대적 빈곤과 결핍의 주관적 측면들은 이 개념들이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으며 정의들에 대한 폭넓은 동의에도 어떻게 그것들이 측정돼야 하며 무엇이 ‘충분한 (adequate)’ 소득, 표준적 삶 혹은 사회적 수용 정도를 구성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보통 이어진다. ‘충분함’은 여러 어젠다에 따라 조작될 잠재성이 있다. 비록 상대적 빈곤과 결핍을 측정하기 위한 여러 수단이 정부 조직들, 학계와 사회 섹터 활동가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 다른 많은 선진국과 달리 ‘뉴질랜드는 빈곤 혹은 물질적 곤경의 측정 면에서 정부가 공식적 적법성을 부여한 측정 수단이 없다’. 이 측정 수단들은 서로 다른 변수(variables)를 사용하는 까닭에 조금씩 다른 결과 수치를 생산한다 - 이 때문에 주제에 대한 논의의 혼란을 가져오기도 한다.
2010년대 들어 사회개발부는 뉴질랜더들의 약 15%가 비공식적 국가 ‘빈곤 기준선(poverty line)’ - 주거비용을 제외한 후 국내 중간소득의 60% 기준 - 밑에 있다고 보고했다. 이 기준 밑에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 빈곤 상태로 이해된다. 만약 우리가 사회학적으로 빈곤의 본질에 관해 탐구하려 한다면 빈곤을 일으키는 구조적 조건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특정 그룹들이 이런 빈곤 통계에서 다른 그룹들보다 왜 더 자주 등장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누가 빈곤 기준선 밑에서 사는가? (Who’s Living under the Poverty Line?)
뉴질랜드는 유감스럽게도 선진국들 중에서 가장 높은 아동빈곤을 기록하는 국가 중 하나이다. 아동빈곤은 빈약한 건강, 노동시장에서의 개인의 기회에 영향을 미치는 낮은 학업성취도, 범죄에 대한 높은 노출 그리고 증가하는 조기 사망 가능성처럼 한 개인의 인생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런 모든 것들은 개인뿐만 아니라 크게는 사회에 심각한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동반한다.
2014년 자료에 의하면 뉴질랜드 아동의 24%가 상대적 빈곤 속에 살고 있는데 이들 중 60%는 최소 7년간의 성장기를 뉴질랜드에서 보냈다. 아동빈곤은 감성적 사회 이슈인데 이들의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부모의 게으름을 비난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편하겠지만 이런 비난은 보호자의 능력을 침해하는 구조적 요소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아동빈곤을 부모의 ‘나쁜 선택’의 결과물이라는 인식 틀에 넣음과 동시에 이들 부모를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사람들로 낙인찍는다. 식량결핍을 겪는 가정에 관한 나의 연구 결과, 부모들- 특히 엄마 -은 자기 자녀를 위해 종종 굶으며 또 음식의 분배를 둘러싸고 이 가족들 간의 긴장은 자주 발생한다.
나는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고 나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이게 현재 우리 위치야. 난 굶을 거야. 그리고 난 그날 물만 마시었습니다… 내가 굶는 날 내 아들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음식은 우리 사이, 우리와 자녀 사이, 그리고 자녀 간 가장 많이 싸우는 소재입니다. 우리는 항상 심판의 역할을 해야 하며 아이들을 위해 음식 분배에 대한 규칙을 만들곤 합니다. 모든 아이에게 공평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통계적으로 마오리와 퍼시피카 사람들이 뉴질랜드의 다른 에스닉 그룹들보다 상대적 빈곤을 경험할 확률이 더 높다. 이는 역사적 그리고 구조적 요소들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 세계의 다른 원주민들처럼 마오리 역시 그들이 전통적으로 의존했던 생산수단에 대한 방해받지 않는 통제권을 제대로 행사해보지 못했다. 토지와 다른 자원에 대한 식민지적 강탈은 최근 들어서야 회복하기 시작한 마오리 경제의 붕괴를 오랜 기간 지속시켰다 (비록 최근의 신자유주의 경제와 조약 정착은 마오리에게 양극화된 결과를 가져오고 있지만). 그러나 마오리가 다 빈곤하다거나 마오리 빈곤은 고치기 힘들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지난 10년간 마오리 경제의 자산 기반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고 현재 뉴질랜드 경제 발전의 주요 구성 요소가 되었다. 한편 이런 마오리 경제의 부활은 마오리 빈곤을 되돌리고 탈식민화 프로젝트의 진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 경제 관리방식의 도입 탓에 마오리 자산의 혜택이 엘리트 계급에 한정되는 것을 비판하는 움직임도 있다.
남태평양 사람들의 뉴질랜드로의 이주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제조업의 팽창 그리고 이에 따른 미숙련 노동자에 대한 수요에 의해 주도되었다. 세계화, FTA 그리고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뉴질랜드의 관심은 이 제조업 섹터에 대한 광범위한 외부조달이라는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노동집약적 제조업은 임금이 싼 - 특히 아시아 -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퍼시피카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많이 고용된 제조업 일자리는 급격히 축소되었다. 한편 서비스 산업의 급격한 성장은 퍼시피카 사람들 노동자들을 많이 흡수했지만, 이 섹터는 저임금, 임시직 등으로 말미암은 수입의 불안정성으로 악명이 높다. 덧붙여 퍼시피카 사람들은 종종 그들 교회조직과 그들 고향 마을에 금전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뉴질랜드 출생의 퍼시피카 사람들이 증가하고 이들이 높은 수준의 훈련과 고등교육을 받고 있지만, 이 커뮤니티가 빈곤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새로운 기술 역량을 발전시키는 데에는 몇 세대가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또 특정 가족형태 - 특히 싱글 부모 -는 저소득과 빈곤에 노출될 확률이 다른 그룹에 비해 높다. 싱글 부모는 노동시장 참여와 사회이동과 가계경제의 향상을 위한 기회들을 잡기까지 많은 장벽에 부딪힌다. 이는 사회적 차별과 아동양육의 성적 본질을 포함한 다양한 요소들의 합작에 기인한다. 2009년에 43%의 싱글 부모 가정은 그들의 수입이 직장으로부터 나왔든지 아니면 복지수당에서 나왔든지 상관없이 상대적 빈곤 속에서 자녀를 키우고 있다. 일하는 가난한 자(working poor)는 뉴질랜드에서 상대적으로 최근의 현상이다. 푸드뱅크와 공동체 식사제공 단체의 발표로는 일하는 사람 중에도 이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관찰이 예산 조언 서비스기관에서도 이루어졌는데 이들에 의하면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근무 시간 등으로 말미암은 불충분한 소득 탓에 새로운 고객 그룹이 생기고 있다. 현재의 정부정책 접근방식이 사회적 안전보장을 통해서보다는 노동시장의 참여를 통해 사람들이 잘살기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직장 생활이 뉴질랜더로 하여금 빈곤에 빠지지 않게 한다는 것을 더는 의미하지 않게 되고 ‘세계 최고의 예산도 충분한 돈을 가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무엇이 빈곤을 일으키는가? (What Drives Poverty?)
최근 수십 년간 여러 요소가 뉴질랜드 경제적 자원 분배의 변화를 가져왔고 그 결과, 보다 심화한 소득불균형과 빈곤에 대한 대책의 감소로 이어졌다. 이런 변화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중요한데 왜냐하면 빈곤은 개인의 결함보다는 강력한 구조적 힘의 결과라는 대부분 사회학자의 견해와 궤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이데올로기 서사의 지배 역시 갈수록 많은 뉴질랜더들이 불평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에 일조하고 있다.
견인차 1: 정치적 경제적 지형의 변화 (Driver 1: Changes to the Political and Economic Landscape)
현재 뉴질랜드의 ‘많이 가진 자(have lots)’와 ‘없는 자(have nots)’ 간의 가시적 격차는 지난 20세기 중반 불평등에 대한 정치적 불관용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2차대전 직후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사회 중 하나로 여겨졌다. 이 업적은 1890년부터 1912년까지 집권했던 Liberal 정부와 더불어 상당 부분 1935년에 집권한 노동당 정부에 의해 성취되었다. 첫 번째 리버럴 정권의 경우 대규모 토지 사유화를 깨트렸고, 소득세 프로그램의 실현,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의 법제화 그리고 세계 최초의 국가연금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뉴질랜드가 평등사회라는 이미지를 구축케 한 정부는 두 번째 노동당 정부였다. 1938년에 노동당 정부는 대공황 기간 경험된 빈곤에 대비하여 사회안전보장법을 제정했다. 세계 최초의 복지국가라는 명칭에 걸맞게 뉴질랜드는 시민에게 ‘요람에서 무덤까지(cradle-to-grave)’ 복지를 제공했는데 그 내용은: 노인연금과 가족 수당; 무료 의료와 교육; 실업과 생활에 충분한 급여가 제공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한 사회안전보장; 그리고 광범위한 국가소유 주택제공. 물론 이 모든 것들은 비용이 따랐다: 일부 산업의 국유화 그리고 고율의 세금부과를 통한 정부재원의 재배정 등. 이 프로그램은 수십 년간 잘 유지되면서 완전고용 그리고 모두를 위한 관대한 표준적 삶을 제공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뉴질랜드의 수출 경제에 유리한 환경들이 사라지면서 주요 무역대상국들이 수입을 줄이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 뉴질랜드 경제는 마침내 호황의 끝에 도달하게 된다. 정부의 심각한 부채 상환 비용과 더불어 보편적 복지와 사회적 지원을 위한 비용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1984년 이전 국민당 정부로부터 달갑지 않은 과제를 안고 집권한 노동당 정부는 사회적 목적보다는 경제적 목적에 초점을 맞춘 구조조정과 개혁을 전격적으로 시행한다. 이 프로그램은 국가의 절박한 경제적 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합리적 전략으로서 점진적으로 돈과 사회적 혜택이 부자로부터 가난한 자에게로 이어지는 ‘낙수효과(trickling down)’를 가져올 것이라고 소개되었다. 1980년대는 뉴질랜드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을 형성하면서 그 영향은 오늘날 빈곤의 만연과 물질적 불평등을 가져오게 되었다.
견인차 2: 신자유주의와 소득불평등의 대두 (Driver 2: Neoliberalism and the Rise of Income Inequality)
1980년대 이후 집권한 모든 뉴질랜드 정부들의 기조는 사회의 자원들에 대한 주요 재분배 메커니즘은 국가(state)가 아닌 시장(market)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전과 같은 국가의 중재 역할이 없음에 따라 자원의 배분은 갈수록 불균형적으로 되었는데 이는 사회구성원 일부가 다른 이들보다 시장의 조건들을 활용하는데 나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뉴질랜드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격차는 다른 선진국보다 더 빠르게 벌어졌다. 뉴질랜드의 최상위 10% 가구는 최하위 10% 가구의 평균 9배 소득을 벌고 있으며 가장 부유한 1%의 뉴질랜더가 국가 전체 부의 16%를 가지고 있다. OECD 국가 중 뉴질랜드는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Gini계수 - 나라 간 소득 불평등을 비교하기 위한 표준 측정수단 - 가 가장 크게 증가한 국가 중 하나이다. 이 벌어지는 소득격차는 그 속도와 성격 면에서, 국제 기준으로 보아도, 주목할만한데 지난 30년간에 걸쳐 행해진 신자유주의 정책의 직접적 결과물이다.
견인차 3: 노동,복지 그리고 주택구매에 있어 정책의 변화 (Driver 3: Policy Shifts in Work, Welfare and Housing)
자원과 소득의 분배를 시장에 맡긴 정책접근은 많은 해로운 사회적 결과를 가져왔다. 가장 폭넓게 관찰되는 것 중 하나는 노동의 본질에 대한 변화이다. 완전고용, 직업의 안정성 그리고 먹고살 만한 임금은 이제는 정책의 목표가 아니게 되었으며 제한된 숫자의 일자리를 이용해 노동자들 간 경쟁을 유도하는 고용주들 탓에 일자리는 갈수록 캐주얼화 되고 불안정해졌다. 뉴질랜드가 세계 최초로 주당 40시간 노동과 가족 임금을 도입한 나라이지만 지금은 OECD 다른 대부분 국가들보다 더 긴 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이후 복지혜택 정책의 증가하는 변화는 사람들이 불안정한 직업을 전전하는 동안 표준적 삶을 유지하기 위해 더는 국가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낮은 임금경제와 공공주택 제공에서 국가 역할의 축소 탓에 노동자 수입 중 주거비용 비중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으며 이전에 국가가 제공한 주택에 살던 사람들이 이제는 개인이 소유한 주택을 임대해서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변화들은 캐피탈의 소유자들 - 특히 사업체와 임대주택 - 에게 현저히 유리하게 작용하면서 뉴질랜드 사회의 한 특징이 된 소득불평등과 물질적 분열에 대한 구조적 원인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왜 상대적 빈곤과 사회-경제적 결핍이 문제가 되는가? (Why Do Relative Poverty and Socio-economic Deprivation Matter?)
빈곤과 사회-경제적 결핍은 이것들이 사람들의 행복에 여러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빈곤은 그들의 상황을 향상할 수 있는 사회이동을 위한 기회들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의 능력을 잠식한다. 빈곤 속에 사는 가족들은 ‘빈곤한 선택(poor choices)’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들에게는 이런 옵션들만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들이기 때문이다. 빈곤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생산성 손실, 범죄 그리고 나쁜 건강을 통해 장기적 비용을 사회에 발생시킨다. 빈곤에 처한 노인들은 필요로 하는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며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식사를 거르거나 제대로 난방을 하지 못한다.
Richard Wilkinson과 Kate Pickett는 그들의 논문 ‘Spirit Level’을 통해서 불평등은 단순히 희생자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단언한다. 빈곤의 직접적 해당자가 아닌 뉴질랜더들도 높은 단계의 2차 건강케어 서비스 제공과 시간이 흘러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사회적 안전보장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금마련을 위한 세금부담을 통해 여전히 영향을 받는다. 간접적인 사회비용은 생산성과 경제적 발전의 손실과 더불어 빈곤 상태에 놓여있지 않다면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잠재적 기회손실비용도 포함한다. 결핍은 또한 자신이 자원 혹은 권력에 대한 접근으로부터 배제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사회적 융합을 해치는 방식으로 자신의 지위를 바꾸려고 할 때 사회적 동요, 불신 그리고 범죄를 위한 성숙한 조건들을 창조한다. 빈곤과 사회-경제적 결핍은 그것들이 실제 인간,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비용을 포함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 불평등의 비용들은 단지 가난한 자들만 부담하는 게 아니라 모든 뉴질랜더들이 짊어지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는가 (The Poor Will Always Be with Us?)
우리가 본 것처럼 국가도 시장도 빈곤에 떨어지는 뉴질랜더들에 대해 안전망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학자들이 좀 더 관심을 두는 사항은 아마 빈곤과 불평등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이것들이 필요하다고 믿는 대중들의 태도일 것이다. Humpage가 실시한 대중 여론조사에 따르면 뉴질랜더들은 전반적으로 재분배보다는 감세를 선호하고 저소득 가정들, 싱글 부모 그리고 실업자들에게 제공하는 보다 보편적 형식의 도움보다는 ‘받을 자격이 있는 가난한 사람들 (deserving poor)’ - 노인, 환자 그리고 장애인들 - 을 겨냥한 지원을 명백히 선호한다. 유사하게 Philip Morrison도 ‘뉴질랜드 사회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증가하는 증거에도 채 절반도 안되는 사람들만이 소득이 좀 더 평등해져야 하거나 정부는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간의 소득 차이를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는다’라고 밝혔다. 만약 뉴질랜더들이 구조적 실체 측면에서 현재 빈곤의 이데올로기적 구조를 바꾸려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불평등에 수반되는 광범위한 결과물들은 뉴질랜드의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지형의 특징으로 남을 것이다.
'뉴질랜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질랜드는 여전히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We Still Need Feminism in Aotearoa) (0) | 2020.01.06 |
---|---|
신자유주의 시대의 뉴질랜드 사회 이동(Social Mobility in Aotearoa New Zealand in the Neoliberal Era) (0) | 2020.01.03 |
부자와 가난한 자 (Rich and Poor) (0) | 2019.12.30 |
나와 돈의 땅? (The Land of Me and Money?) (0) | 2019.12.28 |
뉴질랜드의 아시아화 (The Asianisation of Aotearoa) (0) | 2019.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