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

뉴질랜드 이야기

뉴질랜드의 동성애 ((Homosexuality in Aotearoa New Zealand)

김 무인 2020. 1. 1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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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동성애 (Homosexuality in Aotearoa New Zealand)

 

규제와 저항 (Regulation and Resistance) 

 

Johanna Schmidt

 

 

 

우리 주변의 일상 대화들을 보면 특정 형식의 성적특질(sexuality)들만이 ‘자연스럽거나’ 혹은 ‘정상’으로 여겨진다. 성적특질을 자연과 연계시키는 것은 성적특질이 신체 활동 및 생물학적 과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타당해 보이고 종족보존(reproduction)에서 (거의)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종족보존이 성적특질의 본질을 구성한다는 결과적 가정은 특정 성적 행위와 정체성을 정당화하고 나머지는 소외시킨다. 2004년 뉴질랜드 동성 간 결혼법 (Civil Union Act)과 관련하여 Otago Daily Times의 편집자에게 독자가 보낸 아래의 글은 종족보존, 성적특질 그리고 자연과의 연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공통적 인간성과 무엇이 결혼이라는 특별한 관계를 구성하는지를 생각해 볼 때 남녀의 결합을 통해서만 사랑을 주는 것이 곧 생명을 주는 것임이 명확하다. 동성간의 결혼은 그럴 수가 없고 따라서 자연과 배치가 되는 것이다.’ 성적특질은 인간 불변의 특질 중 하나이다; 모든 사회 그리고 모든 역사적 시대의 사람들은 성적 활동에 참여한다.

 

이 성적 활동들은 또 이 활동들에 수반되는 문화적 의미와 해석을 한결같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의미와 해석들이 문화마다 다르고 역사를 통해서 변화해 왔다는 사실은 성적특질이 단순히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회적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사회 현상으로서 성적특질의 핵심 구성요소 중 하나는 권력이 작동함을 보여주는 성적특질에 대한 규제(regulation)이다. 이 규제는 아마도 국가의 법 혹은 종교 칙령에 잘 드러나 있겠지만, 일상의 대화 혹은 담론에서도 발견된다.

 

이글에서 나는 성적 정체성과 행위가 어떻게 제한되고 통제되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 뉴질랜드에서 동성애에 대한 사회와 국가의 규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 논의를 위해 먼저 ‘이성애 규범성(heteromormativity)’의 개념부터 시작한다: ‘이성애 규범성은 이성 간 사랑(heterosexuality) 그리고 성별 간 차이와 계층화 - 낭만적 사랑, 일부일처제 그리고 종족보존 성행위를 포함 - 를 유지하는 사고, 규범 그리고 관습의 체계이다.’ 이 개념에서 출발하여 나는 뉴질랜드에서 동성애(homosexuality)에 대한 규제(법적, 의학적 그리고 문화적)와 이 규제에 대한 저항의 역사를 통해서 동성애가 어떻게 형성이 되어 왔는지 기술할 것이다. 이글에서는 파케하 남성의 동성애 관계와 정체성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뉴질랜드의 여성, 마오리 그리고 퍼시피카 사람들의 비 이성애 규범적 정체성들이 소외되고 지배적 담론에 수용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별도로 논한 바 있다.

 

 

이성애 규범성 (heteronormativity)

 

간단히 말해, ‘이성애 규범성’은 이성 간 관계를 다른 모든 것보다 우월한 지위에 놓고 이성 간의 사랑을 ‘정상(norm)’ 그리고 다른 모든 성적 행위들은 ‘비정상(deviant)’으로 규정한다. 성적특질의 최정점에는 일부일처 결혼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종족보존이 가능한 이성 간 사랑이 있다. 이성 간 사랑에 특권을 부여하는 것은 성적특질(sexuality)은 본질에서 생물학적 종족보존 필요성과 연결이 되어있고/되어야만 하고 모든 성적 관계의 비 종족보존 형식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고(unnatural)’ 따라서 ‘잘못된(wrong)’ 것이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가장 흔하게는 동성애를 겨냥한 것이지만 BDSM (속박 (Bondage), 훈육 (Discipline), 사디즘 (Sadism), 마조히즘 (Masochism)), 포르노 그리고 자위에도 적용된다.

 

이성애 규범성은 동성애 혐오가 존재하는 사회 문화적 환경을 제공한다: 만약 이성 간의 사랑만이 ‘정상’으로 이해된다면 사람들이 이성 간 사랑이라는 규범을 따라가지 않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미워할 가능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성애 규범성(heteronormativity)’이란 용어는 Michael Warner가 1991년 동성애자 이론에 관한 Social Text 특별판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개념(용어가 아니라)은 그 이전부터 사용되었는데 잘 알려진 바는 1980년 Adrien Rich가 ‘의무적 이성애(compulsory heterosexuality)’를 논박할 때였다. 이성애 규범성은 우리가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특정 형식의 섹스를 즐기도록 ‘진화(evolve)’해 왔다는 이해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성적특질에 대한 접근방식은 여러 문제가 있는데 그 중 3개를 나열해본다.

 

첫째, ‘자연스럽다(natural)’를 ‘도덕적으로 맞다’와 동일시하는 생각은 대부분 삶의 영역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사회생활의 ‘부자연스러운(unnatural)’ 많은 면이 ‘잘못되었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많은 경우에는 오히려 적절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 예를 들어 옷을 입는 행위.

 

둘째, 압도적 다수의 이성 간 사랑 행위들 자체가 종족보존 용도가 아니다: 가장 명백하게 피임은 이성 간 육체 관계의 종족 보존 잠재력을 억제하는 한편 불임과 노령화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 역시 종족보존 기능이 없는 이성 간 섹스를 유발한다. 또한, 구강성교나 항문성교 같은 많은 특정 행위들은 이성 간 섹스이자 동시에 비이성 간 섹스로서 종족보존의 역할이 없다.

 

셋째, 현대 서구 사회에서 섹스하는 동기 - 심지어 이성 간에도 - 에 종족보존의 자리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학생들은 한 연구에서 종족보존 동기 없이 섹스를 하는 237개의 이유를 댔다. 물론 이 그룹은 일반 대중보다 젊기 때문에 대표성이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이 연구는 섹스가 종족보존과는 거의 연관이 없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성 간 사랑이 아닌 다른 형식의 사랑은 어쨌든 ‘부자연스럽다’라는 인식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성적특질을 ‘자연’이라는 기저에 박아넣고 그것을 진화적 필요성으로 프레이밍하는 것은 섹스 행위 자체가 어떻게 이해되는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Masters나 Johnson 같은 성 문제 전문가들은 성적 행위의 범위는 지극히 넓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가장 자연스러운 이성 간 성행위 형식은 남자 성기에 의한 여자 질로의 삽입이라고 일상적으로 가정되어 왔다. 모든 다른 성적 행동들은 사전 행위 혹은 선택적 추가 혹은 ‘진짜(real thing)’가 사정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 때 대체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필수적 성교(coital imperative)’는 여성의 성적 쾌감에 부정적일 수 있다.; 많은 여성이 성교를 즐기지만 어떤 여성에게는 성교가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위한 최적의 수단이 아닐 수 있다. 그리고 소수 여성에게는 성교가 쾌락은커녕 고통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따라서 성교만을 ‘진정한 섹스’라고 간주하는 것은 여성에게 항상 혜택을 가져주지만은 않는 성적 행위를 특별시 하는 것이다.

 

특정 권력관계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담론들의 자연화(naturalisation)를 Antonio Gramsci는 ‘패권(hegemony)’으로 정의했다. 패권은 특정 이상들이 ‘맞고(right)’ ‘자연스러운(natural)’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으로서 특정 그룹이 그들의 지배를 억압 혹은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동의를 통해서 유지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성 간 사랑의 자연화는 현대 서구 사회에서 이성 간 사랑을 선호하는 남성들의 특권적 지위를 강화하는 구실을 한다. 이 강화 방식 중 가장 강력한 방식은 이성애로부터 소외되어 ‘타자(other)’가 된 동성애자들의 거부이다.

 

 

동성애의 구성 (The Construction of Homosexuality)

 

이성애와 동성애 간 내재적 연관은 19세기 후반 이들이 개념으로서 거의 동시에 출현할 때부터 명백했다. 특정 성적 행위에 대한 제재는 모든 기독교 분파에서 있었으며 1530년대에 영국에서는 ‘항문성교(buggery)’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칙령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이 법은 ‘남자와 여자 사이, 남자와 동물 사이 그리고 남자와 남자 사이의 항문성교 간 구별을 제대로 하지 않음으로써’ 항문성교는 죄악시했지만, 특정 종류의 사람에 대해 경계를 정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성적 취향(sexual orientation)으로서 ‘동성애(homosexuality)’ 개념은 1868년에 처음 도입되었으며 바로 10년 뒤에 ‘이성애(heterosexuality)’ 개념이 등장한다. 1880년대와 1890년대를 통해서 심리학계에서는 동성애를 ‘병적 상태(condition)’로 이해했고 법적 초점이 특정 성적 행위로부터 이 행위를 하는 사람에게로 옮겨갔다. 1885년, 남자들 사이의(여자들 사이는 아니다) 모든 성적 행위가 영국에서 불법화되었다.

 

이 같은 성적 행위에 대한 규제로부터 성적 정체성에 관한 관심으로의 이전은 뉴질랜드 역사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된다. ‘전통적’ 마오리 언어에는 ‘동성애’라는 단어가 없지만, 유럽인들과의 접촉이 없었던 시절에도 마오리 남성들 간에 섹스가 있었다는 증거가 발견된다. 그러나 식민화와 기독교의 뉴질랜드 유입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문화, 도덕 그리고 법률은 남자들 간의 성적 관계를 규제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영국법을 따라 구강성교와 남자들간 상호자위를 제외한 성적 폭력과 수간을 불법화했다. 1893년의 Criminal Code Act에서는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행한 ‘모든’ 행위를 성적 폭력으로 재정의하였으며 이 정의는 1908년 Crimes Act에서도 이어진다.

 

 

뉴질랜드의 동성애 (Homosexuality in New Zealand)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20세기 초 동성애적 ‘정체성(identity)’이 등장하면서 이 정체성을 둘러싼 문화가 점차 발전되었다. 이에 따라 ‘동성애자 세계(queer word)’가 사적 공간 혹은 어두운 영역으로부터 커피숍, 술집 그리고 클럽과 같은 공공 영역으로 진출했다. 이같이 증가하는 가시성과 정치화는 경찰의 주목을 불가피하게 동반하게 된다. 동성애적 행위로 말미암은 유죄판결은 1950년대에 갈수록 증가하여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정점에 달하면서 자극적 미디어들은 대중들에게 이 성적 ‘위법행위(misconduct)’에 대한 관심을 환기했다. 미디어들은 대부분 부정적으로 동성애 행위를 다루었지만, 독자들은 자신들과 같은 다른 이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 시기는 민권운동과 제2 물결 페미니즘 운동 같은 다양한 사회운동이 전 세계에서 활발하던 때였다. 1969년 뉴욕에 있는 Stonewall bar를 경찰이 급습한 사건을 계기로 동성애자들과 성전환자들이 폭동을 일으키면서 동성애 해방운동은 이 사회운동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운동은 더욱 다양한 동성애자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수용하면서 줄임말(acronym) GLBTI(Gay, Lesbian, Bisexual, Trans, intersex)를 탄생시킨다. 이런 가시적 활동을 통해 대중의 여론 전환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올리게 된다. 1970년대에 행해진 조사들은 동성애에 대한 대중들의 여론이 상대적으로 호의적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주는데 특히 젊은 뉴질랜더들이 더 긍정적으로 반응한 것은 관점에서 세대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같이 증가하는 가시성과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수용은 지배그룹이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패권을 영원히 유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패권은 지속해서 관리하고 지키는 것이다. 이 패권 형성과정은 권력 체계와 계층구조의 시대에 따른 변동과 소외된 그룹의 관점을 일정 부분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운동은 권리를 박탈당한 다양한 그룹의 목소리를 대표하면서 지배 권력을 잠재적으로 위협하기에 충분한 힘을 보여주었다. 다른 사회 운동의 목소리들과 더불어 GLBTI의 권리와 사회적 수용을 위한 사람들의 요구는 점차 주류 담론에 수용되었다.

 

 

식 담론에서의 변화(Shifts in Official Discourse)

 

20세기 말을 향해가면서 다른 대부분의 서방 국가와 같이 뉴질랜드에서도 동성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문화적 변화가 의학과 법과 같은 보다 ‘공식적(official)’ 담론에서 감지된다. 20세기 중반까지 동성애를 불법 시하고 병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합당(rightly)’하다는 것이 전반적 분위기였다. 그러나 1950년대 발간된 두 보고서는 동성애를 바라보는 서구 사회의 시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킨제이 보고서(Kinsey Report)는 전체 인구의 성적 경험과 선호가 매우 다양하다는 과학적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동성애를 ‘부자연스러운(unnatural)’ 것이라는 인식에 타격을 가한다.

 

영국의 Wolfenden Report는 동성애는 사적 이슈이므로 법적 제재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 두 리포트는 성인 남자들 사이에 동의하에 이루어진 섹스에 대한 비범죄화 초기 운동의 시발점이 된다. 뉴질랜드에서 이 운동은 뉴질랜드 동성애 법 개정 사회 (New Zealand Homosexual Law Reform Society :NZHLRS)의 결성과 함께 시작된다. NZHRLS는 특별하게 동성애를 ‘지지(pro)’하지는 않는다; 다만 Wolfenden Report에 따라 성인들 상호 동의하에 행해진 것은 대중들의 관심사가 될 필요도 법적 제재 대상이 될 필요도 없다는 전형적 자유주의 접근방식을 유지한다.

 

1973년 미국의 정신질환 안내서에서 삭제됨으로써 동성애는 공식적으로 심리학적 진단 대상이 되는 것은 끝났지만, 동성애에 대한 의학적 접근은 여전히 대중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그 영향 때문인지 법 개정에서 동성애의 상호 동의의 나이 제한을 둘러싸고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16세로 하자는 안과 그보다는 높아야 한다는 안이 충돌하면서 이 운동 내 균열이 생기게 된다. 이 연령을 둘러싼 충돌은 성인들 동의하에 이루어지는 동성애는 사적 문제이지만 여전히 이성애보다는 덜 ‘적절하다’는 인식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결과적으로 1975년 동성애에 대한 비범죄화 법안이 최초로 의회에 제출되었을 때 제한 연령은 21세였는데 그나마도 의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Gay 운동이 활발하던 1970년대에 동성애는 ‘병적 상태’라기보다는 치료가 필요없는 취향의 문제로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NZHRLS에 대한 리버럴 보수주의적 접근은 인종과 성(gender)과 연계된 평등과 해방의 동기를 수용한 보다 과격하고 공격적인 목소리로 대체되기 시작한다. 이 공격적 운동은 1980년대 중반 동성애 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의에서 잘 드러났다. 이 법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전 지지자들과 달리 더욱 정치적인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만만치 않은 반대에 직면하게 된다. 반대 그룹이 소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은 흔한 이성애 규범성과 동성애 혐오 문구로 가득 차 있었다: 항문성교는 부자연스럽고(항문성교는 동성애 사이에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동성애는 종족보존의 기능이 없으며(대부분 이성 간 섹스도 이 기능이 없다) 동성애 남자들은 소아성애자들이다. 또한, 당시 이슈가 되던 HIV/AIDS와 동성애 간의 관련성에도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럼에도 1985년 16세 이상의 남성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성적 행위를 비범죄화(decriminalization)하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게 된다. 비록 성적 취향을 근거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의 두 번째 부분은 통과에 실패했지만 이후 1993년의 인권법(Human Right Act)에 성적 취향이 반영되게 하는 주춧돌을 놓았다.

 

1985년 법안 통과를 위해 80만명이 서명한 탄원서가 의회에 도착한다 

 

 

반차별법안은 결혼제도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1997년 두 명의 레즈비언 커플이 결혼이 오직 이성 커플에게만 허락되는 것은 차별적이라고 법원에 이의를 제기한다. 비록 이들의 이의제기는 실패했지만, 항소심 판사 중 한 명의 결론은 주목할만하다: ‘결혼의 본질은 종족보존이 아니라 헌신, 친교 그리고 재정적 상호의지이다.’ 이는 결혼은 근본적으로 종족보존의 필요성에 기초한다는 이해가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21세기 초는 이런 문화적 변동을 잘 볼 수 있는 시기이다. 2004년 기본적으로 이성 간 결혼과 같은 권리를 가진 동성 간 결혼(civil union) 법안이 의회를 통과한다.

 

뒤를 이어 2013년 결혼은 ‘성, 성적 취향 혹은 성적 정체성과 관계없이 두 사람 간의 관계’라고 명백히 (재)정의한 결혼개정법(Marriage(Definition of Marriage) Amendment Act)이 의회를 통과한다. 위 두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성애 규범성과 유사한 수사를 구사한다: 동성 부모를 가진 자녀는 불이익을 당할 것이다.

 

이 법안들의 통과는 동성애 권리 운동의 위대한 승리로 표현되지만 이런 이해가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Civil union과 결혼에 대한 GLBTI의 초점은 특정 ‘종류’의 동성 관계를 특혜시한다: 이 동성 간 결혼관계에 있는 동성애자들은 ‘자상하고 헌신적’이어야 한다는 이성애 규범성에서 보이는  결혼관계는 ‘이래야만 된다(should)’는 요구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많은 동성애자 이론가들은 아래와 같은 우려를 표명한다.

 

결혼은 LGBT(Lesbian, Gay, Bisexuals, Transgender: 역주) 사람들을 주류 문화와 그 문화의 가장 보수적이고 가부장적 제도인 결혼에 편입시킴으로써 동성애자들의 성적 특질을 일부일처제와 국가 통제 하의 관계로 가두어두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이는 차별화된  ‘동성애자(queer)’ 정체성과 문화의 종말을 의미하는 새로운 ‘동성애 규범성 (homonormativity)’의 등장을 가져올 것이다. 

 

이성 간 결혼을 모델로- 헌신, 일부일처제 그리고 특정 법적 경제적 권리와 책임 - 특정  관계를 특권화하는 것은 결혼관계에 있는 동성 커플은 ‘존경할만한(respectable)’하고 그런 관계에 있지 않은 다른 GLBTI 커플은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2013년 결혼개정법은 사회 내 소외 그룹의 권리 신장에서 중요한 진전임과 동시에 사회 규범에 대한 굴복일 수 있다. 이와 같은 결혼법 개정의 성공과 동시에 현대 이성애 규범성에 대한 진정한 도전의 실패는 패권적 권력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이런 정도의 변화 수용은 지배적 규범의 본질적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뿐더러 이런 불만의 목소리의 수용은 더 급진적 잠재력을 ‘누수(watering down)’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결론(Conclusion)

 

성적 행위는 본질에서 사적 행위라고 일반적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위에서 서술했듯이 특정 성적 행위들과 정체성은 종종 국가 차원에서의 법적 제재 그리고/혹은 문화적 규범(norms)의 대상이 되다는 사실은 섹스가 매우 ‘공적인(pubic)’ 면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성애 규범성과 그 생물학적 법칙의 기반은 성적특질에 대한 문화적, 법적 그리고 의학적 규제를 형성해 왔다. 

 

20세기 뉴질랜드는 사회적, 법적, 그리고 의학적 분야의 변화에서 느리고 조심스러웠지만, 평등주의와 관용 기조는 최근의 동성 간 결혼 논쟁에서 잘 드러났듯이 우리의 담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동성 간 커플을 수용하는 결혼 범주의 확대는 동성애 운동의 목소리가 사회적 법적 차원의 변화를 가져올 만큼 컸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들은 성적특질의 이성애 규범성 모델의 변화는 가져오지 못했다. 이성애 규범성의 제약을 진정으로 문제화하기 위해서는 성적특질이 가지는 수 많은 형식에 관심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비 이성애 규범적(non-heteronormative) 성적특질에 대한 인정은 심지어 이성애 규범적 결혼 관계에서도 완성되기 힘든 실체인 일부일처제, 한 쌍, 평생 그리고 종족보존이 가능한 결혼이라는 규범적 이상에 대한 도전의 포문을 열 잠재력을 가진다. 예를 들어, 비 이성애 규범적 사람들은 생물학적 혹은 법적 연결고리 없는 ‘선택적 가족(families of choice)’을 형성함으로써 ‘동성애자’ 시각으로 가족제도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며 생물학적 종족보존의 최우선시에 도전하는 다양한 수단들을 통해 부모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성애 규범성을 벗어남으로써 일부일처제가 이상적인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GLBTI 운동의 초점이 이처럼 잠재력들로부터 국가통제 하의 결혼으로 이전한다는 것은 ‘동성애자들의 바람과 이성애를 지지하는 중산층과의 바람’을 일치시키고 ‘동성애자 정체성의 차별성을 억압하고 차이점을 소거시키면서 다수 그룹과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는 ‘포스트-동성애 정치(post-gay politics)’의 등장을 의미한다.